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19일 수요일

생각정리 121 (* ABF)

최근 계속해서 반도체 기판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ABF 기판에 흥미로운 지점을 발견해, 관련 내용을 정리해 두고자 한다.

특히 AI D/C용 CPU·GPU·ASIC 바로 아래에 위치하는 이 기판이 왜 이렇게 중요한지, 그리고 그 핵심 소재인 ABF 필름을 일본 아지노모토가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는 구조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1. ABF는 기판 이름이 아니라 필름 소재의 상표명이다


먼저 용어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ABF 기판에서 ABF는 기판 이름이 아니라 소재 이름, 더 정확히는 상표명이다.

ABF는 Ajinomoto Build-up Film의 약자로, 일본 아지노모토 파인테크노가 개발한 **빌드업 절연재(레진 필름)**의 브랜드이다. 이 필름을 여러 층으로 쌓아 올린 뒤 그 위에 구리 배선을 형성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ABF 계열 FCBGA 기판이 된다.


https://www.ajinomoto.com/ko/innovation/our_innovation/buildupfilm


https://www.ajinomoto.com/ko/innovation/our_innovation/buildupfilm

구조를 단순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아지노모토: ABF라는 **소재(빌드업 필름)**를 공급하는 업체

  • 기판사들: 이 소재를 구매해 가공하여 **ABF 기판(FCBGA 등)**을 제조하는 업체

즉, 지금 우리가 보는 서버·AI용 CPU·GPU·ASIC 패키지의 베이스에는 거의 예외 없이 ABF 계열 FCBGA가 깔려 있고, 그 기저에는 늘 아지노모토의 필름이 놓여 있는 구조이다.


2. ABF 기판사 시장 구조: 과점이지만 소재는 사실상 단독 공급


기판사 시장부터 보면, 글로벌 ABF 서브스트레이트 시장은 상위 몇 개 업체에 강하게 집중된 과점 구조이다.

여러 시장조사 자료를 종합하면:

  • 상위 5개 업체(Ibiden, Unimicron, Nan Ya PCB, Shinko, AT&S)가 전체의 약 70~75%

  • 상위 8개(여기에 Samsung Electro-Mechanics, Kinsus, Kyocera 추가)까지 포함하면 80% 이상


그 중에서도 Unimicron은 단일로 **약 20% 초반(21~22% 수준)**을 점유하며 1위를 차지하고,
Ibiden, Nan Ya PCB(NYPCB), Shinko, AT&S가 각각 10% 안팎을 나눠 가지는 그림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삼성전기, Kinsus, Kyocera 등은 나머지 약 20% 안팎을 분할하고, 그 외 중소 기판사들의 비중은 한 자릿수로 제한된다.

따라서 현실적으로는

Unimicron이 1위(20%대), 그다음 일본(이비덴·신코)과 대만(NYPCB, AT&S)이 2~5위권을 형성하고, 나머지를 한국·대만 업체가 나눠 갖는 고집중 시장”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흥미로운 점은, ABF 기판사는 과점인데 정작 그 기판의 기반이 되는 ABF 소재(빌드업 필름)는 아지노모토가 사실상 100% 독점하고 있다는 구조이다. 이 “위는 과점, 밑은 독점”이라는 구조가 매우 인상적이다.


3. 왜 ABF 소재는 사실상 아지노모토 독점인가?


핵심 요지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원천 개발 + 특허/레진 포뮬레이션 기술

  2. 수십 년 누적된 공정·신뢰성 노하우

  3. CPU/GPU 생태계 전체에 박힌 Design-in 효과와 높은 전환비용

3-1. 아지노모토의 원천 기술과 특허


ABF는 이름에서 드러나듯이, 1990년대 아지노모토가 독자 개발한 전자용 에폭시/필러 조성 기반 빌드업 필름이다.

1999년 한 대형 반도체 업체의 CPU용 서브스트레이트에 처음 채택된 이후, **고성능 CPU용 빌드업 절연재의 사실상 업계 표준(de facto standard)**로 자리 잡았다.

초기 핵심 특허들은 시점상 상당 부분 만료되었을 가능성이 크지만,

  • 레진 조성

  • 필러 선택 및 분산 기술

  • 필름 제조 공정

  • 가공성(레이저 드릴링, 도금, 현상·에칭 공정 적합성)


등과 관련된 개량 특허와 공정 노하우는 여전히 축적되고 있다.

특히 “어떤 조성·비율·공정 조건에서 원하는 수율과 신뢰성이 나오는가”라는 레벨의 노하우는 문서(특허)만 보고 따라잡기 어렵다.

