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남미 전역에서 빠르게 확산되는 우경화 흐름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그 변화가 이제 브라질까지 다가와 우파 진영의 재집권 가능성이 커지는 모습을 보며, 좌경화된 경제정책이 한 사회에 남긴 결과와 그 배경에 대한 생각을 정리 기록 해본다.
경제는 기계가 아니다
룰라의 브라질을 통해 바라본 이재명 정부의 좌경화 경제정책
이전에 브라질 헤알화와 원화를 비교하면서 룰라 정부와 한국 민주당 정부의 경제정책이 상당히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BRL떡상을 통해 바라본 내년 KRW 전망. (feat, 차기 K-민주당 정부)
당시에는 재정지출 확대, 현금성 지원, 최저임금 인상, 정책금융과 정부 주도 산업정책이 물가와 금리, 정부부채와 통화가치에 어떤 압력을 가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이번 글에서는 한 걸음 더 들어가 보고 싶다.
왜 평등과 민생, 상생을 강조하는 정책이 오히려 한 나라의 경제적 생명력을 약화시키는 경우가 생기는가.
복지정책이나 노동자 보호, 지역균형발전 자체가 경제를 망치는 것은 아니다. 브라질의 저소득층 현금지원제도인 보우사 파밀리아는 실제로 빈곤을 낮췄다. 브라질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부터 2024년 사이 빈곤율은 **27.3%에서 23.1%**로 하락했고, 약 860만 명이 빈곤선 위로 올라왔다. 사회보장 급여가 없었다면 2024년 극빈율은 실제 **3.5%**가 아니라 **10.0%**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됐다.
자료: IBGE, 8.6 million persons got out of poverty between 2023 and 2024 · World Bank, Bolsa Família Program
따라서 문제는 정부가 약자를 돕느냐 마느냐가 아니다. 정부가 경제의 결과를 어느 정도까지 직접 결정하려 하느냐가 문제다. 시장에서 나타나는 가격과 임금, 이윤과 손실, 투자수익률이라는 신호를 정부가 정치적으로 불편하다는 이유로 덮기 시작할 때 경제의 적응능력이 떨어진다.
그리고 그 부작용을 또 다른 보조금과 규제로 해결하려 할수록 경제는 점점 경직된다.
그린스펀이 소련에서 본 것
이 문제를 잘 보여주는 것이 앨런 그린스펀의 소련 관련 일화다.
소련의 경제계획 책임자가 그린스펀에게 자신들이 만든 거대한 경제모형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수많은 산업의 생산량과 원료, 노동력, 운송과 배분계획이 하나의 거대한 기계처럼 연결된 모델이었다.
소련 관료가 보기에는 이것이 계획경제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모든 것이 계산되고 있었고, 모든 것이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린스펀은 오히려 그 모델을 보면서 이것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경제는 기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경제는 수억 명의 사람이 매 순간 자신의 필요와 취향, 사정과 위험을 판단하면서 움직이는 생명체에 가깝다. 어제까지 필요했던 상품이 오늘은 필요 없어지고, 예상하지 못한 기술이 새로운 산업을 만들며, 한 지역의 작은 가격 변화가 세계 반대편의 투자판단까지 바꾼다.
거대한 중앙모형이 아무리 정교하더라도 이 모든 정보를 실시간으로 담을 수는 없다.
이 일화의 구체적인 대화와 장면은 공개된 공식 기록에서 확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린스펀이 실제로 소련식 계획경제의 문제를 같은 관점에서 설명했던 것은 분명하다. 그는 시장가격의 변화가 자원을 재배치하는 신호인데, 계획경제는 이 신호를 얻지 못하기 때문에 변화하는 기술과 소비자의 수요에 적응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린스펀의 표현대로 “Dynamic economies are always in a state of evolution.” 역동적인 경제는 항상 진화하는 상태에 있다.
자료: Federal Reserve, The Ascendance of Market Capitalism · FRASER, Alan Greenspan’s 1989 Moscow speech
좌경화된 경제정책의 위험은 공산주의나 완전한 계획경제까지 가야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가격과 임금, 신용과 기업의 투자방향을 정치적 목적에 따라 하나씩 통제하기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같은 문제가 축소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브라질은 그 과정을 관찰하기에 좋은 사례다.
