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5일 일요일

생각정리 219 (* 개스닥-2)

이전글에 이어 개스닥을 바라보며 느낀점을 두서 없이 정리해본다.



제약바이오 IR을 보며 다시 확인하게 되는 것들


결국 나는 왜 ‘이야기’보다 ‘구조’를 먼저 보게 됐나


최근 코스닥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주가 흐름을 보면서,
예전부터 내가 이 업종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왔는지를 다시 떠올리게 됐다.

나는 개인적으로 제약바이오 IR 행사 참여를 되도록 지양하는 편이다.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들인 시간 대비 얻는 것이 많지 않다고 느껴왔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설명을 듣는다고 해서 그 사업이나 기술을 정말 제대로 이해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설령 스스로는 이해했다고 생각해도, 그 판단이 객관적으로 검증된 것은 아니다.
듣는 사람의 기대와 말하는 사람의 의도가 맞물리면, 생각보다 쉽게 그럴듯한 내러티브에 설득되기 마련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제약바이오 산업 자체를 가볍게 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AI 발전의 가장 큰 수혜가 열릴 분야 중 하나가 제약바이오라고 생각한다.
산업 전체로 보면 앞으로 시장이 크게 열릴 여지가 충분하다고 본다.

생각정리 132 (* AlphaFold)
생각정리 133 (* ADC)

다만 내 판단은 늘 그 다음으로 넘어간다.
좋은 산업이라는 사실과, 그 안에서 실제로 장기적인 구조적 수혜를 가져갈 기업이 많다는 사실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국내 시장에서 그 조건을 충족하는 기업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고 봐왔다.


늘 비슷하게 들리는 IR의 문법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이나 블로그에 정리된 C라인 IR 행사 내용을 보다 보면 반복적으로 받는 인상이 있다.
발표자들은 마치 업계의 핵심 기술 흐름을 전부 꿰뚫고 있는 듯 말한다.

각종 학회와 세미나 참석 이력, 블록버스터급 항암제 개발 가능성, 비공개 빅파마와의 MOU, 글로벌 진출 기대감 같은 이야기들도 빠지지 않는다.
듣고 있으면 지금 이 회사가 거대한 변화의 중심에 서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이야기들이 늘 너무 익숙하다는 데 있다.
투자자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은 대체로 정해져 있다.
그리고 많은 기업들은 그 기대를 정확히 알고, 그 기대에 가장 잘 맞는 방식으로 서사를 구성한다.

그래서 나는 IR을 들을수록 오히려 더 조심하게 된다.
정말 중요한 것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는데, 기대를 자극하는 표현만 정교하게 앞세워지는 경우를 너무 자주 봐왔기 때문이다.


핵심은 늘 가려져 있고, 기대감만 남는다


제약바이오 업종은 특히 더 그렇다.
임상 결과는 끝까지 가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계약 관련 내용은 NDA를 이유로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결국 투자자가 가장 궁금해하는 핵심은 쉽게 확인할 수 없고, 확인 가능한 것은 대체로 분위기와 방향성, 그리고 장밋빛 가능성뿐이다.
이 구조가 반복되면 자연스럽게 냉소가 생긴다.

몇 년 동안 이런 장면을 보다 보면, 화면 뒤에서 자꾸 코웃음을 치게 된다.
정말 대단해서가 아니라, 너무 익숙해서 그렇다.
어디까지가 실체이고 어디부터가 포장인지 구분하는 일이 점점 더 중요해진다.


이건 제약바이오만의 문제는 아니다


사실 이런 문제는 제약바이오 업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실질적인 이익이 뒷받침되지 않는데도, 최신 산업 동향과 정책 수혜를 전면에 내세우는 기업들은 다른 업종에도 많다.

이런 기업들의 IR에 가보면 비슷한 장면이 반복된다.
담당자들은 매우 유려하게 말한다.
회사 내부자라는 위치도 자연스럽게 활용한다.
그리고 산업 흐름을 길게 설명하면서 마치 그 변화의 과실을 자기 회사가 가장 직접적으로 누리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산업을 깊게 공부하지 않았거나, 해당 기업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라면 그 말에 꽤 설득될 수 있다.
겉으로 보면 논리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뜯어보면, 실체보다 내러티브가 앞서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중에 정말 좋은 기업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분명 진주 같은 기업도 있을 것이다.
다만 나는 그런 기업이 굳이 여의도에 자주 와서 자신들에게 투자해달라고 설득하고, 한편으로는 여러 이유를 대며 개인 지분을 파는 모습을 동시에 보일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가 IR을 볼 때 가장 먼저 보는 것


여기까지 생각이 이어지다 보면, 결국 내 판단 습관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가끔은 학생 시절부터 존경해온 찰리 멍거의 사고방식이 내 시선에 깊게 배어든 것 아닌가 싶다.

최근 이 문제의식을 두고 평가를 받아본 적이 있다.
그 답변을 읽으며 꽤 공감했던 부분이 있었다.
내가 기업이나 산업을 바라보는 방식이, 단순히 비관적이어서가 아니라 멍거식 사고에 꽤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듣고 보니 꽤 그럴듯한 표현이었다.
나는 원래부터 말 자체보다, 그 말 뒤에 있는 구조를 먼저 보려는 편이었다.
표면에 드러난 명분보다 인센티브, 심리, 권력구조를 먼저 보려는 습관이 있었다.


