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13일 월요일

생각정리 309 (* 국무회의, 발전, 전력설비, 전력요금)

퇴근 후 집에서 아내와 저녁을 먹으며 국무회의 생중계 영상을 봤다.

전력설비와 전기요금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지던 중, 이유를 정확히 설명하기 어려운 답답함이 밀려왔고 결국 나도 모르게 버럭 짜증을 내고 말았다. 이후 아내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한 뒤, 도대체 무엇이 나를 그렇게 불편하게 만들었는지 차분히 되짚어봤다.

나는 왜 정부 관계자들이 전력설비와 전기요금 정책을 이야기할 때마다, 내용을 끝까지 듣기도 전에 답답함과 짜증부터 느끼는 것일까.

어쩌면 이러한 감정은 내가 다른 사람보다 에너지 산업과 정책을 조금 더 많이 이해하고 있다는 건방진 자만심에서 출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현장에서 직접 정책을 설계하고 집행하는 사람들의 고민과 제약을 충분히 알지도 못하면서, 몇 가지 숫자와 산업구조를 안다는 이유로 상대의 발언을 쉽게 단순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경계할 필요도 있지 않나 싶다. 

다만 감정을 한 차례 걷어내고 다시 들어봐도 여전히 답답함이 남았다. 정책이 지향하는 목표와 이상적인 방향은 그럴듯했지만, 실제 현실에서 이를 구현하기 위해 부담해야 할 비용과 이해관계의 충돌, 상업성과 인프라 제약에 대한 설명은 거의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래의 글은 그 순간 느꼈던 짜증을 정당화하기 위한 기록이라기보다, 내가 무엇에 답답함을 느꼈는지 스스로 확인하기 위해 정리한 생각에 가깝다.

https://www.youtube.com/watch?v=QZ_xb6VoXmY&t=605s


남는 전력을 활용하면 된다는 말에 빠져 있는 비용


정부가 제시하는 전력 수요관리 정책의 방향은 상당히 합리적으로 들린다.

전력이 남는 시간에는 가격을 낮추고 부족한 시간에는 가격을 높여 수요를 이동시킨다. 전기차, 히트펌프, ESS와 VPP를 활용해 기존 발전설비의 이용률을 높이고, 피크 수요만을 위해 발전소를 계속 건설하는 부담을 줄이자는 구상이다.

정책적 목표만 놓고 보면 반대하기 어렵다.

다만 현실에서는 전력이 남는다는 사실과 그 전력을 필요한 장소에서 경제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 사이에 상당한 거리가 존재한다.

이번 논의에서는 가격 신호와 수요관리의 기술적 가능성은 비교적 자세하게 설명됐지만, 실제 상업성을 결정하는 송전망 투자, 토지 보상, 배전망 증설, 인허가 지연, 소비자 설비비와 금융비용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

앞선 글에서도 언급했듯, 전력산업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는 발전소를 짓는 행위보다 발전한 전력을 실제 수요처까지 전달하는 과정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관련 글: 생각정리 296

1. 남는 발전용량과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은 다르다


전력은 특정 시간에 발전량이 남는다고 해서 전국 어디에서든 즉시 사용할 수 있는 재화가 아니다.

전기가 경제적 가치를 가지려면 발전지역과 수요지역 사이에 충분한 송전선로, 변전소와 배전망이 구축돼 있어야 한다. 발전량이 충분하더라도 송전선로가 포화돼 있거나 변전소 접속용량이 부족하면, 값싼 전력을 필요한 지역으로 보낼 수 없다.

따라서 전력의 실질적인 잉여 여부는 단순한 전국 발전량이 아니라 다음 조건을 함께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

발전량 × 시간대 × 지역 × 송전망 여유 × 변전·배전망 수용 능력

국제에너지기구 역시 수요반응과 저장설비가 전력시스템 비용을 낮출 수 있지만, 이 효과를 실현하려면 전력망과 시장제도, 디지털 인프라가 함께 뒷받침돼야 한다고 설명한다.

