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1일 목요일

생각정리 384 (* Korea, end-of-war declaration)


https://www.newdaily.co.kr/site/data/html/2026/10/01/2026100100401.html

이전 회사 대표님과의 대화를 통해 깨달은건 세상에 나타나는 현상을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내가
전후 맥락을 놓쳤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며,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려 들면 도무지 납득할 수 없을 정도의 일은 실제로는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의 사의 표명, 이재명 대통령과 정청래 전 대표의 4시간 만찬, 송영길 의원의 평화외교특보 임명, DMZ 지뢰 사고, 북한의 유엔총회 핵보유국 발언, 11월 중국 선전 APEC, 그리고 2027년 교황 방한까지.

각각 떼어놓고 보면 서로 다른 국내 정치·외교 뉴스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나의 정치 일정 위에 올려놓으면 어느 정도 연결된 그림이 보인다.

국내에서는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의 역할 분담이 시작되고 있고, 대외적으로는 11월 APEC을 출발점으로 북한 핵 동결과 종전·평화체제 협상을 준비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아직 공식적으로 확정된 것은 없다. 다만 최근 인사와 회동, 정부의 대북정책 변화가 우연히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지는 기록해둘 필요가 있다.


1. 민주당 전당대회 이후의 역할 분담


2026년 8월 민주당 전당대회는 김민석·정청래·송영길 후보의 3파전으로 치러졌다.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자 선호투표제가 적용됐고, 3위였던 송영길 후보의 2순위 표가 재배분되면서 김민석 후보가 최종 **54.08%**를 얻어 당대표에 당선됐다.

송영길 후보의 표 6만6,872표 가운데 4만6,869표가 김민석 후보에게, 2만3표가 정청래 후보에게 이동했다. 송영길 후보 지지표의 약 **70%**가 김민석 후보에게 향한 셈이다.

송영길, 선호투표제로 김민석 당선 도운 ‘킹메이커’|조선일보

이를 공식적인 후보 단일화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송영길 후보가 중도 사퇴해 김민석 후보와 합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당대회 내내 송영길 후보가 정청래 후보를 강하게 견제했고, 실제 선호투표에서도 송영길 표의 대부분이 김민석 후보에게 이동했다는 점에서 사실상의 반정청래 선거연합이 작동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김민석 대표의 당선 이후 송영길 의원에게 어떤 역할이 부여될 것인지도 관심사였다.

송영길 의원은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문재인 정부 대통령 러시아 특사,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장을 지냈다. 당내에서는 외교부 장관 후보로도 거론됐다.

그러나 이재명 대통령은 송 의원을 외교부 장관이 아니라 새로 만든 평화외교특별보좌관에 위촉했다.

외교장관 거론되던 송영길, 평화외교특보에|동아일보

송 의원은 임명 직후 다음과 같이 밝혔다.

“경색된 남북 관계를 풀고 다시 대화의 문을 여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다.”


평화외교특보는 비상근으로 겸직이 가능한 자리다. 외교부 장관처럼 정부 조직 전체를 운영하는 직책은 아니지만, 대통령에게 직접 대북·평화외교 전략을 조언할 수 있다.

형식적인 권한보다 역할의 상징성이 더 중요해 보인다.

전당대회에서 김민석 대표의 당선에 결과적으로 힘을 보탠 송영길 의원에게 ‘평화외교’라는 별도의 정치적 역할을 부여한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민주당과 대통령실의 역할 분담을 단순화하면 다음과 같다.


송영길 의원의 평화외교특보 임명을 단순한 전당대회 논공행상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11월 APEC을 앞둔 시점에 외교통일위원장과 러시아 특사 경력이 있는 중진 정치인을 신설된 평화외교특보에 배치했다는 것은, 대통령실이 대북 평화외교를 별도의 정치적 프로젝트로 다루기 시작했다는 신호일 수 있다.


2. 강훈식 사의는 서울시장 후보 결정의 신호일까


강훈식 비서실장은 지난 9월 21일 이재명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공식적으로는 장관 후보자들의 연이은 낙마와 인사검증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는 성격으로 해석됐다.

그러나 사의 표명 이후 열흘이 넘도록 이재명 대통령은 수리와 유임 가운데 어느 쪽도 결정하지 않았다. 청와대 역시 10월 1일 “인사권자가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청와대 “강훈식 후임 인선이냐 유임이냐, 인사권자 고민 중”|연합뉴스

단순히 인사 실패의 책임을 묻는 문제라면 결정을 이렇게 오래 미룰 이유가 크지 않다. 강훈식 비서실장의 향후 역할과 차기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 구도를 함께 검토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김민석 대표의 수첩에는 이미 서울시장 후보로 추정되는 인물들이 적혀 있었다.

  •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

  • 우원식 전 국회의장

  • 정청래 전 민주당 대표

  •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

  • 김민석 민주당 대표

김민석 대표는 오세훈 시장의 재판 결과에 따라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열릴 가능성을 **“99.99%”**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김민석 “서울시장 보선 가능성 99.99%…수첩 속 후보는 강훈식·우원식·정청래”|동아일보

내가 보는 핵심 분기점은 강훈식 비서실장의 사의 수리 여부다.


사의가 받아들여지면 강훈식,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정청래.

아직은 개인적인 추론이지만 현재 민주당 내부 역학을 가장 간결하게 설명하는 가설이다.

강훈식은 대통령과 정부의 후보에 가깝고, 정청래는 권리당원과 당 조직의 후보에 가깝다.

결국 강훈식의 거취는 단순한 청와대 인사가 아니라 차기 서울시장 후보를 대통령 중심으로 정할 것인지, 당 중심으로 정할 것인지를 보여주는 신호가 될 수 있다.


3. 이재명·정청래·강훈식의 4시간 만찬


10월 1일 이재명 대통령은 정청래 전 민주당 대표를 청와대로 초청해 약 4시간 동안 만찬을 함께했다.

이 자리에는 사의를 표명한 강훈식 비서실장이 배석했다.

청와대는 세 사람이 다양한 국정 현안과 당내 사안에 대해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깊은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 정청래 전 대표와 4시간 만찬…강훈식 비서실장 배석|뉴스핌

공식 발표만 놓고 보면 당내 갈등을 해소하고 정청래 전 대표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회동이다.

그러나 시점과 참석자 구성이 묘하다.

  • 강훈식 비서실장은 사의를 표명했지만 수리 여부가 결정되지 않았다.

  • 정청래 전 대표는 서울시장 후보군으로 공개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 이재명 대통령은 두 사람을 함께 앉혀 4시간 동안 국정과 당내 사안을 논의했다.

  • 하루 뒤 송영길 의원은 평화외교특보에 임명됐다.

이 자리가 서울시장 후보를 직접 결정하기 위한 회동이었다는 증거는 없다. 청와대도 논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서울시장 후보군인 정청래와 강훈식, 그리고 최종 인사권자인 이재명 대통령이 한자리에 모였다는 사실 자체에는 정치적 상징성이 있다.

강훈식의 사의를 수리해 서울시장 후보로 보낼 것인지, 강훈식을 대통령실에 남기고 정청래에게 서울시장 출마의 공간을 열어줄 것인지, 또는 두 사람 사이의 경쟁과 역할을 사전에 조정할 것인지 논의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만약 강훈식이 서울시장 후보로 결정된다면 정청래 전 대표의 협조가 필요하다. 반대로 정청래가 서울시장 후보로 결정된다면 강훈식 비서실장과 대통령실의 지원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4시간 만찬은 단순한 화해의 식사라기보다 서울시장 후보 결정 이전의 정치적 교통정리였을 가능성이 있다.


4. DMZ 지뢰 사고와 정부의 억제된 대응


지난 9월 21일 서부전선 DMZ에서 지뢰가 폭발해 우리 장병들이 부상을 입었다.

초기 조사 과정에서는 지뢰의 종류와 매설 경위가 명확하지 않았다. 그러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식과 현장조사를 통해 북한군 지뢰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파악됐다.

유엔군사령부도 군사분계선 남쪽에서 북한 대인지뢰가 발견됐다며 정전협정 위반이 발생한 것으로 판단했다.

유엔사 “DMZ 폭발, 정전협정 위반 발생한 것으로 판단”|조선일보

정부와 여당이 끝까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합참은 조사 결과에 따라 북한에 책임을 묻고 상응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으며, 김민석 민주당 대표도 9월 30일 북한의 정전협정 위반을 규탄하고 사과를 요구했다.

김민석 “DMZ 지뢰 사고는 북한의 정전협정 위반…반드시 사과해야”|연합뉴스

다만 주목할 부분은 초기 대응의 강도와 속도다.

정부와 여당은 북한의 책임을 곧바로 단정하기보다 조사 결과를 기다리는 태도를 유지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북한을 직접 강하게 비판하기보다 장병의 부상에 유감을 표시하고 단절된 대화를 복원해야 한다는 메시지에 무게를 뒀다.

이는 증거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신중하게 대응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정부가 추진하는 대북 대화의 판을 깨지 않기 위해 충돌 수위를 관리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DMZ 지뢰 사고 자체가 종전협정을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보다 정확한 해석은 다음과 같다.

정부가 종전과 평화체제 협상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DMZ 지뢰 사고를 남북 간 대결 이슈로 확대하기보다 조사와 책임 규명 수준에서 관리하려는 유인이 생긴다.

사건 자체보다 정부의 반응 함수가 더 중요한 이유다.


5. 이재명 정부의 대북정책은 이미 방향을 바꾸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북한 비핵화 문제에서 기존보다 현실적인 단계론을 공개적으로 제시했다.

핵심은 북한의 즉각적인 핵 폐기를 협상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다음 순서로 접근하자는 것이다.

핵·ICBM 추가 개발 중단 → 핵 능력 축소 → 국제 감시와 검증 → 장기적인 핵 폐기

이 대통령은 북한의 핵과 ICBM 개발 중단을 대가로 실효성이 낮아진 일부 제재를 완화하는 방안도 언급했다.

정부는 최종 목표가 완전한 비핵화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협상 출발점은 이미 비핵화 선행에서 핵 동결과 관리로 이동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 “북핵 폐기 아닌 동결부터…제재 완화와 맞교환”|서울신문

유엔총회 연설에서도 이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보다 **“핵 없는 한반도”**라는 표현을 전면에 내세웠다.

동시에 남·북·미·중이 참여하는 4자 대화를 통해 한국전쟁을 종식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하자고 제안했다.

이 대통령, 남·북·미·중 4자 대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제안

단어의 변화가 중요하다.

‘선 비핵화’는 북한이 핵을 포기해야 대화가 가능하다는 의미에 가깝다. 반면 ‘핵 없는 한반도’와 단계적 접근은 북한의 기존 핵 능력을 당분간 인정한 상태에서 동결과 축소부터 협상할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공식적인 핵보유국 인정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는 북한의 핵을 당장 제거할 수 없는 관리 대상으로 취급하기 시작한 것이다.


6. 북한의 유엔 발언: 비핵화가 아니라 핵보유국 인정이 목표다


북한도 같은 시기 유엔총회에서 자신의 협상 목표를 분명하게 밝혔다.

김선경 북한 외무성 부상은 9월 28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81차 유엔총회 일반토의 연설에서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는 어떤 경우에도 되돌릴 수 없다고 주장했다.

김 부상은 북한의 핵 억제력을 외부의 침략과 위협으로부터 주권과 안전, 평화를 지키기 위한 절대적인 힘으로 규정했다.

또한 북한이 앞으로도 ‘책임 있는 핵보유국’으로서 지역과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북한 김선경 외무성 부상 유엔총회 연설 영상·요약|유엔

북한 “핵보유국 지위는 물리적으로나 법적으로 되돌릴 수 없다”|조선일보

이 발언은 북한이 향후 협상에서 무엇을 요구할지를 보여준다.

북한은 핵 폐기를 전제로 협상장에 나오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한 상태에서 미국과 핵 동결, 군비통제, 제재 완화, 체제보장 문제를 협상하려는 것이다.

북한의 목표를 단순화하면 다음과 같다.

비핵화 협상 → 핵보유국 간 군비통제 협상으로 전환

북한이 말하는 ‘책임 있는 핵보유국’이라는 표현도 중요하다.

이는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선언인 동시에, 자신을 무조건적인 위협이 아니라 핵무기를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는 정상국가로 묘사하려는 시도다.

향후 북한이 제시할 수 있는 조건은 다음과 같다.


국제사회가 북한을 NPT 체제상의 공식 핵보유국으로 승인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현실적인 타협은 법적인 핵보유국 승인보다 북한이 이미 핵을 보유하고 있다는 현실을 전제로 동결·감축·감시 협상을 시작하는 사실상의 인정에 가까울 가능성이 높다.

이재명 정부가 말하는 단계적 비핵화와 북한이 주장하는 핵보유국 지위 사이에는 여전히 큰 간극이 있다.

그러나 동시에 협상이 성립할 수 있는 교집합도 존재한다.

  • 북한은 기존 핵무기의 즉각적인 폐기를 거부한다.

  • 한국과 미국은 핵과 ICBM의 추가 확대를 중단시킬 필요가 있다.

  • 양측 모두 국제적 감시와 단계적 제재 완화를 거래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협상의 출발점은 ‘핵무기 0개’가 아니라 다음이 될 가능성이 높다.

더 이상 늘리지 못하게 하고, 사용할 가능성을 낮추고, 국제 감시 아래 두는 것이다.


7. 11월 중국 선전 APEC이 첫 번째 확인 시점이다


현재 가장 중요한 정치 일정은 11월 18~19일 중국 선전에서 열릴 예정인 APEC 정상회의다.

한국 정부는 이 회의를 계기로 남·북·미·중 정상들이 참여하는 4자 평화회담을 추진하고 있다.

11월 중국 선전 APEC 계기 남·북·미·중 4자 평화회담 추진|파이낸셜뉴스

국정원도 APEC 전후 미북 대화가 재개될 가능성을 약 **50%**로 평가한 것으로 보도됐다.

