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에 입사한 지 며칠 되지 않았을 무렵,
리서치부서 부장님과 함께 점심을 먹고 나온 뒤 명동성당 근처 적당한 자리에 동기와 나란히 앉아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부장님이 우리에게 문득 이런 질문을 던지셨다.
앞으로 한국 증시는 어떻게 될 것 같냐고.
나와 동기는 서로 얼굴을 한 번 바라보고는,
잘 모르겠다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다시 부장님을 바라봤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부장님은 차분하게 말씀해주셨다.
앞으로 베이비부머 은퇴 세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하게 되면,
그동안 국내 증시를 떠받쳐왔던 연금 자금이 매도 압력으로 작용하면서
지수 상승의 상방을 막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증권사 리서치 산업의 전망 역시 그리 밝지만은 않다고,
꽤 솔직하게 덧붙이셨다.
그로부터 벌써 8~9년이 흘렀다.
증권사를 떠나 운용사에 자리를 잡은 이후 지금까지,
나는 그 부장님과만 유일하게 매달 한 번씩 세미나를 이어오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날 명동성당 앞에서 들었던 말들이
점점 현실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작년부터는 국민연금 적립금이 본격적으로 줄어들기 시작하는 시점이
2027년이라는 기사들을 여러 차례 접했다.
이는 곧 들어오는 보험료 수입보다 나가는 보험 급여 지출이
2027년부터 더 많아진다는 의미이고,
투자자산을 축소하기 시작하는 해가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해당 기사들은 2024년 국민연금 중기재정전망을 근거로 한 내용이었다.
이 전망 자료는 매년 업데이트되는데,
최근 발표된 2025년 국민연금 중기재정전망에서는
보험수지 적자 전환 시점이 2027년에서 2029년 이후로 다소 미뤄졌다고 한다.
|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4071182171?utm_source=chatgpt.com |
적자 시점이 뒤로 이동한 주된 이유로는
보험료율 인상과 함께 급여 인상 폭이 확대된 점이 제시되고 있다.
다만, 숫자가 조금 바뀌었을 뿐
그날 명동성당 앞에서 들었던 구조적인 이야기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생각이 든다.
1. 문제 제기: 연금과 자본시장이 동시에 흔들리기 시작한 구조
한국 경제는 지금 연금 재정, 세대 간 자산 분배, 자본시장 구조가 동시에 비틀리는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
첫째, 국민연금과 각종 공적기금은 국내 주식시장의 핵심 매수자이자 잠재적 매도자이다. 이들이 쌓아 올린 적립금은 인구 고령화와 함께 언젠가 **“적립기에서 인출기”**로 전환될 수밖에 없고, 그 시점에는 국내 투자자산을 줄여야 하는 구조적 압력이 발생한다.
둘째, 은퇴세대의 노후자금은 부동산에 편중되어 있고, 청년세대는 세금·보험료·물가 부담으로 자산 형성이 지연되고 있다. 그 결과, 국내 증시에서 지속적으로 유입되는 ‘자연스러운 매수 주체’가 약해지는 방향으로 구조가 흘러가고 있다.
셋째, 이러한 공백을 메우는 것은 외국인 수급인데, 외국인은 법·제도·지배구조 측면에서 신뢰가 상대적으로 높은 대형주 위주로만 접근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결국 국내증시의 대형주 편향과 중소형주의 구조적 저평가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이 글은 이 세 가지 축을 연금 재정 → 세대·소득·자산 구조 → 자본시장 구조의 순서로 연결해 살펴본다.
2. 연기금·공적기금의 국내 주식 포지션: “얼마나 많이 들고 있나”
숫자부터 보자.
국민연금기금은 2025년 10월 말 기준 1,427조원대의 적립금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국내주식은 약 255조원, 기금 내 비중은 17%대 후반 수준이다.
한국거래소가 집계한 유가증권·코스닥·코넥스 합산 시가총액은 4,500조원대 중반이다.
따라서 국민연금이 들고 있는 255조원은 국내 상장주식 전체의 약 5% 중반대에 해당한다.
우정사업본부도 보험·예금 자금을 통해 국내 주식에 투자하고 있으며,
보험자금만 봐도 자산 약 60조원 중 국내주식 2조원대 중반(비중 4%대) 수준이다.
