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초년생 시절의 이야기다.
체험형 인턴을 거친 뒤 들어간 첫 직장인 증권사는 내가 먼저 나왔다. 그다음으로 입사한 운용사에서도 2~3개월 수습기간을 거친 끝에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고, 결국 또다시 자진퇴사를 했다. 졸업은 했지만, 갈 곳이 없었다. 정신적으로 미숙했고, 세상물정도 잘 모를 때였다.
집에 혼자 있으니 조바심이 점점 커졌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인력사무소를 여러 번 찾아갔지만, 돌아올 때마다 손에 쥔 것이 없었다. 그러다 네이버 밴드에서 겨우 일자리를 하나 찾았다.
현장은 서울 한복판, 4층짜리 병원 건물 내부 공사장이었다. 목공팀에 합류해 합판을 나르고, 바닥에 널린 쓰레기를 치우고, 가끔 타카를 쏘는 일을 했다. 팀 형님들 나이대도 비슷했고 분위기도 나쁘지 않아, 일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체력이었다. 형님들은 합판을 4~5장씩 한 번에 훌쩍 나르는데, 나는 2~3장만 어깨에 올려도 계단을 오르내리다 보면 다리가 금세 풀렸다. 옆에서 형님들이 약간 불안한 눈빛으로 지켜보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래도 집에서 불안하게 멍하니 있는 것보다는 나았다. 땀을 흘리며 몸을 움직이고 있으니, 최소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는 않다’는 생각에 조금은 안심이 됐다.
하지만 빗자루로 바닥을 쓸고, 포대자루를 정리하다 보면 생각이 자꾸 딴 데로 흘렀다.
‘지금쯤 증권사 동기들은 회사에서 일하고 있겠지.’
‘정장 입은 사람들은 각자 사회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겠지.’
혼자 그 무리 밖으로 튕겨져 나와 먼지 날리는 공사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는 순간, 잠시 가라앉았던 근심이 다시 올라왔다.
그럼에도 내가 절박해 보였는지, 공사가 끝나갈 무렵 형님들이 지방 공사에 내려가는데 같이 가보지 않겠느냐고 물어왔다. 하지만 그때 나는 아직 주식투자에 대한 미련과 열의가 남아 있었다. 결국 공손하게 거절했다.
2주 정도 공사가 끝난 뒤에는 여기저기 면접을 다녔다. 그래도 집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은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다음으로 선택한 일이 엘리베이터 설치 조공이었다. **엘리베이터 설치기사 형님 두 분을 따라다니며 보조하는 일이었다.
현장에 나가기 전, 여의도 IFC 고층에 있는 **엘리베이터 본사에서 하루 종일 안전교육을 받아야 했다. 교육장에 앉아 있다가 문득 창밖을 보니, 맞은편 옛 신한투자증권 건물 회의실이 눈에 들어왔다. 하얀 와이셔츠를 입은 회사원이 앞에 서서 열심히 PT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사람들은 회사에 앉아서 키보드 몇 번 두드려서 수억을 벌겠지. 좋겠다.’
가공되지 않은, 아주 단순한 부러움이었다. 그러나 엘리베이터 설치 현장에 몇 번 나가 보고 나니, 단순히 힘든 수준을 넘어 ‘잘못하면 크게 다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위험하게 느껴졌다. 결국 형님들께 양해를 구하고 그만두겠다고 했다.
그 후 급하게 다시 들어간 곳은 작은 운용사였다. 간판은 운용사였지만 실제로는 리서치보다는 영업에 더 가까운 회사였다. 내가 생각하던 방향과는 달랐고, 여기서도 자진퇴사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다음에 운 좋게 들어간 곳이 대형 주식운용사였다. 채용 방식이 조금 특이했는데, 6~7명이 한 종목을 한 달쯤 깊게 리서치한 뒤 마지막에 모여 토론을 하고, 그중 2명을 뽑는 구조였다. 다행히 그 두 자리 안에 내가 포함됐다.
그당시 공부했었던 종목이 덴티움이었다.
그때의 기쁨은 이전에 증권사나 운용사에 합격했을 때보다 훨씬 컸다. 다시 가고 싶었던 업계로, 크게 한 바퀴 돌아 되돌아온 느낌이었다.
돌아보면, 그전에 쌓였던 불안과 절박함이 이미 목까지 차 있었기 때문에 정말 절실하게 준비했다. 그래서였는지 토론도 생각보다 수월하게 풀렸던 것 같다.
그 시기에 나는 사람의 눈높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울 수 있는지를 알게 됐다. 업계 지인도 생기고, 동기도 있고, 단체 카톡방도 몇 군데 있다 보니, 어느새 스스로를 ‘이 정도는 되는 사람’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그 무리에서 제 발로 빠져나와 일용직을 전전하는 현실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예전보다 더 잘되어야 한다’는 압박이 생겼고, 그 압박이 오히려 당시의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수습을 마치고 정사원이 된 동기들이 부럽기도 했고,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며 나 스스로도 말하기 어려운 부끄러운 행동들을 많이 했던 시기였을 것이다.
그래도 그 시간을 지나고 나니 남은 것이 있다.
