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9일 일요일

생각정리 115 (* 사회주의 프롤레타리아)

이전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며칠 뒤, 태극부대가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위하던 모습을 회사 창밖으로 지켜본 기억이 있다. 당시 상무님은 그들에 대해 거친 말을 내뱉었지만, 대표님은 따로 나를 불러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견을 물으셨다.

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취지의 답을 했고, 대표님은 “그분들 중에는 박 전 대통령의 아버지인 박정희 대통령 시절 국가로부터 많은 경제적 지원을 받았다고 느끼며 그것을 은혜로 기억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라고 하셨다.

박 전 대통령을 박정희 대통령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고, 그때 받은 은혜를 떠올리며 이를 갚고자 탄핵이 부당하며 거리로 뛰쳐나온 것일지도 모르겠는 답변을 해주신 기억이 있다. 

이전 회사 대표님과의 대화를 통해 깨달은건 세상에 나타나는 현상을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내가 전후 맥락을 놓쳤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며,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려 들면 도무지 납득할 수 없을 정도의 일은 실제로는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 일화를 떠올리며, 이전에 글을 남긴 맘다니 뉴욕시장 당선 역시 전후 맥락을 차분히 복원해 보려 한다.

https://www.thefp.com/p/peter-thiel-capitalism-isnt-working-for-young-people


피터 틸은 오래전부터 현재의 자본주의가 밀레니얼 세대에게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오히려 수탈적으로 작동한다고 지적해 왔다. 그 귀결은 명확하다. 밀레니얼 세대는 자본 축적의 사다리를 잃고 프롤레타리아화되며, 자본을 보유한 기성세대의 시각에서는 그들의 요구가 공산화로 비칠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이 구조적 결함을 주류 정치가 오랫동안 정면으로 다루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반면 맘다니는 그 모순을 먼저 언어화하고 공론화했기에, 밀레니얼 세대의 압도적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맘다니의 핵심 공약 정책에는 그동안 공론화되지 않은 주거비와 학자금대출이 있다. 

핵심 생활비 항목인 주거비는 지난 10년 동안 임차인의 소득 증가를 앞지르는 속도로 상승해 왔다. 2014~2019년에는 소득이 임대료를 어느 정도 따라잡아 2019년이 대공황 이후 가장 저렴한 시기로 기록되었지만, 팬데믹을 거치며 추세가 반전되었다. 2021년 임차인 소득은 2007년 대비 110%로 낮아진 반면(2019년 119%에서 하락), 임대료는 2007년 대비 126%로 상승했다. 여기에 학자금대출의 상환 부담이 겹치면서 가계의 고정비 구조가 경직되었고, 미래 기대소득과 현재 지출 사이의 괴리는 더 커졌다.


소득상승률을 항상 윗도는 주거비상승률


우상향하는 학자금 대출 잔액


최근 뉴욕시 지역별 임대값 상승률

세대 간 기대치의 비대칭도 문제이다. 베이비부머 부모 세대는 “우리의 성공 공식을 따르라”고 조언해 왔지만, 사회·경제·기술 환경은 이미 그 공식을 무력화할 정도로 달라졌다. 그 결과 밀레니얼 세대는 자가 마련의 가능성을 잃고, 학자금·각종 대출에 짓눌리며, 미래를 위한 저축은 커녕 당장의 생활비를 충당하기도 바쁜 현실과 이상(부모들의 기대감) 간 간극이 더 벌어지는 상황에 놓였다.


정치적 관점에서 보면, 이번 맘다니의 당선 경로는 트럼프의 당선 경로와 유사하다. 자유무역 체제하에서 러스트벨트와 노동자 계층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지만 주류 정치권은 그 현실을 외면해 왔다. 트럼프는 이를 문제로 규정하고 공론화하며 **‘자유무역의 환상’**을 깨뜨렸고, MAGA를 내세워 불만과 기대를 조직화하였다.

