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잠시 대전에 내려가는 길에 케빈 워시가 차기 연준 의장으로 지명되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 https://namu.wiki/w/%EC%BC%80%EB%B9%88%20%EC%9B%8C%EC%8B%9C |
나는 케빈 워시를 **“연준을 2008년 금융위기 이전의 모습, 즉 더 작고 덜 개입적인 중앙은행으로 되돌리고자 하는 인물”**로 보고 있다.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질문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2008년 이전의 연준은 어떤 통화정책 체계였으며,
2008년 금융위기와 그 이후의 극복 과정에서 연준은 어떻게 변형·팽창되었는가.
이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당시 연준 의장이었던 벤 버냉키의 자서전 『21세기 통화정책』을 다시 펼쳐보았다. 금융위기 대응 과정은 주로 2부 5장부터 비교적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 행적을 따라가면서, 오늘의 연준, 그리고 케빈 워시 체제의 방향을 함께 생각해보고자 한다.
1. 서브프라임 위기와 시스템 리스크의 전이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지면서 미국 주택시장이 붕괴하기 시작한다. 주택가격 하락은 단순한 부동산 조정을 넘어, 이를 기초로 한 MBS·CDO 등 파생상품 시장을 거쳐 금융 시스템 전반의 리스크, 더 나아가 글로벌 금융시장 시스템 리스크로 번져 나간다.
주택·파생상품 가격 급락 → 금융기관 손실 확대 → 담보가치 하락 → 추가 매도 압력이라는 메커니즘이 겹치면서, **패닉 셀(panic sell)**이 글로벌 자산가격을 끌어내리고, 다시 가격 하락이 추가적인 패닉 셀을 부르는 자기강화적 악순환이 형성되었다.
이 시점에서 연준은 전통적 의미의 **최종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로서 개입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위기의 속도와 범위는 기존의 틀을 완전히 넘어서는 것이었다.
2. 대출창구의 낙인 효과와 ‘비전통적’ 최종대부자
연준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대출창구(Discount Window) 조건을 대폭 완화하고, 금융시스템에 유동성을 공급하고자 했다. 그러나 당시 은행들의 증언에 따르면
연준 대출창구를 이용하는 행위 자체가
“재정상 문제가 있는 은행”이라는 **낙인(stigma)**으로 비칠 것을 우려하여
자금이 절박한 은행조차 창구 이용을 꺼리는 상황이 벌어졌다.
결국 전통적인 최종대부자 수단은 심리적·평판적 제약에 막혀 충분히 작동하지 못했다.
한편 신용경색은 금융부문에서 민간 실물부문으로 빠르게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연준은 “은행의 은행”에 머무는 수준을 넘어, 비금융 부문에까지 직접 개입하는 최종대부자 역할을 떠맡게 된다.
민간 상업어음(Commercial Paper) 시장 지원
ABS(자산유동화증권) 매입 및 유동성 공급
을 통해 연준은 사실상 민간 신용시장을 직접 떠받치는 플레이어로 전환되었다. 이는 2008년 이전 연준의 역할과 비교하면 범위와 강도 면에서 질적으로 다른 단계이다.
| 2008 금융위기를 전후로 급증한 FED BS |
3. 글로벌 달러 부족과 ‘세계의 중앙은행’ 역할
위기가 심화되면서 미국 금융회사뿐 아니라 해외 은행들 역시 달러 자금 확보에 몰리기 시작한다. 이른바 **국제 달러 부족(dollar shortage)**가 발생하자 해외 은행들은 미국 단기자금시장으로 몰려들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전염 조짐이 커지자 연준은 해외 중앙은행들과 대규모 통화스와프(swap line) 협정을 체결한다. 연준이 달러를 공급하고 각국 중앙은행이 이를 자국 은행에 재공급하는 구조를 통해, 연준은 사실상 전 세계를 상대로 하는 최종대부자로서 기능하기 시작한다.