예금자금을 포함해 기타 공적기금까지 모두 합산하면, 공적 성격의 기금 전체 국내주식 잔액은 최소 260조원 이상으로 추정하는 것이 보수적인 접근이다.
즉, 국민연금 한 곳이 시장의 5% 이상, 공적기금 전체로는 그 이상을 쥐고 있는 구조이다.
이 거대한 포지션이 지금은 버팀목처럼 보이지만, 연금 재정이 인출기로 전환될 때는 구조적 매도 압력의 원천으로 바뀔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3. 보험료수지 적자 시점: 왜 2027년에서 2029년 이후로 밀렸는가
한동안 언론과 보고서에서 반복되던 숫자는 **“보험료수지 적자 전환 연도 2027년”**이었다.
그러나 최근 중기재정전망(2025~2029)에 따르면, 2029년까지는 보험료수지가 여전히 흑자로 남는 것으로 제시된다.
표면적으로 보면 “위기가 늦춰졌다”는 신호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을 보면 단순한 시간 벌기에 가깝다.
핵심 배경은 국민연금법 개정이다.
보험료율 인상: 현행 9%에서 13%까지 단계적으로 인상하는 내용이 법제화되었다.
2026년부터 매년 보험료율을 0.5%p씩 올려 2033년에 13%에 도달하는 경로이다.소득대체율 상향: 원래 2028년까지 40%로 떨어지도록 설계되어 있던 명목소득대체율을,
2026년부터 43% 수준으로 상향·고정하는 방향으로 조정하였다.기금수익률·임금·가입자 가정 상향: 중기재정전망에서는 기금수익률과 임금·가입자 경로에 대해 이전보다 낙관적인 가정을 두고 있다.
단기(2025~2029년)에는 보험료율 인상의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난다.
보험료율이 실제로 올라가면 보험료 수입은 바로 증가하는 반면,
소득대체율 상향에 따른 급여 증가는 본격적으로 수급자가 늘어나는 2040년 이후에 더 강하게 나타난다.
결과적으로,
보험료수지 적자 전환 시점은 **“보험료율 인상 + 가정 상향”**에 의해 2027년에서 2029년 이후로 미뤄진 것이고,
인구구조나 제도의 지속가능성이 근본적으로 개선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확히 말하면,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라 지금의 근로세대가 더 많이 내도록 설계함으로써 “시간을 조금 더 샀다”**는 표현이 가깝다.
4. 세대 구조: 보험료율 인상과 물가상승이 청년의 자산 형성을 어떻게 늦추는가
보험료율 인상은 재정상으로는 깔끔한 수단이지만, 부담의 배분을 보면 문제가 드러난다.
국민연금 보험료는 근로자와 사업주가 절반씩 부담한다.
보험료율이 9%에서 13%로 오르는 과정은 곧
근로자 입장에서는 월급에서 빠져나가는 연금보험료 비율이 상승하는 것이며,
기업 입장에서는 총 인건비 대비 사회보험료 비중이 올라가는 것이다.
여기에 고물가까지 겹친다.
청년·중장년층은 이미
주거비, 교육비, 육아비,
식료품·에너지 가격 상승,
학자금·전세자금 등 각종 부채
에 의해 압박받고 있다. 그 위에 보험료율 인상이 더해지면,
가처분소득이 줄어들고, 저축·투자 여력이 줄어들며, 자산 형성 시점이 뒤로 미뤄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반면, 은퇴세대는
국민연금·퇴직연금·개인연금 흐름과 함께,
부동산 자산을 이미 상당 부분 보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즉, 연금 재정을 위해 선택된 보험료율 인상 경로는
“자산 형성 기회가 아직 부족한 세대의 현재 소득 → 이미 부동산·금융자산을 상당 부분 축적한 세대의 연금 급여”
로 자원이 이동하는 효과를 낳는다.
이는 세대 간 자산 배분의 불균형을 키우고, 장기적으로 사회적 수용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5. 국내 매수 주체의 부재: 은퇴세대·청년세대·연기금이 동시에 매수에서 멀어지는 구조
이제 국내 주식시장 관점에서 **“누가 사 줄 것인가”**를 보자.