룰라 1·2기의 성공과 그 안에 쌓인 구조적 취약성
룰라의 첫 집권기인 2003년부터 2010년까지 브라질 경제는 상당히 좋은 성과를 냈다. 중국의 고도성장과 원자재 가격 상승이라는 강력한 순풍이 있었고, 농산물과 철광석, 석유 수출이 증가했다. 고용과 임금이 늘었고 보우사 파밀리아를 비롯한 사회정책도 빈곤 감소에 기여했다.
세계은행은 2003~2013년의 원자재 호황과 고용·임금 증가가 브라질의 성장과 사회적 성과를 뒷받침했다고 평가한다. 2003~2012년 빈곤 감소의 약 68%는 경제성장, 나머지 32%는 불평등 완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했다.
자료: World Bank, Brazil Faces the Challenge of Resuming Growth · World Bank, Retaking the Path to Inclusion, Growth and Sustainability
이러한 경제·사회적 성과를 바탕으로 룰라의 후계자였던 노동자당의 지우마 호세프가 2010년 대통령에 당선됐다. 당시 브라질 유권자들은 룰라 정부의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이는 노동자당의 정권 재창출을 뒷받침했다.
자료: Brazil TSE, Elections 2010 · TSE Digital Library, The vote for Dilma Rousseff in the 2010 election
그러나 룰라 시기의 성과가 모두 국가주도 경제모델의 경쟁력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다. 원자재 가격 상승과 중국의 수요 확대라는 외부환경이 재정수입과 수출, 고용을 동시에 끌어올렸기 때문에 정부지출 확대와 정책금융, 국영기업 중심 투자가 가진 비용은 당장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았던것 뿐이였다.
호황기에는 성장의 과실과 정책의 비용을 구분하기 어렵다. 세수가 늘어나는 동안에는 복지와 보조금, 공공투자를 함께 확대할 수 있고 정부부채의 부담도 상대적으로 작아 보인다. 그러나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고 성장률이 둔화되면 호황기에 늘어난 지출과 정책적 의무는 그대로 남는다.
이러한 구조적 취약성은 호세프 정부에서 본격적으로 드러났다.
국제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자 호세프 정부는 성장률을 유지하기 위해 국책은행 대출, 산업별 세금감면, 공공요금 억제, 국영기업 투자와 재정지출 확대를 동원했다. 처음에는 경기부양처럼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가격신호와 투자규율을 훼손했다.
결국 브라질 GDP는 2015년과 2016년 2년 연속 큰 폭으로 감소했고, 실업률은 2014년 **6.8%**에서 2017년 **12.8%**로 상승했다. IMF는 당시 경기침체의 원인으로 원자재 교역조건 악화뿐 아니라 구조적 문제를 미룬 정책 실패, 금융여건 악화, 부패 스캔들과 정치적 불확실성을 함께 지목했다.
자료: World Bank, World Development Indicators – Brazil · IMF, 2016 Article IV Mission · IMF, 2016 Article IV Consultation
브라질의 침체에는 원자재 가격 하락과 정치적 혼란, 부패 문제도 동시에 작용했다. 그러나 외부충격을 흡수했어야 할 경제가 이미 정책금융과 가격통제, 재정의무와 국영기업 중심 투자로 경직돼 있었기 때문에 충격이 훨씬 깊어졌다.
룰라 시대의 핵심 문제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는 것이 아니다. 외부 호황에서 발생한 일시적인 재정여력을 생산성과 민간투자 중심의 성장기반으로 전환하지 못하고, 국가가 배분하는 지출과 신용을 확대하는 데 사용했다는 것이다.
첫 번째 사례: 정부가 투자자를 대신하기 시작할 때
룰라·호세프 경제모델의 중요한 축 가운데 하나가 브라질개발은행 BNDES였다.
논리는 매력적이었다. 민간 금융시장은 장기투자를 꺼리므로 국가가 값싼 자금을 공급하고, 정부가 전략산업과 유망기업을 골라 국가대표 기업으로 키운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은행이 관련 연구를 종합한 결과, BNDES의 보조금성 대출은 투자와 고용을 늘리는 효과가 작거나 확인되지 않았고 생산성 향상 효과도 없었다. 자금은 오히려 이미 규모가 크고 수익성이 높은 기업의 금융비용을 낮추는 데 집중되는 경향을 보였다.