시스템 리스크의 전파 속도가 너무 빨랐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스와프 라인과 비상 유동성 공급은 최소한 더 큰 붕괴를 막는 방화벽 역할을 수행했다고 볼 수 있다.
4. 베어스턴스, 리먼, 머니마켓 뱅크런, 지급준비금의 팽창
베어스턴스 파산에 이어 리먼 브라더스 파산이 발생하면서 시장의 공포는 극단으로 치닫는다. 이 와중에 대표적인 머니마켓 펀드였던 **리저브 프라이머리 펀드(Reserve Primary Fund)**가 리먼 채권을 상각하면서 기준가 1달러를 지키지 못하고 1달러 아래로 내려가는, 이른바 ‘브레이크 더 벅(break the buck)’ 사태가 실제로 발생한다.
이 사건은 머니마켓 펀드 전반에 대한 신뢰를 흔들었고, 며칠 사이에 대규모 자금 이탈이 발생하는 사실상의 뱅크런으로 이어졌다. 이에 미국 재무부는 머니마켓 펀드에 대한 임시 보증 프로그램을 도입하며, 기존 예금보험 범위를 넘어서는 공적 안전망으로 추가적인 뱅크런을 차단하고자 했다.
이러한 조치가 이어지는 동안 은행 지급준비금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고, 이는 이후 통화정책 운용에서 구조적 제약요인으로 남게 된다. 이때부터 연준의 대차대조표( Fed BS)는 기존 평시 수준과는 다른 새로운 레짐으로 진입한다.
5. 장기증권·MBS·국채 매입: 양적완화(QE)의 출발
각종 대출 프로그램과 통화스와프 협정 등으로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했음에도 시장이 진정되지 않자, 연준은 더 나아가 대규모 장기증권 매입, 즉 **양적완화(QE)**를 도입한다.
이른바 QE1은 2008년 말 발표되어 2010년 봄까지 집행되었고, 대략 다음과 같은 구조를 갖는다.
기관채(Agency Debt)·MBS(주택저당증권) 대규모 매입
장기국채 추가 매입
특히 연준은
모기지 시장 붕괴를 막기 위해 **패니메이(Fannie Mae)와 프레디맥(Freddie Mac)**을 사실상 공적 관리체제로 편입시키고,
이들이 발행한 MBS를 직접 대규모 매입함으로써
미국 주택금융 시스템 전체를 연준의 자산·부채 구조 안으로 끌어들였다고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해외 투자자들은 미국 금융시스템에 대한 정부·연준의 과도한 개입을 경계하며 MBS를 매도하기 시작했고, 이 물량 상당 부분을 연준이 사실상 받아내는 구조가 형성되었다. 동시에 연준은 장기국채 매입을 통해 국채시장에도 직접 개입했다.
이때부터 미국 통화정책은 단기금리 조정 중심의 전통적 틀을 넘어, ‘대규모 자산매입(Large-Scale Asset Purchases)’이라는 새로운 차원으로 이동한다.
| QE1 |
6. 제로금리·포워드 가이던스·점도표의 등장
증권 매입에 이어 연준이 취한 또 다른 축은 다음 두 가지이다.
정책금리를 사실상 제로 수준까지 인하(ZIRP)
포워드 가이던스(향후 금리 경로에 대한 사전 안내) 도입
이 시기에 도입된 **점도표(dot plot)**는 FOMC 위원들이 예상하는 향후 정책금리 경로를 시장에 투명하게 공개하는 수단으로, 이후 연준 커뮤니케이션의 상징 같은 존재가 되었다.
연준은 민간채·국채 매입을 위해 막대한 기준통화(지급준비금)를 공급했고, 그 결과 연준 내부에서도
물가상승(인플레이션)
자산 인플레이션(자산버블)
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버냉키는 통화공급이 늘어나더라도 ‘시중에 돈이 실제로 돌지 않으면’ 당장의 물가·자산가격 급등은 제한적이라고 보았고, 일본의 장기 디플레이션 경험을 근거로 이러한 우려에 반론을 제기한다.