은퇴세대
자산은 크지만 부동산 위주이고, 현금흐름은 제한적이다.
나이에 따른 위험 회피 성향을 고려하면, 새롭게 국내 주식을 대규모로 매수할 동인은 약하다.
청년·중장년 세대
앞서 본 것처럼 보험료·세금·물가 부담 때문에 가처분소득이 줄어드는 구조이다.
주거·교육·생계비를 우선 충당하고 나면, 국내 주식에 꾸준히 투자할 여력은 제한적이다.
결국 청년세대는 자산 형성 시점이 늦춰진 채, 의미 있는 순매수 주체로 성장하기 어렵다.
연기금·공적기금
현재는 큰 손 매수자이지만, 연금이 적립기에서 인출기로 전환되면 투자자산을 줄여야 하는 매도자가 된다.
“더 많이 사 주는 주체”에서 “어느 시점부터는 팔 수밖에 없는 주체”로 역할이 바뀐다.
이 세 가지를 합치면, 국내증시는 시간이 갈수록 “내부에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장기 매수 세력”이 약해지는 구조로 흘러간다.
결국 의지할 곳은 외국인 수급뿐인데, 여기에도 구조적 한계가 있다.
6. 외국인 의존과 대형주 쏠림, 그리고 중소형주의 공백
외국인 투자자는 한국 시장을 볼 때 대체로 다음과 같이 행동한다.
법·제도·지배구조 리스크 회피
영문 공시 부족, 소수주주 권리 보호 수준, 갑작스러운 규제·세제 변경에 대한 불신 등으로
국내 중소형주에 대한 신뢰도가 높지 않다.
유동성과 규모 중심의 전략
대규모 자금을 한 번에 집행하고 회수해야 하기 때문에,
KOSPI200·MSCI Korea 상위 대형주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경우가 많다.
결과: 대형주 집중, 중소형주 방치
IT, 자동차, 2차전지, 금융 등 소수의 대형주에 수급이 집중되고,
중소형주는 국내 매수 주체 부재 + 외국인 회피라는 이중의 공백에 놓인다.
즉, 국내 세대 구조와 연금 구조의 변화는 국내 매수 세력을 약화시키고,
국내 자본시장 제도의 한계는 외국인 수급을 대형주 중심으로만 흘러가게 만들며,
그 결과 국내증시는 “외국인·대형주 편향 시장”으로 고착될 위험이 커지고 있다.
7. 적립금 감소와 투자자산 축소, 그리고 국내증시 매도 압력
앞에서 본 것처럼, 국민연금은 2025년 10월 기준 **국내주식 255조원(시장 5%대 중반)**을 들고 있고, 공적기금 전체로는 국내주식 260조원 이상을 들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연금이 적립기에서 인출기로 전환되는 과정은 대략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
보험료수지 적자·기금수지 적자 전환
보험료 수입만으로는 연금급여를 감당하지 못하는 시점(보험료수지 적자)이 오고,
운용수익까지 포함한 총수입이 지출을 따라가지 못하면 기금수지까지 적자가 된다.
적립금 감소
기금수지 적자가 지속되면 적립금이 줄어든다.
연금 지급을 위해 보유 자산을 매도해 현금화해야 한다.
초기에는 현금·단기채·해외자산 위주 매도가 가능하겠지만,
기금 축소가 구조화되면 국내주식 절대 잔액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구조적 매도 압력으로의 전환
국민연금이 국내 상장주식의 5% 이상을 쥔 상태에서,
기금 축소에 따라 국내주식 포지션이 **255조 → 200조 → 150조…**로 줄어들기 시작하면,이는 단순한 단기 수급이 아니라 장기적·구조적인 매도 압력이 된다.
정리하면,
보험료수지 적자와 적립금 감소의 도래는 곧 공적기금이 국내 투자자산을 줄여야 하는 시점의 도래를 의미하며, 이 시점이 가까워질수록 국내 주식시장에 가해지는 구조적 매도 압력은 커질 것이라는 점을 전제해야 한다.
8. 연금고갈·자산불균형과 자산 과세 강화로의 수렴 가능성
이제 시선을 재정·정치로 옮겨 보자.
