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2일 월요일

생각정리 188 (* 자산인플레이션)

주말동안 아내가 여기저기서 ‘집값이 곧 폭락한다’는 글과 기사를 보고 내게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나는 “그럴 일 없다”라고 단호하게 말했지만, 속으로는 정말 그럴 가능성이 없을까 하는 질문이 남았다.

그래서 앞으로의 자산 인플레이션을 이끌 핵심 축을 몇 가지로 정리하고, 대략적인 숫자를 대입해 보았다.



2026년 이후 한국 자산 인플레이션 경로: 법인세 상방충격–성과급 상방충격–분배구조 이동–CAPEX 누적의 결합이다


2026년 이후 한국 자산시장의 인플레이션 압력은 단순 “유동성”보다 구조로 설명하는 편이 설득력이 크다. 구조는 세수(법인세), 가계 현금흐름(성과급), 분배구조(노란봉투법), **CAPEX(고용·지역소득)**의 네 축이 서로 다른 시차로 결합하는 방식이다.

  • 법인세 상방충격은 재정정책 기대(지출·감세·국채발행)와 할인율(금리) 기대를 흔든다.

  • 성과급 상방충격은 기업 이익을 가계 현금흐름으로 즉시 이전해 자산수요의 “현금 기반”을 만든다.

  • 분배구조 이동은 자산수요 저변을 확장한다.

  • CAPEX 누적은 지역 수요를 통해 자산가격을 “기대”가 아니라 “수요”로 지지한다.


0) 기준 전제: 2025년 국세수입 382.4조를 고정 기준으로 둔다


비교는 2025년을 기준축으로 고정한다.

  • 2025년 국세수입(예산 기준): 382.4조원 (연합뉴스)

  • 2025년 국세 법인세(세목): 84.6조원 (연합뉴스)


이후 모든 “비중”과 “증분”은 382.4조(2025 예산) 대비로 비교한다.


1) 법인세 쇼크: 삼성·하이닉스의 “법인세 비중”이 2027·2028년에 얼마나 커지는가


1-1) 2025년 삼성·하이닉스 법인세(회계상)와 2025 비중

2025년 기준값은 “국세 납부액”이 아니라 **회계상 Income tax expense(연결 기준)**로 둔다.

  • 삼성전자 2025년 PBT 49.5조, Income tax expense 4.3조
    (Samsung IR PDF)

  • SK하이닉스 2025년 PBT 50.5조, Net profit 42.9조
    (SK hynix IR)

    • 하이닉스 2025년 (단순) 법인세비용(회계상) = 50.5 − 42.9 = 7.5조


따라서 2025년 두 회사 합산 회계상 법인세비용은

  • 4.3 + 7.5 = 11.8조 이다.


이를 2025년 국세수입 382.4조에 대비하면

  • 2025년(기준) 삼성+하이닉스 법인세 비중 = 11.8 / 382.4 = 3.1% 이다.


또한 2025년 국세 법인세(세목) 84.6조 대비로 보면

  • 2025년(기준) 삼성+하이닉스 비중 = 11.8 / 84.6 = 13.9% 이다. (연합뉴스)


(주의) 2025년 11.8조는 “국세 납부액”이 아니라 회계상 비용이다. 다만 이후 “비중 변화”를 보는 기준점으로는 사용 가능하다.


2) 핵심 가정(전제): 2026·2027 OP(영업이익) 시나리오가 “법인세(국세)와 성과급”을 동시에 밀어 올린다


이 글의 핵심은, 2026·2027년에 반도체 초과이익이 크게 발생한다는 가정이 성과급뿐 아니라, 1년 시차를 두고 법인세(국세)에도 반영된다는 점이다.

2-0) OP(영업이익) 핵심 가정

  • 2026년 OP 가정: 삼성전자 200.0조, SK하이닉스 150.0조

  • 2027년 OP 가정: 삼성전자 300.0조, SK하이닉스 200.0조


이 OP 가정이 “강할수록”

  • (같은 해) 성과급 유입이 커지고,

  • (다음 해) 법인세(국세) 세수가 커지며,
    자산수요는 가계 현금흐름재정·금리 기대라는 두 경로로 동시에 압력을 받는다.


3) 2027·2028년 법인세(국세) 추정: OP 핵심 가정이 1년 후행해 “세수 쇼크”를 만든다


여기서의 2027·2028 법인세(국세) 추정은 **2026·2027 OP 핵심 가정(2-0)**을 배경으로, 공시 ETR이 아니라 법정세율 기반으로 산출된 “국세 법인세” 값이라는 점이 핵심이다. 즉,

  • **2027년 법인세(국세)**는 2026E 이익(=OP 고점 가정)의 반영 구간으로 잡고,

  • **2028년 법인세(국세)**는 2027E 이익(=OP 추가 고점 가정)의 반영 구간으로 잡는다.