동시에 그는 장기국채·MBS 매입을 통해 장기금리를 낮추면,
대출시장 활성화
기업 투자 확대
주택·자동차 등 내구재 소비 확대
를 유도하여 단기 경기부양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정책의 이점을 강조했다.
7. QE1의 종료와 ‘광의의 QT’ 구상, 그리고 레포 시장
QE1은 2010년 봄을 전후해 매입이 종료되며 일단락된다. 위기의 가장 급박한 국면이 지나가자, 2009~2010년에는 곧바로 QE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다.
버냉키 역시 QE의 부작용을 인식하고 있었고, 어느 시점에는 비대해진 연준 보유자산을 축소하고, 필요하다면 매각까지 검토하겠다는 의향을 내비친다. 자산 축소 과정에서 필요한 유동성은 **은행 외 기관투자가(머니마켓 펀드 등)**로부터 단기자금을 조달해 충당하는 방안이 논의되었고, 이는 이후 레포(Repo) 시장 구조를 적극 활용·확대하는 계기와 맞물리게 된다.
다만 이 시점에서 연준이 실제로 나아간 방향은 “대규모 적극적 자산매각”이 아니라,
추가적인 BS 확대는 자제하고,
만기 도래 자산의 재투자 여부를 조정하면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정상화를 도모하는
정도의, 일종의 ‘광의의 QT’ 구상에 가까웠다. 방향은 “줄인다”였지만, 실질 행동은 “더 이상 크게 늘리지 않는다”에 가까웠다고 볼 수 있다.
8. 유럽발 위기와 QE2, 그리고 EM 자산 버블
그러나 곧 유럽발 재정·금융위기가 터지면서 미국 경기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나타나고, 미국 경제는 다시 하방 압력을 받기 시작한다.
이에 2010년 말 연준은 '광의의 QT' 실행을 접고 **2차 자산매입(QE2)**를 재결정한다. 핵심은 다음과 같다.
일정 기간 동안
장기 국채를 매달 상당 규모(약 750억 달러 수준)의 속도로 매입
하는 프로그램으로, 연준의 BS는 다시 한 번 확대된다.
QE2는
향후 인플레이션 가능성을 키우고,
인위적인 자산 버블 형성 위험을 높이며,
더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는 글로벌 자본이 신흥국(EM) 시장으로 대거 유입되는 계기를 제공했다.
그 결과 EM에서는
통화 강세
자산가격 상승
은행대출 확대
가 겹치면서 EM 자산 버블 성격의 호황이 전개되었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 QE2 |
9. 오퍼레이션 트위스트와 만기 구조 왜곡
유럽위기는 장기화되었고, 미국 내에서는
부채한도 문제를 둘러싼 입법부–행정부 갈등,
금융위기 후유증을 반영한 대출기관·감독당국의 엄격한 자본규제
등이 겹치며 경기가 다시 약세를 보인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연준은 2011년 **오퍼레이션 트위스트(Operation Twist, 만기연장 프로그램)**를 발표한다.
장기 국채를 추가로 매입하는 대신
단기 국채를 매각하여 재원을 마련함으로써,
대차대조표 총량은 크게 늘리지 않으면서
보유 포트폴리오의 평균 만기를 장기로 늘리는 방식이다.
이 조치는 장기금리를 보다 직접적으로 낮추는 효과를 노린 것이지만, 동시에 연준이 보유한 채권의 평균 만기를 길게 만들었다. 이는 훗날 대차대조표를 줄이고자 할 때 자산을 되팔거나 상각하는 과정이 더 어려워지는 구조를 만들어냈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럼에도 당시에는 위기 전염을 막고 시간을 벌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논리가 우세했다.
10. QE3, 무제한 매입 약속, 긴축발작, 그리고 완만한 SOFT LANDING 시도
2012년 중반까지 유럽 경제는 여전히 약세를 벗어나지 못했고, 그 여파가 미국으로 전염되자 연준은 다시 한 번 공격적으로 나선다.
