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7일 일요일

생각정리 138 (* Kevin Allen Hassett)

1. 문제의식: 번스의 망령, 그러나 1970년대는 “금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앨런 그린스펀의 자서전을 탐독하고 있는데, 반가운 이름인 아서 번스가 다시 시장에서 소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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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차기 유력 연준의장 케빈 해셋이 트럼프 2기 행정부와 보조를 맞추어 기준금리를 인하할 경우, 시장에서는 이를 두고 “아서 번스 시즌 2”, 다시 말해 1970년대식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가 반복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적지 않다.

https://en.wikipedia.org/wiki/Kevin_Hassett


그러나 1970~1980년대의 역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당시의 대실패는 단순히
**“연준이 금리를 너무 낮게 유지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핵심은 다음과 같은 조합이다.

  • 임금·가격 통제,

  • 정부의 직접적인 시장 개입,

  • 오일쇼크라는 대형 공급 충격,

  • 여기에 휘둘린 정치화된 중앙은행.

즉, 시장 가격 메커니즘을 파괴하는 정책과 외부 충격, 정치 개입이 한꺼번에 결합된 결과가 19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이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 글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1970년대의 경기불황은 아서 번스의 금리 결정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물가통제와 정부개입이 시장 가격 메커니즘을 훼손한 것이 핵심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케빈 해셋이 기준금리를 인하한다 하더라도
1970년대식 임금·가격 통제와 오일쇼크가 결합하지 않는 한,
당시와 같은 대침체를 그대로 우려하는 것은 과도한 일반화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 결론을 설득력 있게 보이기 위해, 우선 숫자부터 정리한다.


2. 숫자로 먼저 보는 1970~1982년: 금리·물가·성장률


[표 1] 미국 거시지표(연평균): 1970~1982년



이 표에서 보이는 큰 흐름은 세 가지이다.

  1. 인플레이션의 상시 고착
    1970년대 내내 인플레이션은 대부분 5~14% 구간에 머무른다.
    “언젠가 2%대로 다시 내려올 것”이라는 기대가 사실상 사라진 시기이다.

  2. 뒤늦게 쫓아가는 금리
    연방기금금리는 인플레이션이 이미 폭발한 뒤에야 급등한다.
    특히 1974년, 1979~81년에는 “물가 뒤쫓기” 양상이 뚜렷하다.

  3. 반복되는 경기침체
    성장률은 1970, 1974~75, 1980, 1982년에 마이너스를 기록한다.
    즉, 높은 물가 + 반복되는 경기침체라는 전형적인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이다.




이제 이 숫자 위에, 각 시기별 정책과 사건을 얹어서 보자.


3. 닉슨–아서 번스: 임금·가격 통제가 시장을 망가뜨린 방식


3-1. 매크로 배경: 이미 높아진 인플레이션과 불안정한 정치


1970년 전후 미국은

  • 베트남전 비용과 Great Society 복지지출 확대로 재정 부담이 컸고,

  • 추가 10% 연방 소득세가 부과되었으며,

  • 반전 시위와 사회적 갈등 등 정치적 불안이 겹쳐 있었다.

1970년 주요 지표는 다음과 같다.

  • 인플레이션: 6.2%

  • 실질 성장률: -0.17%

  • FFR: 7.17%


이미 성장 둔화와 높은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나타나는 초기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이었다.

닉슨은 성격적으로 편집증·염세·냉소가 강한 인물로 묘사된다.
그린스펀의 회고를 포함한 여러 기록에 따르면, 그는 주변 인물에 대한 신뢰가 낮고, 정치적 생존에 극도로 민감한 대통령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닉슨의 최우선 과제는 분명했다.

“1972년 재선까지, 경기와 실업률만큼은 어떻게든 좋아 보이게 만드는 것”


이 지점에서 아서 번스가 등장한다.


3-2. 1971년 “닉슨 쇼크”: 임금·가격 통제의 구조


1971년 8월, 닉슨은 이른바 **“닉슨 쇼크”**를 단행한다. 핵심은 세 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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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금 태환 정지

    • 브레튼우즈 체제를 사실상 종료.

  2. 임금·가격 90일 동결(Phase I)

    • 모든 임금·가격을 즉시 동결.

  3. 10% 수입할증 관세

    • 수입 물가를 직접적으로 조정.


이후 임금·가격 통제는 형태만 바뀐 채 계속 이어진다.

  • Phase II: 임금·가격위원회가 인상 허용 범위를 정하고, 기업은 허가 없이는 가격·임금 인상을 할 수 없는 체제로 전환.

