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7일 월요일

생각정리 362 (* The Fed, AI and the Price of Stability)

국채금리가 연일 고점을 높이는 가운데, 케빈 워시와 베센트, 일부 연준 인사들의 발언을 보면 물가와 금리 상승에 대한 시장의 우려를 진정시키려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하지만 그 발언을 곱씹을수록 “과연 그럴까?”라는 의문이 남는다. 지금의 금리를 밀어 올리는 구조적 힘을 충분히 설명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https://tradingeconomics.com/united-states/52-week-bill-yield

이번 글은 그 질문에서 출발했다. 그동안 블로그에 축적해온 자료를 GPT와 함께 다시 살펴보며, 연준의 역사부터 AI 시대의 소득 배분과 정부부채까지 연결해본 리서치 기록이다.


위기 때마다 커진 연준, 그리고 AI 시대에 다시 돌아오는 질문


케빈 워시의 연준 대차대조표 축소 구상을 보면서, 연준이 지금의 모습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다시 연결해보고 싶어졌다.

이전 「생각정리 173 — Kevin Warsh」에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연준의 역할이 어떻게 확대됐는지를 살펴봤다.

그런데 워시가 줄이려는 것은 국채와 MBS의 보유금액만은 아닌 듯하다.

정부와 금융시장이 연준을 전제로 움직이는 방식,
위기가 발생하면 중앙은행이 위험을 받아줄 것이라는 기대,
그리고 그 기대 위에서 쌓인 부채와 자산가격까지 함께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AI라는 새로운 변수가 들어온다.

AI는 생산성을 높이고 경제 전체의 부를 크게 늘릴 수 있다. 동시에 노동을 통해 그 부에 참여하던 통로를 좁히고, 생산성과 소득을 일부 기업·개인·자본에 집중시킬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불안해진 다수의 생활을 정부가 차입으로 지탱하게 된다면, 연준이 시장에서 물러나는 일은 더 어려워지는 것 아닐까.

반대로 AI의 생산성 향상이 새로운 소득과 세입으로 충분히 연결된다면, 지금의 부채와 분배 문제를 감당할 여력도 커질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경로를 이해하기 위해 시계를 1907년으로 돌려본다.


1. 1907~1913년 — 민간이 감당하지 못한 공황


1907년 미국에는 오늘날과 같은 중앙은행이 없었다.

산업과 금융은 빠르게 커졌지만, 위기 때 사람들이 동시에 예금을 현금으로 바꾸려 하면 필요한 자금을 탄력적으로 공급할 장치가 부족했다.

은행은 예금을 받아 기업과 가계에 대출한다. 그런데 모든 예금자가 동시에 돈을 찾으려 하면, 정상적으로 영업하던 금융기관도 자산을 급하게 처분해야 한다.

급매로 가격이 떨어지면 금융기관의 건전성에 대한 의심은 더 커지고, 추가 인출과 매도가 이어진다.

당시 공황을 진정시키기 위해 나선 사람이 J. P. 모건이었다. 민간 금융인들이 자금을 모으고 구제 대상을 조정하면서 금융시스템을 지탱했다.

하지만 국가 금융시스템의 생존을 특정 금융인의 자금력과 판단에 맡기는 구조는 지속하기 어려웠다. 연준 역사 — 1907년 공황

그렇다고 강력한 중앙은행의 설립에 모두가 동의한 것도 아니었다.

월스트리트가 통화를 지배하는 것에 대한 불신과, 워싱턴 정부가 통화를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경계가 동시에 존재했다.

이 갈등 속에서 1913년 연방준비법이 제정됐다. 중앙의 이사회와 지역 연방준비은행을 결합한 구조는 이런 정치적 타협의 결과였다. 연준 역사 — 연준 설립 논의

연준의 출발점은 민간이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위기에 공적 유동성을 공급하는 장치였다.

이전 「생각정리 150 — 연준의 기원」에서 살펴봤듯, 연준은 처음부터 경제와 금융시장 전체를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관리하도록 만들어진 기관은 아니었다.

그러나 위기 때 필요한 역할을 맡기 시작하면서 그 범위는 계속 달라진다.