만약 그 시절이 없었다면, 부끄러워할 줄도 모르고, 제대로 된 창피함 한 번 느껴보지 못한 채 지금의 내가 되어 있었을 것이고, 어쩌면 그게 더 큰 화근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남들 눈에는 별것 아닌 일처럼 보이겠지만,
일용직 현장에서 몇 번이고 깨지고 욕도 먹으며, 대놓고 무시당하지는 않더라도 묘한 거리감과 냉대를 견뎌 본 시간이 있다.
스스로에게 “블루칼라 기술직이 화이트칼라보다 더 고귀하다. 노동의 땀에는 분명한 가치와 무게가 있다”고 되뇌어 놓고도, 먼지를 뒤집어쓴 채 도심 식당에 들어서는 순간 주변을 의식하며, 남들이 아니라 결국 내 자신부터가 내가 세운 기준을 가장 먼저 흔들어 버리던 때였다.
그때의 무모하고 멍청해 보였을 행동들에 대한 후회와 부끄러움, 창피함을 온전히 감당해 본 경험이 남았다.
그 경험 덕분에,
두려움을 이유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주저앉는 것보다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일단 부딪쳐 보고,
필요하다면 한 번쯤 크게 깨져보는 편이 낫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그 시절의 부끄러움을 떠올릴 때마다,
지금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함과
언제든 시장과 세상이 나를 밀어낼지 모른다는 불안함이 함께 올라온다.
그리고 나는 그 불안을 원동력 삼아, 버티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마음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아마 그 불안했던 시기를 통과하지 않았다면,
정신적인 미온함과 미숙함은 고쳐지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또 다른 깨달은점은 개인적인 노력과 절박함 없이, 남이 만들어준 기회와 운에만 기대 얻은 것은 진짜 의미의 ‘기회’가 아니다.
운 좋게 취업이 빨랐던 당시에는 그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몰랐고, 나는 그 기회를 제 발로 걷어찼다. 그때의 선택이 얼마나 큰 기회였는지는 더 아래로 내려가 보고, 더 절박해진 뒤에야 알게 됐다. 그 과정에서 완전히 주저앉아 버렸다면, 그게 한 번 왔던 기회였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요즘처럼 불장에서 마우스 클릭 몇 번으로 돈을 버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지는 시기일수록, 나는 가끔 그 시절을 떠올린다. 스스로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다. 이번 연휴에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이렇게 옛 기억을 다시 적어 보게 됐다.
대화는 결국 공감 위에서만 가능하다고 한다. 돌이켜보면, 주식투자를 떠나 사람 대 사람으로 내적 친밀감이 생겼었던 이들은 대부분 비슷한 감각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잠깐 몸담았던 운용사에서도 유독 인상 깊었고 내적으로 동질감을 느꼈던 분들이 있었다. 반지하 방에서 장마철마다 물이 차오르는 고단한 시절을 버텨낸 분,
운용사 미들오피스 마케팅으로 입사했지만 프론트 운용역으로 이직하고자, 퇴사를 각오하고 매달린 끝에 결국 프론트 운용역으로 다시 자리 잡아 성과를 낸 분이었다.
공통점은 분명했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았고, 과거의 어렵고 힘들었던 시간을 잊지 않은 채 그때의 기억과 불안을 품고 살아가던 사람들이었다.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그런 사람들이 결국 일에서도 사람으로서도 더 단단해지고, 더 좋은 방향의 ‘성공’을 만들어 가는 경우가 많았던걸로 기억된다.
주식운용과 리서치를 계속할 수 있음에 감사함을 알고,
시장이 언제든 자신을 밀어낼 수 있다는 불안을 알고,
그 불안에서 도망치기보다 책임을 지려는 마음이 있는 사람,
잃을 것이 있고, 그것을 스스로 책임지려는 사람들이다.
나는 예전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아무리 무엇을 이뤘다고 생각해도, 언제든 다시 다 잃을 수 있다는 근거 없는 두려움이 여전히 남아 있다. 그 두려움이 내적인 긴장감으로 작동하고, 그 긴장감이 다시 시장 앞에서의 겸손함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반대로 잃을 것도 없고, 책임질 것도 없고, 인센티브도 희미한 상태에서 안정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지내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당장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고, 생존에 직접적인 위협을 느끼지 못하는 환경에 오래 익숙해지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이 업계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이렇게 생각한다.
어느 정도의 불편함과 불안을 안고 가는 것,
일정 수준의 리스크와 불확실성을 감수할 준비를 늘 해 두는 것,
눈앞의 기회를 가볍게 흘려보내지 않으려는 태도를 놓치지 않는 것.
정말 워런 버핏처럼 밤에 두 발 뻗고 편안하게 잠을 자며, 평생 자신이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도 가치투자의 ‘정도’를 지키는 삶이 가능한가, 하는 회의가 밀려올 때도 많다.
하지만 애초에 이 세계에는 하나의 정답이나 하나의 정도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틀렸다고 단정하기보다는, 서로 다른 방식이 존재할 뿐이라고 받아들이는 편이 지금의 내 결론에 더 가깝다.
애초에 나는 워런 버핏식 가치투자의 기질과는 맞지 않는 투자자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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