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의 시장 개입이 지나치게 확대되고 있다는 인상이 강하다.
특히 원·달러 환율 시장에 대한 개입은, 지금의 선택이 시간이 지난 뒤 어떤 후폭풍으로 돌아올지에 대한 고민이 충분했는지 의문이 든다.
원화의 구조적인 약세가 물가 상승과 내수 경기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개입에 나섰다는 명분 자체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판단이 너무 단기적인 물가·경기 변수만을 바라본 편협한 시각에 기반한 것은 아닌지 되묻게 된다.
이번글은 밀턴 프리드먼의 명언으로 글을 시작해본다.
“자유보다 평등을 앞세우는 사회는 결국 둘 다 잃는다.
자유를 우선하는 사회만이 자유와 실질적인 평등 모두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다.”
0. 문제의식: 왜 2H26~2027년이 “원화 2차 약세”의 분기점인가
앞선 2편에서 2026년 미국 그림은 한 줄로 정리하면 이렇다.
**“AI 투자와 감세 환급으로 성장·투자는 강하고,
공급 쪽 요인 덕에 물가는 생각보다 버티는 가운데,
금리는 한 번 내리고, 더 높은 바닥(명목 3% 안팎)에서 멈추는 세계”**이다.
여기에 더해 2H26 이후에는
선거 직후 확장재정 재개 → 재정적자·국채 공급 확대,
연준에 대한 정치적 압력 증가, 독립성 훼손 논란,
점도표 폐지·인플레 타깃 재검토 논쟁 등으로
시장 입장에서 **“미국은 성장은 좋은데, 재정과 통화정책의 신뢰는 오히려 약해지는 나라”**로 보일 수 있다.
이 조합은 미국 금리에 대해 두 가지를 동시에 뜻한다.
r* (중립 실질금리)은
AI 투자·잠재성장률 상향 때문에
2010년대(실질 0% 안팎)보다 위로 이동한다.
term premium(장기채에 붙는 위험 프리미엄)은
재정적자·국채 공급·정치 리스크 때문에
2H26~2027년부터 꾸준히 누적·점프될 가능성이 크다.
연준 리포트에서도 최근 미 국채 금리 급등의 상당 부분을 term premium 상승으로 설명한다.
이 말은 곧,
**“미국은 성장도 괜찮고, 장기금리는 r*+term premium 덕분에 3~5%에서 고착되는 세계”**라는 전제가 깔린다는 뜻이다.
이 세계에서, 저성장·고령화·빠른 부채 증가·비기축통화·EXIT PLAN 부재인 한국의 원화가 어떻게 보일지를 정리하는 것이 이번 글의 핵심이다.
1. 한국 구조적 디스카운트: 네 가지 축을 한 문장으로 묶으면
앞선 글들에서 이미 얘기했듯, 한국은 네 축이 동시에 문제이다.
저성장·고령화
IMF 2024 Article IV에 따르면 한국의 실질 성장률은
2024년 2.2%, 2025년 이후 2% 안팎으로 잠재 성장률 수준에 수렴할 것으로 전망된다.
IMF 2024 한국 연례협의합계출산율 0.7대, 초고령화 진입 속도가 OECD 최고 수준이라는 점까지 감안하면,
“예전처럼 높은 성장 프리미엄을 줄 수 있는 나라”는 아니다.
부채의 “속도”
IMF Fiscal Monitor와 이를 인용한 기사들에 따르면,
한국 일반정부 부채비율은 2020년 45.9% → 2030년 64%대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비(非)기축통화국 중에서는 향후 5년간 부채비율이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나라로 지적된다.
BusinessKorea 기사
비기축통화국이라는 신분
달러·유로·엔처럼 자국통화로 무제한 차입이 가능한 기축통화국이 아니며,
외국인·신용평가사가 요구하는 통화·금리·재정 규율을 무시하기 어렵다.
같은 60%대 부채라도, 원화에 붙는 위험프리미엄은 달러·엔보다 더 클 수밖에 없다.
EXIT PLAN 부재
IMF는 한국에 대해
“고령화·지정학·기후변화를 감안할 때 연금·재정·구조개혁 로드맵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반복해서 권고한다.