자료: World Bank, Understanding the Effects of the TLP Reform in Brazil · World Bank, Efficient Financial Allocation and Productivity Growth in Brazil · World Bank, Brazil Public Expenditure Review
정책금융의 가장 큰 문제는 돈이 투입된다는 사실이 아니다. 누가 그 돈을 받을지를 시장의 수익성보다 정부와 정책금융기관이 결정하고, 실패했을 때 누가 손실을 책임지는지가 불분명하다는 데 있다.
민간투자자는 판단을 잘못하면 자기 돈을 잃는다. 그러나 정책금융의 실패는 수년 뒤 정부부채나 공기업 손실로 나타난다. 성공하면 정치인의 업적이 되고, 실패하면 납세자가 부담한다.
현재 이재명 정부도 100조 원 이상의 국민성장펀드를 조성해 AI와 첨단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생산적 금융’을 국정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자료: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이재명 정부 123대 국정과제
AI와 전력망, 연구개발 투자는 분명 필요하다. 그러나 브라질 사례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무엇을 기준으로 기업과 산업을 선정할 것인가.
민간자본은 왜 그 사업에 충분히 투자하지 않았는가.
투자 실패를 인정하고 자금을 회수할 장치가 있는가.
정치적으로 가까운 기업과 지역이 자금을 가져가는 것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생산적 금융은 생산성을 높이는 금융이 아니라 정부가 선택한 기업의 자본비용을 낮춰주는 한국판 BNDES가 될 수 있다.
생각정리 265 (* 국민성장펀드)
(*잘 될리가 없지. 금융 시중에 안팔리는 상품 한 대 모아놓은 짬처리 수준..)
두 번째 사례: 가격을 억누르면 비용이 사라지는가
브라질 정부는 물가상승을 억제하고 서민 부담을 줄인다는 명분으로 페트로브라스의 연료가격을 국제가격보다 낮게 유지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당장 기름값이 낮아졌다. 그러나 원유를 국제가격으로 수입해 국내에서 싸게 팔면 그 차액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소비자가 지금 지불하지 않은 비용이 페트로브라스의 손실과 부채로 이동했을 뿐이다.
브라질 연방회계법원은 2010~2015년 페트로브라스의 재무지표가 급격히 악화된 원인으로 시장가격보다 낮은 연료 판매, 수입 포기와 부실하게 계획·집행된 투자를 지목했다. 2010~2014년 국내 연료가격 억제에 따른 수입 손실은 약 1,500억 헤알로 추산됐고, 2014년 9월 순차입금/EBITDA는 회사가 설정한 상한 2.5배의 약 두 배인 4.79배까지 상승했다. 정유시설 관련 비경제적 의사결정으로 2014~2016년 재무제표에 반영된 손실은 약 430억 헤알에 달했다.
자료: Brazil TCU, Petrobras financial sustainability and governance · Brazil TCU, Fuel-pricing audit · Brazil TCU, Refinery-management losses
가격통제는 비용을 제거하지 않는다. 비용이 보이지 않는 장소로 옮겨질 뿐이다.
전기요금이나 교통요금을 인위적으로 낮추면 소비자가 내지 않은 비용은 공기업 부채, 세금, 미래의 요금 인상 또는 설비투자 축소로 돌아온다. 시간이 지나면 국민은 낮은 요금과 안정적인 공급을 동시에 요구하게 되고, 정치인은 가격 정상화를 더 어려워한다.
KDI는 한국의 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 제도에 투입된 공적 자금 1원당 사회적 편익을 태양광 1.33원, 풍력 1.18원으로 추정했다. 다만 발전원 확대와 송전망, 예비전력에 필요한 실제 비용을 요금에 반영하지 않으면서 보급 목표만 끌어올린다면 비용은 한전과 제조기업, 미래 소비자 사이로 이동한다.
자료: KDI, 경제적 관점에서 본 국내 재생에너지 보급 요인과 영향 분석 · 한국전력, 재무정보
브라질의 페트로브라스가 보여준 것은 국영기업을 사회정책의 도구로 사용할 때 기업의 손익계산서가 사실상 보이지 않는 국가예산으로 변한다는 점이다.