출처: IEA, Electricity 2026: Flexibility (IEA)

실제 한국에서도 발전설비는 존재하지만, 전기를 수송할 송전망이 부족해 발전소 출력을 제한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345kV 북당진~신탕정 송전선로는 충남 서해안의 발전전력을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해 추진됐지만, 2003년 사업 착수 이후 2024년 최초 가압까지 21년이 걸렸다. 사업 지연기간만 146개월에 달했다.

한전은 이 기간 서해안 발전소에서 전력을 생산할 능력이 있었음에도 이를 수송할 전력망이 부족해 발전제약이 지속됐다고 설명했다.

출처: 한국전력, 345kV 북당진~신탕정 송전선로 준공 (한국전력공사)

이 사례는 발전용량이 남는다는 표현이 발전단의 설명에 불과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수요처에서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의 비용은 발전비만으로 계산할 수 없다.

발전비
+ 송전선로 건설비
+ 변전·배전설비 투자비
+ 토지 및 선하지 확보비
+ 주민 보상비
+ 인허가 비용
+ 사업 지연에 따른 금융비용

이 모든 비용을 더한 결과가 수요처에 도달하는 전력의 실질적인 비용이다.

생각정리 92 (*반도체, 전력문제, 병림픽3)

실질적인 비용함수를 모두 생략한 채 유휴 발전용량만 이야기한다면,
태양에너지는 우주에 무한히 존재하니 인류가 에너지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중요한 것은 에너지가 존재하느냐가 아니라,
그 에너지를 필요한 장소와 시간에 얼마의 비용으로 전달하고 사용할 수 있느냐이기 때문이다.

2. 송전망은 전기공사가 아니라 장기 개발사업이다


대규모 송전선로는 계획을 세운 뒤 곧바로 착공할 수 있는 설비가 아니다.

한국전력이 제시한 표준공기만 보더라도 765kV 송전설비는 약 10년, 345kV는 약 9년에서 9년 3개월, 154kV는 약 6년 6개월에서 7년 6개월이 필요하다.

이마저도 주민 협의와 인허가가 정상적으로 진행된다는 전제 아래 산정된 표준기간이다.

출처: 한국전력, 가공 송전선로 건설절차 (한국전력공사)

실제 송전망 건설에는 입지선정위원회 구성, 주민대표와 지방자치단체 협의, 주민설명회, 환경영향평가, 관계부처 협의, 전원개발사업 승인, 용지매수와 개별 인허가가 포함된다.

국토계획법, 도로법, 농지법과 산지관리법 등 여러 법률도 동시에 적용된다.

송전망 건설기간은 순수한 시공기간보다 토지 확보와 주민 협의, 행정절차에 더 크게 좌우될 수 있다.

출처: 한국전력, 송전선로 입지선정·인허가 절차 (한국전력공사)

결국 송전망 사업은 전선을 설치하는 기술적 프로젝트를 넘어선다.

수십에서 수백 킬로미터의 노선이 여러 행정구역과 사유지를 통과하고, 토지 소유자와 지역 주민, 지방자치단체, 환경단체, 중앙정부와 건설사업자의 이해관계가 겹친다.

전기를 소비하는 수도권과 산업단지는 송전망 건설의 편익을 얻지만, 철탑과 변전소를 수용하는 지역 주민은 재산권 제약, 경관 훼손과 공사 불편을 부담한다.

전력망의 편익은 수요지역에 집중되는 반면, 물리적 비용은 경유지역이 부담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3. 지상화와 지하화 모두 비용함수가 무겁다


지상 송전선로는 철탑 부지와 선하지를 확보해야 한다.

경관 훼손과 재산권 침해, 전자파에 대한 우려와 주민 반대가 발생하고, 송전선로 주변지역에 대한 재산적 보상과 지역지원 비용도 필요하다.

한전의 송·배전용 전기설비 이용규정에서도 송전선로 선하지 보상과 권원 확보비용, 전용 개폐소 부동산의 매입·임차비용을 접속비용에 포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출처: 한국전력, 송·배전용 전기설비 이용규정 (한국전력공사 홈페이지)

반대로 송전선로를 지하화한다고 문제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지중 송전망은 경관 훼손과 철탑 관련 민원을 줄일 수 있지만, 전력구와 관로, 맨홀, 고압 케이블 설치가 필요하다. 도심에서는 도로 굴착, 교통 통제, 기존 상하수도·통신시설 이설과 도로 원상복구 비용까지 추가된다.

