2025년 10월 26일 일요일

생각정리 102 (*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

낭만의 시대에서 탑다운의 시대로: 변화하는 시장과 투자자의 자세


10여 년 전 국내 주식투자 업계에는 대형주보다 중소형주 발굴이 곧 실력으로 통하던, 소위 ‘낭만’이 있던 시절이 있었다. 나 역시 대학생 때 여러 투자 모임에 참석해 중소형주를 발굴하고 발표하는 일을 즐겼다. 당시에는 매크로 환경이 비교적 안정적이었고, 인플레이션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큰 무리 없이 투자가 가능했다. 저금리·제로금리가 일상화되어 있었으며, 코스피 2000대 박스권은 거의 상수처럼 여겨졌다.


그 시절의 투자 방식은 개별기업 중심의 바텀업이었다. 기업탐방을 다니며 미공개 중요정보를 얻고, 이를 활용한 선취매가 일상적이었다. 부지런함이 곧 실력으로 검증되던 시대였다. 나 또한 운용사에 입사하여 기차표를 끊거나 증권사 차량을 얻어타고 지방 곳곳을 다니며 회사탐방을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 공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국면에 도달한 듯하다. 대기업들의 IR 콜을 이어폰 너머로 듣다 보면, 모든 정보를 공개하지 않을 뿐 아니라 중요한 정보는 의도적으로 숨기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앞뒤가 맞지 않는 숫자와 실적, 그리고 내부 원인을 감추려는 반복적 왜곡이 감지된다. 시장과의 소통 창구인 IR 부서가 상부 지침에 따라 투자자들에게 왜곡된 착시를 유도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느껴진다. 내부 인맥을 통한 증권사 정보 역시 신뢰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염되어 있는 사례가 허다하다. 이러한 오염된 정보에 기대어 지난 1년간 잘못된 투자 판단을 반복한 경험은, 이제 방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자각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덧붙여, 나 또한 과거 개별기업 분석과 탐방을 주로 했던 ‘낭만’의 시대에 투자를 시작했던 습관이 아직까지 남아 있어, 무의식적으로 개별기업에 집중할 때가 있었다. 그 결과 개별기업 투자에 비중을 잠깐 높였다가도 시장의 흐름과 어긋나 실수를 반복하곤 했다. 이제는 이러한 좋지 못한 습관과 자아를 내려놓고, 시장의 흐름에 역행하는 투자를 지양해야 한다는 생각이 한층 강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환경 변화는 오히려 더 순수한 투자 실력으로 수익률을 경쟁할 수 있는 판을 열었다고도 볼 수 있다. 매크로 외부변수가 기업 경영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면서, 매일 쏟아지는 중요 정보를 취합자신만의 시나리오를 그리는 투자자가, 내부 기업정보에 의존하는 투자자보다 정보 우위를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제로 기업과의 미팅에서도, 그들 역시 변화무쌍한 외부변수들을 일일이 인지·대응하지 못하거나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늘고 있음을 체감한다.


내수경기와 투자 프레임의 전환


주식투자를 막 시작했을 때 처음 분석했던 지누스라는 기업을 떠올려 본다. 바텀업 관점에서는 좋은 기업처럼 보였으나, 매크로가 중요해진 탑다운 관점으로 전환하니 최악의 선택지로 보이기도 했다. 자유무역 시대 글로벌 공급망을 강점으로 내세웠던 기업이, 보호무역·폐쇄무역이 상시화된 현재에는 그 강점이 약점으로 전환되어 기존의 경쟁력 자체가 무력화되는 것이다.

일시적으로 해당 기업에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되더라도 그보다 더 상위개념인 보호무역, 패쇄무역이라는 큰 틀이 바뀌지 않는 한 해당 기업의 경쟁력에 대한 근본적인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내부 역량이 아무리 뛰어나도 외부 정세 흐름에 역행한다면 투자해서는 안 되는 기업이라는 확신이 생긴다. 반대로 내부 역량이 미흡하더라도 정세의 한가운데 있는 기업은, 그간의 저평가가 빠르게 해소되며 이익과 주가가 단숨에 상승하는 경험도 자주 있었다.


