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28일 화요일

생각정리 103 (* 수급)

2차전지로 몰린 자금, 그리고 전자닉스를 놓친 기관들


국내에는 수조 원 단위로 자금을 운용하는 대형 자산운용사가 몇 곳 존재한다. 이들은 규모의 특성상 연기금 외부수탁기관(OCIO) 역할을 수행하며, 국내 기관자금 운용의 상당 비중을 차지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운용자금 자체가 워낙 크다보니, 그들의 급격한 포지션 변경은 티가 안낼래야 안날 수 없는게 한국 주식시장의 특징중 하나이며, 최근 2차전지로 그 자금들이 몰리는듯 싶다.


기초 지표: 연기금과 국내 운용업의 상대 크기

  • 국민연금(NPS) 기금 규모: 2025년 7월 말 약 1,304.5조 원.

  • 국내 자산운용업 전체 AUM(펀드+일임)

    • 2024년 말 1,656.4조 원

    • 2025년 1월 초 1,808.6조 원


이를 단순 비교하면 NPS의 비중은 약 72~79% 수준이다(1,304.5/1,808.6≈72%, 1,304.5/1,656.4≈79%). 즉, 연기금의 평가·집행 구조가 국내 기관 행태를 규정한다고 볼 수 있다.


최근 국면: AI 메모리 서프라이즈와 코스피의 전자닉스 중심 랠리


추론형 Agentic AI
의 확산은 메모리 수요를 구조적으로 상향시켰고, 이 시그널을 외국인 투자자가 먼저 포착했다. 9월부터 메모리 가격이 본격 급등하기 전에 이미 코스피는 외국인의 전자닉스 수급 중심으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개인투자자는 뒤따라 붙었고, 국내 기관은 비중을 줄이거나 관망하는 모습이 두드러졌다.


연초~9월 사이 조선·방산·원전(에너지)·B2C K-컨슈머에서 성과를 낸 중소형 스타일 운용사들은 9월 들어 현금비중을 빠르게 확대했고, 지금까지도 현금 보유 상태로 보인다. 반면 벤치마크(KOSPI) 추종 운용사분기별 연기금 평가에서 2개 분기 이상 언더퍼폼 시 자금 회수 리스크가 있어, 9월 이후 전자닉스 랠리에 뒤늦게 조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왜 2차전지를 샀는가: 성과 추종의 구조와 시간표


9월 중순 이후 대부분의 영업일에 전자닉스 주가가 쉬지 않고 상승했지만, 다수 국내 기관은 상승 구간에 편승하지 못했다. 상대·절대 평가 압박이 커지자 남은 2~3개월 동안 BM을 따라잡기 위한 선택지대형 2차전지가 부각되었다고 판단한다.

2차전지/ESS에 대한 근본 평가


AI 데이터센터(DC) BOOM
으로 인한 ESS 수요 증가는 사실이다. 다만 이를 분해하면 미국의 보조금·관세에 따른 기대 반사이익 일회성이익 성격이 강하며, 근본 경쟁우위의 부재라는 구조적 한계는 여전히 유효하다.
동시에 ESS향 배터리 시장이 2030년까지 2X로 증가한다고 하더라도 전제 배터리 시장의 20~30% 밖에 되지 않는다.

EV가 살아나지 않는한 전체 배터리시장에 대한 성장률은 점차 둔화될 전망이다. 


  • 리튬 밸류체인(특히 중국 중심): 구조적 과잉공급 상태이며 수급 균형 복원을 위해선 현 수준에서 추가적 예상 공급물량의 -50% 수준의 조정이 더 필요하다는 관점이다.

  • ESS향 배터리: 원가경쟁이 지배하는 전형적 제조업 마진 구조. 완전경쟁 시장에 가까워 초과마진이 지속되기 어렵다. 중국산 배터리의 원가경쟁력한국 업체가 따라잡기는 본질적으로 어렵다.


정책 측면에서도 트럼프 행정부의 우파적 기조를 고려하면, 보조금·관세의 전부가 K-배터리 기업의 이익으로 귀결되기는 어렵다. B2B 완전경쟁에서 우리의 매출=미국 고객사의 원가인 만큼, 보조금·관세는 궁극적으로 미국 고객사의 마진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ESS만으로 k-배터리 업체의 어닝이 드라마틱하게 개선될 확률은 낮다는 결론에 가깝다.

