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1일 목요일

생각정리 142 (* Stable Coin, Bubble)

 더불어부동산당은 믿음이다..


https://www.sedaily.com/NewsView/2H1NX5VLJG


원화 스테이블코인에 MBS를 담보로 넣겠다는 발상은 왜 나오고, 무엇이 달라지는가


(주금공의 ‘MBS 담보 인정’ 검토를 계기로 본 한국형 신용재창출 경로와 부동산 버블 리스크)

1) 왜 하필 MBS인가: “원화·원화국채의 구조적 약세”를 우회하려는 유혹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본질적으로 “원화 1원 = 코인 1개”로 환매를 약속하는 민간의 단기부채이다. 이 약속을 지키려면 발행사는 코인만큼의 준비자산(담보자산) 을 들고 있어야 한다.


문제는, 한국에서 “가장 정석적인 준비자산”으로 상정되는 원화 예금·원화 국채 쪽이 구조적으로 매력도가 약해졌다는 인식이 커져 있다는 점이다. 기축통화국과 달리, 한국은 대외충격(자본흐름·환율)과 금융안정 제약이 커서 정책 여지가 제한적이며(외환시장 ‘얕음’과 변동성, 거시건전성 중요성 등), 이창용 총재의 IMF 강연에서도 한국 경제가 외환·금융안정 제약 아래에서 정책 조합을 고민해온 맥락이 강조된다.


이런 배경에서 “원화 국채 대신, 한국에서 수요가 가장 강하고 ‘안전자산’에 가깝게 인식되는 담보를 쓰자”는 아이디어가 나오는데, 그 후보가 주택담보대출 기반 MBS이다. 실제로 한국주택금융공사(주금공)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담보자산 범위에 MBS를 포함하는 방안을 내년 과제로 검토 중이라고 알려졌고, MBS 수요 기반 확충을 통해 정책모기지 금리를 낮추는 효과를 기대한다는 취지까지 언급된다. (서울경제)


2) 행위주체를 분해하면 보이는 구조: 누가 무엇을 사고, 무엇이 늘어나는가


여기서부터는 “사람(기관)”을 명확히 잡고 봐야 이해가 쉽다.

(A) 차주(가계)

  • 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받는다.


(B) 은행(또는 대출 취급기관)

  • 대출을 실행하면 예금(통화) 이 만들어진다. 즉, 은행대출은 통화(특히 M2)의 핵심 생성 경로이다. (한국은행)

  • 다만 은행은 대출을 계속 늘리려면 자본비율·유동성·규제(DSR/LTV 등)와 자금조달 비용에 묶인다.


(C) 주금공(KHFC) / MBS 발행 구조

  • 은행이 만든 주택담보대출을 “증권화”해 MBS로 만들어 시장에 판다.

  • 주금공의 증권화 과정은 “은행이 모기지를 ‘증권화’하여 시장에 매각함으로써 (자금조달을) 용이하게 한다”는 취지로 설명된다.


(D)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민간)

  • 규제가 허용하면, 준비자산으로 국채·예금뿐 아니라 MBS도 대규모로 편입한다. (서울경제)

  • 이용자가 코인을 사기 위해 넣는 원화(또는 예금)가 발행사로 들어오고, 발행사는 그 돈으로 MBS를 산다.


(E) 코인 이용자/투자자/결제 생태계

  • 코인이 결제·송금·거래 담보로 널리 쓰일수록, 코인은 사실상 “민간이 만든 지급수단”이 된다.


3) 핵심 질문: MBS를 광범위하게 담보로 인정하면 DSR/LTV 밖 신용창출 경로가 열리나?


결론부터 말하면, 단번에 “DSR/LTV를 우회해 무제한 대출”이 되는 구조는 아니다.
DSR/LTV는 기본적으로 대출을 ‘만드는 순간(Origination)’ 에 은행·대출기관에 적용되는 규제이기 때문이다.

다만 위험한 지점은 따로 있다. 규제를 우회한다기보다, “규제의 효과를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자금조달 비용을 떨어뜨리고 대출공급 유인을 키우는” 경로가 열린다.


3-1) “규제 밖”이 아니라 “규제의 둑을 낮추는” 메커니즘

  • 스테이블코인 준비자산으로 MBS 수요가 커지면 → MBS 금리(수익률)가 내려가고 → 주금공/은행 입장에서는 주택담보대출을 더 싸게 자금화할 수 있다. (서울경제)

  • 자금화가 쉬워지면, 은행은 같은 규제 안에서도 대출을 더 ‘하고 싶어지는’ 유인이 커진다(판매처가 확실해지기 때문이다).

3-2) “M2는 반드시 늘어나는가?”는 구분이 필요하다


이 지점에서 혼동이 생기는 이유는 통계상의 M2경제적으로 체감되는 유동성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첫째, 좁은 의미의 M2(통계 포함 여부) 관점이다. 스테이블코인이 법적으로 예금과 동급으로 분류되지 않는다면, 코인 자체는 M2 통계에 직접 포착되지 않을 수 있다. 한국은행이 설명하는 M2는 현금과 각종 예금, 시장형·실적배당형 상품, 금융채 등 “현금으로 비교적 쉽게 전환 가능한 금융자산”의 범주로 정의된다. (한국은행)


둘째, 경제적 유동성(실질 구매력) 관점이다. 설령 통계상 M2에 포함되지 않더라도, 스테이블코인이 결제·송금·담보로 널리 쓰이기 시작하면 시장에서는 이를 사실상 **예금 대체재(준화폐)**로 인식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체감 유동성은 증가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2가 늘 수 있는” 전통적 경로는 분명하다. 한국은행이 설명하듯 통화량은 중앙은행이 찍어낸 현금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은행의 대출과 예금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파생통화가 만들어지며 확대될 수 있다. (한국은행)


따라서 MBS 수요 확대 → MBS 금리 하락(자금화 용이) → 은행의 주담대 공급 유인 확대 → 대출 증가 → 예금 증가 → M2 증가라는 연결은 충분히 성립할 수 있다.


4) 왜 ‘서브프라임’이 떠오르는가: “기초자산이 바뀌지 않았는데, 포장만 바뀌며 신용이 증식”하는 순간


2008년 위기의 핵심은 단순히 “주택가격이 떨어졌다”가 아니다.
복잡한 구조화 상품이 ‘안전해 보이게’ 포장되는 동안, 리스크 인식이 왜곡되고 레버리지가 누적된 것이 본질이다.


IMF는 당시 구조화 상품이 복잡성과 불충분한 공시로 인해 “자금조달·신뢰 위기”에 노출됐고, 서브프라임 기반 구조화 상품에서 AAA 등급까지 포함한 대규모 강등이 발생했다고 지적한다. (IMF)


이 프레임을 한국의 “MBS-담보 스테이블코인”에 대입하면, 우려 포인트는 다음 3가지이다.

(1) “안전자산처럼 보이는” 착시 강화


스테이블코인의 준비자산은 통상 현금성 자산(예금, 단기국채 등) 으로 제한하는 방향이 논의돼 왔다. 한국은행의 사례 분석에서도 스테이블코인이 단기국채·예금 등 현금성 자산을 준비자산으로 보유한다는 구조가 핵심으로 제시된다.

그런데 여기에 MBS를 폭넓게 넣기 시작하면, 시장은 “MBS도 사실상 현금성/준국채급”이라는 신호로 받아들이기 쉽다. 이때부터 담보의 ‘안전자산 내러티브’가 커진다.

(2) 수요 기반 확대가 곧 공급 유인으로 되돌아오는 순환고리

  •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MBS를 담보로 더 많이 발행할 수 있다”

  • MBS 시장: “새로운 대형 매수자(스테이블코인 준비금)가 생긴다”

  • 은행/취급기관: “대출을 만들어도 팔 곳이 있다”
    → 결과적으로 주담대–MBS–스테이블코인이 서로의 성장을 정당화하는 구조가 된다.

(3) 온체인에서는 ‘재담보(rehypothecation)’ 유혹이 훨씬 커진다


이 부분이 가장 현대적인 위험이다.

  • 스테이블코인이 거래소/디파이에서 담보로 쓰이면, 코인 위에 다시 레버리지가 쌓인다.

  • 겉으로는 “담보가 있으니 안전”처럼 보이지만, 충격 시에는 환매(런) + 담보 가치 하락이 동시에 와서 유동성이 말라버릴 수 있다.


5) 이 이슈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원화·국채의 매력이 약해진 환경에서, ‘한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담보(주담대/MBS)’를 스테이블코인 준비자산으로 승격시키면, 주담대–증권화–민간 지급수단 발행이 서로를 밀어주는 신용재창출 루프가 생기고, 그 힘은 결국 도심 주택(특히 아파트) 가격의 상방 압력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는 문제의식이다. (서울경제)


맺음말


주금공의 문제의식 자체(정책모기지 금리를 낮추고 MBS 수요 기반을 넓히고 싶다)는 이해 가능하다. (서울경제)

그러나 MBS를 스테이블코인 담보로 ‘광범위하게’ 인정하는 순간, 이는 단순한 “핀테크 혁신”이 아니라 부동산 금융을 기반으로 한 민간 통화(지급수단)의 확대라는 거시 이벤트가 된다. 그리고 한국에서 그 신용이 향하는 방향은 생산적 투자보다 주거용 부동산일 가능성이 높다.

서브프라임은 “나쁜 자산”이라서 터진 것이 아니라, 자산이 바뀌지 않았는데도 ‘포장’과 ‘등급’과 ‘유통채널’이 신용을 과대 증식시키는 동안, 위험이 보이지 않게 누적되면서 터졌다. (IMF)

한국형 MBS-담보 스테이블코인도 마찬가지로, 규제 문구 몇 줄(담보 인정 범위·헤어컷·유동성 규정) 이 실제 위험의 크기에 영향을 줄 순 있으나,

규제 문구 몇 줄을 덧붙여 위험을 차단하려 해도, 한국의 투자문화에서는 대개 규제의 빈틈을 빠르게 찾아 단기 과대수익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변형·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국내 시장은 과거 여러 국면에서 과도한 레버리지와 이른바 ‘빚투’가 반복되며, 규제의 의도와 반대로 위험이 그림자 경로로 이동해 증폭된 경험이 있다.

이런 맥락에서 MBS의 원화 스테이블코인 담보자산 편입은 단순한 상품 설계 변경이 아니라, 주택금융을 기반으로 한 신용창출의 새로운 통로를 열 수 있는 사안이다. 따라서 이는 레버리지 확대 → 버블 형성 → 조정 국면에서의 급격한 디레버리징(버블 붕괴) 으로 이어질 위험을 결코 과소평가하기 어렵다고 본다.


글을 마치며


하워드 막스는 오크트리 메모에서 Hobart와 Huber의 구분을 빌려, 버블을 두 부류로 설명한다

1. Mean reverting bubbles

 : 세상을 변화시키기 보다는 단기적 수요를 촉진시키는 경우.


2. Inflection bubbles 

 : 기술을 기반으로 세상의 패러다임을 진보키는 경우.


그가 말하는 Mean-reverting bubbles(평균회귀형 버블) 은 세상을 전진시키는 구조적 혁신보다는, “위험 없이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약속이 상상력을 자극하며 단기 수요와 레버리지를 부풀리는 유형이다.

하워드 막스는 자신이 읽었거나 직접 목격한 금융 유행으로 이들은 인류의 진보를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가 아니라 “돈이 될 것”이라는 감각이 앞섰다고 정리한다.

특히 서브프라임 모기지 붐이 주거를 혁신할 것이라는 믿음은 거의 없었고, 단지 새로운 구매자를 뒷받침하며 그 과정에서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가 지배적이었다는 취지이다. (Oaktree Capital)

반대로 Inflection bubbles(변곡점형 버블) 은 철도·인터넷처럼 기술 진보가 실물 인프라를 깔아 “버블 이후에도 세상이 이전 상태로 되돌아가지 않는” 유형이다. 즉, 두 유형 모두 투자자 부를 파괴할 수 있지만, 변곡점형은 장기적으로 사회·기술적 기반을 남길 수 있는 반면, 평균회귀형은 거품이 꺼지면 남는 것이 제한적이라는 대비가 핵심이다. (Oaktree Capital)

이 관점에서 보면, 한국형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주택금융(MBS)을 ‘안전자산’으로 포장해 신용을 재창출하는 방향으로 제도화될 경우, 이는 ‘세상을 바꾸는 혁신’이라기보다 단기 수요와 레버리지를 부추기는 Mean-reverting bubbles의 성격에 부합하지 않나 싶다. 

=끝

2025년 12월 10일 수요일

생각정리 141 (* FOMC, Mining Capex)

며칠 전부터 메탈 시장의 변화가 유난히 두드러져, 오랜만에 산업재 섹터를 다시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어제 FOMC 발표 내용을 검토하다 보니, 그동안 정리해 온 산업재 사이클과 맞물리는 지점들이 다수 포착되어, 이를 하나의 글로 엮어 정리해 보고자 한다.



1부. 연준·유동성·구조적 변화: 큰 구조부터


1. QT·QE라는 “도구”의 본질


1) QT(Quantitative Tightening)


QT의 본질은 단순하다.

