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29일 수요일

생각정리 105 (* Apple in China)


2010년 후반부터 나는 거대한 중국 시장에 대한 막연한 기대 속에서 여러 중국 기업을 공부하며 투자했으나, 결과는 기대와 달랐다.

그간 중국투자로부터 손실만 다 합해봐도 아파트 평수를 조금 더 넓힐 수 있었던 정도이지 않을까 하며 중국투자 손실로 인해 와이프한테 가끔씩 혼나고있다. 

투자했던 중국 기업 실적은 개선되는데 주가는 반대로 흘러가는 괴리
를 견디기 어려웠고, 무엇인가 잘못되고 있음을 인지했음에도 손쓸 수 없었던 무력감과 스트레스만이 기억에 남았다. 이런 실패의 기억 때문인지 『Apple in China』를 단숨에 읽어나가며 내용이 유독 생생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결론에 이르렀다. 그때 중국에 투자하고 싶었다면 애플을 샀어야 했다. 미국의 자본주의 시스템과 중국의 값싼 노동·거대 소비시장 사이에서 가장 많은 과실을 취한 주체는 단연코 애플이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투자자로서 미흡함이 많음을 인정하게 되었고, 아래는 그동안 잘못 인지했거나 놓치지 말았어야 할 쟁점을 정리한 것이다.

1.

첫째, 중국 기업의 이윤 인식이다. 그들은 단기 이익 극대화보다 장기 경쟁우위의 축적을 우선했다. 납품단가를 낮춰 물량을 더 확보하면 공산당으로부터 더 많은 무상 토지·보조금·저렴한 노동을 배정받을 수 있었고, 추가로 대량·고품질 생산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애플의 최고 엔지니어링을 현장 학습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기에 그들은 이윤을 남기지 않으려 했다.

“인민을 위한 기업”은 구호에 불과했고, 실제로 중국 공산당은 애플에게 노동운동을 신속히 진압·은폐해 주는 환경을 제공했다. 애플도 이를 알고 내부 보고서를 작성했으나, 분기 실적이라는 현실 앞에서 불편한 사실은 종종 후순위로 밀리거나 은폐되었다. 

나아가 시진핑 집권 이후 민간기업가를 체제 안으로 편입하려는 흐름까지 감안하면, 중국에서의 이윤 추구는 더욱 제약되고, 역설적으로 ‘돈을 못 버는 기업’이 정치적 안전과 후원으로 연결되어 시장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는 현상이 지속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이런 태도는 사고의 프레임 차이로도 설명된다. 빠르게 치고 빠지며 작은 전투의 합으로 승리를 도모하는 서구의 ‘체스’식 접근과 달리, 중국은 전체 판세를 보고 수읽기와 포석·집 모양을 중시하는 ‘바둑’식 접근에 가깝다.

미국이 단기 이익과 상황 대응의 유연성을 중시한다면, 중국은 느리지만 단단하게 대마를 지키고 상대의 호흡을 말리는 장기적 수순을 선호한다. 결과적으로 단가 인하—물량—정책 지원—현장 학습—경쟁우위 축적으로 이어지는 장기 루프가 형성되고, 이것이 단기 이익의 희생을 감수하는 전략적 합리성으로 정당화되는 것이다.


2.

둘째, 세대 단층이다. 문화혁명을 겪은 35세 이상 세대가 지시 중심·폐쇄적 사고를 보이는 동안, 그 아래 세대는 아이디어에 개방적이고 자기결정적 태도를 보였다. 2000년대 젊은 기술자들은 20년을 거쳐 오늘날 차·부장급 핵심 인력으로 성장했다. 이들의 자신감과 숙련이 지금의 기술공화국 중국을 움직인다. 이는 기술 인력 선호가 약화되는 한국의 흐름과 대조적이며, 한중 기술격차 확대에 대한 우려를 남긴다.


3.