  • Phase III·IV: 일부 완화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정부가 임금·가격 인상률을 사실상 관리하는 구조가 유지된다.


겉으로는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시장 가격 메커니즘을 광범위하게 파괴하는 정책이었다.


3-3. 임금·가격 통제가 시장에 미친 핵심 악영향


임금·가격 통제의 부정적 효과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상대가격 신호 붕괴와 자원 배분 왜곡

    인플레이션 환경에서는 상품·산업 간 상대가격 변화가 자원 배분의 핵심 신호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가 가격 상·하한을 정하면,

    • 어떤 산업은 인상 제한,

    • 어떤 산업은 예외 인정,

    • 임금도 직종·산업별로 상한이 달라진다.
      결과적으로 “어디에 자본·노동을 투입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격 신호가 흐려지고,
      필요한 곳에는 공급이 부족하고 다른 곳에는 과잉이 생기는 구조적 왜곡이 쌓이게 된다.

  2. 숨은 인플레이션과 ‘밀린 인상분’의 폭발

    통제 기간 동안 임금·가격은 행정적으로 눌려 있지만,

    • 노조의 임금 인상 요구,

    • 기업의 마진 회복 요구는 사라지지 않고 누적된다.
      통제가 완화·해제되는 순간, 이 “밀린 인상분”이 한꺼번에 반영되면서 물가가 급등한다.
      실제로 1972년 일시적으로 3%대까지 내려갔던 인플레이션은,
      가격통제가 느슨해지고 1차 오일쇼크가 겹치면서 곧바로 두 자릿수 인플레이션으로 폭발한다.

  3. 투자·성장 잠재력 훼손

    가격을 시장이 아닌 정부가 정하는 환경에서는
    기업 입장에서 장기 투자에 대한 기대수익률 자체가 불확실해진다.
    규제 대상 산업일수록 설비투자와 신규 진입이 위축되고,
    이는 결국 성장잠재력 저하 → 낮은 성장률·높은 실업률의 고착으로 이어진다.

요약하면, 임금·가격 통제는

“단기적으로 물가상승률 숫자를 예쁘게 보이게 만들지만,
장기적으로는 인플레이션을 더 폭발적으로 만들고, 성장잠재력까지 훼손하는 정책”
이었다.

 


3-4. 그 위에 얹힌 1차 오일쇼크


이렇게 왜곡된 가격 체계 위에 1973년 1차 오일쇼크가 올라탄다.

  • 1973년 10월, 아랍 산유국들은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서방 국가들에 대해 석유 금수조치를 단행한다.

  • 유가는 단기간에 세 배 가까이 뛰었고,

  • 이미 억눌려 있던 에너지 가격이 폭발적으로 재조정되었다.

표에서 보면 충격은 명확하다.

  • 인플레이션: 1972년 3.27% → 1973년 3.65% → 1974년 9.39% → 1975년 11.80%

  • 성장률: 1973년 4.02% → 1974년 -1.95% → 1975년 2.55%

연준은 1974년 FFR을 **10.51%**까지 올리며 뒤늦게 대응했지만, 이미

  • 가격통제가 풀리며 튀어 오른 숨은 인플레이션,

  • 오일쇼크,

  • 노조와 기업의 누적된 인상 요구

가 한꺼번에 폭발하는 국면이었다.

더 치명적인 부분은 1975년이다.

  • 인플레이션은 여전히 **11.8%**에 달했는데,

  • FFR은 **5.82%**까지 재인하되었다.

즉, 실질 정책금리가 깊은 마이너스인 상태를 그대로 방치한 것이다.
이 지점이 바로 시장과 학계가 지적하는 **“아서 번스의 치명적 패착”**이다.


닉슨 행정부 경제팀은 마비 되었고, 이어 워터게이트 사건이 폭로되면서 정치적 위기까지 겹쳐 결국 닉슨은 사임을 발표하였다.

그 뒤를 이어 공화당 소속 제럴드 포드가 후임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4. 포드: 가격통제의 잔재와 규제완화의 시작 (1975~1976)

포드 대통령은 성품 면에서는 닉슨과 달리 온건하고 안정적인 인물이었으나,

초기에는 **WIN(Whip Inflation Now)**라는, 이름만 거창한 “인플레이션 때리기” 캠페인을 추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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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은 실제로는

  • 국민에게 절약·자제를 호소하고,

  • 각종 행정적 가격·임금 가이드라인을 이어가는 정도에 그쳤다.

그린스펀은 이를 두고

“정말 믿기 힘들 정도로 어이없는 안건”
이라고 회고한다. 그만큼 시장 기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정책으로 본 것이다.