2. 전쟁과 대공황 — 개입의 비용과 개입하지 않은 비용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정부는 막대한 전쟁자금이 필요해졌다.

연준은 국채 발행과 은행의 전쟁채권 보유를 지원했다. 설립 초기부터 정부의 자금조달과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얽힌 셈이다.

전쟁 중 신용 확대와 물가 상승 뒤에는 긴축과 경기침체가 따라왔다. 비상상황에서 필요했던 지원이 이후에도 통화와 물가에 영향을 남긴 것이다. 연준 역사 — 제1차 세계대전

반대로 1929년 이후 대공황에서는 충분히 대응하지 못한 비용이 드러났다.

은행 파산과 예금 인출이 이어지자 신용이 줄었고, 기업과 가계는 지출을 축소했다. 물가와 소득이 떨어졌지만 갚아야 할 명목부채는 그대로 남았다.

은행 불안 → 신용 축소 → 지출 감소 → 소득·물가 하락 → 실질 부채 부담 증가 → 추가 부도.

연준은 금본위제 방어, 정책 판단의 오류, 지역 간 협력 실패 등이 겹치면서 이 악순환을 충분히 차단하지 못했다. 연준 역사 — 대공황

루스벨트 정부는 은행제도와 금제도를 개편했고, 에클스가 이끈 연준 개혁에서는 정책 권한을 조정했다. 1935년 법을 통해 오늘날 FOMC의 기본 구조가 확립됐다. 연준 역사 — 1935년 은행법

하지만 회복 과정에서도 실수가 있었다.

1936~1937년 지급준비율 인상과 재무부의 금 유입 불태화, 재정 긴축 등이 겹치면서 경제가 다시 침체에 빠졌다. 은행의 많은 준비금은 공황 이후의 불안을 견디기 위한 안전장치이기도 했다. 연준 역사 — 1937~1938년 침체

중앙은행이 보기에는 남아도는 유동성이었지만, 은행에는 없으면 불안한 유동성이었던 셈이다.

연준의 역사에는 돈을 너무 많이 공급한 실패와 필요한 돈을 공급하지 못한 실패가 함께 남아 있다.

3. 1942~1951년 — 정부가 원하는 금리를 지켜준다는 것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 정부는 낮은 금리로 전쟁비용을 조달하려 했다.

연준은 1942년부터 단기 국채금리를 약 0.375%, 장기 국채금리 상한을 2.5% 수준에서 지원했다.

이 구조에서는 시장이 해당 금리에 국채를 충분히 사주지 않으면 연준이 사야 한다.

정부가 원하는 차입금리를 지켜주는 한, 연준의 대차대조표는 물가안정에 필요한 규모보다 금리 방어에 필요한 규모에 의해 결정되기 쉬워진다.

전쟁 이후 물가가 오르고 한국전쟁으로 재정 수요가 다시 커지자 갈등이 심해졌다.

재무부는 낮은 차입금리를 원했고, 연준은 통화정책 통제권을 되찾으려 했다. 이 갈등 끝에 성립한 것이 1951년 재무부–연준 협정이다. 이후 마틴이 연준 의장을 맡았다. 연준 역사 — Treasury–Fed Accord

핵심은 정부의 자금조달 편의가 통화정책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경계를 세우는 것이었다.

워시는 2025년 연설에서 이 협정의 정신을 직접 거론했다. 장기간의 QE가 재정과 통화정책의 경계를 흐리고, 정부와 시장의 중앙은행 의존을 높였다는 문제의식이다. Kevin Warsh — Commanding Heights

워시의 구상을 이해하려면 2008년뿐 아니라 1951년을 함께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4. 번스에서 볼커까지 — 성장과 안정 사이의 정치


전후 성장과 비교적 안정된 물가는 1960년대 후반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베트남전과 존슨 정부의 국내 지출이 확대됐고, 정책당국에는 경제를 정교하게 조절하면 낮은 실업률을 지속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이후 닉슨은 1971년 달러의 금 태환을 중단하고 임금·가격 통제를 도입했다. 석유파동은 생산비와 생활비를 끌어올렸다.

