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흥미롭게 읽은 부동산 관련 책 중 **『강남의 탄생』**이라는 책에 대해 간략히 정리해보고자 한다.
마침 한국은행에서 부의 되물림을 다룬 보고서가 발표되기도 했고,
앞으로 어디 상급지로 갈아탈지(갈아탈 수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머리 속에서 휘발되기 전에 같이 묶어 내용을 정리해 두고자 한다.
1. 강남 개발: 국가가 설계한 ‘권력 친화 중산층’의 터전
강남 개발은 자연발생적 도시 팽창의 결과가 아니라,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이 기획한 국가 프로젝트였다.
당시 강남 개발에는 세 가지 의도가 겹쳐 있었다.
서울 인구 분산
서울 과밀을 완화하고 도시 기능을 분산시키려는 목적이다.전쟁·피란 대비
북한 남침 시 한강 북쪽 피란민이 한강을 건너지 못해 생기는 병목을 줄이기 위해, 한강 남쪽에 대체 거주·행정 공간을 미리 만들어 두려 했다는 설명이다.정치 자금과 정권 친화 중산층 육성
정권과 가까운 세력이 강남 땅을 선매입 후 되팔며 정치자금을 조성했다.
동시에 서울의 지식인·학생층은 자유당·공화당의 강력한 비판 세력이었고, 이 구도를 뒤집기 위해 정권에 우호적인 중산층을 새로 만들어 배치할 공간으로 강남을 선택했다.
강남은 출발부터 안보, 정치, 재정이 뒤엉킨 권력 공간이었다.
2. ‘버려진 농지’였던 강남: 인프라와 아파트가 만든 불패 신화
개발 전 강남은 저지대·습지가 많아 한강 범람 위험이 큰 농지였다.
사대문 안이 약 500만 평이라면, 당시 영동 개발 부지는 약 937만 평에 달했다. 도시 입장에서는 넓지만 애매한, 사실상 버려진 땅에 가까웠다.
이 땅을 도시로 바꿔 놓은 것은 세 단계였다.
교통 인프라
1970년 제3한강교 완공으로 강북과 강남이 본격적으로 연결되었다.
자동차 시대가 다가옴과 동시에 경부고속도로 개통, 이어서 영동·호남과 연결되는 고속버스터미널이 들어서며, 강남은 전국 교통망의 결절점이 되었다.
치수(수방) 사업
잦은 한강 범람이 도시 기능을 가로막는 최대 난제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한강 이남에 대규모 제방과 동시에 도로가 조성되었고, 이것이 오늘날 강변도로의 기원이 되었다.
한강 매립지 위 아파트 → 막대한 차익
당시 한강은 공유수면이었기 때문에, 강변을 매립해 만든 땅 위에 아파트를 짓고 이를 국영기업체나 정부 투자기관에 일괄 매각하는 방식이 가능했다.
이 모델로 큰 이익을 남긴 대표 기업이 현대건설이며, 이 이익이 이후 조선·자동차·기계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밑천이 되었다.
특히 박 전 대통령 재임기인 3·4공화국 시기(1963~1979)에는 재선 자금 마련을 목적으로 강남 일대 토지를 대규모로 매입한 뒤, 개발·매각을 통해 막대한 차익을 거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과정은 오늘날 ‘부동산 공화국’, ‘아파트 공화국’, ‘땅투기’로 상징되는 한국 부동산 구조의 기원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동시에 국가 경제 전반에서도 생산소득보다 토지·자산 가격 상승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의 비중이 더 커지는 구조가 자리 잡기 시작한 초기 사례로 언급되기도 한다.
3. 공무원·법조·정보기관이 모인 ‘권력 클러스터’로서의 강남
1976년 11개 아파트 지구가 고시되면서 강남 아파트 시대, 전국 아파트 시대가 동시에 열렸다.
초기 강남 아파트 입주민은 서울시 공무원 집단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후 반포주공1단지와 같은 핵심 단지 분양에서는 서울대 교수·군 장성 등 정권 친화적 엘리트에게 특별 분양이 이루어졌다고 전해진다. 시작부터 강남은 국가와 가까운 중산층·엘리트의 주거지였다.
여기에 더해, 주요 국가기관이 강남으로 대거 이주하기 시작한다.
대법원, 서울고등법원, 검찰청사가 강북에서 강남으로 이전하며, 강남은 자연스럽게 보수적 법조 엘리트의 집적지가 되었다.
이어 국정원·중앙정보부·안기부(1995년) 등 정보기관,
한국전력 본사, 한국은행 강남본부 등 주요 공기업·금융기관이 잇따라 강남에 자리를 잡았다.
이후 대형 병원, 대형 교회, 문화회관, 유흥업소 등 각종 문화 상업시설이 뒤따라 들어오며, 강남은 거주–권력–자본이 한데 모인 복합 공간이 되었다.