국정원 “APEC 때 미북 회담 가능성 50%”|조선일보

여기에 트럼프·시진핑·푸틴의 3자 회동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러시아 측도 APEC을 계기로 한 미·중·러 정상회동이 논의됐다고 확인했다.

트럼프·시진핑·푸틴, 11월 중국 APEC 3자회담 가능성|머니투데이

각국 정상은 서로 다른 이유로 북한 문제에 관여할 유인이 있다.

트럼프


트럼프에게 북한과의 합의는 전쟁을 끝낸 대통령이라는 외교적 유산이 될 수 있다.

완전한 비핵화보다 핵 동결과 ICBM 통제를 얻어내고 이를 역사적 합의로 포장하는 방식이 정치적으로 더 현실적이다.

(*이란 중동전쟁 문제를 북한 종전협정 이슈로 덮으려는 것 일수도)

시진핑


중국에서 개최되는 APEC에서 북미 대화나 다자 평화회담이 성사되면 시진핑은 한반도 문제의 핵심 중재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동시에 북한이 미국이나 러시아 한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어지는 것도 견제할 수 있다.

푸틴


북한과 군사적으로 밀착한 러시아는 이제 한반도 협상에서 제외하기 어려운 당사자가 됐다.

푸틴은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협상 자산으로 활용하고, 러시아가 동북아 질서에서도 배제할 수 없는 강대국이라는 점을 인정받으려 할 것이다.

다카이치


다카이치 일본 총리는 북한을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은 여전히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다.

따라서 이를 일본이 북한을 공식적인 핵보유국으로 인정한 것으로 확대해석해서는 안 된다.

다카이치 총리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납북자 문제 해결 촉구”|일본 총리관저

다만 일본도 납북자 문제와 북일 정상회담을 통해 협상 테이블에 참여할 유인이 있다.

4자회담이 남·북·미·중 중심으로 출발하더라도 러시아와 일본의 이해관계가 결합하면 과거의 6자회담과 비슷한 구조로 확대될 수 있다.

이재명 정부


이재명 정부에도 한반도 종전과 평화체제 구축은 대표적인 역사적 치적이 될 수 있다.

부동산, 세제, 인사 문제로 국내 정치의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대북 평화 이벤트는 정권의 의제를 단번에 전환할 수 있는 카드다.

결국 종전협정은 이상적인 평화주의만으로 추진되는 것이 아니다.

북한에는 제재 완화와 체제보장, 미국에는 핵과 ICBM 동결, 중국과 러시아에는 동북아 영향력, 일본에는 납북자 문제 해결의 기회, 이재명 정부에는 역사적 치적이 돌아가는 국제정치적 거래다.


8. 교황 방북과 남북 평화 이벤트


APEC 이후의 두 번째 주요 일정은 **2027년 8월 3일부터 8일까지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WYD)**다.

이는 단순한 청년 기독교 행사가 아니라 전 세계 가톨릭 청년과 성직자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국제행사다. 정확한 참가 규모는 최종 등록 결과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국내외 청년 수십만 명에서 최대 100만 명가량이 참여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 공식 일정

레오 14세 교황도 전 세계 청년들이 2027년 8월 3일부터 8일까지 서울에 모일 것이라고 직접 발표했다. 공식 일정에는 교황 환영행사와 교황이 함께하는 십자가의 길, 파견미사가 포함돼 있다.

레오 14세 교황의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 초청 메시지|교황청

이 행사가 남북관계와 연결되는 이유는 이재명 대통령이 이미 교황에게 한반도 평화를 위한 역할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2026년 6월 바티칸에서 레오 14세 교황을 만나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 정착 문제를 논의하고,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를 계기로 한국을 방문해 달라고 공식 초청했다.

교황과 이재명 대통령, 한반도 평화와 서울 세계청년대회 논의|가톨릭평화방송

이 과정에서 교황의 북한 방문 가능성도 실제로 논의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통령, 레오 14세 교황에게 방한 초청…방북 가능성도 논의|서울신문

다만 교황의 방북은 아직 확정된 일정이 아니다.

유흥식 추기경도 교황의 방북 여부는 결국 북한의 태도에 달려 있다고 밝혔다. 북한이 교황을 공식 초청하고, 종교 활동에 대한 최소한의 조건을 수용해야 실제 방문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유흥식 추기경 “교황 방북 여부는 북한의 자세에 달려”|동아일보

그럼에도 교황 방북이 성사될 경우 그 정치적 의미는 상당히 크다.

교황의 북한 방문은 단순한 종교행사를 넘어 한반도의 휴전 체제를 종전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국제적 이벤트로 활용될 수 있다.

가능한 일정은 다음과 같다.

2026년 11월 APEC 미북·다자대화 개시
→ 핵 동결과 제재 완화 실무협상
→ 남북 간 긴장 완화 조치
→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 교황 방한
→ 교황 방북 또는 남북 평화 메시지 발표
→ 종전선언·평화협정 논의의 정치적 정점

교황은 군사적 이해관계가 없는 종교 지도자이기 때문에 남·북·미·중 어느 국가도 공개적으로 거부하기 부담스러운 중재자가 될 수 있다.

북한 입장에서도 교황의 방문은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 정상국가 이미지를 보여줄 기회가 된다. 미국과 유럽에 제재 완화의 명분을 제공할 수도 있다.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에는 종전과 남북 평화를 정권의 대표적인 정치적 성과로 부각할 수 있는 상징적 무대가 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교황과 함께 북한을 방문하는 장면까지 정치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이유다. 다만 현재 공개된 자료로 확인되는 것은 교황 방북 제안과 한반도 평화 역할 요청까지다. 대통령과 교황의 동반 방북이 구체적으로 합의됐다는 근거는 아직 없다.


9. 인사와 정치 일정이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고 있다


최근 정치권의 인사와 회동을 시간순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이 사건들을 모두 하나의 사전 계획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재명 대통령이 당내 주요 인물에게 각자의 정치적 역할을 배분하고 있다는 해석은 가능하다.

  • 김민석에게는 당대표와 선거 관리

  • 송영길에게는 평화외교

  • 강훈식과 정청래 가운데 한 사람에게는 서울시장 후보

  • 나머지 한 사람에게는 대통령실 또는 당내 역할

특히 송영길이 외교부 장관이 아니라 비상근 평화외교특보에 임명된 것은, 기존 국회의원 신분과 정치적 활동 공간을 유지하면서도 대북 평화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게 만든 인사다.

이 구조가 맞다면 강훈식의 사의 수리 여부와 정청래의 향후 행보도 개별 사건이 아니라 서울시장 선거와 대북 평화 일정에 맞춘 역할 재배치로 볼 수 있다.

결론: 11월 APEC에서 2027년 교황 방한까지


현재까지 공개된 사실만으로 종전협정이 이미 합의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최근의 인사와 발언을 연결하면 정부가 어느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지는 비교적 분명해 보인다.

이재명 정부는 즉각적인 북한 비핵화보다 핵 동결과 축소, 제재 완화와 국제 감시를 교환하는 단계적 접근을 제시하고 있다.

북한은 유엔총회에서 핵보유국 지위를 되돌릴 수 없다고 선언했다. 이는 북한이 비핵화 협상이 아니라 핵보유 현실을 인정받은 상태에서 군비통제와 제재 완화를 협상하려 한다는 의미다.

두 입장 사이의 간극은 크지만 교집합은 존재한다.

북한은 기존 핵을 당장 포기하지 않고, 미국과 한국은 북한의 핵과 ICBM이 더 늘어나는 것을 막는다. 그 대가로 제재 완화와 체제보장, 국제 감시를 교환하는 방식이다.

그 첫 번째 확인 시점이 2026년 11월 중국 선전 APEC이다.

두 번째 확인 시점은 2027년 8월 서울 세계청년대회와 교황의 방한이다.

APEC에서 시작된 대북협상이 2027년까지 이어지고 교황의 방북까지 성사된다면, 이는 종교행사를 넘어 한반도 평화체제를 국제적으로 선언하는 상징적 장면이 될 수 있다.

국내 정치에서도 역할 조정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김민석은 당대표가 됐고, 그의 당선에 결과적으로 힘을 보탠 송영길은 평화외교특보가 됐다. 강훈식은 사의를 표명했고, 정청래는 이재명 대통령과 강훈식 비서실장이 배석한 자리에서 4시간 동안 만찬을 가졌다.

여기서 내가 보는 가설은 여전히 단순하다.

강훈식의 사의가 수리되면 강훈식이 서울시장 후보로 이동할 가능성이 커지고, 유임된다면 정청래가 당 중심의 서울시장 후보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김민석은 당을 관리하고, 송영길은 평화외교를 맡으며, 강훈식과 정청래 가운데 한 사람이 서울시장 후보로 이동하는 구조다.

결국 이번 종전 논의의 본질은 평화에 대한 선언만이 아니다.

북한의 핵을 현실로 받아들이되 더 이상 늘어나지 못하게 관리하고, 그 대가로 제재 완화와 체제보장을 제공하는 국제정치적 거래다.

트럼프와 시진핑, 푸틴과 다카이치, 이재명 대통령과 교황까지 각자의 이해관계와 역할은 다르다.

그러나 모두가 한반도의 오랜 전쟁을 끝내는 역사적 장면에 자신의 이름을 올릴 유인은 충분하다.

2026년 11월 APEC은 협상의 시작 여부를 확인하는 첫 번째 분기점이고, 2027년 8월 교황 방한은 그 협상을 국제적 평화 이벤트로 완성할 수 있는 두 번째 분기점이다.

그 과정에서 송영길의 평화외교특보 활동, 강훈식의 거취, 정청래의 서울시장 출마 여부, 북한의 핵 동결 수용 여부를 함께 지켜볼 필요가 있다.

https://www.asiatoday.co.kr/kn/view.php?key=20260930010010806


근데.. 이거 지지율 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는 정책 맞아요..?
아무도 관심을 안갖는거 같은데..
오히려 대통령 지지율에 역효과 날 것 같은건 내 착각인가..
감다뒤..

= 끝

생각정리 383 (* Hyundai’s Slump, Korea’s Warning)


현대차의 최근 판매량을 살펴보다가, 이번 부진을 개별 기업의 경쟁력 문제로만 봐도 되는지 의문이 들었다.

국내와 유럽에서는 테슬라·BYD뿐 아니라 같은 그룹의 기아에도 점유율을 내주고 있다. 동시에 부품 공급 중단과 자체 노조 파업으로 생산량이 줄었고, 차량용 반도체·전력반도체·에너지·노동비용도 높아지고 있다.

해외에서는 상품과 기술 경쟁력이 약해지고, 국내에서는 생산비와 조업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모습이다.

현대차만의 문제와 한국 제조업의 구조적 문제가 한꺼번에 겹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관련해서 생각을 정리해 글로 남겨본다.


과거 글에서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나는가


2025년 5월 「생각정리 24 — 좌파정부, 포퓰리즘, 제조업위기, 부동산가격」을 작성하며, 한국 제조업의 비용 경쟁력이 점차 약해질 가능성을 우려했다.

당시에는 제조업 국가의 경쟁력을 낮은 물가, 낮은 에너지비용, 낮은 인건비라는 세 가지 조건으로 단순화했다. 지금 다시 정리해보면 중요한 것은 비용의 절대 수준보다 기업이 높아진 비용을 생산성과 기술, 품질과 가격으로 얼마나 상쇄할 수 있는가에 있다.


한국은 이미 저임금 제조업 국가가 아니다. 앞으로는 임금과 에너지비용이 올라가더라도 더 높은 생산성과 기술력으로 이를 상쇄해야 한다.

문제는 생산성과 기술 경쟁력이 충분히 개선되지 않는 동안 부품·에너지·노동비용이 동시에 오르고, 파업으로 납기 안정성까지 약해지는 경우다.


현대차의 최근 실적은 위 세 가지 경로가 한꺼번에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기아/현대

국내 부진은 내수시장 둔화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2026년 1~8월 국내 자동차 판매는 전년 대비 0.7% 감소했다. 사실상 시장 규모가 유지된 것에 가깝다.

그러나 같은 기간 현대차 판매는 15.0% 감소했다. 반면 기아는 7.0% 증가, 테슬라는 122.3% 증가, BYD는 800.0% 증가했다.




현대차가 전년의 시장점유율을 그대로 유지했다고 가정하면 전체 시장 감소로 설명되는 판매 감소분은 약 3,100대다. 실제 감소분 약 7만 대 가운데 시장 자체의 둔화로 설명되는 비중은 약 4%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생산 차질과 신차 교체 시점, 상품 구성, 경쟁사의 성장 등 상대적 요인에서 찾아야 한다. 이는 원인을 정확히 분해한 수치가 아니라, 시장 규모 이외의 요인이 훨씬 컸다는 것을 보여주는 계산이다.

테슬라와 BYD의 합산 증가분은 약 5만 8,000대로, 현대차 감소분의 약 82%에 해당한다. 그렇다고 이 물량을 모두 현대차 고객이 테슬라와 BYD로 이동한 결과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신규 전기차 수요와 다른 브랜드 고객의 이동도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현재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현대차가 감소하는 동안 테슬라·BYD·기아가 성장했다는 방향까지다.

유럽에서도 시장보다 현대차가 더 부진하다


유럽 역시 시장 둔화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2026년 1~8월 EU 신차 등록은 5.3% 증가했다. 그러나 현대차 판매는 12.7% 감소했고 점유율은 4.0%에서 3.3%로 하락했다.

같은 기간 기아는 9.1% 증가했고, 폭스바겐그룹은 1.3%, BMW그룹은 4.8% 증가했다. BYD는 163.0% 성장했다.




현대차 경영진도 유럽 부진의 원인으로 코나·투싼 등 주요 내연기관 모델의 노후화와 소형 전기차 라인업 부족을 언급했다. 중국 업체가 가격 경쟁력이 높은 전기차를 공격적으로 출시하는 동안 대응할 B세그먼트 전기차가 부족했다는 설명이다.