  • 정의:
    중앙은행이 보유한 국채·MBS 등 자산을 줄여 대차대조표(B/S)를 축소하고, 그 과정에서 시중 유동성을 흡수하는 정책이다.

  • 수단:

    • 만기 상환분을 전액 재투자하지 않고,

    • 일정 한도만 재투자(roll-off)하며,

    • 필요하면 보유 자산을 직접 매각하기도 한다.

  • 효과:

    • 중앙은행 자산 감소와 함께 은행 준비금·RRP 등 유동성 풀 자체가 줄어들고,

    • 장기금리와 리스크 프리미엄에 긴축 압력이 걸린다.

즉, QT = B/S 축소 + 유동성 흡수 + 긴축이다.

2) QE(Quantitative Easing)


QE는 QT의 정반대 축이다.

  • 정의:
    중앙은행이 장기 국채·MBS 등을 대규모로 매입해 B/S를 확대하고, 장기금리·크레딧 스프레드를 낮춰 금융여건을 완화하는 비전통적 완화정책이다.

  • 수단:

    • 장기물 중심의 대규모 매입 프로그램(LSAP),

    • “고용·물가 목표 달성 전까지 계속”과 같은 조건부 포워드 가이던스를 수반한다.

  • 효과:

    • 장기금리의 term premium 하락,

    • 포트폴리오 재조정을 통해 주식·크레딧 등 위험자산으로 자금 이동,

    • 실질 금융여건 완화 → 수요·기대 인플레이션 상향이다.

정리하면,

  • QT는 B/S를 줄이면서 유동성을 흡수하는 구조적 긴축,

  • QE는 B/S를 늘려 유동성을 공급하는 구조적 완화이다.

현재는 QT가 정지된 이후, “어떤 형태의 B/S 재확대로 갈 것인가”를 두고 해석이 갈리는 과도기 구간이다.


2. 기업·연준·자금시장: 세 축이 어떻게 유동성을 말려버렸는가


2-1. 기업 축: 빅테크의 현금 소각 → AI CAPEX → 대출시장 흡수


지난 10여 년을 한 줄로 요약하면, **“빅테크가 현금을 벌어 쌓고, 그 현금을 주주환원으로 태우던 시대”**였다.

그러나 AI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이 구도는 뚜렷하게 바뀌고 있다.

  • AI CAPEX 스케일업

    • AI 데이터센터, GPU, 전력 인프라, 네트워크, 소프트웨어 인력 등

    • 단일 프로젝트당 수십억~수백억달러 규모의 장기 투자가 동시에 진행 중이다.

  • 현금 흐름 구조 변화

    • 현금 유출은 지금,

    • 수익 회수는 중장기에 발생하는 구조이므로,

    • 빅테크는 그간 쌓아둔 현금성 자산을 빠르게 소진하고 있다.

  • 외부 자금 조달 확대

    • 부족분은 회사채·CP·대출시장에서 조달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과거에는 유동성의 최종 공급자에 가까웠던 빅테크가,
지금은 유동성의 최상위 수요자로 변신한 셈이다.

은행·자본시장은 신용도·규모·수익성 측면에서 우선순위가 높은 대형 플레이어에게 먼저 자금을 공급한다.

그만큼 중소기업·부동산·기타 차입자에게 돌아갈 대출 여력은 줄어들고,
이것이 시중에서 체감하는 유동성 부족으로 나타난다.

2-2. 연준 축: QT로 2조달러 넘게 빨아들인 대차대조표


이 민간 측 구조 변화 위에서, 연준은 2022년 이후 QT를 통해 B/S를 2조달러 이상 축소했다.

  • 팬데믹 정점 약 9조달러 수준이던 자산이
    → 최근 6조 중반대까지 내려왔다.

  • 이는 곧 은행 준비금·RRP 등 금융시스템 유동성을 구조적으로 흡수한 것이다.

  • 특히 ON RRP 잔액이
    2.6조달러 수준에서 사실상 0 근처까지 내려오면서,
    이제 QT를 추가로 더 진행할 경우, 준비금 자체를 “살” 깎듯 줄여야 하는 단계에 진입해 있었다.

2-3. 자금시장 축: 세 축이 겹친 “트리플 드라이” 구조


정리하면, 현재 유동성 환경은 다음 세 축이 겹친 결과이다.

  1. 빅테크

    • AI CAPEX로 내부 현금 소진 + 시장에서 자금 흡수

  2. 연준

    • QT로 B/S 축소, 준비금·RRP 축소

  3. 자금시장

    • 빅테크·대형 프로젝트에 우선적으로 자금 공급,

    • 여타 부문에는 대출·유동성 부족이 체감되는 구조

이 세 축이 동시에 작동하면서, 지금의 유동성 환경은

“이전과 구조적으로 다른 수준의 마름(dryness)”


을 보이는 국면이라고 할 수 있다.


3. 에너지·AI·주거비: 물가를 식혀놓은 세 가지 축


아이러니하게도, 유동성은 이렇게 마른데 물가는 상대적으로 안정되어 있다. 그 뒤에는 세 가지 요인이 있다.

3-1. 에너지: 중동 재편 + OPEC·러시아 제재가 만든 유가 안정


정치·지정학 관점에서 보면, 최근 유가 안정은 상당 부분 정책 결과이다.

  • 러시아산 저가 오일에 대한 제재·가격 상한

  • 사우디·OPEC에 시장 점유율·생산능력 확대 여지를 부여하는 미국의 전략

  • 사우디에 대한 안보·무기 공급과 교환된 공급 여력 보장

이 조합이, **“충분한 생산능력을 전제로 하되, 급등은 제어된 유가 레짐”**을 만들어 놓았다.
이는 CPI·PCE에서 에너지 항목을 안정시키는 가장 강력한 하방 요인이다.

3-2. AI: 서비스 물가를 누르는 “보이지 않는 디플레”


AI는 서비스 부문에 구조적인 디플레 압력을 걸고 있다.

  • 단순 반복 사무직, 콜센터, 번역, 코드·리서치 일부 등
    지식 노동의 상당 부분이 “사람 1 + AI 1” 구조 혹은 AI 중심 자동화로 재편된다.

  • 이 과정에서

    • 해당 직군의 임금 교섭력은 약화되고,

    • 기업 입장에서는 원가 절감 + 생산성 향상이 동시에 발생한다.

  • 미국 CPI·PCE에서 서비스 비중이 압도적으로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AI는 서비스 물가 상단을 장기적으로 눌러주는 힘으로 작용한다.


즉, AI CAPEX는 성장·수요를 밀어올리면서도, 동시에 서비스 물가를 식히는 모순적인 힘을 동시에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3-3. 주거비: 선행지표 기준 고점 통과 + 통계 반영의 지체


주거비의 경우,

  • 실물 임대료·리얼타임 렌트 지표 기준으로는 이미 고점을 통과해 둔화 국면에 접어들었고,

  • CPI·PCE에는 **지체(lag)**를 두고 반영되는 구조이다.


따라서 앞으로는 헤드라인·코어 물가에서 주거비 관련 세부 항목이 완만하게 식어갈 여지가 크다.

이렇게 에너지·AI·주거비를 합쳐보면, 현재는

“유동성은 마르는데, 물가는 구조적으로 식어가는 기묘한 조합”


이 만들어져 있는 시기라고 정리할 수 있다.


4. 이번 FOMC 이후 연준의 좌표: QT 종료와 ‘준비금 관리형 매입’


이제 다시 연준과 FOMC로 돌아가 보자.

4-1. QT는 형식·실질 모두에서 종료


연준은 10월 FOMC에서 이미 **“2025년 12월 1일부로 증권 보유 축소(runoff)를 종료한다”**고 명시했다.

즉, 제도·운영상 QT는 공식적으로 끝난 상태이다.

  • 더 이상 만기 상환분을 그냥 소멸시키지 않고,

  • 만기 도래 금액을 전액 재투자하는 모드로 전환했다.

4-2. 대신 등장한 도구: T-bill 매입(RMP, Reserve Management Purchases)


QT 종료와 동시에, 연준·뉴욕연은은 **“준비금 관리형 매입(RMP)”**이라는 새로운 B/S 도구를 꺼냈다.

  • 목적

    • “준비금이 ample 수준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해”

    • 현금통화, TGA, RRP 등 비지준 부채의 변동을 상쇄하면서 준비금 레벨을 관리하는 것이다.

  • 수단

    • **T-bill(필요 시 만기 3년 이하 국채)**를 2차 시장에서 매입하는 방식,

    • 첫 달 기준 약 400억달러 규모를 예고했다.

  • 형식적 포지셔닝

    • 연준은 반복해서
      **“이는 QE가 아니라, 단기금리 통제를 위한 기술적 수단(technical operation)”**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보면,

  • QT로 2조달러 이상 유동성을 이미 흡수한 뒤,

  • RRP가 거의 고갈된 상태에서,

  • 다시 B/S를 늘려 준비금을 채워 넣는 방향으로 회전하고 있다.

그래서 시장 입장에서는, 현재 국면을

“형식상은 RMP, 실질적으로는 QE-lite/technical QE에 가까운 유동성 전환”


으로 해석하게 된다.


5. 인구구조·반세계화·AI: 연준 위에 덮여 있는 구조적 레이어


이 거시적 통화정책 위에는 더 큰 구조적 힘이 하나 더 얹혀 있다.

5-1. 저출산·고령화·반세계화: 구조적 인플레이션 압력


그린스펀식 문제의식은 대략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 저출산·고령화

    • 생산가능인구 감소 → 노동력 부족 → 임금 상승 압력

    • 고령화 → 복지·의료 지출 확대 → 재정지출·정부부채 증가

  • 반세계화·탈세계화

    • 저임금 국가로의 아웃소싱과 글로벌 분업 구조가 흔들리면서,

    • 비용이 더 높은 공급망 재편이 이루어진다.

이 둘을 합치면,

“장기적으로 물가와 금리가 위쪽에서 버티려는 구조적 힘”


이 생긴다.

 이 힘은 정책금리 25bp·50bp 조정으로 쉽게 뒤집을 수 없는 스케일이다.

5-2. AI: 구조적 디플레와 성장 동력의 이중 역할


반대로 AI는 다음과 같은 이중 효과를 갖는다.

  • 노동 대체·생산성 향상

    • 서비스 부문 임금 인플레이션과 단가를 장기적으로 누르는 힘(구조적 디플레)

  • 신성장·CAPEX·부가가치 창출

    • AI CAPEX, 신산업, 플랫폼 비즈니스 확장을 통해

    • 성장률·기업 수익성을 끌어올리는 축

즉,

  • 인구구조·반세계화구조적 인플레이션을,

  • AI구조적 디플레이션을 만들어내며,


이 두 힘이 충돌하는 가운데, 연준은 그 위에서 완충장치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상황이다.

5-3. 연준의 실질적 독립성 약화


이 구조 속에서, 연준의 실질적 “힘의 배분”에도 변화가 생긴다.

  • 재정·정치의 요구

    • 높은 국가부채·복지·국방 지출 등을 고려하면,

    • 낮은 금리·안정된 채권시장·적당한 인플레이션이 정치적으로 선호된다.

  • AI 전환에 따른 고용 충격

    • 특정 직군·계층·지역에 실업·임금 정체가 집중될 수 있으며,

    • 이를 완화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과도하게 높은 수준에 오래 두기 어려운 정치·사회적 제약이 커진다.

결국 연준은, 시간이 갈수록

“물가 안정”과 “고용 안정” 사이에서, 구조적으로 고용 쪽을 더 중시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중립금리는 내려앉으며, 상시적인 약완화·B/S 확대 쪽으로 기우는 중앙은행


이 될 가능성이 높다.

실질적으로는,

  • 정책금리의 파워는 줄고,

  • B/S 운용(유동성·준비금 관리)과 고용 안정 기능이 상대적으로 강조되는 방향으로 역할이 바뀐다.


6. “진짜 QE까지 갈 수 있느냐”를 볼 때 체크해야 할 방향·지표


결국 FED의 QE로 가는 방향성은 확실시 되고 있고, 그 속도를 면밀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지금이 QE인지, QE로 가는 길목인지, 아니면 단지 기술적 RMP인지”**를 구분하려면, 무엇을 봐야 하는가.

6-1. 자산 측(Assets): B/S 규모와 구성

  1. 총자산(WALCL)

    • QT 이후 이어지던 하락 추세가 확실히 멈추는지,

    • 더 나아가 분기·연 단위로 명확한 우상향 추세로 전환하는지.

  2. Securities Held Outright(WSHOSHO)

    • B/S 재확대가 T-bill 위주 증가에 그치는지,

    • 아니면 5~10년 이상 장기 국채·MBS 보유액이 일관되게 증가하는지.

    • 전자는 RMP·기술적 매입, 후자는 QE에 가까운 시그널이다.

6-2. 부채·유동성 측(Liabilities): Reserves·RRP·TGA

  1. 은행 준비금(Reserves)

    • QT 말기에 감소하던 준비금이 바닥을 찍고 재상승하는지.

