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17일 목요일

생각정리 372(* Intelligence Is Abundant, Execution Is Scarce)

여러 커뮤니티에 올라온 Astra가 만든 결과물들을 지켜보면서 떠돌았던 아이디어들을 하나로 묶어서 정리 기록해본다.

모델의 희소성은 옅어지고, 데이터·실행·유통·물리적 인프라의 가치는 높아진다


최근 오픈웨이트 LLM의 재부상과 NVIDIA의 Hugging Face 인수 합의, 기업용 AI 서버 수요, OpenAI의 하드웨어 관련 인수 행보를 함께 보면서 지금까지 생각해왔던 AI 산업의 가치 이동 경로를 다시 정리해본다.

2024년 Llama가 처음 주목받았을 당시만 해도 앞으로는 오픈소스 또는 오픈웨이트 LLM이 시장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기업과 개발자가 모델을 직접 내려받아 자신의 데이터에 맞게 수정하고, 외부 모델 사업자에게 종속되지 않은 AI 환경을 구축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OpenAI와 Anthropic을 중심으로 한 폐쇄형 범용 모델의 발전 속도가 예상보다 빨랐다. 더 많은 컴퓨팅 자원과 우수한 연구인력을 보유한 프런티어 연구소가 몇 달 간격으로 모델 성능을 끌어올리자, 기업이 특정 오픈모델을 파인튜닝해 사용하더라도 곧 더 좋은 범용 모델이 출시돼 기존 투자가 무용해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오픈웨이트 모델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기업이 직접 모델을 구축하고 운영해야 할 경제적 유인은 한동안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최근 Astra와 같은 고성능 에이전트 모델이 등장하면서 이 흐름이 다시 바뀌고 있다.


1. Astra가 발전시킨 것은 폐쇄형 모델만이 아니다


Astra는 현재 가장 강력한 폐쇄형 프런티어 모델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Astra가 AI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OpenAI의 경쟁력 강화에만 머물지 않는다.

Astra와 같은 고성능 에이전트는 모델 개발자가 수행하던 다음 작업을 빠르게 자동화한다.

  • 데이터 정제와 합성데이터 생성

  • 파인튜닝 코드 작성

  • 모델 평가와 오류 분석

  • 추론엔진 및 하드웨어 최적화

  • 에이전트 하네스와 도구 연결

  • 기존 애플리케이션과의 통합

  • 새로운 기반모델로의 마이그레이션

  • 소프트웨어 개발·테스트·배포


과거에는 새로운 기반모델이 출시될 때마다 기업이 데이터셋을 다시 구성하고, 모델을 파인튜닝하며, 성능을 평가한 뒤 기존 시스템과 연결해야 했다. 이 과정이 너무 길고 비쌌기 때문에 기업은 편리한 폐쇄형 API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에이전트가 이 과정을 상당 부분 자동화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프런티어 모델 발전 → 모델 개발·통합 자동화 → 오픈웨이트 모델의 추격비용 하락 → 기업의 모델 교체속도 상승

Astra는 폐쇄형 모델의 해자를 높이는 동시에, 과거 프런티어 모델이 만들어낸 능력을 오픈 생태계로 이전시키는 확산장치로도 작동한다.

따라서 Astra 이후의 경쟁은 단순히 ‘폐쇄형 모델 대 오픈모델’의 승자독식 경쟁으로 보기 어렵다. 프런티어 모델이 새로운 능력을 먼저 만들고, 에이전트와 개발자 생태계가 이를 빠르게 복제·최적화·확산시키는 반복구조에 가깝다.

실제로 OpenAI는 Astra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뿐 아니라 웹사이트·게임·애플리케이션을 자연어에서 직접 구축하고 테스트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기존 모델보다 OSWorld 작업시간을 약 47% 단축했고, Sites를 통해 웹앱과 게임을 프롬프트에서 직접 만들 수 있는 단계까지 발전했다. OpenAI, GPT-6 Astra


2. 오픈웨이트의 부활은 성능보다 ‘교체비용 하락’에서 시작된다


Ollama CEO 인터뷰에서 가장 중요했던 부분도 오픈모델의 절대적인 성능만은 아니었다.

핵심은 기업이 오픈모델을 도입하고, 새로운 모델로 교체하며, 실제 업무에 연결하는 비용이 빠르게 내려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학습·평가·마이그레이션 과정이 자동화되면서 새로운 기반모델로 이동하는 시간이 크게 단축되고 있다. 오픈모델의 발전주기는 짧아졌지만, 역설적으로 기업이 그 발전주기를 따라갈 수 있는 능력도 함께 높아진 것이다.

Ollama 인터뷰에서는 장기적으로 기업 토큰 사용량의 80~90%가 저렴한 오픈모델을 통과할 수 있다는 전망이 제시됐다. 다만 오픈모델의 단가가 낮기 때문에 지출액 기준 비중은 **10~20%**에 머물고, 가장 어려운 판단과 전체 작업의 조정은 여전히 폐쇄형 프런티어 모델이 담당할 수 있다.

AI 시장은 하나의 거대한 모델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구조보다 다음과 같은 혼합 구조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오픈모델과 폐쇄형 모델은 서로를 완전히 대체하지 않는다. 비싼 프런티어 지능은 판단과 감독을 담당하고, 저렴한 오픈모델은 실제 작업량 대부분을 처리하게 된다.

따라서 앞으로는 모델 점유율을 하나의 숫자로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오픈모델은 토큰 사용량을 가져가지만, 프런티어 모델은 높은 단가와 고난도 업무를 유지할 수 있다. 토큰 점유율, 매출 점유율, 이익 점유율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의미다.


3. Alex Karp가 말하는 진짜 AI 주권


https://www.youtube.com/watch?v=2YVCdwvG548


최근 Alex Karp 인터뷰에서 기업 고객이 우려하는 가장 현실적인 AI 위험은 추상적인 인류 멸망 가능성이 아니었다.

기업이 수십 년 동안 축적한 데이터와 업무 노하우, 의사결정 방식과 고객정보가 외부 모델 사업자에게 이전될 가능성이었다.

기업은 외부 모델에 토큰 사용료를 지불하면서 자신의 데이터와 업무 맥락을 제공한다. 그 과정에서 생성되는 프롬프트, 추론기록, 사용자 피드백과 에이전트의 행동 결과는 원천 데이터보다 기업의 실제 경쟁력을 더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정보가 될 수 있다.

따라서 AI 시대의 데이터 주권은 단순히 파일을 어느 데이터센터에 보관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기업의 업무 과정에서 새롭게 생성되는 지능을 누가 소유하느냐의 문제다.

Karp가 말하는 소버린 AI 구조는 다음과 같다.

  • 기업 데이터와 업무기록은 자체 환경에 유지

  • 핵심 업무는 오픈웨이트 모델을 자체 인프라에서 운영

  • 기업 고유 데이터로 포스트트레이닝

  • 여러 오픈·폐쇄형 모델을 업무별로 교체

  • 모델의 데이터 접근권한과 행동범위를 통제

  • 모델의 결과를 실제 의사결정과 행동으로 연결


팔란티어의 온톨로지가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모델은 언어를 이해하지만, 기업이 말하는 ‘고객’, ‘재고’, ‘위험’, ‘주문’, ‘승인’이 실제로 어떤 데이터와 권한, 물리적 행동을 의미하는지는 알지 못한다. 기업 데이터를 업무의 객체와 관계로 변환하고, 에이전트가 어느 범위까지 행동할 수 있는지를 정의하는 별도의 운영계층이 필요하다.

범용 모델 → 온톨로지·권한·워크플로 → 기업의 독점 데이터 → 실제 행동 → 생산성·수익

모델은 계속 교체할 수 있지만, 기업의 데이터 구조와 권한체계, 업무 프로세스와 실행기록은 쉽게 교체할 수 없다. 모델이 범용화될수록 기업의 데이터와 업무흐름을 안전하게 연결하는 애플리케이션 계층의 가치는 오히려 높아질 수 있다.


4. NVIDIA가 Hugging Face를 인수하려는 진짜 이유


NVIDIA는 2026년 9월 3일 Hugging Face를 약 129억 달러에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Hugging Face에는 약 1,800만 명의 개발자, 300만 개 이상의 모델, 50만 개의 데이터셋, 100만 개의 애플리케이션이 존재하며, 이를 사용하는 기업은 20만 곳 이상이다. NVIDIA는 인수 이후에도 Hugging Face를 멀티클라우드·멀티가속기 기반의 개방형 플랫폼으로 유지하고, NVIDIA 하드웨어 사용을 의무화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NVIDIA, Hugging Face 인수 발표

표면적으로는 오픈모델 개발자 생태계 확보다. 그러나 투자 관점에서 보면 그보다 더 큰 의미가 있다.

Hugging Face는 오픈모델 생태계의 GitHub이자 앱스토어에 가깝다. 어떤 모델이 빠르게 다운로드되고, 어떤 데이터셋과 추론 프레임워크가 채택되며, 어느 하드웨어에서 병목이 발생하는지를 가장 먼저 관찰할 수 있다.

NVIDIA는 이를 통해 다음 영역을 연결할 수 있다.

Model Discovery → Evaluation → Fine-tuning → Inference Optimization → Deployment → NVIDIA Compute

모델이 상품화되더라도 모델을 실제 하드웨어에서 가장 빠르고 안정적으로 실행하는 능력까지 곧바로 상품화되는 것은 아니다.

NVIDIA가 Nemotron을 오픈모델로 제공하는 이유도 직접적인 모델 구독료를 최대화하기 위해서라기보다, 더 많은 개발자가 NVIDIA의 추론 라이브러리·NIM·CUDA·Blackwell 시스템에서 모델을 실행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2026년 3월 공개된 Nemotron 3 Ultra는 Blackwell의 NVFP4 환경에서 이전 방식 대비 5배의 처리량 효율을 제시했고, Cursor·ServiceNow·CrowdStrike·Perplexity 등 다수 기업이 이를 에이전트에 채택했다. NVIDIA는 각국의 언어와 문화에 맞는 소버린 모델 구축에도 Nemotron과 합성데이터를 공급하고 있다. NVIDIA, Open Model Families

NVIDIA가 노리는 것은 특정 모델의 승리가 아니다.

어떤 모델이 승리하더라도 그 모델이 NVIDIA 생태계 위에서 학습되고 추론되는 구조가 핵심이다.


5. 오픈웨이트는 컴퓨팅 수요를 없애지 않고 구매자를 늘린다


중국 오픈웨이트 모델과 증류, 추론 효율화가 컴퓨팅 수요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는 이전 글 생각정리 312 (* Kimi K3, Computing Infra)에서 자세히 다뤘다.

당시 내린 결론은 모델 구조와 학습 방법은 빠르게 복제될 수 있지만, 모델을 학습하고 운영하는 GPU·HBM·서버 DRAM·스토리지·네트워크·전력은 각 기업과 국가가 직접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픈웨이트 모델은 하나의 중앙 모델을 공유하는 대신 동일한 모델을 여러 클라우드와 국가, 기업이 중복해서 호스팅하도록 만든다.

최근 서버 업체들의 실적은 이러한 수요가 미국 하이퍼스케일러를 넘어 기업과 소버린 AI로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에이전트가 상태와 기억을 유지하기 시작하면서 메모리·스토리지·네트워크 수요가 시스템 전체로 확산되는 경로는 생각정리 335 (* Stateful AI Factory, Memory, MLCC)에서 정리한 내용으로 갈음한다.




6. 게임과 소프트웨어의 진입장벽이 무너진다


Astra가 바꾸는 또 다른 시장은 게임과 소프트웨어다.

여기서 ‘상용 게임이나 Photoshop의 원본 코드를 그대로 복제한다’는 표현은 엄밀히 말하면 정확하지 않다. Astra가 기존 기업의 비공개 소스코드를 직접 볼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용자에게 중요한 것은 코드의 동일성이 아니라 기능과 경험의 동일성이다.

사용자가 특정 게임이나 소프트웨어를 보여주며 원하는 기능과 인터페이스, 규칙과 작업방식을 설명하면 에이전트는 이를 관찰하고 유사한 기능을 가진 새로운 제품을 다시 구축할 수 있다. Astra의 소프트웨어 이해력과 컴퓨터 사용 능력이 발전할수록 ‘기능적 대체재’를 만드는 비용은 계속 낮아진다.

이는 소프트웨어 산업의 희소성을 다음과 같이 바꾼다.


코드 공급이 폭증해도 사람의 시간과 소비지출은 무한정 늘어나지 않는다. 새롭게 만들어진 수많은 게임과 애플리케이션 가운데 무엇을 발견하고, 신뢰하고, 구매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플랫폼의 중요성이 높아진다.

게임에서도 단순한 판매수수료보다 제작·배포·서버·결제·광고·커뮤니티·IP 거래를 하나로 묶는 플랫폼이 더 많은 가치를 가져갈 수 있다.

Steam이 게임의 유통과 결제를 담당한다면, 장기적으로는 Roblox나 Fortnite처럼 제작도구·실행환경·사용자 네트워크·가상경제를 함께 제공하는 ‘Creator OS’ 형태가 더 강한 구조가 될 가능성이 높다.

