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창밖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 잠시 귀를 기울였다. “오늘 AI에 투자했는데 상투를 잡은 것 같다”**며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그 말을 들으며 문득 생각했다.
(어제의 폭락을 보며) AI는 과연 버블일까. 지난 2년간 반복되어 온 AI 버블 논란에 대해, 내가 직접 겪은 장면들과 그때의 생각을 오늘 이 자리에서 차분히 정리해 보고자 한다.
나는 결론부터 말해 AI는 아직 초입이라고 본다. 논란이 커질수록 단기 변동과 구조적 채택을 혼동하지 않는 태도가 중요하다. 근거가 빈약한 비관론에 일일이 반응하는 대신, 성능·비용·채택률·수요 재정의 같은 핵심 지표를 통해 신호만 가려 들을 필요가 있다. 그런 기준으로 지난 2년의 파동을 돌아보면, 순간의 공포와 소음이 컸을 뿐 채택 곡선은 오히려 가팔라졌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AI는 기술적 속도와 사회적 수용이 동시에 전개되는 드문 현상이며, 지난 2년 동안 시장은 낙관과 비관 사이를 극단적으로 왕복하였다. 나 또한 그 파동 속에서 흔들리며 배웠고, 무엇보다 단기 재무지표에 대한 집착이 판단을 협소하게 만든다는 점을 뼈아프게 체감하였다. 그래서 나는 인문학적 상상력과 맥락 읽기를 더해 보자는 문제의식을 분명히 하게 되었고, 단기 숫자만으로 고평가·저평가를 단정하는 관성을 경계하기로 했다.
이 글은 그 소음 속에서 내가 확인한 몇 가지 사실과, 버블 논란을 대하는 실용적 태도,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봐야 하는가에 대한 개인적 기록이다.
EPISODE.1
AI make every fucking thing accelerated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세쿼이아 캐피탈의 **‘6,000억 달러의 질문’**이다. **“막대한 AI 인프라 투자가 과연 수익으로 회수되고 있는가”**라는 이 질문은, 2024년 데이비드 칸 파트너가 빅테크의 연간 수천억 달러 규모 투자와 상대적으로 작은 AI 관련 매출 사이의 수익 격차를 지적하며 던진 것이다.
당시 ChatGPT의 효용은 지금만큼 높지 않았고, OpenAI의 수익과 전망도 지금처럼 낙관 일변도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샘 올트먼, 젠슨 황, 손정의, 각 빅테크 CEO들은 장기 전망에서 강한 낙관을 유지하고 있었고, 시장에는 낙관과 비관의 극단적 뷰가 공존했다. 나는 그 사이에서 낙관에 가까운 입장에 서 있었고, 기술의 확산 경로와 사회적 수용의 속도를 함께 읽기 위해서는 인문학적 통찰을 감히 끌어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너무 단기적인 재무관점만으로 AI의 고평가/저평가를 논하는 것은 편협하다는 자각, 그리고 당장 눈에 보이는 숫자에만 집착하는 경향에 대한 반성이 이어졌다.
EPISODE.2
낙관론
다음으로 선명하게 남은 폭락은 중국 딥시크(DeepSeek) 발표 이후였다. 2025년 1월 말, 중국 AI 기업 딥시크가 미국을 능가하는 고성능 모델을 개발했다는 소식이 퍼지자 미국 기술주가 급락했고, 엔비디아는 17%, TSMC는 13% 하락, 나스닥 지수도 3% 이상 하락했다.
이때가 유독 생생한 이유는 개인적 맥락 때문이다. 설 명절, 장인어른·장모님·와이프와 함께 외식을 하고 카페에서 담소를 나눈 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MTS를 켰더니 AI 기업들의 주가가 폭락빔을 맞고 있었다.
당시 나는 AI 관련 포지션이 크고 확신의 강도도 높았던 터라 자신감이 충만한 상태였다. 그래서 더더욱, 명절의 좋은 기분으로 귀가하던 길에 마주한 급락이 강하게 각인되어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또한 전날 딥시크 뉴스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탓에 충격이 더 컸다.
늦은 밤 귀가해 잠시 눈을 붙이고, 다음 날 아침 **“정말 딥시크로 인해 고부가 AI H/W 칩이 필요 없어질까”**라는 의문을 품고 현재 포지션을 점검하며 글을 이어갔다. 그러나 시장은 바로 다음 날 반등했다. 지금 돌아보면 효율 향상이 총수요를 오히려 증폭시키는 **제번스의 역설**이 다시금 확인된 장면이었다.
EPISODE.3
생각정리 3 (관세, 에너지)
세 번째 기억은 트럼프의 관세 자폭 발언으로 촉발된 급락이다. 상호관세 발표가 미국 내 인플레이션 재발과 리세션으로 이어질 것인지, 그리고 ‘아이폰’의 전량 리쇼어링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를 두고 나는 당시 기록을 통해 충격의 합리성을 가늠하려 애썼다. 결론적으로 나는 관세로 인한 수입 공산품 물가상승이 인플레이션을 재발시킬 만큼 강력하지 않다고 판단했고, 리세션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지 않다는 느낌을 가졌다.