이렇게 보면, 강남 부동산이 지금까지 강력한 이유에 대한 추정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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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1급 이상 고위공직자의 약 30%가 강남에 거주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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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정부 정책을 결정·집행하는 사람들, 배타적인 수사권을 가진 수사기관 종사자들, 국회에서 입법을 책임지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강남에 산다는 점이다.
이러한 고위 공직자들은 다시 이웃한 금융회사, 대기업 임원, 부동산 부자들과 긴밀히 연결되어 왔고, 그 결과 **그들만의 ‘강남 카르텔’**이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즉, 강남은 국가 권력, 제도권 금융·기업, 고위 공직 네트워크가 서로를 지지하는 구조로 유지되어 왔고, 이 구조 자체가 지금의 부동산 불패 신화를 이어나가는 강남 부동산 수요를 지속적으로 뒷받침해 오는 주요 집단이다.
4. 8학군과 대치동: 교육 자본이 겹쳐진 강남 2막
강남 시대의 2막은 교육이다.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주요 명문고(5대 공립·5대 사립)는 모두 강북에 있었다.
그러나 4·19 혁명, 6·3 학생운동 등으로 학생 세력이 정권 입장에서 부담스러운 정치 세력으로 부상하자, 정권은 청와대·중앙부처 인근의 명문고들을 강남으로 이전시킨다.
그 결과 강남 8학군과 강남 교육특수가 형성된다.
좋은 학교가 강남에 몰리면서, 다시 강남으로의 인구·자본 유입이 가속화된다.
이 과정에서 대치동 사교육 1번지도 같이 탄생한다.
정권은 대학생들의 자금줄을 끊기 위해 **‘과외 금지령’**을 내렸으나, 현실에서는 일부 부유층을 중심으로 몰래 과외 수요가 오히려 증가했다.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저렴했던 대치동 상가에는 소규모 교습소가 들어섰고,
강사들은 명문대생, 학생운동 전력으로 취업에 어려움을 겪던 이들, 제도권 진입을 주저하는 운동권 출신들이었다.이러한 교습소는 점차 전문화된 학원으로 발전했으며, 입시에 논술전형이 도입되면서(*당시 운동권 출신들이 논술 강의를 유독 잘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여기에 2001년 수능 체제까지 더해지자, 대치동은 맞춤형 사교육의 전국적 중심지로 완전히 자리 잡게 된 것이다.
5. 옥수동 ‘뒷구정’: 강남 2세대의 출발선
(옥수동 관련 아래 내용은 책에는 따로 없고 그냥 내가 권력=부의 관점으로 다시 바라보니 기존과 다르게 보여서 찾아본 자료이다.)
오늘날 **옥수동(소위 뒷구정)**은 법조계 인사가 많이 거주하는 동네로 알려져 있다.
이 지역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강남 1세대의 자산을 상속받은 2세대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주거지
강남에서 축적된 자산의 일부가 상속 형태로 옥수동으로 옮겨가고, 이곳에서 2세대의 삶이 출발한다.사법·입법·행정부 권력기관으로 진입하기에 유리한 거점
법조·관료 네트워크와 물리적으로, 사회적으로 가까운 위치에 있는 주거지라는 점에서,
옥수동은 강남–법조–정치·행정으로 이어지는 경로 의존적 진입로로 기능한다.
코로나 이후 옥수동은 서울에서 집값이 가장 빠르게 오른 지역 중 하나이며,
서울 시내에서 재개발 기대감이 가장 높은 동네들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 https://www.homeknock.co.kr/web-front/community/news/15666/ |
강남에서 시작된 부와 네트워크가 한강 건너 또 다른 지역으로 공간적으로 재배치되는 과정 속에서, 옥수동은 일종의 **‘강남 2세대의 후방 기지’**가 된 셈이다.
| 변호사/법무법인/법무사(민간 법률서비스) → 전문·과학·기술서비스업은 광화문 강남에 밀집 https://sgis.mods.go.kr/view/totSurv/ecnmyDash# |
| 대한민국 산업대분류에서 가장 이익률이 높은 부동산업도 전부 강남에 밀집 https://sgis.mods.go.kr/view/totSurv/ecnmyDash# |
| https://sgis.mods.go.kr/view/totSurv/ecnmyDash# |
| 옥수는 광화문과 강남 사이 정가운데 위치 |
| 옥수 대장아파트 옥수파크힐스 7년 새 10억이 25억이 되는 마법 네이버 부동산 |
6. 한국은행이 보여준 숫자: ‘자산 + 지역’이 새로운 신분의 벽
이러한 체감은 **한국은행 BOK 이슈노트 「지역간 인구이동과 세대간 경제력 대물림」(제2026-6호)**가 제시한 통계와도 맞닿아 있다.
핵심 내용만 추리면 다음과 같다.
소득 대물림 심화
부모와 자녀의 소득 계층 연관 정도를 나타내는 **소득 백분위 기울기(RRS)**는 0.25 수준이다.