무엇보다 국내 일부 배터리사들의 과거 발언을 돌이켜보면, 그들의 배터리시장 수요전망치는 상당히 공격적이였고, 그들의 전망치와 실제치와의 오차도 엄청났었던 기억이 있다. 

관련해서 미국에서는 '한번 속으면 상대 잘못이고, 두번 속으면 내 잘못이다'라는 말이 있다고 하며, 중국에서는 '내가 당신을 속였는데 당신이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면, 그건 당신 책임이다.' 라는 속담이 있다고 한다.

물론, 그들이 속인것인지는 불명확하나, 속인게 아니라면 결과적으로는 틀린건 확실하다. 

기관이 전자닉스를 추종하지 못했던 이유


9월 전후 약 2주 동안 전자닉스 주가가 잠시 정체했을 때, 내부에선 2026년까지 메모리 공급과잉을 가정한 보고서가 우세했다. SEC HBM 진입가정에 따른 가격경쟁 심화 시나리오로 SKH 2026년 컨센서스 어닝 하향도 이어졌다.

이후 메모리 스팟 가격의 연속 상승이 확인되고, 구조적 수요 상향 시그널이 강화되었으나, 이미 전자닉스 주가가 크게 올라버린 뒤정보우위 상실을 의식한 기관은 진입을 주저했고, 그 이후 지금까지도 계속 전자닉스의 어닝추정치와 주가는 우상향기조를 보이고 있다.

더불어 **내부 전망의 급변(불과 2주 만에 과잉→부족)**은 대외 커뮤니케이션과 의사결정의 지연을 낳았다. 직전 전망을 번복해 고객에게 설득할 조직·문화적 준비가 부족했다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앞으로의 시나리오와 리스크


나의 해석이 틀릴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2026년 한 해를 관통하는 체크포인트는 분명하다.

  • 베팅이 틀린 경우: 2차전지 어닝이 2026년 내내 기대치를 하회하고, AI BOOM이 현재 기대를 상회전자닉스(메모리)가 추가 랠리를 이어간다면, 현 2차전지 수급을 주도하는 일부 운용역은 포지션 축소에 직면할 수 있다. 이 자금은 결국 전자닉스·AI 구조적 흐름으로 되돌림될 가능성이 높다.

  • 정책·지정학 변수: 보조금·관세의 배분 논리중국 원가 우위, CAPEX 사이클 조정 폭 등이 어닝의 외생 변동성을 키운다. 자생력이 약한 산업지정학 변화에 어닝이 흔들리는 운명에 수차례 노출될 수밖에 없다.

결론: 흔들림 없는 흐름


이번 전자닉스 랠리 미추종기관 평가 구조, 내부 전망의 급변, 정보우위 상실에 대한 인식이 겹친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반면 2차전지·ESS의 구조적 마진 한계보조금·관세의 전이 메커니즘을 감안하면, 이를 만회하려는 성급한 베팅전략적 실기로 귀결될 소지가 있다.

일반적으로 주식시장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외부 자금 유입이 제한적이던 ‘박스피 2000’ 구간을 오래 경험한 탓에, 나는 국내 시장에 한해선 제로섬적 특성이 강하게 작동한다고 본다. 제로섬적 환경에서는 상대의 패를 고려하지 않은 채 게임에 임하는 선택은 결코 현명하지 않다.

바둑판에 비유하자면, 상대의 **얇은 집채움(단기 2차전지 수급)**에 대응해 우리의 **두터움(전자닉스의 구조 수요·어닝 상향)**을 흔들지 않는 것이 장기 승률을 높인다. 얇은 곳을 쫒아 교환을 반복하면 형세가 무너진다.”

따라서 남은 한 해의 전략 수립에 있어 상대의 패와 우리의 패를 지속적으로 대조하며, 남은 한해를 잘 마무리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상대가 역류를 일으켰을 때 나의 순류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상대의 처지에서 보면 역류가 된다.

그러니 나의 흐름을 흔들림 없이 견지하는 자세야말로
최고의 방어수단이자 공격수단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창호 9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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