따라서 사용된 값은 다음과 같다.

  • 2027년 세수에 반영될 2026E 국세 법인세(양사 합) = 96.3조

  • 2028년 세수에 반영될 2027E 국세 법인세(양사 합) = 137.6조


2025년 국세수입 382.4조를 분모로 고정하면 비중은

  • 2027년 비중 = 96.3 / 382.4 = 25.2%

  • 2028년 비중 = 137.6 / 382.4 = 36.0%


2025년(기준) 3.1% 대비로 보면

  • 2027년은 8.2배,

  • 2028년은 11.7배
    로 “세수 구조의 쏠림”이 급격히 커지는 그림이다.


또한 2025년 국세 법인세(세목) 84.6조 대비로 보면

  • 2027년 96.3조는 2025년 법인세수 84.6조를 단독으로 상회하는 규모다. (연합뉴스)



4) 성과급 쇼크: OP 핵심 가정이 “가계 현금흐름”으로 빠르게 이전된다


법인세가 정부의 반응함수를 바꾸는 축이라면, 성과급은 기업 이익을 가계 현금흐름으로 빠르게 전환하는 축이다.


4-1) 2025년 1인당 성과급과 직원 수(기준값)


SK하이닉스(2025년 기준)


삼성전자 DS(2025년 기준)

  • DS OPI 지급률: 47% (Businesskorea)

  • DS 국내 본사 인원: 78,643명
    (Samsung 반기보고서 PDF)

  • 반기 평균보수 6,000만원 → 연봉 단순환산 1.2억원(가정)

  • 1인당 OPI(근사) = 0.6억원

  • 2025 총액(근사) = 4.4조


따라서 2025년 성과급 합(근사)은

  • 7.8조 이다.


4-2) OP 증가율만큼 성과급이 비례 증가한다는 가정


2025년 OP(기준)는


2-0의 OP 핵심 가정에 따라 OP 배수는

  • 삼성: 2026년 4.6배, 2027년 6.9배

  • 하이닉스: 2026년 3.2배, 2027년 4.2배


4-3) 1인당 성과급 및 총액(민간 유입액)


1인당 성과급(추정)

  • SK하이닉스: 2026년 3.2억원, 2027년 4.2억원

  • 삼성전자 DS: 2026년 2.6억원, 2027년 3.9억원


총 성과급(민간 유입액, 조원)

  • SK하이닉스: 2026년 10.7조, 2027년 14.3조

  • 삼성전자 DS: 2026년 20.4조, 2027년 30.5조

  • 합계: 2026년 31.0조, 2027년 44.8조


즉 OP 핵심 가정이 현실화될 경우, IDM 양사의 성과급만으로도 가계로 유입되는 현금흐름은 매우 큰 폭으로 증가할 수 있다.

다만 이 현금이 곧장 “집”으로만 흘러가지는 않는다. 2026~2028이 고금리·대출규제(DSR) 구간이라면, 추가 현금흐름은 부동산 구매력으로 즉시 전환되기보다 주식·채권·예금·해외자산·소비·기존 대출 상환으로 분산될 가능성이 크다.

성과급 수혜층은 고소득·고신용이라 대출 접근성이 상대적으로 높지만, 동시에 부동산 추가 매수의 한계효용이 낮아져 금융자산으로 흐르는 경로도 강해질 수 있다.

따라서 성과급 쇼크는 자산 인플레이션 압력임은 분명하되, 그 1차 파동은 주식/금융자산에서 먼저 나타나고, 부동산은 지역·상품별로 후행하거나 선택적으로 반응할 가능성이 크다.



5) 분배구조 이동: 노란봉투법 이후 “기업→민간” 부의 이전이 자산수요 저변을 확장한다


이 축은 숫자 추정이 아니라 구조적 메커니즘이다.

  • 대기업 성과급은 규모가 크지만 범위가 좁다.

  • 원하청 교섭력 변화는 범위가 넓다.


따라서 원하청 교섭이 재편되면, 대기업 성과급 쇼크가 만든 자산수요 위에 저변을 넓히는 레이어가 얹힐 수 있다. 다만 기업 마진 압박이 투자·고용을 둔화시키면 상쇄될 수 있으므로, 순효과는 임금/단가 상승폭 vs 생산·투자 차질폭의 함수이다.



6) CAPEX 누적: 국내 CAPEX가 지역 고용·소득·주거·소비 수요를 만든다


6-1) 연간 CAPEX 추정(기준 시나리오)


삼성·SK는 투자에 R&D가 섞여 있으므로 CAPEX 비중을 **60%**로 둔다.

