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오랫만에 15개월차 조카를 보고 왔다.
조카는 처음 몇분간은 조금 수줍은듯 누나 다리 뒤에 숨어서 귀엽고 작은 입으로 무야(*물)만 계속 쪽쪽 빨고만 있었다.
이내 몇분뒤에 내 옷가지를 잡으며 그림책을 읽어달라고 여러 책을 꺼내왔다.
그림책을 펴 읽어주기 시작하면, 5분정도 집중하는가 싶더니 금새 또 다른 곳으로 정신이 팔려 이번엔 다른 장난감(*탱탱볼)을 갖고 놀기 시작했다.
툭 튀어나온 통통한 배와, 짧은 다리로 아장아장 양 팔을 좌우로 흔들며 집안 온 곳을 계속해서 뛰어다니며 한 순간도 가만히 쉬는 순간이 없었다.
조카 아기랑 놀아주다가 내가 먼저 지쳐 좀 바닥에 누워있으면, 금새 아기는 또 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는 엄마(*누나)한테 달려갔고,
그러다가도 엄마(*누나)가 주방일을 하느라 바쁘면, 이번엔 할미한테 쪼르르 달려가고, 이곳저곳 이방저방을 계속 빨빨거리며 소리를 지르며 쏘다녔다.
집 밖 놀이터에서 열심히 뛰어놀던 조카의 양 볼은 더위로 인해 발그레하게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더 이상 두 다리에 힘이 남아 있지 않은 듯, 뒤로 발랑 넘어질 듯 아장아장 걸으며 집으로 가던 모습이 무척이나 귀여웠다.
순간 조카 아기를 보며, 앞으로 우리 아기 조카가 청년이 되어 한국 사회에 진출했을때 어떤 사회로 변모해있을지가 걱정이 됐다.
최근 국내 정치권에서는 국민연금제도 개편과 증세 관련 세제 개편, 전국민 소비쿠폰 발행과 같은 포퓰리즘 성격의 확장적 재정정책이 논의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은 자산 인플레이션을 촉발하고 있으며, 그 결과 미래 청년세대들에게는 서울 도시권 내에서 자가주택을 마련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한국 사회의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주요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고, 앞으로는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더 나아가, 제대로 된 산업전환 전략 없이 ‘친환경’만을 내세운 잘못된 에너지·산업정책은 제조업 기반을 약화시키고 있다. 동시에 미국의 관세정책으로 인해 국내 대기업들은 오프쇼어링을 가속화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자영업의 몰락, 국내 일자리 감소, 청년 실업 증가가 심화되고 있다. 결국 미래세대를 위한 한국 사회의 발판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확산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의 자본 민주주의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비관적 전망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얼마 전 결혼식 청첩장 모임을 위해 사회초년생 시절 함께했던 증권사 동기들과 저녁 자리를 가진 적이 있다. 비교적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하던 중, 자연스럽게 앞서 언급한 한국 사회에 대한 우려 섞인 대화 주제가 나왔고, 술기운에 평소 품고 있던 생각을 솔직히 털어놓게 되었다.
나는 한국 청년에게 미래는 없다고 말했다. 우리 세대조차도 한국 성장의 혜택을 일부만이 누릴 수 있었고, 우리는 아마도 마지막으로 그 득을 본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미래 세대가 한국 사회에 머무는 것은 시간과 에너지의 낭비일 수 있다. 차라리 가능성이 열려 있는 미국을 포함한 해외로 나가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불모지로 변해가는 한국 사회에 남아 있는 것이야말로 훗날 인생을 돌아봤을 때 가장 후회할 선택이 될 수 있다.
앞으로 한국은 만성적 재정적자 상태를 넘어 매년 적자 규모가 증가하는 국면에 들어설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M2 통화량 증가는 불가피하고, 이는 자산 인플레이션, 특히 서울 도심 아파트 가격 상승을 더욱 가속화시킬 것이다. 동시에 한국 사회의 근간이었던 제조업 경쟁력은 잘못된 산업·에너지 정책으로 인해 약화되며, 생산기지는 오프쇼어링되거나 저임금·저에너지 비용 국가(대표적으로 중국)에 잠식당할 것이다.
그 결과 내수시장은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고, 이에 연관된 일자리 또한 지속적으로 축소될 전망이다.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소득이 줄어드는 상황에서는 내수 소비 역시 위축되고, 자영업 기반은 계속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들은 사실 과거에도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사회문제로 꼬리표처럼 따라붙어 왔다. 그러나 과거 한국 경제가 GDP 잠재성장률 성장률 3% 이상을 유지하던 시기에는, ‘성장’이라는 마법과 같은 단어가 이 모든 사회문제를 마치 없는 것처럼 가려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GDP 실질 성장률이 0%에 수렴하면서 그간 덮여 왔던 누적된 사회문제가 하나둘씩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샘 올트먼의 글에 따르면, 경제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작동하지 않는다고 한다. 유권자들이 제로섬 상태에 빠지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도 제로섬 게임에 빠진 인간에게 ‘공유’를 가르치는 것은 불가능했으며, **성장은 이러한 딜레마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종의 ‘정신 해킹(mental hack)’**으로 작동해왔다고 한다.
앞으로 성장이 없는 대한민국에서 '정신해킹'에서 벗어난 미래의 우리 사회모습이 어떻게 변모해있을지 쓸때 없는 걱정을 해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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