AI는 게임 한 개의 제작비를 낮추지만, 플랫폼에 올라오는 게임의 수는 폭증시킨다. 공급이 넘쳐날수록 발견과 신뢰, 결제와 커뮤니티를 통제하는 플랫폼의 희소가치는 높아진다.


7. 초개인화는 애플리케이션 시장의 파이를 키운다


AI 에이전트가 기존 소프트웨어를 대체하면 소프트웨어 시장의 전체 파이가 줄어들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반대일 가능성이 높다.

기존 소프트웨어는 평균적인 고객을 대상으로 만들어졌다. 개인이나 소규모 기업의 요구를 모두 반영하는 것은 개발비와 유지비 때문에 불가능했다.

에이전트는 단 한 명의 사용자를 위해서도 기능을 새로 만들 수 있다.

  • 자신에게 맞는 투자 리서치 도구

  • 개인별 회계·세무 소프트웨어

  • 특정 업무만 처리하는 사내 애플리케이션

  • 취향에 맞춘 게임과 콘텐츠

  • 개인의 건강·교육·쇼핑을 관리하는 에이전트

  • 기존 상용 소프트웨어의 일부 기능만 재구성한 도구


과거에는 경제성이 없어 존재하지 않았던 수백만 개의 작은 시장이 새롭게 소프트웨어 시장으로 편입된다.

AI가 줄이는 것은 개별 소프트웨어 한 개를 만드는 비용이고, 확대하는 것은 소프트웨어가 적용될 수 있는 전체 업무와 생활의 범위다.

Lower Cost per Application
→ More Personalized Applications
→ More Agent Actions
→ More Tokens and Compute
→ Larger Digital Value Added

소프트웨어 가격은 하락하더라도 소프트웨어가 수행하는 경제활동의 총량은 훨씬 커질 수 있다.


8. 다음 경쟁은 B2C 애플리케이션과 물리적 인터페이스다


모델 성능만으로 장기간 차별화하기 어렵다면 프런티어 AI 기업은 모델 위와 아래로 이동해야 한다.

위쪽은 소비자 애플리케이션과 유통이고, 아래쪽은 컴퓨팅 인프라와 물리적 하드웨어다.

OpenAI가 Jony Ive의 io Products 팀을 합병하고 소비자용 AI 기기를 개발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OpenAI와 io는 기존 화면과 애플리케이션 중심의 인터페이스를 넘어 AI 시대에 맞는 새로운 기기를 개발하고 있다. OpenAI, Sam & Jony

최근에는 스마트폰 카메라의 화질을 AI로 개선하는 Glass Imaging을 3억 달러 이상의 가치로 인수한 것으로 보도됐다. Glass Imaging은 전 Apple 카메라 엔지니어들이 설립했으며, 하드웨어와 AI 소프트웨어를 결합해 스마트폰에서 DSLR 수준의 화질을 구현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WSJ, OpenAI의 Glass Imaging 인수

이를 단순한 카메라 기술 확보로만 볼 필요는 없다.

AI 에이전트가 현실 세계에서 사용자를 대신하려면 사용자의 상황을 지속적으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카메라·마이크·위치·생체정보와 같은 센서는 현실을 AI가 이해할 수 있는 데이터로 바꾸는 입력장치다.

카메라는 AI 시대의 키보드가 될 수 있다.

사용자가 모든 상황을 텍스트로 설명하는 대신, 기기가 주변 환경을 보고 사용자의 의도와 맥락을 이해한다면 AI는 훨씬 더 많은 행동을 수행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엣지 하드웨어에는 다음 수요가 발생한다.

  • 로컬 추론용 NPU·GPU

  • 모델과 컨텍스트 저장을 위한 DRAM

  • 영상·음성·에이전트 상태 저장용 NAND

  • 고화질 카메라와 이미지센서

  • 저전력 네트워크와 통신 반도체

  • 지속적인 센서 입력을 처리할 전력관리 부품

  • 클라우드와 로컬 모델을 연결하는 라우팅 소프트웨어


앞으로의 AI 기기는 모든 작업을 로컬에서 처리하지도, 모든 데이터를 클라우드로 보내지도 않을 것이다.

개인정보와 지연시간에 민감한 작업은 로컬 오픈모델이 처리하고, 고난도 판단과 장기 작업은 클라우드 프런티어 모델로 넘기는 하이브리드 구조가 자연스럽다.

이는 기업용 AI에서 나타나는 멀티모델 구조가 개인용 기기까지 확장되는 과정이다.


9. PACE는 안전 논리이면서 경제적 해자가 될 수 있다


프런티어 AI의 속도조절이 컴퓨팅 수요에 미치는 영향과 안전검증 과정에서 발생하는 추가적인 연산수요는 생각정리 365 (* Pacing Needs More Compute)에서 이미 다뤘다.

또한 에이전트의 위험이 자의식이나 의지가 아니라 책임과 분리된 목적함수, 불완전한 감독구조에서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은 생각정리 366 (* The Machine Does Not Need a Will)에서 정리했다.

따라서 여기서는 PACE의 산업적 결과에만 집중해본다.

Anthropic의 내부 측정에 따르면 2026년 8월 Claude는 전체 AI R&D 업무의 26%를 주도했고, 협업 이상 단계에 참여한 업무는 90% 이상이었다. 내부 연구·엔지니어링 시스템에서는 약 3만 개의 에이전트가 동시에 작동했다. Anthropic, AI Development Measurements

이 정도 규모라면 프런티어 AI 기업이 제기하는 안전 우려를 모두 허구나 마케팅으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다만 기업의 실제 동기와 규제의 경제적 결과는 분리해서 봐야 한다.

프런티어 AI 기업이 안전을 진지하게 우려하더라도, 그들이 제안하는 검증과 규제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곳은 결국 막대한 자본과 컴퓨팅 자원, 법률조직을 보유한 대형 기업이다.

  • 독립 평가 의무

  • 모델별 라이선스

  • 대규모 안전성 테스트

  • 사고배상 및 보험

  • 컴퓨팅 사용량 보고

  • 모델 출시 전 검증기간

  • 정렬 및 모니터링 기준 충족


이러한 제도는 안전성을 높이는 동시에 소규모 모델 개발사와 오픈소스 개발자에게 높은 고정비용을 부과한다.

따라서 다음 두 문장은 동시에 참일 수 있다.

프런티어 AI 기업은 실제로 안전을 우려한다.

그들이 요구하는 규제는 결과적으로 프런티어 AI 기업의 해자를 강화한다.


10. AI 가치사슬의 중심이 이동한다


지금까지의 AI 투자 논리는 대체로 가장 좋은 모델을 누가 만드느냐에 집중돼 있었다.

그러나 모델 성능이 빠르게 확산되고 오픈웨이트 모델의 교체비용이 낮아지면 가치의 중심은 다른 계층으로 이동한다.


모델 자체의 초과이익은 압축될 수 있다.
그러나 지능이 저렴해지면서 소비량이 증가하면 AI 인프라 전체의 수요는 오히려 커질 수 있다.

소프트웨어 시장에서도 모든 기업이 동시에 승리하지는 않는다.

단일 기능만 제공하는 소프트웨어는 에이전트가 기능적 대체재를 빠르게 만들 수 있어 가격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고객의 독점 데이터, 업무기록, 권한체계, 거래·결제와 커뮤니티를 통제하는 플랫폼은 AI를 이용해 자신의 시장을 더 크게 만들 수 있다.


11. 투자아이디어의 다음 단계


이 흐름을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AI 모델의 성능이 평준화될수록 지능의 가격은 하락하지만, 그 지능을 기업과 개인의 실제 행동으로 바꾸는 실행계층과 물리적 생산수단의 가치는 상승한다.

이전에는 NVIDIA와 메모리, 네트워크, 전력 인프라를 프런티어 모델의 대규모 학습 수요라는 관점에서 봤다.

이제는 투자 논리를 한 단계 확장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 수요층은 미국 하이퍼스케일러와 OpenAI·Anthropic 같은 프런티어 연구소였다.

두 번째 수요층은 오픈웨이트 모델을 호스팅하는 New Cloud, 기업용 AI 서버, 각국의 소버린 AI다.

세 번째 수요층은 개인별 에이전트를 실행하는 PC·스마트폰·카메라·로봇과 같은 엣지 하드웨어가 될 가능성이 높다.

동시에 애플리케이션 계층에서는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수백만 개의 초개인화 소프트웨어와 게임이 만들어진다. 이 공급을 유통하고 실행하며 결제와 신뢰를 관리하는 플랫폼의 경제적 가치도 커진다.

따라서 앞으로의 AI 경쟁은 더 이상 ‘누가 가장 좋은 LLM을 보유했는가’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경쟁의 중심은 다음 다섯 가지를 누가 장악하느냐로 이동한다.

  1. 가장 많은 개발자와 모델이 모이는 생태계

  2. 기업의 데이터와 업무를 통제하는 실행계층

  3. 소비자와 직접 연결되는 애플리케이션·유통채널

  4. 현실 세계를 인식하는 센서와 엣지 디바이스

  5. 지능을 대량 생산하는 서버·메모리·네트워크·전력 인프라


글을 마치며


기술의 진보는 충분히 축적된 자본과 산업역량 위에서만 꽃을 필 수 있다고 한다.

지금의 AI 역시 수천억 달러의 데이터센터 투자와 GPU·메모리·네트워크·전력 인프라, 그리고 이를 감당할 자본시장이 함께 만든 결과다.

오픈웨이트 LLM의 성능이 빠르게 상향 평준화되면 지능의 가격은 내려가고 전체 사용량은 늘어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OpenAI와 Anthropic 같은 프런티어 연구소의 가격 결정력과 투자회수 가능성이 약해지면서, 현재 AI 하드웨어 수요를 이끄는 핵심 축 하나가 흔들릴 위험도 존재한다.

미국은 부채 증가와 고령화, 고금리·고물가라는 구조적 부담 속에서 AI를 생산성 향상과 자본유입, 군사·기술 패권을 유지할 가장 중요한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다.

생각정리 359 (* AI Is the Exit, G20)

이런 상황에서 미국 정부가 프런티어 연구소의 해자가 무너지고, 이를 중심으로 형성된 AI 투자 사슬 전체가 흔들리도록 방치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정부가 특정 기업의 수익성을 직접 보장하지 않더라도 안전검증·정렬·사이버보안·국가안보를 명분으로 별도의 규제체계를 만들 수 있다. 막대한 평가비용과 책임보험, 출시 전 검증과 라이선스 요건은 안전장치인 동시에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소수 프런티어 기업을 보호하는 규제형 해자로 작동할 수 있다.

결국 장기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이중구조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 오픈웨이트를 통한 지능의 범용화와 비용 하락
  • 규제·자본·국가안보를 통한 프런티어 연구소의 보호
  • 기업 데이터를 실제 행동으로 연결하는 애플리케이션·온톨로지의 부상
  • 폭증하는 실행량을 감당할 AI 인프라와 엣지 하드웨어의 확대


모델은 범용화되고 애플리케이션은 초개인화된다.
지능의 가격은 내려가지만 실행량은 폭증하며,
이를 감당할 데이터·유통·컴퓨팅 인프라의 희소가치는 오히려 높아진다.

그리고 미국 정부 입장에서 다음 세대 지능을 먼저 만들고 AI 자본투자의 출발점을 제공하는 프런티어 LLM 기업은, 시장 논리만으로 쉽게 무너지도록 내버려두기에는 이미 너무 중요한 전략자산이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끝

이모저모

https://www.youtube.com/watch?v=qWqVybchpc4

기자회견을 보고 든 생각


대통령 기자회견이 끝나고 든 생각을 두서없이 적어본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이다.

기자회견을 들으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던 것은 다수의 ‘모래알’과 소수의 이해관계로 단단하게 결집한 ‘콘크리트 지지층’ 사이의 갈등을 언급한 부분이었다.

나는 이 문제의 상당 부분이 민주주의와 시장 자본주의가 필연적으로 충돌하는 지점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부동산을 소유한 사람과 소유하지 않은 사람, 노동소득에 의존하는 사람과 자본을 가진 사람, 세금을 부담하는 사람과 이전소득을 받는 사람.

겉으로 드러나는 갈등의 형태는 매번 다르지만, 조금 더 깊게 들어가 보면 결국 한정된 자원과 부를 어떤 방식으로 배분할 것인가라는 오래된 문제와 맞닿아 있다.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1인 1표’의 세계이고, 시장경제는 ‘1원 1표’에 가까운 세계다.

모두가 정치적으로는 동등한 한 표를 갖지만 경제적으로 보유한 자본과 생산수단은 서로 다르다.

어쩌면 현대사회에서 반복해서 발생하는 여러 정치·경제적 갈등은 애초에 이 두 질서가 완전히 일치할 수 없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선한 목적이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목표가 옳다는 확신이, 경로에 대한 검증을 대신할 수 있는가?”


지금까지의 정책을 보면서 내가 가장 아쉬웠던 부분도 이 지점이다.

‘더 많은 사람이 잘사는 사회’, ‘불평등의 완화’, ‘시장 정상화’ 같은 정책의 목표 자체를 문제 삼고 싶은 것은 아니다.

