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13일 월요일

생각정리 309 (* 국무회의, 발전, 전력설비, 전력요금)

퇴근 후 집에서 아내와 저녁을 먹으며 국무회의 생중계 영상을 봤다.

전력설비와 전기요금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지던 중, 이유를 정확히 설명하기 어려운 답답함이 밀려왔고 결국 나도 모르게 버럭 짜증을 내고 말았다. 이후 아내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한 뒤, 도대체 무엇이 나를 그렇게 불편하게 만들었는지 차분히 되짚어봤다.

나는 왜 정부 관계자들이 전력설비와 전기요금 정책을 이야기할 때마다, 내용을 끝까지 듣기도 전에 답답함과 짜증부터 느끼는 것일까.

어쩌면 이러한 감정은 내가 다른 사람보다 에너지 산업과 정책을 조금 더 많이 이해하고 있다는 건방진 자만심에서 출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현장에서 직접 정책을 설계하고 집행하는 사람들의 고민과 제약을 충분히 알지도 못하면서, 몇 가지 숫자와 산업구조를 안다는 이유로 상대의 발언을 쉽게 단순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경계할 필요도 있지 않나 싶다. 

다만 감정을 한 차례 걷어내고 다시 들어봐도 여전히 답답함이 남았다. 정책이 지향하는 목표와 이상적인 방향은 그럴듯했지만, 실제 현실에서 이를 구현하기 위해 부담해야 할 비용과 이해관계의 충돌, 상업성과 인프라 제약에 대한 설명은 거의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래의 글은 그 순간 느꼈던 짜증을 정당화하기 위한 기록이라기보다, 내가 무엇에 답답함을 느꼈는지 스스로 확인하기 위해 정리한 생각에 가깝다.

https://www.youtube.com/watch?v=QZ_xb6VoXmY&t=605s


남는 전력을 활용하면 된다는 말에 빠져 있는 비용


정부가 제시하는 전력 수요관리 정책의 방향은 상당히 합리적으로 들린다.

전력이 남는 시간에는 가격을 낮추고 부족한 시간에는 가격을 높여 수요를 이동시킨다. 전기차, 히트펌프, ESS와 VPP를 활용해 기존 발전설비의 이용률을 높이고, 피크 수요만을 위해 발전소를 계속 건설하는 부담을 줄이자는 구상이다.

정책적 목표만 놓고 보면 반대하기 어렵다.

다만 현실에서는 전력이 남는다는 사실과 그 전력을 필요한 장소에서 경제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 사이에 상당한 거리가 존재한다.

이번 논의에서는 가격 신호와 수요관리의 기술적 가능성은 비교적 자세하게 설명됐지만, 실제 상업성을 결정하는 송전망 투자, 토지 보상, 배전망 증설, 인허가 지연, 소비자 설비비와 금융비용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

앞선 글에서도 언급했듯, 전력산업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는 발전소를 짓는 행위보다 발전한 전력을 실제 수요처까지 전달하는 과정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관련 글: 생각정리 296

1. 남는 발전용량과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은 다르다


전력은 특정 시간에 발전량이 남는다고 해서 전국 어디에서든 즉시 사용할 수 있는 재화가 아니다.

전기가 경제적 가치를 가지려면 발전지역과 수요지역 사이에 충분한 송전선로, 변전소와 배전망이 구축돼 있어야 한다. 발전량이 충분하더라도 송전선로가 포화돼 있거나 변전소 접속용량이 부족하면, 값싼 전력을 필요한 지역으로 보낼 수 없다.

따라서 전력의 실질적인 잉여 여부는 단순한 전국 발전량이 아니라 다음 조건을 함께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

발전량 × 시간대 × 지역 × 송전망 여유 × 변전·배전망 수용 능력

국제에너지기구 역시 수요반응과 저장설비가 전력시스템 비용을 낮출 수 있지만, 이 효과를 실현하려면 전력망과 시장제도, 디지털 인프라가 함께 뒷받침돼야 한다고 설명한다.

출처: IEA, Electricity 2026: Flexibility (IEA)

실제 한국에서도 발전설비는 존재하지만, 전기를 수송할 송전망이 부족해 발전소 출력을 제한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345kV 북당진~신탕정 송전선로는 충남 서해안의 발전전력을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해 추진됐지만, 2003년 사업 착수 이후 2024년 최초 가압까지 21년이 걸렸다. 사업 지연기간만 146개월에 달했다.

한전은 이 기간 서해안 발전소에서 전력을 생산할 능력이 있었음에도 이를 수송할 전력망이 부족해 발전제약이 지속됐다고 설명했다.

출처: 한국전력, 345kV 북당진~신탕정 송전선로 준공 (한국전력공사)

이 사례는 발전용량이 남는다는 표현이 발전단의 설명에 불과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수요처에서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의 비용은 발전비만으로 계산할 수 없다.

발전비
+ 송전선로 건설비
+ 변전·배전설비 투자비
+ 토지 및 선하지 확보비
+ 주민 보상비
+ 인허가 비용
+ 사업 지연에 따른 금융비용

이 모든 비용을 더한 결과가 수요처에 도달하는 전력의 실질적인 비용이다.

생각정리 92 (*반도체, 전력문제, 병림픽3)

실질적인 비용함수를 모두 생략한 채 유휴 발전용량만 이야기한다면,
태양에너지는 우주에 무한히 존재하니 인류가 에너지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중요한 것은 에너지가 존재하느냐가 아니라,
그 에너지를 필요한 장소와 시간에 얼마의 비용으로 전달하고 사용할 수 있느냐이기 때문이다.

2. 송전망은 전기공사가 아니라 장기 개발사업이다


대규모 송전선로는 계획을 세운 뒤 곧바로 착공할 수 있는 설비가 아니다.

한국전력이 제시한 표준공기만 보더라도 765kV 송전설비는 약 10년, 345kV는 약 9년에서 9년 3개월, 154kV는 약 6년 6개월에서 7년 6개월이 필요하다.

이마저도 주민 협의와 인허가가 정상적으로 진행된다는 전제 아래 산정된 표준기간이다.

출처: 한국전력, 가공 송전선로 건설절차 (한국전력공사)

실제 송전망 건설에는 입지선정위원회 구성, 주민대표와 지방자치단체 협의, 주민설명회, 환경영향평가, 관계부처 협의, 전원개발사업 승인, 용지매수와 개별 인허가가 포함된다.

국토계획법, 도로법, 농지법과 산지관리법 등 여러 법률도 동시에 적용된다.

송전망 건설기간은 순수한 시공기간보다 토지 확보와 주민 협의, 행정절차에 더 크게 좌우될 수 있다.

출처: 한국전력, 송전선로 입지선정·인허가 절차 (한국전력공사)

결국 송전망 사업은 전선을 설치하는 기술적 프로젝트를 넘어선다.

수십에서 수백 킬로미터의 노선이 여러 행정구역과 사유지를 통과하고, 토지 소유자와 지역 주민, 지방자치단체, 환경단체, 중앙정부와 건설사업자의 이해관계가 겹친다.

전기를 소비하는 수도권과 산업단지는 송전망 건설의 편익을 얻지만, 철탑과 변전소를 수용하는 지역 주민은 재산권 제약, 경관 훼손과 공사 불편을 부담한다.

전력망의 편익은 수요지역에 집중되는 반면, 물리적 비용은 경유지역이 부담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3. 지상화와 지하화 모두 비용함수가 무겁다


지상 송전선로는 철탑 부지와 선하지를 확보해야 한다.

경관 훼손과 재산권 침해, 전자파에 대한 우려와 주민 반대가 발생하고, 송전선로 주변지역에 대한 재산적 보상과 지역지원 비용도 필요하다.

한전의 송·배전용 전기설비 이용규정에서도 송전선로 선하지 보상과 권원 확보비용, 전용 개폐소 부동산의 매입·임차비용을 접속비용에 포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출처: 한국전력, 송·배전용 전기설비 이용규정 (한국전력공사 홈페이지)

반대로 송전선로를 지하화한다고 문제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지중 송전망은 경관 훼손과 철탑 관련 민원을 줄일 수 있지만, 전력구와 관로, 맨홀, 고압 케이블 설치가 필요하다. 도심에서는 도로 굴착, 교통 통제, 기존 상하수도·통신시설 이설과 도로 원상복구 비용까지 추가된다.

한국전력도 지중송전을 전력케이블을 전력구와 관로, 맨홀 등에 설치하는 별도의 지하 전력망으로 구분하고 있다.

출처: 한국전력, 송배전사업—가공송전과 지중송전 (한국전력공사)

미국 에너지부에 따르면 신규 송전선로의 지중화 비용은 일반적으로 가공선로보다 약 3~10배, 기존 가공선로를 지중화하는 비용은 약 1.5~5배 높을 수 있다.

지역의 토질, 전압, 인건비, 터널과 냉각설비 필요 여부에 따라 비용 차이는 더 커질 수 있다.

출처: 미국 에너지부, Undergrounding Transmission and Distribution Lines (The Department of Energy's Energy.gov)

결국 지상화는 토지와 주민 수용성 비용이 크고, 지하화는 토목공사와 설비비용이 크다.

어느 방식을 선택하더라도 발전소에서 수요처까지 전력을 이동시키기 위한 비용은 발전단가와 별도로 발생한다.

4. 한국형 알박기와 보상 협상의 시간가치


앞선 글에서는 대형 전력망과 인프라 사업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한국형 ‘알박기’라는 표현으로 설명했다.

모든 송전망 사업에서 투기적 토지 선점이 발생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송전선로나 변전소가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병목 부지가 존재하고, 토지 소유자의 동의와 권리 확보가 전체 사업 일정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에서는 일부 토지 소유자의 협상력이 크게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노선이 공개되거나 개발 가능성이 알려지면 토지 선점과 지분 분할, 보상 기대가 발생할 수 있다. 사업자가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민원과 소송, 인허가 지연과 노선 변경 가능성이 커지고, 반대로 사업을 서둘러 높은 보상을 수용하면 총사업비가 상승한다.

이 부분은 사업별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확인해야 하지만, 토지 권리 확보가 접속비용과 사업기간에 직접 반영된다는 구조 자체는 한전의 이용규정에서도 확인된다.

출처: 한국전력, 접속설비용 부동산 및 지상권 처리기준 (한국전력공사 홈페이지)

문제는 보상비 자체보다 지연기간 동안 전체 프로젝트의 비용이 복리처럼 증가한다는 점이다.

토지 협의 지연
→ 인허가 지연
→ 착공 지연
→ 이자비용 증가
→ 자재비·인건비 재산정
→ 추가 보상 요구
→ 총사업비 재상승

송전망이 완공되지 않는 동안 발전소의 출력제약과 산업단지·데이터센터의 접속 지연도 계속된다.

따라서 사업 지연의 경제적 비용은 송전망 건설비에만 머무르지 않고, 발전제약과 기업 투자 지연에 따른 기회비용으로 확대된다.

한국의 토지 보상과 인허가 구조를 고려하면, 남는 발전용량을 수요처까지 끌어오는 총비용이 당초 예상보다 천문학적으로 불어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5. 발전소가 놀고 있다는 표현도 신중하게 봐야 한다


피크 시간에 대비해 건설된 발전소가 평상시 충분히 가동되지 않는다는 지적에는 일정 부분 타당성이 있다.

그러나 가동률이 낮은 발전설비와 이에 지급되는 용량요금을 모두 낭비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전력시스템은 폭염과 한파, 발전기 고장, 송전망 사고와 예상보다 빠른 수요 증가에도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예비자원을 보유해야 한다.

용량시장은 발전사업자에게 실제 생산한 전력량만 보상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과 대기상태를 유지하는 것에 보상하는 구조이다.

출처: FERC, Understanding Wholesale Capacity Markets (Federal Energy Regulatory Commission)

용량요금이 적정한지, 특정 발전원에 과도한 보상이 지급되는지는 별도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다만 이를 단순히 놀고 있는 발전소에 지급하는 비용으로만 해석하면 정전 위험과 계통 신뢰도에 대한 보험가치가 제외된다.

예비력을 너무 적게 확보하면 정전과 가격 급등 위험이 커지고, 지나치게 많이 확보하면 소비자가 부담하는 고정비가 늘어난다.

