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읽은책 중에 가장 흥미로웠던 책에 대한 개인적인 기록을 남겨볼까 한다.
'과학은 이것을 상상력이라고 한다'
과학적 상상력과 주식투자자의 사고방식
과거에 “저 사람의 분석과 운용 능력은 정말 한번 베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강한 인상을 준 분들이 몇 분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분들은 단순히 정보를 많이 알고 있거나, 시장을 잘 맞히는 유형의 사람들이 아니었다. 어딘가 과학자나 철학자처럼 무언가를 연구하고, 새로운 방법론과 참신한 시각을 제시하는 사람들에 가까웠다.
그분들에게서는 사건과 현상, 그리고 세상을 약간 비뚤어진 각도에서 해석하는 유머러스함도 느껴졌다. 정답을 말한다기보다, 익숙한 대상을 낯설게 바라보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아마 초기에 그런 분들을 마음속 롤모델로 삼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내 기질이 그런 쪽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지금도 내 마음속 롤모델은 변함이 없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있다. 메르스 사태로 항공권과 호텔 숙박료가 급락했을 때 오히려 그 시기를 활용해 여행을 다녀왔다거나, 스페인 폭동 사태로 관광 수요가 위축된 틈을 이용해 비교적 저렴하고 한적하게 스페인 여행을 다녀왔다는 식의 이야기들이다.
이들은 위기나 소란을 단순히 피해야 할 사건으로만 보지 않고, 그 안에서 남들이 놓치는 가격과 심리의 왜곡을 읽어내는 사람들이었다.
개인적으로 철학과 과학 분야는 늘 흥미로웠다. 관련 서적을 읽고, 유튜브를 찾아보는 과정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러던 중 『과학은 이것을 상상력이라고 한다』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제목부터 어딘가 투박했고, 전혀 마케팅적인 계산을 하지 않은 듯한 책이었다. 오히려 그 점이 흥미로웠고, 읽는 동안 과학적 사고와 주식투자의 사고방식이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1. 과학은 원래 자연철학에서 출발했다
‘과학’이라는 영어 단어 science는 라틴어 scientia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흥미로운 점은 scientia가 철학처럼 통합적인 앎을 뜻하는 말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오히려 법률, 선박 제조술과 같은 개별적이고 분화된 지식을 의미하는 말에 가까웠다고 한다.
당시 영국 철학자들은 과학 연구자들이 자연철학적 통찰력을 잃고, 좁은 영역의 문제에만 몰두한다고 보았다. science라는 표현에는 그런 태도를 비꼬는 풍자적 의미가 담겨 있었다는 설명이 나온다. 원래 자연에 대한 경험적·이론적 탐구는 자연철학natural philosophy이라고 불렸고, 자연철학은 보다 통합적인 앎에 가까웠다.
이 대목에서 자연스럽게 주식투자가 떠올랐다. 주식투자에 비유하면 자연철학은 거시 탑다운과 미시 바텀업을 일원화해 통찰을 얻는 투자 방식에 가깝다. 반면 좁은 의미의 과학은 거시 매크로와 탑다운을 배제하고, 개별 기업 바텀업에만 집중하는 방식처럼 느껴졌다.
물론 어느 한쪽이 절대적으로 우월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통합적 앎에서 출발한 자연철학이라는 개념은 좋은 투자자가 갖춰야 할 사고방식과 꽤 닮아 있었다. 시장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개별 기업만 보거나, 거시 환경만 보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두 영역을 분리하지 않고 하나의 구조 안에서 연결해내는 능력이라고 느꼈다.
2. 과학적 상상력은 수렴과 발산으로 나뉜다
책에서는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를 바탕으로 과학적 상상력을 설명한다. 핵심은 수렴적 상상력과 발산적 상상력이다. 세기의 발견이나 패러다임 전환을 이끌어낸 과학자들은 한순간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만으로 세상을 바꾼 사람들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과학자는 먼저 기존 패러다임과 고전적 범례를 꼼꼼히 습득한다. 기존 학계가 받아들이는 문제의식, 연구 방식, 검증 방법, 근본 원리를 충분히 익히는 과정이다. 이것이 수렴적 상상력이다. 수렴적 상상력은 말 그대로 기존 지식의 중심부로 깊이 들어가는 능력에 가깝다.
그다음 과학자는 기존 연구가 풀어낸 문제보다 더 복잡한 문제를 다루거나, 다른 재료와 실험 방법을 적용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연구를 시작한다. 이 과정이 발산적 상상력이다. 발산적 상상력은 기존의 틀을 무시하는 태도가 아니라, 기존 범례를 충분히 이해한 뒤 그것을 변형해 새로운 문제를 풀어내는 능력에 가깝다.