2012년 9월 연준은 **3차 QE(QE3)**를 발표한다.
우선 매월 400억 달러 규모의 MBS를 기한 없이(open-ended) 매입하겠다고 선언하고,
이후 매월 450억 달러 규모의 장기 국채 매입을 추가해,
결과적으로 **매월 850억 달러(400억 MBS + 450억 국채)**를 순매입하는 구조를 만든다.
공식 문구상 “특정 연도까지”라는 달력식 기한을 직접 명시한 것은 아니지만,
고용·인플레이션 조건이 충족될 때까지 매입을 지속하겠다는 조건부 약속과
당시 제시된 금리 포워드 가이던스를 감안하면
시장은 이를 장기간 지속되는 초완화 국면으로 받아들였다.
이때 QE3의 핵심 특징은 그것이 사실상 “무제한적(open-ended)” 성격을 띠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비판은 명확했다.
이런 방식은 연준 대차대조표만 비대하게 만들 뿐이며,
고용·성장에 대한 실질 기여는 제한적일 수 있고,
무엇보다 출구전략(Exit)을 극도로 어렵게 만드는 유산을 후대에 남긴다는 것이다.
연준은 이러한 비판을 의식해,
프로그램의 효과가 제한적이거나
비용이 지나치다고 판단될 경우
언제든지 채권매입 프로그램을 종료할 수 있다는 면책조항을 포함시킨다.
이후 고용시장이 실제로 개선되기 시작하자, 버냉키는 자산매입 축소(taper)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을 한다. 2013년 이 발언이 나오자 **미국 장기금리가 급등하고, EM 자산에서 자금이 대거 이탈하는 ‘긴축발작(taper tantrum)’**이 발생한다.
연준은 이 긴축발작을 직접 목도한 뒤, 급격한 축소·매각 시나리오에서 한발 물러서게 된다.
대규모 적극적 자산매각이 아니라
매입 규모를 단계적으로 줄이고(taper)
만기 도래·재투자 정책을 조정해
시간을 두고 BS를 정점에서 천천히 내려놓는
방식의 완만한 SOFT LANDING 시도로 전략을 수정한다.
버냉키는 2013년 12월부터 월간 매입 규모를 감소시키기 시작해, 결국 2014년 10월 QE3를 종료한다. 이 과정에서 QE는 **“무제한 매입–급격한 출구”가 아니라, “긴축발작을 계기로 속도를 조절한 완만한 축소”**라는 형태로 일단락되었다고 정리할 수 있다.
| QE3 |
11. 팬데믹 시기의 QE 재가동과 연준 BS 재팽창
그러나 한 번 끝난 QE가 영원히 봉인된 것은 아니었다. 2020년 팬데믹 사태가 닥치자, 연준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의 경험을 사실상 정식 매뉴얼처럼 다시 꺼내 든다.
제로금리 재도입
대규모 자산매입 재개
각종 대출 프로그램 재가동 및 확대
을 통해 연준은 다시 한 번 대규모 유동성을 시스템에 주입한다. 그 결과 연준의 대차대조표는 역사적 고점 수준까지 비대해졌고, 이후 정상화 과정에서 이 비대함을 어떻게, 어느 속도로 줄여 나갈 것인지가 통화정책의 핵심 난제로 부상했다.
버냉키가 참고했던 역사적 교훈은 명확하다. 대공황 시기 연준은 뱅크런 국면에서 충분한 유동성을 공급하기는커녕, 오히려 통화를 축소함으로써 최종대부자 역할에 실패했고, 그 결과 위기의 규모와 피해가 극단적으로 확대되었다는 점이다.
즉, 버냉키 시대 연준은 **“위기 시에는 무엇보다 먼저, 그리고 크게 유동성을 공급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체질이 바뀌었고, 이 틀은 팬데믹 시기까지 반복 적용되었다.
| Covid19 전후 |
12. 케빈 워와 ‘자산매각을 통한 연준 축소’라는 메시지
이제 시선을 다시 케빈 워시로 돌려보자.