용량요금은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낭비라기보다, 어느 정도의 공급 안정성을 얼마의 비용으로 확보할 것인가의 문제에 가깝다.

6. 다이내믹 프라이싱은 비용을 없애기보다 재배분한다


시간대별 전기요금은 수요를 전력이 남는 시간으로 이동시키는 데 유효한 정책이다.

IEA는 수요 유연성이 피크 발전설비와 전력망 투자 부담을 낮추고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을 흡수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

출처: IEA, Scaling Up Demand Flexibility (IEA)

다만 이 효과는 소비자가 실제로 전력 사용시간을 변경할 수 있을 때 발생한다.

반도체, 철강, 석유화학과 데이터센터처럼 연속 운전이 필요한 시설은 전력가격이 높아도 설비 가동을 쉽게 중단하기 어렵다.

데이터센터도 일부 연산을 다른 시간이나 지역으로 이동시킬 수 있지만, 서버와 냉각설비, 네트워크의 기본부하는 24시간 유지해야 한다.

가정에서도 낮에 사람이 없거나 저장설비가 없다면 전기가 싸더라도 소비를 크게 늘리기 어렵다.

전기가 저렴한 시간대로 소비를 이동하려면 다음과 같은 설비가 필요하다.

스마트계량기
+ 통신망
+ 자동제어 시스템
+ 가정용 에너지관리 소프트웨어
+ ESS 또는 축열설비
+ 새로운 요금 정산시스템

FERC도 수요반응을 전력가격이나 인센티브에 따라 정상적인 소비패턴을 변경하는 행위로 정의하며, 이를 구현하기 위해 시간별 사용량을 측정·전송할 수 있는 첨단계량 인프라가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출처: FERC, 2025 Assessment of Demand Response and Advanced Metering (Federal Energy Regulatory Commission)

결국 다이내믹 프라이싱은 전력시스템의 비용을 제거하기보다 가격 변동 위험과 설비투자 부담의 일부를 소비자에게 이전한다.

자동제어와 저장설비를 갖추고 사용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소비자는 혜택을 얻지만, 전력 사용시간을 변경하기 어려운 소비자는 높은 피크요금을 부담할 가능성이 크다.

7. 히트펌프의 기술적 효율과 상업성은 별개의 문제다


히트펌프는 기술적으로 에너지효율이 높은 설비다.

외부의 열을 이동시키는 방식이기 때문에 전기를 직접 열로 바꾸는 전열기보다 투입전력 대비 난방효율이 높다.

그러나 기술적으로 효율적이라는 사실과 소비자에게 경제적이라는 사실은 서로 다르다.

히트펌프의 상업성은 초기 설치비, 전기요금과 가스요금의 상대가격, 건물의 단열성능, 난방수 온도, 외기온도와 사용패턴에 따라 달라진다.

IEA도 히트펌프의 높은 초기 구매·설치비를 보급 확대의 주요 장애물로 평가하고 있으며, 상당수 국가가 보조금과 저리 금융을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출처: IEA, The Future of Heat Pumps (IEA)

한국 아파트에서는 다음과 같은 추가적인 제약이 발생한다.

실외기와 축열조 설치공간
+ 바닥난방·온수배관 연결
+ 세대별 전기 인입용량 증설
+ 단지 변압기와 배전설비 보강
+ 공용부 공사와 입주민 동의
+ 소음·진동 및 유지보수 문제

IEA 역시 기존 건축물의 구조, 건물주와 임차인의 이해관계, 설치인력 부족과 건축규제를 히트펌프 보급의 주요 비가격 장벽으로 분류한다.

출처: IEA, Key Barriers to Heat Pump Deployment (IEA)

히트펌프가 대규모로 보급되면 도시가스 난방수요가 전력수요로 이동한다.

낮 시간에 충분한 축열이 이뤄지지 않거나 한파에 난방수요가 동시에 증가하면 겨울철 저녁 전력 피크가 새롭게 형성될 수 있다.

IEA도 히트펌프 확산이 전력수요를 증가시키므로 효율 향상뿐 아니라 전력망 계획과 수요관리 정책이 함께 추진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출처: IEA, Heat Pump Expansion and Grid Planning (IEA)

결국 히트펌프의 경제성은 기기의 효율계수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초기 설치비
+ 배관·전기공사비
+ 배전망 보강비
+ 유지보수비
- 가스비 절감액
- 전기요금 절감액
- 정부 보조금

이 계산이 기기 수명 전체에서 양의 값을 가져야 보조금 축소 이후에도 자발적인 시장이 형성될 수 있다.

8. VPP는 무료 발전소가 아니라 복잡한 운영사업이다


VPP는 전기차, 배터리, 히트펌프, 태양광과 산업체 부하를 하나로 묶어 전력시장에 참여시키는 구조다.

개념적으로는 새로운 발전소를 건설하지 않고도 피크 수요를 줄일 수 있어 매력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제 VPP는 단순한 소프트웨어 서비스가 아니다.

분산된 자원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측정하고, 고객별 사용제약을 반영하면서 전력시장 가격과 배전망 상황에 맞춰 원격 제어해야 한다.

미국 에너지부도 VPP의 상업화를 위해 고객 확보, 기기 간 상호운용성, 시장 접근, 규제 정비와 금융조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출처: 미국 에너지부, Pathways to Commercial Liftoff for Virtual Power Plants (The Department of Energy's Energy.gov)

수요감축 성과를 측정하는 것도 간단하지 않다.

소비전력을 얼마나 줄였는지 계산하려면 수요반응이 없었을 경우 해당 소비자가 얼마나 사용했을지를 나타내는 기준선이 필요하다.

기준선을 지나치게 높게 설정하면 실제 절감 없이 보상만 받을 수 있고, 너무 낮게 설정하면 참여자가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한다.

미국 에너지부도 수요반응의 비용효과를 평가할 때 고객의 정상적인 소비량을 추정하는 기준선 설정이 핵심 문제라고 설명한다.

출처: 미국 에너지부, A Framework for Evaluating the Cost-Effectiveness of Demand Response (The Department of Energy's Energy.gov)

VPP의 연결대상이 수백만 개의 가정용 기기와 전기차로 확대되면 사이버보안도 독립적인 비용항목이 된다.

기기 인증, 통신 암호화, 네트워크 분리, 공급망 보안, 침해사고 대응과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체계가 필요하다.

출처: 미국 에너지부, Cybersecurity Baselines for Distribution Systems and DER (The Department of Energy's Energy.gov)

결국 VPP의 상업성은 다음과 같은 비용함수로 평가해야 한다.

전력시장 수익
- 소비자 보상
- 배터리 열화비용
- 통신·계량·제어 시스템 비용
- 고객 확보 및 이탈관리 비용
- 예측오차와 불이행 비용
- 사이버보안 및 규제준수 비용

이 값이 안정적으로 양의 값을 가져야 VPP가 발전소를 실질적으로 대체할 수 있는 사업모델이 된다.

(할 수 있겠냐고..)

9. 전기요금 개편은 경제학보다 정치경제의 문제다


가정용 전기요금을 현실화하고 저소득층에는 에너지 바우처를 제공하는 방안은 경제학적으로 정합성이 있다.

다만 실제 가구의 전력소비는 소득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가구원 수, 주택 면적과 단열성능, 노인과 영유아 거주 여부, 재택근무, 의료기기 사용과 지역별 기온에 따라 소비량이 달라진다.

따라서 가정용 요금을 인상하고 소득 하위계층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면, 지원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전력소비를 줄이기 어려운 중간소득 가구가 큰 부담을 질 수 있다.

OECD도 전기와 난방 에너지 관련 세금과 가격 부담이 소득 대비 저소득층에 더 크게 작용하는 역진적 성격을 가질 수 있다고 분석한다.

출처: OECD, The Distributional Effects of Energy Taxes (OECD)

산업용 전기요금을 낮추는 것도 단순하지 않다.

전력 다소비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보호할 필요는 있지만, 산업용 요금 인하분을 가정용 요금이나 정부 재정으로 충당하면 새로운 교차보조가 발생한다.

반대로 산업용 전기요금을 계속 낮게 유지하면 기업의 에너지효율과 공정개선 투자 유인이 낮아질 수도 있다.

전기요금에는 다음 목표가 동시에 얽혀 있다.

산업 경쟁력
+ 물가 안정
+ 한전의 재무구조
+ 취약계층 보호
+ 발전·송전망 투자 회수
+ 에너지효율 개선
+ 탄소감축
+ 지역 간 비용배분

모든 목표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요금체계는 존재하기 어렵다.

누군가의 요금을 정책적으로 낮추면 다른 소비자가 더 부담하거나, 정부 재정으로 보전하거나, 전력회사의 부채로 미래에 이연해야 한다.

가격 신호는 전력소비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지만, 비용을 부담하는 주체 자체를 없애주지는 않는다.

10. 필요한 것은 방향성이 아니라 전체 비용함수다


전력 수요관리, 다이내믹 프라이싱, 히트펌프와 VPP를 확대하려는 정책 방향 자체는 타당하다.

수요 유연성은 피크 수요를 완화하고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을 흡수하며, 일부 발전소와 전력망 투자를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정책의 경제성을 입증하려면 기대편익만이 아니라 이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모든 비용을 함께 계산해야 한다.

먼저 정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편익은 다음과 같다.

회피 가능한 발전소 투자비
+ 연료비 절감
+ 송전망 혼잡 완화
+ 탄소배출 감소
+ 에너지 수입 감소

여기에서 다음 비용을 차감해야 한다.

송전·배전망 증설비
+ 지상·지하 전력배선 및 토목공사비
+ 토지 취득과 선하지 보상비
+ 주민지원과 피해보상비
+ 인허가 및 환경평가 비용
+ 사업 지연에 따른 금융비용
+ 스마트계량기와 자동제어 설비비
+ 히트펌프·ESS·축열조 지원금
+ VPP 운영과 소비자 보상비
+ 배터리 열화와 유지보수비
+ 사이버보안과 정산비용
+ 소비자가 부담하는 가격 변동 위험

(*쓸때 없는 소리하지말고 대규모 전력 수요처(*chip fab, AI D/C) 인근 부지에 복합화력발전소나 지으세요..) 

특히 한국에서는 송전선로와 변전소 건설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토지 선점, 알박기, 보상 협상, 지역 민원과 지방정부의 이해관계를 비용함수의 중심에 포함해야 한다.

발전소에서 전력이 남는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값싼 전력이라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

그 전력을 수도권 데이터센터와 산업단지까지 전달하기 위해 대규모 배선공사와 토목공사를 시행하고, 수많은 토지 소유자와 지역 이해관계자를 설득하며, 보상비와 장기간의 금융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면 최종 전력비용은 완전히 달라진다.

전력망 투자는 단순한 전기공사가 아니라 토지개발·인허가·금융·정치적 이해관계가 결합된 초대형 인프라 사업이다.

결국 이번 논의는 전력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설명하는 담론으로는 설득력이 있다.

다만 실제 투자안과 사업모델의 관점에서 보면 CAPEX, 송전망 연결비용, 토지 보상, 배전망 증설, 보조금 의존도와 공사 지연에 대한 계산이 부족하다.

전력정책은 방향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전력이 남는 장소와 필요한 장소를 연결해야 하고, 그 사이에 놓인 모든 토지와 이해관계자, 인허가와 금융비용을 통과해야 한다.

이 현실적인 제약을 생략한 채 남는 전력을 활용하면 된다고 말하는 것은, 문제의 가장 어려운 부분을 건너뛴 설명에 가깝다.

=끝

생각정리 308 (* 버크셔, 애플, 메모리 IDM -2)


“SK하닉은 ‘돈나무’…韓정부·워싱턴 모두 흔들고 싶어해” 블룸버그 칼럼
뭔 뒷북 기사냐.. 
 그리고 내가 그간 이해하고 들은바에 따르면 끌려다닌건 IDM메모리사가 아니라 정부였는데..

위 컬럼처럼 이번 정부를 무능한 사회주의적 정부로만 규정하는 시각은 다소 과장돼 있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정부 정책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는 수동적인 기업으로 묘사하는 것 역시 현재의 협상 구도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이번 정부 출범 이후 지금까지 정치권과 메모리 IDM 기업들의 투자 논의, 세액공제 확대, 인프라 지원과 규제 완화 과정을 계속 추적해보면, 양측의 관계는 일방적인 요구와 수용이라기보다 국내 투자와 고용을 제공하는 기업과 세제·인프라·규제 지원을 제공하는 정부 사이의 협상에 가깝다.