중요한 점은 새로운 발견이 수렴적 상상력만으로도, 발산적 상상력만으로도 나오기 어렵다는 것이다. 기존 범례를 깊이 학습하되, 그것을 그대로 반복하는 데 그치지 않아야 한다. 동시에 새로운 시도를 하되, 관련 분야가 공유하는 근본 원리를 완전히 벗어나서도 안 된다. 결국 새로운 발견은 수렴과 발산이라는 상반된 상상력을 동시에 병행할 때 나타난다.
3. 주식투자에서 수렴적 상상력이 부족한 경우
이 개념은 주식투자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고 느꼈다. 지금도 그렇지만, 경험이 많지 않은 주니어 투자자나 시장에 온전히 몰두하지 않은 투자자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비슷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가 보기에 그들에게 먼저 부족한 것은 수렴적 상상력이다.
조금 더 직관적으로 말하면, 지금 유동성이 쏠리는 자산과 산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시장의 주도 자산, 주도 산업, 주도 기업이 무엇인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투자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우연히 찾은 기업이나 산업이 좋아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투자를 설득하려 한다.
하지만 그 논리가 실제로 의미를 가지려면 먼저 기준점이 필요하다. 현재 시장에서 가장 강한 시세를 내고 있는 자산, 산업, 기업에 대한 이해가 먼저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주도 산업과 주도 자산을 기준점으로 삼고, 그보다 더 나은 포인트를 찾아 나설 수 있다. 이 과정이 투자에서의 발산적 상상력에 해당한다.
가끔 증권사 리포트, 애널리스트 코멘트, 여러 정보를 듣다 보면 전부 좋아 보여서 무엇을 사야 할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먼저 지금 가장 강한 시세를 내고 있는 산업과 기업을 공부해보라고 말한다. 그것을 기준점으로 삼아야 다른 아이디어의 상대적 매력도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중에 다시 물어보면 실제로 주도주와 주도 산업을 깊이 공부한 경우는 많지 않다. 이 점이 주식투자 세계에서 꽤 흥미로운 부분이다. 경험이 적을수록 기존 범례에 해당하는 주도주 공부를 건너뛰려는 경향이 있다. 마치 홍대병에 걸린 사람처럼 자신만의 숨은 맛집을 찾으려는 듯, 소외주를 먼저 찾으려 한다.
하지만 수렴적 상상력 없이 발산적 상상력으로 바로 뛰어들면 설득력이 약해진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해도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결국 주식운용 조직에서 큰 성과를 내고 싶다면 순서가 중요하다. 먼저 현재 주도 산업을 누구보다 꼼꼼히 공부하고, 그다음 이를 기준점으로 삼아 자신만의 새로운 해석과 더 나은 통찰을 제시해야 한다.
4. 통제실험은 바텀업 리서치와 닮아 있다
책에서 인상 깊었던 또 다른 개념은 통제실험이었다. 이 부분은 정말 바텀업 리서치와 닮아 있다고 느꼈다. 물리 세계는 너무 복잡하고, 수많은 요소가 끊임없이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 그래서 자연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통제실험이 필요하다.
통제실험의 목적은 원인과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를 명확히 밝히는 데 있다. 이를 분석적 방법 또는 환원적 방법론이라고 부른다. 복잡한 현상을 그대로 바라보면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결과인지 알기 어렵다. 그래서 변수를 통제하고, 특정 요인만 따로 떼어내 관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바텀업 리서치도 이와 매우 비슷하다. 기업 실적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은 복합적이고 동시다발적으로 움직인다. 따라서 기업을 이해하려면 먼저 쪼개기가 필요하다. 회계 분류상 기업 실적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먼저 분해하고, 그 안에서 다시 P, Q, C를 소분류해야 한다.
그다음 각각의 P, Q, C에 영향을 주는 외부 거시 변수까지 다시 쪼개야 한다. 가격은 왜 변하는지, 수량은 어떤 변수에 민감한지, 비용은 어떤 원재료와 환율, 금리, 인건비 변수에 영향을 받는지 따져보는 식이다. 기업 실적은 단일 변수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먼저 복잡한 구조를 잘게 나누어야 이해가 가능하다.
5. 실적 추정은 쪼개고 다시 쌓는 과정이다
이렇게 분해한 뒤에는 각 요소에 대한 미래 추정과 가정을 세운다. 그리고 이를 다시 하나씩 쌓아 올려 미래 실적을 추정한다. 이 과정이야말로 환원적 사고에 가깝다. 먼저 쪼개고, 그다음 다시 조립하는 방식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각 요소가 미래 실적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이를 위해서는 특정 요소만 변화시키고, 나머지 요소는 그대로 둔다는 통제실험적 사고가 필요하다. 그래야 어느 변수가 기업의 미래 실적 추정에 가장 민감한지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매출 성장률, 판가, 판매량, 원가율, 환율, 금리, 세율 등 여러 변수가 동시에 움직이면 실적 변화의 핵심 원인을 파악하기 어렵다. 그래서 하나의 변수만 바꿔보고, 나머지는 고정한 상태에서 민감도를 확인해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기업의 미래 실적을 움직이는 핵심 변수Key Value를 찾아낼 수 있다.