생각정리 375 (*The Grid Has No Free Lunch, 한국전력)
(정치인들 비용처리 짬통이 되어가는 한국전력)
세 번째 사례: 노동자를 보호할수록 누가 노동시장 밖으로 밀려나는가
최저임금 인상은 가장 직관적인 평등정책이다. 임금이 낮은 노동자의 법정임금을 올리면 그들의 소득도 함께 늘어날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고용감소가 크지 않고 기업 생산성이 이를 감당할 수 있다면 긍정적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러나 기업이 그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경제에서는 다른 조정이 일어난다. 고용을 줄이거나, 자동화를 서두르거나, 가격을 올리거나, 노동자를 비공식 부문으로 이동시킨다.
브라질을 분석한 2024년 IMF 연구논문은 2000년대 최저임금 인상이 공식부문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을 높였지만, 비공식 고용을 늘리고 비공식 부문 내부의 격차를 키울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해당 모형에서는 이러한 경로로 전체 소득불평등이 6.4% 증가한 것으로 추정됐다. 다만 이는 IMF의 공식 정책평가가 아니라 개별 연구자의 워킹페이퍼 결과라는 점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자료: IMF Working Paper, Minimum Wages, Inequality, and the Informal Sector
정책의 의도는 저임금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기업이 제도 적용을 피할 수 있는 비공식 고용을 선택하면, 공식부문 안에 남아 보호받는 사람과 공식부문 밖으로 밀려난 사람 사이의 격차는 오히려 커질 수 있다.
한국에서는 2026년 3월부터 개정 노동조합법 2·3조, 이른바 노란봉투법이 시행됐다. 직접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원청도 하청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하면 사용자로 인정될 수 있고, 노동쟁의 대상도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경영상의 결정 등으로 확대됐다.
자료: 고용노동부, 2026년 3월 10일 개정 노동조합법 시행 · 고용노동부 노동포털, 개정 노동조합법 해석지원
이 제도의 목적은 원청의 실질적 영향력과 교섭책임을 일치시키는 것이다. 실제로 2026년 9월 현대제철과 4개 자회사 노조가 산업안전 의제를 중심으로 원·하청 단체협약을 체결하면서 대화를 통한 분쟁해결 가능성도 확인됐다.
자료: 연합뉴스, 현대제철 원·하청 교섭 타결
그러나 노동정책은 교섭에 참여한 노동자의 처우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한국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2024년 기준 **13.0%**에 불과한 반면, 2025년 8월 비정규직은 856만 8,000명, 전체 임금근로자의 **38.2%**에 달했다. 비정규직의 국민연금 가입률은 37.1%, 건강보험은 53.2%, 고용보험은 **53.7%**였다.
자료: 고용노동부, 2024년 노동조합 조직률 13.0% · 국가데이터처, 2025년 8월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비정규직 사회보험 가입률
노란봉투법이 직접적인 교섭력을 제공하는 대상은 주로 이미 노조를 조직해 원청과 교섭할 수 있는 하청 노동자다. 반면 아직 취업하지 못한 청년, 노조가 없는 영세사업장 근로자, 플랫폼·단시간 노동자와 구직자는 교섭 테이블에 앉을 수 없다.
원청의 사용자 책임과 교섭비용이 확대되면 기업은 여러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다. 하청 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하고 생산성을 높일 수도 있지만, 신규채용을 줄이거나 자동화를 확대하고 외주계약을 축소할 수도 있다. 생산거점을 해외로 옮기거나 협력업체 선정 기준을 강화하면 조정 부담은 교섭력이 가장 약한 노동자와 중소기업으로 이동한다.
노조가 있는 노동자의 교섭력을 강화하는 정책이 모든 노동자의 보호로 자동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보호비용을 기업 내부에서 흡수하지 못하면 신규취업자와 미조직 노동자가 노동시장 밖으로 밀려날 수 있다.