같은 그룹의 기아가 성장했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동일한 한국의 임금·에너지·노사 환경에 노출된 기업 사이에서도 신차 출시와 제품 포트폴리오에 따라 성과가 달라졌다.

따라서 국내와 유럽의 판매 부진에는 분명히 현대차 자체의 상품 주기와 전기차 대응 문제가 포함돼 있다.

그렇다고 현대차 전체가 무너진 것은 아니다


북미와 인도에서는 정반대의 모습이 나타난다.

2026년 상반기 현대차의 북미 판매는 3% 증가하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미국 판매도 3% 증가했고, 인도는 10%, 중남미는 11% 성장했다.

글로벌 하이브리드 판매는 25% 증가했다. 3분기 미국 판매 역시 3% 증가하며 역대 최대 3분기 실적을 기록했다.


현대차 전체의 경쟁력이 구조적으로 붕괴했다면 북미·인도·하이브리드에서도 동시에 판매가 감소해야 한다. 현재 자료는 그런 상황을 보여주지 않는다.

보다 정확한 진단은 다음과 같다.

생각정리 184 (* Hyudai motor. Alpamayo)

현대차의 부진은 전사적인 브랜드 붕괴보다 지역별 상품 경쟁력과 공급능력의 격차가 커진 현상에 가깝다.


판매 감소보다 이익 감소가 더 크다


2026년 2분기 현대차의 글로벌 도매판매는 전년 대비 6.9% 감소했다. 매출액은 우호적인 환율과 하이브리드 판매 덕분에 1.9%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20.8% 감소했다.

영업이익률은 **5.8%**로 내려갔다. 회사는 원재료비 상승과 부품사 화재에 따른 생산 차질을 주요 원인으로 설명했다.


판매가격과 환율로 매출은 방어했지만 생산량 감소와 원가 상승을 막지 못하면서 이익이 더 크게 줄었다.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면 현대차의 문제는 판매량 감소에서 끝나지 않는다. 물량을 회복하기 위해 인센티브를 확대해야 하고, 높아진 부품·노동비용까지 부담하면서 수익성이 이중으로 압박받을 수 있다.

자동차 공급망은 가장 약한 부품 하나에서 멈춘다


자동차는 수많은 부품을 동시에 조달해야 완성된다. 중요한 것은 전체 부품의 개수보다 대체하기 어려운 핵심 부품과 단일 공급 공정이 얼마나 많은가다.

전체 부품을 확보했더라도 특정 모듈 하나가 공급되지 않으면 조립라인 전체가 멈출 수 있다. 재고를 최소화한 적시생산 방식은 평상시 효율적이지만 부품사 파업과 사고에는 취약하다.

https://www.yna.co.kr/view/AKR20260826116700057

2026년 8월 현대모비스 생산 자회사인 모트라스와 유니투스가 부분파업에 들어가자 현대차 울산공장 대부분의 생산라인 가동률이 하락했고 일부 라인은 중단됐다. 부품사 노사 갈등이 완성차 생산에 즉시 전이된 구체적인 사례다.

현대차 자체 노조의 전면파업에 따른 생산 차질도 약 5만 대로 추정됐다. 다만 회사가 이후 증산을 통해 상당 부분을 만회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었으므로 5만 대 전체를 최종 판매 손실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608201644001

생산 차질의 최종 영향은 고객이 기다려주는지에 달려 있다.

고객이 기다리면 판매 시점이 뒤로 밀릴 뿐이다. 그러나 테슬라·BYD·기아 등 다른 선택지를 구매하면 일시적인 생산 문제가 영구적인 시장점유율 손실로 바뀐다.

신차의 초기 공급이 부족하면 출시 효과도 약해진다. 차질 물량을 만회하기 위해 잔업과 특근을 늘리거나 판매 인센티브를 확대하면 생산량은 회복하더라도 이익률은 이전보다 낮아질 수 있다.

프리드먼이 경고했던 조직된 내부자


이 문제는 「생각정리 259 — 노란봉투법, 밀턴 프리드먼, 병든사회」에서 다뤘던 밀턴 프리드먼의 노동조합 비판과 연결된다.

프리드먼의 핵심은 노동조합원 개인을 비난하는 데 있지 않았다. 조직된 일부가 자신의 임금과 고용을 보호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비용이 비조합원과 신규 구직자, 소비자와 협력업체로 전가될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는 생산을 중단시킬 수 있는 강한 협상력을 가진다. 반면 협력업체 노동자와 청년 구직자, 미래에 입사할 사람은 현재의 성과급 협상에 참여하지 못한다.

내가 우려하는 대기업 노조의 횡포는 임금 인상 요구 자체를 뜻하지 않는다. 생산 중단이 협력업체와 고객, 미래 투자와 고용에 미칠 비용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현재 조합원의 배분 몫을 우선하는 협상력의 남용을 말한다.

현대차 노조는 올해 전년도 순이익의 30%를 성과급으로 지급할 것을 요구했다. HD현대중공업 노조도 영업이익의 30% 성과 공유를 요구하며 부분파업에 들어갔다.

기업 이익은 근로자나 주주 중 어느 한쪽의 몫으로만 볼 수 없다. 세금과 이자, 배당, 연구개발과 설비투자, 경기 하락에 대비한 유동성의 재원이다.


자동차·반도체·조선·방산처럼 막대한 선행투자가 필요한 산업에서 기업 이익의 일정 비율을 우선적으로 배분하면 미래 경쟁력에 사용할 자금이 줄어들 수 있다.

노란봉투법이 모든 파업의 원인은 아니다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하청노조가 근로조건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가진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졌다. 시행 약 100일 동안 다수 하청노조가 원청에 교섭을 요구한 사실도 확인된다.

고용노동부도 9월 3일 지침에서 기업 이익의 일정 비율에 연동한 성과급 요구를 의무적 교섭 및 보호되는 쟁의행위 대상으로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노란봉투법이 순이익이나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지급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아니다.

법 시행 이후의 변화는 다음처럼 구분할 필요가 있다.


보다 정확한 위험은 기존 대기업 노조의 임금협상과 확대된 하청노조의 원청교섭이 같은 시기에 겹칠 가능성이다.

완성차 노조의 파업이 끝나도 핵심 부품사 파업이 계속되면 생산은 정상화되지 않는다. 원청과 다수 협력업체의 교섭 일정이 중첩될수록 다단계 공급망의 조업 변동성은 높아질 수 있다.

자동차에서 조선·방산으로 퍼질 수 있는 위험


이러한 위험은 자동차에서 가장 먼저 나타났지만 조선과 방산에도 다른 형태로 전이될 수 있다.


자동차는 고객이 다른 브랜드를 선택할 수 있어 생산 차질이 점유율 손실로 빠르게 이어진다. 조선은 당장 수주가 취소되지 않더라도 공정 만회비용과 예정원가가 상승한다.

방산은 인증받은 부품의 교체가 어렵고 시험과 검수 절차가 복잡하다. 특정 부품이나 시험공정이 지연되면 납품과 매출 인식, 대금 회수가 늦어질 수 있다.

현재 조선에서는 성과급 갈등과 부분파업이 확인됐지만 대규모 인도 지연과 지체상금이 발생했다는 정량자료는 부족하다. 방산 전반에서 파업에 따른 생산 차질이 확산됐다는 증거도 아직 없다.

따라서 자동차는 현재 발생한 위험, 조선은 관찰할 위험, 방산은 잠재적인 위험으로 구분해야 한다.

반도체와 에너지비용도 올라가고 있다


노동비용 외에도 차량용 반도체와 전력반도체, 에너지비용이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

onsemi는 원재료와 제조·에너지비용 상승을 이유로 10월부터 광범위한 제품의 가격을 조정한다고 고객에게 통보했다. Renesas도 추가 가격 조정을 예고했다. 실제 현대차 구매가격에 얼마나 반영되는지는 품목과 장기계약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2024년 10월 산업용 전기요금은 평균 9.7%, 대용량 고객이 사용하는 산업용 전력은 10.2% 인상됐다. 자동차 조립공장의 직접 전력비뿐 아니라 소재·주조·단조·열처리·가공 협력업체를 통해 완성차 원가에 간접적으로 반영될 수 있다.

고용노동부 조사에서 2025년 상용근로자 10인 이상 기업의 1인당 월평균 노동비용은 5.0% 증가했다. 300인 이상 기업은 6.9% 증가한 반면 300인 미만 기업은 1.4% 증가했다.


원청이 납품가격 인상을 수용하면 완성품 원가가 올라간다.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협력사의 수익성과 설비투자 여력이 약해질 수 있다.

원청이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부담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비용을 직접 부담하거나, 약해진 협력사의 공급 위험을 나중에 부담하게 된다.


부동산가격도 제조업 비용과 무관하지 않다


「생각정리 24」에서는 부동산가격 상승이 제조업 경쟁력과 연결될 수 있다고 봤다.

높은 주거비는 노동자가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요구하는 명목임금의 하단을 높인다. 기업과 가계의 자본이 생산적 투자보다 토지와 주택으로 몰리는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수도권에 산업과 일자리가 집중된 상태에서 주거비가 오르면 청년과 숙련인력이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이동하는 비용도 커진다. OECD도 주택시장의 비효율이 주거와 노동 이동을 저해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집값 상승과 제조업 임금 상승 사이의 관계를 단순한 상관계수 하나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높은 주거비가 노동비용과 인력 배치, 자본 배분에 부담을 준다는 경로는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다.

포퓰리즘의 문제는 돈을 쓰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 쓰는가다


정부의 재정지출이 모두 비생산적인 것은 아니다.

전력망과 항만, 연구개발과 교육, 산업 인프라와 주택 공급에 자금을 투입하면 미래의 생산능력을 높일 수 있다. 경기침체기에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재정정책도 사회적 비용을 낮출 수 있다.

문제는 재정이 생산능력을 늘리기보다 현재의 소비와 자산가격, 조직된 이해집단의 소득을 보호하는 데 장기간 집중되는 경우다.


좌파정부의 분배정책이 언제나 잘못됐다는 뜻은 아니다. 노동자의 안전과 권리를 보호하고 원·하청 간 불공정한 비용 전가를 개선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분배정책이 생산성 향상과 투자재원을 고려하지 않은 채 현재의 소득과 자산가격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작동하면 제조업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국가 역시 기업의 CFO와 비슷한 자본 배분 문제를 안고 있다. 정책의 선의만큼 투입한 재정이 미래의 공급능력과 고용을 얼마나 늘렸는지를 평가해야 한다.

독일 제조업의 약화는 남의 일이 아니다


독일은 한국이 경계해야 할 가까운 사례다.

독일 제조업의 약화는 높은 에너지비용 하나 때문에 발생하지 않았다. 에너지 충격과 숙련인력 부족, 단위노동비용 상승, 규제와 투자 부진, 중국의 자동차·기계·전기산업 추격이 함께 작용했다.

독일 중앙은행은 2021~2023년 독일 수출시장 점유율 손실의 4분의 3 이상이 제품군별 경쟁력 악화에서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기계·전기·화학 등 독일의 전통적인 주력산업이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

독일 자동차·부품 생산은 2017년 정점을 찍은 뒤 2023년까지 15% 감소했다. 같은 기간 내연기관 승용차 생산은 거의 절반으로 줄었고, 전기차 생산 증가는 감소분을 충분히 상쇄하지 못했다.

2022년 2월부터 2026년 3월까지 독일 에너지 집약 산업의 생산은 15.2% 감소했고 고용은 6.3% 감소했다. 같은 기간 전체 산업생산은 9.5% 감소했다.


자동차·부품 생산은 2017~2023년, 전체 및 에너지 집약 산업과 관련 고용은 2022년 2월~2026년 3월 변화다. 비교 기간은 다르지만 독일의 전통적인 제조 기반이 여러 분야에서 동시에 약해진 방향을 보여준다.

독일 제조업 전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독일은 여전히 대규모 자동차·기계 생산기반과 연구개발 역량을 갖고 있고 전기차 생산도 증가하고 있다.

독일이 보여준 것은 비용 하나가 제조업을 무너뜨린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에너지·노동·규제 비용이 오르는 동안 생산성과 상품 경쟁력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 제조업 중심 국가도 수년간 시장점유율과 고용을 잃을 수 있다.

한국도 중국을 거대한 수요처와 저가 생산기지로만 바라볼 수 없게 됐다. 전기차·배터리·자율주행·기계 등 한국과 독일이 강점을 가졌던 산업에서 중국은 가장 강한 경쟁자로 바뀌고 있다.

한국 제조업 전체가 이미 무너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은 아직 독일과 같은 상황에 도달하지 않았다.

반도체 수출과 AI 관련 설비투자가 증가하고 있고, 금속가공·전기장비·기계장비 생산도 비교적 양호하다. 조선 역시 높은 수주잔고와 수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KDI는 2026년 9월 한국 경제가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과 설비투자, 제조업 생산의 개선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현재 한국 제조업은 전면적인 몰락보다 반도체 호황 아래 자동차·석유화학·철강 일부의 취약성이 가려지는 양극화 국면에 가깝다.

현대차의 부진은 한국 제조업의 쇠퇴가 확정됐다는 증거가 아니다. 비용 상승과 공급 불안이 기술·생산성 향상보다 빨라질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먼저 보여주는 경고 사례에 가깝다.

자율주행 기술은 현재보다 미래의 수익성 문제다


현대차의 2026년 판매 감소를 자율주행 기술 부족으로 직접 설명하기는 어렵다.

(*아직까지는)

미국 판매와 글로벌 하이브리드 판매가 증가했다는 사실은 자율주행 경쟁력이 현재 자동차 구매를 결정하는 유일한 변수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가격과 차종, 연비, 보조금, 금융조건과 납기도 함께 작용한다.

그러나 중장기 위험은 존재한다.

이전에 작성한 「생각정리 184 — Hyundai Motor, Alpamayo」에서는 NVIDIA와의 협력을 현대차가 자율주행 개발 속도를 높일 기회로 봤다. 현대차의 차량 생산과 실제 운행 기반을 NVIDIA의 AI·컴퓨팅 기술과 결합하면 시행착오와 개발기간을 줄일 수 있다.