 

그러나 포드 행정부는 곧 현실을 인정하고,

  • 소득세 환급,

  • 한시적 재정지출 확대,

  • 연방 예산 증가 제한

등을 통해 침체된 경기를 되살리는 방향으로 전환한다.

동시에 중요한 변화가 시작된다. 바로 규제완화(deregulation)의 시동이다.

  • 철도 상업,

  • 트럭운송업,

  • 항공 산업 등을 중심으로

가격·진입 규제를 풀어 시장 경쟁을 회복시키는 작업이 시작된다.

이는 곧

  • 1980년대 레이건 시기의 기업 M&A 붐,

  • 산업 구조조정,

  • 새로운 산업의 탄생

으로 이어지며, 미국 경제의 유연성과 탄력성을 크게 높이는 토대가 된다.


5. 카터: 규제완화의 연속과 인플레이션 관리 실패 (1977~1980)


지미 카터 정부는

  • 포드 시기부터 시작된 규제완화 흐름을 전기·통신 등으로 확장했고,

  • 이 덕분에 집권 초기 1년은 높은 성장률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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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로 보면 다음과 같다.

  • 1977년: FFR 5.54%, 인플레이션 5.22%, 성장률 5.01%

  • 1978년: FFR 7.94%, 인플레이션 6.84%, 성장률 6.66%


즉, 규제완화·재정정책 덕분에 실물경제는 호조였으나, 인플레이션은 다시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었다.


문제는 카터의 리더십 스타일이다.
그린스펀의 표현을 빌리면, 카터는

  • 우유부단하고,

  • 의기소침한 인상을 주며,

  • “변화조차 선택의 여지 없이 해야 하는 것처럼 만들어 버리는” 리더였다.

그 결과, 카터 행정부는

  • 실업률을 낮추고,

  • 인플레이션을 잡고,

  • 재정적자를 줄이려는


서로 양립하기 어려운 세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였다.


그러나 어느 하나도 확실하게 우선순위에 두지 못한 채,
존재하지 않는 절충안을 찾아 헤매는 회의만 반복하였다.

여기에 1979년 2차 오일쇼크가 덮친다.

  • 이란 혁명과 공급 불안으로 유가가 급등했고,

  • 인플레이션은 1979년 9.28%, 1980년 **13.91%**까지 폭등하였다.

  • 성장률은 1979년 1.28%, 1980년 **-0.04%**에 그쳤다.

카터 행정부는 이 위기 속에서

  • 임금·가격 통제를 본격적으로 되살리지도 못하고,

  • 그렇다고 강력한 통화긴축을 뒷받침하지도 못하는

애매한 태도를 보였다.

결국 1979년, 카터는 시장의 신뢰를 잃은 빌 밀러 대신
폴 볼커를 연준 의장으로 임명한다.





6. 볼커–레이건–그린스펀: 통화정책 신뢰 회복과 골디락스


6-1. 볼커의 디스인플레이션


볼커는 취임 직후,

“내 임무는 인플레이션이라는 괴물을 잡는 일이다”


라고 명확히 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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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0월, 연준은

  • **통화량 타깃팅(10·6 조치)**를 선언하며

  • 기존의 금리 목표제에서 벗어나

  • 통화 공급을 직접 관리하는 방식으로 전환한다.

그 결과,

  • 1980년: FFR 13.35%, 인플레이션 13.91%

  • 1981년: FFR 16.39%, 인플레이션 11.83%

  • 1982년: FFR 12.24%, 인플레이션 8.39%


실질 금리는 드디어 플러스 영역으로 깊게 올라서고,
장기 인플레이션 기대가 서서히 꺾이기 시작한다.

대신 성장률은

  • 1980년 -0.04%,

  • 1982년 -1.44%

두 차례 침체를 겪는다. 즉, **“고통스러운 디스인플레이션”**이다.





6-2. 레이건과 그린스펀: 공급 측 개혁 + 안정된 통화체제


볼커가 인플레이션을 꺾은 뒤, 레이건 행정부와 그린스펀 체제는

  • 감세,

  • 규제완화,

  • 방위산업 투자


를 통해 공급 측 개혁을 강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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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1989년 지표를 보면,

  • 성장률: 1983년 7.9%, 1984년 5.6% 등, 디스인플레이션 이후 강한 리바운드,

  • 인플레이션: 대체로 3~4%대에 안착,

  • FFR: 6~10% 수준에서 관리되며 실질 금리는 플러스 유지이다.