셋째, 애플의 문화와 그 대가다. 핵심 엔지니어 다수가 잦은 중국 출장과 과중한 업무로 가정 붕괴와 건강 악화를 겪었다. 세계인의 생활을 바꾼 애플 혁신은 단순히 겉으로 포장된 스티브 잡스의 번뜩임이 아니라, 현장에서의 애플 엔지니어들과 중국 엔지니어들의 고난의 행군이 구체화한 결과였다.

이 맥락에서 주 52시간제가 한국의 제조 기반 혁신과 어떤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지 고민이 깊어진다. 노동권 보호는 필수이나, 현장 학습과 문제 해결의 누적이 혁신의 본질이라는 사실 또한 부정할 수 없다.


4.

넷째, 진정한 승자는 중국이라는 통찰이다. 서방은 중국을 단순 조립기지로 과소평가했지만, 중국은 의도적으로 가공마진을 낮추는 대신 효율·물량·기술습득을 극대화했다. 아이폰의 고부가가치는 완제품보다 공정·설비·노하우에 숨어 있었고, 그 축적이 제조 인프라와 숙련을 키웠다. 애플이 공급망을 다변화하려 해도 실질적 가치사슬의 상당 부분이 중국에 연결된 현실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동안 축적된 역량은 화웨이·BYD·샤오미 등으로 확산되며 중국 제조업 전반의 인적 자본이 되었다.

이 흐름은 과거 “저부가 위탁생산”으로 치부되던 영역이 어떻게 고부가 가치사슬의 중심으로 전환되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대만 TSMC와 파운드리 생태계가 ‘제조=저부가’라는 통념을 뒤집으며 고부가 산업으로 변모한 과정과 정확히 궤를 같이하며, 

동시에 현재 대한민국의 SEC의 파운드리 생태계가 왜 TSMC와의 격차를 좁힐 수 없는지에 대한 고찰의 시작점이 될 수도 있겠다.


5.

다섯째, 스마일이론의 재해석이 필요하다. 우리는 오래도록 제품 생애주기를 **설계·디자인(고부가) → 제조(저부가) → 유통·마케팅(고부가)**라는 곡선으로 당연시해 왔다. 그러나 **중국의 입장에서 애플과의 관계를 읽어내면 실질적 부가가치의 원천은 오히려 ‘제조’**였다. 낮은 단가를 감수하는 대신 라인 레이아웃, 공정 최적화, 장비 개조, 공정 간 동기화현장 기술의 집적을 통해 학습 속도를 기하급수적으로 가속했고, 그 결과 **원가·품질·납기(QCD)**가 동시 개선되었다. 이 과정에서 축적된 암묵지는 설계·브랜딩 못지않은 진입장벽이 되었고, 장비 내재화·부품 현지화·공정 표준의 자국화로 이어지며 스마일곡선의 ‘바닥’을 ‘고부가 지대’로 전환시켰다. 중국은 바로 이 지점에서 애플로부터 실질적 이익을 편취했고, 그 이익은 재무제표의 마진이 아니라 생태계 지배력으로 남았다.


6.

여섯째, 중국의 붉은 공급망의 완성이다. 애플뿐 아니라 지멘스·폭스바겐 등 서방 기업도 **합작(JV)**을 통해 기술과 경험을 내주었고, 국가는 이를 정책적으로 묶어 초효율적 생산 생태계로 고도화했다. 서방이 “자본주의가 퍼지면 민주주의도 자연스래 따라온다”는 안일한 관념으로 접근할 때, 중국은 이를 역이용해 투자 유치·안보식별 약화·기술 축적을 동시에 달성했다. 중국은 JV 합자회사를 권할때 서로 윈윈을 말했으나, 뒤로는 윈윈이란 **“중국만이 두 번 이긴다”**는 인식이 자리했던 것이다.

