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6일 화요일

생각정리 389 (* The Tax Backlash)

 

대한민국 정치 원로 가운데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경제와 정치의 흐름을 가장 명쾌하게 설명하는 인물 중 한 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최근 김종인 원로의 인터뷰를 보던 중, 한국 양도소득세의 변천 과정과 부동산 세제개편이 이후 대통령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공부해볼 필요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 이야기를 계기로 양도소득세가 어떤 시대적 배경에서 만들어졌고, 역대 정부의 세제 변화가 부동산시장과 선거에 어떤 파급효과를 남겼는지 따로 정리해봤다.

돌이켜보면 나를 가르쳐주셨던 1세대 애널리스트와 오랜 기간 한국의 정치·경제·사회를 지켜본 분들은 산업과 기업 이야기만 해주지 않았다. 세제개편안과 부동산가격, 법안의 입법절차와 국회 권력구도, 정당 내부의 인사권, 행정부 내 임명권을 둘러싼 알력다툼, 정책 결정 과정까지 폭넓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초기에는 이런 내용이 당장 투자수익으로 연결되지 않는 부차적인 문제처럼 보였다. 산업과 기업을 공부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들은 내용을 제대로 복습하지 못한 적도 많았다. 그러나 기업과 주식을 분석하는 나름의 틀이 잡히고 나니, 당시 주변부처럼 보였던 정치·제도적 변화가 산업의 방향과 기업가치, 자산가격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였다는 사실을 조금씩 이해하게 됐다.

(*일방적인 무조건적인 가르침..감사합니다..)

아마 당시 나를 가르쳐주셨던 분들은 내가 자신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반신반의하면서도, 언젠가는 그 의미를 알게 될 것이라는 마음으로 인내하며 설명해주셨던 것 같다. 뒤늦게나마 그때 들었던 이야기들을 다시 꺼내 공부하고 기록할 수 있다는 사실에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이번에는 그 연장선에서 한국 양도소득세의 변천사를 살펴보고, 부동산 세제의 변화가 시장을 넘어 이후 선거와 정권의 향방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정리해본다.


부동산 세금은 어떻게 선거를 움직이는가


최근 서울 부동산시장을 보면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정부는 다주택자와 초고가주택에 대한 과세를 강화해 집값을 안정시키려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서울 도심 아파트가격이 오르는 동시에 전세가 줄고 월세까지 상승하고 있다.

집주인은 세금 때문에 불만이고,
세입자는 주거비 때문에 불만이며,
무주택자는 집을 살 수 없어서 불만이다.

이 세 집단의 불만이 하나로 합쳐지면 부동산 세제는 경제정책을 넘어 정권의 문제가 된다.

서울 집값과 전월세 수급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이전 글로 갈음한다.


이번 글에서는 양도세와 보유세가 어떤 과정을 거쳐 부동산시장 조절 수단이 됐고, 그 정책 변화가 다음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중심으로 정리해본다.


양도소득세는 처음부터 부동산정책이었다


한국에서 양도차익 과세가 처음 도입된 것은 1951년이다. 한국전쟁 중 전비를 마련하기 위한 세금이었지만, 인플레이션에 따른 명목가격 상승까지 이익으로 과세한다는 문제가 발생해 1960년 폐지됐다.

현재 양도소득세의 직접적인 전신은 1967년 부동산투기억제세다.

경부고속도로와 산업단지, 도시개발을 앞두고 서울·부산과 고속도로 주변 토지가격이 급등하자 정부는 토지의 양도·보유이익에 **50%**의 세율을 부과했다.

정부가 만든 개발이익을 토지 소유자가 독점하는 것을 막고, 부동산으로 몰리는 자금을 공장과 생산설비로 돌리려는 목적이었다.

즉 한국의 양도소득세는 일반적인 자본이득세라기보다 처음부터 다음 목적을 가진 부동산정책이었다.

개발이익 환수
투기 억제
거래 조절
자금의 생산적 투자 유도

이후 양도세와 보유세는 집값이 오르면 강화되고 시장이 침체되면 완화되는 과정을 반복했다.

국회예산정책처, 조세의 이해와 쟁점: 소득세


한국 부동산 세제의 핵심 변천


생각정리 73 (* 대한민국 남성 정치성향)




이 변천사를 보면 양도소득세는 일관된 조세철학에 따라 움직인 세금이 아니었다.

집값이 오르면 투기 억제를 이유로 높였고, 거래가 줄고 시장이 침체되면 경기 회복을 이유로 낮췄다.
그 결과 양도세는 소득세이면서 동시에 정부가 부동산시장에 사용하는 가속페달과 브레이크가 됐다.

생각정리 181 (* 강남의 탄생)
(*같이 읽어보면 이해가 더 잘 될지도..)


문제는 보유세와 양도세가 함께 높아질 때다


정부가 다주택자의 보유세를 높이는 이유는 매물을 시장에 유도하기 위해서다.

정책이 의도한 경로는 단순하다.

보유세 상승
→ 다주택자 매도
→ 매물 증가
→ 주택가격 안정

그러나 양도세까지 높으면 다른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보유하면 보유세
매도하면 양도세
증여하면 증여세
새로 취득하면 취득세

어떤 선택을 해도 세금이 발생하면 소유자는 거래를 미룰 수 있다. 특히 장기적인 가격상승 기대가 높은 서울 핵심주택은 보유세를 부담하더라도 계속 보유하려는 유인이 강하다.

외곽이나 비선호 주택부터 처분하고, 서울의 이른바 ‘똘똘한 한 채’에 자산을 집중할 수도 있다.

이 경우 다주택자 수는 줄어도 서울 핵심지의 매물 부족과 가격 양극화는 오히려 심해진다.


노무현 정부의 세금 강화와 2006~2007년 선거


노무현 정부는 2005년 종합부동산세를 도입하고 8·31 대책을 통해 보유세와 양도세를 함께 강화했다.

종부세 과세기준은 공시가격 9억원에서 6억원으로 낮아졌고, 과세방식은 인별 합산에서 세대별 합산으로 바뀌었다. 과표적용률도 단계적으로 높이기로 했다.

1가구 2주택 양도세는 일반 누진세율 대신 50% 단일세율로 강화됐다.

정책브리핑, 종부세 등 입법 완료…8·31 정책 원안대로 완성

정부는 세 부담이 높아지면 다주택자가 매물을 내놓고 집값이 안정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서울 집값이 충분히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세금 부담만 부각됐다.

그 결과 종부세의 실제 납부자는 전체 유권자의 일부였지만, ‘세금폭탄’이라는 인식은 수도권 중산층과 잠재적 과세대상자에게까지 확산됐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은 광역단체장 16곳 중 12곳을 차지했고, 열린우리당은 전북 1곳에서만 승리했다.

정책브리핑, 2006년 지방선거 결과

이어진 2007년 대통령선거에서는 이명박 후보가 48.7%, 정동영 후보가 **26.1%**를 얻었다. 격차는 22.6%포인트였다.

연합뉴스, 제17대 대통령선거 개표 결과

부동산세금만으로 선거결과를 설명할 수는 없다. 정권 지지율과 경기 인식, 여권 분열도 중요했다.

그러나 종부세와 양도세는 정권의 경제정책 실패를 유권자가 직접 체감하게 만드는 상징이 됐다.


문재인 정부에서 같은 문제가 반복됐다


문재인 정부도 서울 집값 상승에 대응해 다주택자의 취득세·보유세·양도세를 동시에 강화했다.

정책의 목표는 매물 증가와 가격안정이었다. 그러나 다주택자는 외곽주택을 먼저 매도하고 서울 핵심주택을 남겼다. 양도세 부담이 커지자 매도를 미루는 거래 잠김도 나타났다.

더 큰 문제는 집값이 계속 오른 상태에서 세금까지 증가했다는 점이다.

유권자 입장에서는 다음과 같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시장 안정에는 실패했고 세금 부담만 더 늘었다.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오세훈 후보는 57.50%, 박영선 후보는 **39.18%**를 얻었다. 격차는 18.32%포인트였다.

뉴스핌,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결과

EAI의 2022년 대선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31.1%**가 가장 중요한 선거 이슈로 부동산 정책 실패를 선택했다. 1·2순위를 합치면 **38.9%**였다.

윤석열 후보 투표자의 **48.5%**가 부동산 정책 실패를 주요 이슈로 선택한 반면, 이재명 후보 투표자에서는 **13.0%**였다.

EAI, 2022년 대통령선거와 부동산 이슈 분석

결국 2022년 대선은 윤석열 48.56%, 이재명 47.83%, 불과 0.73%포인트 차이로 결정됐다.

연합뉴스, 2022년 대통령선거 득표율

집값 상승과 공급 부족, 대출규제, 종부세와 양도세가 하나의 ‘부동산 정책 실패’로 묶여 정권교체에 영향을 준 것이다.


세금 강화가 반드시 선거 패배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반례도 있다.

노태우 정부는 1989년 토지초과이득세·택지소유상한제·개발이익환수제를 도입했다. 상당히 강한 토지 규제였지만 여권은 1992년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했다.

당시에는 토지공개념과 함께 수도권 200만호 주택공급과 신도시 건설이 추진됐다.

세금으로 개발이익을 환수하는 동시에 실제 공급도 늘렸기 때문에, 과세가 단순한 징벌보다 시장안정 정책으로 받아들여질 여지가 있었다.

결국 선거를 결정하는 것은 세율 자체가 아니다.

세금을 높인 뒤 집값과 주거비가 실제로 안정됐는가.

이 질문에 대한 유권자의 답이 중요하다.

후문에 따르면,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김종인 경제수석비서관에게 해당 세금 정책을 되돌릴 수 없겠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이에 김종인 전 수석은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이 나오기 전까지는 되돌릴 방법이 없다”고 답했다고 전해진다.

김종인 전 수석은 대통령에게 경제처럼 충분한 이해와 확신이 없는 분야에서는 언행을 신중히 해야 한다고 자주 조언했다고 한다. 특히 자본시장은 정책과 발언에 빠르게 반응하는 만큼, 관련 정책을 다루거나 입장을 밝힐 때 더욱 신중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시쳇말로, 잘 모르는 사안을 국민 앞에서 아는 척하며 단정적으로 말하지 말라는 조언이었다고 한다.

노태우 정부에서 부동산 증세와 정권유지가 동시에 이례적으로 양립할 수 있었던 여러 요인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유능한 관료의 존재의 여부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세제 방향


2026년 9월 확정된 정부안은 실거주 1주택자를 보호하고 초고가·비거주·다주택자의 부담을 높이는 구조다.

재정경제부, 2026년 세제개편안

KDI 경제교육·정보센터, 2026년 세제개편안 정부안 확정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실거주 1주택 종부세 기본공제: 12억원 → 14억원

  • 시가 40억~50억원 이상 초고가주택의 세 부담 가중화

  • 종부세 세액공제 한도 도입

  • 장기보유특별공제를 보유기간보다 거주기간 중심으로 개편

  • 양도세 장기보유특별공제 한도: 2028년 20억원, 2029년 10억원

  • 3주택 이상 등의 공정시장가액비율: 현행 60%에서 최종 80%

  •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는 2027~2028년 완화한 뒤 2029년 본래 수준 복귀


다주택자의 양도세 추가세율도 단계적으로 올라간다.


정부가 보유세를 강화하면서도 일정 기간 낮은 양도세율을 적용하는 것은 과거의 거래 잠김을 의식한 설계다.

그러나 매도기회가 끝나는 2029년 이후에는 보유세와 양도세가 함께 높아질 수 있다. 2027~2028년에 충분한 매물이 나오지 않는다면 이후 거래량이 다시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 

*실 사례 예시)

가정: 2025년 시가 11억원·공시가격 7.7억원, 취득가격 6억원인 단독명의 실거주 1주택. 블로그 349번의 중앙 가격 전망을 적용.




