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9일 월요일

이모저모

오늘같이 연기금 리밸런싱 수급으로 주가가 크게 흔들리는 날이면, 이상하게도 손이 잘 움직이지 않는다.

해야 할 일이 없어서라기보다, 이런 날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애초에 많지 않다는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시장을 보고 있는 시간보다, 멍하니 과거를 떠올리는 시간이 더 길어진다. 오늘은 날도 우중충하고 갑자기 추워졌다. 업계에 처음 들어왔던 시절의 공기와 감정이 겹쳐 올라와, 그냥 기록처럼 남겨본다.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 나는 ‘장기투자’와 ‘가치투자’라는 말에 깊게 취해 있었다. 정말 좋은 종목 하나만 찾으면 된다고 믿었다.

한 번만 제대로 찾으면, 나도 복리의 마법으로 금방 부자가 될 것 같았다. 지금 와서 보면 너무 단순했고, 너무 순진했다.

그때의 나는 투자가 마치 정답이 있는 시험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답만 찾으면 끝나는 수학문제처럼.

그래서 나는 그해 대학 여름방학을 통째로 투자에 바쳤다. 집에 혼자 틀어박혀 상장기업 재무제표를 하나씩 뜯어봤다. 재무비율을 손으로 계산하고, 숫자 뒤에 있는 사업을 이해하려고 기업과 산업을 파고들었다.

그때는 그 시간이 쌓이면 언젠가 ‘딱 하나의 확신’이 생길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정신 차려보니 시간이 흘러 있었고, 어느새 나는 30대 중반이 되어 있다. 그때의 나는 마치 사막 한가운데서 길을 잃은 낙오자가 신기루에 홀려 낙원을 찾듯 무언가에 홀려있었지 않았었나 싶다.

초기에는 길고양이 마냥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스터디도 기웃거리고, 부띠끄도 기웃거리고, 증권사와 운용사도 기웃거렸다. 어딘가에는 답이 있을 것 같았다. 누군가는 더 높은 곳에서 정답을 내려다보고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해진 건, 투자에 정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결국 사람들은 각자 다른 투자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자기만의 방식으로 버티고 있다는 것. 어떤 철학은 멋있어 보였고, 어떤 철학은 위험해 보였지만, 돌아보면 그 어떤것도 애초에 이상적인 투자정답이란 없었던것이 아닐까 싶다. 

나 역시 고집이 있는 편이었다. 처음엔 그 고집이 내 무기라고 믿었다. 남들이 흔들릴 때 나는 끝까지 버텨 내가 맞았다는걸 증명해내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고집은 무기가 아니라 편향이 될 수 있다는 걸. 투자 종목의 풀을 넓히고, 산업을 넓히고, 그 너머의 정치·경제·사회·지정학까지 사고의 폭을 넓히다 보니, 내가 붙들고 있던 확신들이 하나둘씩 흔들렸다. 

더 많이 볼수록, 한 가지 관점으로 끝까지 우기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내 고집은 ‘사라졌다’기보다, 현실에 의해 깎여나갔다라는 표현이 좀 더 정확한 것 같다.

그런데 고집이 줄어드니,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요즘의 나는 ‘반짝이병’에 걸린 사람 같다. 어제 좋아 보이던 종목도, 오늘 더 좋아 보이는 종목이 나타나면 별 미련 없이 갈아탄다. 

예전의 나는 한 번 고른 종목을 끝까지 밀고 가며 내 선택을 증명하려 했는데, 지금의 나는 그 증명 욕구가 약해진 대신, ‘더 좋아 보이는 것’에 쉽게 끌린다. 이게 유연함인지, 아니면 집중력의 붕괴인지 스스로도 헷갈릴 때가 있다.

와이프는 내 이런 성향을 생활에서 먼저 이해한 것 같다. 우리는 외식을 하러 나갈 때 메뉴를 미리 정하고 나가지 않는다. 정해봤자 의미가 없다.

길 가다가 더 맛있어 보이거나, 사람들이 꽉 차 있는 곳을 보면 나는 홀린 듯 그쪽으로 들어가 버린다. 투자도 비슷하다. 더 좋은 투자처가 나타나면, 나는 그 순간 마음을 바꿔버린다.

이 성향이 나를 살린 순간도 있었겠지만, 분명 나를 불필요한 매매로 몰고 간 순간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던 내가 크게 달라진 지점은 매크로 공부였다. 솔직히 말하면, 매크로를 공부하는 이유는 더 공격적으로 매매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매매를 덜 하기 위해서다.

투자를 하면서 진짜 적은 시장이 아니라, ‘무지에서 오는 공포’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시장이 흔들리면, 그 흔들림은 곧 내 감정의 흔들림으로 번진다.

