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여행, 베니스, 그리고 메모리
지난 9월 중하순은 신혼여행 기간이었다.
천년의 세월 동안 쌓인 문화유산을 잘 보존해온 도시국가,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환상적인 투어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 와이파이를 연결해 텔레그램을 켰는데, 유독 메모리 가격 상승에 대한 데이터가 눈에 들어왔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최근 출시된 ChatGPT 5.0, 그리고 전반적인 AI 발전 흐름이 메모리를 더 많이 요구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 생각은 당시 며칠전에 읽었던 마이크론 CEO가 언급했던 내용과도 일맥상통해 보였다.
(https://www.micron.com/about/blog/applications/ai/why-memory-and-storage-matter-for-ai?utm_source=chatgpt.com) |
통장 잔고와 미국 메모리 투자
집, 가전, 가구를 영끌로 맞추고, 결혼식 비용까지 모두 치르고 나니 통장에 남은 잔고가 거의 없었다.
신혼여행 경비도 빠듯하게 계획해둔 상태였다.
이탈리아의 밤, 늦은 새벽에 몰래 일어나 앞으로 남은 일정에 필요한 여행 경비를 빠르게 다시 추산해 보았다.
그리고 그 계산 결과 남는 잔액을 전부를, (와이프 몰래) 미국 메모리 회사에 투자했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미국 메모리 회사들의 주가는 이런 미래 메모리 가치를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었다.
순간,
‘여기서 레버리지를 써야 하나…’
라는 유혹이 강하게 들었지만,
2022년에 약간의 레버리지 중국 투자 실패, 그리고 동시에 전세사기를 당해 법원을 드나들며 받았던 스트레스, 그리고 재산이 바닥났던 경험이 떠올랐다.
그때 이후로 나는 절대로 레버리지 투자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가용 가능한 현금 범위 내 투자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피렌체, 로마, 그리고 메모리 비중 확대
그렇게 피렌체와 로마를 연달아 돌며 도시 투어를 마친 뒤 숙소에 돌아오면, 나는 밤마다 남은여행 경비를 재계산해 남은 잔액 모두를 미국 메모리 기업에 투자해 주식 비중을 조금씩 더 늘려갔다.
월급을 받고 고정 생활비를 모두 지출한 뒤 남는 모든 짜투리 금액은 지금까지 줄곧 미국 메모리 회사들을 사들이는 데 써왔고, 동시에 AI가 이끄는 메모리 전방 수요 변화에 대해 리서치를 꾸준히 이어가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처음에는 Agentic AI라는 용어를 통해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첫 번째 수요 변화를 감지했던 것 같다.
이후에는 Sparse Locality를 거쳐 Sparse MoE라는 새로운 기술 구조를 공부하면서, AI 발전 흐름이 결국 메모리를 엄청나게 소모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이것이 지금까지 내가 이해한 메모리 수요 변화의 핵심 근원이다.
한편, 새로운 식구를 맞이하기 위해 미뤄두었던 차를 이제는 정말 사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 즈음에 나는 엊그제
“혹시 케빈 워시 새 연준의장의 발언이나 조정 이슈로 메모리 조정 국면이 온다면, 차를 일시불로 사려던 계획을 월 할부로 바꿔서 그만큼 메모리를 더 담아볼까?”(와이프를 어떻게 설득시키지..?)
라는 다소 들뜬 상상을 하며 잠이 들었다.
그런데 다음 날 눈을 떠보니,
메모리 회사 주가 하락은 개뿔 메모리 회사 주가는 다시 떡상해 있었다.역대 연준의장 취임후 기간별 주가변동
TrendForce 리포트: 2026년 1분기, 사상 최대 메모리 가격 상승폭 전망
이유는 명확했다.
메모리 숏티지(memory shortage)가 장기화되면서, 가격 상승 폭이 더 가팔라지고 있다는 기사 때문이었다.
TrendForce는 2026년 1분기 메모리 가격을 전면 상향 조정하며, 사상 최대 분기 상승폭을 전망했다.