문제는 정책의 목적과 현실세계에서 그 목적에 도달하는 경로는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

어떤 정책이 시행되는 순간 사람들은 그 정책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가격이 움직이고, 자본이 이동하며, 기업은 투자를 조정하고, 가계는 소비와 저축을 바꾸며, 시장 참여자들은 새로운 규제를 회피하거나 적응할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부터 정책은 처음 설계자가 생각했던 단선적인 경로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A라는 정책을 시행하면 B라는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했는데,

현실에서는

A → C → D → E → B

로 갈 수도 있고,

A → F → G

라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

그리고 한번 C나 F의 경로로 들어간 경제는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오기 쉽지 않다.

경제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e)이다.

그래서 정책은 무엇을 지향하느냐 못지않게 그 정책이 어떤 경로를 만들어낼 것인가를 살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내가 받은 인상은 정책의 지향점에는 상당한 확신이 있었던 반면, 그 목표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2차·3차 효과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준비가 부족했던 것이 아니었나 하는 것이다.


‘정상’과 ‘비정상’을 너무 쉽게 나누는 순간


“시장 참여자들의 정상적인 반응까지 도덕의 문제로 해석하게 될 위험이 있다.”


여기서 더 조심해야 할 부분도 있다.

자신이 지향하는 정책적 목표를 ‘정상화’ 혹은 ‘개혁’이라고 정의하는 순간, 기존 구조와 그 구조에서 이해관계를 가지고 살아가던 사람들은 쉽게 반대편에 놓인다.

자신들의 정책적 지향은 선의이고 정상화이며,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반발과 예상하지 못했던 시장의 움직임은 기득권의 저항이나 비정상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사람들은 그렇게 단순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부동산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악한 것도 아니고, 다주택자라고 해서 모두 투기꾼인 것도 아니며, 기업의 이익을 추구한다고 해서 기업인이 사회적 공익과 반대되는 존재인 것도 아니다.

반대로 노동자라는 이유만으로 언제나 공익을 대표하는 것도 아니다.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경제적 이해관계에 반응할 뿐이다.

오히려 그것이 시장경제에서는 자연스러운 행동에 가깝다.

그래서 어떤 집단을 정책목표를 방해하는 세력으로 규정하기 시작하면 정책 설계자는 시장 참여자들의 정상적인 반응까지 도덕의 문제로 해석하게 될 위험이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부분을 상당히 경계하는 편이다.

우리 인간사회에서 무엇이 절대적으로 옳고 무엇이 절대적으로 그르다고 말할 수 있는 영역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시대가 바뀌고 기술이 바뀌고 인구구조가 바뀌면 사회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의 우선순위도 계속 변한다.

그 기준은 고정돼 있다기보다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동적인 것에 가깝다.


너무 큰 계획과 너무 빠른 실행


현 정부 출범 이후의 정책을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여러 번 했다.

처음부터 상당히 담대한 목표를 제시했고, 세세한 조정보다는 실행력을 강조하며 빠르게 정책을 밀어붙였다는 인상을 받았다.

문제는 정책이 실제 시장과 사회에 적용되기 시작하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들이 여러 갈래에서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경로가 여러 방향으로 갈라진 이후에는 이를 다시 조정하는 일이 처음 정책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어려워진다.

더구나 관련 정책을 주도하던 담당자가 이미 자리를 떠났고 새로운 인선 역시 불확실한 상황이라면 정책의 연속성과 수정 가능성은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미 상당히 먼 길을 와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현 정부가 여기에서 모든 정책을 되돌릴 것 같지도 않다.

이번 기자회견에서도 결국 기존에 추진하던 여러 정책을 계속 ‘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이어가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느껴졌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까지 예상해왔던 경제의 여러 경로 역시 오히려 조금 더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정리 370 (* 가맹사업법, CPI )



출발 조건은 상당히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더욱 아쉬운 부분이 있다.

지금은 대외경제 환경의 불확실성이 상당히 커졌지만, 현 정부가 처음 출범했을 당시만 놓고 보면 경제적 출발 조건이 나쁜 편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AI 투자 확대와 메모리 업황 회복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고, 한국 수출산업의 주요 전방산업 전망도 상당히 좋았다.

글로벌 AI CAPEX가 확대되면서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국이 직접적인 수혜를 받을 수 있는 환경도 만들어지고 있었다.

낙관론

정치적으로도 국회의 협조를 얻기 어려운 구조는 아니었다.

즉 외부환경과 정치적 실행력 측면에서 비교적 많은 카드를 가지고 출발한 정부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지나온 과정을 보면 이상하게도 스스로 정책의 난도를 계속 높여온 것처럼 느껴졌다.

부동산시장에 대한 강한 개입, 전월세시장 구조의 변화, 공급대책을 둘러싼 논란, 증세 기조와 다주택자 과세 강화 등 여러 정책이 거의 동시에 진행됐다.

각각의 정책에는 나름의 논리와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정책들을 동시에 시행했을 때 시장 전체에서 어떤 상호작용이 일어날 것인지에 대한 고려가 충분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그래서 왜 지지율이 떨어졌을까


기자회견을 들으면서 현 정부 역시 지금의 지지율 하락 원인을 상당히 고민하고 있다는 느낌은 받았다.

다만 아직 명확한 답을 찾지는 못한 것처럼 보였다.

개인적으로는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정책의 결과가 기대와 달랐기 때문 아닐까.

정치는 여러 이념과 가치가 경쟁하는 영역이지만 사람들의 일상에 직접 닿는 순간에는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집값과 전월세 가격이 오르고,

전기료와 에너지가격이 오르고,

물가가 오르고,

세부담이 늘고,

자신의 자산과 소득에 불확실성이 커진다면,

유권자는 정책의 의도보다 자신의 생활에서 나타난 결과를 먼저 평가할 가능성이 높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신입 주니어의 주식 발표를 보는 기분


기자회견을 듣다가 문득 회사에서 신입 주니어의 종목 발표를 듣는 장면이 떠올랐다.

특정 기업과 산업에 대해 정말 열심히 공부해 온 것은 느껴진다.

자료도 많이 읽었고, 들은 이야기도 많다.

회사가 어떤 사업을 하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고 싶은지에 대해서도 설명은 꽤 자세하다.

그런데 듣다 보면 조금씩 불안해진다.

그 회사가 실제로 경쟁하고 있는 시장 구조는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경쟁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고객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금리와 환율, 원재료 가격 같은 외부변수가 회사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그 사업계획을 실제로 실행할 수 있는 자본과 인력이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상대적으로 얕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느 순간부터 발표 내용 자체보다 전망치에 대한 의심이 먼저 생긴다.

“그래서 그게 실제로 가능한가?”

이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이번 기자회견을 들으며 내가 받은 인상이 조금 그랬다.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는 알겠다.

왜 그런 정책을 추진했는지도 어느 정도 이해하겠다.

그동안 부족한 부분이 있었고 앞으로 더 듣고 보완하겠다는 말도 이해한다.

그런데 결국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것은 다른 것이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이미 나타나고 있는 문제를 어떤 정책으로 조정하고,

잘못된 경로에 들어선 부분은 어디에서 끊어내고,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는 어떤 순서로 대응할 것인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한 답을 듣지 못했다는 느낌이 남았다.


앞으로가 더 어려워 보이는 이유


오히려 걱정되는 것은 앞으로다.

지금까지 시행된 여러 정책의 후행효과가 앞으로 본격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외부환경까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최근 계속 공부하고 기록하고 있는 Diesel, Energy, CPI, Housing 문제 역시 결국 모두 민생경제로 연결된다.

에너지가격이 오르면 운송비가 오르고,

운송비가 오르면 상품가격이 올라가고,

주거비가 상승하면 서비스물가와 임금 요구에도 영향을 주며,

금리가 높은 상태에서 물가까지 다시 오르면 정책 선택지는 급격히 줄어든다.

각각 따로 보면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문제도 동시에 발생하면 전혀 다른 문제가 된다.

더구나 이미 정책에 대한 신뢰가 약해진 상황이라면 같은 정책을 시행하더라도 시장의 반응은 과거와 달라질 수 있다.

정책에서 신뢰 역시 하나의 자본이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이 필요한데


그리고 결국 마지막에는 사람의 문제가 남는다.

이처럼 복잡하게 얽힌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시장과 정책을 동시에 이해하는 사람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도 든다.

정말 그런 사람이 있다면,

굳이 국민의 신뢰가 약해지고 있고 정책적 부담이 계속 누적되는 정부에 들어가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할까.

더군다나 자신의 정책적 판단보다 조직 전체의 사고방식과 정책 철학을 먼저 설득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좋은 인재 한 사람이 들어간다고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다.

조직이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 안에서 다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오히려 조직에 적응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래서 가장 걱정되는 것은 개별 정책의 실패 자체가 아니다.

왜 그런 결과가 반복해서 발생했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 인식이 아직 충분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 하는 점이다.

정책 하나가 잘못됐다면 바꾸면 된다.

담당자가 잘못 판단했다면 교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를 바라보는 사고방식 자체가 잘못돼 있다면 이야기는 훨씬 어려워진다.


정책도 결국 경로다


아마 내가 최근 여러 산업과 경제 현상을 공부하면서 계속해서 느끼는 것도 비슷한 내용인 것 같다.

세상은 생각보다 선형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좋은 의도로 시작했다고 좋은 결과가 자동으로 따라오지 않고,

잘못된 의도로 시작했다고 반드시 나쁜 결과만 나오는 것도 아니다.

중간에는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있고,

가격이 있고,

자본이 있고,

기술이 있고,

수많은 피드백 루프가 존재한다.

그래서 결국 중요한 것은 목적뿐만 아니라 경로를 보는 것이다.

무엇을 하겠다는 것보다,

그 정책이 시행됐을 때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고,

그 반응이 다시 시장을 어떻게 변화시키며,

그 변화가 다시 정부의 다음 선택지를 어떻게 제한하는지를 봐야 한다.

주식에서도 전망보다 중요한 것은 전망이 틀렸을 때 어느 지점에서 가정을 수정할 것인가이다.

정책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이번 기자회견을 보면서 정책의 목적과 선의에 대한 설명은 충분히 들었던 것 같다.

다만 아직 내가 가장 궁금했던 질문에 대한 답은 듣지 못했다.

지금까지는 이렇게 됐다는 것을 알겠다.

그래서 여기서부터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

왜 이런 일이 반복됐다고 생각하는가.

그 답을 아직 찾지 못한 상태에서 기존의 ‘개혁’을 더욱 강하게 밀어붙인다면, 지금까지 진행돼 온 여러 경제적 경로 역시 더욱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물론 내가 틀릴 수도 있다.

어쩌면 지금의 판단이 몇 년 뒤 완전히 다른 결과로 돌아올 수도 있다.

그래서 기록해둔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 다시 이 글을 읽어봤을 때,

당시 무엇을 잘못 봤고 무엇을 제대로 봤는지 확인해보기 위해서.

그냥 기자회견을 보고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 끄적여본다.

(*민감한 질문'에는 여전히 '모호함'으로 어찌어찌 넘기는것처럼 느끼는건 나만 그런걸까..?)

계속 '개혁'을 이어나가겠다고 하는데 나는 왜 계속 '혁명'을 완수하겠다는 것처럼 들리는걸까..?


=끝


생각정리 371 (* From Prototype to Fleet, SMR)

한동안 잠잠했던 원전, SMR 산업에 여러 훈풍이 부는듯 싶다.

이참에 한번 정리해놓아야 한다는 생각에 리서치를 기록해본다.

최근 미국 전력시장과 관련된 뉴스플로우를 보면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한다.

AI 데이터센터가 요구하는 전력을 미국이 제때 공급할 수 있는가.

미국은 단순히 발전설비가 부족한 것이 아니다. 노후 석탄·가스발전소가 폐쇄되는 가운데 AI 데이터센터와 제조업 리쇼어링, 전기화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지만, 필요한 지역과 시간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확정전원과 송전망이 부족하다.

태양광과 풍력은 빠르게 증설할 수 있지만 24시간 동일한 출력을 보장하기 어렵다. 가스발전 역시 터빈 공급과 가스 파이프라인, 연료가격 및 탄소배출이라는 제약에 부딪히고 있다. 신규 송전망은 발전소보다 더 긴 인허가 기간이 필요할 때도 많다.

2026.09.16 GE Vernova
가스터빈 2031년 수주물량은 이미 꽉찼고, 2032년 수주를 받고있는 상황.

번스타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중대형 가스터빈이 주문취소시 패널티율이 높다고 함..
(그만큼 공급자 우위시장이란 의미와 동시에 확정전원('Firm MV')의 시장 프리미엄이 높다는 의미임..)

이 지점에서 원전과 SMR이 다시 미국 전력시장의 중심으로 들어오고 있다.

다만 원전이 필요하다는 것과 실제 원전시장이 커진다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원전 산업은 수요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건설비, 금융조달, 인허가, 연료 공급과 공기 준수 능력 때문에 성장하지 못했던 산업이다.