그러나 대인플레이션은 석유파동 이전인 1960년대 중반부터 시작됐다. 공급 충격만으로 전체 과정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연준 역사 — Great Inflation

번스와 밀러 시기의 문제 중 하나는 물가를 잡으려 긴축하다가 고용이 나빠지면, 물가가 충분히 안정되기 전에 다시 완화하는 패턴이었다.

시장과 노동자가 이 패턴을 학습하면 인플레이션 기대는 쉽게 내려가지 않는다.

카터가 1979년 임명한 볼커는 큰 금리 변동과 경기침체를 감수하면서 물가안정을 추진했다. 레이건 정부 아래에서도 긴축은 이어졌지만 정치적 반발은 거셌다. 연준 역사 — 볼커의 반인플레이션 정책

볼커가 회복한 것은 연준이 결국 물가를 안정시킬 것이라는 신뢰였다.

이전 「생각정리 138」에서 살펴봤던 것처럼, 통화정책은 금리 수준만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그 정책이 필요한 만큼 지속될 것이라고 경제주체가 믿는지가 중요하다.

5. 그린스펀 — 낮아지는 금리와 커지는 금융


그린스펀 시대에는 물가 안정과 금융시장 확대가 함께 진행됐다.

여기에는 세계화, 기술 발전, 글로벌 노동공급 확대와 저축 증가가 함께 작용했다.

생산적 투자 기회에 비해 저축이 풍부해지면 균형 실질금리는 낮아질 수 있다. 연준이 단기금리를 올려도 해외 자금이 장기채시장으로 유입되면서 장기금리가 같은 폭으로 오르지 않는 현상도 나타났다. 버냉키 — Global Saving Glut

이 배경은 「21세기 통화정책」「생각정리 139 — The Age of Turbulence」에서 정리했다.

동시에 위기 때마다 통화정책이 충격을 완화하면서 시장에는 연준이 큰 하락을 방치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도 쌓였다.

위기 대응은 경제를 지탱한다. 하지만 손실이 정책으로 완충될 것이라고 믿으면 민간이 더 많은 위험을 선택할 유인도 생긴다.

이때까지의 완화가 주로 단기금리를 통해 이뤄졌다면, 2008년 이후에는 연준이 장기자산을 직접 대규모로 보유하는 단계로 넘어간다.

6. 버냉키·옐런·파월 — 위기 대응이 남긴 거대한 B/S


2008년 금융위기에서는 주택 관련 자산의 손실이 금융기관과 단기자금시장을 통해 확산됐다.

담보가치 하락이 추가 담보 요구와 매도를 부르고, 그 매도가 다시 가격을 떨어뜨렸다. 연준은 긴급대출과 달러 스와프로 대응했고, 정책금리가 사실상 0에 도달한 뒤에는 장기채 매입을 확대했다.

버냉키가 두려워한 것은 1930년대처럼 금융 붕괴가 장기 경제수축으로 이어지는 일이었다. 버냉키 — 금융위기 이후 통화정책



연준은 민간이 보유하던 장기자산을 인수하면서 시장이 부담하는 금리위험을 줄였다.

이 정책은 금융 붕괴와 실업을 완화하는 데 기여했지만, 자산가격과 위험 추구, 출구전략에 관한 논쟁도 남겼다. 이전 「THE LORDS OF EASY MONEY」에서 다뤘던 문제다.

옐런 시기에는 QE3가 종료됐고, 2015년 금리 인상과 2017년 QT가 시작됐다. 그러나 파월 시기인 2019년 단기자금시장이 불안해지자 다시 유동성 공급이 필요했다. 옐런의 정상화 설명, 뉴욕 연은 — 2019년 자금시장 분석

2020년 팬데믹에서는 자산매입이 재개됐고, 연준 자산은 2022년 초 약 9조 달러까지 확대됐다. 2007년 약 0.87조 달러와 비교하면 대략 열 배 수준이다. 월러 — 연준 대차대조표 설명

이후 인플레이션 대응을 위한 금리 인상과 QT가 진행됐지만, 2023년 은행 불안에서는 별도의 유동성 지원이 필요했다. 파월 시기의 QT는 2025년 12월 1일 종료하기로 결정됐다. 2025년 10월 FOMC 결정

지난 역사는 계속된 QE 하나로 설명하기보다, 위기 대응과 정상화, 금융불안과 재개입이 반복된 과정으로 보는 편이 정확하다.