IMF Staff Report그러나 시장이 보기에는
“10~20년 뒤 이 부채·복지·에너지 구조를 어떤 경로로, 어떤 세금·지출 조합으로 수습할 것인지”가 여전히 안 보인다.
이 네 축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성장은 둔화되고, 부채는 가장 빠르게 늘고, 통화는 비기축이고, EXIT PLAN은 없다”**는 상태이다.
이 조합이 바로 원화와 한국 국채·한국 자산 전체에 붙는 구조적 디스카운트이다.
즉, 이 상태에서 미국이 r*+term premium을 얹은 3~5% 장기금리를 주는 나라가 되면,
**“한국에서 벌어 미국에 쌓는 것이 기본 전략”**이 되는 구조가 고착된다.
2. BASE 1,400원: 왜 1,300대는 사실상 시나리오에서 사라졌는가
이 전제 위에서, 원·달러 1,300대를 다시 보자.
과거(고성장·저부채 시절)에는 1,100~1,200원이 “균형 또는 약세”였다.
그러나 지금은
미국은 성장·금리에서 우위,
한국은 저성장·부채·비기축·EXIT PLAN 부재라는 네 가지 디스카운트를 갖고 있다.
이 그림이면 환율이 의미 있게 내려가는 경우는 보통 둘 중 하나이다.
미국이 크게 나빠지는 경우
미국 경기 후퇴, 연준 대규모 인하, 달러 인덱스 90대 초반 붕괴 같은 이벤트.
즉, “한국이 좋아져서”가 아니라 “미국이 나빠져서” 환율이 내려가는 구간이다.
한국 쪽에서 구조적 개선 쇼크가 나오는 경우
연금·복지·재정·에너지·AI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EXIT PLAN 패키지,
중장기 성장·인구·전력·재정을 동시에 다루는 “큰 설계도”가 나올 때이다.
현실적으로, 우리 시나리오에서 2번에 해당하는 이벤트는 가능성 자체가 매우 낮다고 깔고 들어가고 있다.
따라서 1,300대는 “좋은 시나리오의 평균”이 아니라, 거의 tail에 가까운 구간이다.
그래서 정리하면,
BASE(중력중심)는 1,400원대,
1,500원대는 미국 term premium 재상승 + 한국 구조리스크 + 정치화된 환방어가 충돌할 때 열리는 스트레스 구간으로 보는 것이 구조적으로 일관된다.
3. 시간축으로 겹쳐 보기: 1H26 → 2H26 → 2027~28년
이제 2편에서 정리한 미국 금리 시나리오와
지금까지 정리한 한국 구조 디스카운트를 시간축으로 겹쳐 보자.
3-1. 1H26: 숫자는 예쁘다, 원화는 “완화된 약세”
1H26은 미국 입장에서 숫자가 가장 좋아 보이는 구간이다.
OBBBA 감세 환급 → 1분기 소비(C) 부스트
AI·에너지 CAPEX → 투자(I) 상방
선거 전 확장재정 → 정부지출(G) 플러스
공급발 디스인플레이션 덕에 물가는 3% 안팎으로 내려와 있다.
이 환경에서 연준은
5%대 정책금리를 3%대로 내리는 **1차 인하(정상화)**를 할 여지가 생기고,
QT 종료·T-bill 매입으로 유동성 환경을 중립에 가깝게 돌린다.
달러 입장에서는
“성장도 괜찮고, 물가도 내려가고, 금리도 조금 내린다”
라는 골디락스 내러티브가 만들어지기 쉽다.
이 국면에서 원·달러를 보면,
2024~25년의 급격한 약세 구간(예: 1,500 테스트)에서
일부 되돌림이 나오는 것은 자연스럽다.그러나 그 되돌림은 구조 개선이 아니라
“미국 금리 정상화+달러 강세 피크 조정”에 따른 기술적 숨고르기에 가깝다.
그래서 1H26 원화는
“강세”라기보다는 “완화된 약세”,
평균 1,400 근처에서 상하로 흔들리되,
구조적 중력은 여전히 1,400대에 있다는 상태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3-2. 2H26: 확장재정 재개, term premium 씨앗이 심어지는 구간
문제는 2H26부터이다.