연금 재정 악화와 자산시장 구조를 함께 놓고 보면,
앞으로의 정책·여론은 다음 방향으로 수렴할 가능성이 크다.
보험료율 인상의 한계
이미 법으로 보험료율 13%까지의 인상 경로가 확정되어 있다.
여기서 더 올리려 하면, 청년·중산층·기업의 정치적·경제적 저항이 극대화될 수밖에 없다.
임금 기반 해법의 한계
임금이 빠르게 오르면 단위노동비용이 상승하고,
이는 곧 한국 수출·제조업의 글로벌 원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
연금 재정을 임금 상승에만 의존하는 전략은 거시경제적으로 지속 가능성이 낮다.
자산시장 불균형의 심화
부동산·금융자산은 은퇴세대·고소득층에 집중되어 있고,
청년층은 보험료·세금·물가 상승으로 자산 형성이 지연되고 있다.
이 세 가지를 종합하면,
**“연금 재정을 위해 누군가는 더 부담해야 한다면, 근로소득이 아니라 자산 쪽이 부담해야 한다”**는 여론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구체적으로는,
고가·다주택자 중심의 부동산 보유세·거래세 강화,
일정 규모 이상 금융자산에 대한 배당·이자·양도소득세 누진 강화,
고액 자산가를 대상으로 한 연금 관련 목적세·기여금 논의 등이 등장할 수 있다.
즉, 연금 고갈 시점이 가까워지고 공적기금의 투자자산 축소가 현실화될수록, 국내 자산시장 전반(부동산·주식·채권)에 대한 세율 인상·자산 과세 강화 논의는 필연적으로 부각될 것이라는 점이다.
| https://www.mk.co.kr/news/politics/11944257 |
9. 결론: “연기금 매도 압력 + 매수 주체 공백 + 외국인·대형주 편향”이라는 삼중 구조
전체 그림을 한 번 더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연기금·공적기금은 국내 주식시장에서 시가총액의 5% 이상을 쥔 거대한 플레이어이며,
인구 고령화와 연금 재정 악화로 인해 머지않아 순매수자에서 구조적 매도자로 전환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지고 있다.보험료수지 적자 전환 연도가 2027년에서 2029년 이후로 미뤄진 것은,
보험료율 인상·소득대체율 상향·수익률·임금 가정 상향을 통해 시간을 산 결과이지, 구조 문제의 해소가 아니다.보험료율 인상과 물가상승은 청년세대의 실질소득과 자산 형성을 잠식하고,
은퇴세대는 부동산에 자산이 묶여 있어 적극적인 주식 매수 여력이 크지 않다.
그 결과, 국내증시는 뚜렷한 내수 매수 주체를 잃어가고 있다.이 공백을 메우는 것은 외국인 수급이지만, 외국인은 대형주 위주로만 한국을 담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국내증시를 **“외국인 중심의 대형주 시장 + 방치된 중소형주”**라는 구조로 몰고 갈 위험이 있다.
마지막으로, 연금 고갈 논의와 자산시장 불균형이 심화될수록,
국내 여론과 정책은 부동산과 금융자산을 포함한 자산시장 전반에 대한 세율 인상·자산 과세 강화 방향으로 수렴할 가능성이 높다.
즉, 한국 자본시장은 앞으로 연기금의 구조적 매도 압력, 국내 매수 주체 공백, 외국인·대형주 편향, 그리고 자산 과세 강화 리스크 속에서 움직이게 될 가능성이 크다.
#글을 마치며
글로벌 경쟁력이나 근본적인 체질 개선 없이 스토리만 덧붙인,
실질적인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는 마바라 중소형주 투자는
결국 꺼질 수밖에 없는 거품일 가능성이 높다.
그간 축적해온 자산, 은퇴자금, 미래의 자녀를 위한 저축성 예금이 탕진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삼촌이 된 나는 종종 아이들의 주식계좌를 어떤 자산으로 채워야 하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특히 조카의 주식계좌, 나아가 미래의 아이 계좌를 고려한다면
중소형주보다는 대형주 위주로
국내주식보다는 해외주식이,
해외주식보다는 세제 혜택이 있는 해외 ETF를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인 판단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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