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리콴유의 강의를 다시 떠올려 보았다.
| https://www.youtube.com/watch?v=UJ2wokHa4sU&t=4s |
그 강의는 영국과 미국의 결정적인 성공과 실패의 차이를 단순히 제도나 정책이 아니라, 문화와 그 문화의 뿌리에서 설명해 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 관점이 지금 한국의 부동산·다주택자 논쟁을 바라보는 데에도 꽤 큰 시사점을 준다고 느꼈다.
1. 영국은 왜 발명을 상업화하지 못했는가: 문화의 문제
영국은 증기기관, 방직기, 전기모터 등 위대한 발명과 발견을 이루어낸 나라이다.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자도 많다.
그러나 이 발명을 사람들이 기꺼이 돈을 내고 사는 상품·서비스로 전환하는 능력, 즉 상업화 역량은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했다.
리콴유는 그 이유를 문화에서 찾는다.
2세기 넘게 제국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영국 사회는 토지·상속·구(舊)부(Old wealth), 그리고 지주 귀족 계층을 가장 높이 평가하는 구조를 만들어 왔다. 그에 비해 **신흥 부자(New rich)**는 어느 정도 경멸의 대상이었다.
우수한 인재일수록 “손을 더럽히는” 공학·제조·사업가가 되는 선택보다는, 말과 지식으로 인정받는 변호사·의사·전문직을 선호하였다.
이 가치관이 발명을 비즈니스로 연결하는 상업화의 에너지를 약화시켰다는 것이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신흥 부자도 자녀를 공립 명문학교와 대학에 보내고, 결국 상류사회에 편입되어 다시 “구(舊)부(Old wealth)”가 된다. 하지만 출발점에서부터 부를 어떻게 대하느냐의 문화적 태도는 분명히 달랐다.
2. 대처의 변화: 민영화와 가치관 전환
1980년대 마거릿 대처는 이런 영국의 가치관을 바꾸려 했다.
그녀는 국유화되어 있던 산업을 대대적으로 민영화하고, 민간기업의 이윤 추구를 정당한 가치로 인정하려 했다. 대처 세대에게 이윤은 더 이상 “더러운 단어”가 아니었다.
그 결과, 같은 기업이라도
다수의 주주에게 책임지는 민간 경영진이 운영할 때와
국가가 임명한 이사회가 운영하는 법정 공기업일 때
수익성이 어떻게 달라지는지가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났다고 리콴유는 평가한다.
즉, 소유 구조와 문화적 태도의 변화가 실제 기업 성과로 연결된 사례라는 것이다.
3. 미국의 기업가 문화: 프런티어 사회와 부(富)의 찬양
이에 비해 미국은 출발부터 프런티어(Frontier) 사회였다.
계급 장벽이 상대적으로 약했고, 돈을 버는 것 자체가 사회적으로 축하받는 일이었다.
미국은 신기술·신발명 → 사업화 → 새로운 부 창출이라는 연결 고리를 가장 역동적으로 돌린 나라이다.
치열한 특허 경쟁을 통해 더 새롭고, 더 빠르고, 더 싸고, 더 효율적인 제품을 만들어 생산성을 끌어올렸고, 그렇게 성공한 제품·서비스를 세계로 확장하였다.
성공한 기업가 뒤에는 반드시
수많은 실패한 시도,
여러 번의 실패 끝에 겨우 한 번 성공한 사람들,
성공 후에도 또 다른 회사를 만드는 연쇄(시리얼) 기업가들이 있다.
이러한 축적이 모여 오늘날 미국의 대기업들을 만들고, 미국 경제의 역동성을 형성하는 정신이 되었다고 리콴유는 본다.
4. 동아시아 문화: 유교적 위계와 기업가 전통의 약함
리콴유는 동아시아, 특히 중국·일본·한국의 문화를 유교적 위계에서 설명한다.
전통 사회에서 **사(士)–농(農)–공(工)–상(商)**이라는 위계가 있었고, 상인(merchant)은 가장 낮은 위치였다.