그 반복 속에서 연준의 역할과 시장의 의존 관계가 함께 커졌다.


7. 워시의 담대한 계획 — 장부와 기대를 함께 줄이는 일


2026년 5월 취임한 워시가 지향하는 방향은 평상시 연준의 시장 개입을 줄이고, 민간이 가격과 위험을 더 직접적으로 판단하게 만드는 것이다. 연준 취임 발표

8월 잭슨홀 연설에서도 그는 단기금리 중심의 정책, 비전통적 수단의 제한적 사용, 시장의 과도한 연준 신호 의존 문제를 강조했다. 다만 구체적인 대규모 자산매각 일정이 확정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워시 — In Our Time

이 구상이 어려운 이유는 연준의 보유채권을 줄여도 경제 전체의 부채와 위험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연준이 국채를 덜 보유하고 정부의 차입 필요는 유지된다면, 민간이 더 많이 보유해야 한다.


민간에 새로운 돈이 풀리는 거래가 아니다.

연준이 은행에 채권을 매각하면 은행은 준비금을 지불하고 채권을 받는다. 유동성이 높은 준비금이 금리위험을 가진 자산으로 바뀐다.

따라서 핵심은 채권을 누가, 어느 수익률에서, 어떤 자금으로 인수하는가다.

장기자금을 가진 투자자가 보유하는 경우와 단기 차입으로 큰 포지션을 만드는 경우는 다르다. 후자의 비중이 커지면 충격 때 강제 매도가 발생하고 연준의 재개입을 요구할 수 있다.

워시의 목표는 연준의 장부를 줄이는 동시에, 연준이 다시 필요해지는 상황을 줄여야 한다는 어려움을 안고 있다.

8. AI — 생산성의 확장과 노동 참여 통로의 축소


이 지점에 AI가 들어온다.

AI는 기업이 성장할 때 추가로 필요로 하는 노동량을 줄일 수 있다.

과거에는 매출과 업무량이 늘어나면 분석·개발·고객응대·지원 인력을 채용해야 했다. 앞으로는 기존 인력과 더 많은 컴퓨트로 업무를 처리하는 비중이 커질 수 있다.

처음부터 대규모 해고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신입 채용 축소, 퇴사자 미충원, 외주 계약 감소만으로 기업의 노동비용 증가율은 낮아질 수 있다.

실제로 스탠퍼드 연구진의 2026년 8월 분석에서는 AI 노출이 높은 직종의 22~25세 고용이 노출이 낮은 또래 집단의 증가 추세를 따라갔을 경우보다 19% 낮았다. 주된 경로는 해고보다 채용 감소였다. 다만 연구진은 이를 인과효과의 확정치로 보지 않으며, 경제 전체의 광범위한 고용 대체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고 명시한다. Stanford — Canaries in the Coal Mine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기업 성장과 고용 증가의 연결이다.

AI 선도기업이 비용을 낮추고 시장점유율을 높여도 그 성장에 참여하는 노동자가 과거만큼 늘지 않을 수 있다. 경쟁에서 밀린 기업의 고용까지 감소하면 압력은 더 커진다.

생산성과 기업이익이 좋아지는 동안 노동시장 진입 기회는 좁아질 수 있는 것이다.

As Alex Karp warns AI will wipe out jobs, Palantir is betting on neurodivergent talent and high school grads

9. 값싼 지능이 만드는 세 가지 집중화


이전 「생각정리 346 — AI Polarization and Contradiction」에서는 AI의 집중화를 세 층으로 나눴다.

  • 컴퓨트·모델·데이터 등 생산수단의 집중.

  • AI를 깊게 활용하는 개인과 기업으로의 활용 집중.

  • 생산성 이익이 귀속되는 소유권의 집중.

Citadel Securities가 Ramp 자료로 분석한 2026년 7월 직원당 AI 지출은 상위 1% 기업에서 전월 대비 49%, 상위 10%에서 25%, 중앙값에서 9% 증가했다. 개인별 토큰 수가 아닌 기업의 AI 지출 지표지만, 활용 격차가 확대되는 방향을 보여준다.