여기서 쪼개기는 기존 범례를 공부하는 수렴적 상상력에 해당한다. 반대로 쪼갠 요소들에 대한 미래 가정을 다시 쌓아 올리고, 민감도를 분석해 핵심 변수를 찾아내는 과정은 발산적 상상력에 가깝다. 결국 좋은 실적 추정은 단순한 숫자 맞히기가 아니라, 기업을 움직이는 구조를 해석하는 작업이다.
6. 다만 자연과학과 주식투자는 완전히 같지 않다
물론 자연과학, 철학과 주식투자 세계가 모든 면에서 같다고 보기는 어렵다. 굳이 차이를 찾자면 먼저 적시성의 개념이 다르다. 주식투자 세계에서 정보는 특정 시기에만 유용하고 중요할 때가 많다. 같은 사실이라도 시장이 이미 충분히 반영한 뒤에는 더 이상 투자 판단의 핵심 정보가 되기 어렵다.
반면 자연과학과 철학에서의 지식은 상대적으로 시간의 제약을 덜 받는다. 하나의 원리나 개념은 발견 이후에도 오랜 기간 반복적으로 검토되고, 후속 논의의 토대가 된다. 물론 과학 역시 새로운 발견에 따라 기존 이론이 수정되지만, 주식투자 세계에서처럼 정보의 가치가 시세와 시간에 의해 빠르게 소멸되는 구조와는 조금 다르다.
또 다른 차이는 반복 가능성에 있다. 자연에서는 실험을 반복하면서 결론을 수정할 수 있다. 같은 조건을 다시 만들고, 변수를 조정하고, 오류를 확인한 뒤 더 나은 설명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나 투자는 그렇게 완전히 되돌아갈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
주식투자는 결국 시간과 자본이 소모되는 비가역적 선택의 연속이다. 한 번 지나간 가격과 기회는 그대로 반복되지 않는다. 어떤 판단이 틀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아도, 이미 투입한 시간과 자본, 그리고 그동안 발생한 기회비용은 되돌릴 수 없다.
그래서 주식투자에서 과학적 사고가 중요하다고 해도, 그것이 자연과학의 실험처럼 완전한 반복 가능성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투자자는 불완전한 정보와 제한된 시간 속에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 점에서 투자는 과학적 사고를 필요로 하지만, 동시에 과학보다 훨씬 더 강한 시간성과 비가역성을 갖는 세계라고 느꼈다.
7. 좋은 투자자는 과학자이자 철학자에 가깝다
돌이켜보면 내가 예전에 롤모델로 삼고 싶다고 느꼈던 분들의 분석법과 운용 방식도 이와 닮아 있었다. 그분들은 단순히 기업을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었다. 과학적 사고와 철학적 사고를 동시에 사용하는 사람들에 가까웠다.
하나의 현상을 잘게 쪼개고, 원인과 결과를 구분하려 했다. 동시에 그 쪼개진 조각들을 다시 연결해 더 큰 구조를 보려 했다. 그래서 그들의 분석은 단순한 정보 전달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의 방법론처럼 느껴졌다.
좋은 투자자는 결국 시장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렌즈를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 렌즈는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기존 시장의 범례를 깊이 공부하고, 주도 산업과 주도 기업을 집요하게 관찰하고, 그 위에서 자신만의 해석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내가 그들에게 강한 인상을 받았던 이유도 아마 이 지점에 있었던 것 같다.
8. 과학연구와 주식투자에 공통적으로 필요한 것
마지막으로 책에서는 천재적 과학 연구에 예외 없이 등장하는 요소를 이야기한다. 바로 끈기, 집중력, 회복탄력성, 열정이다. 과학 연구에서는 정말 열심히 노력해서 무언가 발견될 것 같다가도, 결정적인 오류가 발견되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때 회복탄력성이 없다면 실망감은 쉽게 무기력으로 이어진다. 끈기와 집중력이 없다면 같은 문제를 다시 붙잡고 버티기 어렵다. 열정이 없다면 애초에 그 긴 과정을 견디기 힘들다. 그래서 과학 연구에서 위대한 발견은 번뜩이는 천재성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주식투자도 마찬가지다. 내가 공부하고 분석한 기업과 산업이 있더라도, 외부 거시 변수와 지정학, 사회, 정치 환경은 끊임없이 변한다. 기존에 가정했던 외부 변수가 달라졌다면 결론도 달라져야 한다. 그 순간 지금까지의 리서치 노력은 매몰비용으로 간주하고, 다시 새롭게 나아가야 한다.