생각정리 383 (* Hyundai’s Slump, Korea’s Warning)
(*노란봉투법, 제조업 일자리 붕괴)
네 번째 사례: 현금지원과 지역화폐는 지역경제를 살리는가
이재명 정부는 2025년 경기부진에 대응해 30조 5,000억 원 규모의 추경안을 편성하고, 약 13조 원 규모의 소비여력을 보강하는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추진했다. 전 국민에게 1인당 15만 원을 기본 지급하고, 저소득층과 인구감소지역에는 더 많은 금액을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자료: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30조 5,000억 원 추경·소비쿠폰 지원 · 행정안전부, 소비쿠폰 누적 지급액
단기적으로 보면 효과는 분명하다. 사용기한이 있는 쿠폰이 지급되면 소비가 앞당겨지고, 사용처로 지정된 소상공인의 매출이 늘어난다. 경기침체기에 소득이 급격히 감소한 가구를 지원하는 효과도 있다.
하지만 확인해야 할 것은 세 가지다.
첫째, 쿠폰으로 발생한 소비 가운데 정부지원이 없었어도 일어났을 소비가 얼마나 되는가.
둘째, 특정 지역과 업종의 매출 증가가 인접 지역과 다른 업종의 매출 감소를 대체한 것은 아닌가.
셋째, 일회성 소비가 끝난 뒤 생산능력과 고용, 민간투자가 얼마나 남았는가.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지역화폐가 여러 경제적 효과를 내는 동시에 이를 상쇄하는 역효과와 대체효과도 발생하며, 발행 과정에서 재정적 손실과 비용이 생긴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중앙정부의 지원도 모든 지역에 상시 적용하기보다 특정 시기와 지역에 한정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자료: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지역화폐의 도입이 지역경제에 미친 영향
브라질에서도 현금지원은 빈곤 완화에 성공했다. 그러나 빈곤정책의 성공과 성장정책의 성공은 같은 것이 아니다. 현금지원은 소득의 바닥을 지켜줄 수 있지만 새로운 기술과 수출기업, 전력망과 생산설비를 자동으로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일시적 경기부양 수단이 상시적 소득정책으로 바뀌면 정부는 매년 더 많은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수혜자는 지원금이 줄어드는 것을 소득 감소로 받아들이고, 한시적으로 시작한 정책은 영구적인 재정의무로 굳어질 가능성이 높다.
다섯 번째 사례: 지출은 늘리기 쉽고 줄이기는 어렵다
이재명 정부가 편성한 2026년 예산안은 약 728조 원으로 2025년 본예산보다 8.1% 증가했다. 다만 이 지출을 모두 소비성 복지로 묶는 것도 정확하지 않다. 연구개발 예산은 35조 3,000억 원으로 19.3% 증가했고, AI와 지역산업, 안전투자도 포함됐다.
자료: 기획재정부·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이재명 정부 첫 2026년 예산안
중요한 것은 재정 규모 하나가 아니라 지출의 구조와 종료 조건이다.
경제의 공급능력을 높이는 연구개발과 인프라 투자인가.
특정 계층과 지역의 현재 소비를 보전하는 이전지출인가.
경기회복 후 자동으로 종료되는가.
이해관계자가 생겨 영구사업으로 남는가.
성과가 없을 때 폐지할 수 있는가.
브라질에서는 연금과 급여, 최저임금 연동지출과 각종 의무지출이 누적되면서 정부가 경기 상황에 맞춰 지출구조를 바꾸기 어려워졌다. 재정이 경직될수록 미래 성장에 필요한 투자보다 법적·정치적으로 줄이기 어려운 지출이 우선된다.
현재 룰라 정부: 단기 성과와 누적되는 구조적 부담
현재 브라질 경제는 성장과 고용지표만 보면 비교적 견조하다.
IMF는 브라질 경제가 2023년 3.2%, 2024년 3.4%, 2025년 2.3% 성장했으며 2026년에도 2.4%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브라질 통계청이 발표한 2026년 2분기 실업률은 **5.4%**로 낮은 수준이다.
반면 2026년 말 물가상승률은 **5.6%**로 중앙은행 목표 **3%**를 크게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IMF는 공공부채를 안정적인 하락 경로에 올려놓고 우선순위 투자를 위한 공간을 확보하려면 더 강한 재정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자료: IMF, Brazil 2026 Article IV Consultation · IMF, Executive Board Concludes 2026 Article IV Consultation · IBGE, Dashboard of Indicators
현재 룰라 정부의 경제에는 성장과 고용, 빈곤 감소라는 성과가 존재한다.
동시에 재정지원과 높은 물가·금리, 생산성 정체와 정책 의존이라는 부담도 남아 있다.