2편에서 설정한 것처럼,
선거 직후 확장 재정이 재개되고,
감세·지출 확대로 구조적 재정적자가 다시 커지고,
국채 발행, 대외 불균형, 연준 정치화 리스크가 겹치면,
시장은 다음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미국이 이렇게 계속 빚을 내면서도
장기금리가 3%대 중반에서 고정될 수 있나?”
여기서 생기는 것이 term premium 상승이다.
기준금리는 3%대 초반~중반에서 동결되어 있어도,
10년·30년 금리는
r*(실질 1% 내외) + 인플레(2~3%) + term premium
→ 4~5%대의 높은 장기금리가 형성될 수 있다.
이 과정은 이미 2023년 미국 국채 금리 급등 때도 부분적으로 경험했다.
연준 분석 노트
이 시점에서 원화는 두 겹의 압력을 받는다.
달러 쪽:
“성장+높은 장기금리+term premium”을 동시에 제공하는 자산으로서의 미국.
원화 쪽:
앞서 요약한 저성장·빠른 부채·비기축·EXIT PLAN 부재라는 구조적 디스카운트.
그 결과, 2H26 이후 원화 약세 2라운드가 다시 시작될 수 있다.
1H26에 숨을 돌렸던 환율이
2H26부터는 다시 1,400 상단~1,500원을 향해 기어 올라가는 구조이다.
이때 정부·한은·국민연금의 개입이 본격적으로 “정치화”되기 시작한다.
“1,500원은 안 된다”
“원화는 구조는 튼튼한데, 시장이 과도하게 투기한다”
“시장실패를 정부가 바로잡아야 한다”
는 프레임이 힘을 얻을수록,
개입은 시장실패를 막는 수술이 아니라
정치 프로젝트로 성격이 변한다.
3-3. 2027~28년: term premium 쇼크 + 정부실패 리스크가 동시에 커지는 시기
같은 정책·성장 조합이 2~3년 지속된다고 가정하면,
미국 재정적자·국채 공급 확대,
연준 정치화 논란,
지정학·무역마찰로 인한 대외 불균형,
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2027~28년에는 term premium 쇼크(장기금리·스프레드 급등 이벤트)**가 한 번쯤 터질 확률이 커진다.
이때 한국은 어떤 상태인가.
성장률은 여전히 2% 안팎,
부채비율은 60%대 중반으로 올라와 있고,
연금·재정·에너지·AI EXIT PLAN은 여전히 가시화되지 않았으며,
2~3년에 걸친 환율 방어전으로
외환보유고·스와프 여력,
국민연금의 환헤지 포지션,
정부·한은의 정책 신뢰까지 소진되기 시작한다.
이 시점에서 1,500원대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다음과 같은 프레임이 되어 있을 수 있다.
“이 레벨을 방어하지 못하면 정권 실패,
방어하면 시장을 이긴 정부”
바로 여기서 1992년 영국 파운드 방어와의 구조적 유사성이 커진다.
영국은 ERM 하단을 정치적 마지노선으로 만들었다가,
시장과 정면충돌 끝에 정부실패로 귀결되었다.
영국 파운드 위기 개요한국도 1,500원을 정책·정치 마지노선으로 삼는 순간,
제도는 다르지만 **“펀더멘털이 불리한 쪽이 환율 방어를 떠안는 구조”**가 닮아간다.
이 구간에서의 핵심 위험은
**“시장실패를 바로잡겠다며 시작한 개입이
정부실패(연금손실·보유고 소진·정책신뢰 붕괴)로 전환되는 시점”**이다.
4. 시장실패 vs 정부실패: 어디까지가 정당한 개입인가
환율 개입이 항상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문제는 무엇을 시장실패로 정의하느냐이다.
단기 패닉·유동성 부족으로
환율이 짧은 시간에 5~10% 튀는 상황은
정부·한은·공적부문의 개입으로 완화할 정당성이 있다.