따라서 앞으로 미국 원전시장을 판단하려면 정부의 장기 목표보다 전방 SMR 사업자들이 몇 년에, 몇 MW를, 어떤 고객과 실제로 건설할 계획인지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


1. 미국 전력부족의 본질은 발전량보다 확정전원이다


미국 에너지부는 2030년까지 폐쇄될 가능성이 있는 확정전원을 약 104GW로 추정한다. 같은 기간 예정된 신규 발전설비는 약 209GW이지만, 이 가운데 필요할 때 출력을 보장할 수 있는 확정전원은 약 22GW에 불과하다.

반면 데이터센터에서 약 50GW, 제조업과 전기화 등 기타 부문에서 약 51GW의 추가 수요가 발생할 수 있다.


명목상 신규 발전설비가 폐쇄설비보다 많더라도 전력부족이 해소되지 않는 이유이다. 전력은 연간 발전량이 아니라 특정 시간대와 지역에서의 공급 가능성이 중요하다.

예정된 209GW의 신규 설비 가운데 상당 부분이 태양광과 풍력이라면, 명목 설비용량과 실제 피크 시간에 사용할 수 있는 확정용량 사이에는 큰 차이가 발생한다.

여기에 송전망이라는 제약이 더해진다. 미국 에너지부는 2050년까지 전체 송전망이 현재의 2.1~2.6배, 지역 간 송전망은 1.9~3.5배까지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분석한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데이터센터 및 산업시설 인근에서 24시간 가동할 수 있고, 기존 석탄발전소나 원전 부지의 송전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는 원전의 가치가 높아진다.

이는 단순한 LCOE 경쟁이 아니다. 필요한 장소와 시간에 전력을 공급하는 확정전원의 가치이다.

DOE Resource Adequacy Report
DOE National Transmission Planning Study


2. EIA의 기준선과 미국 정부의 목표 사이에는 거대한 간격이 있다


EIA AEO2026 기준 미국 원전설비는 2040년 약 98.6GW, 원전 발전량은 801.7TWh로 전망된다. 미국 전체 발전량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14.4%**이다.

이는 대규모 신규 원전 건설 없이 기존 원전의 수명연장만 이뤄지는 보수적인 경로이다.

반면 미국 정부는 2050년까지 원전용량을 약 400GW로 확대하는 목표를 제시했다. 중간 목표로는 2035년까지 신규 원전 35GW를 건설하고, 2040년부터 연간 15GW의 원전을 추가할 수 있는 산업생태계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미국 원전용량이 약 97GW라는 점을 고려하면, 2050년 400GW를 달성하려면 기존 원전의 수명연장뿐 아니라 앞으로 25년 동안 약 300GW를 새로 건설해야 한다.

이는 매년 Vogtle 3·4호기와 비슷한 대형원전을 10기 이상 건설해야 하는 속도이다. 현재 원전 공급망과 건설인력, 주기기 생산능력을 고려하면 400GW는 전망치라기보다 미국 원전 산업을 다시 구축하겠다는 정책적 목표에 가깝다.

따라서 현실적인 질문은 2050년 400GW 달성 여부가 아니다.

2030년대에 미국이 연간 1~2GW 수준의 신규 원전 건설능력을 먼저 확보하고, 이를 2040년까지 연간 3~5GW로 높일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EIA AEO2026
DOE, U.S. Targets to Triple Nuclear Capacity
Executive Order 14300


3. 전방 SMR 사업자들의 로드맵은 어디까지 왔는가


현재 미국에서 상업화 가능성이 비교적 높은 SMR·선진원자로 사업자는 GE Vernova Hitachi, X-energy, TerraPower, Kairos Power, Holtec, NuScale, Oklo 정도로 압축된다.

그러나 각 사업자의 프로젝트 성숙도는 크게 다르다.

건설허가를 받고 실제 건설에 들어간 프로젝트와 장기 전력계약만 체결한 프로젝트, 단순 개발협약 단계의 파이프라인을 동일하게 평가해서는 안 된다.



로드맵 그래프에서 원의 크기는 공개된 프로젝트 용량을 나타내지만, 색상은 프로젝트의 성숙도를 구분한다. NuScale의 6GW 프로그램과 X-energy의 5GW 목표가 크다고 해서 해당 용량이 이미 확정 발주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 표와 그래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발표된 전체 파이프라인 용량이 아니다.

실제 건설허가, 장기 PPA, 정부 지원, 부지와 원자로 공급망이 동시에 확보됐는가가 중요하다.


4. 2030년까지 실제 가동 가능한 용량은 많지 않다


현재 가장 앞선 프로젝트는 TerraPower의 Natrium이다. TerraPower는 2026년 3월 NRC 건설허가를 확보했으며, Wyoming Kemmerer에 345MW 원자로와 최대 500MW까지 출력을 높일 수 있는 에너지저장 시스템을 건설하고 있다. 회사의 목표 상업운전 시점은 2030년이다.

Kairos Power는 TVA 및 Google과 계약을 체결하고 Oak Ridge의 Hermes 2 출력을 50MW로 확대했다. 목표 가동 시점은 2030년이며, Google과 체결한 전체 프로그램은 2035년까지 500MW이다.

X-energy는 Dow의 Texas Long Mott 프로젝트에 Xe-100 4기, 총 320MW를 건설할 계획이다. Energy Northwest와는 최대 12기, 960MW 규모의 Cascade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으며, Amazon과는 2039년까지 최소 5GW를 구축하는 장기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X-energy는 HALEU 연료 공급과 첫 상업 프로젝트의 NRC 인허가, 실제 건설기간을 확인해야 한다. 발표된 5GW를 그대로 2039년 가동용량으로 반영하기보다 단계적으로 할인해 평가하는 것이 적절하다.

TerraPower Natrium Construction Permit
Kairos–Google 500MW Agreement
Kairos–TVA Hermes 2 PPA
X-energy Commercial Pipeline

현재 프로젝트 진행상황을 기준으로 보면 2030년까지 미국에서 가동될 가능성이 높은 SMR·선진원자로 용량은 기본 시나리오 0.4~1.0GW, 강세 시나리오에서도 1.5~2.5GW 정도이다.

2030년은 SMR이 미국 전력수요를 본격적으로 담당하는 시점이 아니다. 첫 프로젝트의 건설비와 공기, 이용률, 연료 공급능력을 검증하는 시점에 가깝다.


5. 2030년대 초반의 중심은 BWRX-300과 경수형 SMR이다


2030년대 초반에는 기존 경수로 기술과 공급망을 활용할 수 있는 BWRX-300, SMR-300, NuScale 등이 상대적으로 빠르게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TVA는 Tennessee Clinch River에 GE Vernova Hitachi의 300MW BWRX-300을 건설하기 위해 NRC에 건설허가를 신청했다. 상업운전 목표는 2033년이다.

미국 에너지부는 TVA와 Holtec에 각각 최대 4억 달러, 총 8억 달러의 비용분담 지원을 결정했다. Holtec은 Michigan Palisades 부지에 SMR-300 2기, 총 600MW를 건설할 계획이다.

GEH 입장에서는 캐나다 Darlington이 먼저 BWRX-300의 첫 상업 레퍼런스를 제공한다. Darlington에는 총 4기, 1.2GW가 계획돼 있으며 첫 원자로는 2029년 전후 가동이 목표이다.

캐나다의 첫 프로젝트가 공기와 원가를 입증하면 미국 TVA, AEP와 후속 유틸리티 프로젝트의 위험이 낮아질 수 있다.

GE Vernova–TVA BWRX-300
DOE Gen III+ SMR Awards

NuScale은 NRC 설계인증을 보유하고 있고, ENTRA1과 TVA 권역에서 최대 6GW 규모의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77MW 모듈을 여러 개 결합해 발전소당 최대 924MW를 구성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은 아직 6GW 전체에 대한 확정 EPC 발주나 FID로 보기 어렵다. 구체적인 부지와 PPA, 프로젝트 금융 및 건설일정이 확인되기 전까지는 2035년 기본 시나리오에 제한적으로 반영할 필요가 있다.

NuScale–ENTRA1 6GW Program


6. 2035년까지 3~6GW, 2040년까지 10~18GW가 현실적인 기본 경로이다


각 사업자의 공개 로드맵을 단순 합산하면 미국의 SMR 파이프라인은 이미 수십 GW에 이른다.

그러나 발표된 파이프라인에는 확정 PPA, 개발협약, 부지검토와 잠재 프로젝트가 모두 섞여 있다. 대형 인프라 프로젝트에서는 발표용 파이프라인과 실제 가동용량 사이에 큰 차이가 발생한다.

인허가, 고객계약, 정부 지원 및 연료 공급 가능성을 기준으로 할인하면 다음과 같은 경로가 현실적이라고 판단한다.

주: 이용률 92% 가정. 전체 원전용량에는 기존 원전, 재가동, 출력증강, 대형 신규원전과 SMR을 포함.


기본 시나리오에서는 2040년에도 미국 전력생산에서 SMR이 차지하는 비중이 **1.5~2.6%**에 그친다.

절대적인 비중만 보면 작아 보이지만, 10~18GW는 SMR 300MW급 기준으로 약 33~60기에 해당한다. 동일한 설계가 반복된다면 원전 주기기와 모듈 생산공장을 경제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규모이다.

강세 시나리오에서는 2040년 SMR 용량이 25~35GW까지 확대될 수 있다. 이 경우 미국 전체 원전용량은 약 145~160GW, SMR은 원전 설비의 17~22%를 차지한다.

다만 강세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려면 X-energy의 5GW 프로그램, NuScale의 6GW 프로그램과 Oklo의 1.2GW 계획 가운데 상당 부분이 실제 FID와 건설로 전환돼야 한다.


7. 미국 전체 원전 발전량은 2040년 970~1,090TWh까지 증가할 수 있다


현재 미국 원전의 평균 이용률은 90%를 웃돈다. 2040년 원전용량이 기본 시나리오인 120~135GW까지 증가하고 이용률이 92% 수준을 유지한다면 연간 발전량은 약 970~1,090TWh가 된다.

이는 EIA 기준선인 801.7TWh보다 약 170~290TWh 높은 수준이다.

2040년 미국 전체 발전량을 약 5,600TWh로 가정하면 원전 비중은 약 **17~20%**가 된다. 전력수요가 빠르게 증가하더라도 신규 원전 건설을 통해 현재와 비슷하거나 조금 높은 비중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기본 시나리오와 정책 목표 사이의 가장 큰 차이는 수요가 아니다.

2030년대에 미국이 원전 건설 공급망을 얼마나 빠르게 복원할 수 있느냐의 차이이다.


8. 2040년에도 SMR은 미국 원전 설비의 약 8~13%이다


기본 시나리오의 중간값을 적용하면 2040년 미국 원전용량은 약 127.5GW, 이 가운데 SMR·선진원자로는 약 14GW이다.

SMR이 미국 전체 원전용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11%**로 계산된다. 나머지 약 89%는 기존 대형원전과 수명연장 설비, 출력증강 및 신규 대형원전이 담당한다.




2030년대 SMR은 기존 원전의 대체재라기보다 데이터센터, 산업단지, 퇴역 석탄발전소 부지와 지역 유틸리티의 증분 수요를 담당하는 신규 전원에 가깝다.

다만 전체 원전용량의 10% 안팎만 차지해도 절대용량은 약 14GW에 이른다. 설계당 300MW를 적용하면 약 47기의 원자로에 해당하기 때문에, 원자로 모듈과 주기기의 반복생산 시장은 충분히 형성될 수 있다.


9. 2040년까지 미국 SMR 건설시장은 누적 1,100억~2,200억 달러로 추정한다


SMR 시장규모는 가동용량과 건설 발주용량을 구분해야 한다.

2040년에 가동 중인 SMR이 10~18GW라면 당시 건설 중이며 2040년 이후 준공될 프로젝트까지 포함한 누적 발주·착공용량은 약 15~25GW로 추정할 수 있다.

SMR의 건설단가를 kW당 7,500~9,000달러로 가정하면 2026~2040년 미국 SMR 신규 건설시장의 누적 규모는 약 1,100억~2,200억 달러가 된다.

주: Overnight EPC-equivalent capital 기준 추정. 건설기간 금융비용과 발전소 운영·연료·폐로시장은 제외.



대형원전, 기존 원전 재가동, 출력증강과 수명연장까지 포함하면 같은 기간 미국 전체 원전 관련 투자시장은 약 2,200억~3,800억 달러까지 확대될 수 있다.

2030년대 후반 미국 원전시장의 연간 신규 투자규모는 약 200억~350억 달러, 그 가운데 SMR은 약 100억~200억 달러를 차지할 수 있다.

이는 아직 가스발전이나 재생에너지 전체 투자시장과 비교하면 크지 않다. 그러나 2020년대 중반까지 사실상 신규 건설이 중단됐던 미국 원전시장과 비교하면 구조적인 변화이다.

EIA Capital Cost Study


10. SMR 경제성은 첫 호기가 아니라 5~10기에서 결정된다


현재 SMR의 가장 큰 약점은 경제성이 아직 실적이 아니라 가정이라는 점이다.