의외로 많은 투자자가 이 과정에서 앵커링 효과라는 덫에 빠진다. 이미 많은 시간을 들였기 때문에 기존 생각을 버리지 못한다. 처음 세웠던 가정에 계속 묶여 있고, 시장이 달라졌는데도 결론은 달라지지 않는다. 분석을 많이 했다는 사실이 오히려 생각을 고정시키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가끔 말로는 열심히 한다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생각이 거의 변하지 않는 투자자들이 있다. 하루가 지나도, 한 주가 지나도, 한 달이 지나도 가장 좋게 보는 회사와 산업이 그대로인 경우다. 물론 긴 호흡의 투자 관점 자체가 문제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세상이 변하고 있는데도 자신의 답이 전혀 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신념보다 앵커링에 가까울 수 있다.
열심히 버티는 것과 과거의 생각에 갇히는 것은 다르다. 좋은 투자자는 틀렸을 때 다시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 기존 분석을 버릴 수 있는 회복탄력성, 다시 파고들 수 있는 끈기,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는 집중력과 열정이 필요하다.
9. 결국 좋은 분석은 상상력의 문제다
『과학은 이것을 상상력이라고 한다』를 읽으며 과학과 투자 사이에는 생각보다 많은 접점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과학자는 기존 범례를 깊이 학습한 뒤, 그것을 변형해 새로운 문제를 풀어낸다. 투자자도 현재 시장의 주도 산업과 기업을 깊이 이해한 뒤, 그 기준점 위에서 새로운 해석을 만들어야 한다.
과학자는 복잡한 자연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통제실험을 한다. 투자자는 복잡한 기업 실적을 이해하기 위해 매출, 비용, 가격, 수량, 원가, 거시 변수를 쪼개고 다시 조립한다. 과학자는 실패와 오류 속에서도 다시 실험을 이어간다. 투자자 역시 잘못된 가정과 바뀐 환경을 인정하고, 다시 분석을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
다만 둘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도 있다. 과학과 철학의 지식은 상대적으로 긴 시간 동안 축적되고 검토되지만, 주식투자 세계의 정보는 특정 시점에만 투자적 의미를 갖는 경우가 많다. 또한 과학은 반복 실험을 통해 결론을 수정할 수 있지만, 투자는 지나간 시간과 투입한 자본을 완전히 되돌릴 수 없다. 그래서 투자자는 과학적 태도를 가져야 하지만, 동시에 시간과 자본의 비가역성을 늘 의식해야 한다.
결국 좋은 분석은 단순히 정보를 많이 모으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기존 범례를 충실히 공부하는 수렴적 상상력이 필요하고, 그 기준점 위에서 자신만의 해석을 만들어내는 발산적 상상력도 필요하다. 내가 과거에 강한 인상을 받았던 좋은 투자자들의 공통점도 여기에 있었던 것 같다.
종합해보면, 수렴 없이 발산하면 공허하고, 발산 없이 수렴하면 평범해지며, 회복탄력성 없이 분석하면 집착이 되기 쉬우며, 동시에 정보의 적시성이 어긋나면 무가치하다.
그들은 시장을 단순히 맞히려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세상을 이해하는 자신만의 방법론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 방법론은 과학적이면서도 철학적이었다.
내가 그들의 분석과 운용 능력을 베껴보고 싶다고 느꼈던 이유도, 아마 그들이 단순한 투자자가 아니라 하나의 연구자처럼 보였기 때문이었지 않을까 싶다.
글을 마치며
마지막으로, 주도주와 주도산업을 피해 소외주와 소외산업을 분석하고 투자하는 것만이 역발상이라고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지만, 나는 조금 다른 시각을 갖고 있다.
경험상 좋은 투자는 오히려 남들이 가장 많이 바라보는 시장의 중심부를 가장 깊게 이해한 뒤, 그 안에서 아직 충분히 해석되지 않은 균열이나 확장 가능성을 발견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이미 시세가 났고 정보가 반영됐으니 더 이상 볼 겂이 없다라는 편견을 깨는것이 역발상이라는 것이다.
이는 기존 패러다임과 범례를 충분히 학습하는 수렴적 상상력과, 그 토대 위에서 새로운 해석을 만들어내는 발산적 상상력이 함께 작동하는 지점이다.
그런 점에서 이미 시세가 많이 오른 반도체를 더 깊게 공부하고, 그 안에서 여전히 과소평가된 변화의 방향을 발견해 다시 매수하는 행위 역시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의미의 역발상 투자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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