이 시기를 흔히 **골디락스(Goldilocks)**라고 부른다.
볼커–그린스펀 체제 아래에서 통화정책의 신뢰가 회복되고,
레이건–포드–카터 시기부터 이어져 온 규제완화·구조조정이 결실을 맺는 구간이다.

그 과정에서 1987년 블랙먼데이가 발생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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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스펀은 “연준은 필요한 유동성을 공급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단 한 문장으로
시장 신뢰를 지탱하며, 실물 경기 침체로의 확산을 막는 데 성공한다.




7. 다시 보는 아서 번스: “저금리”가 아니라 “시장 파괴”가 진짜 문제


이제 다시 아서 번스로 돌아가면, 1970년대의 대실패는 다음 네 가지로 요약된다.

  1. 정치적 포획

    • 닉슨의 재선 일정에 맞추어

      • 1971~72년 완화,

      • 1975년 재완화를 단행하며

    • 연준 독립성을 스스로 훼손하였다.

  2. 임금·가격 통제와의 결합

    • 임금·가격 통제가

      • 상대가격 신호를 파괴하고,

      • 품질 하락·공급 축소·암시장 확대를 초래하며,

      • “밀린 인상분”을 쌓아두었다가 통제 해제 후 인플레이션 폭발로 연결되는 메커니즘을 방치하였다.

  3. 오일쇼크 위에 겹친 왜곡 구조

    • 이미 왜곡된 가격체계 위에

    • 1차 오일쇼크가 얹히며

    • **“숨은 인플레 + 에너지 가격 급등”**이 동시에 터지는 국면을 만들었다.

  4. 실질 마이너스 금리 방치

    • 1975년처럼 인플레이션 **11.8%**에 FFR **5.82%**를 용인하며,

    • 통화가치에 대한 신뢰를 구조적으로 훼손하였다.

따라서 번스의 패착을

“저금리를 잘못 썼다”


수준으로 요약하는 것은 지나치게 피상적이다.


본질은

정치–물가통제–오일쇼크–실질 마이너스 금리가 한 세트로 작동하며
시장 가격 메커니즘을 무너뜨린 것

이다.


8. 케빈 해셋–트럼프 2기와 1970년대: 공통점과 구조적 차이


이제 현재의 논의로 돌아간다.
트럼프 2기 하에서 케빈 해셋이 차기 연준 의장으로 거론되면서,
시장에서는 **“트럼프 친화적 저금리 → 번스 시즌 2”**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분명히 닮은 점도 있다.

  1. 대통령과의 밀착 관계

    • 번스가 닉슨의 “경제 참모” 출신이었듯,

    • 해셋 역시 트럼프의 오랜 경제 자문역으로, 낮은 금리에 우호적인 인물로 평가된다.

  2. 시장 우려의 초점도 ‘독립성’

    • 채권·주식 시장이 우려하는 지점도
      **“연준이 정치 일정에 종속되는 것 아니냐”**는 부분이다.

그러나 구조적으로 다른 점이 세 가지 있다.


8-1. 인플레이션 수준·기대의 차이

  • 1970년대에는 인플레이션이

    • 상시 5~10%대,

    • 때로는 10%를 넘어가는 수준까지 고착되었고,

    • “언젠가 2%대로 복귀한다”는 신뢰가 사실상 사라져 있었다.

  • 반면 현재는

    • 팬데믹·공급망 충격 이후 높은 물가를 경험했지만,

    • 대체로 3% 전후에서 정체된 고물가라는 평가에 가깝고,

    • 중앙은행의 2% 물가안정 목표가 제도적으로 붕괴된 상황은 아니다.


8-2. 임금·가격 통제의 부재

  • 현재 미국에서 닉슨 시기처럼

    • 모든 임금·가격을 동결하거나,

    • 위원회가 인상 허용 범위를 정하는 전면적 물가통제를 도입하자는 정치적 합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 오히려 1970년대의 경험 때문에

    • **“가격통제는 숫자만 예쁘게 만들고, 실물경제는 망가뜨린다”**는 교훈이 광범위하게 공유되어 있다.

즉, 번스 시절과 같은 방식으로 시장 가격 메커니즘을 깨뜨릴 가능성은 역사적으로 상당히 낮다는 점이다.


8-3. 에너지·오일쇼크 구조의 차이

  • 1970년대에는

    • 미국이 에너지 수입에 크게 의존했고,

    • OPEC이 공급을 죄는 순간

    • 미국은 거의 속수무책에 가까운 상태였다.

  • 지금은

    • 셰일혁명 이후 미국 자체의 생산 능력이 크게 확대되었고,

    • OPEC+도 2027년부터 **최대 지속가능 생산능력(MSC)**을 기준으로 한 쿼터 시스템을 도입하며
      생산능력 확대 유인을 주는 구조로 이동 중이다.