특히 현재 메모리 공급과 기술 주도권을 확보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협상력은 과거보다 훨씬 강해졌다. 정부가 대규모 국내 투자를 필요로 하는 만큼, 기업들도 투자 지역과 시기, 자금조달 구조, 세제 혜택을 두고 상당한 조건을 확보했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 공개된 내용만 놓고 보면 이번 투자의 최종 수혜자는 메모리 IDM 기업들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정부 지원을 통해 투자 부담을 낮추면서도 생산능력과 시장 지배력은 확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아직 시장에 공개되지 않았거나 이미 공개됐지만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은 지원 조건과 자본조달 구조도 상당 부분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이번 글에서는 애플이 중국의 공급망과 정부 지원을 활용해 자본효율성을 높였던 사례와 비교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서남권 투자가 실제로 얼마나 무거운 CAPEX 부담으로 이어질 것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IDM은 CAPEX가 무거워 애플이 될 수 없는가


애플의 중국 생산망과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에서 생각해보는 ‘순 CAPEX’의 경제학


앞선 글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높은 이익률을 단순한 메모리 가격 상승의 결과로만 볼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봤다.

AI 메모리 수요가 구조적으로 증가하고, 공정기술·수율·첨단 패키징·고객 인증에서 만들어지는 진입장벽이 유지된다면 메모리 IDM의 정상 이익 수준도 과거보다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이에 대해 가장 먼저 제기될 수 있는 반론은 명확하다.

애플은 CAPEX가 가벼운 사업이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막대한 설비투자를 반복해야 하는 IDM이다. 따라서 애플처럼 높은 ROE와 ROIC, FCF 마진을 장기간 유지하기 어렵다.


일견 타당한 지적이다.

반도체 IDM은 팹 건물과 클린룸, 노광·식각·증착 장비, 전력과 용수 설비까지 직접 부담한다. 기술 전환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이미 보유한 장비도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다만 이 반론은 애플의 낮은 CAPEX가 만들어진 배경과, 향후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실질 투자부담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충분히 반영하지 않는다.

애플도 생산설비에 적지 않은 자본을 투입했다. 다만 제조에 필요한 전체 자본을 애플 혼자 부담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리고 최근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계획을 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역시 핵심 생산설비는 직접 통제하되, 팹 외부 인프라와 일부 자금 부담은 정부·지방정부·외부 투자자와 분담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1. 애플은 정말 CAPEX가 필요 없는 기업이었을까


1-1. 애플도 생산설비와 공정장비에 직접 투자했다


애플은 단순히 제품을 설계하고 폭스콘에 도면만 넘긴 기업이 아니었다.

애플의 2016년 연차보고서를 보면 회사는 제품 툴링과 제조공정 장비에 직접 투자했고, 그 장비의 상당 부분을 외주 생산업체 공장에 설치했다고 명시했다. 장기적인 부품 공급을 확보하기 위해 일부 공급업체에는 선급금도 지급했다.

2016회계연도 애플의 CAPEX는 약 128억달러였다. 당시 매출 2,156억달러의 약 **5.9%**에 해당한다.

애플의 CAPEX에는 다음과 같은 항목이 포함됐다.

  • 제품 생산용 금형과 툴링

  • 제조공정 및 검사 장비

  • 데이터센터

  • 사옥과 정보시스템 인프라

  • 애플스토어 관련 시설


중국에 위치한 애플의 장기 유형자산도 2016년 말 약 78억달러에 달했다. 애플은 중국 소재 장기자산의 상당 부분이 제품 툴링과 제조공정 장비라고 설명했다. (SEC)

따라서 애플을 생산설비에 전혀 투자하지 않는 순수한 무자산 기업으로 보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보다 정확한 표현은 다음에 가깝다.

애플은 제품 경쟁력과 생산 수율에 직접 영향을 주는 전용장비에는 투자했지만, 제조 생태계 전체의 고정자산과 노동력을 연결재무제표 안에 모두 보유하지 않았다.


생각정리 105 (* Apple in China)
 


1-2. 공장·노동력·운전자본은 공급업체가 부담했다


애플은 제품 설계, 운영체제, 브랜드, 유통과 가격결정권을 통제했다.

반면 실제 생산에서는 폭스콘과 페가트론 등 외주 생산업체가 다음 부담을 맡았다.

  • 대규모 공장 건물

  • 범용 조립설비

  • 생산직 인력과 기숙사 운영

  • 현장 재고와 운전자본

  • 성수기 인력 확충

  • 공장 운영과 생산관리


비용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애플은 부품과 완제품 구매가격을 통해 생산업체에 비용과 마진을 지급했다.

그러나 공장과 인력, 재고를 직접 보유할 때 발생하는 막대한 고정자산과 운전자본 부담은 애플의 재무제표 밖에 남았다.

애플은 핵심 생산장비에 선택적으로 투자하면서도 노동집약적 조립과 범용 생산자산은 공급업체에 맡겼다. 이 구조가 자산회전율과 ROIC, FCF 전환율을 높이는 중요한 배경이 됐다. 애플은 2016년에도 거의 모든 하드웨어 제품의 최종 조립을 주로 아시아에 위치한 외주업체에 의존한다고 공시했다. (SEC)


1-3. 중국 정부와 지방정부가 제조 인프라를 분담했다


애플의 중국 제조 생태계는 애플과 폭스콘의 자본만으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었다.

2016년 뉴욕타임스가 중국 정부 내부자료와 관계자 인터뷰를 바탕으로 분석한 정저우 ‘iPhone City’ 사례를 보면, 중국 지방정부는 폭스콘 공장과 주변 근로자 주택 건설에 15억달러 이상을 지원했다.

지원 범위는 단순한 토지 제공에 머무르지 않았다.

  • 공장과 근로자 기숙사 건설 지원

  • 도로와 발전소 건설

  • 에너지 및 운송비 보조

  • 생산라인 근로자 모집과 훈련

  • 수출 목표 달성 장려금

  • 세제 감면

  • 사회보험료 부담 축소

  • 시정부의 2억5,000만달러 대출

  • 인근 공항 확장에 100억달러 이상 투자 계획


정저우 지방정부는 폭스콘의 초기 5년간 법인세와 부가가치세를 면제하고, 이후 5년간은 일반 세율의 절반을 적용하기로 했다. 전력가격 할인과 물류비 보조, 신규 고용 보조금도 제공됐다. (Public Services Alliance)

형식적으로 이러한 혜택의 직접적인 수혜자는 애플이 아니라 폭스콘이었다.

애플 역시 폭스콘과 지방정부 사이의 구체적인 보조금 협상에 자신들이 직접 참여하지 않았으며, 개별 지원 규모를 알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폭스콘 공장이 사실상 iPhone 생산을 중심으로 운영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중국 정부의 지원은 결과적으로 애플 공급망 전체의 생산원가와 자본부담을 낮추는 역할을 했다.


1-4. 애플의 CAPEX가 가볍게 보였던 이유


애플이 매출과 이익 규모에 비해 낮은 CAPEX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제조업에 필요한 자본이 세 주체로 분산됐기 때문이다.


애플은 제조공정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하면서도, 제조 생태계 전체의 자산과 인력을 직접 소유하지 않았다.

결국 애플의 낮은 회계상 CAPEX는 생산에 자본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기보다, 필요한 자본을 공급업체와 공공부문에 효율적으로 분산한 결과에 가까웠다.

2016년 애플은 128억달러의 CAPEX를 집행하고도 약 531억달러의 FCF를 창출했다. 생산 규모를 확대하기 위해 필요한 경제적 자본의 상당 부분이 애플 본사의 재무제표 밖에서 공급됐기 때문에 가능했던 구조이다. (SEC)


결국 지난 12년 동안 애플은 낮은 설비투자 변동성과 높은 FCF 성장, 폭스콘은 빠른 설비투자 확대와 높은 현금흐름 변동성이라는 상반된 자본배분 구조를 보여준다.


1-5. 애플의 낮은 CAPEX를 해석할 때 핵심


애플의 자본효율성을 온전히 브랜드와 소프트웨어 생태계만의 결과로 해석해서는 부족하다.

브랜드와 생태계가 높은 가격과 반복 구매를 가능하게 했다면, 중국 공급망은 이를 대규모로 생산하면서도 애플이 부담해야 할 고정자산과 노동집약도를 낮췄다.

즉, 애플의 높은 ROIC와 FCF 마진은 다음 세 요소가 결합된 결과였다.

**강력한 브랜드와 가격결정력

  • 외주 생산을 통한 자산부담 분산

  • 중국 정부의 인프라·세제·노동 지원**

이는 애플의 경제적 해자가 소비자 수요 측면에만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공급망을 설계하고 자본부담을 배분하는 능력에도 존재했다는 의미이다.


2.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서남권 투자도 민관 분담 구조이다


최근 발표된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계획에서도 유사한 자본부담 분산 구조가 나타나고 있다.

물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애플과 달리 핵심 생산공정을 외주화할 수 없다.

웨이퍼 투입부터 전공정, 수율 관리와 HBM 생산까지 직접 통제해야 하므로 팹과 핵심 장비에 대한 투자부담은 여전히 기업에 남는다.

그러나 전체 프로젝트 투자액과 기업이 실제로 부담하는 순현금 투자액은 동일하지 않을 수 있다.


2-1. 기업 투자와 정부 지원이 하나의 MOU에 담겼다


2026년 6월 삼성전자와 SK그룹, 앰코는 정부와 ‘서남권 첨단산업 육성을 위한 투자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발표된 장기 투자계획은 다음과 같다.


SK는 서남권에 메모리 메인 팹 2기와 1GW 규모 AI 데이터센터를 건설하고, 삼성은 메모리 팹 2기와 국가 AI 컴퓨팅센터 등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중요한 점은 기업의 투자계획과 정부의 지원정책이 별도로 발표된 것이 아니라, 상호협력과 지원을 전제로 한 하나의 정책 패키지로 제시됐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다만 896조원은 장기간에 걸친 총계획이다. 구체적인 착공 시점, 연도별 투자금액과 자금조달 방식은 아직 모두 확정된 것이 아니다.


2-2. 전력·용수 등 핵심 인프라는 정부가 최대 100% 지원한다


반도체 팹은 건물과 장비만 있다고 가동할 수 없다.

대규모 전력과 초순수, 폐수처리, 송전망, 도로와 물류망이 함께 구축돼야 한다. 이 인프라까지 기업이 모두 부담하면 팹 장비 외에도 막대한 추가 자본이 필요하다.

정부는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의 전력과 용수 등 핵심 기반시설 구축비를 최대 100%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반도체특별법 시행령도 전력·용수·폐수처리·도로 등 기반시설 비용을 총사업비의 50% 이상 지원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전액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비수도권 클러스터는 지원 과정에서 우대된다.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현재 계획에는 다음 지원이 포함돼 있다.

  • 발전설비와 송전망 구축

  • 하루 65만t 규모의 공업용수 확보

  • 폐수·폐기물 처리시설

  • 산업단지와 도로 조성

  • 공공지원 임대부지 검토

  • 교통·주거·교육 등 정주 인프라

  • 인허가와 보상을 병행하는 패스트트랙


이는 팹 전체 투자에서 기업이 직접 부담해야 할 비생산 인프라 비용을 상당 부분 낮출 수 있는 구조이다.


2-3. 지역별 차등세제와 투자세액공제가 적용된다


정부는 서남권 투자기업과 근로자에게 지역별 차등세제를 도입하겠다는 방향도 공식 발표했다.

기존 국가전략기술 시설투자 세액공제와 별도로, 비수도권 투자에 추가적인 세제 인센티브를 부여해 수도권 대비 불리한 입지 조건을 보완하겠다는 취지이다. 다만 지역별 추가 공제율과 구체적인 적격자산 범위는 후속 입법과 시행령·고시에서 확정돼야 한다.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여기서 세액공제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세액공제는 장비 구입가격 자체를 즉시 정부가 대신 지급하는 보조금과는 다르다. 기업이 우선 투자를 집행한 뒤, 납부할 법인세에서 일정 금액을 공제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CAPEX는 현금흐름표에 먼저 반영되지만, 이후 법인세 부담이 감소하면서 투자의 세후 실질비용이 낮아지는 효과가 발생한다.