한국전력도 지중송전을 전력케이블을 전력구와 관로, 맨홀 등에 설치하는 별도의 지하 전력망으로 구분하고 있다.

출처: 한국전력, 송배전사업—가공송전과 지중송전 (한국전력공사)

미국 에너지부에 따르면 신규 송전선로의 지중화 비용은 일반적으로 가공선로보다 약 3~10배, 기존 가공선로를 지중화하는 비용은 약 1.5~5배 높을 수 있다.

지역의 토질, 전압, 인건비, 터널과 냉각설비 필요 여부에 따라 비용 차이는 더 커질 수 있다.

출처: 미국 에너지부, Undergrounding Transmission and Distribution Lines (The Department of Energy's Energy.gov)

결국 지상화는 토지와 주민 수용성 비용이 크고, 지하화는 토목공사와 설비비용이 크다.

어느 방식을 선택하더라도 발전소에서 수요처까지 전력을 이동시키기 위한 비용은 발전단가와 별도로 발생한다.

4. 한국형 알박기와 보상 협상의 시간가치


앞선 글에서는 대형 전력망과 인프라 사업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한국형 ‘알박기’라는 표현으로 설명했다.

모든 송전망 사업에서 투기적 토지 선점이 발생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송전선로나 변전소가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병목 부지가 존재하고, 토지 소유자의 동의와 권리 확보가 전체 사업 일정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에서는 일부 토지 소유자의 협상력이 크게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노선이 공개되거나 개발 가능성이 알려지면 토지 선점과 지분 분할, 보상 기대가 발생할 수 있다. 사업자가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민원과 소송, 인허가 지연과 노선 변경 가능성이 커지고, 반대로 사업을 서둘러 높은 보상을 수용하면 총사업비가 상승한다.

이 부분은 사업별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확인해야 하지만, 토지 권리 확보가 접속비용과 사업기간에 직접 반영된다는 구조 자체는 한전의 이용규정에서도 확인된다.

출처: 한국전력, 접속설비용 부동산 및 지상권 처리기준 (한국전력공사 홈페이지)

문제는 보상비 자체보다 지연기간 동안 전체 프로젝트의 비용이 복리처럼 증가한다는 점이다.

토지 협의 지연
→ 인허가 지연
→ 착공 지연
→ 이자비용 증가
→ 자재비·인건비 재산정
→ 추가 보상 요구
→ 총사업비 재상승

송전망이 완공되지 않는 동안 발전소의 출력제약과 산업단지·데이터센터의 접속 지연도 계속된다.

따라서 사업 지연의 경제적 비용은 송전망 건설비에만 머무르지 않고, 발전제약과 기업 투자 지연에 따른 기회비용으로 확대된다.

한국의 토지 보상과 인허가 구조를 고려하면, 남는 발전용량을 수요처까지 끌어오는 총비용이 당초 예상보다 천문학적으로 불어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5. 발전소가 놀고 있다는 표현도 신중하게 봐야 한다


피크 시간에 대비해 건설된 발전소가 평상시 충분히 가동되지 않는다는 지적에는 일정 부분 타당성이 있다.

그러나 가동률이 낮은 발전설비와 이에 지급되는 용량요금을 모두 낭비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전력시스템은 폭염과 한파, 발전기 고장, 송전망 사고와 예상보다 빠른 수요 증가에도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예비자원을 보유해야 한다.

용량시장은 발전사업자에게 실제 생산한 전력량만 보상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과 대기상태를 유지하는 것에 보상하는 구조이다.

출처: FERC, Understanding Wholesale Capacity Markets (Federal Energy Regulatory Commission)

용량요금이 적정한지, 특정 발전원에 과도한 보상이 지급되는지는 별도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다만 이를 단순히 놀고 있는 발전소에 지급하는 비용으로만 해석하면 정전 위험과 계통 신뢰도에 대한 보험가치가 제외된다.

예비력을 너무 적게 확보하면 정전과 가격 급등 위험이 커지고, 지나치게 많이 확보하면 소비자가 부담하는 고정비가 늘어난다.

용량요금은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낭비라기보다, 어느 정도의 공급 안정성을 얼마의 비용으로 확보할 것인가의 문제에 가깝다.