물론 지정학적 충돌로 유가가 다시 급등할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그러나 1970년대식 구조적 에너지 종속 + 가격통제 + 오일쇼크의 3중 조합
그대로 재현될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8-4. 트럼프 2기 정책조합: 포드·레이건과의 유사성


한편, 트럼프 2기의 정책 조합을 보면 오히려

  • **관세·세제 조정(부분적 환급·감세)**을 통한 소비·투자 유인,

  • AI·디지털 인프라 분야 규제완화를 통한 공급 측 강화

등에서 포드–레이건 시기와 유사한 측면이 뚜렷하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소비·투자 활성화,
중장기적으로는 잠재성장률 제고에 기여할 수 있는 조합이다.

따라서, 케빈 해셋이 트럼프 기조에 맞춰

  • 기준금리를 중립 수준보다 다소 낮추고,

  • 일정 수준의 유동성을 공급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 임금·가격 통제,

  • 에너지 공급충격,

  • 실질 마이너스 금리의 장기 방치

와 결합하지 않는 한,
1970년대식 대침체를 그대로 복사해낼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보는 편이 합리적이다.


9. 결론: “금리 인하 = 번스 시즌 2”라는 단순 도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찰리 멍거의 말처럼,

“역사를 공부하지 않으면 평생 아이처럼 살 수밖에 없다.”


1970~80년대 미국의 금리·물가·성장률을 연도별로 함께 놓고 보면, 다음과 같은 교훈이 도출된다.



  1. 번스의 실패는 저금리 자체가 아니라, 나쁜 조합의 산물이었다.

    • 정치 개입,

    • 임금·가격 통제,

    • 오일쇼크,

    • 실질 마이너스 금리.
      이 네 가지가 동시에 작동하며 시장 가격 메커니즘을 무너뜨렸다는 점이 핵심이다.

  2. 볼커의 성공은 “높은 금리” 그 자체보다 “정책 일관성과 신뢰 회복”에 있었다.

    • 두 번의 경기침체를 감수하면서도 인플레이션 기대를 확실히 꺾었고,

    • 그 위에서 레이건–그린스펀의 규제완화·구조조정이 골디락스를 만들었다.

  3. 현재 케빈 해셋 리스크의 본질은 ‘금리 수준’보다 ‘연준 독립성’에 가깝다.

    • 인플레이션 수준, 에너지 구조, 물가통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 모두가
      1970년대와는 크게 다르다.

결과적으로,

“해셋이 금리를 내리면 아서 번스의 악몽이 재현된다”


는 단순 도식은,

 역사적 맥락과 정책 조합을 과도하게 축약한 해석에 가깝다.


우리가 봐야 할 것은

  • 금리 자체보다 정책의 일관성과 연준의 독립성,

  • 정부의 가격·임금 개입 여부,

  • 에너지·공급 측 구조,

  • 통화·재정·규제의 조합 전체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케빈 해셋이 기준금리를 인하하더라도
1970년대식 대침체를 그대로 우려하는 것은 아직까지 “기우”에 더 가까운 판단이라고 보는 편이 합리적이다.


글을 마치며: 한국 부동산 규제와 닉슨식 가격통제의 데자뷔


흥미롭게도, 지금 한국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각종 부동산 규제는, 과거 닉슨 행정부가 실시했던 가격통제 정책과 구조적으로 더 유사한 측면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강한 규제를 통해 표면적인 주택가격 상승을 억누르고 있지만, 실제로는

  • 주거비 상승 압력,

  • 원·달러 환율 상승에 따른 수입물가 상승,

  • 노란봉투법을 포함한 노동 규범 변화와 최저임금 인상

여러 요인이 통계에 온전히 반영되지 않은 숨은 인플레이션 요인으로 축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인들은 전반적인 인플레이션을 자극해 실질금리를 마이너스 영역으로 밀어 넣을 수 있고,
향후 토지거래허가제와 같은 규제가 해제되는 시점에는 그간 풀려 있던 유동성과 통화량이 한꺼번에 부동산 시장에 반영되면서,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는 그림이 오히려 더 설득력 있는 시나리오로 보이기도 한다.


과거 닉슨–아서 번스 시기의 교훈은 결국 한 가지로 정리된다.

“가격을 억누르는 것만으로 인플레이션이 사라지지 않는다.”


숫자를 예쁘게 만들기만 하는 정책들은 리처드 닉슨 행정부 시절처럼 언젠간 탄로날 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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