농업 중심 사회에서 상업은 “중간에서 마진을 취하는, 비생산적 활동”으로 보는 시각이 강했다.
유교 질서 아래 자급적 농업경제를 기반으로 한 사회는 변화에 덜 개방적이었고, 결과적으로 산업혁명이나 근대적 자본주의를 스스로 촉발하지 못했다.
똑똑한 젊은이들은 과거제(제국 시험)를 통해 **관료(만다린)**가 되는 길을 선택했다.
이 가치관은 일본과 한국에도 큰 영향을 주었고, 현대에도 중국·일본·한국의 최상위 대학 졸업생들 상당수가
민간기업·창업보다는
정부·공공기관 일자리를 상대적으로 더 선호하는 경향으로 이어져 있다.
싱가포르도 비슷했다고 리콴유는 말한다.
영국 역시 1980년대 후반까지는 옥스브리지 졸업생들이 공무원을 선호했지만, 런던 금융 자유화(‘빅뱅’) 이후 금융권 보상이 압도적으로 커지면서 인재가 빠르게 이동했다.
반면 미국은 전통적으로 우수 인재가 정부보다 비즈니스와 대기업으로 향하는 구조를 유지해 왔다.
동아시아가 오늘날 제조업 강국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국식 창업·스타트업 정신을 충분히 따라가지 못하는 이유를 리콴유는 바로 이런 문화적 뿌리에서 설명한다.
5. 한국의 다주택자 논쟁을 보며 떠오른 생각
이 관점을 떠올리다 보니, 최근 대한민국 정부가 다주택자를 악마화하며 집값을 잡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정책들에 대해 의문이 생긴다.
정말로 다주택자 = 사회의 악인가.
다주택자가 없다면 누가 월세를 공급할 것인가.
대한민국 부동산 임대 시장은 원칙적으로 없어져야 정의가 실현된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인가.
며칠 전 넷플릭스 히트작 ‘흑백요리사’를 연출한 스튜디오 슬램 윤현준 PD가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한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를 대출 없이 전액 현금으로 매입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소식을 두고, 누군가는 시기와 질투의 감정으로 “부동산 투기”를 했다고 비난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그의 성취를 축하하고, 나 역시 동기부여를 받아 더 열심히 일하면서 긍정적인 피드백 루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더 건강한 방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점차 한국 사회의 다수가 자본주의의 혜택에서 멀어질수록,
부를 일구고 돈을 버는 행위에 대한 멸시와 시기·질투가 커지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나는 오히려 부를 일구는 것 자체가 사회적으로 축하받는 일이 되는 문화가 형성되기를 바란다.
리콴유가 말한 미국식 기업가 문화의 긍정적 측면을, 우리 현실에 맞게 흡수할 필요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6. 정치와 집값, 그리고 2030 청년들
강남 3구 아파트가 40억이 되든 50억이 되든, 냉정하게 말해 대다수의 일반 대한민국 시민들의 일상과의 직접적인 연관은 거의 없다.
다만 매일같이 억 단위로 치솟는 호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시기와 질투, 상대적 박탈감이 차곡차곡 쌓여 갈 뿐이지 않나 싶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마치 강남 집값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것처럼 행동한다. 왜일까.
만약 내가 총선을 앞둔 정치인이라면, 아마도 이렇게 계산할지도 모른다.
“집값을 잡겠다는 대명분 아래,
실제로 결과가 좋지 않을 걸 알면서도
최대한 ‘투쟁하는 모습’을 보여 주자.”
집값을 잡기 위해 맹렬히 싸우는 전사 이미지를 관리하는 것이,
실제 정책 효과보다 선거 전략상 더 중요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그들의 정치적 동기와 목적이 조금 더 선명하게 보이기도 한다.
이미 떡상해 버린 서울 도심 집값으로 인해
무주택 청년들이 겪는 좌절과 피로는,
강남 3구에 이미 자가를 보유한 정치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건들면 건들수록 악화되는 민감한 문제”일 뿐이다.