6. 다이내믹 프라이싱은 비용을 없애기보다 재배분한다


시간대별 전기요금은 수요를 전력이 남는 시간으로 이동시키는 데 유효한 정책이다.

IEA는 수요 유연성이 피크 발전설비와 전력망 투자 부담을 낮추고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을 흡수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

출처: IEA, Scaling Up Demand Flexibility (IEA)

다만 이 효과는 소비자가 실제로 전력 사용시간을 변경할 수 있을 때 발생한다.

반도체, 철강, 석유화학과 데이터센터처럼 연속 운전이 필요한 시설은 전력가격이 높아도 설비 가동을 쉽게 중단하기 어렵다.

데이터센터도 일부 연산을 다른 시간이나 지역으로 이동시킬 수 있지만, 서버와 냉각설비, 네트워크의 기본부하는 24시간 유지해야 한다.

가정에서도 낮에 사람이 없거나 저장설비가 없다면 전기가 싸더라도 소비를 크게 늘리기 어렵다.

전기가 저렴한 시간대로 소비를 이동하려면 다음과 같은 설비가 필요하다.

스마트계량기
+ 통신망
+ 자동제어 시스템
+ 가정용 에너지관리 소프트웨어
+ ESS 또는 축열설비
+ 새로운 요금 정산시스템

FERC도 수요반응을 전력가격이나 인센티브에 따라 정상적인 소비패턴을 변경하는 행위로 정의하며, 이를 구현하기 위해 시간별 사용량을 측정·전송할 수 있는 첨단계량 인프라가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출처: FERC, 2025 Assessment of Demand Response and Advanced Metering (Federal Energy Regulatory Commission)

결국 다이내믹 프라이싱은 전력시스템의 비용을 제거하기보다 가격 변동 위험과 설비투자 부담의 일부를 소비자에게 이전한다.

자동제어와 저장설비를 갖추고 사용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소비자는 혜택을 얻지만, 전력 사용시간을 변경하기 어려운 소비자는 높은 피크요금을 부담할 가능성이 크다.

7. 히트펌프의 기술적 효율과 상업성은 별개의 문제다


히트펌프는 기술적으로 에너지효율이 높은 설비다.

외부의 열을 이동시키는 방식이기 때문에 전기를 직접 열로 바꾸는 전열기보다 투입전력 대비 난방효율이 높다.

그러나 기술적으로 효율적이라는 사실과 소비자에게 경제적이라는 사실은 서로 다르다.

히트펌프의 상업성은 초기 설치비, 전기요금과 가스요금의 상대가격, 건물의 단열성능, 난방수 온도, 외기온도와 사용패턴에 따라 달라진다.

IEA도 히트펌프의 높은 초기 구매·설치비를 보급 확대의 주요 장애물로 평가하고 있으며, 상당수 국가가 보조금과 저리 금융을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출처: IEA, The Future of Heat Pumps (IEA)

한국 아파트에서는 다음과 같은 추가적인 제약이 발생한다.

실외기와 축열조 설치공간
+ 바닥난방·온수배관 연결
+ 세대별 전기 인입용량 증설
+ 단지 변압기와 배전설비 보강
+ 공용부 공사와 입주민 동의
+ 소음·진동 및 유지보수 문제

IEA 역시 기존 건축물의 구조, 건물주와 임차인의 이해관계, 설치인력 부족과 건축규제를 히트펌프 보급의 주요 비가격 장벽으로 분류한다.

출처: IEA, Key Barriers to Heat Pump Deployment (IEA)

히트펌프가 대규모로 보급되면 도시가스 난방수요가 전력수요로 이동한다.

낮 시간에 충분한 축열이 이뤄지지 않거나 한파에 난방수요가 동시에 증가하면 겨울철 저녁 전력 피크가 새롭게 형성될 수 있다.

IEA도 히트펌프 확산이 전력수요를 증가시키므로 효율 향상뿐 아니라 전력망 계획과 수요관리 정책이 함께 추진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출처: IEA, Heat Pump Expansion and Grid Planning (IEA)

결국 히트펌프의 경제성은 기기의 효율계수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초기 설치비
+ 배관·전기공사비
+ 배전망 보강비
+ 유지보수비
- 가스비 절감액
- 전기요금 절감액
- 정부 보조금

이 계산이 기기 수명 전체에서 양의 값을 가져야 보조금 축소 이후에도 자발적인 시장이 형성될 수 있다.