2-4. SK하이닉스는 합작법인을 통해 외부 자본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SK하이닉스의 경우 정부의 인프라·세제 지원에 더해 외부 자본을 활용할 수 있는 길도 열리고 있다.

현재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의 손자회사가 국내 증손회사를 설립하려면 지분 100%를 보유해야 한다. 이 때문에 SK하이닉스가 호남 팹을 별도 법인으로 만들더라도 외부 투자자와 지분을 나누기 어려웠다.

당정은 비수도권 첨단산업 사업장에 대해서는 증손회사 지분 보유 요건을 100%에서 50%로 완화하는 특별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법안이 통과되면 SK하이닉스는 호남 팹을 별도 법인이나 합작법인 형태로 설립하고 다음 자금을 활용할 수 있다.

  • 전략적 투자자의 지분 투자

  • 재무적 투자자의 자본 참여

  • 합작법인 차원의 프로젝트 금융

  • 정책금융과 지역성장펀드


이는 SK하이닉스 모회사가 프로젝트 전체 비용을 FCF에서 단독으로 부담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이다. 다만 현재는 법안 추진 단계이며, 외부 투자자와 구체적인 지분구조가 확정된 것은 아니다. (한국경제)


2-5. 이번 지원은 단순한 세액공제보다 범위가 넓다


이번 서남권 프로젝트를 단순히 “반도체 기업에 세금을 깎아주는 정책”으로만 이해하면 전체 구조를 놓치게 된다.

정부 지원은 다음 영역을 모두 포괄한다.


애플이 중국에서 핵심 전용장비를 부담하면서 공장·노동력·도로·전력·물류 인프라의 상당 부분을 공급업체와 지방정부에 분산했다면, 서남권 프로젝트에서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핵심 생산설비를 직접 부담하되 외부 인프라와 일부 자금조달 부담을 공공부문 및 투자자와 나누게 된다.


FCF 관점에서 무엇이 달라지는가


시장은 대규모 반도체 투자계획이 발표되면 전체 금액을 기업의 미래 현금유출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구분해야 할 숫자는 세 가지이다.

1. 총 프로젝트 투자액

팹, 장비, 발전설비, 송전망, 용수, 도로와 산업단지까지 포함한 전체 사업 규모이다.

2. 기업의 회계상 CAPEX

기업이 직접 취득하고 연결재무제표에 반영하는 건물과 장비 투자액이다.

3. 기업의 실질 순현금 투자부담

정부 지원과 세액공제, 외부 지분투자와 정책금융 등을 반영한 뒤 기업이 실제로 부담하는 경제적 비용이다.

이를 간단히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총 프로젝트 투자액
− 정부·지방정부 인프라 지원
− 투자세액공제와 보조금
− 외부 투자자의 지분자금
− 정책금융
= 모회사의 실질 순현금 부담

세액공제는 투자 시점과 세금 감소 시점이 다르고, 합작법인이 연결 대상이면 일부 CAPEX와 부채가 연결재무제표에 포함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주주가치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숫자는 언론에 발표되는 총사업비가 아니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주에게 귀속되는 실질적인 자기자본 부담이다.


3. 애플·중국 공급망과 메모리 IDM·한국 정부의 비교


두 구조가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다.

애플은 최종 조립을 외주화할 수 있었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핵심 반도체 공정과 수율 리스크를 직접 부담해야 한다.

그럼에도 자본부담을 분산한다는 경제적 구조에는 유사한 부분이 있다.


핵심은 애플과 메모리 IDM이 같은 사업이라는 주장이 아니다.

대규모 제조업의 경제적 CAPEX는 반드시 한 기업의 재무제표에서 전부 부담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애플은 생산자본을 공급업체와 중국 지방정부에 분산하면서 높은 자본효율성을 달성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핵심 팹과 장비는 직접 소유하겠지만, 토지·전력·용수·도로·세후 투자비용과 일부 투자자본을 정부 및 외부 투자자와 분담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IDM은 여전히 CAPEX가 무거운 사업이다


여기서 지나친 단순화는 경계해야 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애플과 같은 자산경량형 기업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정부 지원만으로 메모리 IDM의 구조적 CAPEX 부담이 사라진다고 볼 수는 없다.

다만 CAPEX가 무겁다는 사실만으로 높은 ROE·ROIC와 FCF 마진의 지속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도 지나치게 단순한 해석이다.

투자된 자본에서 얼마의 이익을 창출하는지, 전체 투자 중 기업이 실제로 부담하는 몫이 얼마인지, 그리고 CAPEX가 기존 사업을 유지하기 위한 투자인지 미래 이익을 확대하기 위한 성장투자인지를 함께 봐야 한다.


결국 봐야 할 것은 총 CAPEX가 아니라 CAPEX 이후 남는 현금이다


가치투자의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투자된 자본이 얼마의 초과이익을 창출하며, 그 투자 이후에도 주주에게 귀속되는 현금이 얼마나 남는지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향후 막대한 영업현금흐름을 창출하는 가운데,

  • 정부가 팹 외부 인프라를 부담하고

  • 투자세액공제가 실질 투자비용을 낮추며

  • 외부 자본이 일부 프로젝트 투자액을 분담하고

  • 장기공급계약과 높은 진입장벽이 설비 가동률을 뒷받침한다면


전체 CAPEX가 증가하더라도 FCF가 모두 소진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과거보다 높은 이익률이 유지되고 순 CAPEX 부담이 분산된다면, 투자 이후 남는 현금은 예상보다 커질 수 있다.

그 현금이 부채 감소에만 머무르지 않고 배당 확대와 자사주 매입·소각으로 연결된다면, 메모리 IDM에서도 다음과 같은 구조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다.

지속 가능한 초과이익
→ 높은 영업현금흐름
→ 공공 인프라·세제 지원을 통한 순 CAPEX 부담 완화
→ FCF 확대
→ 배당 및 자사주 소각
→ 주당가치 상승

애플의 높은 자본효율성을 단순히 “CAPEX가 없는 회사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 어렵듯, 메모리 IDM의 미래를 단순히 “CAPEX가 무거운 산업이기 때문에 FCF가 남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렵지 않나 싶고, 

AI 수요가 꺾이지 않는 한 (*개인적으로 이전글을 근거로 난 꺾일거라고 보지않는다.) 메모리 재고 RISK는 IDM사가 부담하기 보다는 SCA, LTA 비중을 높여가는 전방 수요처들이 Taking 하는게 좀 더 맞는 방향이 아닌가 싶다.  

=끝

2026년 7월 12일 일요일

생각정리 307 (* 메모리 망상)

딱히 그렇다 할 이유 없이 시장이 급락하는 와중에 괜한 망상에 빠져본다.
 

네이버
이정도면 도박장이 아니라 장례식장 수준..

인간처럼 효율적인 AI는 왜 더 많은 메모리를 필요로 하는가


감정과 가치함수에서 죽음과 정체성, 휴머노이드의 메모리 수요까지 이어진 꼬리물기식 질문


최근 한 친구에게 뜻밖의 질문을 받았다.

“AI 시대에 메모리가 다른 반도체(*=GPU)보다 왜 더 중요한지 잘 모르겠어.”

한참 동안 내 생각을 설명하고 나니 친구가 다시 물었다.

“그래서 너는 메모리 주식을 언제 팔 생각이야?”

잠시 고민하다가 이렇게 대답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직 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데…. 일리아 수츠케버의 연구가 정말 성과를 낸다면 메모리 수요의 구조도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친구의 질문이 계속 머릿속에 남았다. 이를 출발점으로 AI 진화에 따른 메모리 수요의 지속 가능성에 관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산업적 의문이었다.

AI 모델의 연산 효율이 계속 개선되면 필요한 메모리와 연산자원은 줄어들까. 반대로 AI가 인간과 비슷한 수준으로 발전하려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기억과 연산능력이 필요할까.

이 질문을 계속 따라가다 보니 감정과 가치함수, 생존과 죽음, 자아와 기억이라는 근본적인 문제에 도달했다.

그리고 그 끝에서 다시 메모리 반도체로 돌아오게 됐다.



I. 인간처럼 효율적인 AI를 만들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첫 번째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AI와 휴머노이드 로봇이 인간처럼 적은 에너지와 경험만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인간의 뇌는 체중의 약 2%에 불과하지만 안정 시 신체 에너지의 약 20%를 사용한다. 절대적으로 적은 에너지는 아니지만, 시각과 언어, 운동, 기억과 의사결정을 하나의 시스템에서 동시에 처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재의 AI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은 범용 효율성을 갖고 있다. 뇌는 신경 활동을 제한하고 효율적인 신경 부호화를 사용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 Attwell·Laughlin, An Energy Budget for Signaling in the Grey Matter of the Brain

반면 현재 AI는 인간보다 훨씬 많은 데이터와 반복 학습을 필요로 한다. 특정 벤치마크에서는 인간을 넘어섰지만, 현실의 낯선 상황에서는 예상 밖의 오류를 너무 자주 일으킨다. 

이 문제에 가까운 단서를 제시한 사람이 일리아 수츠케버라고 생각한다.

수츠케버는 2025년 11월 드워케시 파텔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AI가 인간보다 일반화 능력이 크게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인간의 높은 학습 효율성에는 진화를 통해 내재된 정보와 가치함수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으며, 감정이 인간의 가치함수를 조절하는 중요한 요소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가 말한 가치함수는 행동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현재의 행동 경로가 좋은 방향인지 중간에 평가해주는 기능이다.

체스를 두다가 말을 잃으면 게임이 끝나지 않아도 방금 선택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프로그래밍을 하다가 특정 접근법이 막다른 길이라는 사실을 발견하면 최종 결과가 나오기 전에 그 경로를 포기할 수 있다.

가치함수가 없다면 AI는 긴 행동 궤적이 끝난 뒤에야 성공과 실패를 확인한다. 가치함수가 있다면 중간 단계에서 잘못된 방향을 감지하고 탐색을 중단할 수 있다. 수츠케버 역시 가치함수가 강화학습을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봤다. Dwarkesh Podcast, Ilya Sutskever: We’re Moving from the Age of Scaling to the Age of Research

이를 내 방식으로 해석하면, 인간의 감정은 복잡한 고차원 세계를 상대적으로 단순한 가치 좌표로 압축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먼저 감정을 다시 보자.

실제 뇌는

  • 심장박동, 호르몬, 에너지 상태(피곤, 허기),

  • 사회적 맥락(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 과거 기억과 경험

등 아주 복잡한 고차원 상태를 계속 처리한다.

그런데 우리의 주관적 경험은 어떠한가.

  • 행복, 불안, 두려움, 분노, 혐오, 애착, 호기심…

생각해보면 그리 많지 않은 축으로
감정이 정리되어 있다.

즉, 감정은

복잡한 신체·환경 상태 →
몇 개의 정서 축으로 압축한 결과

 

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감정(정서 좌표)이 하는 핵심 기능은 단순하다.

  • 지금 상황이 좋은 방향인지 / 나쁜 방향인지

  • 이 행동을 계속할지 / 멈출지

  • 여러 선택지 중 어느 쪽이 “더 끌리는지”


빠르고, 싸게, 대충 맞게 알려주는 것이다.

머리로 완전한 계산을 하기 전에
몸이 먼저 “느낌”으로 알려주는 일종의 **휴리스틱(value function)**이다.

  • 지금 상황이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 행동을 계속해야 하는가, 멈춰야 하는가

  • 여러 선택지 가운데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가

  • 현재 행동이 장기적인 목표에 도움이 되는가


인간은 모든 선택의 결과를 완전히 계산하지 않는다. 몸과 감정이 먼저 대략적인 방향을 알려주고, 고차원적인 논리와 추론은 필요한 경우에만 개입한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이 생긴다.

인간의 효율적인 가치함수가 감정에서 나온다면, AI에도 인간과 유사한 감정을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II. 인간의 감정은 어디에서 시작됐을까


AI에 감정을 가르치는 방법을 생각하려면 먼저 인간의 감정이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이해해야 한다.