그럼에도 총선을 앞둔 정치인들은,
정작 실질적인 해결보다는
자신들의 이미지 관리에 더 열중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그 과정에서 2030 청년들의 힘듦과 절망은
“알빠노”에 가까운 존재로 취급되는 것은 아닌지 씁쓸함이 남는다.
7. 다가오는 유동성의 파도와 자산 인플레이션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보태고 싶다.
앞으로 몇 년간 한국 경제와 자산시장에는 전혀 다른 차원의 유동성 파도가 밀려올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AI 기술의 진화 방향은 분명하다. 더 많은 연산, 더 많은 데이터, 그리고 그에 비례하는 더 많은 메모리를 요구하는 방향이다. 이러한 전제 아래,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같은 메모리 강자의 2026년 연간 영업이익이 400조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까지 등장하고 있다. 2027년에는 아무리 낮게 잡아도 합산 500~600조원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마저 나온다.
대한민국의 1년 예산이 700조원 안팎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숫자가 얼마나 거대한지 직관적으로 드러난다.
이는 단순히 “반도체가 잘 된다” 수준을 넘어, 국가 재정 규모에 필적하는 기업 이익이 특정 섹터에서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동시에, 작년 기준 상위 K-방산 5개사의 매출액은 약 20조원에 불과(?)하지만, 230조원이 넘는 수주풀 잔고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 수주 풀은 매일 더 늘어나는 추세이다. 방산은 한 번 사이클이 열리면 장기 계약·후속 군수·업그레이드 수요로 이어지는 특징을 감안할 때, 이 수주 잔고는 향후 현금흐름과 이익의 어마어마한 원천이 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K원전, K조선, K전력기기 등등 K-제조업 전반이 완연한 호황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외국인의 국내 주식 순유입액이 일평균 1조원을 넘어서고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 자금은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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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자산시장의 재평가(리레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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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전반의 밸류에이션 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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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에 따른 막대한 유동성 공급
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 구조가 의미하는 바는 간단하다.
앞으로 한국은 자산 인플레이션을 피할래야 피하기 어려운 구조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8. 다주택자 때려잡기로는 막을 수 없는 자산 인플레이션
이처럼 실물·수출·방산·조선·원전·반도체·AI가 동시에 만들어 내는 유동성의 파도 앞에서,
“다주택자들 때려잡으면 집값이 잡힌다”는 식의 단순한 서사는 설득력이 점점 떨어진다는 점이다.
이미 글로벌 자본이 한국 제조에 베팅하고 있고,
이 과정에서 한국 자산시장 전체가 재평가되는 국면에 들어가고 있다면,
부동산은 그 거대한 유동성이 흘러 들어오는 주요 자산 클래스 중 하나가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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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자산 인플레이션의 근원은 다주택자가 아니라 유동성과 성장 기대에 가깝다.
이를 무시한 채 다주택자를 악마화하는 담론에만 몰입하는 것은,
정작 구조적 원인은 건드리지 않은 채 표적만 바꾸는 정치적 쇼에 불과할 위험이 크다.
나는 지금 한국 시장 곳곳에서
곧 엄청난 유동성이 한국 자산시장에 불어닥칠 전조 현상들이 포착된다고 느낀다.
오히려 이상한 것은, 이런 이야기를 제대로 구조적으로 짚어주는 기사나 논의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9. 맺으며: 부를 둘러싼 문화의 선택
리콴유가 지적했듯, 한 사회가
부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기업가와 투자자, 다주택자, 신흥 부자를 어떤 시선으로 대하는지
는 단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장기적인 성장 경로를 결정하는 문제이다.
영국이 구(舊)부(Old wealth) 중심의 문화에서 벗어나
민영화와 기업가 정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던 것처럼,
동아시아 역시 유교적 위계와 상인·기업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어느 정도 정리할 필요가 있다.
한국 사회가
부를 일구는 사람을 악마화하고 낙인찍는 방향이 아니라,
정당하게 번 부와 성취를 축하하고 학습하며, 다음 세대의 동기부여로 이어가는 방향을 선택하기를 바래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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