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12일 수요일

이모저모

오늘 문득 이전 운용사에서 일하던 시절을 떠올렸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퇴사한 뒤 건너건너 들은 이야기로는 한 임원 운용매니저분이 사내 애널리스트 가운데 내 분석을 가장 마음에 들어 하셨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그분이 나를 유독 아껴주셨던 이유를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다.

내 전임자는 숫자에 기반해 천천히 추정하기보다는 정보를 빠르게 캐치하고, 그 정보를 활용해 트레이딩하는 스타일에 가까웠다고 들었다. 반면 그 임원 운용매니저분은 그런 방식을 썩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업계에서는 신입이나 어린 주니어 애널리스트가 들어오면 운용매니저들이 자신의 투자 스타일에 맞게 가르치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다는 말을 종종 한다. 그래서 가장 좋은 경우는 처음부터 자신과 사고방식이 맞는 주니어를 뽑는 것이라고 한다.

나에게는 공교롭게도 오래전부터 나름의 방식이 있었고, 이러한 내 방식을 위 운용매니저 분께서 상당히 마음에 들어하셨기에 채용된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갖게되었다.

처음 증권업계에 들어왔을 때 상사가 장난스럽게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회사가 그렇게 말하면 꼭 그렇게 다 믿어야 하냐?”

아마 그 말은 내가 지금까지 기업을 보는 방식에도 꽤 큰 영향을 남긴 것 같다.

나는 대학생 때부터 숫자를 가지고 혼자 추정해 보는 것을 좋아했다. 회사가 제시하는 숫자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전방산업과 후방 공급사, 경쟁사, 산업 데이터들을 하나씩 모아 맞춰 보는 작업이 재미있었다.

[편의점 사업] GS리테일
대학생때 갖고놀던 자료 중 하나

일종의 Mosaic Theory였다.

회사는 왜 이렇게 이야기하는지, 시장은 왜 그렇게 믿고 있는지, 그런데 그 설명과 숫자 사이에는 어떤 모순이 있는지 찾아보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돌아왔다.

“회사가 틀리고 내가 맞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가 충분히 강하다면 시장의 컨센서스와 다른 숫자를 만드는 데도 별다른 두려움이 없었다.

이런 작업은 이상할 정도로 내 기질과 잘 맞았다. 어쩌면 그 임원 운용매니저분이 나를 좋게 봐주셨던 것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느 날 아침 미팅에서 그분이 조금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내가 너희들에게 코멘트를 해주고 싶어도, 너희가 ‘회사가 그렇게 말하던데요’라고 하면 내가 할 말이 없다.”

잠깐 정적이 흘렀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내가 조금은 다르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나는 보통 회사의 말을 전달하기보다는 내가 직접 만든 추정치를 먼저 이야기했다. 왜 그런 숫자가 나오는지 공급망과 경쟁사, 산업 데이터를 이리저리 끌어와 설명했고, 그러다 보니 그분과 자연스럽게 논쟁도 많이 했다.

덕분에 코멘트를 많이 받을 수 있었고, 동시에 많이 배울 수 있었다.

물론 부작용도 있었다.

아침 미팅 시간 대부분을 나 혼자 잡아먹는 경우가 많았다.

미팅이 끝난 뒤에도 그 운용매니저분은 종종 내 earning model을 따로 요청했다. 나 역시 특별히 숨길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내가 만든 모델을 거의 모두 보내드렸다.

지금 생각하면 꽤 즐거웠던 시절이었다.

나는 지금도 주변 지인들이 요청하면 내가 만든 어닝모델을 대부분 공유한다. 이제는 단순히 어닝을 추정하는 것만으로는 특별한 알파를 만들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블로그에도 여러 분석 글을 비교적 자유롭게 공개하고 있다. 리서치의 내용이나 정보 자체를 남들보다 먼저 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지속적인 알파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정보를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그 정보를 어떻게 연결하고 해석해 투자 판단으로 전환하느냐에 있다고 생각한다.

(절대 개별종목 추천이나 권유를 일절 언급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근 들어서는 메모리와 IT 업계에서 기존 유력 정보기관들이 제공하는 정보의 질이 예전보다 상당히 떨어졌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그 빈틈을 파고들어 새로운 정보업체들이 빠르게 영향력을 키우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특별히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니다.

정보가 맞느냐 틀리느냐의 문제도 있지만, 요즘은 가끔 그 정보가 어떤 의도로 만들어지고 유통되는 것인지부터 의심하게 된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그런 정보를 받아들이는 시장의 방식이다.