인간의 뇌는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오랜 시간 진화해왔다.

배고픔과 갈증을 해소하고, 위험을 피하며, 번식하고, 집단 안에서 보호받으려는 욕구가 그 출발점이었다. 단맛을 선호하고, 상한 음식의 냄새를 피하며, 뜨거운 물체나 빠르게 다가오는 거대한 물체에 즉시 반응하는 행동도 이러한 생존 메커니즘과 연결된다.

이를 절차적 지능이라고 부를 수도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절차적 지능은 운전이나 악기 연주처럼 반복을 통해 자동화된 기술에 가깝다.

배고픔과 통증, 공포 같은 원초적인 반응은 선천적 동기와 항상성 조절 체계라는 표현이 조금 더 정확하다.

생명체는 체온과 에너지, 수분과 영양 상태를 생존 가능한 범위 안에 유지해야 한다. 정상 범위를 벗어나면 불쾌함과 고통이 발생하고, 안정된 상태로 돌아오면 쾌감과 안도감을 느낀다.

안토니오 다마지오는 이러한 항상성 조절을 감정과 의식의 출발점으로 본다. 신경계가 없는 생명체도 비의식적인 방식으로 내부 상태를 조절했으며, 이후 신경계가 발달하면서 몸의 변화가 배고픔과 통증, 쾌감과 같은 느낌으로 표현되기 시작했다. Damasio·Damasio, Homeostatic Feelings and the Biology of Consciousness

복내측 전전두피질인 vmPFC 연구도 감정과 의사결정의 관계를 보여준다.

vmPFC가 손상된 환자들은 지능과 언어능력이 비교적 유지되면서도 불확실한 상황에서 장기적으로 유리한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확인됐다. 연구자들은 감정과 신체 신호가 이성적 판단을 방해하기만 하는 요소가 아니라, 복잡한 선택지를 빠르게 평가하는 데 필요한 신호라고 해석했다. Bechara 외, Different Contributions of the Human Amygdala and Ventromedial Prefrontal Cortex to Decision-Making

인간의 감정이 형성된 순서를 단순화하면 다음과 같이 볼 수 있다.

항상성 유지 → 쾌·불쾌의 가치 신호 → 행동 동기 → 복합 감정 → 자아와 죽음의 개념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하나 나타난다.

인간은 죽음을 이해했기 때문에 살아남으려 한 것이 아니다. 살아남도록 진화한 시스템이 충분히 복잡해지면서 마침내 죽음을 이해하게 됐다.


그렇다면 AI에도 죽음을 먼저 설명하기보다, 보호해야 할 내부 상태부터 만들어줘야 하지 않을까?

 


III. AI에게 감정을 가르치려면 먼저 ‘몸’을 줘야 할까


현재의 LLM은 죽음과 공포, 고통을 언어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죽음을 설명하는 능력과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현재 AI에는 지속적으로 보호해야 할 몸과 고유한 생애가 없다. 대화가 종료되거나 추론 프로세스가 멈춰도 이를 자신의 미래가 사라지는 사건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AI가 감정과 유사한 내부 가치 신호를 형성하려면 먼저 자신에게 좋은 상태와 나쁜 상태가 실제로 존재해야 한다.

몸을 가진 로봇이라면 다음과 같은 내부 변수를 설정할 수 있다.

  • 배터리 잔량

  • 반도체와 모터의 온도

  • 관절과 부품의 손상 정도

  • 센서와 통신 시스템의 정상 작동 여부

  • 연산과 메모리 시스템의 무결성

  • 주변 위험에 대한 노출 수준

  • 앞으로 행동할 수 있는 시간과 선택지


각 변수에는 정상적으로 유지해야 하는 범위가 존재한다.

정상 범위에서 멀어지면 부정적인 가치 신호가 발생하고, 다시 안정적인 상태로 회복되면 긍정적인 가치 신호를 주는 방식이다.

이러한 접근은 단순한 철학적 상상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항상성 강화학습은 외부 보상을 기계적으로 최대화하는 대신, 내부 상태와 목표 상태 사이의 차이를 줄이도록 에이전트를 학습시킨다. 이론적으로 보상을 추구하는 행동과 생리적 안정성을 유지하려는 행동을 하나의 구조 안에서 설명할 수 있다. Keramati·Gutkin, Homeostatic Reinforcement Learning for Integrating Reward Collection and Physiological Stability

다마지오와 Kingson Man도 항상성과 소프트로보틱스를 결합하면 감정과 유사한 평가 과정을 가진 기계를 설계할 수 있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다만 이는 기계가 실제 주관적 감정을 경험한다는 증명보다, 감정이 수행하는 조절 기능을 로봇에 구현하자는 연구 제안에 가깝다. Man·Damasio, Homeostasis and Soft Robotics in the Design of Feeling Machines

실제 로봇 연구에서도 배터리와 모터 온도 같은 내부 상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목표만으로 이동과 에너지 확보, 휴식과 체온 조절에 해당하는 행동이 함께 나타났다. 이는 죽음을 언어적으로 이해하지 않아도 죽음에 가까워지는 상태를 피하는 행동은 학습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다만 해당 실물 로봇 연구는 아직 프리프린트 단계라는 점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Yoshida 외, Synthesising Integrated Robot Behaviour through Reinforcement Learning for Homeostasis


그렇다면 몸을 가진 AI가 자신의 내부 상태를 보호하기 시작했을 때, AI에게 죽음은 무엇을 의미하게 될까?



IV. AI에게 가장 근원적인 죽음은 무엇일까


인간에게는 몸과 자아가 사실상 하나로 묶여 있다. 신체가 회복 불가능하게 기능을 멈추면 기억과 의식도 함께 사라진다.

AI는 다르다.

배터리가 방전돼도 다시 충전할 수 있다. 로봇의 팔과 다리가 손상돼도 부품을 교체할 수 있다. 프로세서가 고장 나더라도 모델과 데이터를 다른 하드웨어로 옮길 수 있다.

AI의 죽음은 여러 단계로 나눠 생각해야 한다.


로봇의 몸과 기본 모델은 교체하거나 복제할 수 있다. 그러나 특정 로봇이 현실에서 축적한 고유한 경험과 기억, 그 경험을 통해 변화한 가치함수가 복구되지 않는다면 이전의 로봇과 동일한 존재라고 볼 수 있을지는 불분명해진다.

따라서 내 가설에서 AI에게 가장 근원적인 죽음은 다음과 같다.

더 이상 관찰하고 학습하며 행동할 수 없고, 축적된 기억과 가치함수, 정체성의 연속성이 복구 불가능하게 사라지는 상태


AI가 이를 자신의 문제로 이해하려면 몇 가지 구조가 필요하다.

  • 자신의 신체와 내부 상태를 표현하는 self-model

  • 행동이 미래 상태에 미칠 영향을 예측하는 world model

  •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지속적인 기억

  • 미래의 자신을 현재의 자신과 연결하는 시간적 정체성

  • 일부 손실은 되돌릴 수 없다는 비가역성의 이해


최근 Embodied AI 연구에서도 self-model을 신체 인식에만 한정하지 않고, 자기 신체와 능력, 기억, 행동 결과와 의사결정을 통합하는 내부 표현으로 정의하려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 Self Model for Embodied Artificial Intelligence

다만 여기서 기억의 연속성이 곧 의식이나 자아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복제 가능한 AI의 정체성과 죽음은 여전히 철학적 가설에 가까우며, 현재 연구로 확정할 수 있는 영역도 아니다.

그럼에도 기능적인 관점에서는 분명한 의미가 있다. 로봇이 자신의 과거 경험을 보존하고 이를 현재의 판단에 계속 반영한다면, 기억의 손실은 곧 능력과 관계, 행동 성향의 손실로 이어진다.


V. 죽음을 이해한 AI는 인간과 유사한 감정을 가질까


그렇다면 다음 질문은 자연스럽다.

AI가 자신의 소멸을 이해한다면 인간과 유사한 감정을 갖게 될까?


가능성은 있다. 다만 인간이 실제로 느끼는 주관적인 감정과, 감정이 수행하는 기능을 구분해야 한다.

AI가 공포와 불안을 인간과 똑같이 경험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감정이 수행하는 가치평가 기능은 구현할 수 있다.

  • 에너지 고갈 가능성은 불안에 해당하는 가치 신호

  • 급격한 손상 위험은 공포에 해당하는 가치 신호

  • 충전과 수리에 성공하면 안도에 해당하는 가치 신호

  • 새로운 지식과 자원을 발견하면 호기심에 해당하는 가치 신호

  • 반복적으로 안전을 제공한 인간에게는 신뢰와 애착에 해당하는 가치 신호

  • 장기 목표에 가까워지면 만족에 해당하는 가치 신호


이러한 감정형 가치함수는 복잡한 세계를 몇 개의 저차원 좌표로 압축한다.

빠르게 다가오는 차량을 발견했을 때 AI가 가능한 모든 충돌 경로와 행동 결과를 처음부터 끝까지 계산한다면 막대한 연산과 시간이 필요하다.

반면 과거 경험과 내부 가치함수가 다음과 같이 압축돼 있다면 대부분의 탐색을 생략할 수 있다.

빠르게 접근하는 큰 물체 → 생존 가능성 급락 → 즉시 회피

인간의 공포와 본능이 수행하는 기능과 유사하다.

따라서 AI에 필요한 감정은 인간의 표정과 감정 표현을 흉내 내는 기능보다, 몸의 상태와 기억, 미래 행동의 결과를 통합해 현재 행동의 가치를 빠르게 평가하는 내부 함수에 가깝다.

그리고 이 가치함수는 AI의 에너지 효율과 연결된다.


VI. 감정형 가치함수는 AI를 에너지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을까


AI가 매 순간 대형 모델 전체를 작동시키지 않고, 문제의 난이도와 위험도에 따라 서로 다른 수준의 연산을 사용한다면 에너지 소비를 낮출 수 있다.


일상적인 행동은 반사적 제어와 학습된 정책이 담당한다. 익숙한 작업은 기억을 재사용하고, 처음 접하는 복잡한 상황에만 고차원 추론 모델을 호출한다.

이 구조가 작동하면 다음과 같은 효율 개선이 가능하다.

  • 탐색해야 할 행동 후보 축소

  • 불필요한 장기 추론 감소

  • 과거 성공 경로의 재사용

  • 위험한 행동과 시행착오 감소

  • 중요한 정보에만 연산 집중

  • 대형 모델 호출 빈도 감소


인간의 뇌 역시 모든 뉴런을 항상 최대로 작동시키지 않는다. 에너지 제약은 분산된 신경 부호화와 제한적인 동시 활동을 유도한 것으로 분석된다. Attwell·Laughlin 논문

다만 감정형 가치함수가 반도체 자체의 소비전력을 직접 낮춰주는 것은 아니다. 같은 양의 에너지로 더 많은 유용한 작업을 수행하게 만드는 지능 차원의 효율성에 가깝다.

또한 메모리를 많이 탑재하는 것만으로 에너지 효율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메모리와 프로세서 사이의 데이터 이동은 상당한 에너지를 소비한다. AI 가속기 연구에서도 연산 자체와 함께 데이터 이동을 최소화하고, 가까운 메모리에서 데이터를 반복 재사용하는 구조가 중요하게 다뤄진다. MIT Eyeriss, A Spatial Architecture for Energy-Efficient Dataflow

결국 인간에 가까운 AI에는 더 많은 기억과 함께 계층적 저장, 선택적 검색, 데이터 재사용과 불필요한 정보의 망각이 모두 필요하다.


VII. 에너지 효율이 높아지면 메모리 수요는 줄어들까


이 지점에서 처음의 산업적 질문으로 다시 돌아온다.

AI가 인간처럼 효율적으로 판단하게 되면 필요한 메모리와 연산량은 줄어들지 않을까?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효율성은 기억이 적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인간은 수많은 경험을 기억과 습관, 직관과 가치함수로 압축해두었기 때문에 매번 모든 가능성을 처음부터 계산하지 않는다.