현재는 세금과 전월세난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지금의 정책이 과거보다 정치적으로 위험한 이유는 서울 임대시장 상황이 이미 좋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 전세매물은 감소하고 있으며, 전세를 구하지 못한 수요는 월세나 수도권 외곽으로 밀려나고 있다.


다주택자는 투기수요인 동시에 임대주택 공급자다.

세금으로 임대수익률이 낮아지면 일부 다주택자는 주택을 처분하거나 전세를 월세로 전환할 수 있다. 공급이 부족한 시장에서는 보유세와 금융비용의 일부가 전월세로 이전될 가능성도 커진다.

이에 따라 다음과 같은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

다주택 과세 강화
→ 임대수익률 하락
→ 임대주택 감소 또는 월세 전환
→ 전세 품귀
→ 월세 상승
→ 가계 가처분소득 감소

세금의 직접적인 대상은 집주인이지만, 최종적인 부담은 세입자와 소비시장까지 확산될 수 있다.


2028년 총선이 첫 번째 심판대다


2028년은 국회의원 총선이 있는 해이다.
특별한 헌정 변화가 없다면 다음 정기 대통령선거는 2030년이다.

문제는 부동산 세제의 실제 부담이 2028년 전후로 집중된다는 점이다.

  • 종부세 개편의 고지서 반영

  • 양도세 장기보유특별공제 한도 도입

  • 다주택자 양도세 추가세율 인상

  • 서울 재건축·재개발 이주물량 급증

  • 전세 부족과 월세 상승 누적

2028년에는 서울 정비사업 이주 예정 물량도 약 4.5만 가구로 급증할 가능성이 있다.

부동산 세금이 오르는 시점과 전월세 수급이 가장 불안해지는 시점이 겹치는 것이다.


가장 위험한 것은 서로 다른 불만이 하나로 합쳐지는 것이다



집주인은 세금 때문에 불만이고,
세입자는 주거비 때문에 불만이며,
무주택자는 집을 살 수 없어서 불만이다.

이 세 집단이 서로 다른 이유로 같은 정책에 반대하면 부동산 문제는 강력한 정권심판론으로 발전할 수 있다.

특히 서울과 수도권의 40~50대는 민주당의 중요한 지지기반이면서 동시에 주택 보유 비중이 높은 세대다. 이들의 자산가격은 올랐지만 대출·교육비·생활비 부담도 크다.

정부가 초고가주택에 대한 과세라고 설명하더라도,
이들은 자신을 미래의 잠재적 과세대상으로 인식할 수 있다.


결론: 부동산 세제는 다시 선거를 결정할 수 있다


양도소득세는 1967년 부동산투기억제세에서 시작해 집값이 오르면 강화되고 시장이 침체되면 완화되는 과정을 반복했다.

그러나 과거의 경험은 세금을 높인다고 반드시 매물이 늘고 가격이 안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보유세와 양도세가 함께 높아지면 거래가 잠길 수 있다.
다주택자가 감소하면 자가주택은 늘어날 수 있지만 임대주택은 줄어들 수 있다.
공급이 부족하면 집주인의 비용 일부가 전세와 월세로 이동할 수 있다.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 시기의 선거도 같은 교훈을 남겼다.

집값은 오르고
전월세는 부족하며
세금까지 증가하면
부동산은 정권교체의 문제가 된다.

현재 이재명 정부의 세제는 실거주 1주택자를 보호하고 다주택자에게 매도기간을 준다는 점에서 과거보다 정교하다.

그러나 정책의 실제 성패는 설계가 아니라 결과로 평가된다.

2028년까지 집값과 전월세가 안정된다면 과세 강화에 대한 반발은 관리할 수 있다.
반대로 주거비가 계속 오르는 가운데 세금고지서까지 커진다면 부동산정책은 총선의 핵심 심판 사유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 결과 수도권에서 여권의 정치적 기반이 흔들린다면,
충격은 2028년 총선, 2030년 대통령선거까지 이어질 수 있다.

지금의 부동산정책이 차기 선거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은 더 이상 먼 가설로 보기 어렵다.

(*지금 이 기조로 가면 심화되면 심화됐지 안정화될리가 없음..)

차기 선거의 승패는 부동산 가격과 양도소득세 정책의 향방에 크게 좌우될 가능성이 있다.
과거 정권교체 전후의 양도소득세 변화와 집값 흐름을 함께 살펴보면,
2027년 하반기에는 부동산 상승 국면의 초입에 진입할 기회가 다시 찾아올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끝

생각정리 388 (* The Cost of Equality, Brazil, Korea Politics)

최근 남미 전역에서 빠르게 확산되는 우경화 흐름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그 변화가 이제 브라질까지 다가와 우파 진영의 재집권 가능성이 커지는 모습을 보며, 좌경화된 경제정책이 한 사회에 남긴 결과와 그 배경에 대한 생각을 정리 기록 해본다.


https://www.instagram.com/p/DX9RjceilFA/


플라비오 보우소나루는 여론조사 예상을 뛰어넘는 승리를 거두며 브라질 우파의 약진을 이끌었고, 이로써 10월 25일 룰라와의 결선 투표가 성사.


경제는 기계가 아니다


룰라의 브라질을 통해 바라본 이재명 정부의 좌경화 경제정책


이전에 브라질 헤알화와 원화를 비교하면서 룰라 정부와 한국 민주당 정부의 경제정책이 상당히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BRL떡상을 통해 바라본 내년 KRW 전망. (feat, 차기 K-민주당 정부)

당시에는 재정지출 확대, 현금성 지원, 최저임금 인상, 정책금융과 정부 주도 산업정책이 물가와 금리, 정부부채와 통화가치에 어떤 압력을 가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이번 글에서는 한 걸음 더 들어가 보고 싶다.

왜 평등과 민생, 상생을 강조하는 정책이 오히려 한 나라의 경제적 생명력을 약화시키는 경우가 생기는가.

복지정책이나 노동자 보호, 지역균형발전 자체가 경제를 망치는 것은 아니다. 브라질의 저소득층 현금지원제도인 보우사 파밀리아는 실제로 빈곤을 낮췄다. 브라질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부터 2024년 사이 빈곤율은 **27.3%에서 23.1%**로 하락했고, 약 860만 명이 빈곤선 위로 올라왔다. 사회보장 급여가 없었다면 2024년 극빈율은 실제 **3.5%**가 아니라 **10.0%**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됐다.

자료: IBGE, 8.6 million persons got out of poverty between 2023 and 2024 · World Bank, Bolsa Família Program

따라서 문제는 정부가 약자를 돕느냐 마느냐가 아니다. 정부가 경제의 결과를 어느 정도까지 직접 결정하려 하느냐가 문제다. 시장에서 나타나는 가격과 임금, 이윤과 손실, 투자수익률이라는 신호를 정부가 정치적으로 불편하다는 이유로 덮기 시작할 때 경제의 적응능력이 떨어진다.

그리고 그 부작용을 또 다른 보조금과 규제로 해결하려 할수록 경제는 점점 경직된다.


그린스펀이 소련에서 본 것


이 문제를 잘 보여주는 것이 앨런 그린스펀의 소련 관련 일화다.

소련의 경제계획 책임자가 그린스펀에게 자신들이 만든 거대한 경제모형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수많은 산업의 생산량과 원료, 노동력, 운송과 배분계획이 하나의 거대한 기계처럼 연결된 모델이었다.

소련 관료가 보기에는 이것이 계획경제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모든 것이 계산되고 있었고, 모든 것이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린스펀은 오히려 그 모델을 보면서 이것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경제는 기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경제는 수억 명의 사람이 매 순간 자신의 필요와 취향, 사정과 위험을 판단하면서 움직이는 생명체에 가깝다. 어제까지 필요했던 상품이 오늘은 필요 없어지고, 예상하지 못한 기술이 새로운 산업을 만들며, 한 지역의 작은 가격 변화가 세계 반대편의 투자판단까지 바꾼다.

거대한 중앙모형이 아무리 정교하더라도 이 모든 정보를 실시간으로 담을 수는 없다.

이 일화의 구체적인 대화와 장면은 공개된 공식 기록에서 확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린스펀이 실제로 소련식 계획경제의 문제를 같은 관점에서 설명했던 것은 분명하다. 그는 시장가격의 변화가 자원을 재배치하는 신호인데, 계획경제는 이 신호를 얻지 못하기 때문에 변화하는 기술과 소비자의 수요에 적응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린스펀의 표현대로 “Dynamic economies are always in a state of evolution.” 역동적인 경제는 항상 진화하는 상태에 있다.

자료: Federal Reserve, The Ascendance of Market Capitalism · FRASER, Alan Greenspan’s 1989 Moscow speech

좌경화된 경제정책의 위험은 공산주의나 완전한 계획경제까지 가야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가격과 임금, 신용과 기업의 투자방향을 정치적 목적에 따라 하나씩 통제하기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같은 문제가 축소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브라질은 그 과정을 관찰하기에 좋은 사례다.


룰라 1·2기의 성공과 그 안에 쌓인 구조적 취약성


룰라의 첫 집권기인 2003년부터 2010년까지 브라질 경제는 상당히 좋은 성과를 냈다. 중국의 고도성장과 원자재 가격 상승이라는 강력한 순풍이 있었고, 농산물과 철광석, 석유 수출이 증가했다. 고용과 임금이 늘었고 보우사 파밀리아를 비롯한 사회정책도 빈곤 감소에 기여했다.

세계은행은 2003~2013년의 원자재 호황과 고용·임금 증가가 브라질의 성장과 사회적 성과를 뒷받침했다고 평가한다. 2003~2012년 빈곤 감소의 약 68%는 경제성장, 나머지 32%는 불평등 완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했다.

자료: World Bank, Brazil Faces the Challenge of Resuming Growth · World Bank, Retaking the Path to Inclusion, Growth and Sustainability

이러한 경제·사회적 성과를 바탕으로 룰라의 후계자였던 노동자당의 지우마 호세프가 2010년 대통령에 당선됐다. 당시 브라질 유권자들은 룰라 정부의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이는 노동자당의 정권 재창출을 뒷받침했다.

자료: Brazil TSE, Elections 2010 · TSE Digital Library, The vote for Dilma Rousseff in the 2010 election

그러나 룰라 시기의 성과가 모두 국가주도 경제모델의 경쟁력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다. 원자재 가격 상승과 중국의 수요 확대라는 외부환경이 재정수입과 수출, 고용을 동시에 끌어올렸기 때문에 정부지출 확대와 정책금융, 국영기업 중심 투자가 가진 비용은 당장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았던것 뿐이였다.

호황기에는 성장의 과실과 정책의 비용을 구분하기 어렵다. 세수가 늘어나는 동안에는 복지와 보조금, 공공투자를 함께 확대할 수 있고 정부부채의 부담도 상대적으로 작아 보인다. 그러나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고 성장률이 둔화되면 호황기에 늘어난 지출과 정책적 의무는 그대로 남는다.

이러한 구조적 취약성은 호세프 정부에서 본격적으로 드러났다.

국제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자 호세프 정부는 성장률을 유지하기 위해 국책은행 대출, 산업별 세금감면, 공공요금 억제, 국영기업 투자와 재정지출 확대를 동원했다. 처음에는 경기부양처럼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가격신호와 투자규율을 훼손했다.





결국 브라질 GDP는 2015년과 2016년 2년 연속 큰 폭으로 감소했고, 실업률은 2014년 **6.8%**에서 2017년 **12.8%**로 상승했다. IMF는 당시 경기침체의 원인으로 원자재 교역조건 악화뿐 아니라 구조적 문제를 미룬 정책 실패, 금융여건 악화, 부패 스캔들과 정치적 불확실성을 함께 지목했다.