범용(Conventional) DRAM:
합의 가격(Contract Price) 전망치를
기존 +55~60% → +90~95% 상승으로 대폭 상향.NAND Flash:
합의 가격 전망치를
기존 +33~38% → +55~60% 상승으로 상향.PC DRAM:
공급 부족 심화로 인해
2026년 1분기 가격이 최소 2배(100% 이상) 상승할 것으로 예상.Enterprise SSD:
북미 CSP 수요 폭증으로
1분기 가격 +53~58% 상승 전망.
시장 현황: “전 제품군 가격 전면 상향”
TrendForce의 최신 조사에 따르면,
2026년 1분기 AI 및 데이터센터 수요가 전 세계 메모리 수급 불균형을 더 심화시키고 있다.
제조사의 협상력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해졌고, 이에 따라 TrendForce는 1분기 DRAM 및 NAND Flash 전 제품군 가격 상승폭을 전면 상향 조정했다.
특히 DRAM의 경우는 추가 상향 가능성도 열어둔 상태이다.
1. PC DRAM: “가격이 두 배로”
2025년 4분기 PC 완제품 출하량이 예상치를 상회하면서, 현재 PC DRAM은 보편적인 공급 부족 상태이다.
공급량을 확보한 티어1(Tier-1) PC OEM조차 재고 수준이 떨어지고 있다.
판매자 중심의 시장이 형성되며,
2026년 1분기 PC DRAM 가격은 분기 대비 100% 이상 상승,
역사상 최고의 상승 기록을 경신할 전망이다.
2. Server DRAM: “역대급 공급 쟁탈전”
북미와 중국의 주요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자(CSP) 및 서버 OEM 업체들은 1월까지 제조사와 **연간 DRAM 장기 공급 계약(LTA)**을 협상 중이다.
구매자들이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나서면서
1분기 서버 DRAM 가격은 약 90% 급등할 것으로 보인다.
제조사들은 핵심 고객사들 사이에서 공급 균형을 맞추기 위해 고심하는 상황이다.
3. Mobile DRAM: “전방위적 가격 인상”
전체 DRAM 시장의 수급 격차가 더 벌어지자, 스마트폰 제조사들 역시 물량 배정을 받기 위해 입찰가를 올리는 중이다.
이에 따라 LPDDR4X, LPDDR5X 합의 가격 모두
약 +90% 수준의 기록적인 상승이 예상된다.
미국계 스마트폰 고객사(애플 등)는 이미 작년 말 계약을 마쳤으나,
중국계 고객사들은 춘절 연휴 등의 영향으로 인해 2월 말은 되어야 실질적인 협상이 진전될 전망이다.
4. NAND Flash 및 Enterprise SSD: “생산라인 전환의 나비효과”
NAND Flash 시장은 이미 주문량이 공급 능력을 크게 초과한 상태이다.
여기에 제조사들이 수익성이 더 높은 DRAM에 집중하기 위해 NAND 생산 라인을 DRAM으로 전환하면서, 신규 캐파는 더욱 축소되었다.
한편, 추론용(Inference) AI 응용처가 확대되면서 고성능 스토리지 수요가 예상을 웃돌고 있다.
북미 CSP들의 강력한 재고 확보 움직임으로 Enterprise SSD 주문이 폭발했고,
1분기 가격은 +53~58% 상승, 단기 최대 상승폭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메모리 몰빵 P/F지만, 마음은 조급하다
이미 메모리 비중을 크게 가져가는, 말 그대로 메모리 몰빵 포트폴리오를 유지해온 덕분에 이번 랠리의 수혜를 보긴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직 충분히 못 샀다…”
라는 생각이 계속 들며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래서 아침 일찍 회사에 출근해 대충 숫자를 두드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름의 가정 하에 몇 가지 추정치를 계산해보았는데, 정말 미친 숫자가 나왔다.
SEC의 ROIC, PER에 대한 내 계산
현재 SEC는 6%의 대출을 받아 국내 Fab을 건설하고 있다.
만약 이 메모리 숏티지가 장기화된다면,
내가 추정한 바에 따르면 ROIC는 40%에 육박하게 된다.
