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스스로에게 되뇌어온 말이 있다.
AI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대피처는 사회에도, 투자 세계에도 없다는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그 생각의 이유를 풀어 기록 정리해본다.
이익은 집중되고, 비용은 넓게 퍼지는 경제
Agent AI가 무엇을 할 수 있고, 우리의 일과 생활을 어떻게 바꿀지는 이전 글에서 정리했다.
생각정리 376 — The Consumer Token Moment
이번에는 그 편리함의 뒤에 있는 비용을 생각해본다. Agent가 더 많은 일을 대신해준다는 것은, 그 일을 실행할 컴퓨터와 전력, 자금과 자원이 더 필요해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Agent가 가져다주는 효용은 공짜가 아니다. 그리고 그 효용을 얻는 사람과 비용을 부담하는 사람이 반드시 같지도 않다.
개인적으로는 이 차이가 앞으로 AI 시대의 분배 문제를 이해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 AI 도입은 확대되고 있지만, 지출은 여전히 특정 기업(*계층)에 집중되어 있음. |
|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ai - 출처: EpochAIResearch |
1. 저렴한 Agent와 저렴한 사회는 다른 이야기다
우리는 화면에 몇 줄의 명령을 입력하고 결과를 받는다. 하지만 그 뒤에서는 컴퓨터가 정보를 읽고, 계획을 세우고, 작업을 실행하고, 결과를 검증한다.
Agent가 일하는 동안 서버와 메모리가 사용되고, 전력이 소비된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전력설비도 먼저 만들어져 있어야 한다.
그 물리적인 기반은 아래 글로 갈음한다.
생각정리 378 — The Memory Behind Every Agent
토큰은 AI가 처리하는 글과 정보의 작은 단위다. 여기서 말하는 토큰 경제는 사람이 하던 지식 업무가 컴퓨터의 처리량과 사용료로 바뀌는 경제에 가깝다.
기술이 발전하면 같은 일을 처리하는 비용은 낮아질 수 있다. 하지만 저렴해진 만큼 더 많은 사람이 더 많은 일을 Agent에 맡긴다면, 사회 전체의 사용량과 지출은 오히려 증가할 수 있다.
토큰당 가격 하락과 전체 컴퓨팅 지출 감소는 같은 말이 아니다.
국제에너지기구도 AI의 작업당 에너지 효율 개선과 함께, 더 많은 계산이 필요한 추론·Agent 작업의 확산을 설명한다. 전체 전력 수요는 효율뿐 아니라 사용량과 작업의 종류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IEA — Key Questions on Energy and AI. www.iea.org
Agent가 저렴해지는 것은 이용자에게 좋은 일이다. 그러나 Agent가 저렴해졌다고, 그 Agent를 움직이는 사회 전체의 자원 비용까지 함께 저렴해지는 것은 아니다.
2. AI의 확장은 사회가 함께 쓰는 자원을 필요로 한다
AI 인프라 투자, 즉 AI Infrastructure CAPEX는 컴퓨터를 구매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데이터센터를 지을 땅과 건물, 서버와 반도체, 전선과 변압기, 발전설비와 냉각시설이 필요하다. 이를 설계하고 건설하고 운영할 사람도 필요하다.
기업의 현금뿐 아니라 대출과 채권, 투자자의 자금도 들어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자원들이 AI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공장과 주택, 병원과 학교도 같은 전력과 자재, 인력과 자금을 필요로 한다.
AI 인프라의 확장은 사회의 공통 자원을 확보하는 경쟁이기도 하다.
어떤 지역에 대규모 데이터센터가 들어온다고 가정해보자. 기존 전력망으로 감당하기 어렵다면 발전설비와 송전망을 추가해야 한다.
그 비용을 데이터센터가 충분히 부담하면 다른 이용자의 부담은 제한된다. 반대로 일반 전기요금에도 비용이 배분된다면, Agent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가정과 가게도 일부를 부담하게 된다.
자재와 인력도 비슷하다. 특정 장비와 숙련된 기술자가 부족해지면 다른 시설을 짓는 데도 더 많은 비용과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AI에서 시작된 수요가, AI 산업 밖의 비용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리사 쿡 연준 이사 역시 AI 관련 산업 내부의 가격 상승과 경제 전체의 물가 상승을 구분하면서, 공유하는 건설 인력과 에너지 등을 통해 가격 압력이 넓어질 가능성을 지적했다. 연준 — An Update on AI and the Economy. www.federalreserve.gov
모든 자재와 생활물가가 같은 폭으로 오른다는 뜻은 아니다. 공급이 빠르게 늘기 어려운 공통 자원에서 비용 압력이 발생하고, 그 부담이 여러 산업과 가계로 전달될 수 있다는 의미다.