  2. ON RRP

    • 이미 0 근처라 공간은 제한적이지만,

    • 이 상태에서 B/S가 늘어나면, 추가 매입이 곧바로 준비금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3. TGA(재무부 일반계정)

    • 납세 시즌 전후로 출렁인 뒤,

    • 이후에는 완만한 하향 안정 경로를 보이면서

    • 준비금 증가와 동행하는 패턴이 나타나는지.

요약하면,

Reserves ↑ + RRP 저점 + TGA 완만한 하향


이 세 가지가 동시에 나오면,
**“B/S 재확대가 실제 시스템 유동성 완화로 작동하는 국면”**에 진입했다고 볼 수 있다.

6-3. 커뮤니케이션과 시장 가격

  1. 연준의 언어 변화

    • 자산매입 목적이

      • “준비금 관리·단기금리 통제”에서

      • “금융여건 완화·경기·고용 지원·디플레 리스크 대응”으로 이동하는지.

  2. 시장 가격 반응

    • 장기금리 term premium

      • 자산매입 기대와 함께 의미 있게 하락하는지,

    • 하이일드·크레딧 스프레드가

      • 연준 B/S 확대와 동행해 구조적으로 눌리는 패턴을 보이는지.

자산·부채·커뮤니케이션·가격 네 축이 동시에 QE 방향으로 기울면,
그때는 **“이제는 진짜 QE”**라고 불러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현재는 그 직전 단계, 즉

QT 종료 + RMP(준비금 관리형 매입) + 고용 중시로의 무게 이동


이라는 정도로 정리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고 본다.


2부. AI·금속 슈퍼사이클·연준 전환·건설장비: 압축 투자 프레임


이제 1부에서 깔아 놓은 거시 구조 위에,
AI·금속 슈퍼사이클·연준 전환·건설장비를 하나의 투자 프레임으로 올려본다.

1. AI CAPEX와 전기화가 만든 금속 슈퍼사이클 초입


1-1. AI 데이터센터·전력망·EV·태양광: 구리 집약적 CAPEX


AI 데이터센터, 송배전망, 재생에너지, EV, 고성능 반도체는 모두 구리를 과도하게 사용하는 인프라이다.

  •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는 2030년까지 두 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추정되며,

  • 전력망 투자도 AI·전기화 수요로 가파른 상향 추세이다.

  • 데이터센터 1MW당 구리 사용량이 기존 센터 대비 2배 이상이라는 추정도 존재한다.

한 줄로 정리하면,

“AI CAPEX + 전기화 = 구리 수요의 2차 충격”


이다.

1-2. 구리·귀금속의 구조적 공급 부족과 가격 레짐 전환


이 수요 충격은 이미 구리 가격 레짐 자체를 위로 끌어올리는 단계에 진입했다.

  • 신규 대형 광산 개발은 규제·환경·정치 리스크로 잦은 지연을 겪고 있고,

  • 기존 광산은 광석 품위 저하 + 비용 인플레이션으로 부담이 커졌다.

  • 이 와중에 전력망·AI·EV·태양광 수요가 한꺼번에 겹치면서,
    **다년간의 구조적 공급 부족(Structural deficit)**이 예상되는 그림이 형성되고 있다.

동시에 금·은 등 귀금속은,

  • 반도체·전자·태양광 등 기술·산업용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는 가운데,

  • AI·전기화 CAPEX와 맞물리면서,
    산업용 수요 + 인플레이션 헤지 수요가 동시에 붙은 상태이다.

즉,

“구리(산업금속) + 금·은(귀금속)의 채산성 레짐이 동시에 상향 조정된 구간”


이고, 이 레짐 전환은 광산 CapEx 의사결정을 구조적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2. 미국 NSS·아프리카 전략: 광산 CapEx의 지리적 분산


미국의 새로운 국가안보전략(NSS)은 **“핵심 광물 + 아프리카 경제 교류”**를 핵심 축으로 올려놓았다.

  • 미국은 다수 핵심 광물에서 수입 의존도가 매우 높고,

  • 아프리카는 세계 매장량의 큰 비중을 보유하고 있다.

  • 중국은 이미 2009년 이후 아프리카 최대 무역·투자 파트너이고,

  • 미국은 뒤늦게 FDI·교역을 확대하는 중이다.

이는 곧,

“미·중·유럽의 핵심 광물 확보 경쟁 → 아프리카·라틴·신흥국 광산 프로젝트 재가동”


이라는 의미이다.

구리·금·은 가격 레벨이 받쳐주고,
정치·안보 전략이 뒤에서 밀어주는 조합 속에서 CapEx는
캐나다·미국·호주 같은 전통 광구뿐 아니라,
아프리카·남미 등 신흥 프로젝트로 지리적으로 분산된 형태로 풀릴 가능성이 높다.


3. 연준 전환과 금리 인하: 건설·주택·인프라 쪽 온기


1부에서 보았듯, 연준은

  • QT를 종료했고,

  • **T-bill 매입(RMP)**으로 준비금 관리를 시작했으며,

  • 고용 둔화에 대응해 기준금리 인하로 방향을 틀었다.

이 조합은,

  • 모기지금리·부동산 금융 여건 완화,

  • 전력망·데이터센터·도로·항만 등 인프라 CAPEX에 대한 자금 조달 부담 축소,

  • 신흥국 입장에서는 강달러·고금리 압력 완화로 이어질 수 있다.

결과적으로,

금속 슈퍼사이클이 광산 CapEx를 밀어 올리고,
금리 인하·유동성 전환이 건설·주택·인프라 쪽에 온기를 불어넣는 조합

 

이 형성되는 구간에 진입하고 있다.


4. 광물 → 광산 CapEx → 건설기계: 수요 브리지


수요 브리지를 구조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AI·전기화
    금속 수요 증가
    금속 가격 레짐 상향

  2. 금속 가격 레짐 상향
    광산 채산성 개선
    광산 CapEx 증가

  3. 광산 CapEx 구성

    • 신규 광산 개발: 부지 정지, 도저, 굴삭기, 덤프 트럭

    • 기존 광산 확장·자율·전동화: 대형 트럭, 로더, 자율 솔루션 등

  4. 인프라·주택·도시화 CapEx

    • 전력망, 데이터센터, 도로, 항만, 상·주거용 건설

    • 금리 인하에 따른 주택·상업 건설 회복

  5. 결과

    • **중대형 건설장비(굴삭기·휠로더·덤프 등)**에 대한
      교체 수요 + 증설 수요가 동시에 증가한다.

이 구조에서 건설기계 업체는,

“금속 가격 → 광산 CapEx → 장비 수요”라는 긴 밸류체인의 마지막 구간에 있지만,
CapEx 사이클에는 가장 직접적으로 레버리지되는 포지션

 

이라고 볼 수 있다.


5. 건설기계 투자 아이디어로의 연결


이 모든 것을 투자 아이디어 관점에서 간단히 묶으면 다음과 같다.

5-1. 테마 정의

  • AI CAPEX + 전기화 → 금속 슈퍼사이클 → 광산 CapEx 확대

  • 연준의 QT 종료 + RMP + 금리 인하 → 건설·주택·인프라 쪽 유동성 완화


이 두 축이 겹치면서,

“광산 + 인프라 + 주택” 삼중 사이클


이 만들어질 여지가 크다.

5-2. 밸류체인 상 포지션

  • 업스트림: 금속·광산 회사 (가격 레벨에 직접 노출)

  • 미들스트림: 제련·소재·케이블

  • 다운스트림 CapEx 레버리지:

    • 광산·인프라·건설 현장에 장비를 공급하는 중대형 건설기계 업체

5-3. 건설기계의 장점

  • 금속 가격 상승이 직접적인 마진 압박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아니라,
    오히려

    • 광산·인프라 발주 증가 → 볼륨 확대,

    • 중대형·고사양 장비 비중 확대 → 믹스 개선,

    • 가격 전가 여력 증가까지 동반할 수 있다.

  • 광산·금속 기업 대비

    • 가격 탄성은 낮지만,

    • **CapEx 사이클·장비 교체 수요에 더 직결된 “Equipment 베타”**라고 볼 수 있다.

5-4. 지리적 레버리지

특히 아프리카·신흥국·유럽에 이미 영업·서비스 네트워크를 깔아 둔 업체는,

  • 미국 NSS,

  • 미·중·유럽의 자원 확보 경쟁이 촉발할

“아프리카·신흥국 자원개발 CapEx”

 

에 자연스럽게 올라탈 수 있다.


맺음말


정리하면,

  • 1부에서는

    • QT·QE라는 도구의 본질,

    • 빅테크·연준·자금시장이 함께 유동성을 말려온 구조,

    • 에너지·AI·주거비가 물가를 식혀놓은 메커니즘,

    • QT 종료와 RMP라는 새로운 B/S 레짐,

    • 인구구조·반세계화·AI라는 구조적 레이어,

    • 그리고 “진짜 QE”를 구분하기 위한 지표를 정리했다.

  • 2부에서는

    • AI CAPEX와 전기화가 만든 금속 슈퍼사이클,

    • 미국 NSS·아프리카 전략이 불러올 광산 CapEx의 지리적 분산,

    • 연준 전환과 금리 인하가 건설·주택·인프라에 주는 온기,

    • 광물 → 광산 CapEx → 건설기계로 이어지는 수요 브리지,

    • 그리고 중대형 건설장비를 “금속 슈퍼사이클 × 연준 전환”의 실물 레버리지 플레이로 보는 투자 프레임을 정리했다.

=끝

2025년 12월 9일 화요일

생각정리 140 (* Alex Karp, Palantir Technology)

이전에 팔란티르 테크놀로지(Palantir Technologies)의 CEO이자, 현재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 중 한 사람인 알렉스 카프가 쓴 『기술 공화국 선언』을 읽었다.

평소 알렉스 카프의 인터뷰와 기사, 영상들을 꾸준히 챙겨봐 온 터라, 책 자체에서 특별히 새로운 정보를 얻었다는 느낌은 크지 않았다. 이미 여러 차례 들어본 그의 주장과 세계관이 정리된 텍스트라는 인상이 강했고, 그래서 비교적 가볍게 읽어 내려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통해 알렉스 카프라는 인물 자체를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의 인생사와 인생관, 철학적 태도, 그리고 그런 성향이 고스란히 반영된 팔란티르 테크놀로지라는 회사의 성격을 이전보다 더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이번 글에서는 그 연장선에서, **알렉스 카프 – 팔란티르 테크놀로지 – 그리고 이를 둘러싼 현재 미국의 ‘시대정신’**이라고 부를 만한 흐름을 간략히 정리해 두고자 한다.
 


왜 지금, 알렉스 카프인가


알렉스 카프(Alex Karp)는 오랫동안 실리콘밸리에서 “괴짜 철학자 CEO” 정도로 취급받던 인물이다.
유대계·흑인 혼혈, 난독증, 좌파적 집안,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철학 박사를 마친 뒤,
CIA가 투자한 데이터·군사 소프트웨어 회사 **팔란티르 테크놀로지(Palantir Technologies)**를 공동 창업한 사람이다.

기본적인 이력은 위키피디아 ‘Alex Karp’ 항목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위키백과)


wiki


한때 팔란티르는 실리콘밸리에서 “군산복합체와 너무 가까운 이상한 회사” 정도로 여겨졌고,
카프 역시 주류 테크 서사에서 비켜나 있던 인물이었다.

그런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전쟁, 미·중 패권 경쟁, 구조적 저성장과 부채,
군비 재무장과 AI 군사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지금,
카프와 팔란티르는 전혀 다른 의미로 시장과 정치의 중심에 떠올랐다.

이 글은 다음 네 가지 축을 따라 카프와 팔란티르를 정리한다.

  1. 알렉스 카프의 인생사와 인생관 형성 과정

  2. 박사논문에 드러난 그의 내면적 세계관

  3. 그 세계관이 구현된 팔란티르 테크놀로지라는 회사

  4. 왜 지금에서야 카프와 팔란티르가 재조명되는지 – 시대 구조의 변화


1. 인생사: 항상 “벽 쪽에 서 있던” 아이


1-1. 흑인과 유대인, 과학과 예술의 경계에서


알렉스 카프는 1967년 뉴욕에서 태어나 필라델피아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독일계 유대인 소아과 의사, 어머니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예술가였다.
이 기본적인 배경은 위키피디아와 간단한 전기 기사 등에 잘 정리돼 있다. (위키백과)

즉, 그는

  • 인종적으로는 흑인과 백인의 경계,

  • 문화적으로는 유대계 인텔리 전통과 흑인 커뮤니티,

  • 가정 배경으로는 과학(의사)과 예술(화가)

이 교차하는 지점에 서 있었던 셈이다.