EIA가 제시한 대표 설비비는 SMR이 약 8,936달러/kW, AP1000 대형원전이 약 7,861달러/kW이다. 건설기간과 금융비용을 제외하더라도 SMR이 대형원전보다 저렴하다고 보기 어렵다.

DOE의 초기호기 분석에서는 SMR의 자본비가 13,000달러/kW 안팎까지 상승할 수 있다.

SMR이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첫 호기의 높은 설계·인허가 비용을 후속호기에 분산하고, 공장 제작과 반복시공을 통해 자본비를 10호기 전후에서 약 7,000~8,000달러/kW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

DOE는 동일 설계에 대해 최소 5~10기 수준의 확정 주문이 있어야 공급망과 전용 생산설비 투자가 본격화될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SMR 경제성은 원자로가 작아서 자동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확정 PPA → FID → 5~10기 주문 → 공급망 투자 → 공장 가동률 상승 → 제작기간 단축 → 후속호기 원가 하락

이 순서가 실제로 작동해야 한다.

DOE Advanced Nuclear Liftoff Report
DOE Commercializing Advanced Nuclear


11. 2030년대 SMR 시장을 결정할 네 가지 관문


첫째, 발표된 파이프라인이 실제 FID로 전환돼야 한다


현재 미국 SMR 프로젝트의 발표용량은 충분하다. X-energy의 Amazon 프로그램이 5GW, NuScale·ENTRA1 프로그램이 최대 6GW, Oklo의 Ohio 계획이 1.2GW이다.

하지만 장기계약과 개발협약은 본공사 발주가 아니다. 부지와 PPA, 금융조달, EPC 구조가 확정돼야 실제 시장규모로 전환된다.


둘째, 첫 상업호기의 공기와 원가가 검증돼야 한다


TerraPower, Kairos, X-energy의 첫 프로젝트는 해당 기술의 성패뿐 아니라 미국 원전 건설산업 전체의 신뢰에 영향을 미친다.

첫 프로젝트가 목표시점보다 2~3년 늦어지거나 예산을 크게 초과하면 후속 주문과 프로젝트 금융비용이 동시에 악화될 수 있다.


셋째, HALEU 공급망이 확대돼야 한다


BWRX-300, Holtec SMR-300, NuScale처럼 기존 저농축우라늄을 사용하는 경수형 SMR과 달리 Natrium, Xe-100, Oklo 등 일부 선진원자로는 HALEU가 필요하다.

HALEU 생산능력이 원자로 건설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프로젝트가 준공돼도 초기 연료장전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DOE HALEU


넷째, 노형이 소수로 통합돼야 한다


현재는 여러 설계가 동시에 경쟁하고 있지만 모든 노형을 위한 별도의 연료와 공급망, 제조공장을 구축할 수는 없다.

2030년대 초반 첫 프로젝트가 가동되면 시장은 인허가, 원가와 납기 실적을 기준으로 소수 설계에 주문을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

SMR 시장이 진정한 반복건조 산업으로 전환되려면 개발사 수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승리한 설계의 주문량이 늘어나야 한다.


12. 2030년은 실증, 2035년은 선택, 2040년은 반복건조의 시간이다


2030년 전후에는 첫 원자로가 실제로 작동하는지 확인한다.
Natrium, Hermes 2, Xe-100과 일부 경수형 SMR이 목표 공기와 예산 안에서 완성되는지가 중요하다.

2035년 전후에는 어떤 설계가 살아남는지가 결정된다. BWRX-300, Xe-100, Natrium, Kairos, Holtec, NuScale과 Oklo 가운데 실제 후속 발주를 확보하는 사업자와 개발단계에 머무는 사업자가 구분되기 시작할 것이다.

2040년 전후에는 동일 설계의 반복건조가 시작된다. 기본 시나리오대로 SMR 가동용량이 10~18GW, 발주·착공용량이 15~25GW까지 증가한다면 최소 2~4개 설계가 각각 여러 기의 반복건조 물량을 확보할 수 있다.

이때부터 SMR은 실험적인 원자로 기술이 아니라 연간 수십 기의 원자로 모듈과 주기기를 생산하는 산업으로 변한다.


13. 결론: 진짜 변곡점은 첫 원자로가 아니라 두 번째 주문이다


미국에 원전이 필요하다는 점은 비교적 명확하다.

AI 데이터센터와 제조업 리쇼어링은 높은 이용률의 확정전원을 요구하고, 노후 화력발전소의 폐쇄와 송전망 제약은 원전의 상대적 가치를 높이고 있다.

다만 미국의 SMR 가동용량은 2030년에도 0.4~1.0GW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첫 프로젝트가 성공하고 후속 주문이 이어진다는 전제 아래 2035년 3~6GW, 2040년 10~18GW까지 증가하는 경로가 현실적인 기본 시나리오이다.

2040년 SMR이 미국 전체 전력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5~2.6%**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러나 건설시장 관점에서는 약 15~25GW의 프로젝트가 발주·착공되며 누적 1,100억~2,200억 달러의 신규 시장을 형성할 수 있다.

강세 시나리오에서는 SMR 가동용량이 25~35GW까지 확대될 수 있지만, 이를 위해서는 X-energy, NuScale, Oklo 등의 대규모 발표 파이프라인이 실제 FID와 건설로 전환돼야 한다.

결국 SMR 시장의 크기는 발표된 프로젝트의 총합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첫 원자로가 목표시점과 예산 안에서 가동되고, 동일한 설계의 두 번째와 세 번째 프로젝트가 더 낮은 비용으로 발주돼야 한다.

SMR 산업의 진짜 변곡점은 첫 호기의 착공이 아니라, 첫 호기가 완성되기 전에 후속 5~10기의 주문이 확보되는 순간일지도 모르겠다. 

=끝

2026년 9월 16일 수요일

생각정리 370 (* 가맹사업법, CPI )


가맹점주의 협상력을 강화하는 개정 가맹사업법이 내년 초부터 본격 시행될 예정이다.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확대된 원·하청 교섭과 파업 가능성에 이어, 가맹사업법 역시 본사와 점주 사이의 비용 배분 구조를 바꿀 수 있다.

두 제도가 기업의 생산·투자·고용과 프랜차이즈 본사의 수익모델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그 비용이 최종적으로 소비자가격과 생활물가에 어떤 경로로 전가될지 미리 공부해 기록해둔다.

보호의 비용은 사라지지 않는다


최근 가맹점주단체의 협상력을 강화하는 가맹사업법 개정 내용을 살펴보면서 이전에 여러 차례 정리했던 노란봉투법이 떠올랐다.

두 법은 적용 대상과 법적 구조가 서로 다르다. 노란봉투법은 원청과 하청 노동자의 노사관계를 다루고, 가맹사업법은 가맹본부와 가맹점주의 거래조건을 다룬다.

그러나 입법이 시장에 작동하는 경제적 경로는 상당히 비슷해 보인다.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동자와 취약한 노동자의 협상력을 높이고, 가맹사업법은 본사보다 협상력이 약한 가맹점주를 보호하려는 법이다. 두 제도 모두 상대적으로 약한 계약당사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기존 계약관계의 협상력과 비용 부담을 재배분한다.

문제는 보호받는 계층의 비용을 누군가는 부담해야 한다는 점이다.

기업과 가맹본부가 그 비용을 영구적으로 흡수하지 않는다면 비용은 투자 축소, 고용 감소, 로열티 인상, 수수료 신설, 자동화 또는 소비자가격 인상으로 이동한다.

좋은 의도가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취약계층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제도가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사회 전체의 비용을 높이고, 처음 보호하려 했던 계층에게 다른 형태의 비용으로 되돌아갈 가능성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


1. 노란봉투법과 가맹점주법은 무엇이 비슷한가


2026년 시행된 개정 노동조합법, 이른바 노란봉투법은 근로계약을 직접 체결하지 않았더라도 근로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하는 원청을 사용자로 볼 수 있도록 사용자 범위를 확대했다.

노동쟁의의 대상도 임금과 근로시간뿐 아니라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경영상 결정까지 넓어졌다. 이에 따라 하청 노동조합이 직접적인 고용주가 아닌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할 수 있는 범위가 확대됐다. 국가법령정보센터 노동조합법 제2조

가맹점주법 역시 기존에는 개별 점주가 감당해야 했던 협상을 등록된 점주단체가 집단적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한다. 가맹점주는 원재료 공급가격, 필수품목, 가맹금, 광고·판촉비 등에 대해 본사에 공식적인 협의를 요구할 수 있다.


두 법의 공통점은 직접적인 가격통제나 이익 이전을 명시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기업과 본사는 요구안을 반드시 수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우선적으로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그러나 협상 상대방의 범위가 넓어지고 집단적인 요구가 가능해지면 기업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과 불확실성은 커진다. 법률상 수용 의무가 없더라도 파업·분쟁·공정위 조사·언론 노출과 브랜드 평판을 고려하면 실제로는 일정 부분 양보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약한 계약당사자의 협상력이 강화되는 만큼, 반대편의 비용과 불확실성도 함께 증가한다.


2.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실제로 나타난 것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아직 사회 전체의 장기적 결과를 단정하기에는 이르다. 하지만 원청과 하청 사이의 교섭 범위가 확대되면서 새로운 분쟁과 행정·사법절차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은 확인할 수 있다.

시행 약 6개월 동안 하청노조가 교섭을 요구한 원청 사업장은 456곳이었다. 이 가운데 실제 교섭에 들어간 곳은 102곳으로 약 22%에 그쳤고, 나머지 사업장에서는 원청의 사용자성을 둘러싼 노동위원회 판정과 소송이 이어졌다. 노란봉투법 시행 6개월 현황


시행 초기 통계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났다. 시행 100일 동안 하청노조의 교섭 요구를 받은 원청은 439곳이었으며, 지방노동위원회 판단이 나온 113곳 가운데 103곳에서 원청의 사용자성이 인정됐다. 노란봉투법 시행 100일 현황

4050 대한민국 남성들이 왜 민주당을 아직도 지지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은 통계치..

정부는 우려했던 교섭 쓰나미나 무분별한 쪼개기 교섭은 나타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반면 기업들은 어떤 원청이 어느 범위까지 사용자인지 판단하는 과정 자체가 노동위원회와 법원의 판단에 의존하면서 노사관계가 사법화되고 있다고 우려한다.

중요한 점은 노란봉투법이 법률상 원청과 하청의 동일임금을 직접 보장하는 제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원청이 하청 근로자의 임금과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한다고 인정되면 하청노조가 원청을 상대로 임금, 성과급, 인력운영 등 근로조건에 관한 교섭을 요구할 수 있는 통로가 넓어진다.

기업 입장에서는 기존에 직접 고용한 노동자와만 협의하면 됐던 노무비와 경영 의사결정을 다수의 하청노조와도 논의해야 한다. 그 결과가 반드시 임금 인상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지만, 협상비용과 생산중단 위험, 법률비용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협상력 강화가 기업의 비용을 높이고, 기업은 다시 고용·투자·생산구조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3. 기업은 늘어난 노동비용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노란봉투법의 의도는 하청 노동자가 실질적인 의사결정자인 원청과 협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원청기업이 증가한 인건비와 협상비용을 장기간 자체적으로 흡수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기업이 선택할 수 있는 대응은 비교적 명확하다.

  • 자동화와 무인화 투자 확대

  • 신규 채용 축소

  • 국내 설비투자 지연

  • 하청업체와 계약구조 재편

  • 공급업체 수 축소와 대형화

  • 해외생산 또는 외주 이전

  • 제품과 서비스 가격 인상


단기적으로는 기존 노동자의 임금과 협상력이 높아질 수 있다. 그러나 기업이 신규 채용을 줄이고 자동화를 앞당기면 아직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못한 청년과 비조직 노동자가 그 비용을 부담하게 된다.

즉, 보호의 혜택은 현재 조직된 노동자에게 집중될 수 있지만 비용은 미래 노동자, 협력업체, 소비자와 주주에게 분산된다.

현재 노동자를 보호한 결과 미래 노동자의 일자리가 줄어든다면, 사회 전체로는 반드시 보호가 확대됐다고 말하기 어렵다.

가맹점주법에서도 동일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현재 영업 중인 점주의 공급가격과 비용 부담을 낮춰주는 대신, 본사가 신규 가맹점의 로열티를 높이고 출점 기준을 강화한다면 앞으로 창업하려는 자영업자의 진입비용은 오를 수 있다.


4. 가맹점주법이 바꾸는 것


개정 가맹사업법은 2026년 말 시행될 예정이다. 시행령 예고안에 따르면 일정 요건을 갖춘 가맹점주단체가 거래조건 변경 협의를 요구하면 본사는 정해진 기간 내 협의를 시작해야 한다.

자료: 공정위 시행령·고시 예고안 해설


제도만 놓고 보면 점주단체의 요구를 본사가 반드시 수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맹점 수가 많은 브랜드에서 집단협의가 시작되면 본사는 공급가격과 비용구조를 공개하고, 가격의 적정성을 설명해야 하는 압력을 받게 된다.