반면 「생각정리 222 — NVIDIA AI Empire」에서 다뤘듯 NVIDIA의 경쟁력은 개별 반도체와 모델에 머물지 않는다. 학습과 데이터 처리, 시뮬레이션, 검증과 차량용 컴퓨팅이 연결된 개발환경 전체가 핵심이다.


현대차가 이 개발환경에 깊게 맞춰지면 다른 플랫폼으로 전환할 때 모델만 교체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차량 시스템을 다시 통합하고 안전성을 재검증해야 하므로 전환 비용이 커질 수 있다.

NVIDIA는 Alpamayo를 모델·데이터셋·시뮬레이터가 포함된 공개 생태계로 제시하고 있다. 공개 모델을 사용한다고 기술 종속이 자동으로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현대차·기아와 NVIDIA의 협력은 DRIVE Hyperion을 기반으로 레벨 2 이상 시스템과 Motional의 레벨 4 로보택시 기술을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공개자료만으로 Alpamayo의 전면 양산 적용이나 데이터 권리, 수익 배분과 독점 조건을 알 수는 없다.


현대차가 자체 모델과 데이터를 개선할 능력을 확보한다면 NVIDIA 협력은 기술 축적의 지름길이 될 수 있다. 반대로 차량과 운행데이터를 제공하면서 핵심 소프트웨어와 경제성을 외부 플랫폼에 의존하면 미래 자율주행 부가가치의 상당 부분이 플랫폼 사업자에게 돌아갈 수 있다.

현대차가 직면한 비용의 사면초가


현대차가 앞으로 부담해야 할 비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부품 공급을 유지하려면 납품가격 인상을 수용해야 할 수 있다. 생산 차질을 피하려면 임금과 성과보상을 늘려야 할 수 있다.

테슬라·BYD와 경쟁하려면 차량가격을 낮추거나 사양을 높여야 한다. 자율주행 기술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자체 R&D와 외부 플랫폼 비용을 동시에 부담해야 한다.

비용은 여러 방향에서 오르는데 판매가격은 경쟁 때문에 충분히 올리기 어려운 구조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면 판매량이 회복되더라도 과거의 높은 영업이익률로 돌아가지 못할 수 있다. 현대차를 판단할 때 판매대수뿐 아니라 판매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비용을 함께 확인해야 한다.

현대차만의 문제인가, 한국 제조업의 문제인가


현재 자료를 바탕으로 현대차 부진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나눠볼 수 있다.


현대차의 국내·유럽 부진에는 상품과 기술, 신차 주기 문제가 존재한다. 생산 차질과 에너지·노동·부품비 상승에는 한국 제조업이 함께 직면한 구조적인 문제가 포함돼 있다.

두 문제가 동시에 발생하면 개별 기업이 신차 한두 개를 성공시키는 것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판매 감소로 이익과 투자 여력이 줄면 미래 기술과 신차에 대한 투자가 약해질 수 있다. 투자가 약해지면 다시 상품 경쟁력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형성된다.


글을 마치며


현대차만의 문제라면 신차 출시와 경영전략의 개선으로 해결할 수 있다. 한국 제조업 공통의 비용과 제도 문제라면 개별 기업의 노력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현재로서는 두 문제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고 판단한다.

현대차는 국내와 유럽에서 상품 주기와 전기차·소프트웨어 경쟁력을 보완해야 한다. 동시에 한국 제조업은 높아지는 에너지·노동·주거비와 공급망 불확실성을 생산성과 기술로 상쇄해야 한다.

독일의 경험은 제조업이 하루아침에 무너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에너지와 노동비용이 오르고, 중국과의 기술 격차가 좁혀지고, 규제와 갈등으로 투자가 늦어지면서 수년간 조금씩 생산과 시장점유율을 잃는다.

한국도 아직 제조업 위기가 확정된 상태는 아니다. 반도체와 조선, 방산과 전력기기 등 경쟁력이 강해지는 산업도 존재한다.

그러나 강한 산업의 호황이 다른 제조업의 구조적 약화를 가리고 있을 가능성은 경계해야 한다.

생산성과 기술이 따라오지 못한 상태에서 비용과 분배 요구만 선진국 수준으로 높아지는 것이 한국 제조업에 가장 위험한 시나리오다.

기업의 성과를 배분하려면 그 성과를 계속 만들어낼 생산 기반이 유지돼야 한다. 국가도 현재의 소득과 자산가격을 보호하는 데 자원을 우선할수록 미래의 생산과 고용에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이 줄어든다.

현대차의 최근 부진은 한국 제조업 몰락의 결론은 아니다.

다만 비용 상승, 공급망 불안, 조직된 내부자의 배분 요구, 중국의 기술 추격과 미래 소프트웨어 기술 의존이 한꺼번에 겹칠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경고등이라고 생각한다.

연간 3명 이상 산재 사망시 영업익 '최대 5%' 과징금…산안법 국회 통과(종합)
자본 투자자들이여..떠나자.. 해외로...


=끝

2026년 9월 30일 수요일

생각정리 382 (* Nowhere Is Safe from AI -2)

최근 공개되는 LLM과 AI 인프라 계약, 미국 국채시장과 금융·유통산업의 변화를 보면서 흩어져 있던 생각을 하나로 묶어 기록해본다.

The Model Moat Is Shrinking, The Cost of Capital Is Rising


지난 글 생각정리 381 (* Nowhere Is Safe from AI)에서는 AI의 이익은 일부 기업과 자본에 집중될 수 있지만, 그 비용은 물가·금리·고용·재정을 통해 사회 전체로 퍼질 수 있다고 정리했다.

이번 글은 그 이후의 추가적인 생각이다.

AI가 확산될수록 단순히 몇몇 기술기업의 실적만 변하는 것이 아니다.

모델과 인프라 사이의 희소성이 바뀌고, 정부와 기업이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이 변한다. 금융회사가 마진을 얻는 구조와 유통기업의 경쟁력, 소비자의 브랜드 충성도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내가 최근의 변화를 보면서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AI 모델의 지능은 풍부해지고 있다.

그 지능을 실행하는 물리적 인프라와 자본은 더욱 희소해지고 있다.

Agent는 금융·유통·브랜드 산업이 오랫동안 누려온 정보의 비대칭과 소비자의 관성을 약화시키고 있다.

결국 AI는 새로운 해자를 만드는 동시에 기존 산업의 해자가 어디에 존재하는지를 바꾸고 있다.


1. The Model Moat Is Shrinking


모델의 성능은 높아지지만 독점기간은 짧아지고 있다


2026년 9월에만 OpenAI는 GPT-6 Astra, GPT-6 Sol·Luna와 GPT-6.1 Sol을 잇달아 공개했다.

Anthropic도 Claude Opus 5.5와 Claude Sonnet 5.5를 연이어 내놓았다.

출시 주기만 빨라진 것이 아니다.

https://x.com/bombomelon/status/2105153037086105743

Anthropic에 따르면 Opus 5.5는 Opus 5보다 실행비용을 약 40% 낮추면서 대부분의 업무에서 Fable 5.1 수준의 성능을 제공한다.

OpenAI 역시 GPT-6.1 Sol을 Astra에 가까운 성능을 더 낮은 비용으로 제공하는 모델로 설명하고 있다.

https://x.com/thsottiaux/status/2105464274747527543

모델의 절대 성능은 계속 높아지고 있지만, 특정 기업이 그 성능을 독점할 수 있는 기간은 짧아지고 있다.

모델 성능의 상승과 모델 해자의 확대가 반드시 같은 의미는 아닌 것이다.


AI가 다음 AI를 만드는 연구주기를 단축한다


모델 출시가 빨라지는 배경에는 AI를 활용한 연구 자동화가 있다.

AI가 코드를 작성하고, 실험을 설계하고, 결과를 평가하고, 실패 원인을 분석한 뒤 다시 코드를 수정하는 Agent Closed Loop가 형성되고 있다.

외부 메모리와 실행기록을 축적하는 Continual Learning이 결합하면 AI는 과거 실험에서 얻은 정보를 다음 연구에 활용할 수 있다.

2026년 9월 발표된 논문 Recursive self-improvement of AI research agents에서 AIDE²는 8일 동안 자율적으로 연구와 코드 개선을 반복해 일곱 차례의 연속적인 성능 향상을 만들어냈다.

이 실험이 무제한적인 Recursive Self-Improvement를 증명한 것은 아니다.

The Economics of Recursive Self-Improvement 역시 현재의 연구 자동화 루프가 곧바로 지속적인 폭발적 자기개선으로 이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분석한다.

현재 단계는 인간이 목표와 평가기준을 설정하고, AI가 그 안에서 연구주기를 압축하는 부분적인 자기개선에 가깝다.

그럼에도 방향은 분명하다.

더 좋은 모델이 더 좋은 연구 Agent가 되고, 그 Agent가 다음 모델의 개발기간을 다시 줄인다.


프런티어 모델은 오픈웨이트의 추격도 돕는다


프런티어 모델이 강해질수록 선두기업만 유리해지는 것은 아니다.

기업과 개발자는 프런티어 모델을 이용해 학습 데이터를 만들고, 파인튜닝 코드를 작성하고, 오류를 분석하고, 자체 모델을 평가할 수 있다.

이 변화에 대해서는 생각정리 372 (* Intelligence Is Abundant, Execution Is Scarce)의 내용으로 갈음한다.

Anthropic은 2026년 9월 위협정보 보고서에서 Moonshot AI와 연관된 주체들이 Claude의 응답과 사고흐름을 수집하는 방식의 증류를 시도했다고 주장했다.

OpenAI도 Moonshot과 연관된 모델 증류 캠페인을 적발했다고 발표했다. OpenAI가 공개한 규모는 약 4,000개 계정과 1만6,000회의 시도였다.

이는 시도 규모를 의미하며 프런티어 모델 전체가 성공적으로 복제됐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선도모델의 결과물을 이용해 후발모델의 데이터와 평가체계를 개선하려는 시도가 확대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프런티어 모델은 경쟁자가 따라오기 어려운 해자인 동시에, 경쟁자의 연구비용을 낮추는 도구가 되고 있다.


오픈웨이트는 Enterprise AI와 Sovereign AI를 가능하게 한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모델은 항상 모든 벤치마크에서 세계 1위를 기록한 모델은 아니다.

자체 데이터로 조정할 수 있고, 내부 시스템과 연결할 수 있으며, 비용과 응답속도를 예측할 수 있는 모델이 더 유용할 수 있다.

오픈웨이트 모델이 충분한 성능에 도달하면 기업은 이를 자사 업무에 맞게 다시 학습하고 자체 서버나 프라이빗 클라우드에서 운영할 수 있다.

https://x.com/realgalleryx/status/2104888298539978997/photo/1


국가도 마찬가지다.

모든 국가가 프런티어 모델을 처음부터 개발할 필요는 없다. 충분히 우수한 오픈 모델을 자국의 언어·법률·행정·국방 데이터에 맞게 조정하고 국내 인프라 위에서 운영하면 된다.

오픈웨이트 모델의 성능 향상은 Enterprise AI와 Sovereign AI의 진입비용을 낮춘다.

그 결과 모델의 성능 격차가 줄어들수록 더 많은 기업과 국가가 자체적인 AI 인프라를 요구하게 된다.


안전성 규제도 새로운 컴퓨팅 수요다


9월 29일 미국 정부는 주요 AI 기업 경영진을 백악관으로 불러 프런티어 AI의 안전성과 책임체계를 논의했다.

이어 공개된 백악관 SI 협약은 모델 훈련과 배포에 대한 내부 통제, 내부 감독조직, 독립적인 외부 평가, 이사회 수준의 감독이라는 네 단계의 안전체계를 담았다. 관련 내용은 협약을 정리한 Forbes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미국 프런티어 기업에는 안전성을 입증하면서 개발을 이어갈 수 있는 정책적 경로가 제시됐다.

하지만 안전성 비용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모델 출시 전에는 위험행동 평가와 적대적 테스트가 필요하다. 배포 이후에도 입력과 모델의 사고과정, 도구 사용과 실행결과를 감시해야 한다.

OpenAI의 GPT-6 Astra System Card를 보면 Chain-of-Thought와 Agent Action을 함께 살펴보는 감시체계, 위험을 분류하는 모델과 별도의 Safety Reasoner가 사용된다.

Agent가 한 번 계산해 행동하면 다른 모델이 그 행동을 다시 계산하고 검증하는 구조가 확대될 수 있다.

Capability Compute에 Safety Compute가 추가되는 것이다.


지능이 풍부해질수록 물리적 인프라는 더 희소해진다


모델은 복제하고 증류하고 재조정할 수 있다.

그러나 GPU와 HBM, 데이터센터와 발전소, 변압기와 송전망은 같은 속도로 복제할 수 없다.

모델의 성능 격차가 줄어들면 AI 인프라 수요가 감소하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성능의 모델을 운영하려는 기업과 국가가 늘어날 수 있다.

여기에 Agent 추론, Continual Learning, Sovereign AI와 Safety Compute가 동시에 추가된다.

Anthropic의 IPO 관련 자료에서 확인된 향후 10년간 AI 인프라 계약은 약 5,180억달러다. 이 가운데 약 **80%**는 사용량과 무관하게 취소하기 어려운 계약으로 보도됐다.

이 수치는 연간 CAPEX가 아니라 장기간에 걸친 계약상 의무라는 점은 구분해야 한다. 관련 내용은 Reuters 보도를 전재한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AI 기업에는 과잉투자의 위험이 있다.

하지만 컴퓨팅을 확보하지 못해 경쟁에서 탈락할 위험도 있다.

모델의 해자는 옅어지고 있지만 물리적 인프라의 해자는 깊어지고 있다.