자료: World Bank, World Development Indicators – Brazil · IMF, 2016 Article IV Mission · IMF, 2016 Article IV Consultation

브라질의 침체에는 원자재 가격 하락과 정치적 혼란, 부패 문제도 동시에 작용했다. 그러나 외부충격을 흡수했어야 할 경제가 이미 정책금융과 가격통제, 재정의무와 국영기업 중심 투자로 경직돼 있었기 때문에 충격이 훨씬 깊어졌다.

룰라 시대의 핵심 문제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는 것이 아니다. 외부 호황에서 발생한 일시적인 재정여력을 생산성과 민간투자 중심의 성장기반으로 전환하지 못하고, 국가가 배분하는 지출과 신용을 확대하는 데 사용했다는 것이다.


첫 번째 사례: 정부가 투자자를 대신하기 시작할 때


룰라·호세프 경제모델의 중요한 축 가운데 하나가 브라질개발은행 BNDES였다.

논리는 매력적이었다. 민간 금융시장은 장기투자를 꺼리므로 국가가 값싼 자금을 공급하고, 정부가 전략산업과 유망기업을 골라 국가대표 기업으로 키운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은행이 관련 연구를 종합한 결과, BNDES의 보조금성 대출은 투자와 고용을 늘리는 효과가 작거나 확인되지 않았고 생산성 향상 효과도 없었다. 자금은 오히려 이미 규모가 크고 수익성이 높은 기업의 금융비용을 낮추는 데 집중되는 경향을 보였다.

자료: World Bank, Understanding the Effects of the TLP Reform in Brazil · World Bank, Efficient Financial Allocation and Productivity Growth in Brazil · World Bank, Brazil Public Expenditure Review


정책금융의 가장 큰 문제는 돈이 투입된다는 사실이 아니다. 누가 그 돈을 받을지를 시장의 수익성보다 정부와 정책금융기관이 결정하고, 실패했을 때 누가 손실을 책임지는지가 불분명하다는 데 있다.

민간투자자는 판단을 잘못하면 자기 돈을 잃는다. 그러나 정책금융의 실패는 수년 뒤 정부부채나 공기업 손실로 나타난다. 성공하면 정치인의 업적이 되고, 실패하면 납세자가 부담한다.

현재 이재명 정부도 100조 원 이상의 국민성장펀드를 조성해 AI와 첨단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생산적 금융’을 국정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자료: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이재명 정부 123대 국정과제

AI와 전력망, 연구개발 투자는 분명 필요하다. 그러나 브라질 사례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무엇을 기준으로 기업과 산업을 선정할 것인가.
민간자본은 왜 그 사업에 충분히 투자하지 않았는가.
투자 실패를 인정하고 자금을 회수할 장치가 있는가.
정치적으로 가까운 기업과 지역이 자금을 가져가는 것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생산적 금융은 생산성을 높이는 금융이 아니라 정부가 선택한 기업의 자본비용을 낮춰주는 한국판 BNDES가 될 수 있다.

생각정리 265 (* 국민성장펀드)

(*잘 될리가 없지. 금융 시중에 안팔리는 상품 한 대 모아놓은 짬처리 수준..) 


두 번째 사례: 가격을 억누르면 비용이 사라지는가


브라질 정부는 물가상승을 억제하고 서민 부담을 줄인다는 명분으로 페트로브라스의 연료가격을 국제가격보다 낮게 유지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당장 기름값이 낮아졌다. 그러나 원유를 국제가격으로 수입해 국내에서 싸게 팔면 그 차액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소비자가 지금 지불하지 않은 비용이 페트로브라스의 손실과 부채로 이동했을 뿐이다.

브라질 연방회계법원은 2010~2015년 페트로브라스의 재무지표가 급격히 악화된 원인으로 시장가격보다 낮은 연료 판매, 수입 포기와 부실하게 계획·집행된 투자를 지목했다. 2010~2014년 국내 연료가격 억제에 따른 수입 손실은 약 1,500억 헤알로 추산됐고, 2014년 9월 순차입금/EBITDA는 회사가 설정한 상한 2.5배의 약 두 배인 4.79배까지 상승했다. 정유시설 관련 비경제적 의사결정으로 2014~2016년 재무제표에 반영된 손실은 약 430억 헤알에 달했다.

자료: Brazil TCU, Petrobras financial sustainability and governance · Brazil TCU, Fuel-pricing audit · Brazil TCU, Refinery-management losses


가격통제는 비용을 제거하지 않는다. 비용이 보이지 않는 장소로 옮겨질 뿐이다.

전기요금이나 교통요금을 인위적으로 낮추면 소비자가 내지 않은 비용은 공기업 부채, 세금, 미래의 요금 인상 또는 설비투자 축소로 돌아온다. 시간이 지나면 국민은 낮은 요금과 안정적인 공급을 동시에 요구하게 되고, 정치인은 가격 정상화를 더 어려워한다.

KDI는 한국의 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 제도에 투입된 공적 자금 1원당 사회적 편익을 태양광 1.33원, 풍력 1.18원으로 추정했다. 다만 발전원 확대와 송전망, 예비전력에 필요한 실제 비용을 요금에 반영하지 않으면서 보급 목표만 끌어올린다면 비용은 한전과 제조기업, 미래 소비자 사이로 이동한다.

자료: KDI, 경제적 관점에서 본 국내 재생에너지 보급 요인과 영향 분석 · 한국전력, 재무정보

브라질의 페트로브라스가 보여준 것은 국영기업을 사회정책의 도구로 사용할 때 기업의 손익계산서가 사실상 보이지 않는 국가예산으로 변한다는 점이다.

생각정리 375 (*The Grid Has No Free Lunch, 한국전력)
(정치인들 비용처리 짬통이 되어가는 한국전력)


세 번째 사례: 노동자를 보호할수록 누가 노동시장 밖으로 밀려나는가


최저임금 인상은 가장 직관적인 평등정책이다. 임금이 낮은 노동자의 법정임금을 올리면 그들의 소득도 함께 늘어날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고용감소가 크지 않고 기업 생산성이 이를 감당할 수 있다면 긍정적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러나 기업이 그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경제에서는 다른 조정이 일어난다. 고용을 줄이거나, 자동화를 서두르거나, 가격을 올리거나, 노동자를 비공식 부문으로 이동시킨다.

브라질을 분석한 2024년 IMF 연구논문은 2000년대 최저임금 인상이 공식부문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을 높였지만, 비공식 고용을 늘리고 비공식 부문 내부의 격차를 키울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해당 모형에서는 이러한 경로로 전체 소득불평등이 6.4% 증가한 것으로 추정됐다. 다만 이는 IMF의 공식 정책평가가 아니라 개별 연구자의 워킹페이퍼 결과라는 점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자료: IMF Working Paper, Minimum Wages, Inequality, and the Informal Sector

정책의 의도는 저임금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기업이 제도 적용을 피할 수 있는 비공식 고용을 선택하면, 공식부문 안에 남아 보호받는 사람과 공식부문 밖으로 밀려난 사람 사이의 격차는 오히려 커질 수 있다.

한국에서는 2026년 3월부터 개정 노동조합법 2·3조, 이른바 노란봉투법이 시행됐다. 직접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원청도 하청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하면 사용자로 인정될 수 있고, 노동쟁의 대상도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경영상의 결정 등으로 확대됐다.

자료: 고용노동부, 2026년 3월 10일 개정 노동조합법 시행 · 고용노동부 노동포털, 개정 노동조합법 해석지원

이 제도의 목적은 원청의 실질적 영향력과 교섭책임을 일치시키는 것이다. 실제로 2026년 9월 현대제철과 4개 자회사 노조가 산업안전 의제를 중심으로 원·하청 단체협약을 체결하면서 대화를 통한 분쟁해결 가능성도 확인됐다.

자료: 연합뉴스, 현대제철 원·하청 교섭 타결

그러나 노동정책은 교섭에 참여한 노동자의 처우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한국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2024년 기준 **13.0%**에 불과한 반면, 2025년 8월 비정규직은 856만 8,000명, 전체 임금근로자의 **38.2%**에 달했다. 비정규직의 국민연금 가입률은 37.1%, 건강보험은 53.2%, 고용보험은 **53.7%**였다.

자료: 고용노동부, 2024년 노동조합 조직률 13.0% · 국가데이터처, 2025년 8월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비정규직 사회보험 가입률


노란봉투법이 직접적인 교섭력을 제공하는 대상은 주로 이미 노조를 조직해 원청과 교섭할 수 있는 하청 노동자다. 반면 아직 취업하지 못한 청년, 노조가 없는 영세사업장 근로자, 플랫폼·단시간 노동자와 구직자는 교섭 테이블에 앉을 수 없다.

원청의 사용자 책임과 교섭비용이 확대되면 기업은 여러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다. 하청 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하고 생산성을 높일 수도 있지만, 신규채용을 줄이거나 자동화를 확대하고 외주계약을 축소할 수도 있다. 생산거점을 해외로 옮기거나 협력업체 선정 기준을 강화하면 조정 부담은 교섭력이 가장 약한 노동자와 중소기업으로 이동한다.

노조가 있는 노동자의 교섭력을 강화하는 정책이 모든 노동자의 보호로 자동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보호비용을 기업 내부에서 흡수하지 못하면 신규취업자와 미조직 노동자가 노동시장 밖으로 밀려날 수 있다.

생각정리 383 (* Hyundai’s Slump, Korea’s Warning)
(*노란봉투법, 제조업 일자리 붕괴)


네 번째 사례: 현금지원과 지역화폐는 지역경제를 살리는가


이재명 정부는 2025년 경기부진에 대응해 30조 5,000억 원 규모의 추경안을 편성하고, 약 13조 원 규모의 소비여력을 보강하는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추진했다. 전 국민에게 1인당 15만 원을 기본 지급하고, 저소득층과 인구감소지역에는 더 많은 금액을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자료: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30조 5,000억 원 추경·소비쿠폰 지원 · 행정안전부, 소비쿠폰 누적 지급액

단기적으로 보면 효과는 분명하다. 사용기한이 있는 쿠폰이 지급되면 소비가 앞당겨지고, 사용처로 지정된 소상공인의 매출이 늘어난다. 경기침체기에 소득이 급격히 감소한 가구를 지원하는 효과도 있다.

하지만 확인해야 할 것은 세 가지다.

첫째, 쿠폰으로 발생한 소비 가운데 정부지원이 없었어도 일어났을 소비가 얼마나 되는가.
둘째, 특정 지역과 업종의 매출 증가가 인접 지역과 다른 업종의 매출 감소를 대체한 것은 아닌가.
셋째, 일회성 소비가 끝난 뒤 생산능력과 고용, 민간투자가 얼마나 남았는가.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지역화폐가 여러 경제적 효과를 내는 동시에 이를 상쇄하는 역효과와 대체효과도 발생하며, 발행 과정에서 재정적 손실과 비용이 생긴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중앙정부의 지원도 모든 지역에 상시 적용하기보다 특정 시기와 지역에 한정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자료: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지역화폐의 도입이 지역경제에 미친 영향

브라질에서도 현금지원은 빈곤 완화에 성공했다. 그러나 빈곤정책의 성공과 성장정책의 성공은 같은 것이 아니다. 현금지원은 소득의 바닥을 지켜줄 수 있지만 새로운 기술과 수출기업, 전력망과 생산설비를 자동으로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일시적 경기부양 수단이 상시적 소득정책으로 바뀌면 정부는 매년 더 많은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수혜자는 지원금이 줄어드는 것을 소득 감소로 받아들이고, 한시적으로 시작한 정책은 영구적인 재정의무로 굳어질 가능성이 높다.


다섯 번째 사례: 지출은 늘리기 쉽고 줄이기는 어렵다


이재명 정부가 편성한 2026년 예산안은 약 728조 원으로 2025년 본예산보다 8.1% 증가했다. 다만 이 지출을 모두 소비성 복지로 묶는 것도 정확하지 않다. 연구개발 예산은 35조 3,000억 원으로 19.3% 증가했고, AI와 지역산업, 안전투자도 포함됐다.