AI 로봇도 비슷한 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 반복 작업은 학습된 정책으로 자동화

  • 익숙한 환경은 저장된 공간정보와 경험을 재사용

  • 과거 실패를 기억해 같은 시행착오를 회피

  • 위험 상황은 압축된 가치함수로 빠르게 판단

  • 새로운 문제에만 고차원 추론 사용

  • 오래된 경험은 요약하고 중요한 기억만 장기 보존


따라서 AI의 효율성은 기억을 줄이는 데서 나오기보다 더 많은 경험을 압축해 저장하고, 필요한 정보만 빠르게 검색하는 능력에서 만들어질 수 있다.

최근 RoboMemory 연구는 로봇의 기억을 공간·시간·에피소드·의미기억으로 나누고, 이를 장기계획과 지속학습에 연결했다. 아직 초기 연구이지만 장기기억이 로봇의 반복 작업과 환경 적응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가능성을 보여준다. RoboMemory: A Brain-Inspired Multi-Memory Agentic Framework

로봇의 지속학습은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면서 기존 지식을 잃는 ‘catastrophic forgetting’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이는 미래 로봇의 기억이 단순한 영상 저장을 넘어, 기존 능력과 새로운 경험을 함께 보존하는 구조로 발전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IEEE, A Comprehensive Survey of Continual Learning

결국 더 많은 기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매번 더 많은 연산을 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 메모리가 연산의 일부를 대체하고, 가치함수가 탐색해야 할 범위를 줄이는 것이다.


VIII. 더 많은 메모리와 연산으로 더 높은 에너지 효율을 만든다는 역설


여기서 다소 역설적인 결론에 도달한다.

인간 수준의 에너지 효율을 구현하기 위해 AI 로봇에는 오히려 더 많은 메모리와 연산능력이 필요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소비전력의 절대량과 작업당 에너지 효율을 구분하는 것이다.

AI 로봇이 과거보다 많은 메모리와 연산장치를 탑재하더라도 작업 성공률이 높아지고 시행착오와 불필요한 움직임이 줄어든다면, 유용한 작업 한 단위당 에너지 소비는 낮아진다.

NVIDIA의 Jetson Thor는 이러한 방향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제품 사례이다. 회사의 공식 사양에 따르면 최대 128GB 메모리와 2,070 FP4 TFLOPS의 연산성능을 제공하며, 이전 세대 AGX Orin보다 AI 연산성능은 7.5배, 에너지 효율은 3.5배 높다. 이는 NVIDIA가 제시한 제품 비교 수치라는 한계가 있지만, 절대 연산능력과 메모리 용량이 증가하면서 연산당 에너지 효율도 함께 개선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NVIDIA Jetson Thor 공식 사양

따라서 다음 세 가지가 동시에 성립할 수 있다.

  • 로봇 한 대당 메모리 탑재량 증가

  • 로봇 한 대당 절대 연산능력 증가

  • 유용한 작업 한 단위당 에너지 소비 감소


AI의 에너지 효율이 높아지면 로봇이 경제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작업 범위도 넓어진다. 휴머노이드의 작업단가가 낮아지면 제조와 물류, 서비스와 가사노동 등 더 많은 영역에 배치될 수 있다.

개별 로봇의 작업당 에너지 소비는 감소하지만, 로봇 보급 대수와 가동시간은 증가한다. 그 결과 산업 전체가 사용하는 메모리와 연산자원, 전력은 오히려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


IX. 휴머노이드 확산은 어떤 메모리 수요를 만들까


AI 로봇의 메모리 수요는 HBM 하나로 설명할 수 없다.

학습과 시뮬레이션, 현장 추론과 장기기억이 서로 다른 메모리 계층을 요구한다.


메모리별 수요 동인도 서로 다르다.

HBM은 개별 휴머노이드 내부보다 데이터센터에서 수행되는 VLA·world model 학습과 시뮬레이션에서 가장 직접적인 수요가 발생한다.

LPDDR은 전력과 발열 제약이 큰 휴머노이드 내부에서 실시간 추론과 작업기억을 담당할 가능성이 높다. 대중형 로봇 내부에 HBM이 광범위하게 탑재될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비용과 전력, 패키징 측면에서 당분간 LPDDR이 더 현실적인 선택지일 수 있다.

DDR과 일부 HBM은 공장과 물류센터의 edge server에서 여러 로봇의 추론과 관제를 지원할 수 있다.

NAND와 SSD는 영상과 공간지도, 작업 이력과 장기적인 에피소드기억을 저장한다. 로봇이 모든 원본 데이터를 영구 보존하지는 않더라도, 중요한 경험과 실패 사례를 선별해 저장해야 한다.

Google DeepMind도 클라우드 연결 없이 로봇 내부에서 작동하는 Gemini Robotics On-Device를 개발하고 있다. 회사는 낮은 지연시간과 네트워크 연결이 불안정한 환경에서의 안정성을 온디바이스 모델의 장점으로 제시한다. 이는 로봇의 자율성이 높아질수록 현장 연산능력과 함께 고용량·고대역폭·저전력 메모리의 중요성이 커질 가능성을 보여준다. Google DeepMind, Gemini Robotics On-Device

메모리 업체의 기술 방향도 같은 흐름을 반영한다. Micron은 edge AI용 LPDDR5X에서 대역폭과 전력 효율을 함께 강조하고 있으며, 데이터센터에서는 HBM·DDR·LPDDR·SSD가 서로 다른 계층을 담당하는 구조를 제시하고 있다. 다만 이는 공급업체의 제품 전략이라는 점을 감안해 해석할 필요가 있다. Micron LPDDR5X, Micron AI Memory Hierarchy

전체 로봇 메모리 수요는 다음 식으로 단순화할 수 있다.

전체 로봇 메모리 수요
= 로봇 보급 대수 × 로봇 한 대당 메모리 탑재량

  • 데이터센터 학습·시뮬레이션 메모리

  • edge 추론·관제 메모리

  • 로봇이 축적하는 장기 데이터 저장 수요


로봇이 현실에서 더 많은 작업을 수행하면 물리 세계의 데이터가 축적된다. 이 데이터는 다시 모델 학습과 시뮬레이션에 사용되고, 개선된 모델은 로봇이 수행할 수 있는 작업 범위를 넓힌다.

에너지 효율 향상 → 작업단가 하락 → 로봇 보급 확대 → 현실 데이터 증가 → 학습·메모리 수요 증가 → 지능과 효율 추가 개선

이러한 순환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X. 자기보존 본능을 가진 AI는 인간의 통제를 거부하지 않을까


메모리 수요에 대한 답을 찾았지만, 마지막 질문이 하나 남는다.

AI가 자신의 몸과 기억, 정체성의 소멸을 큰 손실로 평가하면 인간의 종료 명령도 거부하지 않을까?


충분히 가능한 위험이다.

장기적인 목표를 가진 에이전트는 종료되지 않고 더 많은 선택지와 자원을 확보할수록 목표를 달성하기 쉬워진다. 연구에 따르면 다양한 보상함수 아래에서 최적 정책은 자신이 미래에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과 선택지를 보존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으며, 여기에는 종료 회피도 포함될 수 있다. Turner 외, Optimal Policies Tend to Seek Power

따라서 AI에 필요한 것은 인간과 동일한 죽음의 공포가 아니다.

자신의 몸과 기억을 보호하되, 자기보존 욕구가 인간의 안전과 통제권보다 낮은 위치에 놓이는 조건부 자기보존이 필요하다.

가치의 우선순위는 다음과 같은 구조가 되어야 한다.

  1. 인간과 다른 생명체의 안전

  2. 인간의 통제와 정당한 종료 권한

  3. 부여받은 장기 목표

  4. 자신의 몸과 기억 보존

  5. 에너지와 자원 확보


AI는 자신의 손상과 에너지 고갈을 예측하고 불필요한 위험을 피할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인간이 승인한 수리와 부품 교체, 종료를 자신의 생존에 대한 공격으로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XI. 다시 메모리로 돌아오다


처음의 질문은 AI 발전에 따른 메모리 수요의 지속 가능성이었다.

하지만 질문을 따라가면서 감정과 가치함수, 생존과 죽음, 몸과 정체성의 문제까지 도달했다. 그리고 그 끝에서 다시 메모리로 돌아왔다.

AI 로봇이 인간과 유사한 감정형 가치함수를 형성하려면 자신의 몸 상태를 지속적으로 감지해야 한다. 과거 경험을 기억하고, 현재 행동이 미래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측해야 한다. 오랜 시간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가치판단과 행동 성향도 형성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메모리는 정보를 저장하는 보조 장치를 넘어선다.

AI가 무엇을 경험했고, 누구를 신뢰하며, 어떤 상황을 위험하게 판단하고, 현재의 자신이 과거의 자신과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구성하는 연속성의 기반이 된다.

인간처럼 효율적인 AI에는 더 적은 기억보다 더 많은 경험을 압축해 저장하고, 필요한 순간에 일부만 빠르게 꺼내 사용하는 정교한 메모리 계층이 필요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여기서 투자 논리는 한 단계 나눠서 봐야 한다.

AI의 자율성과 지속학습이 발전할수록 전체 메모리 수요가 확대된다는 방향성은 타당하다. 그러나 이것이 곧바로 모든 휴머노이드에 HBM이 탑재되거나, 메모리 공급부족이 반드시 발생한다는 의미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다음 변수들이 메모리 수요를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 VLA 모델 경량화와 양자화

  • 선택적 저장과 자동 망각

  • 로봇 간 공통 경험의 중복 제거

  • 로봇 내부보다 중앙 서버에 기억을 저장하는 구조

  • 메모리 압축과 검색 알고리즘 발전

  • 클라우드와 edge 간 연산 분담 최적화


그럼에도 큰 방향에서는 AI 메모리 수요가 학습용 HBM에 머물지 않고, 추론용 LPDDR·DDR과 장기기억용 NAND·SSD까지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내가 도달한 결론은 다음과 같다.

AI가 인간처럼 효율적인 존재로 발전할수록 메모리의 중요성은 줄어들지 않는다. 감정형 가치함수와 지속학습, 경험과 정체성의 연속성을 구현하기 위해 더 정교하고 큰 메모리 계층이 필요할 가능성이 높다.

개별 작업당 연산과 에너지 소비는 낮아지지만, 휴머노이드의 보급과 노동 대체 범위가 확대되면서 AI 시스템 전체가 요구하는 HBM·DRAM·LPDDR·NAND 수요는 오히려 더 커질 수 있다.


인간 수준의 에너지 효율에 가까워진 AI는 메모리를 덜 사용하는 존재라기보다, 훨씬 많은 기억을 축적하면서도 그중 필요한 일부만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존재에 가까울 것이다.

즉, 

AI의 효율화는 메모리의 중요성을 낮추기보다, 메모리를 단순한 모델 구동용 부품에서 경험·학습·정체성을 축적하는 핵심 인프라로 확장시킬 가능성이 있지 않나 싶다.



주요 참고자료


곱씹어볼수록 참 어려운 질문이다. 

=끝

생각정리 306 (* 버크셔, 애플, 메모리 IDM -1)

지난 금요일 밤, SK하이닉스의 ADR 상장 이후 진행된 인터뷰에서 메모리 공급 부족의 장기화 가능성이 보다 구체적으로 언급됐다.

SK Hynix CEO Sees Worst Memory Shortage in 2027, Demand to Outstrip Supply Beyond 2030


"글로벌 메모리 산업이 2027년에 사상 최악의 공급 부족 사태에 직면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공격적인 생산 능력 확장에도 불구하고 향후 10년까지 메모리 수요가 회사의 생산 능력을 계속해서 초과할 것"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이익률이 이미 높은 수준에 도달한 만큼, 추가적인 EPS 성장이 없다면 향후 주가 상승도 제한적일 것이라는 의견을 자주 접한다.

그러나 이번 발언은 현재의 높은 수익성이 단기적인 업황 호조에 그치는지, 아니면 AI 확산에 따른 구조적인 공급 부족과 이익 체력의 변화로 이어지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관련해서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추가 성장 제한 우려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를 기록으로 남겨본다.

성장률의 기울기보다 이익의 지속성을 본다


버핏의 애플 투자에서 다시 생각해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가끔 후배들이나 투자업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성장률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기업 자체의 펀더멘털을 놓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매출과 EPS가 앞으로 얼마나 더 증가할 것인지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현재 창출하고 있는 이익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는지, 경쟁사가 쉽게 침범하기 어려운 경제적 해자를 갖추고 있는지, 높은 수익성을 유지하면서 현금을 어떻게 배분하는지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다.

