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평소에 과학 유튜브 채널 보다BODA를 즐겨보는데,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보고 든 생각을 글로 기록해본다.
과학자들이 보는 신의 존재
과학과 종교, 그리고 투자에서의 ‘신’
설명이 멈추는 순간에 대해
최근 과학과 종교에 관한 대화를 듣다가, 문득 투자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겉으로는 전혀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둘 다 결국 설명이 어디까지 가능한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과학에서는 어떤 현상이 생기면 원인을 묻는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 원인은 또 무엇인지, 그렇게 질문을 계속 이어간다.
그런데 그 질문을 끝까지 밀고 가면 언젠가는 지금 우리가 더 이상 설명하지 못하는 지점에 닿게 된다.
누군가는 그 자리에서 “아직 모른다”고 멈춘다.
누군가는 그 자리에 ‘신’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이때의 신은 종교 교리 속 인격적인 존재라기보다,
설명이 더는 진행되지 않는 마지막 자리를 가리키는 말에 가깝다.
이 대목이 내게는 투자와 꽤 닮아 보였다.
투자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특히 코스닥에 상장된 초기 바이오 기업이나, 아직 실적은 거의 없고 기술과 전망을 중심으로 자신을 설명하는 초기 기술 기업들의 IR을 듣다 보면 이런 생각이 더 자주 든다.
회사가 “우리는 독보적인 기술을 갖고 있다”, “앞으로 시장을 바꿀 수 있다”, “장기적으로 큰 성장이 가능하다”고 말하면, 투자자는 자연스럽게 몇 가지를 묻게 된다.
왜 당신들만 가능한가.
경쟁사는 왜 못 하는가.
그 기술은 어디까지 검증됐는가.
상용화는 언제 가능한가.
매출은 어떤 경로로 발생하는가.
이런 질문은 당연하다.
초기 기업일수록 지금보다 미래를 보고 투자해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설명은 더 정교해야 한다.
실적이 부족한 만큼, 그 빈자리를 구체적인 설명이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간단한 예시로 보면 더 분명해진다
예를 들어 어떤 바이오 회사가 IR에서 이렇게 말한다고 해보자.
“당사의 플랫폼은 차세대 항암 치료의 판도를 바꿀 수 있습니다.”
이 말만 놓고 보면 그럴듯하다.
하지만 투자자는 여기서 바로 다음 질문을 해야 한다.
그 플랫폼은 정확히 무엇인지, 지금 어느 단계까지 왔는지, 동물실험이나 임상 데이터는 어디까지 확보했는지, 경쟁 기술과 비교해 어떤 우위가 있는지, 실제 상업화까지는 얼마나 시간이 더 필요한지를 물어야 한다.
좋은 회사라면 질문이 깊어질수록 답도 더 구체적이 된다.
반대로 그렇지 않은 회사는 어느 순간부터 설명보다 분위기가 앞서기 시작한다.
기술 설명은 줄어들고, 시장의 크기나 경영진의 경력, 장기 비전 같은 이야기만 반복된다.
그 순간부터 투자자는 회사를 분석하는 사람이라기보다,
회사를 믿을 수 있는지 시험받는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좋은 회사는 질문을 견디고, 그렇지 않은 회사는 믿음을 원한다
내가 느끼기에 좋은 회사는 질문을 받을수록 더 선명해진다.
기술의 구조, 개발 일정, 인허가 절차, 고객 검증, 생산 계획, 자금 사용 계획까지 설명이 점점 더 현실에 닿는다.
질문이 들어올수록 사업이 더 잘 보인다.
반면 경계해야 할 회사는 질문을 받을수록 오히려 더 추상적으로 말한다.
처음에는 기술을 이야기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비전과 철학을 말하고,
마지막에는 “우리를 믿어달라”는 분위기만 남는다.
혹은 “우리 팀이 업계 최고다”, “글로벌 네트워크가 있다”,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는 식으로 핵심 답변을 피해간다.
물론 초기 기업은 원래 불확실성이 크다.
그래서 모든 것을 숫자로 완벽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불확실하다는 것과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은 다르다.
불확실한 기업은 아직 모르는 부분을 솔직하게 말한다.
그리고 무엇을 알고 있고, 무엇을 아직 모르며, 그 사이를 어떻게 메워갈 것인지 이야기한다.
설명하지 못하는 기업은 그 빈자리를 기대감으로 덮으려 한다.
특히 조심해서 보게 되는 레드플래그
이런 회사들을 보다 보면 몇 가지 공통된 신호가 눈에 들어온다.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것은, 과거에 했던 말이 왜 지연됐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는 점이다.
작년에는 내년 상반기 기술수출 가능성을 이야기했는데,
올해는 그 일이 왜 늦어졌는지 설명하지 않은 채 더 큰 계약 이야기를 꺼내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중요한 것은 새로 제시하는 더 화려한 전망이 아니라,
이전 전망이 왜 틀어졌는지에 대한 설명이다.
또 하나는 자금 사용에 대한 구체성이 부족한 경우다.
회사가 큰 금액을 조달했다고 하면서도,
그 돈이 어디에 얼마만큼 쓰였는지,
앞으로 어떤 일정으로 집행될 것인지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연구개발, 임상, 설비, 인력 확충, 운영자금 같은 항목이 빠져 있다면,
미래 이야기는 점점 더 현실감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500억 원을 조달한 회사가 있다고 해보자.