1970년대생 자녀 세대의 RRS가 0.11이었던 반면, 1980년대생은 0.32로 약 3배 수준으로 상승했다.
자산 대물림은 더 강하다
자산 RRS는 0.38로, 소득 RRS(0.25)보다 더 높다.
자산 RRS 역시 70년대생 0.28 → 80년대생 0.42로 크게 올라, 자산 기준 계층 이동성이 더 빨리 약화되고 있다.
비수도권·저소득 가구의 고착화
비수도권 출생 자녀 중, 부모 소득이 하위 50%인 자녀가 여전히 하위 50%에 머무는 비율은 최근 80%를 넘어섰다.
같은 집단의 상위 25% 진입 비율은 13%에서 4% 수준으로 하락했다.
수도권 이주와 부모 자산
비수도권 출생 자녀의 경우, 부모 자산 상위 25% 자녀의 수도권 이주 확률이 하위 25% 자녀보다 43%p 높다.
| 한국은행 |
**RSS는 RRS(Rank-Rank Slope, 백분위 기울기)란?
정의
RRS는 부모의 소득(또는 자산) 순위와 자녀의 소득(자산) 순위가 얼마나 같이 움직이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이다.
같은 연령대 사람들을 소득 크기대로 1~100위(percentile)로 줄 세운 뒤,
“부모 순위가 1위 올라갈 때 자녀 순위가 평균 몇 위 함께 올라가나”를 **기울기(β)**로 측정한 값이다.
해석
RRS = 0이면: 부모 소득순위와 자녀 소득순위가 전혀 상관없다 → 세대간 대물림 거의 없음.
RRS = 1이면: 부모와 자녀의 소득순위가 완전히 일치 → 완전한 대물림이다.
값이 1에 가까울수록 세대간 대물림이 심하고, 값이 작을수록 계층 이동성이 크다고 해석한다.
한국은행 보고서 수치
한국의 소득 RRS ≈ 0.25
→ 부모 소득순위가 100명 중 10위 올라가면, 자녀는 평균 2.5위 정도 함께 올라간다는 뜻이다.자산 RRS ≈ 0.38
→ 소득보다 자산 쪽 대물림이 더 강하다는 의미이다.
왜 RRS를 쓰는가
단순 금액 기준 탄력성(IGE)은 이상값·비선형성에 취약하고 국가 간 비교가 어렵기 때문에,
최근 연구에서는 “금액”이 아니라 “순위의 기울기”인 RRS가 세대간 대물림을 더 잘 보여주는 지표로 쓰이고 있다.
보고서의 결론은 명확하다.
자가 보유 여부와 거주 지역(수도권/비수도권, 그리고 그 안의 핵심 입지)이 새로운 신분의 벽으로 작동하고 있으며, 특히 비수도권 저소득 가구 자녀는 “부모 세대의 계층을 거의 그대로 물려받는” 구조가 강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출처: 한국은행, 「지역간 인구이동과 세대간 경제력 대물림」(BOK 이슈노트 제2026-6호)
7. 정리: 권력이 움직인 공간이, 부가 대물림되는 무대가 되다
전체 흐름을 한 줄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국가 권력이 안보·정치·재정 목적을 위해 강남을 기획·개발했다.
그 강남에 공무원·법조·정보기관·공기업이 모이고, 8학군·대치동 사교육이 더해지며,
강남은 권력·교육·자산이 중첩된 일종의 엘리트 생태계가 되었다.이 생태계에서 축적된 자산과 네트워크는 오늘날 옥수동 같은 2차 거점으로 확장되고,
동시에 한국은행 통계가 보여주듯 **자산과 거주지가 세대 간 계층 이동을 가르는 새로운 ‘신분의 벽’**으로 기능하고 있다.
결국 “큰 부는 권력에서 나온다”는 말은 오늘 한국에서
권력이 먼저 움직인 공간이, 부가 쌓이고 대물림되는 무대가 된다.
강남과 옥수동, 그리고 수도권 핵심 지역은 그 무대의 가장 전형적인 모습이다.
라고도 볼 수 있지 않나 싶다.
다음 상급지 갈아타기 위해 부동산 임장을 다닐때 주변 거주 이웃들의 직업군을 유심히 알아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문뜩 든다.
압구정 신현대아파트에 거주중인 삼촌이 계시는데, 조만간 한 번 찾아뵙고 ‘천상계 천룡인’의 기운을 좀 흡수해 와야겠다.
인생 운칠기삼이라는데, 좋은 기운이라도 좀 얻어와야겠다..
10여 년 전 훌륭하신 외숙모께서 강남 아파트, 자가 마련 말씀을 해 주셨을 때, 정작 귀인을 눈앞에 모셔 두고도 그 조언을 ‘전혀’ 귀담아듣지 않았던 내 자신을 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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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