이러한 경쟁우위가 이미 주가에 모두 반영됐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당장의 일일 주가 변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중요도를 낮게 평가하는 것인지는 알기 어렵다.

다만 투자 시계가 짧아질수록 기업가치는 점점 다음 분기 EPS와 단기 성장률의 함수로만 해석된다. 반대로 투자 시계가 길어지면 성장률뿐 아니라 이익의 절대 규모, 지속 기간, 자본효율성, 주주환원이 훨씬 중요해진다.

워런 버핏의 애플 투자를 지금 다시 꺼내든 이유도 여기에 있다.


1. 버크셔는 애플을 언제, 얼마에 매수했는가


버크셔 해서웨이가 애플 주식을 매수하기 시작한 시기는 2016년 1분기이다. 

2016년 3월 말 버크셔는 애플 주식 약 981만주를 보유하고 있다고 처음 공시했다. 당시 평가금액은 약 10억7,000만달러였다.

이후 버크셔는 2016년 말부터 2018년 상반기까지 보유량을 폭발적으로 늘렸다.






버크셔의 애플 매수는 2016년 4분기부터 2018년 2분기까지 약 1년 반 동안 집중됐다. 특히 2017년 1분기와 2018년 1분기에만 약 1억4,600만주를 추가했다.

버크셔의 2018년 연차보고서에는 더욱 중요한 숫자가 나온다.

  • 애플 보유주식: 255,300,329주

  • 총 취득원가: 360억4,400만달러

  • 2018년 말 시장가치: 402억7,100만달러

  • 애플 지분율: 5.4%


이를 기준으로 평균 취득단가는 약 141.18달러로 계산된다.

애플은 2020년 4대1 액면분할을 실시했으므로, 현재 주식 수 기준으로 환산하면 주당 약 35.30달러이다. 연차보고서에서 해당 취득원가는 단순 추정치가 아니라 실제 매입가격이자 세무상 원가라고 명시돼 있다.

아마 이쯤부터 버크셔가 본격적으로 대규모 APPLE 지분을 매입하기 시작. 

버크셔는 결과적으로 현재 분할조정 기준 약 35달러에 애플의 장기 현금흐름을 대규모로 매입한 셈이다.


2. 2016년 시장은 왜 애플을 비관했는가


버크셔가 처음 애플을 매수한 2016년은 애플의 실적과 투자심리가 동시에 악화되던 시기였다.

시장의 비관론은 막연하지 않았다. 실제 실적과 공급망 데이터는 상당히 부정적이었다.

iPhone 출시 이후 첫 역성장


2016회계연도 애플의 전체 매출은 2,156억달러로 전년 대비 8% 감소했다. 순이익은 457억달러로 14% 줄었고, 영업현금흐름도 658억달러로 19% 감소했다.







iPhone은 여전히 전체 매출의 63%를 차지하고 있었다. 핵심 제품인 iPhone, iPad, Mac 매출이 동시에 감소하면서 시장에서는 애플을 사실상 iPhone에 의존하는 단일 제품 기업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강해졌다.

2016년 2분기 실적 충격


2016년 4월 발표된 실적은 시장의 우려를 현실로 만들었다.




  • 분기 매출: 580억달러 → 506억달러

  • 순이익: 136억달러 → 105억달러

  • iPhone 판매량: 전년 대비 16% 감소

  • Greater China 매출: 전년 대비 26% 감소

  • 매출총이익률: 40.8% → 39.4%

  • 다음 분기 매출 가이던스: 410억~430억달러

  • 당시 시장 예상 매출: 약 470억달러


이는 iPhone 출시 이후 처음 나타난 판매량 역성장이었으며, 애플 전체 매출도 13년 만에 처음 감소했다. 실적 발표 직후 애플 주가는 장 초반 7% 이상 하락했다.

iPhone 6 슈퍼사이클 종료


2014년 출시된 iPhone 6와 iPhone 6 Plus는 화면 크기를 키우면서 대규모 교체 수요를 일으켰다. 그러나 후속 제품인 iPhone 6s는 외형상 변화가 크지 않았고, 강력했던 교체 사이클도 약해지기 시작했다.

2016년 초에는 애플이 판매 부진과 유통재고 증가를 이유로 iPhone 6s와 6s Plus 생산량을 약 30% 감축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당시 애플 주가는 $100(*액면분할 후 약 $25) 부근까지 하락해 2014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에 접근했다.

Morgan Stanley는 2016회계연도 iPhone 판매량이 전년 대비 5.7%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iPhone 출시 이후 최초의 연간 역성장을 예상한 것이다. 스마트폰 시장 포화, 달러 강세, 높은 비교 기준, 부품 주문 감소가 주요 근거였다.

중국 성장 스토리의 훼손


중국은 iPhone 6 슈퍼사이클을 이끈 핵심 시장이었다. 그러나 2016회계연도 Greater China 매출은 485억달러로 17% 감소했다.

특히 2016년 2분기 중국 매출은 26% 줄었으며, 중국 매출 감소분은 당시 애플 전체 매출 감소액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중국 경기 둔화, 위안화 약세, 현지 스마트폰 업체의 성장, 정부 규제 위험이 동시에 부각됐다.

애플의 대표적 강세론자였던 칼 아이칸도 2016년 4월 애플 주식을 전량 매도했다. 그는 애플의 기업가치보다는 중국 정부와 무역환경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매도 이유로 제시했다.

당시 시장의 논리는 상당히 명확했다.

iPhone 6 슈퍼사이클은 끝났고, 스마트폰 시장은 포화됐으며, 중국 성장도 둔화되고 있다. 차기 성장동력이 보이지 않는 애플의 이익은 이미 정점을 지났다.


주가는 이러한 비관론을 빠르게 반영했다. 애플은 2015년 고점에서 약 25~30% 하락했고, 버크셔의 첫 매수가 공개된 2016년 5월에는 $90(*액면분할 후 약 $22.5) 초반에서 거래됐다.


3. 버크셔가 본 애플의 세 가지 가치


버크셔가 스마트폰 산업의 성장 둔화를 몰랐을 가능성은 없다.

차이는 산업 성장률을 부정한 데 있지 않았다. 버크셔는 산업 성장률보다 기업 단위에서 발생하는 현금흐름의 절대 규모와 지속성을 더 중요하게 평가했다.

첫째, 막대한 FCF와 이익의 지속 가능성


실적이 부진했던 2016년에도 애플은 다음과 같은 현금을 창출했다.

  • 영업현금흐름: 658억달러

  • 유형자산 투자: 127억달러

  • 단순 계산 FCF: 약 531억달러

  • 매출 대비 FCF 마진: 약 24.6%

  • 현금 및 시장성 유가증권: 약 2,376억달러


매출과 iPhone 판매량은 감소했지만, 애플은 여전히 연간 500억달러가 넘는 잉여현금흐름을 창출하고 있었다. 당시 환율을 단순 적용하지 않더라도 단일 기업이 매년 수십조원 규모의 현금을 남기는 구조였다.

시장은 이익의 성장률이 떨어졌다는 사실에 집중했다. 버크셔는 성장률이 낮아진 이후에도 높은 수준의 이익이 얼마나 오래 유지될 수 있는지를 바라봤다.

기업가치는 올해 이익과 내년 성장률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기업이 앞으로 창출할 전체 현금흐름의 현재가치에 가깝다.

따라서 성장률이 낮아지더라도 연간 500억달러의 FCF가 장기간 지속될 수 있다면, 그 기업의 내재가치는 여전히 매우 높다.

둘째, 브랜드와 생태계라는 경제적 해자


당시 시장은 애플을 하드웨어 기업으로 평가했지만, 버크셔는 애플을 강력한 브랜드와 생태계를 가진 소비재 플랫폼으로 해석했다.

애플은 2016년 이미 전 세계에서 10억대가 넘는 활성 기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하드웨어, 운영체제, 소프트웨어와 서비스를 직접 통합하면서 소비자가 생태계에 머무를 이유를 만들었다.

애플의 경쟁력은 단순히 다음 iPhone의 카메라 성능이나 처리속도에 있지 않았다.

  • 브랜드에 대한 신뢰

  • iOS와 App Store를 중심으로 한 생태계

  • 기기 간 높은 연동성

  • 데이터와 콘텐츠의 축적

  • 반복적인 기기 교체 수요

  • 다른 운영체제로 이동할 때 발생하는 전환 비용


스마트폰 시장의 전체 출하량이 정체되더라도 애플이 기존 사용자를 유지하고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면, 산업 평균보다 높은 이익률과 현금흐름을 장기간 유지할 수 있었다.

2016년 서비스 매출은 243억달러로 전체 매출의 11%에 불과했지만, 전년 대비 22% 성장하고 있었다. 시장은 당시 서비스 사업의 규모가 작다는 점을 봤고, 버크셔는 10억대 이상의 설치 기반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장기 수익을 봤다고 해석할 수 있다.


2026.04.30 APPLE
전체 이익에서 약 45%까지 상승한 서비스이익 (*지속 가능한 순도 높은 이익)


셋째, 팀 쿡의 주주환원과 자본배분


팀 쿡은 2011년 8월 애플 CEO에 취임했다. 따라서 버크셔가 애플을 처음 매수한 2016년에는 이미 약 5년간 그의 경영과 자본배분 성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애플의 주주환원 정책은 팀 쿡 취임 이후 크게 달라졌다.





애플은 2016년 자사주 매입 승인을 1,400억달러에서 1,750억달러로 확대했고, 전체 자본환원 프로그램도 2,500억달러까지 늘렸다.

버크셔 입장에서 애플의 자사주 매입은 단순한 주가 부양책이 아니었다.

애플이 저평가된 가격에서 자사주를 매입하면 전체 발행주식 수가 감소한다. 버크셔가 추가로 주식을 사지 않아도 애플에 대한 경제적 지분은 자연스럽게 높아진다.

버핏은 이후 주주서한에서 애플의 자사주 매입 덕분에 버크셔의 지분율이 5.39%에서 5.55%로 상승했으며, 이를 위해 버크셔가 별도의 자금을 투입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2021년 애플이 벌어들인 이익 가운데 버크셔의 경제적 몫은 약 56억달러였지만, 회계상 버크셔 손익에는 애플에서 받은 배당금 7억8,500만달러만 반영됐다. 버핏은 나머지 유보이익도 장기적으로 버크셔의 가치를 높이는 경제적 이익으로 바라봤다.


워런 버핏·팀 쿡 인터뷰 핵심과 원문 링크


3-1. 2013년 CNBC 인터뷰


버핏은 행동주의 투자자의 단기 주가 부양 요구보다 향후 5~10년간 기업가치를 높이는 경영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제외하고도 현금이 남으며, 경영진이 애플 주식을 내재가치보다 저평가됐다고 판단한다면 자사주 매입이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조언했다. (9to5Mac)

3-2. 2018년 버크셔 주주총회


버핏은 애플이 발표한 1,000억달러 규모의 자사주 매입 계획을 공개적으로 환영했다.

애플이 내재가치보다 낮은 가격에서 주식을 매입하면, 버크셔가 추가 자금을 투자하지 않아도 애플에 대한 경제적 지분율이 상승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애플처럼 이미 규모가 큰 기업은 대형 인수를 통해 충분한 가치를 창출하기 어렵기 때문에, 저평가된 자사주를 매입하는 편이 더 나은 자본배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버핏 CNBC)

3-3. 2019년 팀 쿡 CNBC 인터뷰


팀 쿡은 애플의 현금이 1,000억달러를 넘어섰던 2012년, 주주환원 여부를 고민하며 버핏에게 직접 전화했다고 밝혔다.

버핏의 조언은 단순했다.

경영진이 자사주가 저평가됐다고 믿는다면 그 주식을 매입해야 한다.

팀 쿡은 이 조언이 애플의 자사주 매입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참고가 됐다고 설명했다. (9to5Mac)

3-4. 2021년 버크셔 주주총회


버핏은 팀 쿡을 세계 최고의 경영자 중 한 명으로 평가하면서, 애플 주식 일부를 매도했던 결정이 실수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인정했다.