마치 어두컴컴한 동굴 속에서 오감에만 의지한 채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이다. 보이지 않으니 상상만 커지고, 상상은 대부분 공포로 바뀐다.

그래서 나는 먼저 이해하려고 했다. 글로벌 자산시장에 무슨 일이 벌어졌고, 그 일이 한국시장과 내 포트폴리오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혹은 줄 예정인지. 그 연결고리를 이해해두면 최소한 중심은 잡힌다.

중심이 잡히면 전략을 다시 세울 수 있다. 그러려면 어떤 이슈라도 시간과 노력을 들여 하나하나 공부해야 한다. 매크로·정치·경제·사회 같은 분야는 특히 그렇다. 아는 만큼 보이고, 그 ‘보이는 범위’가 넓어질수록 같은 사건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달라진다.

최근 케빈 워시의 B/S 축소 충격을 이해하려고 21세기 통화정책 책을 다시 펼쳐 읽었던 일이 떠오른다. 첫 회독 때와는 달리 글이 한 번에 읽혔고, 이해의 폭도 훨씬 넓어져 있었다. 그때 느꼈다. 지식이 쌓이면, 사건의 크기가 줄어드는 게 아니라 사건을 해석하는 내 시야가 넓어진다는 걸. 같은 흔들림도 덜 두렵게 받아들이게 된다는 걸.

돌이켜보면, 내가 처음 품었던 “최고의 기업 하나, 최고의 산업 하나” 같은 꿈은 너무 낭만적이었다. 최고의 것을 찾으려면 비교분석이 선행되어야 하고, 비교를 하려면 산업 전체를 알아야 하고, 산업을 알려면 그 산업을 흔드는 외부변수들을 이해해야 한다. 

결국 ‘하나’를 찾는 일이 아니라 ‘전체를 보는 과정’을 견디는 일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과정을 모르고 너무 순진하게 이 업에 들어왔다. 그래서 초반에는 열심히만 하면 답이 나온다고 믿었고, 그 믿음 때문에 오히려 더 오래 헤맸지 않나 싶다.

모든것을 알고자 할수록, 그 어떤 지식에도 매여선 안된다는 교훈이 동시에 떠오른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또 다른 반성이 남는다. 운용수익률 자체는 좋았다. 하지만 “돈을 직접적으로 어떻게 더 벌 것인가”라는 실무적 질문 앞에서는 생각과 확신이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수익률만 좋다고 돈이 벌리는 게 아니라는 걸. 결국 돈은 행동에서 나온다는 걸. 그런데 나는 그걸 아는 수준에서 멈춰버렸다. 

체력의 문제였을 수도 있고, 나라는 투자자의 한계였을 수도 있다. 분명한 건, 나는 ‘조급할 필요 없다’는 말 뒤에 숨어 실질적인 실행을 미뤄온 부분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요즘 들어 가장 자주 떠오르는 후회가 있다. 개인적인 아카이브 정도로 생각했던 블로그에, 남에 대한 비평 아닌 비평을 너무 생각 없이 써버렸던 일이다. 

그때는 그저 내 생각을 정리한 기록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다른 투자자들의 블로그를 돌아다니다 보면 가끔 뜨끔할 때가 있다. 내가 남긴 말들이 누군가에게는 가볍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투자라는 업을 진지하게 대하고, 자신의 많은 열정과 노력을 쏟아부어온 사람일수록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나와 다른 투자철학에 대해, 내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결국 그건 내 그릇이 작았던 탓에 생각이 타인의 감정까지 미치지 못한것이 아닐까 한다. 

예전에 한 운용사 이사님이 자진퇴사를 앞둔 내 앞에서 조용히 하셨었던 말이 갑자기 떠오른다. 투자는 담금질하듯 시간을 들여 스스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이야기였다.

글로 생각을 정리해보니, 정말 그때의 그 이사님의 말씀이 꼭 맞는것 같다라는 생각이 든다. 

돌아보면 어느 순간 나는 너무 깊이 매몰되어, 그날그날의 수익률이 내 기분을 좌우하고, 운용 중인 포트폴리오와 나 자신이 한 몸처럼 동일시되는 착각에 빠질 때가 있었다. 숫자가 흔들리면 마음이 흔들리고, 마음이 흔들리면 다시 판단이 좁아지는 식이었다.

그래서 요즘은 그런 순간일수록 일부러 한 발짝 물러서보려고 한다. 그게 결국 예전처럼 고집을 내세우며 시야를 좁히던 나로 되돌아가려는 습관에서 벗어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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