핵심은 지금의 사회적 성과를 유지하기 위해 재정지원과 국가배분에 계속 의존할 경우 미래의 민간투자와 생산성, 재정여력을 희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과 브라질: 같은 정책방향, 다른 출발점
현재 한국과 브라질을 동일한 나라처럼 비교해서는 안 된다.
한국은 제조업과 수출산업의 비중이 훨씬 높고, 행정역량과 금융시장, 대외건전성의 구조도 다르다.
반도체와 조선, 방산, 자동차와 배터리처럼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는 산업기반도 여전히 존재한다.
2026년 한국 경제 역시 붕괴가 아니라 성장 국면에 있다. KDI는 2026년 성장률을 **3.2%**로 전망했다. 다만 성장의 상당 부분이 세계적인 AI 반도체 호황에 기인하고, 건설업과 비반도체 제조업의 고용은 부진하며 청년층을 중심으로 고용여건이 악화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자료: KDI, 경제전망 수정 2026년 8월
현 시점에서 브라질과의 비교는 “현 정권의 정책이 이미 실패했다”는 결론보다도, 브라질에서 확인된 정책들의 전달경로가 한국 정책에서 재현되는지를 점검하는 지표로 비교분석해 보려고 한다.
세상 사람사는거 특별할것 없이 비슷한 부류끼리 뭉처사는게 만국 공통인가 싶기도 하고..
좌경화 정책이 지역공동체를 약화시키는 방식
경제가 약해지는 과정은 생각보다 조용하다. 어느 날 갑자기 공장이 모두 멈추고 국가가 파산하는 것이 아니다.
생각정리 218 (* 하인리히의 법칙, 원화약세)
정부가 소비를 보전하고, 기업의 비용을 대신 부담하고, 공기업을 통해 가격을 억제한다. 정책금융으로 선택한 산업에 자금을 공급하고, 고용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계약조정을 어렵게 만들며, 지역을 살리기 위해 중앙정부 이전재원을 확대한다.
각각의 정책은 개별적으로 보면 선의가 있고 합리적인 명분도 있다. 문제는 이 정책들이 누적될 때 개인과 기업, 지방정부의 행동방식 자체가 바뀐다는 것이다.
기업은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보다 정부지원 대상이 되는 사업을 찾는다.
지방정부는 기업과 인재를 유치하기보다 중앙정부 예산을 따오는 데 집중한다.
노동시장은 새로운 사람을 채용하기보다 기존 고용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굳어진다.
공기업은 가격과 수익성을 관리하는 기업이 아니라 정부의 물가·복지정책을 대신 수행하는 기관이 된다.
정치의 유인도 바뀐다. 브라질 연방선거법원 디지털도서관에 수록된 연구에서는 보우사 파밀리아가 2010년 노동자당 후보 호세프의 득표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쳤으며, 그 효과가 당시의 양호한 경제성과보다 컸다고 분석했다.
이것을 곧바로 매표나 부패라고 부를 수는 없다. 유권자가 자신에게 도움이 된 정책을 평가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정상적인 과정이다. 다만 한번 형성된 이전지출과 수혜연합을 축소하기가 정치적으로 얼마나 어려운지는 보여준다.
자료: TSE Digital Library, Bolsa Família and Dilma’s 2010 election
지역공동체도 스스로 기업과 인재를 키우기보다 중앙의 지원사업에 선정되는 것을 생존전략으로 삼을 수 있다. 중앙정부의 배분이 커질수록 지역의 성공 기준은 생산성이나 세수 기반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예산을 확보했는가로 바뀐다.
이것이 좌경화된 국가배분체제가 공동체를 약화시키는 가장 현실적인 방식이다. 국가가 모든 것을 빼앗기 때문이 아니다. 국가가 너무 많은 것을 대신 결정하면서 개인과 기업, 지역이 스스로 판단하고 실패하며 다시 일어설 공간을 줄이기 때문이다.
결론
룰라 정부의 브라질은 단순한 실패사례가 아니다. 빈곤 감소와 고용 확대라는 성공도 있었고, 현재 브라질 경제 역시 당장 붕괴한 상태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중요한 사례다.