그런데도,
그렇게 ROIC가 뻗어 오른다 하더라도
(내 추정치가 맞는다는 전제에서)
SEC의 Foward PER은 고작 4~5배 수준밖에 안 된다.
이 숫자들을 보고, 전날 밤에 다시 고민에 빠졌다.
“첫차를 중고로 살까…
아니면 월 할부로 사면서 메모리를 더 사야 하나…”
머리가 아파질 정도로 고민만 하다가 결국 그냥 잠이 들었다.
왜 우리는 이런 급격한 상승에 적응하지 못할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우리는 이런 급격한 상승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것일까?”
돌이켜보면, 불과 얼마 전만 해도
2026년 전망을 정리하던 10월까지만 해도 SEC, SKH 내부 2026년 영업이익(OP) 전망은
각각 60조원 수준에 불과했던걸로 알고있다.
그러다 메모리 가격 급등이 시작되고 나서,
11월에는 전망치가 80~90조원으로 상향 조정되었다.
12월 말에는 일제히 26년 OP 전망을 100~110조원으로 올렸다.
그리고 1월 중하순, 1분기 고정 계약 가격이 발표되자
외국계 증권사들은 OP 전망치를 150조원으로 상향했다.
여기에 2월초 엊그제 나온 발표에서는
최상단 OP 전망을 220조원 이상까지 또다시 상향 조정했다.
즉, 60조원에서 220조원까지
불과 4~5개월 만에 벌어진 OP 상향 조정이다.
무엇보다, 이제 시가총액 1,000조원을 넘어선 회사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 더 놀랍다.
한 번 본 적 있는 그림: NVIDIA의 1Q23
사실 이런 경험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 군데 있었다.
바로 NVIDIA가 AI GPU 시대의 서막을 알린 1Q23 실적 발표 당시이다.
그때도 시장은
“이 정도의 어닝 레벨이 실제로 지속 가능한가?”
라는 의구심을 가졌고,
주가는 이익 전망 상향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며 계속 뒤늦게 반영해 나갔다.
지금 우리는,
그때의 NVIDIA보다 더 강한 어닝 상향 조정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 1Q23 실적발표 당일에만 따라 샀어도 멀티배거 뒤돌아보면 항상 쉽다. |
인텔 CEO, 젠슨 황, 그리고 메모리 숏티지의 장기화
정말로 INTEL CEO의 말처럼 2028년까지 메모리 숏티지가 장기화되고,
젠슨 황이 말했듯 앞으로 메모리의 중요성이 더 커진다면,
지금 우리는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메모리 상승세에 올라타야 하는 초입 구간을 이제 막 지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젠슨 황의 발언은 다음과 같다.
“엔비디아는 메모리가 많이 필요하다.”
“엔비디아가 정말 큽니다. 제가 모르는 것도 참 많네요. 하지만 올해 우리는 많은 메모리가 필요합니다. 좋은 지적입니다. 성능을 위해서는 HBM 메모리가 필요하고, 저전력 메모리를 위해서는 LPDDR이 필요합니다. AI는 메모리를 갖춰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능에는 메모리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지능을 위해 많은 메모리가 필요합니다.”
기자가 질문한다.
“올해 메모리 공급 제약이 엔비디아에 문제가 될까요?”
젠슨 황의 답변은 이렇다.
“제 생각에 올해는 수요가 훨씬 더 많기 때문에 전체 공급망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아시다시피 공급은 매년 100%씩 성장해 왔지만, 수요는 그보다 더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우 좋은 한 해를 보내게 될 것입니다.”
그래도 이번엔, 진짜 차를 샀다
사실 나는
“올해엔 꼭 차를 산다.”
라고 호언장담한 지 벌써 몇 년이 지났다.
하지만 주식병에 빠져, 돈이 생길 때마다 계속 주식부터 사느라 차는 매번 뒤로 밀렸다.
그러던 내가, 며칠 전 새로운 가족을 맞이하기 위해
정말 진짜, 진짜, 진짜 이번에는 차를 사겠다고 마음먹고
드디어 계약금을 넣고 왔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어차피 월 할부로 사면 되는 거였잖아? 개꿀.”
(답정너)
주식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