자료: 기획재정부·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이재명 정부 첫 2026년 예산안


중요한 것은 재정 규모 하나가 아니라 지출의 구조와 종료 조건이다.

경제의 공급능력을 높이는 연구개발과 인프라 투자인가.
특정 계층과 지역의 현재 소비를 보전하는 이전지출인가.
경기회복 후 자동으로 종료되는가.
이해관계자가 생겨 영구사업으로 남는가.
성과가 없을 때 폐지할 수 있는가.

브라질에서는 연금과 급여, 최저임금 연동지출과 각종 의무지출이 누적되면서 정부가 경기 상황에 맞춰 지출구조를 바꾸기 어려워졌다. 재정이 경직될수록 미래 성장에 필요한 투자보다 법적·정치적으로 줄이기 어려운 지출이 우선된다.


현재 룰라 정부: 단기 성과와 누적되는 구조적 부담


현재 브라질 경제는 성장과 고용지표만 보면 비교적 견조하다.

IMF는 브라질 경제가 2023년 3.2%, 2024년 3.4%, 2025년 2.3% 성장했으며 2026년에도 2.4%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브라질 통계청이 발표한 2026년 2분기 실업률은 **5.4%**로 낮은 수준이다.

반면 2026년 말 물가상승률은 **5.6%**로 중앙은행 목표 **3%**를 크게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IMF는 공공부채를 안정적인 하락 경로에 올려놓고 우선순위 투자를 위한 공간을 확보하려면 더 강한 재정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자료: IMF, Brazil 2026 Article IV Consultation · IMF, Executive Board Concludes 2026 Article IV Consultation · IBGE, Dashboard of Indicators

현재 룰라 정부의 경제에는 성장과 고용, 빈곤 감소라는 성과가 존재한다.
동시에 재정지원과 높은 물가·금리, 생산성 정체와 정책 의존이라는 부담도 남아 있다.

핵심은 지금의 사회적 성과를 유지하기 위해 재정지원과 국가배분에 계속 의존할 경우 미래의 민간투자와 생산성, 재정여력을 희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과 브라질: 같은 정책방향, 다른 출발점


현재 한국과 브라질을 동일한 나라처럼 비교해서는 안 된다.
한국은 제조업과 수출산업의 비중이 훨씬 높고, 행정역량과 금융시장, 대외건전성의 구조도 다르다.
반도체와 조선, 방산, 자동차와 배터리처럼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는 산업기반도 여전히 존재한다.

2026년 한국 경제 역시 붕괴가 아니라 성장 국면에 있다. KDI는 2026년 성장률을 **3.2%**로 전망했다. 다만 성장의 상당 부분이 세계적인 AI 반도체 호황에 기인하고, 건설업과 비반도체 제조업의 고용은 부진하며 청년층을 중심으로 고용여건이 악화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자료: KDI, 경제전망 수정 2026년 8월

현 시점에서 브라질과의 비교는 “현 정권의 정책이 이미 실패했다”는 결론보다도, 브라질에서 확인된 정책들의 전달경로가 한국 정책에서 재현되는지를 점검하는 지표로 비교분석해 보려고 한다. 


이재명-룰라 대통령 정상회담…5개월 만에 상호 방문 성사, 예상시간 훌쩍 넘겨 총 136분 회담

세상 사람사는거 특별한것 없이 비슷한 부류끼리 뭉처사는게 만국 공통인가 싶기도 하고..


좌경화 정책이 지역공동체를 약화시키는 방식


경제가 약해지는 과정은 생각보다 조용하다. 어느 날 갑자기 공장이 모두 멈추고 국가가 파산하는 것이 아니다.

생각정리 218 (* 하인리히의 법칙, 원화약세)

정부가 소비를 보전하고, 기업의 비용을 대신 부담하고, 공기업을 통해 가격을 억제한다. 정책금융으로 선택한 산업에 자금을 공급하고, 고용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계약조정을 어렵게 만들며, 지역을 살리기 위해 중앙정부 이전재원을 확대한다.

각각의 정책은 개별적으로 보면 선의가 있고 합리적인 명분도 있다. 문제는 이 정책들이 누적될 때 개인과 기업, 지방정부의 행동방식 자체가 바뀐다는 것이다.

기업은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보다 정부지원 대상이 되는 사업을 찾는다.
지방정부는 기업과 인재를 유치하기보다 중앙정부 예산을 따오는 데 집중한다.
노동시장은 새로운 사람을 채용하기보다 기존 고용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굳어진다.
공기업은 가격과 수익성을 관리하는 기업이 아니라 정부의 물가·복지정책을 대신 수행하는 기관이 된다.

정치의 유인도 바뀐다. 브라질 연방선거법원 디지털도서관에 수록된 연구에서는 보우사 파밀리아가 2010년 노동자당 후보 호세프의 득표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쳤으며, 그 효과가 당시의 양호한 경제성과보다 컸다고 분석했다.

이것을 곧바로 매표나 부패라고 부를 수는 없다. 유권자가 자신에게 도움이 된 정책을 평가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정상적인 과정이다. 다만 한번 형성된 이전지출과 수혜연합을 축소하기가 정치적으로 얼마나 어려운지는 보여준다.

자료: TSE Digital Library, Bolsa Família and Dilma’s 2010 election

지역공동체도 스스로 기업과 인재를 키우기보다 중앙의 지원사업에 선정되는 것을 생존전략으로 삼을 수 있다. 중앙정부의 배분이 커질수록 지역의 성공 기준은 생산성이나 세수 기반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예산을 확보했는가로 바뀐다.

이것이 좌경화된 국가배분체제가 공동체를 약화시키는 가장 현실적인 방식이다. 국가가 모든 것을 빼앗기 때문이 아니다. 국가가 너무 많은 것을 대신 결정하면서 개인과 기업, 지역이 스스로 판단하고 실패하며 다시 일어설 공간을 줄이기 때문이다.


결론


룰라 정부의 브라질은 단순한 실패사례가 아니다. 빈곤 감소와 고용 확대라는 성공도 있었고, 현재 브라질 경제 역시 당장 붕괴한 상태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중요한 사례다.

사회정책의 단기적 성공이 국가주도 경제모델의 장기적 효율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빈곤을 줄였다는 사실만으로 정책금융이 효율적이었다고 말할 수 없다.
성장률이 높았다는 사실만으로 국가가 선택한 투자가 생산적이었다고 말할 수 없다.
요금을 낮췄다는 사실만으로 에너지비용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법정임금을 올렸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저임금 노동자의 생활이 개선된 것도 아니다.
지역상점의 매출이 늘었다는 사실만으로 국가 전체의 소비와 생산이 증가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경제정책은 의도가 아니라 전체 결과로 평가해야 한다.

이모저모

이 대통령 "부동산투기공화국 탈출은 국가과제‥약속 반드시 지킬 것"
중요한데  할 수 있는것과 중요하지만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구분을 할 필요가.. 
두 관점의 차이를 인지하지 못하는걸지도.. 

글을 마치며


원시사회의 분배 본능과 현대국가의 진화적 불일치


인간의 사회적 본능은 서로의 기여와 행동을 확인할 수 있는 소규모 공동체에서 형성됐다. 구성원들은 사냥과 채집으로 얻은 자원을 나누고 서로를 보호했지만, 그 분배에는 기여와 평판, 상호책임이 함께 작동했다. 공감과 분배는 공동체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진화적 적응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생활환경은 수천만 명이 살아가는 익명사회로 급격히 변한 반면, 우리의 도덕적 직관은 여전히 작은 공동체의 질서에 머물러 있다. 우리는 눈앞의 격차와 고통에는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이를 줄이기 위해 발생하는 장기적 비용과 보이지 않는 기회비용은 쉽게 체감하지 못한다.

문제는 현대경제가 소규모 공동체와 달리 본질적으로 불균등한 성과를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기술과 자본, 위험을 감수한 소수의 기업과 혁신가가 생산성의 큰 도약을 만들고, 그 성과가 다수의 생산과 소비를 통해 사회 전체로 확산된다.

실제로 McKinsey 분석에서는 미국 표본기업의 **5%가 양의 생산성 증가분 가운데 78%**를 만들었고, NBER 연구에서는 설립 5년 이하 기업이 전체 생산성 증가의 거의 절반을 차지했다. 현대경제의 발전은 처음부터 모두가 동일하게 기여하고 동일한 결과를 얻는 구조가 아니다.

자료: McKinsey Global Institute, The Power of One · NBER, Innovative Growth Accounting


바로 이 지점에서 원시사회의 평등 본능과 현대경제의 작동방식이 충돌한다. 소수에게 집중된 성과는 성장과 혁신의 결과일 수 있지만, 인간의 직관에는 불공정한 분배로 보이기 쉽다. 좌경화된 정치는 이러한 감정에 호소해 성과의 차이를 국가배분으로 조정하려 한다.

하지만 국가 단위의 분배에서는 혜택을 받는 사람과 비용을 부담하는 사람이 분리된다. 유권자는 더 많은 지원을, 기업은 보조금과 정책금융을, 지방정부는 중앙예산을 요구하는 것이 각자에게 합리적인 선택이 된다. 반면 그 비용은 세금과 부채, 물가와 공기업 손실로 넓게 분산돼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 결과 사회 전체는 생산보다 배분, 혁신보다 보호, 자립보다 국가의 선택에 점차 의존하게 된다. 경제가 즉시 붕괴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격과 이윤, 손실과 실패가 전달하던 신호는 서서히 흐려지고 새로운 기업과 노동자에게 돌아갈 공간은 줄어든다.

과거 원시사회에서 생존에 유리했던 공감과 분배의 본능이 현대의 불균등한 혁신경제 및 대규모 국가권력과 충돌하면서 진화적 불일치가 발생한다. 좌경화된 국가배분체제가 반복되는 근원과 경제의 생명력이 서서히 약해지는 출발점도 바로 이곳에 있다고 생각한다.

AI가 인간의 오래된 분배 본능과 현대 국가체제를 동시에 흔들기 시작한 지금,
피터틸의 Praxis PJT 사회실험(?)의 귀추가 다시금 주목받고있다고 한다. 

From Praxis to Prospera, Silicon Valley longs to break free

자료: Praxis, The First Digital Nation · Praxis, Uruguay 투자계획 발표 · Praxis, Singularity Politics

기술 자유지상주의자들이 설계한 AI 자율사회는 국가배분체제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을까.
아니면 부와 기술, 규칙을 결정하는 권력까지 소수에게 집중시키며 우리가 우려했던 불균형을 더욱 극단적으로 재현하게 될까.

그 사회가 실제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궁금하다.


=끝

2026년 10월 5일 월요일

생각정리 387 (* The Agent Traffic Multiplier, PCB)

AI Agent는 왜 PCB와 기판 소재까지 당기는가


이번 연휴에는 신생아를 품에 안고 Muse를 사용해봤다. 이틀 만에 무료 토큰 한도의 **80~90%**를 소진했다.

아직 모든 일을 맡겨놓고 신경을 꺼도 되는 수준은 아니다. 그래도 신생아에게 분유를 타고 먹이고, 재우고, 트림을 시키고, 씻기고, 기저귀를 갈아주는 사이에 간간이 진행 상황을 확인하고 방향만 수정해주면 꽤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다.

대표적인 일이 블로그 정리였다. 그동안 글만 쌓아왔을 뿐, 수백 개의 글을 주제별로 분류하거나 디자인을 손보지는 못했다. 비개발자인 내가 구글 블로그를 하나하나 수정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고, 무엇보다 글마다 라벨을 붙이는 일이 귀찮아 계속 미뤄두고 있었다.

Muse에게 맡긴 뒤 중간중간 질문에 답하고 필요한 권한을 허용해주니, 약 5~6시간 만에 그 일을 마쳐놓았다. 내가 화면 앞에 붙어 있던 시간이 아니라, 아이를 돌보는 동안 Agent가 작업을 이어간 시간이었다.