3. 높은 투자수익률과 높아진 생활비는 함께 존재할 수 있다
AI 기업이 높은 전기료와 건설비를 지불하면서도 투자를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비용보다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투자한 돈에 비해 얼마나 많은 이익을 얻는지를 나타내는 ROIC, 투자수익률이 충분히 높다면 비용 상승을 감당할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전기를 사용하는 작은 가게는 다르다. 전기료가 오른다고 매출이 함께 늘지는 않는다.
일반 가정도 마찬가지다. 전기요금을 더 낸다고 월급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더 큰 이익을 얻기 위한 투자비용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이익 없이 추가된 생활비일 수 있다.
이 때문에 AI 인프라 기업의 수익성이 좋아지는 것과 사회 전체의 생활 부담이 커지는 것은 모순이 아니다. 둘은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
물론 모든 AI 투자가 높은 수익을 내는 것은 아니다. 경쟁과 과잉투자, 낮은 가동률은 투자자의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다만 일부 기업이 높은 수익성을 유지하며 자원을 계속 확보한다면, 그 자원으로 큰 이익을 얻지 못하는 경제주체는 같은 비용 상승을 훨씬 어렵게 견딜 수 있다.
4. 노동을 구매력으로 바꾸던 경제가 약해진다
우리가 익숙한 경제의 기본 흐름은 간단하다.
노동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고, 그 돈으로 물건과 서비스를 구매한다.
자신의 시간과 능력을 구매력으로 바꾸는 것이다. 큰 자본이 없어도 노동을 통해 경제가 만들어내는 부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런데 Agent가 사람이 하던 업무를 맡기 시작하면, 기업은 더 많은 일을 처리하면서도 그만큼 사람을 더 고용하지 않을 수 있다.
대규모 해고만의 문제도 아니다. 신입 채용을 줄이고, 퇴사자의 자리를 채우지 않고, 외주 계약을 축소하는 방식으로도 노동의 몫은 줄어들 수 있다.
이전 글에서 다뤘던 사회적 파장도 이와 연결된다.
생각정리 362 — The Fed, AI and the Price of Stability
한 회사가 Agent를 도입해 인건비를 절약했다고 가정해보자. 절약한 돈의 일부는 AI 사용료가 되고, 일부는 회사의 이익으로 남을 수 있다.
가격을 낮추거나 직원의 임금을 높이는 데 사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절약된 인건비가 자동으로 노동자의 새로운 소득이 되는 것은 아니다.
AI 서비스 제공자의 매출과 도입 기업의 이익으로 이동한 돈은, 배당과 기업가치 상승을 통해 자본 소유자에게 돌아갈 수 있다.
사람의 노동으로 만들던 성과를 컴퓨팅으로 만들게 되면서, 성과에 대한 보상도 노동에서 자본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이런 변화가 넓어진다면, 자신의 노동을 팔아 구매력을 얻던 방식이 점차 ‘구경제’처럼 느껴질 수 있다. 노동이 사라진다는 뜻보다는, 노동만으로 생산성 향상의 과실을 나눠 받는 통로가 약해질 수 있다는 의미다.
5. 값싼 지능이 소득까지 고르게 나눠주지는 않는다
Agent를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는 것과, Agent가 만들어내는 이익을 누구나 비슷하게 가져간다는 것은 다르다.
누군가는 이메일을 조금 빨리 작성한다. 다른 누군가는 Agent를 사업 전체에 연결해 고객을 확보하고, 적은 인력으로 더 큰 매출을 만든다.
같은 기술을 사용하더라도 고객과 사업, 데이터와 자금, 유통망을 가진 주체가 더 큰 이익으로 연결하기 쉽다.
지능에 대한 접근이 넓어져도, 그 지능으로 벌어들이는 소득까지 고르게 나뉘는 것은 아니다.
저렴한 Agent가 새로운 창업과 개인의 소득 기회를 열 수도 있다. 동시에 이미 큰 사업을 가진 기업이 더 빠르게 확장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두 번째 경로가 더 강하게 나타나는 경우다.
AI를 소유하고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주체는 생산성 향상과 이익 증가를 얻는다. 반면 노동소득에 의존하는 사람은 취업 기회와 임금 협상력이 약해지면서 생활비 부담까지 커질 수 있다.
소득을 얻는 힘은 약해지고, 그 소득으로 살 수 있는 양도 줄어드는 것이다.
기업이 더 많이 생산할 수 있어도 사람들이 구매할 돈이 부족하면 소비는 충분히 늘어나기 어렵다. 정부에는 실업 지원과 재교육, 주거·의료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압력이 생길 수 있다.
결국 기업의 생산성 향상이 노동소득과 세입으로 충분히 연결되지 않으면, 그 전환의 부담 일부가 정부 재정으로 이동할 수 있다.