Citadel Securities — Elastic Expectations

같은 AI에 접근할 수 있어도 결과는 다를 수 있다.

한 사람은 기존 업무 일부를 빠르게 처리한다. 다른 사람은 고객 확보부터 분석·실행까지 전체 업무를 연결하고, 이전에 여러 사람이 하던 일을 통제한다.

이 경우 개별 과업의 능력 격차는 줄어들면서도 전체 성과와 소득의 격차는 커질 수 있다.

다만 집중화의 정도는 경쟁과 신규 진입에 따라 달라질 것이며, 모든 AI 자본이 영구적인 초과이익을 누리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값싸진 지능을 더 큰 사업과 소득으로 연결할 수 있는 주체에게 보상이 집중될 가능성은 중요하게 보고 있다.

Citadel Securities — Elastic Expectations

10. 그린스펀이 본 인간 — 축적하려는 욕망과 지키려는 욕망


이런 변화는 이전 「앨런 그린스펀 Alan Greenspan」에서 정리했던 인간의 본성과 연결된다.

그린스펀의 관점을 읽으며 인상적이었던 것은 재산권이 인간의 자기이익 추구를 장기적인 투자와 혁신으로 연결한다는 설명이었다.

성과가 자신에게 돌아오고, 축적한 재산이 보호된다고 믿으면 사람은 현재의 소비를 미루고 투자한다. 위험을 부담하고, 새로운 방법을 찾고, 더 생산적인 활동을 선택할 유인이 생긴다.

경쟁은 그 과정에서 성과를 검증하고 자원을 재배치한다.

그런데 사람에게는 또 다른 욕구가 있다.

이미 확보한 직업과 소득, 생활수준을 유지하고 싶다는 욕구다.

이것은 단순한 나태함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사람은 특정 기술과 경력, 자격과 인간관계에 오랜 시간을 투자한다. 기술 변화로 그 가치가 낮아지면 새로운 분야로 옮기는 데 비용과 불확실성이 따른다.

남은 경제활동 기간이 짧거나 부양·주거비 부담이 크다면, 전환보다 기존 소득을 지키려는 선택이 개인에게 더 합리적일 수 있다.

사회 전체에는 자원의 이동이 유리해도, 개인에게는 자신이 축적한 인적자본을 보호하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

AI가 그 차이를 빠르게 벌린다면, 생산성 향상과 사회적 불안은 함께 커질 수 있다.

11. 소비의 불안이 정부부채로 이동하는 경로


노동소득의 불안은 실제 실직 이전부터 소비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가계는 현재 소득뿐 아니라 앞으로 그 소득이 유지될 것이라는 기대를 바탕으로 집을 사고, 대출을 받고, 장기적인 지출을 결정한다.

직업 전망이 약해졌다고 판단하면 월급이 그대로여도 소비와 차입을 줄일 수 있다.

기대 생애소득 약화 → 예방적 저축 증가 → 소비·차입 둔화 → 기업 매출과 고용 압박.

반면 자본소득이 늘어난 가계가 감소한 노동소득과 같은 금액을 추가 소비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래서 임금 총액이 증가하더라도 증가분이 소수에게 집중되면, 다수 가계의 소비 기반은 약해질 수 있다. IMF 연구진도 AI에 따른 노동소득 비중 하락과 소득·부의 집중을 중요한 위험으로 다룬다. IMF — Broadening the Gains from Generative AI

이 불안이 정치로 이동하면 소득과 생활 안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수 있다.

시장에서의 구매력은 자산과 소득에 따라 다르지만, 민주주의의 투표권은 자산 규모에 비례하지 않는다. 경제적 이익이 집중되고 불안은 넓게 퍼질수록 보상 요구가 강해질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생활 안정을 유지하라는 요구와 세금 부담을 높이지 말라는 요구, 기업의 투자도 지켜달라는 요구를 동시에 받는다.

이 갈등을 현재에 해결하기 어렵다면 차입은 비용을 미래로 분산시키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소득 집중 → 생활 안정 요구 확대 → 재원 부담에 대한 합의 부족 → 차입을 통한 갈등의 유예.