동시에 과거 바텀업 중소형주 투자에 Active 자금이 유입되던 ‘낭만’의 시대가 저물고, 탑다운·대형주 위주 투자가 부상하면서 ETF, Passive 자금 흐름이 강화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거스르지 말고, 자아를 낮추어 시장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Passive·ETF 자금이 어디로 흐를지 예측하고, 그들보다 반 발짝 앞서 나가려는 전략이 필요하다.


회사, 이익, 그리고 냉정한 현실


처음 운용업계에 입문하며 들었던 말이 있다. 회사는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회사라는 집단에 속해 있는 한 이익을 우선해야 하며, 이익을 우선하지 않는 회사는 존재 이유가 없다는 것이였다. 동시에 사내 개인적인  친분이 그 회사의 사적이익보다 우선해선 안된다는 경각심을 항상 일깨워주셨었다.

그 안에서 나의 존재 가치 역시 이익 기여 여부에 따라 평가된다는 냉정한 현실이다. 당시에는 살벌하게 들렸으나, 지금 돌아보면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인식은 어원에서도 확인된다.

**회사(會社)**는 ‘모일 회(會)’와 ‘모임/사단 사(社)’의 결합으로, **“사람들이 모여 조직한 단체”**를 뜻한다. 동아시아 한문권에서 會社는 넓게 모임·단체를 의미했으나, 근대에 들어 상업·영리 목적의 조직이라는 의미가 강화되었다. 이익을 우선하지 않는 회사는 존재 이유가 없다는 명제는 이러한 의미 변화와 궤를 같이한다.


회사 이익에 기여하지 못한다면, 회사 내 나의 가치도 그만큼 희석된다. 특히 외부 투자자금을 위탁받아 수익의 과실을 함께 나누는 투자자라면, 시장 변화에 대한 경각심을 결코 놓아선 안된다. 이익에의 기여환경 변화에의 민감도는 곧 직업적 신뢰와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개인적 사례와 구조적 하강의 그림자


어머니는 상가에서 옷 장사를 10년 넘게 이어오시며 우리를 키워주셨다. 그러나 이커머스 시장의 성장으로 상가 내 옷가게들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계속되는 어려움 속에서 어머니는 계약기간이 남았음에도 가게를 정리하고 다른 일거리를 찾는 결단을 내리셨다. 보증금을 못 돌려받는다는 판단을 내리시고 매몰비용임을 인지한 어머니는 옷 가계에 더 머무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판단하신 것이다. 같은 상가의 다른 이들은 쉽게 결단하지 못했으나, 시간이 흐르자 어머니는 새로운 직장에 자리를 잡아가셨지만 그 건물 내 상가는 모두 폐업했고 건물 용도까지 변경되었고, 마지막까지 남으신 분들은 결국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셨었다고 들었다.  그 당시 나는 막 대학에 입학한 시기라 집안에 보탬이 되지 못했던 무력했던 기억이 있다.

최근에는 내수경기가 구조적 하강 국면에 접어들었고, 하강 속도 역시 가팔라지는 조짐이 나타난다. 그에 따라 자영업자들의 폐업 소식이 속속 들려온다. 과거의 우리 어머니처럼 평생 해온 업을 떠나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자영업자들, 그리고 과거 통하던 바텀업 방식을 떠나 탑다운 매크로 투자로 전환해야 하는 투자자들 모두에게, 과거의 매몰비용에 집착하지 않고 변화에 유연히 적응하는 태도가 곧 생존의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결론: 변화-통함-지속의 순환


세상이 변하는데 정체하거나 과거에 머무는 순간 매몰비용이 누적된다. 이러한 매몰비용은 우리의 발목을 잡아, 평생 벗어나기 어려운 소용돌이로 끌고 갈 수 있다.

그러므로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窮則變 變則通 通則久)**를 새기고자 한다. 막히면 변화하고, 변화하면 통하며, 통하면 오래 간다.

지금은 낭만의 시대에서 탑다운의 시대로 넘어가는 변곡점이다. 시장과 자금의 흐름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외부변수의 지형 위에서 시나리오를 구축하며, Passive·ETF 자금의 궤적을 반 발짝 앞서 읽는 노력이 우리를 **통(通)**으로 이끌 것이며, 그 위에서만 **구(久)**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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