워셔는
위기 당시 연준 이사로서 비상조치에는 동참했지만,
이후 QE2·QE3와 비대해진 연준 BS에 대해 꾸준히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해 온 인물이다.
그의 문제의식은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위기 시 QE는 불가피할 수 있으나, 그 이후 BS 정상화에 실패하면
자산가격 왜곡,
레버리지 확대,
재정규율 약화
를 초래한다.
앞으로의 통화정책은 금리만이 아니라 BS 규모 자체를 정책 레버로 활용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연준이 직접 자산을 매각(outright sale)**해서 BS를 줄여야 한다.
즉, 워셔를 둘러싼 핵심 메시지는, 단순한 “QT(재투자 중단·만기 방치)”라는 완곡한 표현을 넘어,
**“연준이 들고 있는 국채·MBS를 실제 시장에 ‘매각’함으로써,
비대해진 연준의 몸집과 영향력을 구조적으로 줄이려 한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히 만기 도래를 기다리며 자연스럽게 줄이는 수준이 아니라,
국채와 MBS 등 보유자산을
실제 시장에 내다 파는(outright sale) 방식을 통해
연준의 BS를 줄이겠다는, 보다 공격적이고 명시적인 연준 축소 시나리오라는 점에서 의미가 다르다.
맺음말: 새로운 파티장, 민간형 QE, 그리고 펀치볼의 자리 이동
전통적으로 연준 의장을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비유가 있다.
경기가 과열되기 시작하면
파티가 무르익기 전에 펀치볼(punch bowl)을 치우는 사람이 바로 연준이다.
과거의 파티는 상대적으로 단순했다. 단기 정책금리 하나가 파티의 온도를 결정했다. 금리를 올리면 파티 열기가 식고, 금리를 내리면 다시 달아오르는 구조였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마주한 파티장은 다르다.
거대해진 연준의 대차대조표(BS),
여러 차례 QE로 인위적으로 낮춰놓은 장기금리,
위험자산·부동산을 떠받치는 포트폴리오 채널,
정부의 막대한 적자·부채를 가능하게 만든 준(準)재정 기능
이 모두가 한데 얽혀 있는, 완전히 다른 구조의 파티장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케빈 워시는 단순히
“금리가 너무 낮아지면 펀치볼을 치우는 전통적 연준 의장”
으로만 설명하기 어렵다.
워셔를 이해하는 보다 적절한 비유는 다음에 가깝다.
“QE와 비대해진 연준 BS라는 새로운 파티장 한가운데서,
그 파티를 가능하게 만든 펀치볼 자체를 없애려 하는 인물”
이라는 것이다.
워셔가 상정하는 긴축은 금리만을 올리는 고전적 긴축이 아니다.
연준의 자산매입을 되돌리고,
보유 국채·MBS를 실제로 시장에 매각하며,
그 과정에서 연준의 크기와 시장 개입 범위를 구조적으로 축소하는 방향이다.
여기에 더해, 최근 논의에서 등장하는 **“QE의 주체가 연준에서 민간은행으로 이전된다”**는 평가는, 워셔 체제에서 다음과 같은 시나리오를 염두에 둔 것이다.
첫째, 연준은 금리 수준을 상대적으로 낮게 유지하거나 인하하면서도,
둘째, 보유한 국채·MBS를 매각해 BS를 줄이고,
셋째, 그 물량을 미국 은행·보험·자산운용사가 자기 대차대조표(레버리지)를 확장하며 떠안는 그림이다.
형식상으로는 연준 입장에서 QT·자산매각이 진행되지만, 시스템 전체로 보면 **장기금리 안정과 재정소화 기능을 민간이 대신 수행하는 “민간형 QE”**와 비슷한 구조가 된다.