이전지출은 GDP의 정부소비·투자 항목인 G에 직접 포함되는 지출은 아니지만,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통해 C를 지지한다.

그 결과 소비를 유지하는 기반이 노동소득에서 재정 지원으로 일부 이동할 수 있다.

정부부채의 비용이 미래 세대에 그대로 일대일 전가되는 것은 아니다. 미래 세대는 공공자산과 채권도 함께 물려받는다. 다만 생산능력이나 세입을 충분히 늘리지 못한 채 차입 의무가 누적되면, 미래의 세금·지출 조정과 이자 부담은 커질 수 있다.

12. 이 경로에서는 워시가 물러날 공간이 좁아진다


초기에는 AI CAPEX가 소비의 약화를 가릴 수 있다.

데이터센터·전력·반도체·건설 투자가 늘고, 기업이익과 자산가격이 이를 뒷받침하면 GDP는 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

생각정리 359 (* AI Is the Exit, G20)

그러나 투자 증가세가 둔화된 이후에는 최종수요가 더 중요해진다. 노동소득과 가계 구매력이 충분히 늘지 않았다면 투자수익성도 압박받을 수 있다.

정부가 그 부족한 구매력을 차입으로 보완하는 동안 연준이 B/S까지 축소한다면, 민간은 더 많은 국채와 금리위험을 인수해야 한다.

물가가 안정돼도 장기금리가 기대만큼 낮아지지 않을 수 있는 이유다. 이 관계는 「생각정리 360 — Rate Divergence」에서 다뤘다.

국채 수익률이 높아지면 정부의 차환 비용이 늘고, 가계와 기업의 금융비용도 영향을 받는다.

민간이 단기 차입으로 국채를 소화했다면 시장 충격이 강제 매도로 이어질 수도 있다. 국채는 정부의 부채이면서 글로벌 금융시스템의 담보이기 때문에, 불안은 달러 자금시장으로 확산될 수 있다.

이때 연준에 대한 개입 요구는 정부의 이자비용 문제를 넘어 금융시스템의 기능 문제로 들어온다.

정부가 소비를 지탱하기 위해 부채를 늘리고, 민간이 그 부채를 불안정하게 소화한다면, 위험은 다시 연준으로 돌아올 수 있다.

물론 대응이 반드시 QE일 필요는 없다. QT 중단, 담보대출, 레포, 달러 스와프 등으로 한시적인 유동성을 공급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지원이 반복되면 ‘작고 덜 개입하는 연준’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목표는 어려워진다. 연준 연구진도 작은 B/S, 안정적인 단기금리, 적은 개입 사이의 긴장을 지적한다. 연준 — Balance-Sheet Trilemma

워시는 연준의 장부에서 위험을 줄일 수 있어도 경제 전체의 위험을 없앨 수는 없다.

13. 반대 경로 — 생산성의 과실이 축적과 새로운 소득으로 연결된다면


그렇다고 AI가 반드시 정부부채와 중앙은행 의존을 확대하는 방향으로만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 경로도 가능하다.

사회가 AI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기업과 개인이 새로운 생산방식에 투자하며, 그 성과를 보유할 수 있다는 신뢰가 유지되는 경우다.

기존 사업의 비용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가 등장하고, 가격 하락으로 수요가 확대되며, 새로운 기업과 직무가 성장한다.

이 경우 생산성 향상은 기업이익뿐 아니라 실질소득과 투자 기회, 세입의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

AI 도입 → 생산성 향상 → 새로운 수요·사업 확대 → 소득과 부의 축적 → 지속 가능한 사회적 배분 여력 확대.

여기서 성장의 성과가 확인되기 전에 예상 부를 이미 확보한 것처럼 영구적인 지출을 약속하는 것과, 실제로 형성된 소득·세입을 바탕으로 사회적 합의를 발전시키는 것은 다르다.

생각정리 255 (* Korea’s Political Risk)

후자의 경우 사회안전망은 차입으로 기존 생활을 계속 유지하는 장치에 머물지 않을 수 있다. 축적된 부를 바탕으로 사람들이 새로운 직업과 사업으로 이동하고, 실패 이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여력을 제공할 수 있다.