사회정책의 단기적 성공이 국가주도 경제모델의 장기적 효율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빈곤을 줄였다는 사실만으로 정책금융이 효율적이었다고 말할 수 없다.
성장률이 높았다는 사실만으로 국가가 선택한 투자가 생산적이었다고 말할 수 없다.
요금을 낮췄다는 사실만으로 에너지비용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법정임금을 올렸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저임금 노동자의 생활이 개선된 것도 아니다.
지역상점의 매출이 늘었다는 사실만으로 국가 전체의 소비와 생산이 증가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경제정책은 의도가 아니라 전체 결과로 평가해야 한다.
이모저모
글을 마치며
원시사회의 분배 본능과 현대국가의 진화적 불일치
인간의 사회적 본능은 서로의 기여와 행동을 확인할 수 있는 소규모 공동체에서 형성됐다. 구성원들은 사냥과 채집으로 얻은 자원을 나누고 서로를 보호했지만, 그 분배에는 기여와 평판, 상호책임이 함께 작동했다. 공감과 분배는 공동체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진화적 적응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생활환경은 수천만 명이 살아가는 익명사회로 급격히 변한 반면, 우리의 도덕적 직관은 여전히 작은 공동체의 질서에 머물러 있다. 우리는 눈앞의 격차와 고통에는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이를 줄이기 위해 발생하는 장기적 비용과 보이지 않는 기회비용은 쉽게 체감하지 못한다.
문제는 현대경제가 소규모 공동체와 달리 본질적으로 불균등한 성과를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기술과 자본, 위험을 감수한 소수의 기업과 혁신가가 생산성의 큰 도약을 만들고, 그 성과가 다수의 생산과 소비를 통해 사회 전체로 확산된다.
실제로 McKinsey 분석에서는 미국 표본기업의 **5%가 양의 생산성 증가분 가운데 78%**를 만들었고, NBER 연구에서는 설립 5년 이하 기업이 전체 생산성 증가의 거의 절반을 차지했다. 현대경제의 발전은 처음부터 모두가 동일하게 기여하고 동일한 결과를 얻는 구조가 아니다.
자료:
McKinsey Global Institute, The Power of One ·
NBER, Innovative Growth Accounting
바로 이 지점에서 원시사회의 평등 본능과 현대경제의 작동방식이 충돌한다. 소수에게 집중된 성과는 성장과 혁신의 결과일 수 있지만, 인간의 직관에는 불공정한 분배로 보이기 쉽다. 좌경화된 정치는 이러한 감정에 호소해 성과의 차이를 국가배분으로 조정하려 한다.
하지만 국가 단위의 분배에서는 혜택을 받는 사람과 비용을 부담하는 사람이 분리된다. 유권자는 더 많은 지원을, 기업은 보조금과 정책금융을, 지방정부는 중앙예산을 요구하는 것이 각자에게 합리적인 선택이 된다. 반면 그 비용은 세금과 부채, 물가와 공기업 손실로 넓게 분산돼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 결과 사회 전체는 생산보다 배분, 혁신보다 보호, 자립보다 국가의 선택에 점차 의존하게 된다. 경제가 즉시 붕괴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격과 이윤, 손실과 실패가 전달하던 신호는 서서히 흐려지고 새로운 기업과 노동자에게 돌아갈 공간은 줄어든다.
과거 원시사회에서 생존에 유리했던 공감과 분배의 본능이 현대의 불균등한 혁신경제 및 대규모 국가권력과 충돌하면서 진화적 불일치가 발생한다. 좌경화된 국가배분체제가 반복되는 근원과 경제의 생명력이 서서히 약해지는 출발점도 바로 이곳에 있다고 생각한다.
AI가 인간의 오래된 분배 본능과 현대 국가체제를 동시에 흔들기 시작한 지금,
피터틸의 Praxis PJT 사회실험(?)의 귀추가 다시금 주목받고있다고 한다.
자료:
Praxis, The First Digital Nation ·
Praxis, Uruguay 투자계획 발표 ·
Praxis, Singularity Politics
기술 자유지상주의자들이 설계한 AI 자율사회는 국가배분체제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을까.
아니면 부와 기술, 규칙을 결정하는 권력까지 소수에게 집중시키며 우리가 우려했던 불균형을 더욱 극단적으로 재현하게 될까.
그 사회가 실제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궁금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