커피·치킨·피자·제과·외식 프랜차이즈에서는 다음 항목이 주요 협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 원두·계육·치즈·소스·식용유 공급가격

  • 컵·포장재·소모품의 필수품목 지정

  • 배달앱 할인과 쿠폰 비용

  • 광고·판촉비 분담

  • 신규 장비와 인테리어 비용

  • 가맹수수료와 로열티

  • 인근 지역 추가 출점


이 가운데 본사 이익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원재료와 필수품목 공급마진이다.


5. 가장 먼저 줄어드는 것은 본사의 공급마진이다


외식 프랜차이즈 본사는 단순히 상표를 빌려주고 가맹비만 받는 회사가 아니다.

본사는 원재료와 소모품을 대량 구매하거나 자체 생산한 뒤 가맹점에 공급한다. 가맹점이 본사에서 의무적으로 구매하는 필수품목의 공급가격에는 본사의 유통마진이 포함되는 경우가 많다.

공정위 통계에 따르면 외식 가맹점이 본사에 지급한 평균 차액가맹금은 2024년 기준 점포당 2,600만원이다. 전년보다 13% 증가했고, 점포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4.4%로 상승했다.

자료: 공정위 2025년 가맹사업 현황 통계

점주단체는 필수품목 축소, 외부 구매 허용, 공급마진 공개와 공급가격 인하를 요구할 수 있다. 본사가 이를 일부 수용하면 단기적으로는 점주 수익성이 개선되지만 본사 매출총이익은 줄어든다.

점주 협상력 상승 → 공급가격 및 차액가맹금 인하 → 가맹본부 매출총이익 감소

여기까지는 법이 의도한 결과다. 가맹본부가 가져가던 이익의 일부를 가맹점주에게 이전함으로써 거래관계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6. 본사의 이익은 사라지지 않고 이름을 바꾼다


상장기업이나 사모펀드가 보유한 프랜차이즈 본사는 영업이익 감소를 아무 대응 없이 받아들이기 어렵다. 실적 전망과 배당, 기업가치와 차입금 상환을 유지하려면 줄어든 마진을 다른 방식으로 회수해야 한다.

본사가 선택할 가능성이 높은 방법은 불투명한 공급마진을 줄이는 대신 명시적인 로열티와 수수료를 높이는 것이다.


명시적인 로열티는 원재료 가격과 본사 마진을 구분한다는 점에서는 투명하다. 하지만 가맹점주가 실제로 부담하는 총비용이 줄어든다는 보장은 없다.

원재료 공급가격이 낮아진 만큼 로열티와 물류비가 높아진다면 비용의 이름만 바뀌게 된다. 기존 점주는 계약기간 동안 일부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신규 점주와 갱신계약 점주는 새로운 비용구조를 적용받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노란봉투법 이후 기업이 직접적인 노동비용 상승을 신규 채용 축소와 자동화로 대응하는 것과 유사하다.

규제가 한쪽 비용을 누르면, 기업은 통제받지 않는 다른 항목에서 비용을 회수한다.


7. 편의점은 공급마진보다 이익배분율이 문제다


CU·GS25·이마트24 같은 편의점은 외식 프랜차이즈와 수익구조가 다르다. 편의점 본사와 점주는 상품 판매에서 발생한 매출총이익을 계약에 따라 나눈다.

점주단체가 요구할 가능성이 높은 항목도 원재료 가격보다는 매출총이익 배분율, 최저수입보장, 심야영업과 폐기·전기료 지원이다.

  • 매출총이익 배분율 상향

  • 최저수입보장금 확대

  • 전기료와 냉난방비 지원

  • 폐기상품 비용 분담

  • 1+1·2+1 판촉비 부담

  • 24시간 영업조건 완화

  • 근접 출점 및 영업지역 보호

  • 재계약과 폐점 위약금


문제는 편의점 본사의 영업이익률도 높지 않다는 점이다. 점주에게 배분되는 이익이 조금만 늘어도 본사 영업이익은 상대적으로 크게 변한다.

자료: BGF리테일 2025년 실적, GS리테일 2025년 실적, 이마트 2025년 실적


매출총이익률이 0.1%포인트 변한다고 단순 가정하면 이익 민감도는 다음과 같다.


주: 전사 매출액에 일률적으로 적용한 단순 민감도이며 실제 영향은 가맹점 관련 매출과 최종 협의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점주 지원 확대분을 비용 절감으로 모두 흡수하지 못하면 본사는 PB상품 마진 확대, 할인행사 축소, 신상품 가격 조정, 저수익 점포 정리로 대응하게 된다.

편의점 도시락·간편식·음료·커피 가격은 소비자가 일상적으로 확인하는 가격이다. 따라서 편의점 본사의 비용 회수는 체감 생활물가에 직접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


8. 본사가 회수한 비용은 다시 점주에게 도착한다


본사가 로열티와 각종 수수료를 높이면 점주는 다시 비용 압력을 받는다.

점주는 본사처럼 다른 사업부의 이익이나 대규모 비용 절감으로 충격을 흡수하기 어렵다. 임차료·인건비·전기료·배달수수료가 동시에 발생하는 단일 점포 사업자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점주가 선택할 수 있는 대응도 제한적이다.

  1. 본인과 가족의 노동시간 확대

  2. 직원 근무시간과 인원 축소

  3. 할인과 무료서비스 축소

  4. 제품 용량과 구성 조정

  5. 메뉴와 상품가격 인상


처음에는 가족노동과 인건비 절감으로 버틸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방식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다.

결국 로열티와 수수료 상승분을 흡수하지 못한 점주는 메뉴와 상품가격을 올리게 된다.

본사의 로열티 인상 → 점주 고정비 상승 → 가맹점 판매가격 인상 → 소비자 부담 증가

노란봉투법에서도 기업이 노동비용 증가분을 제품가격에 반영하면 최종 부담자는 소비자가 된다. 가맹점주법에서는 본사와 점주라는 한 단계가 더 존재하기 때문에 전가 속도는 느릴 수 있지만, 최종 목적지는 동일하다.


9. 비용 전가는 시차를 두고 나타난다


법 시행 직후 모든 가격이 한꺼번에 오르지는 않을 것이다.

가맹본부는 점주단체와의 첫 협상 직후 로열티를 바로 올리기 어렵다. 기존 계약이 남아 있고, 공급가격을 낮춘 직후 다른 수수료를 인상하면 규제 회피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점주 역시 비용이 늘어났다고 곧바로 제품가격을 올리지 않는다. 주변 경쟁점의 가격과 고객 이탈 가능성을 확인하면서 일정 기간 비용을 자체적으로 흡수한다.

따라서 초기에는 본사의 영업이익률이 먼저 하락하고, 다음에는 신규·갱신계약의 로열티와 수수료가 조정되며, 마지막으로 소비자가격이 오르는 순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주: 법정 일정이 아니라 계약갱신과 비용 전가 과정을 고려한 분석상 가정이다.

가격을 먼저 올린 브랜드는 소비자 저항을 받는다. 하지만 주요 경쟁사가 비슷한 비용 압력을 받고 있다면 한 업체의 가격 인상은 다른 업체가 따라 올릴 수 있는 명분이 된다.

그 결과 가격 인상은 일회성 충격이 아니라 브랜드와 업종을 따라 순차적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10. 프랜차이즈는 이미 생활물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국내 프랜차이즈 가맹점은 31만개를 넘어섰고 연간 매출은 약 118조원에 이른다. 편의점·한식·치킨·커피처럼 소비자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업종이 가맹산업의 중심이다.





자료: 국가데이터처 2024년 프랜차이즈 통계, 업종별 세부 통계


한두 브랜드만 가격을 올린다면 소비자는 다른 브랜드나 비가맹 점포로 이동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프랜차이즈 본사가 동시에 공급마진 축소와 점주 지원비 증가를 경험하면 대체 가능한 브랜드도 비슷한 시기에 가격을 조정하게 된다.

단순 계산으로 전체 가맹점 판매가격이 평균 1% 상승하면 연간 명목 소비지출에 반영되는 금액은 약 1조1,800억원이다. 실제 소비자물가 기여도는 품목별 가중치, 판매량 감소와 대체소비를 반영해야 하므로 이 금액과 같지는 않다.


주: 2024년 전체 프랜차이즈 매출액에 가격 상승률만 적용한 기계적 계산이다. 판매량 감소와 대체소비는 반영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정확히 물가가 몇 % 오르는지를 지금 계산하는 것이 아니다.

비용 충격이 특정 기업에 국한되지 않고 편의점·커피·치킨·피자·한식 등 생활서비스 전반에서 동시에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개별 기업의 비용 전가가 동시에 일어나면 기업의 가격 조정은 사회 전체의 물가 상승으로 바뀐다.


11. 보호정책이 오히려 취약계층에 되돌아오는 과정


노란봉투법과 가맹점주법은 모두 상대적으로 협상력이 약한 계층을 보호하려는 제도다.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동자를 보호하고, 가맹점주법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보호한다. 그러나 기업과 본사가 늘어난 비용을 소비자가격에 전가하면 생활비 상승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집단도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이다.

소득이 높은 가계는 외식과 커피 가격이 올라도 소비를 유지하거나 대체할 수 있다. 반면 소득이 낮은 가계는 편의점 도시락, 저가 커피와 배달음식 등 일상적인 소비가격 상승에 더 민감하다.

기업이 자동화와 채용 축소로 대응할 경우에도 충격은 노동시장에 새로 진입하는 청년과 저숙련 노동자에게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가맹본부가 출점을 줄이면 신규 창업 기회와 가맹점 종사자의 일자리도 함께 줄어든다.

결국 다음과 같은 역설이 만들어질 수 있다.

취약계층 보호 → 기업·본사 비용 증가 → 고용·투자·출점 축소 및 가격 인상 → 생활물가와 진입장벽 상승 → 취약계층 부담 증가

보호정책의 혜택은 조직화된 현재 이해관계자에게 집중되지만, 그 비용은 조직되지 않은 미래 노동자와 소비자에게 넓게 분산된다. 혜택을 받는 사람은 분명하게 보이지만 비용을 부담하는 사람은 여러 단계로 나뉘어 잘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선의로 시작한 정책의 결과가 의도와 달라질 수 있는 이유다.


12. 그렇다고 보호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가맹본부의 과도한 필수품목 지정과 공급마진, 원청과 하청 사이의 불합리한 책임 분리는 분명히 개선할 필요가 있다.

점주 수익성이 지나치게 낮으면 폐점과 분쟁이 늘고 브랜드도 장기적으로 약해진다.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면서도 책임을 전혀 지지 않는 구조 역시 지속 가능하지 않다.

다만 보호의 필요성이 정책의 모든 부작용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정책을 평가할 때는 누구를 보호했는지만 볼 것이 아니라, 그 보호비용을 누가 최종적으로 부담하는지도 봐야 한다. 현재 노동자와 점주의 협상력이 높아진 대신 신규 고용과 창업이 줄고 소비자가격이 오른다면 사회 전체의 후생은 예상과 다르게 움직일 수 있다.

경제정책에서 비용을 없애는 법은 없다.
비용의 부담 주체와 발생 시점을 바꾸는 법만 있을 뿐이다.


13. 앞으로 확인해야 할 지표


법 시행 이후에는 가맹점 수와 매출 성장률만으로 프랜차이즈 기업을 평가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가맹본부의 영업이익률이 먼저 낮아질 수 있다. 중기적으로는 로열티와 수수료가 조정되고, 장기적으로는 소비자가격과 신규 출점, 고용에 영향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노란봉투법에서도 시행 초기에는 사용자성 판단과 교섭절차가 핵심 쟁점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기업의 자동화, 국내 투자, 하청계약과 고용구조가 어떻게 변하는지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가맹점주법도 마찬가지다.

초기에는 본사와 점주 사이의 공급가격 협상으로 보이겠지만, 최종적으로는 프랜차이즈 산업의 가격과 투자, 고용구조를 바꾸는 문제가 될 수 있다.



14. 문제는 가맹사업법이 혼자 시행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가맹사업법만 놓고 보면 소비자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다.

법이 시행되더라도 본사가 줄어든 공급마진을 곧바로 로열티나 판매가격으로 전가하기는 어렵다. 기존 계약이 남아 있고, 점주와 소비자의 반발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맹사업법의 2027년 소비자물가 직접 기여도는 개인적으로 약 +0.05~0.15%포인트 정도로 추정한다. 계약 갱신과 로열티 조정이 본격화되는 2028년까지 누적하면 +0.10~0.25%포인트 정도로 확대될 수 있다.

이 수치만 보면 전체 CPI를 크게 뒤흔들 정도는 아니다.

문제는 가맹사업법이 시행되는 시점에 이미 주거비·에너지·전기료·금융비용이 동시에 상승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미 쌓이고 있는 비용들


이전 생각정리 354 (* 2027년 한국 경제 전망)에서는 2027년부터 서울 주요 재건축 단지의 이주가 겹치면서 전월세시장이 본격적인 공급부족에 들어갈 가능성을 살펴봤다.

전세대출 규제와 임대인의 월세 전환, 재건축 이주 수요가 동시에 겹치면 서울에서 시작된 임차료 상승은 수도권과 전국 주요 도시로 확산될 수 있다.