이것은 모든 지원을 성장 이후까지 미룬다는 의미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지속적인 약속의 규모가 실제 생산성과 재정 능력에 의해 뒷받침되는가다.

그린스펀 관련 글에서 생각했던 선순환도 이와 연결된다.

재산권과 보상이 위험 부담을 유도하고, 위험 부담이 생산성과 부를 늘린다. 그 부의 일부가 생활의 기본적인 안정과 재도전을 뒷받침하면, 사회는 다시 더 많은 생산적 위험을 감수할 수 있다.

축적과 안전이 서로를 지탱하는 경로다.

14. 같은 AI, 다른 재정과 다른 연준


두 경로의 차이는 AI의 성능 하나로 결정되지 않을 것이다.

생산성 향상으로 만들어진 이익이 얼마나 새로운 수요로 연결되는지, 노동과 자본이 얼마나 이동할 수 있는지, 사회적 배분에 대한 합의가 얼마나 예측 가능한지가 중요하다.


좋은 경로에서도 장기금리가 반드시 낮아지는 것은 아니다.

생산성이 높아지고 수익성 있는 투자 기회가 많아지면 자본 수요와 균형 실질금리는 높아질 수 있다.

다만 그때의 높은 금리는 약한 소득과 불안한 재정이 감당하는 금리와 다르다. 기업과 가계, 정부의 현금흐름이 함께 개선된다면 높은 자본비용을 견딜 능력도 커진다.

워시에게 중요한 것은 낮은 금리 자체보다, 연준이 위험을 지속적으로 인수하지 않아도 민간이 자금을 조달하고 손실을 감당할 수 있는 구조일 것이다.

그 경우 명목 B/S를 일부 줄이거나, GDP 대비 비중을 낮추고, 보유자산의 구성을 바꾸는 정상화가 더 지속 가능해질 수 있다.


글을 마치며 — 연준의 크기는 사회가 남겨놓은 위험과 연결돼 있다


1907년에는 민간이 감당하지 못한 공황이 중앙은행을 필요로 했다.

1930년대에는 충분히 개입하지 못한 실패가 공적 역할의 확대를 가져왔다. 전쟁기에는 정부의 자금조달이 통화정책을 제약했고, 1951년에는 그 경계를 다시 세웠다.

2008년 이후에는 금융시스템의 복잡성과 위기의 전염이 연준의 역할을 더 넓혔다.

그리고 지금은 AI가 생산과 소득 배분의 구조를 바꾸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워시의 계획을 어렵게 만드는 가장 큰 변수는 그의 의지 밖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AI의 생산성 이익은 집중되고, 다수의 생활을 유지하는 비용은 정부 차입으로 쌓이며, 그 부채를 민간 금융이 불안정한 방식으로 인수한다면 연준이 물러날 공간은 좁아질 것이다.

반대로 AI를 통해 생산성과 부를 충분히 키우고, 그 성과가 새로운 수요와 소득, 세입과 재도전의 여력으로 연결된다면 연준의 개입을 줄일 기반도 강해질 수 있다.

워시의 작은 연준은 연준 내부의 결심만으로 완성되기 어렵다.

정부가 시장의 자금조달 조건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하고, 민간이 위험을 보유할 수 있어야 하며, 가계가 연준의 자산가격 지원에만 기대지 않고 소득과 소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AI 시대에 봐야 할 것은 생산성이 얼마나 높아졌는지만은 아닌 듯하다.

그 생산성이 누구의 소득이 됐는가.
전환의 비용은 누가 부담했는가.
그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누구의 부채가 늘어났는가.

이 질문의 답이 앞으로의 정부부채와 장기금리, 그리고 연준이 차지할 자리를 함께 결정하지 않을까 싶다. 

AI가 생산성을 높이고 기업이익을 늘리더라도,
그 성공이 다수의 소득과 생활 안정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생산성의 과실은 일부에 집중되고,
전환의 비용은 정부부채로 쌓인다면 경제가 성장하는 동안에도 사회와 금융의 기반은 약해질 수 있다.


그 부담을 민간이 감당하지 못하는 순간, 위험은 다시 연준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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