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26일 일요일

이모저모


소규모 IR 미팅에서 배운 것들


분기에 한 번 정도 증권사 주관으로 열리는 소규모 IR 미팅 기회가 있으면, 가능한 한 참석하려고 하는 편이다.
기업을 숫자로만 보는 것과, 실제로 회사의 이야기를 듣고 질문을 주고받는 것은 꽤 다른 경험이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기억에 남는 IR 미팅들이 몇 차례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상반된 인상을 남겼던 두세 번의 경험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AI 산업이 시장의 중심에 있지 않았다.
오히려 특정 섹터는 지금과 달리 투자자들의 관심에서 다소 비켜나 있었다.

우리는 AI 산업의 흐름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그 섹터가 언젠가 중요해질 수 있다고 판단했고, 투자 가능한 기업들을 하나씩 살펴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 섹터에서 새롭게 상장한 회사가 처음으로 여의도에 나와 소규모 IR 투자자 미팅을 진행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자연스럽게 사전등록을 했고, 미팅 장소로 향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보니 사전등록자는 나 혼자였다.
작은 호텔룸에서 IR 담당자와 나, 단둘이 마주 앉아 1시간 동안 미팅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조금 부담스러웠다. 이 자리가 이렇게 진행되어도 되는 건가 싶은 생각도 들었고, 괜히 어색한 긴장감도 있었다.

미팅이 시작된 뒤 조심스럽게 여쭤봤다.

“혹시 오늘 저만 참석한 건가요?”

그러자 IR 담당자분은 이렇게 답하셨다.
투자자들이 한 타임에 너무 많이 몰리면 오히려 회사의 사업을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1타임에 1명씩만 받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단순히 형식적인 IR이 아니라, 회사의 사업을 제대로 설명하고 싶어 하는 진심이 느껴졌다.

그 뒤로 1시간 넘게 미팅이 이어졌다.
나는 꽤 구체적인 질문들을 계속 던졌다. 회사의 과거 연혁, 수주가 이뤄지는 방식, 단가 계약 구조, 원가 구조, 고객사별 관계와 이력, 과거 위기 상황에서 CEO가 어떤 방식으로 회사를 이끌어왔는지까지 물었다.

IR 담당자분은 질문 하나하나에 빠짐없이 답변해주셨다.
단순히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회사가 지나온 과정과 사업의 구조를 최대한 구체적으로 설명하려는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미팅이 끝난 뒤 기록해둔 내용을 다시 정리해보니, 사업구조와 경쟁 구도, 그리고 향후 실적을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상당히 구체적으로 남아 있었다. 숫자로 연결할 수 있는 단서들이 손에 잡혔고, 그만큼 투자 판단의 확신도 높아졌다.

그렇게 우리는 그 기업에 대한 투자를 결정했다. 
시간이 흐른 지금 돌아보면, 그 판단은 꽤 좋은 결과로 이어지고 있는 듯하다.

반대로 전혀 다른 경험도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한 회사의 기업홍보팀이라며 연락이 왔다. 어떻게 내 번호를 알게 되었는지 물었더니, 증권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고 했다. 이후 그분은 거의 매일 해당 산업과 관련된 뉴스를 카카오톡으로 보내주셨고, 결국 한 번 미팅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미팅을 해보니 이상한 점이 있었다.
산업 이야기는 길게 이어졌지만, 정작 기업 자체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에는 계속 답을 피했다. 사업의 구조, 수익성, 리스크, 재무적 특징, 고객사와의 관계처럼 투자 판단에 필요한 질문을 던질 때마다 다시 산업 전망 이야기로 돌아갔다.

결국 제대로 된 답을 듣기 위해서는 질문을 조금 더 집요하게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상대방이 초면에 다소 부담을 느낄 수 있는 선을 넘지 않으려 최대한 공손하게 물었지만, 질문의 방향은 계속 좁혀갔다.

그 과정에서 결국 드러난 것은, 그분의 역할이 사실상 회사의 주식을 팔기 위한 세일즈에 가까웠다는 점이었다.

그 미팅 이후 우리는 해당 기업의 투자 위험성을 내부에 공유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다시 보게 된 그 회사는 시장의 주목을 크게 받다가, 결국 상장적격성 심사 대상에 오르게 되었다.

또 다른 기억은 꽤 큰 대기업 IR 행사였다.

마침 이전 직장 선배가 그 회사 IR팀으로 이직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오랜만에 해당 IR 행사에 참석했다. 하지만 행사는 기대와 달리 다소 형식적으로 흘러갔다. 들으나 마나 한 질문들이 오갔고, 답변 역시 이미 준비된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행사가 끝난 뒤 건너건너 들은 이야기는 더 인상적이었다.
후선부서인 IR팀은 윗선에서 정한 가이드라인을 벗어나 말하기 어렵고, 그 윗선에서는 투자자들이 특정 방향으로 회사를 바라보도록 이미 소통 방향을 정해둔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실제 영업환경이 월별, 분기별로 계속 변해도 그 변화가 실시간으로 IR 커뮤니케이션에 반영되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변화가 쌓이고 나서야 다음 실적발표 때 조금씩 가이던스나 소통 방향이 조정되는 구조였다.

그래서였는지 그 회사는 몇 분기 동안 실적 쇼크와 서프라이즈를 반복했고, 시장에서 IR팀에 대한 신뢰도 역시 크게 흔들렸던 기억이 있다.

결국 IR 미팅을 통해 배운 것은 하나다.

IR 담당자의 말을 무조건 믿을 필요는 없다.
다만 그들의 말 속에서 회사의 현재 상황, 업황의 방향, 내부의 온도차, 커뮤니케이션의 한계와 의도를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IR은 답을 얻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더 정확히는 질문을 통해 답의 질을 검증하는 자리에 가깝다.
사전 공부 없이 참석해 처음부터 모든 것을 가르쳐달라는 식으로 접근하면, 그 미팅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반대로 미리 공부를 해두고, 산업과 기업의 구조를 이해한 상태에서 질문을 던지면 상황은 달라진다.
상대방이 무엇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지, 무엇을 반복해서 강조하는지, 어떤 질문에는 답을 피하는지, 그리고 어떤 대목에서 말의 결이 달라지는지를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IR 미팅은 단순히 회사의 설명을 듣는 자리가 아니다.
기업을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고, 투자 판단의 빈틈을 메우는 과정에 가깝다.

그리고 때로는 숫자보다, 한 시간 동안의 대화에서 더 많은 힌트를 얻기도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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