좋은 회사는 그 자금이 어떤 단계에, 어떤 목적에,
어느 정도 비중으로 쓰이는지 비교적 또렷하게 말한다.
반면 그렇지 않은 회사는 “성장 기반 확보와 미래 사업 확대에 활용할 예정”이라는 표현만 남긴다.
이런 말은 틀린 말은 아니지만, 투자자가 알고 싶은 내용과는 거리가 멀다.
질문을 계속하다 보면 마지막에 남는 것
그래서 어떤 회사들은 질문을 계속 이어가다 보면 결국 한 지점에 닿는다.
처음에는 기술,
그 다음에는 시장,
그 다음에는 전략,
그 다음에는 파트너십,
그 다음에는 창업자의 이력과 철학이 나온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래서 왜 당신들만 이걸 할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검증 가능한 답이 나오지 않으면, 마지막에 남는 질문은 거의 하나다.
“이 회사를 믿을 수 있습니까?”
나는 이 지점에서 과학과 종교의 대화가 떠올랐다.
설명이 더 이어지지 못할 때, 사람은 어떤 이름을 붙이게 된다.
과학과 철학에서는 그 자리가 ‘최초 원인’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신’이 되기도 한다.
투자에서도 비슷하다.
설명이 멈춘 자리를 어떤 회사들은 믿음으로 채우려 한다.
하지만 투자자는 그 자리를 믿음으로 메워야 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투자자는 믿음을 고백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투자자가 해야 할 일이 결국 설명의 구조를 확인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기업은 질문을 받을수록 더 구체적이 된다.
좋지 않은 기업은 질문을 받을수록 더 추상적이 된다.
좋은 기업은 과거의 지연과 실패를 숨기지 않는다.
왜 예상과 달랐는지,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무엇을 수정하고 있는지 말한다.
반면 좋지 않은 기업은 과거를 설명하지 않은 채 늘 더 큰 미래만 가져온다.
좋은 기업은 투자금을 숫자와 일정으로 설명한다.
얼마를 조달했고, 어디에 쓰고 있고, 다음 단계의 목표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반면 그렇지 않은 기업은 구체성을 줄이고 기대감을 키운다.
결국 투자자는 ‘꿈이 큰 회사’를 찾는 사람이기보다, 질문을 견디는 회사를 찾는 사람에 더 가깝다.
실적이 없다는 사실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부재를 어떤 태도로 설명하고 있는가이다.
과학과 종교의 논쟁이 투자에 남겨준 생각
과학과 종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인간이 설명을 끝까지 밀고 가다가 결국 멈추는 순간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하는 점이었다.
누군가는 아직 모른다고 남겨두고, 누군가는 그 자리에 '신'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중요한 것은 설명이 끝났다는 사실이다.
투자에서도 마찬가지다.
회사가 아무리 멋진 서사를 내놓더라도, 어느 순간 설명이 멈추고 “그냥 믿어달라”는 요청만 남는다면 투자자는 한 걸음 물러서야 한다.
그 회사의 문제는 단순히 기술력이 부족한 것일 수도 있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설명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초기 바이오나 기술 기업의 IR을 들을 때면 종종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질문에 질문을 계속 이어가다 보면,
어떤 회사는 결국 데이터를 내놓고, 어떤 회사는 결국 믿음을 요구한다.
그리고 후자의 경우 마지막에 가까워질수록 이런 느낌이 든다.
어쩌면 이건 사업 설명이 아니라, 신앙심을 시험하는 일에 가까운 것 아닐까.
맺음말: 결국 투자는 무리하지 않는 쪽이 낫다
예전에 찰리 멍거는 주식 투자가 본질적으로 루저 게임과 닮아 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내가 그 말을 이해한 방식은, 멍청한 실수만 반복하지 않고 상식적인 투자 원칙을 꾸준히 지켜나가면 쉽게 지지 않는 게임이라는 뜻에 가깝다.
하워드 막스가 가치투자를 설명하면서 들었던 아마추어 테니스 경기 비유도 비슷하다.
아마추어는 프로 선수처럼 대단한 위닝샷을 계속 날릴 수 없다.
대신 무리하지 않고 공을 네트 너머 안정적으로 넘기기만 해도, 의외로 상대의 실수로 경기를 이길 수 있다.
개인적으로 테니스 단식 경기를 즐겨 했던 사람으로서, 이 비유는 꽤 오래 남았다.
실제 아마추어 경기에서는 화려한 공격보다, 무리한 포핸드 하나와 성급한 스매시 하나가 승패를 더 자주 가른다.
지는 쪽은 대개 상대가 너무 대단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무리한 선택을 반복하다가 무너진다.
주식 투자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설명이 멈춘 회사를 억지로 믿으려 들지 않고, 근거보다 분위기가 앞서는 기업을 피하고, 검증되지 않은 장밋빛 전망에 휩쓸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많은 실수를 줄일 수 있다.
굳이 투자 세계에서 신을 믿을 필요도 없고, 신앙심을 테스트 받을 필요도 없지 않을까.
좋은 투자자는 기적을 기다리는 사람이라기보다,
질문이 이어지는 회사를 고르고,
설명이 멈추는 회사에서는 물러날 줄 아는 사람에 더 가깝다.
어쩌면 투자의 본질은 특별한 한 방을 맞히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아도 될 실수를 줄여가는 데 있는지도 모르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