특히 최근 메모리와 광학 인터커넥팅 시장을 보고 있으면 이런 생각이 강해진다.

CPO가 늦어진다는 이야기, Micron이 NVIDIA HBM4 qualification에서 탈락했다는 이야기, Vera SOCAMM2의 메모리 사양이 줄어든다는 이야기, Rubin Ultra의 HBM content가 낮아진다는 이야기.

하나의 뉴스가 나올 때마다 시장은 그것을 거의 자동적으로 AI 인프라 수요 둔화라는 결론으로 연결한다.

그 과정에서 SemiAnalysis의 공급망 정보가 시장의 내러티브를 만드는 데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최근 몇 달 동안 공개된 NVIDIA, Micron, Coherent, Lumentum의 발표들을 하나씩 맞춰 보면서 오히려 반대의 생각을 하게 됐다.

Spec Down과 Demand Down은 같은 말이 아니다.

오히려 AI 시스템이 너무 빠르게 확대되면서 메모리와 광학 부품의 공급능력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고, NVIDIA가 제한된 자원을 더 많은 시스템에 나눠 넣기 위해 시스템 구조를 계속 최적화하고 있는 것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SOCAMM2가 대표적인 사례다.

Vera의 메모리 content가 줄어든다는 뉴스만 보면 메모리 수요가 감소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공급 가능한 LPDRAM 자체가 NVIDIA가 필요로 하는 물량에 크게 못 미친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한 시스템에 들어가는 메모리를 줄이는 대신 더 많은 시스템을 생산하는 선택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봐야 하는 것은 단순한 시스템당 메모리 양이 아니다.

Total Memory Bit Demand = System Shipment × Memory Content per System

이다.

Memory Content per System이 떨어져도 System Shipment가 그보다 더 빠르게 증가하면 전체 memory bit demand는 오히려 커진다.

Rubin Ultra의 HBM 사양과 관련된 이야기 역시 비슷하게 보고 있다.

HBM content per GPU가 줄었다는 이야기만 놓고 보면 HBM TAM이 줄어드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HBM 공급 부족 때문에 GPU당 탑재량을 낮추고 그 대신 생산 가능한 GPU 수를 더 늘리는 것이라면 인과관계는 정반대가 된다.

Micron의 HBM4 이야기도 그랬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시장에서는 Micron이 NVIDIA qualification에서 사실상 탈락했고 Rubin 초기 HBM 시장에서 배제된다는 이야기가 꽤 강하게 돌았다.

그런데 이후 Micron은 HBM4가 high-volume production에 들어갔으며 Vera Rubin을 위해 설계됐다고 발표했고, 이후에는 lead customer platform을 대상으로 high-volume shipment가 진행 중이라고 다시 밝혔다.

최종 vendor allocation이 어떻게 될지는 나도 모른다.

다만 적어도 “Micron의 qualification이 실패했기 때문에 Rubin HBM 사업에서 사실상 탈락했다”는 식의 강한 주장을 그대로 base case로 유지하기에는 이후의 공개된 사실들이 잘 맞지 않는다.

CPO도 마찬가지다.

일부 architecture의 mass production 시점이 몇 분기 움직이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과 optical demand 자체가 약해지고 있다는 주장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NVIDIA는 이미 CPO 기반 제품의 production을 이야기하고 있고, Coherent와 Lumentum은 오히려 고객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capacity를 얼마나 빨리 늘릴 수 있느냐를 고민하고 있다.

NVIDIA가 Coherent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장기간의 구매 commitment와 생산능력 접근권까지 확보하는 행동 역시 나에게는 중요한 signal이다.

수요가 없어서 걱정하는 시장의 행동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래서 최근 여러 사건을 보면서 내가 내린 결론은 단순하다.

Architecture Change를 Demand Change로 번역해서는 안 된다.

AI 인프라처럼 공급 제약이 심한 시장에서는 오히려 수요가 너무 강하기 때문에 시스템당 component content를 낮추는 선택이 나타날 수 있다.

메모리가 부족하면 한 GPU에 들어가는 메모리를 줄여 더 많은 GPU를 만든다.

HBM이 부족하면 accelerator configuration을 바꿔 제한된 HBM을 더 많은 compute에 배분한다.

Copper I/O와 전력이 한계에 다다르면 optics와 CPO로 이동한다.