이 경우 글로벌 자산시장에서는 몇 가지 변화가 동시에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연준이라는 가격에 둔감한 매수자가 사라지면서,
장기 듀레이션에 대한 보상인 term premium이 다시 올라갈 소지가 커진다.은행과 금융기관의 대차대조표가 국채·MBS 쪽으로 더 많이 배분되면,
상대적으로 **EM·크레딧·주식 등 위험자산에 할당할 수 있는 위험 수용 능력(capacity)**이 줄어든다.이 조합은 결과적으로 글로벌 위험자산 밸류에이션에 조정 압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EM 환율 측면에서 보더라도, 표면적으로는 기준금리 인하가 달러 약세·EM 통화 강세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연준 BS 축소와 민간형 QE로 인해
글로벌 달러 유동성이 축소되고,
스트레스 국면에서는 EM에서 자금이 먼저 빠져나가는 구조가 강화되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는 EM 통화 약세·달러 강세 쪽으로 기울 가능성을 무시하기 어렵다.
미국채 금리는 또 다른 방향에서 재조정 압력을 받게 된다.
향후 기준금리 경로에 대한 기대는 워셔–트럼프 조합 하에서 내려갈 수 있지만,
연준이 떠안고 있던 듀레이션을 민간이 대신 가져가는 과정에서
term premium이 다시 위로 올라갈 여지가 크다.
이 두 힘이 겹치면, 10년·30년 금리가 이론적으로 예상되는 것만큼 잘 내려가지 않거나, 오히려 상승하는 그림도 충분히 상정 가능하다.
정리하면, 케빈 워시를 이해하는 일은 단순히
“그가 매파인가, 비둘기인가”라는 이분법을 가르는 것이 아니라,
보다 큰 틀에서
위기 때마다 반복된 QE와 비대해진 연준 BS라는 새로운 파티장이 어떻게 해체될 것인지,
그 과정에서 펀치볼은 어디까지 치워질 것인지,
QE의 주체가 연준에서 민간으로 이동할 때 글로벌 자산시장·EM 환율·미국채 금리가 어떤 새로운 균형점을 찾게 될 것인지
를 함께 읽어내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끝
#글을 마치며
6월 지방선거 이후 8월 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코스피 5,000, 코스닥 3,000을 외쳐왔던 정치권이 앞으로 어떤 평가와 메시지를 내놓을지 궁금해진다.
다만 현재의 지수 수준을 두고, 이를 정치권의 어떠한 “성과”로 해석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국 증시의 상승은 정치권의 특정 정책의 직접적인 결과라기보다는,
OpenAI를 비롯한 글로벌 AI 기술 발전이 우연히 메모리 수요를 구조적으로 끌어올린 점,
동시에 글로벌 레짐 변화 속에서 한국의 방산·조선·원자력 산업에 대한 수요가 확대된 점
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는 편이 현실에 더 부합한다고 판단된다. 다시 말해, 한국 증시는 운 좋게도 현재의 글로벌 사이클에서 선택받은(side beneficiary) 측면이 크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케빈 워시의 통화정책 방향에 따라 한국 증시의 중장기 흐름이 크게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 만약 그의 행보가 지금까지의 발언과 시그널에서 짐작되듯 한국 증시에 부정적인 방향으로 전개된다면, 그때에도 이를 정치권의 어떤 “노력”의 결과로 해석할 것인가 하는 점에서 다소 회의적이다.
정리하면, 현재와 같은 지수 수준은 국내 정치권의 의지나 정책만으로 설명하기보다는, 글로벌 유동성·기술 패러다임·안보 레짐 변화 속에서 한국 자산이 상대적으로 간택된 결과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타당하다고 생각하며,
그 흐름이 이제 반대 방향으로 전환되기 시작하는게 아닐까 한다. 만약 하락 국면이 본격화될 경우, 특히 국내 레버리지 투자자를 중심으로 손실의 책임을 묻는 비난의 화살이 정부와 정치권으로 향할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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