1부 핵심 정리

모델의 지능은 빠르게 풍부해지고 독점적인 성능 우위는 짧아지고 있다. 반면 모델을 훈련·실행·감시하는 물리적 인프라는 빠르게 늘릴 수 없다. AI 산업의 희소성은 모델에서 컴퓨팅·메모리·전력·자본으로 이동하고 있다.

 

생각정리 374 (* Pacing Is Pace Up)


2. The Cost of Capital Is Rising


AI CAPEX와 국채가 같은 자금을 놓고 경쟁하기 시작했다


AI 인프라 투자는 더 이상 빅테크의 내부 현금만으로 감당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다.

2026년 2월 Dallas Fed 분석이 인용한 전망에 따르면 향후 3~5년간 AI 데이터센터 투자규모는 3조~5조달러에 달할 수 있다.

2026년 AI 관련 투자등급 회사채 발행 전망의 중심값은 약 3,000억달러다. 10년물로 환산한 듀레이션 공급은 약 3,600억달러로, 같은 기준의 미국 국채 듀레이션 공급 가운데 약 8분의 1에 해당한다.

투자자는 같은 자금으로 국채를 살 수도 있고, 더 높은 금리를 제공하는 AI 회사채와 데이터센터 프로젝트 채권을 살 수도 있다.

AI 기업의 신용과 성장성이 충분히 매력적이라면 정부는 투자자를 확보하기 위해 더 높은 수익률을 제공해야 한다.

각국 정부채와 AI 민간채가 동일한 장기자금을 놓고 경쟁하기 시작한 것이다.


코로나 시기의 저금리 부채가 고금리 부채로 교체되고 있다


정부가 부담해야 하는 것은 신규 재정적자만이 아니다.

코로나 시기에 대규모로 발행한 저금리 국채가 만기에 도달하고 있다. 정부가 원금을 줄이지 않는다면 만기상환은 새로운 국채 발행으로 이어진다.

IMF Fiscal Monitor 2026년 4월 보고서에 따르면 각국 정부가 만기도래 부채를 높은 금리로 차환하면서 글로벌 정부의 이자지출은 4년 사이 세계 GDP의 약 2%에서 3% 가까이 상승했다.

저금리 부채가 고금리 부채로 교체되면 이자비용이 증가한다. 세금을 올리거나 다른 지출을 줄이지 못하면 추가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만기 도래 → 높은 금리로 차환 → 이자지출 증가 → 재정적자 확대 → 추가 국채 발행

이 과정에 AI 민간채권까지 더해지면서 채권시장이 감당해야 할 전체 공급이 증가하고 있다.

글로벌 부채 위기의 시작 - 로빈 J 브룩스


기대인플레이션과 기간 프리미엄이 장기금리를 압박한다


AI CAPEX는 장기금리에 두 가지 경로로 영향을 준다.

첫째, 데이터센터와 발전설비, 송전망과 반도체 투자가 건설인력·전력·구리·변압기 수요를 늘린다. 공급이 빠르게 따라오지 못하면 물가압력이 발생한다.

Lisa Cook 연준 이사도 2026년 9월 AI와 경제에 관한 연설에서 데이터센터 투자가 건설인력과 에너지처럼 다른 산업도 사용하는 자원에 의존하기 때문에 더 광범위한 가격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둘째, 국채와 민간채권의 공급이 함께 증가하면 투자자는 장기채를 보유하는 대가로 더 높은 기간 프리미엄을 요구한다.

미국 재무부의 공식 수익률 자료에 따르면 2026년 9월 1일 미국 30년물 국채금리는 **5.27%**였다. 9월 30일에는 **5.64%**까지 상승했다.

같은 기간 30년 실질금리는 **2.98%에서 3.33%**로 올랐다. 단순 차감한 장기 기대인플레이션의 변화는 크지 않았다.

최근의 장기금리 상승이 물가 우려만으로 구성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BIS의 2026년 9월 시장분석도 장기금리 상승의 일부가 재정 우려를 반영한 기간 프리미엄 상승에서 발생했다고 설명한다.

AI 투자수요와 재정위험, 채권 공급과 기간 프리미엄이 함께 장기 자본의 가격을 높이고 있다.



Bessent도 Yellen이 선택했던 길을 걷고 있다


Scott Bessent 재무장관은 Key Square를 운용하던 2024년, Janet Yellen 재무장관이 장기채 발행을 줄이고 단기채에 의존한 것을 비판했다.

그는 Yellen이 선거를 앞두고 장기금리를 낮추기 위해 발행구조를 활용한다며 이를 Activist Treasury Issuance라고 주장했다. 당시 발언은 관련 보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재무장관이 된 Bessent도 장기물 발행을 크게 늘리지 않고 부족한 자금을 단기 국채와 현금관리채권으로 조달하는 전략을 이어가고 있다.

2026년 8월 미국 재무부의 분기 자금조달 발표는 명목 쿠폰채 발행규모를 향후 수 분기 동안 유지하고 나머지 자금수요를 정기적인 단기채와 현금관리채권 등으로 충당하겠다고 밝혔다.

과거에 비판했던 정책을 반복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는 개인적인 정책 일관성보다 재무장관이 처한 현실적인 제약을 보여준다.

장기채 수요가 약한 상황에서 장기물 공급을 크게 늘리면 시장은 더 높은 수익률을 요구한다. 장기금리 상승은 정부 이자비용뿐 아니라 모기지와 기업대출, 주식의 할인율까지 높인다.

결국 재무부는 당장의 장기금리 충격을 피하기 위해 단기물에 의존할 유인이 생긴다.


단기물 의존은 비용을 없애지 않고 미래로 넘긴다


단기채는 장기채보다 시장이 흡수하기 쉽고 당장의 장기금리 상승 압력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만기가 짧기 때문에 계속 차환해야 한다.

물가가 예상보다 오래 높게 유지되거나 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리지 못하면 더 많은 정부부채가 높은 단기금리로 빠르게 재설정된다.

NISA의 미국 국채 발행구조 분석에 따르면 2023년 5월 이후 시장성 국채에서 단기채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16%에서 22%**로 상승했고, 가중평균 만기는 6개월 이상 짧아졌다.

단기채 공급이 시장 유동성보다 빠르게 증가하면 정부와 은행, 증권사와 기업이 같은 단기자금을 놓고 경쟁하게 된다.

장기금리 상승을 늦추기 위해 단기물에 의존할수록 정부의 재무구조는 정책금리와 단기 유동성에 더 민감해진다.

2부 핵심 정리

AI 기업과 정부가 같은 채권시장 자금을 놓고 경쟁하고 있다. 정부는 코로나 시기의 저금리 부채까지 더 높은 금리로 차환해야 한다. 장기물 발행을 줄이고 단기채로 시간을 벌 수는 있지만, 그 대가는 더 높은 롤오버 위험과 단기금리 민감도다.

 

https://www.nisa.com/perspectives/bessent-embraces-activist-treasury-issuance/



3. AI가 바꾸는 매크로 변수와 금융산업


AI는 생산성을 높이지만 전환과정에서는 물가를 자극한다


장기적으로 AI는 같은 인력과 자본으로 더 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게 만든다. 생산성 향상이 가격에 반영된다면 디플레이션적인 기술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생산성을 얻기 전에는 거대한 선행투자가 필요하다.

데이터센터와 발전소, 전력망과 반도체 공장을 먼저 건설해야 한다. 생산성 향상의 혜택이 나타나기 전에 투자수요와 자원경쟁이 발생한다.

AI는 장기적으로 공급을 늘리지만 전환과정에서는 물가와 금리를 높일 수 있다.


고용 충격과 인프라 물가가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


Agent가 사람의 업무를 대신하면 기업은 매출과 생산량을 늘리면서도 고용을 같은 속도로 늘리지 않을 수 있다.

대규모 해고만이 문제가 아니다. 신규채용 축소, 퇴사자 미충원, 외주계약 감소를 통해서도 노동의 몫은 줄어들 수 있다.

동시에 AI 인프라 경쟁은 전력·건설·자재·금융비용을 높인다.

노동소득에 의존하는 가계는 취업기회와 임금협상력이 약해지는 동시에 전기요금과 주거비, 대출금리 상승을 경험할 수 있다.

고용과 분배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정리 381 (* Nowhere Is Safe from AI)의 내용으로 갈음한다.


금융회사의 정보마진이 약해질 수 있다


금융업은 오랫동안 정보의 비대칭과 고객의 관성에서 수익을 얻었다.

개인은 수많은 예금과 보험, 채권과 펀드의 수익률·수수료·세금·해지조건을 계속 비교하기 어렵다.

Agent는 사용자를 대신해 금융상품을 비교하고 위험과 세후수익률을 계산하며 계좌이체와 재투자까지 실행할 수 있다.

IMF의 How Agentic AI Will Reshape Payments는 Agentic AI가 금융상품의 가격과 수수료, 계약조건을 비교하는 비용을 낮추고 정보 비대칭을 완화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

예금자는 더 높은 금리를 빠르게 찾아갈 수 있고, 보험가입자는 비슷한 보장의 상품을 비교할 수 있다. 투자자는 채권의 신용위험과 만기, 세후수익률을 실시간으로 분석할 수 있다.

금융회사가 정보 접근성과 고객의 관성으로 얻던 마진은 점차 압축될 가능성이 크다.


은행은 예금의 규모보다 안정성이 중요해진다


단기금리 상승이 은행에 항상 유리한 것은 아니다.

대출금리가 예금금리보다 빨리 오르면 순이자마진이 확대된다. 반대로 예금금리와 시장성 조달비용이 더 빠르게 오르고 기존 고정금리 대출의 수익률이 그대로라면 마진은 축소된다.

FDIC의 단기금리와 은행 순이자마진 연구도 단기금리 상승이 은행 수익성에 미치는 방향은 모호하며, 자산수익률과 조달비용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빨리 재가격되는지가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금융 Agent가 예금·MMF·단기 국채·RP의 수익률을 상시 비교하고 자금을 자동으로 이동시키면 예금자의 관성은 약해진다.

은행은 고객을 붙잡기 위해 더 높은 예금금리를 지급해야 한다. Deposit Beta가 과거보다 빨라질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 은행의 경쟁력은 예금의 규모보다 예금의 안정성과 자산·부채 관리능력에서 나올 수 있다.


증권사는 거래기회와 조달위험을 함께 얻는다


AI 회사채와 데이터센터 프로젝트 채권 발행이 늘어나면 증권사는 채권 인수와 거래, 파생상품 헤지에서 새로운 수익기회를 얻는다.

그러나 증권사는 RP와 단기차입, 파생상품 증거금에 의존한다. 단기조달금리가 상승하면 채권을 보유하고 중개하는 비용도 증가한다.

BIS의 고부채와 금융시장 구조에 관한 분석은 자금조달 조건이 긴축될 때 레버리지 투자자의 디레버리징과 강제매도가 국채금리 상승을 증폭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증권업의 핵심은 거래량보다 변동성과 담보위험을 감당할 수 있는 자본과 유동성으로 이동한다.


보험사는 금리의 방향보다 상승속도가 중요하다


보험사는 장기보험 부채에 맞춰 장기채를 보유한다.

장기금리가 점진적으로 상승하면 새로 들어오는 보험료를 더 높은 금리의 채권에 투자할 수 있다. 생명보험과 연금보험에는 투자수익 개선 요인이다.

반면 금리가 너무 빠르게 오르면 기존 장기채의 평가가격이 하락하고 파생상품 증거금과 보험계약 해약이 증가할 수 있다.

BIS의 보험사 국채 보유 분석은 금리 급등으로 보험사의 증거금 부담이 커지면 유동성 확보를 위한 국채 매도가 다시 금리 상승을 증폭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장기채 발행을 줄이면 보험사가 장기부채에 맞춰 투자할 수 있는 장기 안전자산의 공급도 제한될 수 있다.

AI 기업의 장기채가 이를 대체할 수 있지만 국채보다 높은 신용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보험사에는 높은 금리보다 자산과 부채의 현금흐름을 얼마나 정확히 맞추는지가 중요해진다.

3부 핵심 정리

AI는 생산성을 높이는 동시에 전환기의 물가·금리·고용 충격을 만든다. 금융 Agent는 소비자의 비교와 실행비용을 낮춰 금융회사의 정보마진을 압축한다. 금융산업의 해자는 정보의 독점에서 안정적인 Balance Sheet와 신뢰할 수 있는 Execution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4. AI가 바꾸는 유통과 브랜드시장


유통기업도 정보와 위험을 마진으로 바꿔왔다


금융회사만 정보의 비대칭에서 마진을 얻어온 것은 아니다.

Retail·Wholesale·B2C 유통기업도 소비자가 무엇을 언제 얼마나 구매할지 예측하고, 상품을 미리 확보해 필요한 장소에 배치하는 역할을 해왔다.

(*내가 이해한게 맞다면)

상품을 싸게 매입해 비싸게 판매하는 단순한 구조로 보이지만 그 사이에는 수요예측과 재고·운전자본·물류·반품 위험이 존재한다.

과잉재고는 할인판매와 폐기, 보관비용과 운전자본 부담으로 이어진다. 품절은 당장의 매출뿐 아니라 고객관계까지 잃게 만든다.

유통사의 마진은 상품을 옮긴 대가만은 아니다.

수요를 예측하고 재고위험을 대신 부담하며, 공급자와 소비자 사이의 시간과 장소 차이를 연결한 대가에 가깝다.


유통업과 금융업은 생각보다 비슷하다


은행은 단기예금을 받아 장기대출로 운용하면서 유동성과 신용위험을 부담한다.

보험사는 보험료를 먼저 받고 미래의 보험금 지급을 예측해 자산을 운용한다.

유통기업은 상품을 먼저 매입하고 미래의 소비수요를 예측해 재고를 배치한다.

금융회사가 자산과 부채의 만기와 금리를 관리한다면, 유통기업은 수요와 재고의 시기·수량·가격을 관리한다.

두 산업 모두 미래를 예측하고 불확실성을 Balance Sheet에 담는 대가로 마진을 얻는다.