또한 아이폰 제조업의 전량 리쇼어링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해, 시장 충격은 비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이후 트럼프가 개별 국가를 상대로 상호관세율을 낮추며 시장을 진정시키는 한편, “주식을 다시 매수하라”는 메시지를 올리자 시장은 빠르게 반등했다. 지금 돌아보면 트럼프의 초기 블러핑 성격의 강한 관세 협박이 통했다고도 볼 수 있는데, 전 세계 무역국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그 협박 앞에 수세에 몰린 모양새였기 때문이다.
그 뒤로 빅테크를 포함한 AI H/W 기업들의 연이은 실적 발표에서 AI에 대한 강한 수요가 확인되었고, 관련 Tech 기업들의 신고가 행렬이 재개되었다.
OpenAI
OpenAI의 ChatGPT 성능은 나날이 발전, 유익성은 ChatGPT-3 시절과 비교해 비약적으로 향상, 토큰당 비용은 드라마틱하게 하락하며, 이제는 일상의 대부분 업무에서 ChatGPT 없이는 일을 진행하기 어렵다고 느낄 정도에 이르렀다. 이러한 변화는 나에게 단기 변동에 함몰되지 말고 구조적 채택 곡선을 보라는 신호로 읽혔다.
한편 샘 올트먼의 2033년 250GW 데이터센터 건립 목표는 누군가의 귀에는 과장 혹은 우스갯소리로 들릴 수 있고, 2029년까지 23GW 목표 역시 시장의 일부가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다. 그럼에도 나는 지난 2년간 ChatGPT 성능의 비약적 향상과 그 어떤 기술혁신보다 빠른 유저 증가를 고려할 때, 지금 시점에서 AI 버블을 논하는 것은 너무 이르다고 본다. 수요 스파이럴이 구조화되고 있으며, 이는 설비투자에 대한 시장의 선입견을 재검토하게 만든다.
Bubble?
그렇다면 AI의 당장 가시성 있는 TAM은 어떻게 추정할 것인가. 개인적으로 2024년 기준 전 세계 GDP 약 110조 달러 중 **지식 관련 산업을 40%**로 보아, 약 44조 달러를 AI의 (Addressable Market) 초기 외연으로 상정한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이는 곧 AI 시장은 아직 시작도 안 한 초입이라는 해석으로 이어진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단순 치환이 아니라 생산성의 재편이라는 것이다. 업무 흐름의 구조적 재설계가 시작되면 비용만이 아니라 수요의 성격 자체가 바뀌며, TAM은 매 분기 성능·비용·유즈케이스의 최신치에 의해 외연이 갱신된다.
일각에서는 OpenAI의 재무와 Oracle 등 생태계 플레이어들의 자금 조달 우려를 제기하지만, 나는 글로벌 PE와 전략자금의 대기 규모를 감안할 때 “돈이 없어 AI 투자를 못한다”는 서사는 설득력이 약하다고 본다.
주변의 PE에 직접 물어보는 편이 빠를 것이다. 글로벌 PE에 연줄이 있는 투자자들 중에는 전 재산을 팔아서라도 OpenAI 1주를 더 사겠다고 대기번호를 뽑는 이들이 있을 법하다는 직감도 든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조차 OpenAI 투자가 너무 늦어 아쉬워한다는 맥락을 떠올리면, 시중에 쌓인 투자금을 들고 기회를 노리는 자금이 얼마나 많은지는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짐작 가능하다. 결국 돈이 없어서 AI 투자를 못할 것이라는 우려는 일축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Resilience
반면 국내에서는 AI 관련 칩 시장 전망치가 의미를 잃거나 자주 빗나갔던 이유에 대해 냉정한 반성이 필요하다. TAM을 추정하는 과정이 지나치게 복잡하고 많은 가정에 기대며, 무엇보다 생각의 깊이 자체가 부족했던 것이 아닌가. 틀리면 안 된다는 강박 탓인지 확정된 과거 수치에 집착하고, 구조적 변화를 일으키는 변수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조차 하지 않으며, “과거에 그랬으니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는 관성이 판을 쳤다.
또한 국내 반도체 대형사에서 흘러나오는 잘못된 정보에 과도하게 의존해 전후 맥락을 비판적으로 읽는 능력을 잃어버렸고, 시시각각 변하는 미래 수요 전망에 대해 인문학적 소견과 상상력이 가미된 해석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다 보니 세쿼이아가 범했던 편협함이 국내에서도 반복되었고, OpenAI의 야심찬 계획이 연달아 발표되는데도 관련 칩 수요 전망이 반영되지 않은 보고서가 여전히 넘쳤다.
AI는 아직 초입이며, 수요의 재정의가 진행 중이다. '사소한' 단기 충격은 앞으로도 반복될 가능성이 높으나, 구조적 채택 곡선은 더 가팔라질 것으로 본다.
지난 2년 내내 AI 버블 논란은 상존해 왔으며, 가장 최근 OpenAI의 공격적 행보 발표 때도, 어제도, 그리고 앞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근거가 빈약하거나 심지어 근거조차 없는 비관론에 일일이 대응하는 일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회의도 든다.
오늘부터 3Q25 미국 테크 실적 시즌이 시작된다. 관건은 AI 관련 강한 수요가 다시 확인되는가이다. 그 신호가 뚜렷하다면, 적어도 당분간은 AI 버블 논란을 일부 잠재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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