카프는 인터뷰에서
“어떤 흑인은 나를 흑인으로 보지만 어떤 흑인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며,
자신을 특정 범주보다 **그냥 ‘나’**로 본다고 이야기한다. (위키백과)
어릴 때부터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는 주변인이라는 감각을 갖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1-2. 빈곤과 난독증: 불리하게 설계된 시스템


표면적으로 “의사+예술가” 가정이라 중산층처럼 보이지만,
카프는 최근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을 **“poverty and hardship(빈곤과 고난)”**으로 회상한다.
대표적으로 AOL 기사가 그의 난독증과 어려운 성장 환경을 비교적 상세히 다루고 있다. (AOL)


여기에 **난독증(dyslexia)**이 겹친다.
그는 어려서부터 글자를 읽고 쓰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고,
학교 시스템 안에서 “문제아”에 가까운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그 대신, 텍스트를 그대로 읽기보다 추상적 구조와 패턴을 잡는 방식으로 사고해야 했고,
카프 본인은 이것이 나중에 팔란티르를 만드는 데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고 말한다. (AOL)

즉, 도시 빈곤, 난독증, 인종적 애매한 정체성은 한 방향으로 수렴한다.

  • 사회의 규칙과 제도는 “정상적인 다수”에게 맞춰져 있고,

  • 자신 같은 사람에게는 항상 불리하게 설계되어 있다는 체감,

  • 국가와 사회의 강제력은 언제든 자신 쪽으로 향할 수 있다는 정서적 기본값이다.

이 감각이 나중에 그가 군사력, 감시, 국가 폭력을 이야기할 때
동시에 **“그 폭력이 나 같은 소수자에게도 돌아올 수 있다”**는 자의식으로 작동한다.

1-3. 좌파 인권운동의 공기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카프의 부모는 미국 시민권·인권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진보적 좌파 가정이었다.
카프는 어릴 때부터 시위 현장에 갔고,
인종차별과 파시즘, 국가 폭력에 대한 경계심을 자연스럽게 배웠다. (위키백과)


그는 훗날, 파시즘이 다시 온다면
자신이 **“벽에 1번이나 2번으로 세워질 것”**이라고 항상 생각해 왔다고 말한 바 있다(프로필 기사 인용). (CEO Today)

요약하면, 카프의 유년기는 세 가지 층위를 가진다.

  • 인종·정체성의 경계인

  • 경제·교육 시스템에서의 불리한 위치

  • 좌파 인권·반파시즘 감수성을 가진 정치적 공기

이 셋이 합쳐져, 그는 일찍부터
**“폭력과 강제력은 항상 배경에 깔려 있는 현실”**이라는 인식을 몸에 새긴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2. 철학적 인생관: 폭력은 예외가 아니라 구조이다


2-1. 법학과 독일 사회이론: 폭력–제도–무의식


카프의 학문 경로는 매우 명확하다.

  • 하버퍼드 대학에서 철학·문학 전공

  • 스탠퍼드 로스쿨에서 법학박사(JD) 취득

  • 독일 프랑크푸르트 괴테대에서 사회이론(네오고전 사회이론) 박사

  • 지크문트 프로이트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활동위키피디아 (위키백과)

법학은 국가 강제력과 규범을 다루는 학문이고,
프랑크푸르트학파·정신분석 전통은 권력·이데올로기·무의식을 분석하는 도구이다.

카프는 처음부터 **“폭력–제도–무의식”**이라는 삼각형을 파고드는 길을 택한 셈이다.
이 선택은 그대로 그의 박사논문, 그리고 팔란티르의 철학적 기반으로 이어진다.

2-2. “서구는 조직된 폭력 능력으로 떠올랐다”


카프는 투자자 서한과 인터뷰에서 여러 차례
사무엘 헌팅턴(Samuel P. Huntington)의 명제를 인용한다.

서구의 부상은 아이디어나 가치, 종교의 우월성 때문이 아니라
조직된 폭력을 적용하는 능력의 우월성 때문이었다.

 

이는 위키피디아의 정치관 관련 서술을 비롯해
여러 기사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인용이다. (위키백과)

카프는 이 명제에 동의하면서,
서구가 이 사실을 잊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의 개인사와 결합하면 이 인식은 자연스럽다.

  • 개인적으로 그는 국가 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위치에서 자라났고,

  • 연구자로서 공격성과 폭력이 사회질서 속에 어떻게 내재하는지를 이론적으로 분석했으며,

  • 정치적으로는 서구 문명이 폭력의 적용 능력으로 지탱되어 왔다는 현실을 인정한다.

여기서 그의 기본 세계관이 정리된다.

  1. 폭력은 인간과 사회에서 제거할 수 없다.

  2. 문제는 그 폭력을 누가 어떤 규범 아래에서 어떻게 행사·관리하느냐이다.

  3. 자신이 속한 서구·자유민주 진영이
    충분한 조직된 폭력 능력을 갖추지 못하면,
    언젠가 자신과 같은 소수자에게 훨씬 더 야만적인 폭력이 돌아올 수 있다.

이 세계관이 나중에
**“서구의 조직된 폭력 능력을 데이터·AI로 극대화하되,
민주주의 안에서 관리하겠다”**는 팔란티르의 전략으로 연결된다.


3. 박사논문: 생활세계 속 공격성과 엘리트 담론


3-1. 논문 제목과 기본 구조


카프의 박사논문 제목은 다음과 같다.

Aggression in the Lifeworld: Expanding Parsons’ Concept of Aggression Through the Description of the Relationship Between Jargon, Aggression, and Culture
(“생활세계 속 공격성: Jargon, 공격성, 문화의 관계를 통해 파슨스의 공격성 개념을 확장하기”)


영문 번역본은 이 PDF에서,
독어 원문은 프랑크푸르트 대학 저장소 OPUS 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saismaran.org)

논문의 큰 뼈대는 다음과 같다.

  1. 탈컷 파슨스(Talcott Parsons)의 공격성 개념 재검토

  2. 아도르노(Theodor W. Adorno)의 ‘진정성의 전문용어(Jargon der Eigentlichkeit)’ 분석

  3. 헬무트 플레스너(Helmuth Plessner)의 독일 역사·사회 분석

  4. 마르틴 발저(Martin Walser) 논쟁 사례 분석과 종합[논문 목차 부분] (saismaran.org)

핵심 질문은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현대 사회에서 공격성·폭력 욕망은 어떻게 언어와 문화 속에서
‘괜찮은 것’처럼 정당화되는가?

 

3-2. 생활세계 속 공격성: 일탈이 아니라 구조


카프는 **“생활세계(lifeworld)”**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이는 법·제도·통계가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대화, 미디어, 감정의 세계를 뜻한다.

그는 파슨스의 이론을 출발점으로 삼되,
공격성을 단순한 “사회화 실패의 부산물”로만 보는 파슨스를 비판한다.

카프의 수정은 다음과 같다.

  • 공격성은 질서를 깨는 예외가 아니라,
    질서를 떠받치는 긴장 요소이기도 하다.

  • 외부의 적을 상정하고 내부 결속을 강화하는 데
    공격성이 정교하게 동원될 수 있다.

  • 따라서 정상적인 시민, 지식인, 엘리트
    공격성의 핵심 행위자이다.[논문 2장 내용 요약] (saismaran.org)

다시 말해,
폭력과 공격성은 사회 바깥의 일탈이 아니라
사회 내부를 재조직하는 에너지
라는 것이다.

3-3. Jargon: 고상한 언어 속에 숨은 공격성


논문의 부제가 말해주듯,
카프는 **Jargon(전문용어, 특유의 고상한 말투)**에 주목한다.

아도르노의 『진정성의 전문용어(Jargon der Eigentlichkeit)』를 따라, 그는 이렇게 본다.

  • Jargon은 단순한 어려운 말이 아니라,
    자기 집단의 도덕성과 깊이를 과시하는 언어 코드이다.

  • “기억의 남용”, “도덕적 몽둥이”, “정상국가” 같은 표현들은
    실제로는 금기된 공격성(예: 홀로코스트 피로감, 반유대주의적 정서)을
    우회적으로 표현·정당화하는 기능을 한다.[논문 3장 요약] (saismaran.org)

여기서 공격성은 Jargon 속에 흡수되어,
“고상한 언어”의 형태로 실행되는 사회적 행위
가 된다.

카프는 이를 독일이라는 특수한 역사·문화 맥락 속에서 읽어낸다.
파시즘과 홀로코스트 이후, 노골적인 폭력 언어는 금지되었지만, 그 감정 자체는 Jargon의 형태로 계속 돌아온다는 것이다.

3-4. 발저 논쟁: 기억 피로감과 공격성의 귀환


카프는 1998년 작가 마르틴 발저의 수상 연설과,
그 이후의 **“발저 논쟁”**을 사례로 분석한다.

발저는 홀로코스트에 대한 지속적인 상기와 기념이
오늘날 독일인에게 과도한 죄책감을 강요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 연설은 독일 사회에 거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카프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 표면적으로는 “기억 정치에 대한 철학적 비판”처럼 보이지만,

  • 심층에서는 홀로코스트 피로감, 반유대주의적 공격성
    도덕적·철학적 언어로 포장해 정당화하는 Jargon이 작동하고 있다.[논문 4장 요약] (saismaran.org)

이 분석을 통해 그는 결론에 이른다.

공격성은 사회적 금기 때문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언어와 문화 속에서 다른 이름으로 돌아온다.
특히 엘리트 담론은 이를 정교하게 가려주면서 동시에 동원한다.

 

이 인식은 훗날
**“서구의 군사력·정보력·감시 능력을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정당화할 것인가”**라는
카프의 정치·경영적 선택에 직접 연결된다.


4. 팔란티르 테크놀로지: 세계관의 기업 형태


4-1. CIA에서 전장까지: 서구 폭력의 운영체제


팔란티르는 2003~2004년경,
CIA의 벤처캐피털인 In-Q-Tel의 초기 투자를 받으며 출발했다.
테러 대응과 정보 분석을 위해 만들어진 데이터 분석 플랫폼이었다는 것은
위키피디아 ‘Palantir Technologies’ 항목
여러 초기 보도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된다. (위키백과)

현재 팔란티르는 다음과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 정부·군사 영역

    • 미국 국방부, 정보기관, 이민세관단속국(ICE), 유럽 동맹국 등의
      데이터 통합·정보 분석 플랫폼

    •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위성·드론·전장 보고를 통합해,
      표적 선정·타격 결정을 돕는 시스템으로 사용되었다는 내용은
      TIME 기사 등에서 상세히 다뤄진다. (Palantir Investor Relations)

  • 평시 안보·행정

    • 세금 징수, 사기 탐지, 보건·인프라 데이터 관리 등
      정부 의사결정 인프라로 활용

2025년 기준으로 팔란티르는
Q4 2024 실적에서 연 매출 36% 성장(8.28억 달러),
2025년 매출 가이던스를 37.4~37.6억 달러 수준으로 제시했고,
이후 2025년 2분기에는 가이던스를 41.42~41.50억 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이는 Investor Relations 보도자료
미 SEC 공시에서 확인할 수 있다. (Palantir Investor Relations)

한마디로, 팔란티르는
**“서구 군사·정보·행정 체계가 데이터와 AI를 통해 폭력을 더 정밀하게 행사·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운영체제”**에 가깝다.

4-2. 반-Jargon 전략: “우리는 전쟁 소프트웨어 회사다”


흥미로운 점은,
박사논문에서 Jargon을 비판했던 카프
기업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오히려 탄탄하고 노골적인 언어를 쓴다는 것이다.

  • 그는 팔란티르를 “서구를 방어하는 회사”라고 규정하고,

  • “적에게 전쟁을 피할 만큼의 공포를 줘야 한다”고 말한다.
    (관련 내용은 위키피디아 정치관 서술과 각종 인터뷰 기사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된다.) (위키백과)

  • ICE와의 협력, 이스라엘·우크라이나 지원 등
    가장 논란이 큰 지점도 숨기지 않는다.
    최근에는 워싱턴포스트 기사에서
    팔란티르의 ICE 추방 시스템 지원이 상세히 보도되기도 했다. (The Washington Post)

이는 일종의 반-Jargon 전략이다.

  • 폭력과 강제력을 “데이터 분석”“효율화” 같은 중립어로 포장하기보다는,

  • 차라리 **“우리는 서구의 군사·정보·치안 능력을 기술적으로 증폭시키는 회사”**라고 솔직하게 말한다.

박사논문에서 비판했던
“폭력을 감추는 고상한 언어(Jargon)” 대신,
팔란티르는 **“폭력의 현실을 드러내는 노골적 언어”**를 택하고 있는 셈이다.
그 선택이 옳으냐는 별개의 문제지만,
카프의 철학적 일관성이라는 관점에서는 이해가 된다.


5. 왜 지금에서야 카프와 팔란티르가 재조명되는가


이제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왜 이제서야 그의 사고관·인생관·철학관이 주목을 받게 되었고,
왜 팔란티르는 이제야 성공할 수 있었을까?

 

5-1. 2000~2010년대: 평화의 배당과 테크 유토피아


2000~2010년대 세계는
냉전 붕괴 이후의 **‘평화의 배당’**을 누리던 시기였다.

  • 냉전은 끝났고,

  •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은 있었지만,

  • 대국 간 전면전은 없었다.

투자자와 사회의 관심은
광고, SNS, 전자상거래, 모바일, 클라우드 등
B2C 중심 빅테크에 쏠려 있었다.