8. VPP는 무료 발전소가 아니라 복잡한 운영사업이다


VPP는 전기차, 배터리, 히트펌프, 태양광과 산업체 부하를 하나로 묶어 전력시장에 참여시키는 구조다.

개념적으로는 새로운 발전소를 건설하지 않고도 피크 수요를 줄일 수 있어 매력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제 VPP는 단순한 소프트웨어 서비스가 아니다.

분산된 자원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측정하고, 고객별 사용제약을 반영하면서 전력시장 가격과 배전망 상황에 맞춰 원격 제어해야 한다.

미국 에너지부도 VPP의 상업화를 위해 고객 확보, 기기 간 상호운용성, 시장 접근, 규제 정비와 금융조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출처: 미국 에너지부, Pathways to Commercial Liftoff for Virtual Power Plants (The Department of Energy's Energy.gov)

수요감축 성과를 측정하는 것도 간단하지 않다.

소비전력을 얼마나 줄였는지 계산하려면 수요반응이 없었을 경우 해당 소비자가 얼마나 사용했을지를 나타내는 기준선이 필요하다.

기준선을 지나치게 높게 설정하면 실제 절감 없이 보상만 받을 수 있고, 너무 낮게 설정하면 참여자가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한다.

미국 에너지부도 수요반응의 비용효과를 평가할 때 고객의 정상적인 소비량을 추정하는 기준선 설정이 핵심 문제라고 설명한다.

출처: 미국 에너지부, A Framework for Evaluating the Cost-Effectiveness of Demand Response (The Department of Energy's Energy.gov)

VPP의 연결대상이 수백만 개의 가정용 기기와 전기차로 확대되면 사이버보안도 독립적인 비용항목이 된다.

기기 인증, 통신 암호화, 네트워크 분리, 공급망 보안, 침해사고 대응과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체계가 필요하다.

출처: 미국 에너지부, Cybersecurity Baselines for Distribution Systems and DER (The Department of Energy's Energy.gov)

결국 VPP의 상업성은 다음과 같은 비용함수로 평가해야 한다.

전력시장 수익
- 소비자 보상
- 배터리 열화비용
- 통신·계량·제어 시스템 비용
- 고객 확보 및 이탈관리 비용
- 예측오차와 불이행 비용
- 사이버보안 및 규제준수 비용

이 값이 안정적으로 양의 값을 가져야 VPP가 발전소를 실질적으로 대체할 수 있는 사업모델이 된다.

(할 수 있겠냐고..)

9. 전기요금 개편은 경제학보다 정치경제의 문제다


가정용 전기요금을 현실화하고 저소득층에는 에너지 바우처를 제공하는 방안은 경제학적으로 정합성이 있다.

다만 실제 가구의 전력소비는 소득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가구원 수, 주택 면적과 단열성능, 노인과 영유아 거주 여부, 재택근무, 의료기기 사용과 지역별 기온에 따라 소비량이 달라진다.

따라서 가정용 요금을 인상하고 소득 하위계층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면, 지원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전력소비를 줄이기 어려운 중간소득 가구가 큰 부담을 질 수 있다.

OECD도 전기와 난방 에너지 관련 세금과 가격 부담이 소득 대비 저소득층에 더 크게 작용하는 역진적 성격을 가질 수 있다고 분석한다.

출처: OECD, The Distributional Effects of Energy Taxes (OECD)

산업용 전기요금을 낮추는 것도 단순하지 않다.

전력 다소비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보호할 필요는 있지만, 산업용 요금 인하분을 가정용 요금이나 정부 재정으로 충당하면 새로운 교차보조가 발생한다.

반대로 산업용 전기요금을 계속 낮게 유지하면 기업의 에너지효율과 공정개선 투자 유인이 낮아질 수도 있다.

전기요금에는 다음 목표가 동시에 얽혀 있다.