다음 날에는 개인 온라인 쇼핑몰 제작을 시켜봤다. 빠르게 뼈대를 잡았고, 내가 확인한 범위에서는 사업자등록을 남겨둘 정도까지 진행됐다. 이후 이메일과 Telegram 자료, Earnings Model 수치 정리 같은 디지털 노가다를 하나씩 맡기다 보니 무료 토큰도 눈 녹듯 사라졌다.

질문할 때만 쓰던 AI가, 내가 다른 일을 하는 동안에도 일하는 AI로 바뀌니 사용량 자체가 달라졌다.

귀찮거나 시간이 없어 미뤄두었던 일이 모두 새로운 Agent 수요가 되는 셈이다. 개인적인 경험만으로 시장 전체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왜 사용자 한 명의 토큰 소비가 크게 늘어날 수 있는지는 체감했다.

이번 글에서는 이 수요가 GPU에서 끝나지 않고, 메모리와 CPU, 스토리지와 네트워크를 거쳐 PCB와 기판 소재까지 확산되는 과정을 정리해본다.

사용자가 화면을 떠나도 컴퓨팅은 멈추지 않는다


Chatbot은 주로 사용자가 질문할 때 작동한다. Agent는 목표를 전달받으면 계획을 세우고, 자료를 읽고, 도구를 호출하고, 결과를 검증하며 작업을 이어간다.

사용자가 육아를 하거나 다른 일을 하는 동안에도 모델 호출과 데이터 처리는 계속된다. 사람의 접속시간과 AI의 실행시간이 분리되기 시작한 것이다.

B2C 토큰 수요의 확장 구조는 생각정리 376, Muse Agent AI와 Consumer Token Moment, 상태와 기억의 관리는 생각정리 378, The Memory Behind Every Agent로 갈음한다.

이번에 더 주목하는 부분은 그 실행시간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인프라다. Agent가 오래 일할수록 연산뿐 아니라 문맥을 읽고, 기억을 저장하고, 데이터를 옮기는 작업도 누적된다.

기존 Chatbot의 수요가 대체로 사용자 수 × 질문 횟수 × 답변 길이에 가까웠다면, Agent는 여기에 작업 수 × 작업당 실행시간 × 중간 단계 수 × 재시도 횟수가 추가된다. 여러 Agent가 역할을 나눠 일하면 서로의 결과와 상태를 교환하는 과정까지 붙는다.

이를 나는 Agent Traffic Multiplier라고 생각한다.

사용자가 한 번 지시했다고 해서 모델이 한 번만 호출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목표가 여러 번의 읽기·판단·실행·검증으로 분해되며 내부 연산과 데이터 이동을 반복해서 발생시키는 구조다.

Agent의 비용은 답변보다 ‘계속 읽는 과정’에서 커진다


Agent는 매 단계에서 사용자 지시, 기존 계획, 도구 실행 결과, 오류 메시지와 새로 검색한 자료를 참고한다. 작업이 길어질수록 다음 판단에 필요한 문맥도 늘어난다.

물론 Prefix Cache가 있으면 동일한 입력을 매번 처음부터 계산할 필요는 없다. 상태를 유지한다는 이유만으로 전체 문맥을 매번 재계산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새로운 입력의 Prefill, 캐시되지 않은 문맥의 재처리, 기존 KV Cache에 대한 접근은 계속 발생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한 번의 입력 길이가 아니라 전체 작업에 걸쳐 누적되는 Prefill과 메모리 접근량이다.


Prefill은 중요한 병목이지만 유일한 병목은 아니다. 모델 구조와 캐시 적중률, 배치 크기와 실행 방식에 따라 Decode, 메모리 대역폭, CPU 또는 네트워크가 먼저 제한요인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Agent 수요 증가를 곧바로 GPU 수요 증가율로 치환해서는 안 된다. 먼저 어떤 작업이 늘어나는지, 그 작업이 연산·메모리·스토리지·통신 가운데 무엇을 더 많이 사용하는지를 나눠봐야 한다.

토큰 증가가 East-West Traffic으로 바뀌는 구간


사용자가 보내는 질문과 받는 답변은 데이터센터 외부와 내부를 오가는 North-South Traffic이다. 반면 GPU·CPU·스토리지와 서버·Rack 사이에서 오가는 데이터는 East-West Traffic이다.

Agent 시대에는 화면에 보이는 답변을 만들기 위해 내부에서 처리하고 이동시키는 데이터가 많아진다. 특히 다음 세 가지 구조에서 네트워크 부담이 커진다.


다만 토큰이 늘었다고 네트워크 트래픽이 같은 비율로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동일 가속기에서 캐시를 재사용하면 외부 전송은 제한적일 수 있다. 반대로 MoE 모델을 여러 칩에 분산하거나 Prefill과 Decode를 서로 다른 서버에서 처리하면 토큰당 내부 통신량은 커질 수 있다.

결국 네트워킹 수요를 판단하려면 토큰 수와 함께 모델 병렬화 방식, 캐시 배치, Prefill·Decode 분리, Rack 간 작업 분산 정도를 봐야 한다.

관련 지연시간과 추론 구조는 생각정리 363, The Price of Waiting, Astra & Ultra-Low Latency Inference로 갈음한다.

Jensen의 Agentic Inflection은 Rack 설계에 반영되고 있다


Jensen Huang은 2026년 3월 GTC에서 Agentic AI의 변곡점을 강조했다. 같은 행사에서 NVIDIA는 개별 칩과 서버를 넘어 연산·네트워크·스토리지 Rack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Vera Rubin 플랫폼을 제시했다. NVIDIA 공식 발표.

여기서 East-West Traffic은 Jensen의 발언을 해석해 붙인 표현만은 아니다. NVIDIA는 Spectrum-6 SPX가 AI Factory 내부의 East-West Traffic을 가속하도록 설계됐다고 명시했다.

Vera CPU Rack은 Agent의 실행과 검증에 필요한 CPU 기반 환경을 담당한다. BlueField-4 STX는 대규모 KV Cache를 저장하고 불러오는 공유 Context Memory 계층을 제공한다. Spectrum-6 SPX는 Rack과 Rack 사이의 고속 통신을 담당한다.

GPU만 늘리는 것이 아니라 CPU 환경과 문맥 저장소, Rack 간 연결을 함께 확장하는 구조다. NVIDIA가 Rubin 플랫폼을 Vera CPU, Rubin GPU, NVLink 6 Switch, ConnectX-9 SuperNIC, BlueField-4 DPU, Spectrum-6 Ethernet Switch라는 여섯 종류의 칩을 공동 설계한 하나의 시스템으로 설명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NVIDIA

내가 읽는 핵심은 다음과 같다.

AI의 실행 단위가 서버에서 Rack으로, 다시 여러 Rack이 연결된 하나의 시스템으로 커지고 있다.

 



Rack 구조의 상세 내용은 생각정리 177, Nvidia Rubin Ultra Kyber Rack, 데이터센터 간 연결은 생각정리 267, Scale-Across와 Optical Networking으로 갈음한다.

새로운 TPU 아키텍처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이 변화는 NVIDIA만의 설계 방향이 아니다. Google은 2026년 4월 8세대 TPU를 Training용 TPU 8t와 Agent·Reasoning 추론용 TPU 8i로 분리했다. Google Cloud 기술 자료.

TPU 8i는 이전 세대보다 온칩 SRAM을 3배 늘리고, 288GB HBM과 19.2Tb/s ICI를 탑재했다. 여러 칩의 결과를 모으는 Collectives Acceleration Engine을 별도로 두고, 칩 사이 최대 통신 단계를 줄이기 위해 새로운 Boardfly 네트워크 토폴로지를 적용했다.

Google은 네 개의 칩으로 구성된 Building Block, 여덟 개 Board가 연결된 Group, 그리고 Optical Circuit Switch를 통해 여러 Group을 연결하는 Pod 구조를 제시했다. CPU Host도 자체 Arm 기반 Axion으로 바꿨다.

Boardfly는 1,024개 칩 규모에서 최대 통신 단계를 기존 3D Torus의 16단계에서 7단계로 줄인다. Reasoning과 MoE처럼 칩 사이의 All-to-All 통신이 중요한 워크로드에서는 연산량만큼 연결 구조가 중요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중요한 점은 GPU가 TPU로 대체되느냐가 아니다.

Training과 Serving, Prefill과 Decode, Dense와 MoE처럼 워크로드가 분화될수록 각 단계에 최적화된 가속기·CPU Host·Board·Interconnect 구조도 함께 분화된다.

GPU 중심의 단일 아키텍처에서 여러 Custom ASIC과 전용 네트워크가 공존하는 구조로 바뀌면 기판 수요의 범위도 넓어진다.

다만 아키텍처마다 패키지 구조와 Board 배치, 외부 구매 부품이 다르므로 모든 PCB 업체가 동일하게 수혜를 받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고객 인증과 설계 참여, 고속 신호 처리 능력이 더 중요해질 수 있다.

기판 및 기판 소재 수요를 밀어 올리는 핵심 동력


기판 수요를 GPU 출하량 하나로 설명하면 변화의 상당 부분을 놓치게 된다.

이번 사이클에서는 시스템 출하량, Rack당 Board Content, Board 면적, 층수, 소재 등급과 공정시간이 동시에 움직이고 있다.


1. Agent Workload는 사용자당 실행시간을 늘린다


Agent의 첫 번째 효과는 사용자 수가 아니라 사용자당 맡기는 일의 수와 실행시간을 늘리는 것이다.

긴 작업과 반복 검증, 여러 Agent의 협업은 같은 사용자에게서 더 많은 연산과 메모리 접근, 내부 통신을 발생시킨다. 사용자가 화면을 닫아도 Agent가 계속 작업한다면 AI 수요는 더 이상 사람의 접속시간에만 묶이지 않는다.

이 수요가 곧바로 PCB 매출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가속기와 CPU, 스토리지와 네트워크가 더 오래 높은 가동률로 사용되면 추가 Rack 설치의 경제성이 높아지고, 결과적으로 시스템 출하량을 지지한다.

2. Rack당 Board의 종류와 수가 늘어난다


과거에는 AI Server의 핵심을 GPU Board와 CPU Mainboard 중심으로 볼 수 있었다. 이제는 NVLink Switch, Ethernet Switch, NIC·DPU, Context Storage와 보안·관리 장치까지 고속 신호를 처리하는 Board가 늘고 있다.

따라서 PCB 수요는 단순한 GPU 출하량이 아니라 다음과 같이 봐야 한다.

PCB 수요 = Rack 출하량 × Rack당 Board Content × Board당 소재·공정 투입량

가속기의 성능이 높아지더라도 이를 계속 가동시키기 위한 연결·저장·관리 장치가 함께 늘어난다면 Rack당 기판가치는 상승할 수 있다.

3. Board가 커지면 같은 한 장도 더 많은 생산능력을 사용한다


Board 면적이 커지면 한 장에 들어가는 CCL·동박·Glass Cloth의 양이 늘어난다.

동일한 제조 Panel에서 뽑을 수 있는 Board 수가 줄어들 수 있고, 한 부분의 결함이 더 큰 면적의 손실로 이어지기 때문에 수율 관리도 어려워진다.

즉 출하량이 같더라도 Board 대면적화가 진행되면 소재 소비량과 유효 생산능력 소모량은 더 빠르게 증가할 수 있다.

산업을 볼 때 완성된 Board의 장수만 확인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실제 공급 제약은 얼마나 넓은 면적을 얼마나 높은 수율로 생산할 수 있는가에서 발생할 수 있다.

4. 층수가 늘면 소재뿐 아니라 공정시간도 늘어난다


AI Server와 Switch는 더 많은 고속 신호선과 전력·접지층을 필요로 한다.