이 시기에 CIA와 밀착해 군·정보기관을 상대하는 소프트웨어 회사
시장에서도, 실리콘밸리 문화에서도 주변부였다.
팔란티르는 10년 넘게 적자를 지속했고,
카프 본인도 “우리는 실리콘밸리의 프릭쇼였다”고 말한 바 있다. (CEO Today)

즉, 그들의 철학과 비즈니스 모델은
당시의 시대정신과 맞지 않았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5-2. 2020년대: 저성장·불평등·전쟁·군비 재무장의 결합


2020년대 들어 구조가 바뀌었다.

  1. 구조적 저성장과 장기 침체 우려

  2. 고부채·물가·소득 불평등

    • 각국 정부는 확장적 재정으로 저성장을 메우려 했고,
      그 결과 누적된 국가부채·금리 부담·재정 압박이 커졌다.

    • 생활비 상승은 저소득층의 앵겔지수를 악화시키고,
      정치적 양극화와 포퓰리즘을 자극하고 있다. (GreekReporter.com)

  3. 무역전쟁·패권경쟁·군비 재무장

    • 미·중 관세전쟁과 리쇼어링, 공급망 재편,

    •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분쟁, 대만 리스크,

    • 나토와 동맹국들의 대규모 방위비 증액 등으로
      방산 수요와 군비 경쟁이 구조적으로 재점화되었다. (Reuters)

  4. 글로벌 군사비·무기 매출 사상 최고치

    • SIPRI에 따르면 2024년 전 세계 군사비는 약 2.7조 달러로
      1990년대 이후 가장 빠른 증가율을 기록했고,
      이는 로이터 기사에서 잘 정리돼 있다. (Reuters)

    • 상위 100대 방산기업의 무기 매출은 2024년에 6,790억 달러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이는 AP 통신
      Greek Reporter 기사에서 공통적으로 인용된다. (AP News)

요약하면, 

저성장, 고부채, 물가압력, 소득불균형, 무역전쟁, 패권경쟁, 군비 재무장

 

이 한꺼번에 겹치면서
**“평화의 착시가 끝나고, 다시 야만의 시대가 열리는 국면”**이 도래한 것이다.

5-3. 그 위에서 재평가되는 팔란티르와 카프


이 환경 속에서 팔란티르는 두 가지 축에서 동시에 타이밍을 맞춘다.

  1. 외부 환경: 전쟁+AI 슈퍼사이클

    •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분쟁에서
      팔란티르 소프트웨어가 실제 전장에 투입되며,
      “AI 전쟁 실험실”의 대표 기업으로 부상했다.
      관련 내용은 앞서 언급한 TIME 기사 등에서 상세히 확인할 수 있다. (Palantir Investor Relations)

    • 동시에 생성형 AI·LLM 붐이 일어나면서,
      **“AI를 실제로 굴릴 수 있는 엔터프라이즈/정부 인프라”**에 대한 수요가 폭발했다.

  2. 내부 변화: 적자 스타트업에서 수익성 있는 플랫폼으로

이 두 축이 만나는 지점에서,
카프의 “폭력 현실주의”와 팔란티르의 비즈니스 모델은
“저성장+고불안” 시대의 정합적인 해답 중 하나
로 재인식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동전쟁, 저성장·고물가·불평등, 무역·패권 전쟁이라는
여러 사회·지정학적 불안이 동시에 올라오면서,

“폭력을 정교하게 다루는 철학”과
“그 철학을 구현한 데이터·AI 안보 기업”

 

이 뒤늦게 시장과 정치의 요구에 맞아떨어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6. 맺음말: 한 개인의 내면에서 세계 구조까지


정리하면, 알렉스 카프와 팔란티르 테크놀로지는 다음과 같은 구조를 가진다.

  1. 인생사

  2. 철학·박사논문

    • 프랑크푸르트학파·정신분석·파슨스 이론을 결합해
      **“생활세계 속 공격성”**과 Jargon·문화·역사의 관계를 분석했다.

    • 공격성을 일탈이 아닌 질서를 떠받치는 구조적 힘으로 재정의하고,
      엘리트 담론이 폭력을 은폐·정당화하는 방식을 해부했다.
      (참고: 영문 논문 PDF) (saismaran.org)

  3. 팔란티르 테크놀로지

    • 서구 군사·정보·행정 체계가 폭력을 더 정밀하게 행사·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데이터·AI 운영체제로 자리 잡았다.

    • 카프는 이를 숨기지 않고,
      “서구를 방어하는 기술”이라는 노골적인 언어로 설명한다.
      (참고: 팔란티르 IR 실적 자료) (Palantir Investor Relations)

  4. 시대 구조

결국, 

“평화의 시기가 끝나고 야만의 시대가 다시 도래했기 때문에,
그동안 지나치게 비관적이라고 여겨졌던 ‘폭력의 현실주의자’가
이제서야 시대의 언어가 된 것이다."


#글을 마치며


한번은 집에서 알렉스 카프 인터뷰 유튜브 영상을 틀어놓고 보고 있었는데, 와이프가 화면을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와우, 여보 같은 사람이 여기 또 있네?”

그때는 나 스스로 “나는 저 사람처럼 그렇게 산만한 타입은 아닌데?”라고 생각해서, 솔직히 별로 공감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돌이켜보니, 와이프가 그런 말을 한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나는 한국 교육 시스템 안에서 언어 과목은 정말 형편없었지만, 다른 과목에서는 거의 만점에 가까운 성적을 받곤 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국어만큼은 도무지 점수가 오르지 않았다. 글을 읽을 때도 한 줄을 읽고 제대로 다음 줄로 내려가지 못하고, 줄을 건너뛰거나 다시 올라가는 식으로 텍스트를 매끄럽게 따라가지 못하는 경험을 자주 했고, 글의 전반적인 개요 및 구조가 쉽게 잡히지 않아 머릿속에서 혼잡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던걸로 기억한다. 

심한 난독증이라고 부를 정도까지는 아니었겠지만, 적어도 **“정상적인 방식으로 글을 읽는 데 어려움이 있었던 사람”**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이런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것은 대학에 들어와서였다. 그냥 책을 많이 읽는 시간을 꾸준히 쌓다 보니, 읽는 속도와 집중력이 조금씩 나아졌고, 텍스트를 다루는 감각도 어느 정도는 보정된 느낌이 들었다. 다만 읽는 방식은 끝까지 남았다.

교과서·강의노트·모범답안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잘 안 되었고, 대신 내용을 통째로 내 방식대로 재구성해서 이해해야만 비로소 잡히는 느낌이었다. 알렉스 카프가 말하는 것처럼, “남들이 쓰는 플레이북”을 그대로 따라가는 공부법은 애초에 나와 잘 맞지 않았던 것 같다는 생각을 뒤늦게 하게 된다.

대학 시절 과제 발표 시간에, 교수나 동기들이 보기에는 혼자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장면들도 떠오른다.

그때는 나도 왜 그렇게 말이 튀는지 잘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내 머릿속 구조와 남들이 공유하고 있는 구조가 애초에 달랐기 때문이었을 것 같다.

지금 주식투자를 할 때도 이 버릇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남들이 말하는 정석적인 투자 프레임이나 매뉴얼을 그대로 가져다 쓰기보다는, 시장 구조와 기업의 서사를 내 방식대로 해체하고 다시 조립하는 방식으로 이해하려 한다.

숫자·데이터 하나하나보다, 그 뒤에 있는 구조와 맥락을 먼저 잡는 쪽에 훨씬 가깝다.


그래서인지, 나라는 사람의 기질은
수동적으로 애널리스트 리포트를 읽고 소비하는 데 시간을 쓰기보다는,
직접 글을 써가며 내 나름의 구조화 프레임을 만들어가는 데 시간을 쓰는 쪽을 선호하게 만든 것 같다.


이 과정이, 남들과 투자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교류하고 토론하는 것의 필요성을 점점 덜 느끼게 된 데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지 모르겠다.

남의 사고틀에 내 생각을 끼워 맞추기보다는, 내 사고틀을 스스로 다듬고 확장하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두게 된 것이다.


아마 와이프는 알렉스 카프 인터뷰를 보면서, 내가 평소에 텍스트를 다루는 방식, 세상을 구조화해서 이해하려는 습관, 그리고 어딘가 “정상적인 공부법”과는 좀 다른 경로를 걸어온 느낌 같은 것들을 떠올렸던걸까?

그걸 한 번에 묶어서, 그냥 가볍게 “여보 같은 사람이 또 있네?”라는 말로 툭 던진 것이 아닐까 싶다.

=끝

2025년 12월 8일 월요일

생각정리 139 (* The Age Of Turbulence, Alan Greenspan)


앨런 그린스펀의 『격동의 시대』는 2006년에 집필되어 2007년에 출간된 책이지만, 지금 읽어보면 현재의 고령화, 세계화의 후퇴, 보호무역·관세, 부채와 금리, AI·기술 패권 경쟁까지 상당 부분을 미리 짚어 놓은 책처럼 느껴진다.

그중에서도 나는 **18장(경상수지와 부채)**와 **20장(그린스펀의 수수께끼)**이 지금의 거시환경과 자본 흐름, 그리고 앞으로의 위험을 읽는 데 핵심적인 두 축이라고 생각한다.

아래에서는 이 두 장의 내용을 하나의 흐름으로 정리하고, 2025년 현재의 현실과 연결해보고자 한다.


1. 부채와 경상수지에 대한 그린스펀의 시각 (18장)


1) 부채는 왜 경제발전과 함께 늘어나는가


그린스펀의 출발점은 간단하지만 중요하다.

시장경제에서 부채의 증가는 “문제의 징후”가 아니라,
분업·전문화·생산성 향상의 “불가피한 부산물”이다.


경제가 발전하면

  • 분업과 전문화의 범위가 넓어지고

  • 생산성이 높아지며

  • 경제 주체들이 처리하는 거래·프로젝트의 규모가 커진다.


이 과정에서

  • 가계·기업·정부의 **대차대조표 규모(자산과 부채)**가 소득보다 더 빠르게 커지고

  • 자연스럽게 소득 대비 부채비율, GDP 대비 비금융부문 부채비율이 장기적으로 상승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그래서 그린스펀은,

  • 가계의 소득 대비 부채비율 상승,

  • GDP 대비 총 비금융 부채비율 상승

그 자체만으로는 경제적 압박이나 위기의 충분조건이 아니라고 본다.

그에게 중요한 질문은 다음 두 가지이다.

  • 그 부채가 어떤 자산·현금흐름을 기반으로 쌓여 있는가

  • 상환능력을 뒷받침하는 생산성과 소득 창출 능력이 유지·확대되고 있는가

즉, 그는 “부채비율이 높다”는 숫자에만 집착하는 시각을 균형 잡히지 못한 공포로 본다.


2) 미국 경상수지 적자: 위기 시한폭탄인가, 구조적 균형인가


이 부채에 대한 관점은 자연스럽게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 문제로 확장된다.


과거부터 미국의 대외수지 적자 확대는

  • “달러 가치 폭락”,

  •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


로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과 함께 반복적으로 위기론의 중심에 서 있었다.

하지만 그린스펀은 이 공포를 상당 부분 과장된 우려로 본다. 핵심 논지는 다음과 같다.

  1. 세계경제의 확대 → 지속 가능한 적자·흑자 규모의 확대

    • 세계 GDP와 교역·자본 이동의 절대 규모가 크게 커졌기 때문에

    • 각국이 감당할 수 있는 경상수지 흑자·적자의 절대 규모도 과거보다 크게 늘어났다.

    • 따라서 숫자만 과거와 단순 비교해 “규모가 크다 → 붕괴 임박”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2. 달러 기축통화 지위와 미국 자산의 매력

    • 달러는 여전히 국제결제·외환보유·자산배분의 중심 통화이다.

    • 미국은

      • 높은 생산성,

      • 재산권 보호와 법치주의,

      • 깊고 유동성이 풍부한 금융시장
        덕분에 위험조정 기대수익률이 높은 자산시장으로 평가받는다.

    • 그 결과, 전 세계의 잉여저축이 미국으로 유입되고, 이는 경상수지 적자로 유출된 달러를 금융계정(자본유입)에서 다시 상쇄한다.

  3. 정보혁신과 Home Bias의 약화

    • 기술 발전과 정보 접근성 개선으로

      • 투자자들의 지리적 시야는 넓어지고,

      • 자국 자산에만 과도하게 투자하던 **Home Bias(자국 편중)**는 약해지고,

      • 해외투자에 대한 위험 인식은 점점 정교해지고 있다.

    • 이 과정에서 위험조정 기대수익률이 높은 지역·자산으로 자본이 이동하는데, 그 대표적인 수혜자가 미국이라는 것이다.

이런 구조를 전제하면,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미국이 위험조정 기준으로 가장 매력적인 자산을 제공하고 있고,
전 세계가 그 자산을 사들이는 과정에서 생기는 균형 결과”

 

로 해석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경상수지 적자 자체는 특별한 경제적 의미를 갖지 않을 수도 있다고까지 말한다. 핵심은 적자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그 적자가 어떤 구조 위에서, 어떤 자산과 생산성을 동반하며 형성되는가이다.