Agent가 금융상품의 정보 비대칭을 줄이는 것처럼, 유통에서도 상품과 가격, 재고와 공급자에 대한 정보격차를 줄일 수 있다.


Agent는 작은 유통기업도 대기업처럼 운영하게 만든다


대형 유통기업은 방대한 판매데이터를 수집하고 지역과 계절별 수요를 예측하며 적정 재고와 발주량을 계산할 수 있었다.

작은 유통기업은 이러한 시스템과 전문인력을 직접 구축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상시 운영되는 Agent는 판매데이터와 날씨, 검색량, 지역행사와 가격변화를 분석해 수요를 예측할 수 있다.

재고가 일정 수준 아래로 내려가면 공급자를 비교하고 발주량과 시기를 결정해 주문까지 실행할 수 있다.

Agentic AI Framework for Smart Inventory Replenishment는 Agent가 재고를 감시하고 공급자를 선택하며 발주를 실행하는 구조를 제시했다. 제한된 프로토타입이지만 재고 부족과 보유비용 감소 가능성을 보여줬다.

OECD의 AI와 하류산업 경쟁 연구도 AI가 노동과 전문기능을 대체하고 최소효율규모를 낮춰 신규 사업자의 시장 진입을 도울 수 있다고 설명한다.

과거에는 대형 유통사만 감당할 수 있었던 수요예측과 재고 최적화를 작은 업체도 낮은 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물리적인 유통망은 쉽게 복제되지 않는다


정보 해자가 약해진다고 대형 유통사의 경쟁력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대형사는 대규모 구매를 통해 낮은 매입가격과 유리한 결제조건을 확보할 수 있다. 전국의 물류센터와 매장, 라스트마일 배송망과 반품처리 시스템도 보유하고 있다.

재고를 대량으로 보유할 수 있는 운전자본과 공급망 충격을 견딜 Balance Sheet도 있다.

Agent가 수요를 정확히 예측해도 상품을 생산하고 운송하고 보관하며 반품을 처리하는 물리적 과정은 남는다.

금융업에서 정보의 해자가 약해져도 자본과 유동성이 중요하게 남는 것처럼, 유통업에서도 물류망·구매력·운전자본·실행 신뢰성이 중요하게 남는다.

따라서 Agent가 유통산업을 무조건 분산시킨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대형 플랫폼은 물리적 실행능력을 바탕으로 더 강해지고, 작은 전문업체는 낮아진 운영비용과 빠른 의사결정을 활용할 수 있다.

가장 압박받는 것은 대형사만큼 구매력과 물류망이 강하지 않고, 소형업체만큼 빠르게 움직이지도 못하는 중간 규모의 전통 유통사일 수 있다.

(*Amazon의 풀필먼트 사업의 해자는 더욱 두터워질 수도 있겠다.)


Agent는 브랜드 충성도의 의미도 바꾼다


브랜드 기업은 소비자의 기억과 신뢰, 반복구매 습관을 해자로 만들어왔다.

소비자는 상품을 구매할 때마다 시장의 모든 제품을 다시 조사하지 않는다.

과거에 사용해본 제품, 부모가 사용하던 브랜드, 광고에서 자주 본 상품과 익숙한 매장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제품을 반복해서 구매한다.

이러한 소비 관성은 탐색비용을 줄인다. 동시에 기존 브랜드에는 제품을 매번 새롭게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경쟁우위를 제공한다.

브랜드 충성도는 감정적인 선호이면서, 소비자가 매번 비교하기 어려워 발생하는 정보비용의 결과이기도 했다.


소비자의 Agent는 과거의 브랜드 관성을 약화시킨다


상시 운영되는 쇼핑 Agent는 소비자 대신 수많은 제품을 비교할 수 있다.

소비자가 원하는 가격과 기능, 성분, 디자인, 배송시간, 리뷰와 반품조건을 입력하면 Agent는 조건에 맞는 제품을 찾아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다.

OpenAI의 Product Discovery 구조도 상품을 가격·리뷰·기능과 함께 비교하고 선택한 상품을 판매자의 구매화면까지 연결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IMF의 Agentic AI 연구는 Agent가 제품 탐색과 가격비교, 할인 적용, 재고확인과 결제까지 연결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대형 유통사의 PB상품의 판매비중이 올라갈 수도 있겠다.)

소비자가 직접 모든 제품을 살펴보지 않아도 된다면 익숙한 브랜드를 선택해야 할 이유가 줄어든다.

과거에는 알지 못했던 작은 브랜드라도 가격과 품질, 리뷰와 배송조건이 더 좋다면 Agent가 먼저 추천할 수 있다.

과거의 성공과 소비 관성에 기대온 브랜드 해자가 약해질 수 있다.


제품력이 있는 신생 브랜드는 더 빨리 발견된다


과거 신생 브랜드가 좋은 제품을 만들어도 이를 알리기 위해서는 광고비와 입점수수료, 판매망 구축이 필요했다.

제품의 경쟁력보다 소비자에게 노출될 수 있는 자본력이 더 중요하게 작용하는 경우도 많았다.

Agent가 제품의 가격과 성능, 리뷰와 반품률을 직접 비교하면 신생 브랜드는 인지도가 낮아도 추천 후보에 포함될 수 있다.

가성비는 가격 대비 기능과 품질처럼 비교적 객관적인 조건이다. 가심비는 디자인과 취향, 스토리와 사용경험처럼 개인별 선호가 크게 작용한다.

개인 Agent가 사용자의 과거 구매와 취향을 이해하면 두 요소를 동시에 비교할 수 있다.

가성비와 가심비가 좋은 새로운 제품이 발견되는 속도가 빨라지는 것이다.

(*정말 K-beauty가
global cosmetic 시장에서 그정도로 가성비, 가심비가 뛰어나 경쟁력을 갖추었다면, AI agent 확산에 따른 수혜를 받을 수도 있지 않나 싶다.)


좋은 제품의 확산과 유행의 교체가 함께 빨라진다


Agent는 새로운 제품이 발견되는 속도를 높이지만, 성공한 제품이 모방되는 속도도 높인다.

어떤 제품이 빠르게 판매되기 시작하면 경쟁사의 Agent는 가격과 리뷰, 소비자 반응과 판매추이를 분석할 수 있다.

비슷한 기능과 디자인의 제품이 더 짧은 시간 안에 출시되고 가격경쟁도 빨라질 수 있다.

OECD는 AI가 시장의 투명성을 높이고 경쟁사의 반응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좋은 제품이 시장에 진입해 성장하는 시간은 짧아진다. 동시에 차별성을 유지할 수 있는 기간도 짧아진다.

트렌드가 만들어지는 속도와 트렌드가 교체되는 속도가 함께 빨라지는 것이다.


Share of Mind에서 Share of Agent로


기존 브랜드 마케팅은 소비자의 머릿속에 브랜드 이름을 먼저 떠올리게 만드는 경쟁이었다.

TV 광고와 검색광고, 인플루언서와 매대 위치를 통해 소비자의 기억을 선점했다.

Agent Commerce에서는 경쟁의 대상이 달라진다.

소비자가 직접 브랜드를 떠올리기 전에 Agent에게 조건을 설명하고 추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브랜드는 사람의 기억뿐 아니라 Agent의 비교결과에도 포함돼야 한다.

제품의 가격과 기능, 성분, 인증, 재고와 배송조건이 구조화돼 있어야 한다. 리뷰와 반품률, 결함률과 사후서비스 기록도 Agent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Share of Mind 경쟁이 Share of Agent Recommendation 경쟁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브랜드는 이미지보다 검증 가능한 기록이 중요해진다


Agent 시대의 브랜드 신뢰는 이미지뿐 아니라 다음과 같은 데이터로 표현될 가능성이 있다.

실제 제품성능

가격 대비 효용

리뷰의 신뢰성과 일관성

반품률과 결함률

배송 정확도와 재고 안정성

사후서비스 이행 기록

과거의 브랜드는 소비자의 기억 속에 존재했다.

Agent 시대의 브랜드는 사람이 느끼는 이미지와 기계가 검증할 수 있는 데이터의 결합에 가까워질 수 있다.

한 번의 대규모 광고보다 매번 일관된 품질과 서비스를 제공해 축적한 기록이 더 중요해진다.


모든 브랜드 충성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브랜드에는 정보비용 외에도 정체성과 감정, 사회적 신호의 기능이 있다.

패션과 명품, 자동차, 스포츠와 취미처럼 소비자가 상품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영역에서는 브랜드의 역사와 커뮤니티가 여전히 중요하다.

건강·금융·육아처럼 구매 실패의 비용이 큰 영역에서도 소비자는 검증되지 않은 신생 브랜드보다 오랜 신뢰를 가진 브랜드를 선택할 수 있다.

브랜드가 사라진다기보다 브랜드 충성도의 근거가 달라진다고 보는 편이 적절하다.

익숙해서 구매하는 브랜드는 약해지고, 뚜렷한 제품력과 정체성, 검증 가능한 신뢰를 가진 브랜드는 강해질 수 있다.


Agent가 새로운 게이트키퍼가 될 수도 있다


Agent가 소비자의 선택을 돕는다고 해서 언제나 가장 좋은 제품을 중립적으로 추천하는 것은 아니다.

Agent 운영사가 자체 상품이나 제휴 브랜드를 우선 노출하거나 광고비와 수수료에 따라 추천순위를 조정할 가능성이 있다.

OECD도 Agent가 자사 제품을 체계적으로 우대하면 더 우수한 경쟁제품이 배제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과거에는 검색엔진과 대형 유통 플랫폼이 소비자 접근을 통제했다면, 앞으로는 개인 Agent와 그 Agent가 사용하는 모델이 새로운 유통 게이트키퍼가 될 수 있다.

기존 브랜드 해자가 약해지는 동시에 Agent 플랫폼이라는 새로운 해자가 만들어질 가능성도 있다.

4부 핵심 정리

Agent는 유통기업의 수요예측과 재고관리 능력을 상향평준화하고, 소비자의 상품 탐색과 비교비용을 낮춘다. 과거의 인지도와 소비 관성에 의존한 브랜드는 약해질 수 있다. 반면 제품력과 가격 경쟁력이 뛰어난 신생 브랜드는 더 빨리 발견된다. 유통과 브랜드의 해자는 정보와 광고에서 물류망·운전자본·제품력·검증 가능한 신뢰로 이동한다.

 
AI make every fucking thing accelerated


AI는 모든 산업의 해자를 다시 쓰고 있다


지금까지의 흐름을 하나로 연결하면 AI가 바꾸고 있는 것은 단순한 생산성만이 아니다.

AI는 각 산업에서 희소한 것이 무엇인지, 기업이 어디에서 마진을 얻을 수 있는지를 바꾸고 있다.


공통점이 있다.

정보와 지능에서 발생하던 마진은 줄어들고 있다.

물리적 자산과 자본, 실제 행동을 완수하는 Execution의 가치는 높아지고 있다.

모델의 성능은 빠르게 상향평준화된다.

금융상품의 금리와 조건은 실시간으로 비교된다.

유통기업의 수요예측과 재고관리는 Agent를 통해 자동화된다.

브랜드 역시 과거의 인지도보다 현재의 제품력과 가격, 실제 고객경험으로 계속 평가받는다.

반면 데이터센터와 전력망, 물류센터와 운전자본, 금융회사의 자본과 유동성, 제품의 품질과 공급 안정성은 말만으로 만들어낼 수 없다.


글을 마치며


지능의 가격은 빠르게 내려가고 있다.

더 강력한 모델이 더 자주 출시되고, 오픈웨이트 모델은 프런티어 성능을 빠르게 추격한다. 기업과 국가는 자신에게 필요한 모델을 직접 조정하고 운영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그 지능을 현실에서 실행하는 비용은 가벼워지지 않고 있다.

컴퓨팅과 메모리, 전력과 송전망, 데이터센터와 장기자금은 여전히 희소하다.

AI 기업과 각국 정부는 같은 자금과 전력, 자재와 인력을 놓고 경쟁한다. 정부는 과거의 저금리 부채를 더 높은 금리로 차환해야 하고, AI 기업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많은 민간채권을 발행한다.

그 결과 실질금리와 기간 프리미엄에 상방압력이 발생하고, 높은 자본비용은 금융회사와 유통기업의 Balance Sheet까지 압박한다.

동시에 Agent는 금융상품과 소비재를 실시간으로 비교하고 실행한다.

금융회사가 누리던 정보 비대칭, 유통기업이 보유했던 수요정보, 브랜드가 의존했던 소비자의 관성은 점차 약해질 수 있다.

모델의 해자는 옅어지고 있다.

정보의 해자도 옅어지고 있다.

반면 물리적 인프라와 자본, 제품력과 Execution의 해자는 깊어지고 있다.

AI 시대에 가장 중요한 가격은 토큰당 가격만이 아닐 수 있다.

풍부해진 지능을 실행하기 위해 사회 전체가 지불해야 하는 자본의 가격, 그리고 끊임없는 비교 속에서도 선택받을 수 있는 실제 제품과 서비스의 가치가 더 중요해질 수 있다.

(*대딸깍의 시대가 정말 빠르게 다가올까..?)

=끝

2026년 9월 29일 화요일

생각정리 381 (* Nowhere Is Safe from AI)

작년부터 스스로에게 되뇌어온 말이 있다.
AI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대피처는 사회에도, 투자 세계에도 없다는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그 생각의 이유를 풀어 기록 정리해본다.

이익은 집중되고, 비용은 넓게 퍼지는 경제


Agent AI가 무엇을 할 수 있고, 우리의 일과 생활을 어떻게 바꿀지는 이전 글에서 정리했다.

생각정리 376 — The Consumer Token Moment

이번에는 그 편리함의 뒤에 있는 비용을 생각해본다. Agent가 더 많은 일을 대신해준다는 것은, 그 일을 실행할 컴퓨터와 전력, 자금과 자원이 더 필요해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Agent가 가져다주는 효용은 공짜가 아니다. 그리고 그 효용을 얻는 사람과 비용을 부담하는 사람이 반드시 같지도 않다.