산업 경쟁력
+ 물가 안정
+ 한전의 재무구조
+ 취약계층 보호
+ 발전·송전망 투자 회수
+ 에너지효율 개선
+ 탄소감축
+ 지역 간 비용배분

모든 목표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요금체계는 존재하기 어렵다.

누군가의 요금을 정책적으로 낮추면 다른 소비자가 더 부담하거나, 정부 재정으로 보전하거나, 전력회사의 부채로 미래에 이연해야 한다.

가격 신호는 전력소비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지만, 비용을 부담하는 주체 자체를 없애주지는 않는다.

10. 필요한 것은 방향성이 아니라 전체 비용함수다


전력 수요관리, 다이내믹 프라이싱, 히트펌프와 VPP를 확대하려는 정책 방향 자체는 타당하다.

수요 유연성은 피크 수요를 완화하고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을 흡수하며, 일부 발전소와 전력망 투자를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정책의 경제성을 입증하려면 기대편익만이 아니라 이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모든 비용을 함께 계산해야 한다.

먼저 정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편익은 다음과 같다.

회피 가능한 발전소 투자비
+ 연료비 절감
+ 송전망 혼잡 완화
+ 탄소배출 감소
+ 에너지 수입 감소

여기에서 다음 비용을 차감해야 한다.

송전·배전망 증설비
+ 지상·지하 전력배선 및 토목공사비
+ 토지 취득과 선하지 보상비
+ 주민지원과 피해보상비
+ 인허가 및 환경평가 비용
+ 사업 지연에 따른 금융비용
+ 스마트계량기와 자동제어 설비비
+ 히트펌프·ESS·축열조 지원금
+ VPP 운영과 소비자 보상비
+ 배터리 열화와 유지보수비
+ 사이버보안과 정산비용
+ 소비자가 부담하는 가격 변동 위험

(*쓸때 없는 소리하지말고 대규모 전력 수요처(*chip fab, AI D/C) 인근 부지에 복합화력발전소나 지으세요..) 

특히 한국에서는 송전선로와 변전소 건설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토지 선점, 알박기, 보상 협상, 지역 민원과 지방정부의 이해관계를 비용함수의 중심에 포함해야 한다.

발전소에서 전력이 남는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값싼 전력이라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

그 전력을 수도권 데이터센터와 산업단지까지 전달하기 위해 대규모 배선공사와 토목공사를 시행하고, 수많은 토지 소유자와 지역 이해관계자를 설득하며, 보상비와 장기간의 금융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면 최종 전력비용은 완전히 달라진다.

전력망 투자는 단순한 전기공사가 아니라 토지개발·인허가·금융·정치적 이해관계가 결합된 초대형 인프라 사업이다.

결국 이번 논의는 전력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설명하는 담론으로는 설득력이 있다.

다만 실제 투자안과 사업모델의 관점에서 보면 CAPEX, 송전망 연결비용, 토지 보상, 배전망 증설, 보조금 의존도와 공사 지연에 대한 계산이 부족하다.

전력정책은 방향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전력이 남는 장소와 필요한 장소를 연결해야 하고, 그 사이에 놓인 모든 토지와 이해관계자, 인허가와 금융비용을 통과해야 한다.

이 현실적인 제약을 생략한 채 남는 전력을 활용하면 된다고 말하는 것은, 문제의 가장 어려운 부분을 건너뛴 설명에 가깝다.

#글을 마치며, 


현실적인 제약과 비용을 먼저 직시하고, 이를 실제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과 비용 부담의 주체부터 제시하는 것이 순서에 맞지 않나 싶다.

남는 전력을 활용하고, 가격 신호를 강화하며, 히트펌프와 VPP를 확대하자는 이야기는 방향만 놓고 보면 얼마든지 그럴듯하다. 그러나 송전망은 누가 건설할 것인지, 천문학적으로 불어날 토지 보상비와 토목공사비는 누가 부담할 것인지, 주민 반대와 인허가 지연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답이 없다면 결국 이상적인 목표를 나열한 것에 그친다.

정책적 목표와 이상향을 제시하는 일은 학자와 연구자의 역할이며 실용성은 그닥 크지않다.

반면, 실제 정책을 집행해야 하는 실무진이라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보다 그것을 현실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부터 말해야 하지 않나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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