3) 경상수지 공포의 뿌리: 중상주의의 오래된 그림자


그린스펀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경상수지 적자가 왜 문제인가”라는 대중적 인식의 뿌리가
18세기 중상주의 시대의 사고방식에 남아 있다
고 지적한다.


그 시기에는

  • 국제수지 흑자 = 금의 유입

  • 금 보유량 = 국부의 핵심 척도


였기 때문에, 흑자는 곧 국가의 힘이었고 적자는 곧 약점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 불태환 화폐,

  • 거대한 글로벌 자본시장,

  • 자유로운 자본 이동


이라는 전혀 다른 환경이 존재한다.

이 환경에서,

  • **“흑자=건전, 적자=위험”**이라는 단순 등식에 집착하는 것은

  • 지나치게 협소한 시각이라고 그는 비판한다.

그의 관점에서 보면,

  • 경상수지 적자는 고도화된 분업·전문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하나의 표지이며,

  • 현대의 흑자·적자는 수십 년, 어쩌면 수세기에 걸쳐 점진적으로 조정되는 장기 추세의 일부이다.

따라서 진짜 중요한 것은,

  • 그 적자가 생산성을 높이는 투자·기술·자본형성으로 이어지고 있는지,

  • 그 결과로 채무자의 지급능력(상환능력)이 장기적으로 강화되고 있는지이다.


4) 부채·레버리지와 금융혁신: 가능성과 위험


18장은 부채와 레버리지에 대해서도 중요한 논점을 제시한다.


그린스펀은

  • CDS, MBS, ABS 같은 신용 파생상품,

  • 석유 선물 등 각종 금융혁신이


다음과 같은 효과를 가져왔다고 본다.

  • 거래 시스템의 효율성 제고,

  • 위험의 세분화·이전 가능,

  • 그 결과로 금융시스템의 유연성 확대.


이러한 유연성 확대 덕분에, 어느 수준까지는

“리스크를 과도하게 키우지 않고도
부채 레버리지를 더 높일 수 있다”


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특히,

  • 주택담보대출의 증권화(MBS),

  • 각종 소비자신용의 유동화(ABS)

등은 가계·기업이 장기간 높은 수준의 레버리지를 유지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이는 경제 전체의 투자·소비 여력을 늘리는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그는 과거의 부채·레버리지 우려에 대해,

“가계와 기업의 재무관리 능력을 과소평가한 측면이 있다”


고 말한다. 즉, 경제주체들이 생각만큼 무지하거나 무책임하지 않으며, 새로운 금융 수단을 활용해 스스로 위험을 조정·관리할 수 있다는 낙관이 깔려 있다.

물론, 우리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경험한 이후의 세계를 알고 있다.

  • 복잡한 구조화증권과 과도한 레버리지는

    • 위험을 분산시키기보다 오히려 시스템 전반을 취약하게 만들 수 있음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오늘의 관점에서는, 그린스펀의 논리 위에 다음 한 줄을 반드시 덧붙여야 한다.

레버리지의 수준만이 아니라,
그 레버리지가 어떤 자산·현금흐름·규제·투명성 구조 위에 얹혀 있는지가 핵심이다.

 


5) 2025년 현실에서 다시 본 18장: AI와 자본 이동, 그리고 체감


2025년 말의 현실에서 18장을 다시 읽어보면, 그린스펀의 프레임은 여전히 상당 부분 유효하다.

첫째, 미국 자산의 매력은 여전히 크다.

  • AI 공급망, 클라우드, 반도체 설계 등에서 미국이 주도권을 쥐고 있으며,

  • 이 분야에 대한 글로벌 자본의 기대와 선호는 여전히 강하다.

  • 이는 미국의 위험조정 기대수익률을 여타 국가 대비 상대적으로 높게 유지시키는 요인이다.

둘째, AI 덕분에 Home Bias는 눈에 띄게 약해지고 있다.

  • 우리 회사만 보더라도, 이제는 해외 IB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고도

    • AI를 활용해 해외 기업 공시, 현지 뉴스, 정책 문서까지 직접 분석할 수 있게 되었다.

  • 불과 1~2년 사이에

    • 해외주식 투자에 대한 심리적 진입장벽이 급격히 낮아졌고,

    • 정보의 양뿐 아니라 질의 격차도 빠르게 줄어들고 있음을 체감한다.

  • 이러한 변화는 국내 개인투자자들의 해외투자 확대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즉, 그린스펀이 말한

“정보격차 축소 → Home Bias 약화 → 자본의 효율적 이동”


이라는 메커니즘이 AI를 통해 한 단계 더 가속화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셋째, 경상수지 적자 공포론은 아직 현실이 되지 않았다.

  •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 규모는 여전히 크지만,

  • 그것만으로 “달러 붕괴”를 단정하기에는

    • 기술·제도·군사·동맹 네트워크,

    • 자본시장의 깊이와 유동성
      등이 여전히 미국 쪽에 크게 기울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정리하면,

18장에서 그린스펀은
“부채와 경상수지는 숫자 그 자체가 아니라,
생산성과 제도·자본 이동 구조 속에서 읽어야 한다”는 시각을 제시했고,
2025년의 현실은 아직까지 그의 프레임을 완전히 부정하지 못하고 있다

 

라고 정리할 수 있다.


2. “그린스펀의 수수께끼”와 세계화·인구구조 (20장)


이제 20장으로 넘어가면, 이야기는 금리·세계화·인구구조로 확장된다.

1) 2004~2005년: 기준금리는 오르는데 장기금리는 내려간 수수께끼


2004년, 연준은

  • 역사적인 초저금리와 주택시장 과열을 진정시키기 위해

  • 기준금리(FFR)를 1%에서 점진적으로 인상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정상적”이라면 함께 올라야 할

  • 10년물 미 국채금리 등 장기금리

    • 오히려 하락하거나 거의 오르지 않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린스펀은 이 현상을 두고 **“그린스펀의 수수께끼(Greenspan’s Conundrum)”**라고 부르며, 그 배후에 세계화·인구구조·글로벌 저축 과잉이라는 구조적 힘이 작동하고 있다고 본다.


2) 냉전 종식, 중국 개방, 글로벌 저축 과잉


그가 제시하는 설명은 크게 세 가지 축으로 정리된다.

  1. 동유럽·구소련의 시장 편입

    •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동유럽·구소련 국가들이 시장경제에 편입되면서

    • 저임금·상대적으로 숙련된 노동력이 글로벌 노동시장에 대거 유입되었다.

  2. 중국의 개혁·개방과 WTO 가입

    • 중국이 세계경제에 본격적으로 편입되면서

    • 농촌 인구가 도시·산업 부문으로 이동하고

    • 전 세계적으로 유효 노동공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3. 신흥국의 고저축·대규모 대외흑자와 미국 국채 매입

    • 중국·아시아 신흥국·산유국은

      • 높은 성장률과 절약 성향을 바탕으로

      • 높은 저축률과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였고,

    • 외환보유고를 쌓기 위해

      • 미국 국채를 대량 매입하며 장기금리를 눌러 놓았다.

이 모든 것이 합쳐져 만들어낸 결과가 바로,

  • 선진국의 임금·물가 상승 압력 억제(디스인플레이션),

  • 연준의 기준금리가 올라가도

    • 글로벌 자금이 미국 국채시장으로 몰리며 장기금리가 내려가 버리는 수수께끼였다.


3)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균형점 이동


이 세계화·인구구조 변화는 분배 구조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 선진국의 중·하위 노동자들은

    • 해외 저임금 노동과 경쟁해야 했고,

    • 제조업 일자리 일부가 해외로 이전되면서

    • 임금협상력과 소득몫이 약화되었다.

  • 반면 자본·기업은

    • 글로벌 생산기지 선택,

    • 저금리를 활용한 레버리지 확대,

    • 금융혁신 활용 등을 통해


부와 소득의 균형점을 자본 쪽으로 크게 이동시키는 수십 년을 보냈다.


따라서 20장은,

세계화와 인구구조 변화가
저물가·저금리·고자산가치·소득 불균형이라는 하나의 “패키지”를
어떻게 만들어냈는지를 설명하는 장


이라고 볼 수 있다.


3. 구조적 힘의 역전: 디스인플레이션에서 구조적 인플레이션으로


이제 18장과 20장의 내용을 2020년대 현실에 대입해 보면, 우리는 그때와 정반대 방향의 구조적 힘이 나타나고 있는 국면에 서 있다.

  1. 베이비붐 세대의 고령화

  • 노동공급 감소,

  • 연금·의료 등 사회복지 지출 증가,

  • 재정적자와 국가부채 압력 확대


를 동시에 가져오고 있다.

  1. 세계화의 정체와 탈세계화 논쟁

  • 미·중 전략 경쟁, 국가안보·공급망 이슈로

    • 리쇼어링, 프렌드쇼어링,

    • 관세·수출통제·보조금 경쟁이 확산되고 있다.

  • 이는 비용과 물가를 구조적으로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1. “상시 저물가·저금리” 체제의 종언 가능성

  • 과거 그린스펀의 수수께끼를 가능하게 했던

    • 풍부한 노동공급,

    • 세계화 디스인플레이션,

    • 신흥국의 고저축 구조는 약해지고 있다.

  • 그 결과,

    • 인플레이션과 금리가 2010년대 수준으로 다시 내려앉기 어렵고,

    • 상대적으로 높은 물가·임금·금리가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4. 신흥국 성장 둔화, 기술·제도, 그리고 자본 흐름의 재편


2000년대에는

  • 중국·아시아 신흥국·산유국이

    • 고성장·고저축·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를 바탕으로

    • 미국·유럽에 자본을 공급하는 구조가 뚜렷하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림이 달라지고 있다.

  • 일부 신흥국은

    • 인구구조 악화,

    • 생산성 둔화,

    • 부동산·과잉투자 후유증에 직면하고 있고,

  • 과거처럼 **“선진국보다 항상 훨씬 빠른 성장”**을 전제하기 어렵다.

이 상황에서 자본은

  • 제도·정치·재산권 리스크가 큰 곳을 회피하고,

  • 법치·재산권 보호·제도 신뢰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국가로 선별적으로 이동하려는 경향을 강화하고 있다.

여기에

  • 미국의 AI·기술 패권,

  • 상대적으로 안정된 제도·법치·시장 인프라

가 결합되며, 그린스펀이 말했던

“미국 자산의 위험조정 기대수익률 우위”


라는 구조는 아직 완전히 깨지지 않은 상태이다.

AI의 발전은 여기에 또 다른 층을 더한다.

  • 정보비대칭을 줄이고,

  • 리서치·분석의 효율을 높이며,

  • 개인·기관 모두에게 해외투자 진입장벽을 낮춰주는 역할을 한다.

앞서 말했듯, 내 체감만 봐도 AI 도입 이후

  • 해외 IB 리포트에만 의존하지 않고도

  • 직접 자료를 읽고 분석할 수 있게 되었고,

  • 해외투자에 대한 심리적·정보적 장벽이 크게 낮아졌다.

이는 그린스펀이 예견한

“정보혁신 → Home Bias 약화 → 자본의 효율적 이동”


이라는 메커니즘이 AI 시대에 다시 한 번 가속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5. 인구·복지·부채와 중앙은행 독립성


마지막으로, 그린스펀은 20장에서 중앙은행 독립성 문제를 끄집어낸다.

  • 고령화와 사회복지 지출 확대,

  • 재정적자와 부채 누적이 진행될수록,


정치권에는 항상 다음과 같은 유혹이 생긴다.

“재정을 정면으로 조정하기보다는,
저금리와 완화적 통화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을 통해 부채 부담을 희석하고 싶다.”


그는 연준의 독립성을

  • 헌법에 새겨진 절대불변의 원칙이 아니라,

  • **정치·시장·유권자의 합의 위에서 유지되는 ‘깨지기 쉬운 제도적 관행’**에 가깝다고 본다.


자신의 재임기간을 돌아보며,

  • 세계화와 인구구조 덕분에

  • 디스인플레이션 환경 속에서 비교적 여유 있게 통화정책을 운용할 수 있었던 것은

  • “행운”에 가까웠다고 평가한다.


반대로 앞으로의 중앙은행은

  • 고물가,

  • 고부채,

  • 고령화와 복지지출 확대라는 조합 속에서


정치적 압력과 독립성 사이의 긴장을 훨씬 더 직접적으로 경험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는 경고를 남긴다.


6. 결론: 숫자가 아니라 구조를 보는 법


18장과 20장을 함께 읽고 2025년의 현실과 연결해보면, 그린스펀이 던지는 메시지는 다음과 같이 압축할 수 있다.

  1. 부채·경상수지·금리는 숫자가 아니라 구조의 결과이다.

    • 부채비율, 경상수지 적자 규모, 장단기 금리 수준은

    • 그 자체로 위기냐 아니냐를 말해주는 지표가 아니라,

    • 인구구조, 세계화, 분업·전문화, 자본 흐름, 제도·정치의 구조가 만들어낸 결과이다.