대역폭이 높아질수록 신호 간 간섭과 손실을 줄여야 하고, 전력밀도가 높아질수록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한 전원층과 접지층도 필요하다.

층수가 늘면 CCL과 Prepreg 투입량만 증가하는 것이 아니다. 적층과 압합, 미세 드릴링, 도금과 검사 공정이 복잡해지고 Cycle Time이 길어진다.

수율이 낮아지면 같은 출하량을 만들기 위해 더 많은 설비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PCB 업체의 실질 생산능력은 단순 면적 CAPA보다 Layer Capacity와 공정시간, 수율을 함께 봐야 한다.

5. TPU와 Custom ASIC은 수요를 없애기보다 구조를 다변화한다


TPU 8i의 Boardfly, NVIDIA Rubin의 NVLink·Spectrum-X처럼 각 가속기는 자신에게 맞는 Scale-Up과 Scale-Out 구조를 발전시키고 있다.

가속기 종류가 늘수록 Package Substrate, Compute Board, Switch Board, CPU Host Board도 아키텍처별로 달라진다.

이는 산업 전체로 보면 설계와 인증의 종류가 늘어난다는 뜻이다. 반면 개별 공급사 입장에서는 특정 GPU Platform에 대한 노출만으로 전체 시장을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기판 산업의 총수요는 넓어질 수 있지만, 실제 이익은 어느 아키텍처에 채택되고 얼마나 오래 공급하느냐에 따라 갈린다.

Custom ASIC이 늘어난다고 해서 모든 범용 부품 수요가 함께 증가하는 것도 아니다. Hyperscaler가 칩과 시스템을 통합 설계하면 일부 Merchant Component는 줄어들 수 있다.

따라서 TPU와 ASIC 확산은 무조건적인 수혜라기보다 기판 수요처의 확대와 공급사별 채택 불확실성이 동시에 커지는 변화에 가깝다.

6. 속도가 빨라질수록 소재의 등급이 올라간다


고속 신호에서는 기판 내부의 유전손실과 동박 표면의 거칠기가 신호 품질에 직접 영향을 준다.

전송속도가 높아질수록 저손실 CCL, 표면이 매끄러운 HVLP 동박, 균일성과 치수안정성이 높은 Glass Cloth의 중요성이 커진다.

특히 800G에서 1.6T Network로 넘어가고 SerDes 속도가 높아지면, 기존 소재로는 신호 손실과 발열을 관리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결국 AI 기판 사이클은 단순한 물량 증가가 아니라 고사양 제품 Mix 상승의 성격을 함께 가진다. 같은 면적의 PCB라도 소재 등급과 공정 난도가 높아지면 가격과 부가가치가 달라질 수 있다.

Rack 하나에 들어가는 기판의 종류와 가치가 늘어난다


위 동력을 Rack 단위로 다시 보면 구조가 더 분명해진다.


여기에 전송속도가 높아지면 신호 손실을 줄이기 위한 저손실 CCL, HVLP 동박과 고사양 Glass Cloth의 중요성도 커진다. 대형 패키지에는 ABF와 저열팽창 소재의 부담이 별도로 증가한다.

ABF 패키지 기판과 서버·Switch PCB는 같은 제품이 아니다. 제조공정과 공급사, 요구되는 기술도 다르다.

다만 AI 시스템 확대가 두 시장의 고사양 소재와 생산능력을 동시에 자극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제품별 구조는 생각정리 206, PCB·MLB·CCL·Glass Fiber와 Nvidia Rubin으로 갈음한다.

출하량보다 생산능력 소모량을 봐야 한다


같은 Board 한 장이라도 면적이 크고 층수가 많으면 더 많은 소재와 공정이 필요하다. 공정시간이 길어지고 수율이 낮아지면 출하량보다 생산능력 부담이 빠르게 증가할 수 있다.

이를 정성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생산능력 부담 ∝ 시스템 출하량 × 시스템당 Board 수 × Board 면적 × 층수·소재집약도 × 공정시간 ÷ 수율


이는 매출 추정 공식이 아니라 공급 제약을 이해하기 위한 틀이다. 층수와 적층·압합·드릴링·검사 난도는 서로 완전히 독립된 변수가 아니므로 실제 계산에서는 중복을 제거해야 한다.

TPCA·ITRI는 2026년 글로벌 CCL 시장을 215억달러, 전년 대비 34.2% 성장으로 전망했다. 대면적·40층 이상·초저손실 AI Server PCB가 수량과 가격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TPCA·ITRI 자료.

같은 자료에 따르면 2025년 ABF 소재에서 Ajinomoto의 점유율은 97.1%, 일본 공급업체의 BT 소재와 저열팽창 Glass Cloth 점유율도 70% 이상이었다. 고사양 소재의 공급처가 집중돼 있다는 의미다.

생각정리 121 (* ABF)

HVLP 동박 생산능력은 2025년 2만3,400톤으로 48.1% 증가했지만 수요도 빠르게 고사양으로 이동하고 있다.

고다층·후판 구조로 미세 드릴링 부담이 커지면서 글로벌 PCB Drill Bit 시장은 2025년 8.6억달러에서 2026년 11.1억달러, 29.1% 성장할 것으로 전망됐다.

대만 PCB 업체들의 2026년 1분기 생산액도 NT$2,456억, 전년 대비 19.6% 증가하며 역대 1분기 최고치를 기록했다.

TPCA는 AI Server 수요가 Package Substrate, 고다층 PCB와 HDI 출하를 끌어올렸고, 고사양 Glass Cloth와 동박의 공급 부족이 가격 상승을 지지한다고 설명했다. 관련 보도.


“고성능 글라스 클로스인 **‘T글라스(T-Glass)’는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수요가 매우 많습니다. 생산설비 역시 풀가동하고 있습니다. …”

T-Glass 증설하라고 몇년부터 고객사들이 울부짖고있는데 왜 자꾸 수요예측이 어려워서  안한다고 하는건지.. 

이 수치들이 Agent만의 효과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AI 수요가 기판의 수량뿐 아니라 면적·층수·제품 구성·소재 등급·가격과 공급 제약을 함께 바꾸고 있다는 근거는 된다.

개인적인 생각


이번 연휴에 체감한 것은 AI가 질문에 더 잘 답한다는 사실보다, 내가 할 시간이 없었던 일을 대신 진행해준다는 효용이었다.

이 효용이 일반 소비자에게 확산되면 AI 사용량은 사람이 화면 앞에 앉아 있는 시간에 덜 묶이게 된다. 사용자 수뿐 아니라 사용자 한 명이 맡기는 일의 수와 실행시간도 늘어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문맥을 읽는 메모리, 실행을 관리하는 CPU, 상태를 저장하는 스토리지, 이들을 연결하는 네트워크가 함께 필요하다.

생각정리 331 (* CY 2Q26 Review.  Memory, Passive Components)

그리고 그 시스템을 실제로 만드는 데에는 패키지 기판과 PCB, CCL과 동박, Glass Cloth가 들어간다.

Agent의 확산은 토큰 수요를 늘리고, 실행 구조의 변화는 토큰 하나를 만들기 위해 연결해야 하는 인프라(*네트워킹)의 범위를 넓힌다.


마지막으로 이처럼 Agent AI가 지식노동의 생산성을 높이고 필요한 인력을 줄여간다면, 소프트웨어·정보산업의 일자리 감소가 남의 이야기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9월 고용지표 : 전 산업 고용 +16.2만 명 vs 정보 산업 -2.3만 명 (유일한 급락):


https://www.bls.gov/opub/ted/2026/payroll-employment-rose-162000-in-august-2026.htm?utm_source=chatgpt.com

금융투자업 종사자로서 AI기능 확산에 따라 업계 내 인력 구조조정 소식을 실로 매일 체감하는 1인..


=끝

2026년 10월 4일 일요일

생각정리 386 (* Toshiba HDD, Storage Hierarchy)

도시바 증설과 관련된 개인적인 견해를 기록해둔다. 

Toshiba’s Expansion Is Not a Storage Glut


도시바가 AI 데이터센터용 HDD 생산능력을 확대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Seagate와 Western Digital 주가는 약 10% 하락했다.

시장은 이를 HDD 공급 부족의 종료, 더 나아가 NAND와 SSD를 포함한 저장장치 전체의 공급과잉 신호로 해석했다.

그러나 나는 반대로 생각한다.

도시바의 증설은 저장 수요가 둔화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라, 선두업체의 공급만으로는 AI가 만들어내는 저장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워졌다는 증거에 가깝다.


도시바의 증설계획


도시바는 필리핀 Laguna Technopark의 기존 PC용 HDD 라인을 니어라인 HDD용으로 전환하고 새 라인에서 첫 제품을 출하했다.

목표는 2027회계연도까지 기억용량 기준 생산능력을 2025년 대비 약 두 배로 확대하는 것이다. 보도된 투자액은 약 600억 엔, 3억8,000만 달러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생산대수가 아니라 기억용량, 즉 EB Capacity 기준이라는 것이다.

도시바는 현재의 24TB CMR·28TB SMR에서 30TB급 MAMR과 40TB급 12-platter 제품으로 이동하고 있다. 동일한 수의 HDD를 생산하더라도 평균용량이 24TB에서 40TB로 높아지면 EB 생산능력은 약 67% 증가한다.

따라서 이번 계획의 핵심은 물리적인 HDD 생산대수를 두 배로 늘리는 것이 아니라, 기존 라인을 전환하고 제품당 용량을 높여 전체 EB 출하량을 두 배로 만드는 것이다.

출처: 도시바 필리핀 신라인 첫 출하 및 FY2027 생산능력 목표



2022년 증설계획과 무엇이 다른가


도시바는 2022년에도 2025년 니어라인 HDD 생산능력을 2020년 대비 약 두 배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같은 해 하반기부터 클라우드 고객의 재고조정과 데이터센터 투자 둔화가 시작됐다. 도시바는 필리핀 공장 인력의 16%인 약 1,500명을 감축했고, 증산 및 교체설비의 투자 시점을 재검토했다.

2022회계연도 상반기 HDD 등 사업은 매출이 전년 대비 27% 감소했고, 135억 엔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따라서 2022년 계획을 공식적으로 ‘취소했다’고 표현하기보다는 전방 수요 악화로 계획이 사실상 보류됐고,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Seagate는 2028년 니어라인 EB의 대부분이 이미 배정됐으며 고객과 2029년 이후 물량을 협의하고 있다. Western Digital도 향후 3~5년 EB 수요가 연평균 25%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도시바의 새 라인도 이미 첫 출하를 마쳤다. 단순한 계획 발표가 아니라 일부 설비투자와 생산인증이 완료됐다는 의미다.

2022년에는 공급계획이 실제 수요를 앞서갔지만, 이번에는 장기계약과 고객의 물량 배정이 공급을 앞서가고 있다.


출처: Toshiba Group IR Day 2022, 2022년 수요 악화와 투자 재검토


도시바는 Seagate·Western Digital과 경쟁할 수 있는가


도시바는 HDD 설계와 조립에서 50년 이상의 경험을 보유하고 있으며, 상위 10개 CSP 가운데 8개사에 공급한 이력이 있다.

동일한 3.5인치 폼팩터에 12장의 얇은 glass platter를 넣는 기술도 도시바가 가진 분명한 경쟁력이다.

그러나 핵심부품과 기록기술에서는 선두업체와 격차가 존재한다.

Seagate와 Western Digital은 헤드와 미디어를 상당 부분 직접 개발·생산하는 수직통합 구조다. 반면 도시바는 Resonac의 미디어와 TDK의 헤드를 사용하는 수평분업 구조다.

도시바의 31TB급 HDD 시연도 Resonac 및 TDK와의 공동개발을 통해 이뤄졌다.

수평분업은 도시바의 직접 CAPEX 부담을 낮춰준다. 하지만 실제 증산 속도가 외부업체의 glass substrate·미디어·헤드 공급능력에도 좌우된다는 약점이 있다.