개인적으로는 이 차이가 앞으로 AI 시대의 분배 문제를 이해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AI 도입은 확대되고 있지만, 지출은 여전히 ​​특정 기업(*계층)에 집중되어 있음.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ai 
- 출처: EpochAIResearch

1. 저렴한 Agent와 저렴한 사회는 다른 이야기다


우리는 화면에 몇 줄의 명령을 입력하고 결과를 받는다. 하지만 그 뒤에서는 컴퓨터가 정보를 읽고, 계획을 세우고, 작업을 실행하고, 결과를 검증한다.

Agent가 일하는 동안 서버와 메모리가 사용되고, 전력이 소비된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전력설비도 먼저 만들어져 있어야 한다.

그 물리적인 기반은 아래 글로 갈음한다.

생각정리 378 — The Memory Behind Every Agent

토큰은 AI가 처리하는 글과 정보의 작은 단위다. 여기서 말하는 토큰 경제는 사람이 하던 지식 업무가 컴퓨터의 처리량과 사용료로 바뀌는 경제에 가깝다.

기술이 발전하면 같은 일을 처리하는 비용은 낮아질 수 있다. 하지만 저렴해진 만큼 더 많은 사람이 더 많은 일을 Agent에 맡긴다면, 사회 전체의 사용량과 지출은 오히려 증가할 수 있다.

토큰당 가격 하락과 전체 컴퓨팅 지출 감소는 같은 말이 아니다.

국제에너지기구도 AI의 작업당 에너지 효율 개선과 함께, 더 많은 계산이 필요한 추론·Agent 작업의 확산을 설명한다. 전체 전력 수요는 효율뿐 아니라 사용량과 작업의 종류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IEA — Key Questions on Energy and AI. www.iea.org

Agent가 저렴해지는 것은 이용자에게 좋은 일이다. 그러나 Agent가 저렴해졌다고, 그 Agent를 움직이는 사회 전체의 자원 비용까지 함께 저렴해지는 것은 아니다.

2. AI의 확장은 사회가 함께 쓰는 자원을 필요로 한다


AI 인프라 투자, 즉 AI Infrastructure CAPEX는 컴퓨터를 구매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데이터센터를 지을 땅과 건물, 서버와 반도체, 전선과 변압기, 발전설비와 냉각시설이 필요하다. 이를 설계하고 건설하고 운영할 사람도 필요하다.

기업의 현금뿐 아니라 대출과 채권, 투자자의 자금도 들어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자원들이 AI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공장과 주택, 병원과 학교도 같은 전력과 자재, 인력과 자금을 필요로 한다.

AI 인프라의 확장은 사회의 공통 자원을 확보하는 경쟁이기도 하다.

어떤 지역에 대규모 데이터센터가 들어온다고 가정해보자. 기존 전력망으로 감당하기 어렵다면 발전설비와 송전망을 추가해야 한다.

그 비용을 데이터센터가 충분히 부담하면 다른 이용자의 부담은 제한된다. 반대로 일반 전기요금에도 비용이 배분된다면, Agent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가정과 가게도 일부를 부담하게 된다.

자재와 인력도 비슷하다. 특정 장비와 숙련된 기술자가 부족해지면 다른 시설을 짓는 데도 더 많은 비용과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AI에서 시작된 수요가, AI 산업 밖의 비용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리사 쿡 연준 이사 역시 AI 관련 산업 내부의 가격 상승과 경제 전체의 물가 상승을 구분하면서, 공유하는 건설 인력과 에너지 등을 통해 가격 압력이 넓어질 가능성을 지적했다. 연준 — An Update on AI and the Economy. www.federalreserve.gov

모든 자재와 생활물가가 같은 폭으로 오른다는 뜻은 아니다. 공급이 빠르게 늘기 어려운 공통 자원에서 비용 압력이 발생하고, 그 부담이 여러 산업과 가계로 전달될 수 있다는 의미다.

3. 높은 투자수익률과 높아진 생활비는 함께 존재할 수 있다


AI 기업이 높은 전기료와 건설비를 지불하면서도 투자를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비용보다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투자한 돈에 비해 얼마나 많은 이익을 얻는지를 나타내는 ROIC, 투자수익률이 충분히 높다면 비용 상승을 감당할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전기를 사용하는 작은 가게는 다르다. 전기료가 오른다고 매출이 함께 늘지는 않는다.

일반 가정도 마찬가지다. 전기요금을 더 낸다고 월급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더 큰 이익을 얻기 위한 투자비용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이익 없이 추가된 생활비일 수 있다.

이 때문에 AI 인프라 기업의 수익성이 좋아지는 것과 사회 전체의 생활 부담이 커지는 것은 모순이 아니다. 둘은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

물론 모든 AI 투자가 높은 수익을 내는 것은 아니다. 경쟁과 과잉투자, 낮은 가동률은 투자자의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다만 일부 기업이 높은 수익성을 유지하며 자원을 계속 확보한다면, 그 자원으로 큰 이익을 얻지 못하는 경제주체는 같은 비용 상승을 훨씬 어렵게 견딜 수 있다.

4. 노동을 구매력으로 바꾸던 경제가 약해진다


우리가 익숙한 경제의 기본 흐름은 간단하다.

노동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고, 그 돈으로 물건과 서비스를 구매한다.

자신의 시간과 능력을 구매력으로 바꾸는 것이다. 큰 자본이 없어도 노동을 통해 경제가 만들어내는 부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런데 Agent가 사람이 하던 업무를 맡기 시작하면, 기업은 더 많은 일을 처리하면서도 그만큼 사람을 더 고용하지 않을 수 있다.

대규모 해고만의 문제도 아니다. 신입 채용을 줄이고, 퇴사자의 자리를 채우지 않고, 외주 계약을 축소하는 방식으로도 노동의 몫은 줄어들 수 있다.

이전 글에서 다뤘던 사회적 파장도 이와 연결된다.

생각정리 362 — The Fed, AI and the Price of Stability

한 회사가 Agent를 도입해 인건비를 절약했다고 가정해보자. 절약한 돈의 일부는 AI 사용료가 되고, 일부는 회사의 이익으로 남을 수 있다.

가격을 낮추거나 직원의 임금을 높이는 데 사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절약된 인건비가 자동으로 노동자의 새로운 소득이 되는 것은 아니다.

AI 서비스 제공자의 매출과 도입 기업의 이익으로 이동한 돈은, 배당과 기업가치 상승을 통해 자본 소유자에게 돌아갈 수 있다.

사람의 노동으로 만들던 성과를 컴퓨팅으로 만들게 되면서, 성과에 대한 보상도 노동에서 자본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이런 변화가 넓어진다면, 자신의 노동을 팔아 구매력을 얻던 방식이 점차 ‘구경제’처럼 느껴질 수 있다. 노동이 사라진다는 뜻보다는, 노동만으로 생산성 향상의 과실을 나눠 받는 통로가 약해질 수 있다는 의미다.

5. 값싼 지능이 소득까지 고르게 나눠주지는 않는다


Agent를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는 것과, Agent가 만들어내는 이익을 누구나 비슷하게 가져간다는 것은 다르다.

누군가는 이메일을 조금 빨리 작성한다. 다른 누군가는 Agent를 사업 전체에 연결해 고객을 확보하고, 적은 인력으로 더 큰 매출을 만든다.

같은 기술을 사용하더라도 고객과 사업, 데이터와 자금, 유통망을 가진 주체가 더 큰 이익으로 연결하기 쉽다.

지능에 대한 접근이 넓어져도, 그 지능으로 벌어들이는 소득까지 고르게 나뉘는 것은 아니다.

저렴한 Agent가 새로운 창업과 개인의 소득 기회를 열 수도 있다. 동시에 이미 큰 사업을 가진 기업이 더 빠르게 확장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두 번째 경로가 더 강하게 나타나는 경우다.

AI를 소유하고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주체는 생산성 향상과 이익 증가를 얻는다. 반면 노동소득에 의존하는 사람은 취업 기회와 임금 협상력이 약해지면서 생활비 부담까지 커질 수 있다.

소득을 얻는 힘은 약해지고, 그 소득으로 살 수 있는 양도 줄어드는 것이다.

기업이 더 많이 생산할 수 있어도 사람들이 구매할 돈이 부족하면 소비는 충분히 늘어나기 어렵다. 정부에는 실업 지원과 재교육, 주거·의료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압력이 생길 수 있다.

결국 기업의 생산성 향상이 노동소득과 세입으로 충분히 연결되지 않으면, 그 전환의 부담 일부가 정부 재정으로 이동할 수 있다.

6. 금리는 이 비용을 모두 같은 방식으로 조절하지 못한다


금리가 오르면 돈을 빌리는 비용이 커지고, 투자와 소비가 줄어드는 것이 일반적인 흐름이다.

하지만 AI 투자의 기대수익성이 충분히 높다면 일부 기업은 높은 금리에도 투자를 계속할 수 있다. 경쟁에서 뒤처지는 손실이 금융비용보다 크다고 판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금리에도 투자가 지속될 수 있는 배경은 아래 글로 갈음한다.

생각정리 357 — Beyond the Cycle, k-EPC

그렇다고 AI가 금리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같은 금리 상승에도 산업과 가계가 받는 충격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AI 투자는 지속되는 동안 작은 기업의 투자와 가계 소비가 먼저 위축될 수 있다. 높은 수익을 기대하는 기업과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돈을 빌리는 사람은 금융비용을 감당하는 능력이 다르다.

정책금리가 내려간다고 장기자금의 가격까지 같은 폭으로 내려가는 것도 아니다. 정부와 기업의 차입 수요, 미래 물가에 대한 불안이 남아 있다면 중장기 금리는 높은 수준에 머물 수 있다.

생각정리 360 — Rate Divergence

중립금리나 물가 목표는 여전히 정책 판단에 도움이 된다. 다만 경제 전체의 평균적인 기준만으로 누가 이익을 얻고, 누가 비용을 견디는지까지 설명하기는 어렵다.

AI 시대에는 금리의 방향과 함께, 자금과 자원이 어디로 배분되고 있는지를 봐야 하는 이유다.

7. AI에 참여하지 않아도 AI의 비용에서는 벗어나기 어렵다


물론 이 흐름이 반드시 분배 악화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전력과 설비 공급이 충분히 늘어나고, 데이터센터가 추가 비용을 부담하며, 경쟁이 생산성 향상을 가격 인하와 임금 상승으로 연결한다면 사회 전체의 혜택은 커질 수 있다.

문제는 시간차다. 인프라 투자와 자원 수요는 먼저 발생하지만, 생산성 향상의 혜택이 사회 전체로 퍼지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비용은 먼저 발생하고, 혜택은 나중에 도착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둘을 경험하는 사람이 같지 않을 수도 있다.

AI 주식을 사지 않을 수 있다. Agent를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이 일하는 회사의 채용 방식과 거래처의 가격, 전기요금과 대출금리, 정부의 재정 선택까지 AI의 영향에서 분리하기는 어렵다.

AI에 투자하지 않는 것은 투자 선택이다. AI가 바꾸는 경제에서 벗어나는 선택은 아니다.

그렇다고 AI 자산을 보유하면 모든 위험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산업의 성장과 투자자의 수익은 다를 수 있고, 자산을 보유하기 어려운 사람에게 같은 대응을 요구할 수도 없다.

내가 말하는 ‘AI Escape의 어려움’은 특정 자산을 사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다. AI의 혜택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도 그 비용을 부담할 수 있다는 경제 구조의 문제다.

글을 마치며


이전에는 AI가 사회 전체의 부와 이익을 일부 주체에게 집중시킬 가능성을 우려했다. Agent는 이 변화를 실제 업무의 실행 단계로 넓힌다.

사람의 노동을 대신하는 범위가 커질수록, 성과는 Agent를 소유하고 활용하는 기업과 자본에 더 많이 돌아갈 수 있다. 반면 그 기반을 만드는 전력과 자재, 인력과 자금의 비용은 사회 전반으로 퍼질 수 있다.

이익은 집중되고 비용은 넓게 분담되는 구조가 강화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같은 비용 상승도 소득과 자산이 적은 사람이나 이를 감당할 여력이 부족한 기업에는 더 큰 부담이 된다.

Agent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는지만큼, 그 성과와 비용이 누구에게 돌아가는지도 중요하다. Agent AI의 효용은 공짜가 아니며, 그 혜택을 충분히 얻지 못하는 사람과 기업도 비용에서는 자유롭기 어렵다.

이런 흐름이 이어진다면, AI에 적응하는 일은 선택보다 생존의 조건에 가까워질 수 있다. 변화의 혜택에 참여할 기회보다 적응해야 한다는 압력(*생존의 문제)이 먼저 다가오는 사회가 될지도 모르겠다.

투자자로서 AI에서 알파를 찾을 자신이 없다는 것은 내 분석의 한계이지, 다른 투자처가 AI의 영향에서 자유롭다는 근거는 아니다. AI 자산을 피할 수는 있어도, AI가 바꾸는 수익구조와 경쟁환경, 자본비용까지 피할 수는 없다.

Nowhere Is Safe from AI !!!

=끝 

생각정리 380 (* 해외투자점검 7)

누군가는 최후의 승자가 되겠지..

※ 본 글은 투자 권유가 아닌 개인적인 판단과 포트폴리오 변화에 대한 복기 기록이다.

1. 다시 돌아온 AI Software


2022년 해외기업 P/F를 본격적으로 구성하기 시작했을 때, 가장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였던 영역은 AI Software, 그중에서도 AI 서비스를 구축하고 운영하는 기반인 PaaS 계층이었다.

당시에는 Frontier LLM이 지금처럼 강력해질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데이터 주권이나 AI의 안전·보안·정렬 문제 역시 지금만큼 중요한 투자 변수로 보지 않았다. 과거 인터넷 산업에서 플랫폼과 표준을 장악한 기업들이 가장 큰 가치를 가져갔던 경험 때문에, AI에서도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 플랫폼의 장기적인 가치 포착력이 더 클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다만 이때 세웠던 가설과 이후의 판단 변화는 이미 아래 글들에 남겨두었다. 중복되는 내용은 다시 길게 설명하기보다 이전 기록으로 갈음하려 한다.