3-2. 거의 100%에 가까운 점유율과 누적 데이터

아지노모토는 자사 자료에서 **“주요 PC용 고성능 CPU에 쓰이는 절연 필름 시장에서 점유율 거의 100%”**라고 표현하고 있으며,
외부 자료에서도 ABF 필름의 시장점유율을 95~100% 수준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이 정도 수준의 독점에 가까운 상태가 수십 년간 지속되다 보니,

  • 기판 제조 공정(레이저 가공, 도금, 현상·에칭 조건)

  • 설계 툴에 들어가는 유전율·손실(Dk, Df), CTE, 흡수율 등의 모델 파라미터

  • 인텔, AMD, 엔비디아 등 주요 고객사의 신뢰성/내환경 평가 데이터

가 전부 ABF를 전제로 쌓여 있다.

새로운 필름으로 바꾸려면 이 모든 것을 다시 검증해야 하며, 이는 곧

“공정 재설계 + 신뢰성 재검증 + 수율 리스크”


라는 큰 리스크와 비용으로 귀결된다. 이 때문에 기판사·반도체 회사 모두 쉽게 소재를 바꾸지 못하는 구조가 형성된다.


3-3. 경쟁사는 없는가?


경쟁 시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 해외: Sekisui Chemical, WaferChem, Taiyo Ink 등이 ABF 유사 빌드업 필름에 도전

  • 한국: 동진쎄미켐(DJBF), LG화학 등이 국산 대체재 개발 진행


하지만 글로벌 시장 점유율 측면에서 보면, 아지노모토 외 경쟁사들의 합산 비중은 1~2% 수준으로 평가되는 경우도 있다.

국내 업체들의 경우 기술 개발은 상당히 진척된 것으로 보이나, 양산성·대형 고객사 퀄 통과가 여전히 관건이다.

정리하면, 단순히 “특허 때문에 아무도 못 만든다”기보다는

  • 아지노모토가 처음부터 CPU용에 최적화된 조성·공정을 구축했고

  • 그 위에서 수십 년간 고객사와 함께 공정·신뢰성 데이터를 축적하며 락인을 만들었고

  • 이제는 다른 소재로 교체하려면 공정 재설계, 신뢰성 재검증, 수율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

이라고 보는 편이 현실적이다.

 즉, ‘만들 수 있는 것’과 ‘대형 CPU/GPU에 실제 채택되는 것’ 사이의 갭이 크며, 아지노모토는 후자의 진입장벽을 쌓아 올린 것이다.


4. 식품회사 아지노모토가 IT H/W의 핵심으로 들어온 의미


아지노모토는 본업이 식품회사이며, 아미노산·조미료 등에서 출발한 기업이다. 동시에 소재 연구개발에 강점이 있었고, 이러한 역량이 ABF라는 신물질 개발로 이어지며 IT 하드웨어 쪽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였다.

지금은 Tech Migration(선단 공정 미세화)의 물리적 한계가 점차 드러나고, 그 대안으로 첨단 패키징의 중요성이 급격히 부각되는 시점이다. EMIB, Foveros, CoWoS, SoIC 등 첨단 패키징이 변화할 때 가장 먼저 적용되는 영역이 서버/AI용 CPU·GPU·ASIC 패키지이고, 이 패키지의 베이스는 거의 항상 ABF 계열 FCBGA이다.

결국,

“이 중요한 패키징 변곡점의 한가운데, 그 핵심 소재를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회사가 일본의 식품회사 출신 아지노모토이다”

라는 사실 자체가 구조적으로 매우 흥미롭다.

https://www.ajinomoto.com/ko/innovation/our_innovation/buildupfilm
ABF 개발과정


Ajinimoto 전체사업 내에서도 변방에 있던 ABF가 기여하는 기대이익도 상당히 높아진 수준 



5. 진짜 강한 기술 해자는 어디서 나오는가: 장비보다 소재, 특허보다 노하우


일반적으로 기술장벽은 해자 중에서 그리 깊지 않은 편으로 평가되곤 한다.
그러나 실제 가장 강력한 기술 해자는 장비사보다는 『Apple In China』 에서 언급했듯 공정 그 자체 내 내재되어 있거나 혹은 소재사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TSMC 세계 1위의 비밀』 관련 내용을 보며 인상 깊었던 부분이 하나 있다.
TSMC는 **“정말로 우리만 할 수 있는 기술”**에 대해서는 굳이 특허를 내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 특허를 낸다는 것은 곧 기술의 핵심이 세상에 일정 부분 공개된다는 뜻이고

  • 이는 언젠가 누군가에게 따라잡힐 수 있다는 반증일 수 있다

반대로, 타사가 쉽게 모방할 수 없는 공정 노하우는 특허로 남기기보다는 회사 내부의 ‘금고’에 넣어두는 것이 더 안전한 자산이 될 수 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최선단 기술 변화를 따라가야 하는 소재 회사들, 특히 반도체·디스플레이·패키징 등에서 전방 고객사의 까다로운 spec 변화를 장기간 맞춰 온 업체들의 경쟁력은 결국

“수년~수십 년에 걸쳐 전방 최선단 Tech 업체와 함께 쌓아 올린 공정·신뢰성 데이터, 그 과정에서 쌓인 레시피, 제조 노하우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한 레시피(조성비) 이상의 축적된 경험 데이터와 피드백 루프이며, TSMC의 “굳이 특허를 낼 필요가 없는 공정 노하우”와 비슷한 결의 자산이라고 느껴진다.