한편 **‘두 개의 인도’** 책 내용에서 보여주듯, 인도는 공식·비공식 경제의 이중구조, 주(州)별 규제·노동제도의 파편화, 토지·전력·물류 인프라의 불균등, 그리고 2·3차 밸류체인과 장비·부품·숙련 인력 클러스터의 밀도 부족 탓에 중국을 단순 대체하기 어렵다. 중국이 행정 일관성—보조금·토지의 신속 집행—초대형 제조 클러스터—공정 간 동기화—현장 학습의 가속 루프로 구축한 붉은 공급망의 깊이와 속도에 비해, 인도의 강점은 크더라도 학습·축적의 기하급수적 효과를 즉시 재현하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결국, 인도 비교는 오히려 중국 공급망의 구조적 우위를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무엇보다 인도인은 중국인만큼 배우려는 의지가 강하지 않다는 과거 애플 엔지니어의 언급도 절대 간과해선 안되지 않나 싶다. 


7.

일곱째, 이익보다 권력의 논리다. 많은 산업이 공산당 지원 없이는 존립하기 어려운 구조였고, 지방 간부의 성과 체계와 맞물린 기업은 무상 토지·보조금으로 단숨에 생존에서 우위로 도약했다. 기업의 성패는 재무제표만이 아니라 정치적 연계와 조달 구조에 좌우되었다. 애플 물량을 더 따내 일자리와 지역경제에 기여하는 기업은 제도적 보상을 받았고, 이 규범이 지금까지 이어져 저가 물량공세와 원가 절감이 중국 전반의 산업의 표본으로 굳혀진것이다. 


8.

여덟째, 중국 소비시장의 심리다. 2000년대 낮은 소득에도 아이폰이 불티나게 팔린 배경에는 차별화 욕구, 타인의 욕망 모방, 자아의 재화 위탁 같은 심리가 중층적으로 작동했다. 당시 중국은 자본주의에 사실상 무방비였고, 이후 개선되었다고 하더라도 일단 한번 자리잡은 소비의 관성은 강하다. 명품 소비의 구조는 크게 변하지 않았고, K-뷰티·K-엔터가 이 지점을 정교하게 파고들 여지는 여전하다.


종합

종합하면, 이 책은 중국의 붉은 공급망이 애플을 매개로 어떻게 형성·고도화되었는지 현장감 있게 보여준다. 『화웨이 쇼크,『TSMC 세계의 비밀』과의 연결로 보면, 동아시아 제조역량의 큰 축은 미국의 기술·자본에서 기원해 일본부터 시작해 한국&대만을 거쳐 중국으로 옮겨간 것이다. 서방이 제조 역량이 없어서가 아니라 단순 노동을 담당할 인력·환경이 부족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 공백은 장기적으로 Physical AI가 메울 수 있으며, 그 경우 미국의 온쇼어링은 단기 제약에도 불구하고 구조적 가속이 가능하다고 본다. 같은 맥락에서 엔비디아의 대중 전략도 단기 매출을 넘어 현장 학습·생태계 포섭·표준 선점이라는 장기 편익을 겨냥한 선택으로 재해석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혁신은 설계실이 아니라 제조 현장에서 태어난다는 명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중국의 정치·산업·인재가 삼각 편제로 얽힌 붉은 공급망은 실재하며, 원가 경쟁으로 맞서는 제조 전략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경고가 분명해졌다.

나의 과거 실패는 가격·실적의 표면만 보고 권력·제도·현장 학습의 심층을 놓친 결과였다. 『Apple in China』는 그 빈틈을 메우는 결정적 단서를 제공했다. 이제 분명해졌다. 중국과의 단순 원가 경쟁은 답이 아니다. 피해야 한다. 

무.조.건.

동시에 중국 시장에서 사업을 영위하면서 중국 공급망에 의존하는 기업은 스스로 기업수명을 단축시키는 것과 다름없다.

이는 명백한 디레이팅 요인이다.

개인적으로, 현실 감각이 '0'에 수렴함을 넘어 마이너스 영역까지 가버린 좌파적 관념에 기울어 있는 국내 정·관계자들이 이 책을 꼭 읽어보았으면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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