도시바가 조립라인을 증설하더라도 핵심부품 공급업체가 함께 증설하지 않으면 EB 생산능력은 목표만큼 증가하지 않는다.

제품경쟁력에서도 Seagate가 앞서 있다.

Seagate는 HAMR 기반 Mozaic 제품을 이미 양산하고 있으며, 2026년 7월 기준 HAMR가 니어라인 EB 출하의 약 40%를 차지했다. 반면 도시바의 현재 주력제품은 24TB CMR·28TB SMR이고, 40TB급 MAMR 제품의 출시 목표가 2027년이다.

도시바는 platter 수를 12장까지 늘려 용량 격차를 줄이고 있지만, Seagate는 약 10장의 platter에서 장당 기록밀도를 더 높이는 방향으로 앞서가고 있다.


Seagate의 FY2026 연간 gross margin은 45.6%, 4분기는 52.3%였다. Western Digital은 각각 48.9%, 54.1%였다. 도시바는 HDD 단독 gross margin을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직접적인 수치 비교는 어렵다.

다만 도시바는 핵심부품을 외부에서 구매하고 있고 제품 세대도 뒤처져 있다. 현재 도시바가 선두업체와 같은 단위당 원가와 마진을 확보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적은 CAPEX로 EB를 두 배 늘릴 수 있는 이유


도시바는 3억8,000만 달러를 투자해 EB Capacity를 두 배로 확대할 계획이다. 반면 Seagate와 Western Digital의 FY2027 합산 CAPEX 예상치는 약 17억 달러다.

표면적으로는 도시바의 CAPEX당 EB 증가량이 비정상적으로 높아 보인다.

그러나 비교범위가 다르다.

도시바의 투자액은 필리핀 조립라인 전환과 자동화에 대한 직접투자다. 외부 공급업체가 부담하는 glass substrate·미디어·헤드 CAPEX는 포함하지 않는다.

반면 수직통합 업체의 CAPEX에는 헤드와 미디어 생산, 공정 전환, 수율 개선 및 차세대 기록기술 투자가 포함된다.

또한 도시바의 목표는 unit가 아닌 EB 기준이다.

EB Capacity = HDD 생산대수 × HDD당 평균용량

평균용량이 24TB에서 40TB로 상승하고 HDD 생산대수가 20%만 증가해도 EB Capacity는 약 두 배가 된다.

1.20 × 40TB ÷ 24TB = 2.0배

따라서 도시바의 계획은 물리적 생산대수를 두 배로 늘리는 증설이라기보다 평균용량 상승에 의존하는 기술 중심 증설이다.

이는 동시에 계획의 가장 큰 위험이다.

40TB급 제품의 출시와 수율, 외부 부품 공급 및 CSP 인증이 모두 예정대로 진행돼야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어느 하나라도 지연되면 설치된 조립라인과 실제 출하 가능한 EB 사이에 차이가 발생한다.

현재 도시바의 EB 점유율을 약 11%로 놓고 도시바가 생산능력을 두 배로 늘리는 동안 경쟁사도 연 25%씩 성장한다고 가정하면, 도시바 점유율은 약 17%에 그친다.

EB 생산능력을 두 배로 확대하는 것만으로는 도시바가 제시한 30% 점유율을 달성하기 어렵다.

이번 증설은 충분히 실행 가능한 계획이지만, 선두업체의 기술과 시장지위를 단기간에 뒤집을 규모는 아니다.


HDD 수요 25%는 상단이 아니라 현재 보이는 수요다


Seagate와 Western Digital은 중장기 EB 수요가 연평균 25%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25%도 5년이면 시장이 약 3배가 되는 높은 성장률이다. 그러나 이는 현재 고객의 데이터센터 건설계획과 장기계약을 기반으로 한 전망이다.

기업은 아직 수주와 예산으로 확정되지 않은 Recursive Self-Improvement, continuous learning, Agent AI 및 Physical AI의 잠재수요를 공식 가이던스에 모두 반영하지 않는다.

25%는 AI 저장 수요의 장기적인 상단이 아니라, 현재 확인할 수 있는 수요에 가깝다.

앞으로 Agent는 대화 결과만 저장하지 않는다. 입력과 tool call, 중간결과, 실패기록, 사용자의 선호와 주변환경의 상태를 계속 생성한다.

Physical AI는 여기에 영상과 음성, 차량·로봇·공장의 센서 데이터를 추가한다. 생성된 데이터는 일부가 제거되더라도 학습과 감사, 복구 및 continuous learning을 위해 압축·복제돼 누적된다.

저장 수요는 다음과 같은 순환구조를 가진다.

Data Generation → State Retention → Compression·Replication → Training·RAG → New Data Generation

Agent의 실행량이 증가할수록 데이터는 한 번 저장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 학습과 추론의 입력으로 반복 사용된다.


AI가 stateful system으로 진화한다면 HDD EB 수요는 장기적으로 40%+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이는 현재 확정수주가 아니라 기술 발전경로에 기반한 전망이다. 실제 수요는 데이터 압축률과 보존기간, 중복제거 및 재학습 데이터의 가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관련 글: 생각정리 378 (* The Memory Behind Every Agent), 생각정리 335 (* Stateful AI Factory, Memory, MLCC)


HDD 증설과 QLC SSD 수요는 반대 논리가 아니다


도시바의 증설을 NAND와 SSD를 포함한 저장장치 전체의 공급과잉으로 확대해석해서는 안 된다.

HDD와 SSD는 데이터를 저장한다는 점은 같지만, AI 데이터센터에서 담당하는 역할이 다르다.

이 차이를 가장 직관적으로 설명한 자료가 Everpure의 2026 Financial Analyst Meeting에서 공개된 다음 슬라이드다.

Everpure는 지난 10년간 하이퍼스케일 스토리지에서 발생한 변화를 세 가지로 정리했다.

  • AI·ML 확산으로 필요한 Performance per TB는 상승한다.

  • HDD는 용량은 커지지만 전체 IOPS가 비슷해 HDD가 제공하는 Performance per TB는 하락한다.

  • 두 지표의 격차를 채우기 위해 QLC Flash 도입이 증가한다.

Everpure는 공식 글 The Market Has Spoken: QLC’s Hyperscale Moment Has Arrived에서 Google·Microsoft와 CMU가 공동 분석한 하이퍼스케일 운영 데이터를 인용했다.

두 하이퍼스케일러의 43개 실제 workload를 분석한 결과, 최근 5년간 필요한 IOPS per TB는 약 25% 증가했고 전체 workload의 68%가 이전보다 더 높은 성능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반면 HDD 한 대의 IOPS는 크게 증가하지 않아 HDD의 IOPS per TB는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연구 원문: TCO-driven Storage Provisioning for Exascale Data Centers

AI는 저장용량만 더 많이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저장된 데이터에 더 자주 그리고 더 빠르게 접근할 것을 요구한다.

이 때문에 HDD 수요 증가와 QLC SSD 수요 증가는 동시에 발생할 수 있다.


HDD는 낮은 비용으로 cold data를 장기간 저장하는 데 적합하다. 반면 QLC SSD는 Agent가 반복적으로 참조하는 warm data와 대규모 RAG, vector database에 적합하다.

도시바의 HDD 증설은 cold tier의 공급을 늘릴 뿐, AI가 요구하는 low-latency storage의 병목을 해결하지 못한다.

관련 글: 생각정리 189 (* HDD, eSSD), 생각정리 319 (* NAND, eSSD)

Everpure(P) 애널리스트 콜 중


HDD는 왜 용량이 커질수록 상대적으로 느려지는가


HDD를 거대한 도서관이라고 생각해보자.

Platter는 책장이며, actuator와 head는 책을 찾아 기록하는 사서다. 기술이 발전하면 같은 크기의 책장에 더 작은 글씨로 더 많은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다.

문제는 책장이 커져도 사서의 수와 움직이는 속도는 크게 증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장용량은 24TB에서 40TB로 67% 증가하지만, 임의의 위치를 찾아 데이터를 쓰는 횟수는 거의 늘어나지 않는다.

HDD가 random write를 하려면 head가 해당 track으로 이동하고, platter가 회전해 원하는 sector가 head 아래로 올 때까지 기다린 뒤 자기장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이 과정은 모두 물리적인 움직임에 묶여 있다.

예를 들어 180 random IOPS를 내는 24TB HDD는 TB당 7.5 IOPS를 제공한다. 동일한 180 IOPS를 내는 40TB HDD는 TB당 4.5 IOPS밖에 제공하지 못한다.

HDD의 절대속도가 반드시 하락하는 것은 아니지만, 용량이 속도보다 빠르게 증가하기 때문에 Performance per TB는 계속 낮아진다.

SMR은 track을 지붕기와처럼 겹쳐 기록한다. 하나의 track을 수정하려면 인접한 track까지 다시 써야 하므로 random write가 많을수록 write amplification과 tail latency가 커진다.

HAMR와 MAMR도 쓰기속도를 높이는 기술이라기보다, 더 작고 쓰기 어려워진 bit에 데이터를 기록하기 위한 기술이다.

반면 SSD에는 움직이는 platter와 head가 없다. Controller가 여러 NAND channel과 die에 작업을 나누고 병렬로 처리한다.

NAND 적층 수와 die당 용량이 증가하더라도 controller, firmware, cache, channel 수와 package-level parallelism을 함께 개선하면 읽기와 쓰기 성능을 높일 여지가 있다.

생각정리 196 (* NAND Controller) 

HDD는 용량이 증가할수록 성능/TB가 낮아지는 구조지만, SSD는 controller와 software를 통해 용량과 성능을 함께 확장할 수 있다.

QLC의 program latency와 endurance 문제는 남아 있지만, host-based flash management와 wear leveling, garbage collection 및 error correction을 통해 이를 보완할 수 있다.

이것이 HDD와 NAND·SSD가 서로를 완전히 대체하기보다 각기 다른 저장계층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생각정리 378 (* The Memory Behind Every Agent)


결론


도시바의 증설은 HDD 공급규율에 대한 경고이지만, 저장장치 전체의 공급과잉을 의미하지 않는다.

도시바는 수평분업과 평균용량 상승을 활용해 비교적 적은 직접 CAPEX로 EB 생산능력을 확대하려 한다. 그러나 핵심부품 조달과 40TB급 제품의 수율, 고객 인증이 동시에 이뤄져야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기술과 원가, 공급망 통제력에서는 여전히 Seagate와 Western Digital이 앞서 있다.

도시바의 증설 성공 가능성과 선두업체의 구조적 경쟁력 훼손 가능성은 같은 질문이 아니다.

더 큰 변화는 저장장치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다.

AI는 cold data의 저장량을 늘리는 동시에, 저장된 데이터에 더 빠르고 자주 접근할 것을 요구한다. 그 결과 HDD는 저비용 장기보존 계층으로, QLC SSD는 고성능 warm-data 계층으로 분화한다.

(eSSD, HDD시장은 점차 서로 분화될 것)

Agent와 Physical AI는 입력과 결과만이 아니라 수행과정과 환경의 상태를 계속 기록한다. 이 데이터는 압축된 뒤 다시 학습과 추론의 입력으로 사용된다.

(*저장장치 수요(=*지능의 수요)의 폭발적인 증가)

지능의 핵심은 계산능력만이 아니라 과거의 상태를 저장하고, 필요할 때 다시 불러와 다음 행동에 반영하는 능력이다.

AI가 stateless chatbot에서 stateful Agent로 이동할수록 메모리와 저장장치는 계산의 보조재가 아니라 지능을 유지하는 핵심 인프라가 된다.

(*길게 보면 HDD 시장은 점차 메모리 계층 시장에서 따로 분화될 것)

이번 도시바 뉴스에서 읽어야 할 핵심은 HDD 공급규율에 대한 경고보다는, 

가장 작은 업체까지 다시 CAPEX를 시작해야 할 만큼 AI가 저장해야 할 데이터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지 않을까 한다. 