광학 부품의 생산능력이 부족하면 architecture와 ramp sequence를 조절하면서 동시에 laser와 InP capacity를 공격적으로 증설한다.

결국 중요한 인과관계는

Spec Down → Demand Down

이 아니라,

AI Demand ↑ → Supply Constraint ↑ → Per-System Spec Optimization → More Systems Shipped → Aggregate Demand ↑

일 수도 있다.

내가 SemiAnalysis의 분석을 모두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술적으로 배울 것이 많은 자료도 많다. 그들이 누구보다 빠르게 포착하는 공급망 정보 역시 분명 가치가 있다.

다만 문제는 특정 시점에 포착된 configuration change나 qualification 정보를 시장이 지나치게 높은 확신도로 최종 수요에 대한 결론으로 바꿔버린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헤드라인과 실제 causal driver 사이에는 생각보다 큰 거리가 있다.




최근 Alexandr Wang이 반복해서 이야기했던 자신만의 나침반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 유난히 머리에 남는다.

남들이 동의하지 않는 사실에 대해서도 스스로 충분히 검증했다면 자신의 판단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어쩌면 투자에서 중요한 것은 Consensus가 형성된 다음에 Conviction을 갖는 것이 아니라, Consensus보다 먼저 Conviction을 형성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고, 지금까지도 그런 방식으로 투자와 분석을 해왔던 것 같다.

그런데 최근 NVIDIA 젠슨 황의 한 인터뷰를 보다가 조금 다른 방향의 생각을 하게 됐다.

사회자가 AI 시대에 이제 무엇을 두고 똑똑하다, 지능이 높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는 취지의 질문을 던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젠슨 황의 답변이 꽤 오래 남았다.

AI 시대에는 정보와 지식 그 자체가 점점 값싼 commodity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느냐만으로 더 이상 지능이나 유능함을 정의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대신 다른 종류의 능력이 훨씬 중요해질 수 있다고 했다.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

사람들이 아직 보지 못하는 미래를 먼저 상상하는 능력.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데이터가 완전히 보여주기 전에 직감적으로 알아차리는 능력.

그리고 그 직감을 혼자 품고 있는 것이 아니라, 조직 안에서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소통하고 움직이게 만드는 능력.

정확한 표현은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받아들인 핵심은 대략 이랬다.

지식과 정보가 싸지는 시대일수록, 인간의 희소성은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공감, 직감, 상상력, 판단, 소통.

어쩌면 AI 시대의 intelligence라는 것은 이런 것들의 조합에 가까워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이야기를 듣고 조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가 이야기한 능력 가운데 몇 가지는 내가 중요하다고 믿어온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남들이 아직 보지 못하는 변화를 먼저 보는 것.

무언가 숫자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가지고 끝까지 파고드는 것.

시장과 회사의 설명 사이에서 잘못된 인과관계를 직감적으로 찾아내는 것.

그런 측면에서는 내가 지금까지 해온 일이 아주 틀린 방향은 아니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동시에 나머지 몇 가지가 묘하게 마음에 걸렸다.

공감과 소통.

그 순간 오히려 내가 부족한 지점이 좀 더 명확하게 보이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의심하는 일에는 익숙하다.

틀린 숫자를 찾는 것도 좋아하고, 남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전제를 뒤집는 것도 좋아한다.

요즘 가장 큰 희열을 느낄때는 이전에 믿었던 내 자신의 전제를 뒤집을때인것 같기도 하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쌓는 데도 꽤 많은 에너지를 쓴다.

그런데 그것을 다른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생각하는 능력은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것 같다.

상대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해하기보다 왜 틀렸는지를 먼저 찾았고, 어떤 말을 해야 상대방이 움직일 수 있을지 고민하기보다 내 논리가 맞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 더 집중했던 것 같다.

어쩌면 내가 그동안 Conviction이라고 생각해온 것의 일부는 분명 강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먼저 보는 능력만큼이나,

내가 본 것을 다른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로 전달하는 능력도 중요한 능력일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상대방의 감정과 생각이 어디에서 출발했는지를 이해하려고 해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공감과 소통 그리고 직감이라.

말로 쓰고 나니 더 난해하다.

숫자처럼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earning model처럼 셀 하나씩 뜯어보며 고칠 수도 없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래서 오히려 내가 앞으로 무엇을 개선해야 하는지는 조금 더 명확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최근에는 여기서 더 나아가 불편한 지점이 추가로 생겼다.