  2. 경상수지 적자는 중상주의적 강박에서 벗어나 읽어야 한다.

    • “흑자=건전, 적자=위험”이라는 이분법은

    • 금본위와 중상주의 시대의 유산에 가깝다.

    • 오늘날에는 유입 자본의 질, 투자처, 지급능력이 훨씬 더 중요하다.

  3. 세계화·인구구조의 방향이 바뀌면, 인플레이션과 금리의 성격도 바뀐다.

    • 과거 “그린스펀의 수수께끼”를 낳았던

      • 풍부한 노동,

      • 세계화 디스인플레이션,

      • 신흥국 고저축 구조는 약해졌다.

    • 그 대신

      • 고령화,

      • 탈세계화,

      • 안보·공급망 재편이

      • 구조적 인플레이션·고금리의 위험을 키우고 있다.

  4. AI·기술·제도는 자본 흐름의 방향을 다시 규정한다.

    • 정보격차 축소와 Home Bias 약화는

      • 위험조정 수익률이 높은 자산으로의 자본 이동을 가속한다.

    • 미국의 기술우위와 제도 신뢰가 유지되는 한,

      • 단순한 “달러 붕괴론”으로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와 부채를 해석하기는 어렵다.

  5. 중앙은행 독립성은 인구·복지·부채 정치와 맞물려 흔들릴 수 있다.

    • 고령화와 복지지출, 부채 누적은

      • 통화정책을 정치화하려는 유혹을 키운다.

    • 앞으로의 통화정책은

      • 경제 변수뿐 아니라 정치·재정과의 힘겨루기까지 함께 읽어야 한다.

결국, 그린스펀이 18장과 20장에서 말하고자 했던 핵심은 다음 한 줄로 요약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채와 경상수지, 금리를 숫자로만 보지 말고,
그 뒤에 움직이는 인구·세계화·분업·자본·제도의 구조 자체를 읽어라.


2025년의 현실에서 보면,
우리는 그가 분석했던 저물가·저금리·세계화의 시대가 끝나가는 과정에 서 있다.
그렇기에 오히려, 그가 남긴 이 구조적 프레임이 앞으로의 고물가·고금리·탈세계화·AI 패권 경쟁의 시대를 해석하는 데 더 필요한 도구가 되어가고 있다고 느낀다.

앨런 그린스펀은 말미에서, 장기 실질이자율에 대한 하향 조정 압력이 점점 세계적인 요인에서 비롯된 것으로 드러나는 상황에서, 과연 그 요인에 대해 자신들이 얼마나 통제력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드러낸다.

지난 10~20년간의 장기 이자율 하락을 가져온 데 있어, 정부 정책이나 중앙은행의 반인플레이션 통화·신용정책이 과연 핵심적인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서도 명확히 단정하기 어렵다는 의문을 남긴다.

만약 그의 의심이 맞다면, 앞으로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은 반세계화와 저출산·고령화라는 구조적 시장 힘에 밀려 점차 그 효력을 상실할 위험이 있다.

그 결과 통화정책의 역할과 의미가 점점 퇴색되고, 연준의 독립성 자체도 상시적으로 의문과 위협에 노출될 가능성이 제기되며, 무엇보다 인플레이션이 통제가능성에 대한 위협이 재발되지 않을까 한다. 

마지막으로, 격동의시대 책의 말미에 그가 남긴

“더 멀리 과거를 돌아볼 수 있을수록 더 멀리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The longer you can look back, the farther you can look forward)”


는 윈스턴 처칠의 말을 떠올리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끝

2025년 12월 7일 일요일

생각정리 138 (* Kevin Allen Hassett)

1. 문제의식: 번스의 망령, 그러나 1970년대는 “금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앨런 그린스펀의 자서전을 탐독하고 있는데, 반가운 이름인 아서 번스가 다시 시장에서 소환되고 있다.

https://ko.wikipedia.org

특히 차기 유력 연준의장 케빈 해셋이 트럼프 2기 행정부와 보조를 맞추어 기준금리를 인하할 경우, 시장에서는 이를 두고 “아서 번스 시즌 2”, 다시 말해 1970년대식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가 반복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적지 않다.

https://en.wikipedia.org/wiki/Kevin_Hassett


그러나 1970~1980년대의 역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당시의 대실패는 단순히
**“연준이 금리를 너무 낮게 유지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핵심은 다음과 같은 조합이다.

  • 임금·가격 통제,

  • 정부의 직접적인 시장 개입,

  • 오일쇼크라는 대형 공급 충격,

  • 여기에 휘둘린 정치화된 중앙은행.

즉, 시장 가격 메커니즘을 파괴하는 정책과 외부 충격, 정치 개입이 한꺼번에 결합된 결과가 19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이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 글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1970년대의 경기불황은 아서 번스의 금리 결정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물가통제와 정부개입이 시장 가격 메커니즘을 훼손한 것이 핵심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케빈 해셋이 기준금리를 인하한다 하더라도
1970년대식 임금·가격 통제와 오일쇼크가 결합하지 않는 한,
당시와 같은 대침체를 그대로 우려하는 것은 과도한 일반화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 결론을 설득력 있게 보이기 위해, 우선 숫자부터 정리한다.


2. 숫자로 먼저 보는 1970~1982년: 금리·물가·성장률


[표 1] 미국 거시지표(연평균): 1970~1982년



이 표에서 보이는 큰 흐름은 세 가지이다.

  1. 인플레이션의 상시 고착
    1970년대 내내 인플레이션은 대부분 5~14% 구간에 머무른다.
    “언젠가 2%대로 다시 내려올 것”이라는 기대가 사실상 사라진 시기이다.

  2. 뒤늦게 쫓아가는 금리
    연방기금금리는 인플레이션이 이미 폭발한 뒤에야 급등한다.
    특히 1974년, 1979~81년에는 “물가 뒤쫓기” 양상이 뚜렷하다.

  3. 반복되는 경기침체
    성장률은 1970, 1974~75, 1980, 1982년에 마이너스를 기록한다.
    즉, 높은 물가 + 반복되는 경기침체라는 전형적인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이다.




이제 이 숫자 위에, 각 시기별 정책과 사건을 얹어서 보자.


3. 닉슨–아서 번스: 임금·가격 통제가 시장을 망가뜨린 방식


3-1. 매크로 배경: 이미 높아진 인플레이션과 불안정한 정치


1970년 전후 미국은

  • 베트남전 비용과 Great Society 복지지출 확대로 재정 부담이 컸고,

  • 추가 10% 연방 소득세가 부과되었으며,

  • 반전 시위와 사회적 갈등 등 정치적 불안이 겹쳐 있었다.

1970년 주요 지표는 다음과 같다.

  • 인플레이션: 6.2%

  • 실질 성장률: -0.17%

  • FFR: 7.17%


이미 성장 둔화와 높은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나타나는 초기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이었다.

닉슨은 성격적으로 편집증·염세·냉소가 강한 인물로 묘사된다.
그린스펀의 회고를 포함한 여러 기록에 따르면, 그는 주변 인물에 대한 신뢰가 낮고, 정치적 생존에 극도로 민감한 대통령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닉슨의 최우선 과제는 분명했다.

“1972년 재선까지, 경기와 실업률만큼은 어떻게든 좋아 보이게 만드는 것”


이 지점에서 아서 번스가 등장한다.


3-2. 1971년 “닉슨 쇼크”: 임금·가격 통제의 구조


1971년 8월, 닉슨은 이른바 **“닉슨 쇼크”**를 단행한다. 핵심은 세 가지이다.


https://ko.wikipedia.org

  1. 금 태환 정지

    • 브레튼우즈 체제를 사실상 종료.

  2. 임금·가격 90일 동결(Phase I)

    • 모든 임금·가격을 즉시 동결.

  3. 10% 수입할증 관세

    • 수입 물가를 직접적으로 조정.


이후 임금·가격 통제는 형태만 바뀐 채 계속 이어진다.

  • Phase II: 임금·가격위원회가 인상 허용 범위를 정하고, 기업은 허가 없이는 가격·임금 인상을 할 수 없는 체제로 전환.

  • Phase III·IV: 일부 완화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정부가 임금·가격 인상률을 사실상 관리하는 구조가 유지된다.


겉으로는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시장 가격 메커니즘을 광범위하게 파괴하는 정책이었다.


3-3. 임금·가격 통제가 시장에 미친 핵심 악영향


임금·가격 통제의 부정적 효과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상대가격 신호 붕괴와 자원 배분 왜곡

    인플레이션 환경에서는 상품·산업 간 상대가격 변화가 자원 배분의 핵심 신호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가 가격 상·하한을 정하면,

    • 어떤 산업은 인상 제한,

    • 어떤 산업은 예외 인정,

    • 임금도 직종·산업별로 상한이 달라진다.
      결과적으로 “어디에 자본·노동을 투입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격 신호가 흐려지고,
      필요한 곳에는 공급이 부족하고 다른 곳에는 과잉이 생기는 구조적 왜곡이 쌓이게 된다.

  2. 숨은 인플레이션과 ‘밀린 인상분’의 폭발

    통제 기간 동안 임금·가격은 행정적으로 눌려 있지만,

    • 노조의 임금 인상 요구,

    • 기업의 마진 회복 요구는 사라지지 않고 누적된다.
      통제가 완화·해제되는 순간, 이 “밀린 인상분”이 한꺼번에 반영되면서 물가가 급등한다.
      실제로 1972년 일시적으로 3%대까지 내려갔던 인플레이션은,
      가격통제가 느슨해지고 1차 오일쇼크가 겹치면서 곧바로 두 자릿수 인플레이션으로 폭발한다.

  3. 투자·성장 잠재력 훼손

    가격을 시장이 아닌 정부가 정하는 환경에서는
    기업 입장에서 장기 투자에 대한 기대수익률 자체가 불확실해진다.
    규제 대상 산업일수록 설비투자와 신규 진입이 위축되고,
    이는 결국 성장잠재력 저하 → 낮은 성장률·높은 실업률의 고착으로 이어진다.

요약하면, 임금·가격 통제는

“단기적으로 물가상승률 숫자를 예쁘게 보이게 만들지만,
장기적으로는 인플레이션을 더 폭발적으로 만들고, 성장잠재력까지 훼손하는 정책”
이었다.

 


3-4. 그 위에 얹힌 1차 오일쇼크


이렇게 왜곡된 가격 체계 위에 1973년 1차 오일쇼크가 올라탄다.

  • 1973년 10월, 아랍 산유국들은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서방 국가들에 대해 석유 금수조치를 단행한다.

  • 유가는 단기간에 세 배 가까이 뛰었고,

  • 이미 억눌려 있던 에너지 가격이 폭발적으로 재조정되었다.

표에서 보면 충격은 명확하다.

  • 인플레이션: 1972년 3.27% → 1973년 3.65% → 1974년 9.39% → 1975년 11.80%

  • 성장률: 1973년 4.02% → 1974년 -1.95% → 1975년 2.55%

연준은 1974년 FFR을 **10.51%**까지 올리며 뒤늦게 대응했지만, 이미

  • 가격통제가 풀리며 튀어 오른 숨은 인플레이션,

  • 오일쇼크,

  • 노조와 기업의 누적된 인상 요구

가 한꺼번에 폭발하는 국면이었다.

더 치명적인 부분은 1975년이다.

  • 인플레이션은 여전히 **11.8%**에 달했는데,

  • FFR은 **5.82%**까지 재인하되었다.

즉, 실질 정책금리가 깊은 마이너스인 상태를 그대로 방치한 것이다.
이 지점이 바로 시장과 학계가 지적하는 **“아서 번스의 치명적 패착”**이다.


닉슨 행정부 경제팀은 마비 되었고, 이어 워터게이트 사건이 폭로되면서 정치적 위기까지 겹쳐 결국 닉슨은 사임을 발표하였다.

그 뒤를 이어 공화당 소속 제럴드 포드가 후임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4. 포드: 가격통제의 잔재와 규제완화의 시작 (1975~1976)

포드 대통령은 성품 면에서는 닉슨과 달리 온건하고 안정적인 인물이었으나,

초기에는 **WIN(Whip Inflation Now)**라는, 이름만 거창한 “인플레이션 때리기” 캠페인을 추진한다.

https://ko.wikipedia.org

WIN은 실제로는

  • 국민에게 절약·자제를 호소하고,

  • 각종 행정적 가격·임금 가이드라인을 이어가는 정도에 그쳤다.

그린스펀은 이를 두고

“정말 믿기 힘들 정도로 어이없는 안건”
이라고 회고한다. 그만큼 시장 기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정책으로 본 것이다.

 

그러나 포드 행정부는 곧 현실을 인정하고,

  • 소득세 환급,

  • 한시적 재정지출 확대,

  • 연방 예산 증가 제한

등을 통해 침체된 경기를 되살리는 방향으로 전환한다.

동시에 중요한 변화가 시작된다. 바로 규제완화(deregulation)의 시동이다.

  • 철도 상업,

  • 트럭운송업,

  • 항공 산업 등을 중심으로

가격·진입 규제를 풀어 시장 경쟁을 회복시키는 작업이 시작된다.

