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가에서 쉬고 있었다.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넘기다 말고, 옆방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가 났다.
꿲!
순간, 나는 그 소리를 아기새 울음으로 착각했다. 옆방 창가에 새가 둥지를 튼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새들이 창틀에 앉아 잠깐 쉬다 가는 걸 보기도 했으니, 괜히 마음이 앞섰다. 기대를 품고 옆방으로 달려가 창문을 열고 한참을 살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둥지는 없었다. 소리의 주인도 보이지 않았다.
다시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화면 속 영상은 계속 흘러가는데, 소리는 다시 끼어들었다.
꿲!
그리고 곧 연달아 이어졌다.
꿲! 꿲! 꿲!
거슬렸다. 그런데 그날의 나는 이미 지쳐 있었다. 회사에서 본가로 오는 길은 생각보다 길고 번거로웠다. 회사에서 역까지 최소 10분은 걸어야 했고, 지하철을 25분쯤 타고 내려 다시 3분을 걸어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쨍볕 아래서 10분쯤 버스를 기다렸다가 20분을 더 타고 내렸다. 4차선 횡단보도를 건너고, 언덕배기 길을 5분쯤 걸어 올라가 집에 닿으면, 마지막으로 엘리베이터도 없는 다세대주택 5층 계단을 올라야 했다. 그렇게 집에 도착하면 몸 안의 기력이 바닥나 있었다. 늘 그랬듯 씻고 눕는 순간 잠이 밀려왔다.
소리가 거슬리긴 했지만, 옆방에서 소리의 근원을 찾다 포기하고 결국 스르륵 잠에 빠져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현관 쪽에서 삐삐삐삒,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가 들어오시는 소리에 잠이 깼다. 나는 반쯤 감긴 눈으로 인사를 하고는, 아까부터 집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태연하게 대답하셨다.
“그거 귀뚜라미 소리야.”
귀뚜라미?
며칠 전부터 귀뚜라미가 집에 같이 살고 있었다고, 어머니는 아무렇지 않게 덧붙이셨다. 나는 왜 그걸 안 잡고 방치했냐고 반문했다. 그랬더니 어머니는 더 아무렇지 않게 말씀하셨다.
“그냥 냅두지 뭐.”
어머니는 장을 봐오셨는지, 이마트 야간 할인 초밥을 하나둘 냉장고에 넣고 계셨다. 그 모습이 너무 평온해서, 방금 들은 ‘귀뚜라미 동거’라는 말이 오히려 내가 과민한 사람처럼 느껴지게 했다.
그래도 확인은 해야 했다. 나는 눈을 비비며 옆방 불을 켰다. 그 순간 둥근 전등에 거뭇한 그림자가 비쳤다. 전등 위에 뭔가가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그 그림자가 다시 울었다.
꿲!
거기 있었다. 귀뚜라미가, 전등 위에서, 너무 당당하게.
나는 반사적으로 에프킬라를 집었다. 서둘러 분사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너무 오랫동안 안 써서였을까. 하얀 분무기 같은 것만 뿜어져 나왔다. 나는 미친 듯이 통을 흔들었다. 그리고 다시 쏘아댔다. 어머니는 초밥을 냉장고에 넣으며 그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귀뚜라미는 금방 죽을 줄 알았다. 그런데 죽지 않았다. 에프킬라를 뒤집어써도 멀쩡했다. 오히려 집안 구석구석을 펄쩍펄쩍 뛰어다녔다.
꿲!
나는 계속 쏘았다. 이리 뛰면 이리 쏘고, 저리 뛰면 저리 쏘았다. 어느새 거뭇하던 귀뚜라미는 에프킬라를 잔뜩 뒤집어쓴 하얀 귀뚜라미가 되어 있었다. 10분인지 20분인지, 시간 감각이 흐려질 만큼 난사하고 나서야 귀뚜라미의 활동성이 눈에 띄게 줄었다. 마침내 움직임이 멈췄다.
나는 앞 베란다에서 빗자루와 쓰레받이를 가져왔다. 최대한 멀찍이서, 귀뚜라미 시체를 쓸어 담으려는 순간이었다. 빗자루 끝이 닿자, 죽은 줄 알았던 귀뚜라미가 갑자기 펄쩍 뛰어올랐다.
나는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다시 에프킬라를 집어 들었다. 또다시 무한 난사가 시작됐다. 그렇게 한참을 더 난리법석을 떨고 나서야, 정말로, 완전히, 하얀 귀뚜라미가 멈췄다.
쓰레받이에 실어 들고 뒷산 쪽으로 창밖에 휙 던져버렸다. 그제야 숨이 나왔다. 방 안에는 알 수 없는 살충제 냄새가 떠돌았고, 나는 이상하게도 오늘 엄청 큰 일을 해낸 사람처럼 승리감에 젖어 있었다.
도대체 나는 어렸을 때 어떻게 저 징그러운 귀뚜라미를 맨손으로 잡고 놀았던 걸까. 기억 속의 나는 용감했던 건지, 아니면 그냥 아무것도 몰랐던 건지.
그날 밤, 다시 침대에 누웠다. 이제 조용하겠지 싶었다. 이제야 꿀잠을 잘 수 있겠다 싶었다. 눈을 감는 순간, 마음이 느슨해지며 잠이 내려앉는 순간—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어딘가에서, 다시 그 소리가 들렸다.
꿲!
그리고 한 번 더.
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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