내가 가진 이 성향이 어느 순간부터 지나치게 냉소적인 태도로 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최근 아내에게도 몇 번 솔직하게 이야기했지만, 요즘의 나는 스스로가 점점 냉소적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특정 집단이나 패거리 문화에 대한 반감도 강해졌다.

사실 나와 직접적인 상관도 없는 사람들의 행동이나 특정 집단의 의견에 굳이 불편함을 느끼고, 마음속으로 비판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그것을 왜 굳이 입 밖으로 꺼내는가 하는 점이다.

그 순간에는 별 생각 없이 이야기하지만, 지나고 나면 스스로에게 불편함이 남는다.

왜 저 말을 했을까.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이 아니었을까.

(*이불킥)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에 왜 이렇게 많은 감정을 사용하는 것일까.

가끔은 이런 부정적인 감정의 근원에 내가 가진 강한 신념이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사실 이 자신감이 어느 순간 “나는 맞고 저들은 틀렸다”는 자만으로 미끄러지는 경계는 생각보다 얇다. 아니, 얇다기보다 거의 보이지 않는 선에 가깝다. 

투자에서는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해야 돈을 벌 수 있다. 이건 너무나 명확한 사실이다. 컨센서스를 의심하지 않으면 알파는 나오지 않는다. 모두가 같은 방향을 보고 있을 때, 그 반대편에 무엇이 있는지 끝까지 파고드는 집요함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불편한 데이터도 보고, 시장이 외면하는 숫자도 끌어와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습관이 사람을 대하는 방식까지 번져버릴 때가 있다. 그때부터는 문제가 생긴다.

사실을 의심하는 것과 사람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컨센서스를 의심하는 것과 사람 자체를 무시하는 것도 다르다.

내 분석에 대한 확신과, 타인을 쉽게 낮춰보는 태도는 전혀 같은 선상에 놓일 수 없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이 경계가 흐려진다.

“저 사람은 틀렸고 나는 맞다”가 아니라, “저 사람은 애초에 깊이가 없다”는 식으로 생각이 흘러가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이 제일 위험하다. 논리가 아니라 감정이 앞서기 시작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젠슨 황이 말했던 공감과 소통이라는 것이 어쩌면 바로 이런 지점에서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상대방의 의견에 동의하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내 Conviction을 버리라는 뜻도 아닐 것이다.

오히려 내가 틀렸을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 상대방이 그렇게 생각하게 된 맥락을 이해하는 것, 그리고 내 판단이 맞더라도 그것을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전달하는 것.

생각해 보면 이것도 꽤 고도의 intelligence일 수 있다.

숫자를 잘 맞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능력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쪽에서는 아직 많이 부족한 사람인 것 같다.

아마 내가 앞으로 계속 부딪히게 될 문제는 이 경계를 지키는 일이 아니라, 애초에 이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을 얼마나 빨리 자각하느냐일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분석 방식 자체를 버릴 생각은 없다.

회사도 의심하고, 시장도 의심하고, 전문가의 말도 끝까지 검증하는 태도는 여전히 필요하다. 그게 없으면 이 업계에서 살아남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그 의심이 사람을 향하는 순간, 모든 게 조금씩 망가진다.

의심은 사실과 구조를 향해야지, 사람의 수준이나 의도를 재단하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또 하나.

모든 생각을 굳이 말로 꺼낼 필요는 없다.

내가 옳다고 느끼는 것과, 그것을 반드시 타인에게 증명해야 하는 욕구 사이에는 생각보다 큰 간극이 있다. 예전에는 그 간극이 거의 없었다. 생각하면 말했고, 말하면 설득해야 한다고 믿었다. 지금은 그게 얼마나 소모적인지 조금씩 알게 된다.

(*이불킥)

어쩌면 성숙함이라는 건 생각을 약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강한 생각을 가지고도 그것을 어디까지 드러낼지 스스로 통제하는 능력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통제라는 게 과연 가능한 건지, 아니면 그냥 감정을 눌러두는 다른 이름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그래도 한 가지는 조금 알 것 같다.

공감은 Conviction의 반대말이 아니다.

타인을 이해하려고 한다고 해서 내 판단이 약해지는 것도 아니고, 말을 아낀다고 해서 내가 틀렸다는 뜻도 아니다.

오히려 정말 강한 Conviction이라면 모든 순간마다 그것을 증명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뭔가 마음속에 풀리지않은 응어리 답답함이 있어 적어봤다.

나중에 시간이 흘러 다시 읽어보면 뭐라도 느끼는게 있겠지 않나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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