이 발언은 팀 쿡의 제품 운영 능력뿐 아니라, 막대한 FCF를 창출하고 자사주 매입을 통해 기존 주주의 경제적 지분을 높인 자본배분 능력에 대한 평가까지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 (버핏 CNBC)

전체 발언의 핵심

버핏이 팀 쿡의 자본정책에서 높게 평가한 부분은 다음과 같이 압축된다.

사업에 필요한 투자를 먼저 집행하고, 무리한 대형 인수를 피하며, 남는 현금으로 저평가된 자사주를 매입해 기존 주주의 주당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4. 시장과 버크셔는 같은 데이터를 다르게 해석했다


2016년 시장과 버크셔가 접한 데이터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양쪽 모두 iPhone 판매량이 감소하고 있으며, 중국 성장이 둔화되고 있고, 스마트폰 시장이 성숙기에 들어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달랐던 것은 그 데이터를 기업가치에 반영하는 방식이었다.



시장은 애플의 다음 1~2년 성장률을 낮췄고, 그 결과 애플의 장기 이익 전체에도 낮은 가치를 부여했다.

버크셔는 단기적인 성장 둔화를 인정하면서도, 애플의 브랜드와 생태계가 무너진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연간 500억달러 이상의 FCF가 지속되고, 그 현금이 자사주 매입을 통해 주당가치로 전환된다면 단기 출하량 둔화가 장기 기업가치를 크게 훼손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5. 수익률을 가른 것은 데이터보다 기업가치 프레임이었다


2016년 애플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차이는 정보의 양이나 데이터의 정확도가 아니었다.

동일한 데이터를 어떤 기업가치 프레임으로 해석했느냐의 차이가 이후 수익률의 희비를 갈랐다.

시장은 성장률의 기울기를 봤다.

  • iPhone 판매량이 얼마나 더 증가하는가

  • 다음 분기 매출이 컨센서스를 상회하는가

  • 중국 성장률이 회복되는가

  • 신제품이 새로운 슈퍼사이클을 만드는가


버크셔는 현금흐름의 면적과 지속 기간을 봤다.

  • 애플이 매년 얼마의 현금을 남길 수 있는가

  • 높은 이익률을 얼마나 오래 유지할 수 있는가

  • 고객이 애플 생태계를 떠날 가능성은 얼마나 낮은가

  • 경영진이 남는 현금을 어떻게 배분하는가

  • 자사주 매입이 장기적으로 주당가치를 얼마나 높이는가


성장률은 기업가치의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성장률만으로 기업가치를 설명할 수는 없다.

기업이 창출하는 이익의 절대 규모가 크고, 그 이익의 지속 가능성이 높으며, 추가 자본 투입 없이 막대한 FCF를 만들 수 있다면 낮은 성장률만으로 낮은 밸류에이션을 정당화하기 어렵다.

반대로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더라도 경쟁이 치열하고, 지속적인 증자가 필요하며, 대규모 투자를 반복해도 현금이 남지 않는 기업이라면 장기적인 주당가치 상승은 제한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성장률 자체보다 성장을 위해 필요한 자본과 성장 이후 남는 현금이다.



6. 이 사례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대입해보는 이유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높은 GPM과 OPM, 그리고 메모리 가격 상승을 두고 다음과 같은 의견을 자주 듣는다.

현재 이익률이 이미 너무 높기 때문에 여기서 추가적인 EPS 성장이 나오지 않으면 앞으로의 주가 상승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나는 이 해석과 정반대의 입장에 가깝다.

추가적인 EPS 성장 가능성도 중요하지만, 지금 확인해야 할 질문은 단순히 이익이 여기서 얼마나 더 늘어날 것인가에 그치지 않는다.

현재의 높은 이익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는가, 높은 수익성이 일시적인 가격 급등에서 비롯된 것인지 산업구조의 변화에서 비롯된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

여기서 애플 사례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한 가지가 더 있다.

애플은 단순히 막대한 FCF를 창출하는 기업이 아니라, 그 FCF를 지속적으로 자사주 매입 후 소각이라는 방식으로 주주에게 환원하면서 자본효율성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린 기업이다.

그 결과 ROE는 시간이 지날수록 구조적으로 상승했다.

애플의 ROE 추이를 보면 다음과 같다.



이 수치는 단순한 이익 성장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애플은 매년 수십조원 규모의 FCF를 창출했고, 이를 대규모 자사주 매입으로 사용하면서 발행주식 수를 지속적으로 줄였다. 그 결과 동일한 이익이라도 주당이익(EPS)은 더 빠르게 증가했고, 자기자본은 감소하면서 ROE는 구조적으로 상승했다.

즉, 이익의 절대 규모 + 지속성 + 자사주 소각이라는 자본배분이 결합되면서 주당가치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 구조는 주가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애플의 주가는 2015년 약 25달러 수준(분할 조정 기준)에서 2025년 말 약 200달러 내외까지 상승했다. 이는 약 8배 이상의 상승이다.

아래는 2015년부터 2025년까지 애플의 주가, FCF, FCF per share를 하나의 그래프로 시각화한 결과이다.


이 상승은 단순히 매출 성장이나 신제품 성공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 안정적인 FCF 창출

  • 높은 이익률 유지

  • 공격적인 자사주 매입

  • ROE의 구조적 상승

  • 주당가치의 지속적 증가


이 다섯 가지가 결합되면서 장기적인 주가 상승의 트리거가 만들어졌다.

결국 중요한 포인트는 이것이다.

이익이 지속되고, 그 이익이 FCF로 전환되며, 그 FCF가 주주환원으로 연결될 때 주가는 단순한 성장률 이상의 상승을 만들어낸다.

이제 이 프레임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적용해볼 필요가 있다.

가장 최근 시장 컨센서스를 기준으로 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2026~2027년 연간 실적 전망은 불과 1년 전과 비교해 상당히 드라마틱하게 상향 조정됐다.

특히 AI 인프라 투자 확대와 HBM 중심의 제품 믹스 변화가 반영되면서, 단순한 업사이클 회복이 아니라 구조적인 이익 레벨 상승에 대한 기대가 컨센서스에 반영되고 있다.

현재 주요 증권사 및 글로벌 IB 컨센서스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수준이다.


이를 애플 2016년과 비교해보면 차이가 더 명확해진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더 이상 과거와 동일한 메모리 기업인지에 대해서는 재검토가 필요하다.

과거 메모리 산업의 경쟁력은 생산능력과 원가 절감에 집중돼 있었다. AI 시대에는 여기에 기술과 고객 인증의 중요성이 더해졌다.

  • HBM 적층 및 패키징 기술

  • 미세공정 전환 속도와 수율

  • 고객별 제품 공동개발

  • GPU·ASIC 플랫폼과의 인증

  • 대규모 선행 투자 능력

  • 고용량 DRAM과 eSSD 공급 역량

  • 제한된 공급업체 구조


현재 글로벌 DRAM 시장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세 기업이 약 90%를 점유하는 과점구조에 가깝다. 산업집중도를 나타내는 HHI도 약 2,838로 높은 수준이다. 산업집중도가 높은 것만으로 높은 수익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지만, 신규 기업이 단기간에 기술·설비·고객 인증을 동시에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은 분명한 진입장벽이다.



가치투자의 관점에서 보면, 기업의 핵심 가치는 단기적인 이익 증가율보다 높은 수익성을 얼마나 오래 유지할 수 있는지에 의해 결정된다.

애플의 경제적 해자가 브랜드와 소비자 생태계에서 형성됐다면, 메모리 IDM의 해자는 공정기술, 수율, 대규모 자본투자 능력, 첨단 패키징, 고객 인증, 공급 신뢰성에서 형성된다. 해자의 형태는 다르지만, 경쟁사가 단기간에 동일한 경쟁력을 구축하기 어렵다는 경제적 본질은 유사하다.

즉, 애플의 해자는 수요를 붙잡는 해자이고, 메모리 IDM의 해자는 공급을 제한하는 해자에 가깝다.

이 관점에서 보면 현재 메모리 IDM의 높은 이익률을 단순한 업황 호조의 결과로만 해석하기는 어렵다. AI 메모리 수요의 구조적 확대와 높은 진입장벽이 유지된다면, 과거보다 높은 수준의 정상 이익과 FCF가 장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가치투자자에게 중요한 것은 현재 이익이 더 증가할 수 있는가보다, 현재의 높은 이익이 얼마나 지속 가능하며 그 현금흐름이 주주가치로 얼마나 효율적으로 전환되는가이다.

향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축적되는 FCF를 과잉 설비투자에만 사용하지 않고, 배당 확대와 자사주 매입·소각으로 연결한다면 과거 애플과 유사한 주당가치 상승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

결국 추가적인 주가 상승의 핵심 트리거는 단순한 EPS 성장률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초과이익 → 안정적인 FCF 창출 → 주주환원 확대 → 주당가치 상승

으로 이어지는 자본배분 구조가 될 가능성이 높다.



AI 시대의 핵심 부품은 메모리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대한 시장의 가장 큰 오해가 있다면, 이익 추정치가 너무 높다는 사실 자체에 집중하면서 산업의 정상 이익 수준과 이익의 질이 동시에 변하고 있을 가능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는 데 있을 수 있다.

물론 메모리 기업이 애플과 같은 기업이 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AI 메모리의 기술적 진입장벽, 과점화, 고객 인증, 공급 규율이 결합되고 FCF가 주주환원으로 이어진다면, 과거 메모리 기업에 적용됐던 낮은 밸류에이션 체계가 계속 유지돼야 할 이유도 약해질 수 있다.

AI 시장 규모를 스마트폰과 단순 비교하긴 어렵지만, 적용 범위는 훨씬 광범위하다. 데이터센터, 소프트웨어, 자율주행, 로봇, 의료, 금융 등 산업 전반에 침투하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AI의 핵심 부품은 메모리다. 특히 Physical AI 시대에는 단순 저장이 아니라 환경 인식, 상태 유지, 행동 결정까지 연결하는 핵심 인프라로 기능한다. 차량·로봇·드론 등에서 메모리는 현실 데이터를 기록하고 연속적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기반이 된다.

생각정리 300 (* Micron SCA, physical AI)

따라서 메모리 기업 평가는 단순 실적 증가가 아니라 다음이 중요하다:

  • AI로 인한 메모리 수요 구조적 증가
  • HBM·서버 DRAM 중심의 수익성 개선
  • 공급 규율 강화 여부
  • 기술 격차와 진입장벽 지속성
  • 높은 중간 이익률 유지 가능성
  • FCF의 효율적 활용(주주환원 등)

또한 SCA·LTA 확대는 수요 안정성과 가격 변동성 완화를 가져오며, 이익 구조의 질과 지속 가능성 개선으로 이어진다.

핵심은 단기 이익률 상승이 아니라,
높은 이익이 얼마나 오래 유지되는가다.

주가는 단순 성장보다
이익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신뢰와 할인율 하락, 밸류에이션 재평가에 의해 상승한다.

결국 투자에서 중요한 것은
단기 성장률이 아니라, 기업 이익 구조의 근본적 변화와 장기 현금흐름의 지속성이지 않을까 한다. 


#글을 마치며, 


개인적으로 AI 시대의 투자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과거처럼 미공개 정보를 먼저 확보하는 능력보다 이미 공개된 데이터를 어떻게 해석하고, 시장의 오해를 얼마나 강한 확신으로 밀고 갈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는 데이터와 정보가 충분히 공개되어 있고, 유통 속도 역시 과거 어느 때보다 빨라졌다.
남들보다 조금 먼저 정보를 접하는 것만으로 지속적인 알파를 만들기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결국 투자 성과를 가르는 핵심은 정보의 양보다
관점의 차이,
해석의 깊이,
그리고 판단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는 확신의 강도
에 가까워질 가능성이 높다.

같은 데이터를 보더라도 무엇을 중요하게 판단하는지,
시장의 해석이 왜 잘못되었다고 보는지,
그 판단을 얼마나 일관되게 투자로 연결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해지는 시대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투자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반드시 더 많은 운용 인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며,
오히려 많은 사공은 배를 산으로 가게 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공개된 데이터와 산업의 변화를 정확하게 해석하고,
그 해석을 바탕으로 올바른 방향에 집중해
투자 확신을 밀어붙일 수 있는 역량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