6. 금리는 이 비용을 모두 같은 방식으로 조절하지 못한다
금리가 오르면 돈을 빌리는 비용이 커지고, 투자와 소비가 줄어드는 것이 일반적인 흐름이다.
하지만 AI 투자의 기대수익성이 충분히 높다면 일부 기업은 높은 금리에도 투자를 계속할 수 있다. 경쟁에서 뒤처지는 손실이 금융비용보다 크다고 판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금리에도 투자가 지속될 수 있는 배경은 아래 글로 갈음한다.
생각정리 357 — Beyond the Cycle, k-EPC
그렇다고 AI가 금리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같은 금리 상승에도 산업과 가계가 받는 충격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AI 투자는 지속되는 동안 작은 기업의 투자와 가계 소비가 먼저 위축될 수 있다. 높은 수익을 기대하는 기업과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돈을 빌리는 사람은 금융비용을 감당하는 능력이 다르다.
정책금리가 내려간다고 장기자금의 가격까지 같은 폭으로 내려가는 것도 아니다. 정부와 기업의 차입 수요, 미래 물가에 대한 불안이 남아 있다면 중장기 금리는 높은 수준에 머물 수 있다.
중립금리나 물가 목표는 여전히 정책 판단에 도움이 된다. 다만 경제 전체의 평균적인 기준만으로 누가 이익을 얻고, 누가 비용을 견디는지까지 설명하기는 어렵다.
AI 시대에는 금리의 방향과 함께, 자금과 자원이 어디로 배분되고 있는지를 봐야 하는 이유다.
7. AI에 참여하지 않아도 AI의 비용에서는 벗어나기 어렵다
물론 이 흐름이 반드시 분배 악화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전력과 설비 공급이 충분히 늘어나고, 데이터센터가 추가 비용을 부담하며, 경쟁이 생산성 향상을 가격 인하와 임금 상승으로 연결한다면 사회 전체의 혜택은 커질 수 있다.
문제는 시간차다. 인프라 투자와 자원 수요는 먼저 발생하지만, 생산성 향상의 혜택이 사회 전체로 퍼지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비용은 먼저 발생하고, 혜택은 나중에 도착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둘을 경험하는 사람이 같지 않을 수도 있다.
AI 주식을 사지 않을 수 있다. Agent를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이 일하는 회사의 채용 방식과 거래처의 가격, 전기요금과 대출금리, 정부의 재정 선택까지 AI의 영향에서 분리하기는 어렵다.
AI에 투자하지 않는 것은 투자 선택이다. AI가 바꾸는 경제에서 벗어나는 선택은 아니다.
그렇다고 AI 자산을 보유하면 모든 위험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산업의 성장과 투자자의 수익은 다를 수 있고, 자산을 보유하기 어려운 사람에게 같은 대응을 요구할 수도 없다.
내가 말하는 ‘AI Escape의 어려움’은 특정 자산을 사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다. AI의 혜택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도 그 비용을 부담할 수 있다는 경제 구조의 문제다.
글을 마치며
이전에는 AI가 사회 전체의 부와 이익을 일부 주체에게 집중시킬 가능성을 우려했다. Agent는 이 변화를 실제 업무의 실행 단계로 넓힌다.
사람의 노동을 대신하는 범위가 커질수록, 성과는 Agent를 소유하고 활용하는 기업과 자본에 더 많이 돌아갈 수 있다. 반면 그 기반을 만드는 전력과 자재, 인력과 자금의 비용은 사회 전반으로 퍼질 수 있다.
이익은 집중되고 비용은 넓게 분담되는 구조가 강화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같은 비용 상승도 소득과 자산이 적은 사람이나 이를 감당할 여력이 부족한 기업에는 더 큰 부담이 된다.
Agent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는지만큼, 그 성과와 비용이 누구에게 돌아가는지도 중요하다. Agent AI의 효용은 공짜가 아니며, 그 혜택을 충분히 얻지 못하는 사람과 기업도 비용에서는 자유롭기 어렵다.
이런 흐름이 이어진다면, AI에 적응하는 일은 선택보다 생존의 조건에 가까워질 수 있다. 변화의 혜택에 참여할 기회보다 적응해야 한다는 압력(*생존의 문제)이 먼저 다가오는 사회가 될지도 모르겠다.
투자자로서 AI에서 알파를 찾을 자신이 없다는 것은 내 분석의 한계이지, 다른 투자처가 AI의 영향에서 자유롭다는 근거는 아니다. AI 자산을 피할 수는 있어도, AI가 바꾸는 수익구조와 경쟁환경, 자본비용까지 피할 수는 없다.
Nowhere Is Safe from AI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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