현재 소비자물가지수에서 전세와 월세의 합산 가중치는 약 **9.9%**다. 전국 평균 임차료가 5% 상승하면 CPI를 약 0.5%포인트, 8~10% 상승하면 약 0.8~1.0%포인트 끌어올릴 수 있다.

매매가격은 CPI에 직접 포함되지 않지만, 다음과 같은 간접 경로를 통해 물가에 반영된다.

주택 매매가격 상승
→ 전세·월세 상승
→ 상가 및 점포 임대료 상승
→ 자영업자 고정비 증가
→ 외식·서비스 가격 상승

여기에 생각정리 368 (* Crude Is Not Diesel, The Second Oil Shock)생각정리 369 (* Diesel, The Last Barrel Standing)에서 살펴본 경유 공급부족이 겹친다.

경유는 승용차 연료에 그치지 않는다. 화물차·농기계·건설장비·선박·산업설비에 광범위하게 사용되기 때문에 가격 상승이 물류비와 식품가격, 건설비와 유통비로 전파된다.

현재 CPI에서 석유류 가중치는 약 **4.7%**다. 국내 석유류 가격이 전년 대비 15~20% 상승하면 직접적으로 CPI를 약 0.7~0.9%포인트 높일 수 있다.

다만 한국은행 전망에도 일정 수준의 에너지 가격 상승이 이미 반영돼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이를 고려하면 기존 전망 대비 추가 상승압력은 약 0.45~0.75%포인트 정도로 보는 편이 합리적이다.

전기료와 고금리도 점주의 비용으로 들어온다


전기료 상승은 가계보다 편의점·카페·제과점·음식점에 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냉장·냉동설비와 조리기기, 냉난방기를 장시간 사용하는 업종은 전기료를 줄이기 어렵다. 특히 24시간 영업을 하는 편의점은 전기료 상승을 판매량 조정으로 회피하기도 어렵다.

가맹점주단체가 본사에 전기료 지원과 이익배분율 조정을 요구하면 본사가 일부 비용을 부담하게 된다. 반대로 본사가 이를 충분히 지원하지 않으면 점주는 상품가격과 서비스 축소로 대응하게 된다.

전기료 상승
→ 점주 영업비용 증가
→ 본사 지원 요구 확대
→ 본사와 점주의 비용 분담
→ 상품 및 외식가격 인상

높은 금리도 CPI에 직접 포함되지는 않는다. 주택담보대출과 사업자대출의 이자비용은 소비자물가지수의 구성항목이 아니다.

그러나 고금리는 임대인과 가맹점주, 가맹본부의 금융비용을 높인다. 임대인은 이자 부담을 월세에 반영하고, 점주는 대출이자와 임대료 상승분을 메뉴가격에 반영하며, 본사는 차입비용을 줄이기 위해 저수익 점포를 정리하거나 로열티와 수수료를 조정할 수 있다.

따라서 고금리는 CPI를 직접 올리는 항목이라기보다, 주거비와 서비스 가격의 전가압력을 높이는 증폭장치에 가깝다.




15. 2027년 CPI 경로를 다시 계산해보면


한국은행은 2027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2.3%, 근원물가를 2.5%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2026년 8월 CPI가 이미 전년 동월 대비 3.1%, 식료품·에너지 제외 근원물가가 3.4%라는 점을 감안하면 2027년 2.3%에 도달하려면 상당한 물가 둔화가 필요하다. 한국은행 2026년 8월 경제전망, 국가데이터처 2026년 8월 소비자물가

기존 전망에 최근 확인된 비용 상승요인을 추가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이를 종합하면 2027년 CPI는 기존 전망보다 약 1.3~1.8%포인트 높은 경로를 생각할 수 있다.

개인적인 기준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현재로서는 **2027년 CPI 중심값을 약 3.8%**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분기별로는 상반기에 경유와 휘발유, 물류비가 물가를 끌어올리고,
하반기에는 전월세와 전기료, 외식비가 그 자리를 이어받는 구조가 예상된다.


2027년 상반기
경유·휘발유 상승 → 물류·식품가격 상승

2027년 하반기
전월세·전기료 상승 → 외식·서비스가격 상승

따라서 에너지가격이 하반기에 안정되더라도 전체 CPI가 빠르게 내려가기는 어렵다.
에너지의 빈자리를 주거비와 서비스 물가가 채우기 때문이다.

가맹사업법은 이 과정에서 물가를 처음 발생시키는 주된 충격이라기보다, 이미 상승한 임대료·인건비·전기료·물류비가 외식과 생활필수품 가격으로 전가되는 통로를 하나 더 추가하는 제도에 가깝다.

결론


가맹사업법만으로 소비자물가가 급등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2027년에는 전월세와 에너지, 전기료와 금융비용이 이미 함께 오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본사와 점주의 비용 분담구조까지 바뀌면 기업과 가맹점이 추가 비용을 흡수할 수 있는 여력은 더욱 줄어든다.

결국 비용은 다음과 같은 경로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주거비·에너지·전기료 상승
→ 본사와 점주의 비용 증가
→ 공급마진·로열티·수수료 조정
→ 외식·편의점·생활서비스 가격 상승
→ CPI와 체감물가 상승
→ 금리 인하 지연

기존 전망의 핵심이 주거비 상승으로 인해 CPI의 바닥이 2%대 중후반으로 높아진다는 것이었다면, 현재는 에너지와 생활서비스 충격이 더해지면서 물가의 중심축 자체가 3%대 후반으로 이동할 가능성을 생각해야 한다.

공식 CPI가 3%대 후반에 머무르더라도 임차료와 대출이자, 자동차 연료비와 전기료, 외식비를 동시에 부담하는 가구의 실제 현금지출 증가율은 **5~7%**에 이를 수 있다.

결국 2027년의 문제는 단순한 고물가가 아니다.

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비용들이 동시에 오르는 가운데, 이를 억제하기 위해 높은 금리까지 장기간 유지해야 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가맹사업법은 그 자체보다도, 이미 올라가고 있는 여러 비용 위에서 시행된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글을 마치며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겠다며 내놓은 각종 규제와 세제 개편은 오히려 집값 급등을 불러왔고,
노동자를 보호하겠다며 도입한 노란봉투법은 사회전반에 걸쳐 초강성 노조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정책의 선의가 번번이 의도와 정반대의 결과를 낳았는데도, 또다시 비슷한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제는 별로 놀랍지도 않다.

서민들의 소비여력만 계속 더 줄어들뿐이지 않나 싶다.

문뜩 생각해보니, 진짜 후보시절 언급했던 호텔경제학을 현실에서 실현시키는건가 싶기도 하다.

=끝

생각정리 369 (* Diesel, The Last Barrel Standing)

지난밤 경유 Diesel 시장에 여러 뉴스가 동시다발적으로 나와서 추가 리서치 기록을 남겨본다.


https://x.com/CEOinterview/status/2100329180709986387


ATH

원유가 남아도 경유는 부족할 수 있다. 그리고 이제 경유는 단순한 정제제품이 아니라 전쟁·선거·물가를 연결하는 전략물자가 되고 있다.


지난 생각정리 368에서는 현재 원유시장의 병목이 유전에서 운송과 정제로 이동했다는 점을 정리했다.

이번에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보고자 한다.

최근 뉴스들을 연결해 보면 러시아는 자국 내 부족을 이유로 경유 수출을 금지했고,
중국과 인도에서는 정유사 감산과 수출 제한 가능성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도 사상 최고 수준의 경유 가격을 낮추기 위해 수출금지 논의가 등장했다.
프랑스에서는 이미 주유소의 약 **10%**가 적어도 한 종류의 연료 공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각각의 뉴스는 별개처럼 보이지만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된다.

세계 경유시장은 ‘가격이 오르면 수출이 늘어나는 시장’에서 ‘가격이 올라도 정부가 수출을 막는 시장’으로 변하고 있다.

이 변화가 중요하다.

경유의 부족은 원유 부족보다 훨씬 빠르게 실물경제에 전달된다. 트럭·농기계·건설장비·광산·철도·선박·난방에 사용되기 때문이다. 경유가격은 소비자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물류비, 식품가격, 산업생산과 연결된 비용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개인적인 기본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글로벌 경유시장은 2026년 4분기부터 2027년 상반기까지 구조적 공급부족 상태가 이어지고,
2027년 하반기에야 균형권에 접근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2027년 하반기의 정상화도 원유생산 증가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호르무즈 해협의 물류 정상화, 중동 정유시설 가동률 회복, 러시아 정유시설 복구, 중국의 제품수출 재개가 모두 필요하다.


1. 지금 발생하고 있는 일: 부족이 수출금지를 부르고 있다


2026년 9월 IEA는 경유·가스오일이 전 세계 석유수요의 약 **30%**를 차지하며, 미국 경유가격이 배럴당 200달러를 넘어 전쟁 이전보다 94% 상승했다고 밝혔다.



중동 걸프 국가의 8월 경유·가스오일 순수출은 하루 39만 배럴로 전쟁 전의 약 4분의 1까지 감소했다. 여기에 러시아의 정유 차질이 겹치면서 걸프와 러시아의 경유 순수출은 2월 대비 하루 160만 배럴 줄었다. 두 지역은 전쟁 전 전 세계 해상 경유교역의 약 **45%**를 담당했다. IEA Oil Market Report, September 2026


하루 160만 배럴은 전 세계 경유수요 약 3,000만 배럴의 5% 정도다. 그러나 실제 충격은 5%보다 크다. 글로벌 경유 전량이 국제시장에서 거래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각국에서 생산과 동시에 소비되는 물량을 제외하면 해상교역 시장에서 사라진 비중은 훨씬 커진다.

러시아


러시아는 국내 연료부족과 정유시설 가동중단을 이유로 경유·가스오일·선박연료 수출금지를 9월 30일까지 연장했다. 비생산자의 경유 수출과 휘발유 수출은 2027년 1월 말까지 금지한 상태다. 러시아는 통상 미국에 이어 세계 2위권 경유 수출국이다. Reuters 보도

중요한 점은 러시아의 조치가 제재에 의한 수출 감소가 아니라는 것이다. 러시아 정부가 국내 재고를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해외 공급을 차단한 것이다.

중국과 인도


중국 국영기업의 경유재고는 최근 한 주 동안 2.4% 감소해 15개월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휘발유 재고도 2022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중국은 이미 미·이란 전쟁 초기 제품수출을 제한한 경험이 있으며, 시장에서는 4분기 중국의 휘발유·경유·항공유 수출 허용량이 월 120만 톤 수준으로 다시 축소될 가능성을 보고 있다. Bloomberg 보도

중국과 인도의 중요성은 이들이 최대 생산국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중동과 러시아의 수출이 감소할 때 부족분을 메워 줄 것으로 기대했던 스윙 공급자이기 때문이다.

이들 국가가 높은 원유조달비용과 낮은 국내재고를 이유로 정유가동률을 낮추거나 수출을 제한하면, 시장이 기대했던 마지막 완충장치가 사라진다.

미국


미국에서는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 존 튠이 경유 수출금지를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 평균 경유가격이 갤런당 6달러를 넘어섰고 중간선거를 앞두고 물가 압력이 커졌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 정부 관계자와 시장 전문가들은 수출금지가 일시적으로 미국 내 가격을 낮출 수는 있어도 해외가격을 더 높이고, 결국 글로벌 물가와 미국 금리까지 자극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Axios

미국의 정제 여유도 과거보다 크지 않다. 2026년 1월 기준 미국 정제능력은 하루 1,820만 배럴로 전년 대비 25만 배럴 이상 감소했다. 2025년 폐쇄된 두 정유공장만 합쳐도 약 40만 b/d의 설비가 사라졌다. EIA

미국은 정제시설을 조금씩 shutdown 중이였음.

프랑스


프랑스 정부에 따르면 전국 주유소의 약 **10%**가 적어도 한 종류의 연료 공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는 이를 전국적인 절대적 품절로 규정하지 않고 있지만, 정부 모니터링 기준 공급차질 주유소 비율은 9월 12일 8%에서 14일 **13%**로 상승했다. AFP·Connaissance des Énergies

러시아의 수출금지는 생산국 내부의 부족이고, 중국의 재고 감소는 스윙 공급자의 후퇴이며, 미국의 수출금지 논의는 최종 대체 공급자까지 자국 시장을 우선할 수 있다는 신호다. 프랑스의 주유소 공급차질은 이 문제가 금융시장의 크랙 스프레드를 넘어 최종 소비자에게 도달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2. 뉴스에서 읽어야 할 Semantic Meaning


최근 사건들의 의미는 단순히 “경유가 부족하다”는 데 있지 않다.


첫 번째 의미는 경유시장의 내수 우선주의다.

수출금지는 새로운 경유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러시아 소비자에게 남겨 둔 경유는 중앙아시아와 유럽 소비자에게서 사라지고, 미국 내 가격을 낮추기 위해 수출을 막으면 중남미와 유럽의 가격은 더 올라간다.

글로벌 경유쇼티지로 떡상하는 나이지리아 정제제품 수출량



그 결과 하나의 글로벌 가격으로 연결됐던 경유시장은 여러 개의 국내시장으로 분절된다. 각 정부는 자국 가격을 안정시키지만, 국제시장에 남아 있는 물량은 더욱 줄어든다.