→ 이 경우 개입은 “가격 수준”이 아니라 “속도·변동성”을 조정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가정한 세계에서는,
미국의 r* 상향,
term premium 누적,
한국의 구조적 디스카운트(저성장·부채 속도·비기축·EXIT PLAN 부재)가
같이 움직이고 있다.
이 경우 원·달러 1,400~1,500원대는
“시장이 잠시 미친 가격”이 아니라,
**“미·한 구조 격차와 한국 구조적 디스카운트를 가격으로 반영한 결과”**에 가깝다.
이 구조적 변화를
“시장실패”라고 부르며
공적 자금·연금·보유고로 억누르기 시작하는 순간,
이제부터는 시장실패가 아니라 정부실패 리스크가 핵심이 된다.
1992년 영란은행의 교훈은 간단하다.
**“펀더멘털이 허용하지 않는 환율 레벨을
시장실패라는 이름으로 고정하려 들면,
시장실패보다 더 큰 정부실패가 터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도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야 한다.
1,500원이 정말로 **“시장의 오류”**인가,
아니면 **“한국 구조적 디스카운트와 미국 term premium가 반영된 새 레벨”**인가.
전자를 전제로 정책을 짜면,
개입은 영국식 “파운드 방어”와 닮아갈 수밖에 없다.
5. 정리: 이 시나리오에서 원·달러 환율은 어떻게 흘러가는가
이제 전체 시나리오를 한 번에 정리해 보겠다.
미국
AI 투자·감세 환급·확장재정 덕분에
성장은 2010년대보다 높은 레벨을 유지한다.r*는 생산성·잠재성장률 상승으로
실질 0% → 1% 안팎으로 상향되고,2H26 이후 재정적자·국채 공급·정치 리스크로
term premium이 누적·재상승한다.이로 인해 미국 10년·30년 금리는
명목 3~5%대에서 고착되는 고금리 구조가 된다.
한국
성장률은 2% 안팎,
일반정부 부채는 비기축국 중 최고 속도로 증가,
비기축통화, EXIT PLAN 부재라는
구조적 디스카운트를 안고 있다.이 구조에서 원화는
**“성장도, 이자도 미국보다 못 주는 통화”**가 된다.
환율
1H26에는 연준 1차 인하·디스인플레이션 덕분에
원·달러가 잠시 숨을 고를 수 있으나,
이때도 중력중심은 이미 1,400원대에 가깝다.2H26 이후 확장재정·term premium 누적,
한국 구조 디스카운트 지속,
정치화된 환방어가 겹치면서
원·달러 1,500원대가 열리는 2차 약세 국면이 재개될 수 있다.정부·한은·국민연금의 개입은
방향(약세) 자체를 바꾸기보다,
1,500원 이상으로 가는 속도와 타이밍을 늦추는 역할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정책 리스크
이 과정에서 환율이
“시장 가격”이 아니라 “정권 성적표”로 소비되면,
개입은 시장실패 방어가 아니라 정부실패 리스크로 바뀐다.1992년 영란은행처럼 단 하루에 붕괴하는 드라마는 아닐 수 있지만,
**“느리게 진행되는 블랙 웬즈데이”**에 가까운 시나리오로 수렴할 위험이 있다.
마지막 문장으로 압축하면 이렇게 쓸 수 있다.
AI·감세·확장재정 덕분에 미국은 r*와 term premium을 동시에 위로 끌어올리는 나라가 되는 반면, 저성장·부채·비기축·EXIT PLAN 부재 속에 한국은 구조적 디스카운트를 피하지 못하는 나라가 된다.
이 조합이 계속되는 한, 원·달러 환율의 BASE는 1,400원대에 고정되고, 2H26 이후 재정적자와 term premium 재상승, 정치화된 환율 방어가 겹치는 시점마다 1,500원대가 열리는 2차 약세 국면이 반복될 수 있다.
그때도 환율 수준을 일방적으로 시장실패로 규정하며 정부가 개입을 이어 간다면, 문제의 초점은 약한 원화가 아니라 시장실패를 교정하려다 오히려 정부실패를 초래하는 구조로 옮겨가며, 그 과정에서 한국 자산과 원화에 대한 구조적 디스카운트 요인만 더 강화될 것이다.
=끝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