동시에 민주당의 기존 슬로건(LGBT, 넷제로 등)이 지닌 정책 설계의 허점을 지적하고 능력 중심 사회로의 복귀를 주장하였다. 모두가 알고 있었으나 주류에서 소외될 것을 우려해 말하지 않던 의제를 먼저 발화한 전략이 결국 정치적 성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맘다니의 전략과 구조가 닮아 있다.

따라서 뉴욕에서의 맘다니 당선은, 트럼프 당선 이후 자유무역주의에서 보호무역주의로의 회귀가 촉발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긴장을 수면 위로 드러낸 사건으로 읽힌다. 이 긴장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다수 사회에 내재한 구조적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특히 서울 도심의 현실은 뉴욕과 소름돋을 정도로 닮아있다. 밀레니얼 세대는 자가 마련 기회 박탈, 사회진입 지연, 부채로 출발하는 생애주기라는 삼중고를 겪고 있다. 더구나 이전글에서 언급했듯, 전세의 월세화, 빠르게 풀리는 M2 유동성, 고환율에 따른 수입물가 상승→근원 CPI 상승생활비 전반을 압박한다.

친환경 에너지 정책의 방향 오류
보호무역·폐쇄무역은 국내 제조업 일자리를 위축시키고, AI 보급서비스직 일자리를 잠식한다. 결과적으로 취업 문은 좁아지고, 사회진출은 더 늦어지며, 부채로 시작하는 청년 세대의 삶은 더 어려워질 전망이다.

동시에 정치사회적으로는 초고령사회 진입과 함께 무자본 계층의 표심 확대가 가속될 수 있다. 이는 한국에서 민주당의 장기 집권 가능성을 높이는 동학으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 과거 **4050 ‘IMF 세대’**는 사회진입의 지연, 회복 국면의 유동성 확대, 그로 인한 주택가격 급등으로 자산 축적 기회를 놓쳤고, 결과적으로 민주화 진영의 두터운 지지층으로 자리 잡았다.

앞으로는 여기에 2030 밀레니얼의 프롤레타리아화, 4050 IMF 세대의 민주당 지지, 65세 이상 고령층의 복지 수요 확대가 결합해, 포퓰리즘적 공약이 유권자 지형을 더욱 공고히 만들 수 있다. 동시에 부족한 세수50·60대 자산가와 일부 고소득 전문직을 겨냥한 고율 과세의 상시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 모든 흐름을 감안하면, 오늘의 정치 지형을 해석할 때 단순히 집값 상승에 따른 표심 이탈만을 기대하기보다, 광의의 정치 인구구조 변화와 사회구조 재편에 주목해야 한다.

틸의 지적처럼 자본주의가 특정 세대에게 작동하지 않는다는 체감이 누적되면, 그 세대의 정치적 선택은 체제 유지가 아니라 체제 수정 혹은 전환을 향한다. (자본주의의 공산화)

한국 역시 주거·부채·노동시장·산업정책세대 현실에 맞게 재설계함으로써,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지속 가능성을 지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지만, 이를 동시에 해결할 수단은 뾰족히 없는게 현실이다. 

결국 핵심은 전후 맥락의 변화이다. 이전 정권과 지금 정권은 거시 외부환경, 정책 여력, 글로벌 변수의 결이 크게 다르다. 동일한 현상처럼 보이는 집값·주거비 상승이라도, 금리 수준·물가 국면·에너지·안보·공급망·인구구조·노동시장 기술충격이 달라지면 정치적 파급 경로와 강도 역시 달라진다. 

따라서 과거의 경험을 그대로 대입해 “주거비 부담 상승 → 정권교체”라는 단선적 인과로 해석하는 것은 위험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가격 그 자체보다 그것이 작동하는 구조—세대별 소득경로, 부채 구조, 자산 분포, 지역별 유권자 구성이 만들어내는 정치 역학 메커니즘—를 다시 점검하는 일이다.

요약하면, 같은 현상이라도 맥락이 바뀌면 해석도 달라져야 한다. 단순히 과거처럼 집값 상승만으로 정권이 손쉽게 교체될 것이라고 가정하기보다, 세대·산업·인구의 구조적 변화정책 제약의 현실을 반영해 정치적 결과를 재추정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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