=끝

2026년 10월 3일 토요일

생각정리 385(* Oil Is Flowing Again, Diesel Is Not)


지난 생각정리 368 (* Crude Is Not Diesel, The Second Oil Shock)와 생각정리 369 (* Diesel, The Last Barrel Standing)에서는 글로벌 에너지시장의 병목이 원유 생산에서 운송과 정제로 이동하고 있다고 정리했다.

당시에는 사우디 동서 송유관 피격과 호르무즈·바브엘만데브의 운송 차질이 겹치면서 2027년까지 높은 유가가 이어질 가능성을 상대적으로 높게 봤다.

그러나 최근 확인된 데이터를 보면 원유 수급은 예상보다 빠르게 정상화되고 있다. 반면 경유를 비롯한 정제제품 시장은 여전히 정유설비와 제품재고 부족의 영향을 받고 있다.

따라서 전망도 수정할 필요가 있다.

원유가격의 고점은 지나고 있을 가능성이 커졌지만, 디젤 부족과 높은 정제마진은 원유보다 늦게 정상화될 수 있다.

두바이유 선물은 이미 100달러 아래로 내려왔다


첨부 자료의 원출처는 CME Group의 Dubai Crude Oil (Platts) Financial Futures다.

화면에 표시된 가격은 현물 두바이유가 아니라 Platts Dubai 가격을 기준으로 현금 결제되는 월별 선물의 직전 정산가격이다. CME 계약명세에 따르면 거래 단위는 1,000배럴이며, 매월 Platts가 평가한 Dubai prompt-month 가격의 산술평균으로 최종 결제된다. www.cmegroup.com


2026년 10월물은 99.94달러, 2027년 1월물은 90.18달러다. 석 달 뒤 가격이 근월물보다 약 9.8% 낮다.

이는 단기 공급위험이 아직 가격에 반영돼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전쟁·운송 프리미엄이 낮아질 것으로 시장이 보고 있다는 의미다. 두바이유가 구조적으로 계속 부족할 것이라는 전망보다 단기 부족 이후 공급이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가 선물곡선에 반영되기 시작했다.

다만 선물곡선은 현재의 기대이지 확정된 예측값은 아니다. 호르무즈나 사우디 수출시설에서 새로운 차질이 발생하면 곡선은 다시 상승할 수 있다.

중동 원유 수출은 예상보다 빠르게 회복됐다


JPMorgan은 2026년 9월 중동 원유 수출량이 하루 약 1,750만 배럴, 전쟁 이전의 **98%**까지 회복한 것으로 추정했다.

사우디는 동서 송유관 차질에도 호르무즈 통항, 오만만 선박 간 환적과 셔틀 탱커를 활용해 수출을 확대했다. Kpler에 따르면 사우디의 호르무즈 경유 원유 수출은 8월 하루 약 90만 배럴에서 9월 360만 배럴 수준으로 증가한 것으로 추정됐다.

https://www.aljazeera.com/news/2026/8/25/iran-oman-discuss-temporary-shipping-lane-through-strait-of-hormuz

관련 기사: Middle East Oil Exports Stage a Remarkable Comeback www.baystreet.ca

전쟁이 끝나지 않더라도 높은 운임과 보험료를 감수하면 원유를 수출할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지정학적 위험은 남아 있지만, 수출경로가 장기간 완전히 차단될 가능성은 이전보다 낮아졌다.

다만 오만만의 선박 간 환적능력은 이미 한계에 접근했고 운송기간과 비용도 증가하고 있다. 수출량 회복을 저비용 물류 정상화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 레버리지를 잃은 이란에게 더 낮은 협상안을 가져오라는 트럼프

G7의 비축분 방출은 단기 부족을 완화한다


G7은 10월 2일 IEA를 통해 원유와 정제제품 1억 배럴을 앞으로 4개월간 방출하기로 합의했다. 첫 20일 동안 경유를 집중적으로 방출하고, G7 국가 사이의 에너지 수출제한도 자제하기로 했다.

공식 원문: G7 Leaders’ Statement on Global Energy Security and Market Stability www.elysee.fr


IEA에 따르면 2026년 2월 이후 관측 가능한 글로벌 석유재고는 5억700만 배럴 감소했다. G7의 1억 배럴 방출은 이 감소분의 약 **20%**에 해당한다. www.iea.org

1억 배럴을 120일로 나누면 하루 약 83만 배럴의 공급 완충 효과가 발생한다. 가격 급등을 진정시키는 데에는 의미가 있지만, 지금까지 감소한 재고를 원상 복구하거나 새로운 생산능력을 만드는 규모는 아니다.

이번 조치는 원유보다 경유시장에 더 직접적이다. 완제품 경유를 바로 공급하면 손상된 정유설비를 거치지 않고 제품 부족을 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27년에는 공급 회복폭이 수요 반등보다 커질 가능성이 높다


EIA는 2026년 글로벌 액체연료 생산량을 하루 1억60만 배럴, 소비량을 1억260만 배럴로 전망한다. 연간으로는 약 200만 배럴/일의 공급부족이다.

그러나 2027년에는 생산량이 1억990만 배럴, 소비량이 1억500만 배럴로 바뀐다. 대부분의 중동 생산이 복귀한다는 가정 아래 하루 약 490만 배럴의 공급잉여가 발생한다. www.eia.gov

IEA도 2026년 글로벌 공급이 하루 570만 배럴 감소한 뒤 2027년에는 중동 생산 재개로 800만 배럴 반등할 것으로 전망한다. 수요 반등 전망은 하루 260만 배럴에 그친다. www.iea.org



개인적인 기준 전망은 EIA·IEA보다 보수적이다. 중동의 생산·물류 복구가 일부 지연되고 OPEC+가 공급잉여를 흡수하기 위해 생산을 줄인다고 가정해 2027년 공급잉여를 하루 200만 배럴로 추정한다.

그럼에도 방향은 같다. 2027년은 공급부족이 지속되는 해라기보다 공급이 수요보다 빠르게 회복되는 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높은 가격은 이미 수요를 줄이고 있다


IEA는 2026년 세계 석유수요가 전년보다 하루 250만 배럴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높은 원유가격과 기록적인 경유가격이 운송·석유화학·산업수요를 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감소분은 중간유분과 아시아 석유화학 원료에 집중됐다. 2027년 수요가 하루 260만 배럴 회복되더라도 2025년 수준을 소폭 웃도는 데 그친다. www.iea.org

높은 가격은 공급을 늘리는 동시에 소비를 줄인다. 특히 이번 충격은 원유보다 경유와 항공유의 상승폭이 더 컸기 때문에 실물경제의 수요파괴도 빠르게 나타날 수 있다.

비OPEC 공급도 계속 증가한다


중동 생산이 회복되는 동안 가이아나와 브라질에서도 신규 공급이 추가된다.

ExxonMobil은 가이아나 Uaru 프로젝트를 2026년, Whiptail 프로젝트를 2027년에 가동할 계획이다. 기존 승인 프로젝트를 합치면 가이아나 생산능력은 약 130만 배럴/일까지 확대될 수 있다. corporate.exxonmobil.com

Petrobras도 2028년 원유 생산 목표를 하루 270만 배럴로 제시했다. 기존 유전의 자연감소를 감안해야 하지만, 중동 밖의 공급증가가 OPEC+의 가격 방어 부담을 키우는 방향은 분명하다. agencia.petrobras.com.br

결국 2027년 이후 유가는 물리적 생산능력 부족보다 OPEC+가 공급잉여를 얼마나 흡수하느냐에 더 민감해질 가능성이 높다.

2026~2028년 글로벌 원유 수급 전망


최근 중동 수출 회복과 G7 비축분 방출을 반영해 기존 전망을 하향 조정한다.



2026년은 이미 발생한 생산 차질 때문에 연간 공급부족이 남는다. 그러나 최근 수출 회복을 반영하면 4분기 수급은 부족과 균형 사이로 빠르게 개선될 가능성이 높다.

2027년에는 중동 생산 복귀와 비OPEC 증산이 수요 반등을 웃돌면서 재고가 다시 쌓이기 시작한다. 2028년에는 구조적인 공급부족보다 OPEC+의 생산조절이 유가의 핵심 변수가 된다.

2026~2028년 유가 전망





지난 글에서는 2027년 Brent 평균을 85~100달러로 전망했다. 이번에는 이를 75~90달러, 중심값 82달러로 낮춘다.

중동 원유 수출이 예상보다 빠르게 회복됐고, 비축분 방출이 단기 부족을 완화하며, 2027년 공급 회복이 수요 증가를 웃돌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회복되고 있는 중동 원유수출
Kpler


2028년 75달러 전망은 원유가 부족해서 유지되는 가격이 아니다. 공급잉여가 확대될 때 OPEC+가 일부 물량을 시장에서 제거한다는 조건이 포함돼 있다.

원유가격이 내려가도 디젤 부족은 바로 끝나지 않는다


2026년 8월 걸프와 러시아의 경유·가스오일 순수출은 전쟁 이전보다 하루 160만 배럴 감소했다. 두 지역은 전쟁 전 세계 해상 경유교역의 약 **45%**를 담당했다.

중동 원유 수출은 전쟁 이전의 98%까지 회복했지만 경유가격은 미국과 유럽에서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원유의 이동은 회복됐지만 정유와 제품수출 병목은 남아 있다는 증거다.

EIA도 미국 증류유 재고가 2026년 9월 1억 배럴 아래로 내려가고, 2027년 대부분 기간에 최근 5년의 낮은 범위를 밑돌 것으로 전망한다. 러시아 정유시설 가동중단의 영향도 2027년 상반기까지 이어질 것으로 본다. www.eia.gov


2027년에는 원유가격 하락과 높은 경유 크랙이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 원유 생산과 수송은 비교적 빠르게 회복되지만 손상된 수첨분해·탈황설비를 복구하고 낮아진 제품재고를 다시 쌓는 데에는 더 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G7의 경유 방출과 중국·인도의 제품수출 재개가 함께 나타나면 경유 부족도 예상보다 빠르게 끝날 수 있다. 현재의 높은 정제마진을 2028년 이후의 정상 이익으로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원유의 문제와 디젤의 문제를 분리해서 봐야 한다


최근 데이터가 보여주는 변화는 분명하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지만 원유는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중동 원유 수출은 전쟁 이전 수준에 가까워졌고, G7은 비축분을 추가로 공급하며, 2027년에는 중동과 비OPEC 생산이 함께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CME의 두바이유 선물도 이러한 공급 정상화를 반영해 2027년 1월물 가격을 약 90달러로 평가하고 있다.

반면 디젤은 정유설비 복구와 제품재고, 각국의 수출정책에 영향을 받는다. 원유가 충분해져도 필요한 지역에서 필요한 제품으로 전환되지 못하면 경유 부족은 남는다.

원유는 먼저 정상화되고, 디젤은 뒤늦게 정상화될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 확인해야 할 것은 유가 하나가 아니다. 중동의 실제 생산량과 원유 수출, 걸프·러시아의 경유 순수출, 글로벌 제품재고, G7 비축분 방출 이행, OPEC+의 감산 여부를 함께 봐야 한다.

원유가 다시 흐르는 속도와 그 원유가 디젤로 전환돼 필요한 지역에 도착하는 속도 사이의 차이가 남은 사이클의 길이를 결정할 것이다.


미국 쿠싱재고 증가

트럼프 대통령은 8월 19일 이란 정권에 대한 전례 없는 대규모 "경제적 D-데이" 작전을 발표
수십 척의 이란 선박이 표류하는 가운데, 미국은 이들을 지원하는 국가나 기업에 제재를 가하겠다고 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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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 공급병목은 곧 풀릴 예정..
승기는 이란에서 미국(*트럼프)로 넘어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