의도보다 인센티브를 먼저 본다


내가 어떤 기업의 말을 들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질문은 비슷하다.
왜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이 말을 통해 누가 무엇을 얻는가.
이 설명이 정말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기대를 관리하고 주가를 방어하기 위한 것인가.

나는 친절한 설명 자체를 불신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설명의 내용만큼이나, 그 설명을 하는 사람이 어떤 위치에 있고 어떤 보상을 기대하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태도는 결국 의도보다 인센티브를 먼저 보는 습관으로 이어진다.
겉으로는 좋은 말이어도, 보상 구조가 왜곡돼 있으면 행동도 그 방향으로 흘러가기 쉽다.
나는 기업을 볼 때 늘 그 부분을 먼저 확인하려 한다.


인간은 생각보다 쉽게 오판한다


또 하나 내가 강하게 전제하는 것은, 인간을 지나치게 이상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개인도 그렇고 조직도 그렇다.
심지어 국가도 늘 선의에 따라 움직인다고 보지 않는다.

불안이 커질수록 이기심은 구조화된다.
위험이 커질수록 사람은 원칙보다 자기보호 쪽으로 기울기 쉽다.
그래서 나는 기업의 행동도, 정책의 방향도, 외교적 수사도 말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그 안의 심리와 이해관계를 먼저 보게 된다.

누군가 왜 저렇게 말하는지를 도덕적으로 해석하기보다, 사람은 원래 그렇게 오판하고 자기합리화하기 쉬운 존재라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편이 더 현실적이라고 느낀다.


말보다 구조를 보는 습관


이런 시선은 투자 판단을 넘어 다른 영역으로도 자연스럽게 확장된다.
정치, 외교, 산업 정책을 볼 때도 내 질문은 크게 다르지 않다.

누가 비용을 떠넘기고 있는가.
누가 구조적으로 이익을 얻는가.
누가 말의 명분 뒤에서 실질적인 우위를 확보하고 있는가.

그래서 나는 단기 호재보다 장기 잠식 위험을 더 크게 본다.
겉으로 번지르르한 말보다 실제 힘과 이해관계를 더 높은 진실값으로 둔다.
겉으로 좋은 이야기라고 해서, 실제로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고 믿지 않는다.

좋아 보이는 스토리도 구조를 보면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리고 투자에서는 그 차이가 생각보다 훨씬 중요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독립적인 판단이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또 하나는 독립성이다.
타인의 정보에 과도하게 기대기 시작하면, 생각보다 빨리 판단의 독립성을 잃게 된다.

누군가의 설명을 반복해서 듣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사람의 언어가 내 생각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그건 내 판단이 아니라 빌려온 판단일 가능성이 크다.
나는 그 지점을 늘 경계한다.

그래서 정보를 접하면 바로 받아들이기보다 한 번 더 내 기준으로 다시 걸러보려 한다.
자기 머릿속 모델 체계에 연결되지 않은 정보는, 오히려 판단을 흐리게 만들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결국 투자자에게 가장 중요한 자산 중 하나는 독립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이라고 믿는다.


나는 왜 순진함을 경계하는가


이런 이유로 나는 순진함을 꽤 강하게 경계하는 편이다.
평화, 친환경, 공정, 실리 같은 단어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언어가 힘의 구조나 이해관계를 제거한 채 유통될 때, 그 말은 쉽게 공허한 수사로 바뀐다.

기업 IR도 비슷하다.
좋은 단어는 많다.
좋은 비전도 많다.
좋은 설명도 넘쳐난다.

하지만 그 말이 실제 행동과 연결되지 않으면, 결국 투자자는 스토리를 사고 구조를 놓치게 된다.
나는 아마 그 장면을 오래 봐왔기 때문에, 점점 더 말보다 구조를 먼저 보게 된 것 같다.


그래서 지금도 쉽게 설득되지는 않는다


나는 지금도 제약바이오 산업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큰 변화가 나올 수 있는 영역이라고 본다.
다만 그 가능성이 곧바로 매력적인 투자 기회로 연결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좋은 산업과 좋은 기업은 다르고, 좋은 기업과 좋은 주가도 다르다.
좋은 내러티브가 좋은 투자로 직결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나는 설명보다 구조를, 의도보다 인센티브를, 말보다 행동의 축적을 더 신뢰하는 편이다.
그리고 이런 시선은 제약바이오 업계에만 머물지 않는다.
같은 이유로, 에너지 위기가 친환경을 곧바로 대체에너지의 정답으로 만들 것이라는 서사에도 나는 쉽게 기대를 싣지 않는다.

한국 주식 시장에서는 늘 좋은 말이 먼저 유통되고, 불편한 사실은 늦게 확인된다. 
물론 이것 역시 내가 IR 현장을 오래 지켜보며 굳혀온 하나의 편향일 수 있다.
멍거 할아버지 말처럼, 하나의 모델만 들고 현실을 해석하다 보면 결국 현실을 그 틀에 억지로 맞추게 될 위험이 있다.

그럼에도 이 기준은 내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붙들고 있는 판단의 축이기도 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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