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국회 전체회의를 지켜보았다. 특히 친환경 에너지 관련 발언들을 들으며, 얼마나 허무맹랑하고 근거 없는 주장들이 오갔는지 한숨이 나왔다. 퇴근 후 집에 와 씻고, 노트북을 켜서 정부와 집권당을 비꼬는 글을 쓰려 했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잘못된 정책임이 드러날 텐데, 내가 왜 이렇게까지 열을 내고 있는 걸까?”
노트북을 덮고 주방으로 나와 아내에게 이야기하니, 아내는 **“그걸 이제 알았어?”**라며 웃듯 반문했다. 우리는 함께 저녁을 준비해 식사를 했다.
저녁을 마친 뒤에도 습관처럼 뉴스·유튜브·텔레그램·외신 기사를 번갈아 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여전히 현 집권당에 대한 짜증이 가시지 않았다.
돌이켜보니 유튜브에서 본 정치인들의 과거 발언 속 모습은 생각보다 의외였었다. 생각보다 이성적이고 평범한 사람들처럼 보였던 것이다.
문제의식만큼은 누구보다 투철하신분들이셨다.
하지만 그들이 내놓는 정책은 여전히 현실성이 부족했고, 결과적으로 경제적·사회적으로 한국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방향이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과연 이런 역효과를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알고도 ‘소신’과 ‘대의’라는 이름 아래 부작용쯤은 감수할 수 있다고 자만하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좌편향적인 사고구조를 가진 이들의 문제는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은 분명히 있지만, 이를 해결하는 방안에서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점에 있다.
흔히 말하는 서생의 문제의식만 있고, 상인의 현실 감각과 능력이 부족한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상황을 그저 “멍청하다”고 치부하고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글을 이어나가다 보니 또 다시 짜증이 올라온다..
최근에는 저녁을 먹으며 아내와 함께 시사 프로그램을 자주 본다. 방송에서는 청년실업, 지방 도시 소멸, 원·하청 관계, 수도권 집중화 같은 사회문제가 다뤄졌다. 금융업에 종사하는 내게는 크게 피부로 와닿지 않던 문제들이라, 그동안 나와는 관련 없는 삶이라 치부하며 외면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오전 8시에 출근해 오후 4시에 퇴근한다. 하루 종일 시원한 사무실에서 책을 읽고 생각하는 것이 일의 전부다. 그렇다 보니 산업 현장에서 장시간 노동을 하며 수년간 임금이 동결된 이들 앞에서, 내가 ‘노란봉투법은 악법이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혹은, 그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 과연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도 스쳤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되묻게 된다. 내 이익에 반하면 무조건 악이고, 내가 생각하는 ‘선’에 반하면 무조건 악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가? 내가 믿는 ‘선’과 사회가 바라보는 ‘공공의 선’의 기준은 무엇이며, 과연 절대적일 수 있는가?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말하는 ‘우리’의 범위와 '공공의선'의 범위는 도대체 어디까지인가?
예를 들어 조선소에서는 동일한 노동을 하더라도 하청의 하청 소속 근로자는 원청 및 본사 직원보다 훨씬 열악한 처우를 받는다고 한다. 여기에 외국인 노동자와의 경쟁까지 겹치면서 임금이 수년째 동결된 경우도 많다. 사실 대한민국 경제가 돌아가는 것은 바로 이런 산업 현장 노동자들의 땀과 노력 덕분이다. 산업 현장이 지탱되어야 내수 서비스경제가 움직이고, 그 위에서 지금의 금융·자산운용 산업도 유지될 수 있다.
그럼에도 사회 전반의 분위기는 엇갈린다. 제조업 현장보다는 변호사·의사·회계사·대기업 사무직 같은 전문직이나 사무직을 선호하거나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경향이 뚜렷하다.
이는 곧 제조업 노동이 충분한 보상과 사회적 인정을 받지 못해온 현실을 보여준다. 실제로 지방 산업 현장은 인력 부족이 심화되고 있으며, 동시에 청년실업 문제도 여전히 해결되지 못해, 결국 일자리 미스매칭이라는 구조적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이번 노란봉투법은 제대로 작동한다면 산업 현장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통해 이러한 사회 구조적 문제를 완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담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법의 취지가 온전히 구현되지 못할 경우 노사 갈등의 심화나 새로운 사회적 비용 발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결국 이 법은 우리 사회가 산업 현장 노동의 가치를 어떻게 재평가하고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것인지에 대한 시험대가 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여전히 우편향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탓에, 노란봉투법이 가져올 긍정적인 효과보다는 부정적인 효과가 더 크게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통과된 법안인 만큼 이번 노란봉투법이 단순히 논란의 대상이 아니라, 산업 현장 노동자들의 처우를 바로잡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임금과 복지, 근로 조건이 개선되면서 사회적 인식 또한 긍정적으로 변화하길 기대한다.
돌이켜보면 나는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과 같은 의견만 공유하며 살아왔고, 그 속에서 노란봉투법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만 인식해왔다. 그러나 시간을 두고 여러 방면에서 다시 생각해보니, 굳이 그렇게만 볼 이유는 없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치와 정책을 향한 짜증과 분노에서 출발한 글이었지만, 사회와 산업 현장을 곱씹으며 현 집권당에 대한 편견만으로 사회문제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분명 친환경 에너지 정책은 잘못된 방향이지만, 그렇다고 집권당의 모든 정책이 잘못된 것은 아닐 것이다. 정책 하나하나는 사회문제의 단면을 드러내고, 그 파급효과 또한 양면성을 지닐 수밖에 없다.
따라서 노란봉투법은 단순한 악법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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