고객사 입장에서는 시간이 흐를수록

  • 새로운 공급사로 전환할 때의 스위칭 리스크와 비용이 커지고

  • 기존 공급사와 축적된 설계·검증 데이터, 생태계 락인 효과는 점점 더 두터운 해자로 굳어진다.

ABF 소재 시장에서의 아지노모토는 이런 구조를 전형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6. AI DC 고집적·고전성비화와 소재사의 프리미엄화


최근 국내 소재·기판사 NDR 등을 들으며 흥미로웠던 점은,
AI Data Center(AIDC)가 점점 고집적화·고전성비화되면서 소재·부품에 요구되는 환경이 갈수록 가혹해지고 있다는 대목이다.

  • AIDC 업체들의 SPEC 요구 조건이 점점 까다로워지고

  • 이를 맞추기 위해 소재·부품사들도 고객 맞춤형 커스터마이징을 강화하게 되며

  • 그 결과 일부 소재·부품은 ASP와 마진이 올라가는 프리미엄 영역으로 이동한다.

이러한 변화는 보통 시장을

  • 범용(Commodity) 영역

  • 프리미엄(High-end, 커스터마이즈드) 영역


으로 양분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여기서 범용 소재사는 부가가치가 낮고 대체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매년 CR 압박에 시달리는 반면,
전방 AIDC사의 까다로운 SPEC 요구를 만족시키며 살아남은 일부 프리미엄 소재사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단가와 마진을 올려받을 유인이 생긴다.

더 나아가, 이러한 프리미엄 소재사는

  • 축적된 공정·신뢰성 데이터가 고객사 입장에서는 곧 스위칭 전환 비용으로 작동하고

  • 시간이 흐를수록 이 데이터가 생태계 락인 효과를 강화하며

  • 궁극적으로는 기술장벽이자 경제적 해자로 굳어진다.

ABF-아지노모토 사례는 이러한 메커니즘을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소재 해자의 전형적인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7. 마무리: 왜 더 파볼 만한 주제인가


정리하면,

  • ABF 기판 시장은 상위 5개 업체(이비덴, 유니마이크론, NYPCB, 신코, AT&S)가 전체의 70~75%를 차지하는 고집중 과점 시장이며, 그 중 유니마이크론이 약 20%대 점유율로 1위이다.

  • 그러나 그 위에 올라가는 ABF 소재(빌드업 필름)는 아지노모토가 95~100% 수준으로 사실상 독점하고 있고,

  • 이는 단순 특허가 아니라 레진 조성·필러·필름 제조·가공성·신뢰성까지 이어지는 화학·공정 노하우와, 그 위에 쌓인 막대한 설계·검증 데이터와 생태계 락인이 만들어 낸 결과이다.


결국, 전방 Tech 변화에 따라 SPEC이 끊임없이 바뀌는 환경에서, 그 요구를 가장 잘 따라가며 신뢰성 데이터를 축적한 일부 소재사들이 어떻게 해자를 두텁게 만들어 가는가라는 관점은 앞으로도 충분히 더 파볼 만한 주제라고 생각한다.

ABF와 아지노모토 사례는 그 중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예시이고, 향후 AI 패키징·기판·소재 구조를 볼 때 좋은 기준축이 되어 줄 수 있는 듯하다.

=끝

댓글 2개:

익명 :

몇년전에 ABF 조사하면서 미원의 원조 회사이기도한 아지노모토 회사에 대해서 알아본적이 이는데 이글을 보니 반갑기도 하거니와 "해먹는 놈이 계속 다 해먹는다"라는 제 생각과 비슷하신것 같아 씁슬합니다. 별개로 장기적으로 우리가 만들어가야 하는 한일 공동 연합의 필요성의 한 예라고 생각합니다.

나만의자유 :

댓글 감사합니다.

미원,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니 반갑네요.

재무구조가 워낙 우량했고, 일찍부터 자사주 매입 후 소각으로 주주가치 환원의 모범을 보여줬던 기업으로 기억합니다.

예전에 공부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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