두 번째 의미는 가격 신호의 고장이다.

정상적인 시장에서는 경유 크랙이 상승하면 정유사가 가동률을 높이고 수출을 늘린다. 그러나 정부가 수출쿼터나 수출금지를 적용하면 높은 국제가격이 추가 공급을 유도하지 못한다.

공급곡선이 물리적으로 비탄력적인 것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정치적으로 비탄력적인 시장이 되는 것이다.

세 번째 의미는 수출금지의 도미노 효과다.

한 국가가 수출을 차단하면 수입국은 재고를 더 쌓으려 하고, 다른 수출국도 국내 부족을 우려해 수출을 제한한다. 이후 국제시장 재고가 감소하고 백워데이션이 확대되면 각국의 사재기 유인은 더욱 강해진다.

개별 국가 입장에서는 합리적이지만 전체 시장의 부족은 심화되는 전형적인 죄수의 딜레마다.

트럼프 발언이 갖는 의미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이 세계 경유 부족을 만들고 있다며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공격 중단을 요구했다. 그는 “다른 목표물도 많다”며 경유 생산·유통시설을 별도로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AP

내가 여기서 보는 핵심은 트럼프가 원유가 아니라 경유를 특정했다는 점이다.

이는 미국 정부가 현재의 에너지 문제를 원유생산량보다 정유시설과 제품 공급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동시에 경유가격이 외교·안보정책의 결과변수가 아니라 정책결정 자체에 영향을 미치는 독립변수가 됐다는 의미다.

경유가격은 트럭 운송비, 농산물 가격, 건설비, 제조업 원가를 통해 빠르게 물가로 전이된다. 미국 중간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경유가격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정책보다 더 직접적인 정치적 제약이 될 수 있다.

다만 트럼프가 주장한 에너지 휴전은 확정된 협정으로 보기 어렵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에너지 인프라 공격을 중단하고 미국이 이를 보장할 경우에만 상호 중단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후에도 양측의 에너지·산업시설 공격은 이어졌다. The Guardian

따라서 트럼프의 발언은 공급 정상화의 확정 신호가 아니다.

오히려 경유가격이 전쟁 협상에 영향을 줄 정도로 시장의 완충재고가 얇아졌다는 신호에 가깝다.

(*참고로 트럼프는 1기 행정부 당시 엑슨모빌 CEO 출신인 렉스 틸러슨을 국무장관에 임명했을 만큼, 에너지가격이 미국경제와 자신의 정치적 입지에 미치는 영향을 잘 이해하는 인물이다.)


3. 경유 End-market과 수요탄력성


경유수요는 하나의 수요가 아니다.

화물차의 경유, 농기계의 경유, 승용차의 경유, 난방용 가스오일은 가격과 경기 변화에 다르게 반응한다. 따라서 경유수요가 경기에 민감한지를 판단하려면 최종 수요처를 나누어 봐야 한다.

아래 비중은 UN Energy Statistics, IEA의 도로교통 연료 분석, EIA 최종수요 분류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개인적 분석치다. 국가별 분류 차이 때문에 1~3%p의 오차가 있을 수 있다.




경유수요는 가격에 둔감하다


Carol Dahl이 63개 경유수요 연구, 343개 추정치를 정리한 데이터베이스에서 경유의 가격탄력성 중앙값은 단기 -0.10, 중기 -0.16, 장기 -0.33이었다. 소득탄력성 중앙값은 단기 +0.33, 중기 +1.00, 장기 +1.29로 집계됐다. Dahl Energy Demand Database

가격탄력성이 -0.10이라는 것은 경유가격이 10% 상승해도 단기 수요는 약 1%밖에 감소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한국의 1986~2011년 데이터를 사용한 연구도 단기 가격탄력성 -0.357, 장기 -0.547을 제시했다. 소득탄력성은 각각 1.589, 1.478이었다. 수치는 글로벌 중앙값보다 높지만, 가격보다 경제활동 변화에 더 민감하다는 방향성은 동일하다. Short-Run and Long-Run Elasticities of Diesel Demand in Korea

End-market별 비중과 대체 가능성을 적용해 계산한 6~12개월 글로벌 경유 가격탄력성은 대략 -0.10~-0.20, 중심값은 -0.13이다.

즉 경유 소매가격이 50% 상승해도 단기 수요 감소는 대략 5~10%, 하루 150만~300만 배럴 수준에 머무를 가능성이 높다. 이마저 모든 국가에서 가격 상승분이 소비자에게 전달되고 높은 가격이 수개월간 유지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그러나 경기에 완전히 둔감한 것은 아니다


경유의 핵심 수요처인 화물운송, 건설, 광산, 선박은 산업생산과 교역량에 연결돼 있다. 이 때문에 경유는 휘발유보다 생활 필수성이 높지만 동시에 제조업 경기와 물동량에는 더 민감할 수 있다.

개인적인 추정으로 6~12개월 글로벌 GDP 또는 산업활동 탄력성은 약 +0.3~+0.6이다. 세계 성장률이 기존 전망보다 1%p 낮아질 경우 경유수요는 약 0.3~0.6%, 하루 9만~18만 배럴 감소하는 정도다.

심각한 제조업·교역 침체가 동반된다면 하루 40만~80만 배럴의 수요 감소도 가능하다. 그러나 현재 걸프와 러시아에서 감소한 경유 순수출 하루 160만 배럴을 경기둔화만으로 상쇄하려면 단순한 저성장이 아니라 상당한 수준의 글로벌 침체가 필요하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경유는 단기적으로 가격에는 매우 둔감하고, 경기에는 중간 정도로 민감하다.

경유수요의 약 23%는 농업·난방·철도·선박처럼 즉각 줄이기 어려운 영역이다. 도로 화물에서도 식품, 의약품, 생필품 운송은 경기가 둔화돼도 유지된다. 결국 경기침체가 오면 수요는 감소하지만 공급부족을 해결할 만큼 빠르게 감소하지는 않는다.

가격 전가가 빠르다는 문제


IMF의 2026년 연구에 따르면 국제 경유가격 충격의 약 3분의 1이 즉시 소매가격에 반영되고, 평균 누적 전가율은 약 0.8, 최고점 도달까지 약 3개월이 걸린다. 선진국과 순수입국의 전가율은 더 높고, 가격 상승은 하락보다 빠르게 반영된다. IMF, Pumps and Plates

따라서 경유가격 상승은 수요를 빠르게 줄이지는 못하면서 운송비와 식품가격에는 빠르게 전가된다.

이것이 경유 충격이 갖는 가장 불편한 특성이다.

수요파괴가 나타나기 전에 인플레이션이 먼저 나타난다.




4. 2026~2027년 글로벌 경유 수급 전망


아래 전망은 IEA와 EIA의 원유·정제가동률 전망에 내가 추정한 경유 수요, 정유수율, 수출제한, 재고 흐름을 반영한 조건부 모델이다.

여기서 공급은 단순 정유생산량이 아니라 국제교역과 재고 방출을 포함해 최종시장에 실제로 공급 가능한 경유·가스오일 물량을 의미한다.

중요한 것은 원유 공급감소, 정유가동 손실, 제품수출 감소를 별도로 모두 더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같은 배럴이 원유단계, 정제단계, 수출단계에서 중복 계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본 시나리오



2026년 평균 수급부족은 하루 약 55만 배럴, 연간 재고 감소는 약 2억 배럴로 추정한다.

2027년에는 공급이 회복되지만 상반기까지 약 8,100만 배럴의 추가 재고 감소가 발생한다. 하반기 예상 재고 증가는 약 2,800만 배럴에 그쳐 2027년 연간으로도 약 5,300만 배럴의 재고가 더 감소한다.

이는 IEA가 발표한 전체 석유재고 감소와 구분해야 한다. IEA에 따르면 2026년 2~8월 관측 가능한 전체 석유재고는 5억700만 배럴, 하루 평균 280만 배럴 감소했다. 위 표는 그중 경유·가스오일 부분을 따로 추정한 것이다.

2027년 공급회복의 구성


기본 시나리오에서 2027년 4분기 경유 공급은 2026년 4분기 대비 하루 약 190만 배럴 증가한다.



이를 대략적으로 분해하면 다음과 같다.

  • 중동 정유·수출 정상화: +0.8~1.0 mb/d

  • 러시아 정유시설 및 수출 부분 회복: +0.3~0.5 mb/d

  • 중국·인도 등 아시아 스윙 정유사의 수출 회복: +0.3~0.5 mb/d

  • 기타 신규설비와 가동률 개선: +0.2~0.3 mb/d

  • 정기보수·폐쇄·품질 및 물류 제약: -0.2~-0.4 mb/d



핵심은 신규 정유설비보다 기존 시설의 정상화다.

EIA도 미국 증류유 재고가 2026년 9월 1억 배럴 아래로 떨어지고, 2027년 대부분 기간 동안 최근 5년 최저범위를 밑돌 것으로 전망한다. 러시아 정유시설 가동중단의 영향도 2027년 상반기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EIA Short-Term Energy Outlook

EIA 기본 전망에서는 미국 경유 크랙이 2026년 8~11월 갤런당 2달러 이상을 기록한 뒤 2027년 중반까지 점진적으로 하락한다. 하지만 이는 호르무즈 해협의 탱커 운항이 정상화된다는 전제다. 물류제약이 2026년 말 이후에도 지속되면 크랙은 전망보다 높게 유지될 수 있다.

세 가지 시나리오




현재로서는 기본 시나리오의 가능성을 가장 높게 본다.

다만 시장의 비대칭성은 공급부족 쪽에 있다. 중국과 미국이 동시에 수출을 제한하면 세계 1·2위권 대체 공급자가 모두 국내시장을 우선하게 된다. 반대로 공급이 빠르게 회복되려면 중동 물류, 러시아 정유, 아시아 원유조달이라는 세 조건이 동시에 개선돼야 한다.


5. 결국 봐야 하는 것은 원유가 아니라 경유의 이동이다


원유시장은 2027년 공급 증가를 예상하고 있다. IEA도 2027년 전체 석유공급이 하루 800만 배럴 반등하고, 수요는 260만 배럴 회복할 것으로 전망한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공급과잉이다.

그러나 정유시설이 손상돼 있고, 중동 제품선 운항이 제한되고, 러시아·중국·미국이 수출을 통제한다면 그 원유는 필요한 지역의 경유로 전환되지 못한다.

따라서 2027년 경유시장의 핵심 질문은 “원유가 얼마나 생산되는가”가 아니다.

원유가 어디에서 정제되고, 생산된 경유가 국경을 넘어 이동할 수 있는가가 핵심이다.

앞으로 확인해야 할 선행지표도 달라진다.

첫째, 걸프와 러시아의 경유 순수출이 2월 대비 감소한 하루 160만 배럴 중 얼마나 회복되는지 봐야 한다.

둘째, 중국의 경유재고와 제품수출쿼터를 확인해야 한다. 중국이 수출을 재개하면 아시아 경유 크랙이 먼저 안정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중국이 수출을 제한하면 한국·싱가포르 정유사가 사실상 마지막 스윙 공급자가 된다.

셋째, 미국 증류유 재고가 1억 배럴을 회복하는지 봐야 한다. 재고가 낮은 상태에서 수출금지 논의가 지속되면 경유가격은 경제논리보다 정치 일정에 더 민감해질 수 있다.

넷째, 디젤 크랙과 선물시장의 백워데이션을 원유가격과 분리해서 봐야 한다. 원유가 하락해도 경유 크랙과 근월물 프리미엄이 유지된다면 정제·제품 병목은 해소되지 않은 것이다.

글을 마치며


이번 경유 위기를 단순한 유가상승으로 해석하면 중요한 부분을 놓치게 된다.

현재의 문제는 원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필요한 지역에서 원유를 정제하지 못하고,
생산한 경유를 필요한 국가로 이동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수요 측면에서도 경유는 쉽게 줄어들지 않는다. 가격탄력성은 단기 -0.10~-0.20에 불과하고, 농업·난방·필수물류 수요는 경기침체에도 남는다. 세계경제가 둔화되면 수요는 감소하겠지만 일반적인 경기둔화만으로 현재의 공급손실을 모두 상쇄하기는 어렵다.

트럼프가 우크라이나에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 중단을 요구한 것은 이 시장의 변화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경유는 더 이상 원유에서 파생되는 여러 제품 중 하나가 아니다.

전쟁의 목표물을 바꾸고, 선거정책을 바꾸며, 각국 정부가 국경을 닫게 만드는 전략물자가 됐다.

내 기본 시나리오대로라면 가장 경유 공급부족이 심화되는 시기는 2026년 4분기부터 2027년 2분기까지다. 2027년 하반기에는 수치상 균형에 접근할 수 있지만, 그때도 재고는 충분히 회복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가격이 하락한다고 부족이 끝났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경유시장의 진짜 정상화 신호는 가격 하락이 아니라 수출 재개, 재고 증가, 백워데이션 완화가 동시에 나타나는 것이다.

(전쟁으로 부셔진 정제공장 다시 수리하고, 고쳐써야겠지..? 그것마저 안되면 그냥 새로 짓던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