  • 해외투자 점검
    Agentic AI 확산에 따라 실시간 데이터, 실행, 저장, 관측, 보안 기능을 제공하는 PaaS의 구조적 성장을 예상했다.

  • 해외투자 점검 2
    Frontier LLM이 기존 소프트웨어의 기능과 고객 접점을 직접 흡수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PaaS 비중을 대폭 축소했다.

  • 해외투자 점검 3 (*2Q25 Review)
    실적을 통해 AI 투자 수요가 소프트웨어보다 데이터센터와 하드웨어 병목에서 더 직접적으로 나타나는지 확인했다.

  • 생각정리 90 (* 해외투자 점검4, 반도체)
    Agentic AI가 요구하는 연산량과 데이터 이동량 증가를 중심으로 메모리·패키징·전력 제약을 살펴봤다.

  • 생각정리 137 (* 해외투자점검 5)
    메모리를 독립된 부품이 아니라 네트워크와 연결된 메모리 패브릭으로 보기 시작했다.

  • 생각정리 243 (* 해외투자점검 6)
    가치사슬 전반에 분산돼 있던 P/F를 메모리·광통신·패키징·소재 등 실제 공급 부족과 가격 결정력이 확인되는 병목으로 압축했다.


해외투자점검 1~6의 흐름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플랫폼의 장기 가치’를 선호했던 초기 관점이 Frontier LLM의 기능 내재화를 거치며 ‘희소한 물리적 병목의 가격 결정력’을 우선하는 방향으로 이동한 과정이었다.


2. 2022년에 생각했던 PaaS와 지금 다시 보는 PaaS는 다르다


2022년의 가설은 AI Super App이 하나둘 등장하면 이를 개발하고 운영하기 위한 데이터·개발·배포 플랫폼의 사용량도 자연스럽게 늘어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당시 PaaS 투자의 근거는 ‘AI 애플리케이션 수의 증가’였다.

하지만 실제 시장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다. AI Super App의 가능성은 다수의 독립 소프트웨어로 확산되기보다 Frontier LLM으로 집중됐고, 모델 자체가 검색·분석·코딩·데이터 처리 기능을 흡수했다. 소프트웨어가 AI의 보완재가 아니라 경쟁재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고, 이에 따라 P/F의 중심을 연산·메모리·네트워크 등 쉽게 내재화할 수 없는 하드웨어 병목으로 옮겼다.

최근 OpenClaw와 Muse 이후에는 다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AI가 질문에 답하는 인터페이스를 넘어 사용자를 대신해 계획하고, 도구를 호출하고, 여러 단계의 작업을 지속적으로 수행하는 형태로 발전하면서 Agent AI가 새로운 Super App의 형태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기 시작했다.

Agent는 단순한 모델 호출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장시간 유지되는 실행 환경, 상태와 기억의 저장, 권한 관리, 외부 시스템과의 연결, 장애 추적, 보안 통제 등이 함께 필요하다. 현재 다시 주목하는 PaaS는 과거의 범용 개발 플랫폼이 아니라, Agent의 행동을 실제 업무로 연결하고 통제하는 ‘실행계층 PaaS’다.

즉 과거에는 애플리케이션이 많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근거로 PaaS를 봤다면, 지금은 Agent가 한 번의 명령을 처리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실행 횟수와 데이터 이동량, 저장량, 보안 이벤트가 실제로 증가하는지를 보고 있다. 과거의 가설이 앱의 수에 기반했다면, 현재의 가설은 Agent당 실행 강도와 운영 복잡도에 기반한다.


3. Frontier LLM과 경쟁하는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이를 운영하는 소프트웨어


과거 PaaS 비중을 줄였던 가장 큰 이유는 Frontier LLM이 기존 소프트웨어 기능을 직접 내재화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위험은 지금도 사라지지 않았다. 따라서 AI Software 전체를 다시 긍정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 다시 편입한 영역은 모델이 고도화될수록 대체되는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오히려 모델과 Agent의 수가 늘어날수록 운영 복잡도가 증가하는 계층이다. 구체적으로는 Agent Network·Security, VM·Orchestration, Storage Software, Observability와 같은 실행 인프라다.

이 계층은 특정 Frontier LLM의 기능과 직접 경쟁하기보다 여러 모델과 도구 사이에서 실행을 중개한다. 기업이 하나의 모델에 모든 데이터와 권한을 맡기기 어려워질수록 모델 중립적인 실행 환경, 데이터 주권, 권한 분리, 감사 기록의 중요성도 커진다. Frontier LLM의 강해짐이 소프트웨어 전체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가 사용자 인터페이스에서 실행·통제계층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최근 관련 기업들의 어닝콜과 인베스터데이를 살펴보면 개발 방향 역시 단순한 클라우드 기능 확대보다 Agent 실행, 프라이빗 환경, 멀티모델 연결, 보안과 관측 기능을 통합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시장 참여자들이 설명하는 제품 방향과 내가 다시 설정한 투자 가설이 점차 같은 지점으로 수렴하고 있다는 점도 비중 확대의 배경이 됐다.


4. 5월 11일 이후 P/F의 변화


해외투자점검 6 당시에는 AI Software와 전력 비중을 사실상 제거하고, 공급 부족과 가격 결정력이 가장 분명했던 하드웨어 병목에 집중했다. 당시의 핵심 질문은 ‘AI 투자 확대 과정에서 누가 가장 희소한 자원을 공급하는가’였다.

현재는 메모리를 중심축으로 유지하면서도 광통신의 집중도를 낮추고, Agent 실행계층과 분산형 전력을 새롭게 확대했다.



가장 큰 변화는 하드웨어를 줄이고 소프트웨어로 회귀한 것이 아니라, 하드웨어 병목 위에 Agent의 실행·저장·보안·관측계층을 추가한 것이다.

메모리·스토리지는 여전히 가장 큰 비중이다. Agent가 장시간 상태를 유지하고 여러 작업을 병렬로 수행할수록 세션 데이터, 장기 기억, 로그, 체크포인트, 검색 데이터가 누적되기 때문이다. Agent의 확산은 연산량뿐 아니라 ‘보존해야 하는 상태의 총량’을 증가시킨다는 점에서 메모리 가설은 오히려 강화됐다.

광 인터커넥트는 구조적 성장 논리는 유지하지만, 이전보다 비중을 낮췄다. 특정 연결 방식에 대한 집중도를 줄이고 Agent가 실제로 소비하는 메모리·실행 인프라·전력으로 수혜 범위를 넓히기 위한 조정이다. 하나의 기술 경로에 집중하기보다 Agent 한 건이 만들어내는 전체 인프라 소비를 보려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새롭게 편입한 수동소자와 분산형 전력 역시 독립적인 테마가 아니다. 고밀도 연산과 상시 추론이 확대될수록 전력의 변환·분배·안정화가 중요해지고, Agent가 엣지와 기업 내부 환경으로 분산될수록 전력 수요도 데이터센터 외부로 확장될 가능성이 있다. Agent AI는 소프트웨어 수요와 전력 수요를 동시에 만드는 워크로드라는 관점이다.


5. 이전과 지금의 투자 관점 비교




가장 중요한 차이는 과거에는 PaaS를 AI 성장의 간접적인 대리변수로 봤지만, 지금은 Agent의 실행량 증가가 매출로 직접 연결될 수 있는 계층만 선별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좋은 기술과 플랫폼 표준을 확보하면 장기적으로 높은 가치를 가져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기술적 우위만으로는 부족하며, 실제 사용량 증가가 가격 결정력과 영업 레버리지로 이어지는지를 더 중요하게 본다. ‘좋은 플랫폼인가’보다 ‘Agent의 활동량이 늘 때 반드시 사용해야 하고 그 사용량을 과금할 수 있는가’를 우선한다.

또한 과거에는 AI Software와 AI Hardware를 서로 대체되는 선택지처럼 바라본 측면이 있었다. 지금은 Agent의 확산이 연산, 메모리, 네트워크, 저장, 보안, 전력을 동시에 소비한다는 점에서 두 계층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보고 있다. 현재 P/F는 Software 대 Hardware가 아니라, Agent 한 건이 작동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전체 실행 경로에 투자하는 구조에 가깝다.


6. 앞으로 확인해야 할 것


현재의 가설이 맞으려면 Muse 이후 Agent 기능의 확산이 단순한 기능 체험에 그치지 않고 반복적인 실제 사용으로 이어져야 한다. 사용자 수보다 Agent당 실행 횟수, 작업 지속시간, 저장되는 상태의 양이 더 중요한 선행지표다.

두 번째는 Frontier LLM이 Agent 실행계층까지 얼마나 직접 흡수하는지다. 실행환경이 모델에 완전히 통합된다면 독립 PaaS의 가치가 다시 약해질 수 있다. 반대로 기업이 데이터 주권과 보안을 이유로 멀티모델·프라이빗 환경을 선택한다면 중립적인 실행계층의 협상력은 높아질 수 있다. 이번 Software 재편입의 성패는 모델 성능보다 실행계층의 독립성이 유지되는지에 달려 있다.

세 번째는 사용량이 실제 실적으로 전환되는 속도다. Agent 트래픽이 늘어도 단가 하락이나 과도한 인프라 비용으로 수익성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투자 가설은 약해진다. 기술 채택보다 매출 전환, 유지율, 사용량 기반 매출, 마진 개선을 우선적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하드웨어 병목의 해소 속도도 계속 점검해야 한다. Agent 실행량이 예상보다 빠르게 증가하면 메모리와 전력 병목이 장기화될 수 있지만, 공급 증가와 효율 개선이 이를 앞서면 가격 결정력은 약해질 수 있다. 수요의 성장만이 아니라 공급이 따라오는 속도까지 함께 봐야 한다.


7. 정리


2022년에 세웠던 PaaS 가설이 완전히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당시에는 Agent가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지, Frontier LLM이 어느 범위까지 기능을 흡수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수혜 범위를 지나치게 넓게 설정했던 것 같다.

이후에는 실제 실적과 공급 부족이 확인되는 하드웨어 병목으로 P/F를 압축했고, 그 과정에서 메모리·네트워크·저장·전력의 연결 구조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 하드웨어 중심의 기간은 Software 가설을 포기한 시간이 아니라, AI 가치사슬에서 실제 가격 결정력이 어디에 형성되는지를 확인한 과정이었다.

OpenClaw와 Muse 이후 Agent AI가 Super App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구체화되면서 PaaS를 다시 볼 이유가 생겼다. 그러나 이번에는 예전처럼 AI Software 전체를 넓게 담는 방식이 아니다. Frontier LLM과 경쟁하지 않으면서 Agent의 실행·기억·권한·보안·관측을 담당하는 계층으로 투자 범위를 제한했다.

얼마나 큰 시장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AI가 답변을 생성하는 도구에서 실제 업무를 수행하는 Agent로 확산된다면, 가장 먼저 부족해지는 것은 모델 자체보다 이를 안정적으로 실행하고 통제할 수 있는 환경일 가능성이 높다.

현재 P/F의 핵심은 ‘지능의 희소성’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풍부해진 지능을 현실에서 작동시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메모리·실행환경·보안·관측·전력의 희소성에 투자하는 것이다.


글을 마치며


최근 시장을 지켜보다 보면, 지금의 AI 투자판은 마치 모두가 큰 패를 쥐었다고 믿는 섯다판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섯다판에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어떤 패가 들어오느냐가 아니다. 판에 참여할지, 언제까지 콜을 이어갈지, 그리고 전체 자금 중 얼마를 베팅할지가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영역이다. 반면 내 패와 상대의 패, 판의 흐름은 이미 주어진 환경에 가깝다.

AI 기술의 발전 속도와 산업의 확산 방향도 마찬가지다. 투자자는 기술 변화를 통제할 수 없으며, 어떤 기업이 최종 승자가 될지도 미리 알 수 없다. 산업의 변화는 테이블 위에 돌려지는 패이고, 이를 어떻게 해석해 어느 정도의 비중을 실을지는 투자자의 판단이다.

최근에는 시장 참여자 대부분이 자신이 보유한 AI 관련 자산을 최상의 패라고 확신하는 듯하다. 서로 다른 산업과 기업이 모두 구조적 수혜를 주장하고, 그 확신을 바탕으로 계속 콜을 외치며 판돈을 키우고 있다. 그러나 투자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나쁜 패를 들었을 때보다, 모두가 좋은 패를 들었다고 확신할 때일 수 있다.

9땡도 장땡 앞에서는 패배하고, 높은 땡도 땡잡이나 암행어사 같은 특수패에 뒤집힐 수 있다. 구사가 나오면 커진 판 자체가 다시 시작될 수도 있다. 산업의 성장 방향을 맞히는 것과 그 산업 안에서 최종 승자를 맞히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지금은 불확실한 매크로 환경 위에서 AI에 대한 높은 확신이 동시에 쌓이고 있다. 기술의 방향은 맞더라도 가격, 경쟁, 공급 증가, 자본조달 환경이라는 다른 패가 결과를 뒤집을 수 있다. 결국 누군가는 크게 부풀어진 판돈을 가져가겠지만, 현재의 정보만으로 그 승자가 누구인지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AI의 미래를 부정하는 것도, 반대로 확신만으로 끝까지 콜을 외치는 것도 아니다. 좋은 패를 쥐었다는 판단과 얼마를 베팅할 것인가는 분리해야 한다. 산업 변화는 받아들이되, P/F 비중과 총 익스포저는 언제든 틀릴 수 있다는 전제 아래 조절해야 하지 않나 싶었다.

이번 P/F 변화 역시 어떤 패가 반드시 이긴다는 선언이라기보다, Agent AI 확산이라는 새로운 패를 확인한 뒤 베팅의 대상과 크기를 다시 조정한 기록에 가깝지 않나 싶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