이는 곧

  • 1980년대 레이건 시기의 기업 M&A 붐,

  • 산업 구조조정,

  • 새로운 산업의 탄생

으로 이어지며, 미국 경제의 유연성과 탄력성을 크게 높이는 토대가 된다.


5. 카터: 규제완화의 연속과 인플레이션 관리 실패 (1977~1980)


지미 카터 정부는

  • 포드 시기부터 시작된 규제완화 흐름을 전기·통신 등으로 확장했고,

  • 이 덕분에 집권 초기 1년은 높은 성장률을 기록한다.


    https://ko.wikipedia.org


표로 보면 다음과 같다.

  • 1977년: FFR 5.54%, 인플레이션 5.22%, 성장률 5.01%

  • 1978년: FFR 7.94%, 인플레이션 6.84%, 성장률 6.66%


즉, 규제완화·재정정책 덕분에 실물경제는 호조였으나, 인플레이션은 다시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었다.


문제는 카터의 리더십 스타일이다.
그린스펀의 표현을 빌리면, 카터는

  • 우유부단하고,

  • 의기소침한 인상을 주며,

  • “변화조차 선택의 여지 없이 해야 하는 것처럼 만들어 버리는” 리더였다.

그 결과, 카터 행정부는

  • 실업률을 낮추고,

  • 인플레이션을 잡고,

  • 재정적자를 줄이려는


서로 양립하기 어려운 세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였다.


그러나 어느 하나도 확실하게 우선순위에 두지 못한 채,
존재하지 않는 절충안을 찾아 헤매는 회의만 반복하였다.

여기에 1979년 2차 오일쇼크가 덮친다.

  • 이란 혁명과 공급 불안으로 유가가 급등했고,

  • 인플레이션은 1979년 9.28%, 1980년 **13.91%**까지 폭등하였다.

  • 성장률은 1979년 1.28%, 1980년 **-0.04%**에 그쳤다.

카터 행정부는 이 위기 속에서

  • 임금·가격 통제를 본격적으로 되살리지도 못하고,

  • 그렇다고 강력한 통화긴축을 뒷받침하지도 못하는

애매한 태도를 보였다.

결국 1979년, 카터는 시장의 신뢰를 잃은 빌 밀러 대신
폴 볼커를 연준 의장으로 임명한다.





6. 볼커–레이건–그린스펀: 통화정책 신뢰 회복과 골디락스


6-1. 볼커의 디스인플레이션


볼커는 취임 직후,

“내 임무는 인플레이션이라는 괴물을 잡는 일이다”


라고 명확히 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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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0월, 연준은

  • **통화량 타깃팅(10·6 조치)**를 선언하며

  • 기존의 금리 목표제에서 벗어나

  • 통화 공급을 직접 관리하는 방식으로 전환한다.

그 결과,

  • 1980년: FFR 13.35%, 인플레이션 13.91%

  • 1981년: FFR 16.39%, 인플레이션 11.83%

  • 1982년: FFR 12.24%, 인플레이션 8.39%


실질 금리는 드디어 플러스 영역으로 깊게 올라서고,
장기 인플레이션 기대가 서서히 꺾이기 시작한다.

대신 성장률은

  • 1980년 -0.04%,

  • 1982년 -1.44%

두 차례 침체를 겪는다. 즉, **“고통스러운 디스인플레이션”**이다.





6-2. 레이건과 그린스펀: 공급 측 개혁 + 안정된 통화체제


볼커가 인플레이션을 꺾은 뒤, 레이건 행정부와 그린스펀 체제는

  • 감세,

  • 규제완화,

  • 방위산업 투자


를 통해 공급 측 개혁을 강화한다.


https://ko.wikipedia.org

1983~1989년 지표를 보면,

  • 성장률: 1983년 7.9%, 1984년 5.6% 등, 디스인플레이션 이후 강한 리바운드,

  • 인플레이션: 대체로 3~4%대에 안착,

  • FFR: 6~10% 수준에서 관리되며 실질 금리는 플러스 유지이다.

이 시기를 흔히 **골디락스(Goldilocks)**라고 부른다.
볼커–그린스펀 체제 아래에서 통화정책의 신뢰가 회복되고,
레이건–포드–카터 시기부터 이어져 온 규제완화·구조조정이 결실을 맺는 구간이다.

그 과정에서 1987년 블랙먼데이가 발생하지만,

https://ko.wikipedia.org/wiki


그린스펀은 “연준은 필요한 유동성을 공급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단 한 문장으로
시장 신뢰를 지탱하며, 실물 경기 침체로의 확산을 막는 데 성공한다.




7. 다시 보는 아서 번스: “저금리”가 아니라 “시장 파괴”가 진짜 문제


이제 다시 아서 번스로 돌아가면, 1970년대의 대실패는 다음 네 가지로 요약된다.

  1. 정치적 포획

    • 닉슨의 재선 일정에 맞추어

      • 1971~72년 완화,

      • 1975년 재완화를 단행하며

    • 연준 독립성을 스스로 훼손하였다.

  2. 임금·가격 통제와의 결합

    • 임금·가격 통제가

      • 상대가격 신호를 파괴하고,

      • 품질 하락·공급 축소·암시장 확대를 초래하며,

      • “밀린 인상분”을 쌓아두었다가 통제 해제 후 인플레이션 폭발로 연결되는 메커니즘을 방치하였다.

  3. 오일쇼크 위에 겹친 왜곡 구조

    • 이미 왜곡된 가격체계 위에

    • 1차 오일쇼크가 얹히며

    • **“숨은 인플레 + 에너지 가격 급등”**이 동시에 터지는 국면을 만들었다.

  4. 실질 마이너스 금리 방치

    • 1975년처럼 인플레이션 **11.8%**에 FFR **5.82%**를 용인하며,

    • 통화가치에 대한 신뢰를 구조적으로 훼손하였다.

따라서 번스의 패착을

“저금리를 잘못 썼다”


수준으로 요약하는 것은 지나치게 피상적이다.


본질은

정치–물가통제–오일쇼크–실질 마이너스 금리가 한 세트로 작동하며
시장 가격 메커니즘을 무너뜨린 것

이다.


8. 케빈 해셋–트럼프 2기와 1970년대: 공통점과 구조적 차이


이제 현재의 논의로 돌아간다.
트럼프 2기 하에서 케빈 해셋이 차기 연준 의장으로 거론되면서,
시장에서는 **“트럼프 친화적 저금리 → 번스 시즌 2”**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분명히 닮은 점도 있다.

  1. 대통령과의 밀착 관계

    • 번스가 닉슨의 “경제 참모” 출신이었듯,

    • 해셋 역시 트럼프의 오랜 경제 자문역으로, 낮은 금리에 우호적인 인물로 평가된다.

  2. 시장 우려의 초점도 ‘독립성’

    • 채권·주식 시장이 우려하는 지점도
      **“연준이 정치 일정에 종속되는 것 아니냐”**는 부분이다.

그러나 구조적으로 다른 점이 세 가지 있다.


8-1. 인플레이션 수준·기대의 차이

  • 1970년대에는 인플레이션이

    • 상시 5~10%대,

    • 때로는 10%를 넘어가는 수준까지 고착되었고,

    • “언젠가 2%대로 복귀한다”는 신뢰가 사실상 사라져 있었다.

  • 반면 현재는

    • 팬데믹·공급망 충격 이후 높은 물가를 경험했지만,

    • 대체로 3% 전후에서 정체된 고물가라는 평가에 가깝고,

    • 중앙은행의 2% 물가안정 목표가 제도적으로 붕괴된 상황은 아니다.


8-2. 임금·가격 통제의 부재

  • 현재 미국에서 닉슨 시기처럼

    • 모든 임금·가격을 동결하거나,

    • 위원회가 인상 허용 범위를 정하는 전면적 물가통제를 도입하자는 정치적 합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 오히려 1970년대의 경험 때문에

    • **“가격통제는 숫자만 예쁘게 만들고, 실물경제는 망가뜨린다”**는 교훈이 광범위하게 공유되어 있다.

즉, 번스 시절과 같은 방식으로 시장 가격 메커니즘을 깨뜨릴 가능성은 역사적으로 상당히 낮다는 점이다.


8-3. 에너지·오일쇼크 구조의 차이

  • 1970년대에는

    • 미국이 에너지 수입에 크게 의존했고,

    • OPEC이 공급을 죄는 순간

    • 미국은 거의 속수무책에 가까운 상태였다.

  • 지금은

    • 셰일혁명 이후 미국 자체의 생산 능력이 크게 확대되었고,

    • OPEC+도 2027년부터 **최대 지속가능 생산능력(MSC)**을 기준으로 한 쿼터 시스템을 도입하며
      생산능력 확대 유인을 주는 구조로 이동 중이다.

물론 지정학적 충돌로 유가가 다시 급등할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그러나 1970년대식 구조적 에너지 종속 + 가격통제 + 오일쇼크의 3중 조합
그대로 재현될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8-4. 트럼프 2기 정책조합: 포드·레이건과의 유사성


한편, 트럼프 2기의 정책 조합을 보면 오히려

  • **관세·세제 조정(부분적 환급·감세)**을 통한 소비·투자 유인,

  • AI·디지털 인프라 분야 규제완화를 통한 공급 측 강화

등에서 포드–레이건 시기와 유사한 측면이 뚜렷하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소비·투자 활성화,
중장기적으로는 잠재성장률 제고에 기여할 수 있는 조합이다.

따라서, 케빈 해셋이 트럼프 기조에 맞춰

  • 기준금리를 중립 수준보다 다소 낮추고,

  • 일정 수준의 유동성을 공급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 임금·가격 통제,

  • 에너지 공급충격,

  • 실질 마이너스 금리의 장기 방치

와 결합하지 않는 한,
1970년대식 대침체를 그대로 복사해낼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보는 편이 합리적이다.


9. 결론: “금리 인하 = 번스 시즌 2”라는 단순 도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찰리 멍거의 말처럼,

“역사를 공부하지 않으면 평생 아이처럼 살 수밖에 없다.”


1970~80년대 미국의 금리·물가·성장률을 연도별로 함께 놓고 보면, 다음과 같은 교훈이 도출된다.



  1. 번스의 실패는 저금리 자체가 아니라, 나쁜 조합의 산물이었다.

    • 정치 개입,

    • 임금·가격 통제,

    • 오일쇼크,

    • 실질 마이너스 금리.
      이 네 가지가 동시에 작동하며 시장 가격 메커니즘을 무너뜨렸다는 점이 핵심이다.

  2. 볼커의 성공은 “높은 금리” 그 자체보다 “정책 일관성과 신뢰 회복”에 있었다.

    • 두 번의 경기침체를 감수하면서도 인플레이션 기대를 확실히 꺾었고,

    • 그 위에서 레이건–그린스펀의 규제완화·구조조정이 골디락스를 만들었다.

  3. 현재 케빈 해셋 리스크의 본질은 ‘금리 수준’보다 ‘연준 독립성’에 가깝다.

    • 인플레이션 수준, 에너지 구조, 물가통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 모두가
      1970년대와는 크게 다르다.

결과적으로,

“해셋이 금리를 내리면 아서 번스의 악몽이 재현된다”


는 단순 도식은,

 역사적 맥락과 정책 조합을 과도하게 축약한 해석에 가깝다.


우리가 봐야 할 것은

  • 금리 자체보다 정책의 일관성과 연준의 독립성,

  • 정부의 가격·임금 개입 여부,

  • 에너지·공급 측 구조,

  • 통화·재정·규제의 조합 전체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케빈 해셋이 기준금리를 인하하더라도
1970년대식 대침체를 그대로 우려하는 것은 아직까지 “기우”에 더 가까운 판단이라고 보는 편이 합리적이다.


글을 마치며: 한국 부동산 규제와 닉슨식 가격통제의 데자뷔


흥미롭게도, 지금 한국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각종 부동산 규제는, 과거 닉슨 행정부가 실시했던 가격통제 정책과 구조적으로 더 유사한 측면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강한 규제를 통해 표면적인 주택가격 상승을 억누르고 있지만, 실제로는

  • 주거비 상승 압력,

  • 원·달러 환율 상승에 따른 수입물가 상승,

  • 노란봉투법을 포함한 노동 규범 변화와 최저임금 인상

여러 요인이 통계에 온전히 반영되지 않은 숨은 인플레이션 요인으로 축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인들은 전반적인 인플레이션을 자극해 실질금리를 마이너스 영역으로 밀어 넣을 수 있고,
향후 토지거래허가제와 같은 규제가 해제되는 시점에는 그간 풀려 있던 유동성과 통화량이 한꺼번에 부동산 시장에 반영되면서,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는 그림이 오히려 더 설득력 있는 시나리오로 보이기도 한다.


과거 닉슨–아서 번스 시기의 교훈은 결국 한 가지로 정리된다.

“가격을 억누르는 것만으로 인플레이션이 사라지지 않는다.”


숫자를 예쁘게 만들기만 하는 정책들은 리처드 닉슨 행정부 시절처럼 언젠간 탄로날 뿐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