  • 삼성 CAPEX: 54.0조/년

  • SK CAPEX: 25.6조/년

  • 현대 CAPEX: 7.2조/년

  • 합계: 87.0조/년


6-2) 고용유발(연인원) 추정


10억원당 취업유발을 8.3명으로 단순화한다. (한국은행 자료)

  • 1조원당 취업유발 ≈ 830.0명·년

  • 87.0조 CAPEX → 약 7.2만 명·년


https://www.yna.co.kr/view/AKR20260227125100003




7) 숫자 합성: 법인세·성과급·CAPEX만으로 2027·2028 국세수입은 “얼마까지” 늘 수 있는가


성과급·CAPEX가 국세로 전환되는 비율은 **25%**로 통일한다.


7-1) 기준(2025년)


7-2) 법인세(국세) 증분(규모감)

  • 2027년: 96.3 − 11.8 = +84.5조

  • 2028년: 137.6 − 11.8 = +125.8조


(주의) 2025의 11.8조는 회계상 비용, 2027·2028의 96.3/137.6은 국세 추정치이므로 엄밀한 “세수-세수” 비교라기보다 상단 규모감이다.


7-3) 성과급 증분의 국세 포착(25%)

  • 성과급 총액: 2025 7.8조, 2026 31.0조, 2027 44.8조

  • 지급 시차를 단순화해 2027년엔 2026 성과급, 2028년엔 2027 성과급이 반영된다고 둔다.


2025 대비 증분

  • 2027년: 31.0 − 7.8 = +23.2조 → 국세 포착 +5.8조

  • 2028년: 44.8 − 7.8 = +37.0조 → 국세 포착 +9.2조


7-4) CAPEX 고용/소득 경로 국세 기여(25%)

  • 임금총액 4.3조 → 국세 기여 +1.1조


7-5) 최종 국세수입(기준)

  • 2027년 ≈ 382.4 + 84.5 + 5.8 + 1.1 = 473.8조

  • 2028년 ≈ 382.4 + 125.8 + 9.2 + 1.1 = 518.5조


8) 정부 중기전망 vs 본 계산(기준): 차이를 표로 정리한다


정부 중기전망(국세수입)은


8-1) 국세수입 레벨 비교




8-2) 2025 대비 증분 비교





8-3) 본 계산(기준) 증분 구성 요약

  • 법인세(국세) 증분(규모감): 2027 +84.5조, 2028 +125.8조

  • 성과급 증분 국세 포착(25%): 2027 +5.8조, 2028 +9.2조

  • CAPEX 경로 국세 기여(25%): 2027 +1.1조, 2028 +1.1조


결론: OP 핵심 가정이 현실화될수록 “세수+가계 현금흐름”이 동시 강화되고, 자산 인플레이션 압력은 구조적으로 커진다


이 글의 결론은 감각적 낙관이 아니라 구조적 논리다. **2026·2027 OP 핵심 가정(삼성 200.0/300.0조, 하이닉스 150.0/200.0조)**이 강할수록, 같은 이익이

  • (같은 해) 성과급으로 가계 현금흐름을 키우고,

  • (다음 해) **법인세(국세)**로 세수 구조를 흔들며,

  • 분배구조 이동과 CAPEX 누적이 이를 확산·고착화할 수 있다.


다만 2027·2028년 법인세(국세) 96.3조/137.6조는 법정세율 기반 추정치이며, 실제 세수는 세액공제·결손금·이연법인세·납부시차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럼에도 상단 국면에서는 2027~2028년에 ‘세수+민간 유동성’이 동시에 강해져 자산시장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질 수 있는 힘이 충분히 커진다.

반대로 집값 폭락은 보통 (1) 대출이 급격히 막히거나, (2) 실업/소득쇼크로 강제 매도가 늘거나, (3) 공급이 한꺼번에 쏟아지거나, (4) 정책이 거래/보유의 비용을 급격히 바꾸는 사건이 겹칠 때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2027~2028년에는 오히려 (1) 세수 기반의 정책 기대, (2) 성과급 기반의 민간 현금흐름, (3) CAPEX 기반의 지역 수요가 있으니, **폭락의 필요조건(강제 매도 확대)**과는 정반대 방향의 힘이 작동할 가능성이 매우높다.

#글을 마치며


https://news.einfomax.co.kr/news/articleView.html?idxno=4401006



최근 李대통령께서 집을 매도하고 국내 주식 ETF에 투자하겠다고 언급했다는 내용과 함께, 이를 “집값 하락 신호 아니냐”는 취지의 블라인드 글을 보았다.

하지만 대통령이 집을 팔더라도 생활 안정성 측면에서 큰 문제가 생기기 어렵다. 임기 종료 후 전직 대통령과 배우자는 법에 따라 세전 기준 월 약 3,736만 원(본인 연금 + 배우자 유족연금 가정)의 고정수입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일반적인 직장인 부부에게 도심 아파트 한 채는 성격이 다르다. 주택은 단순한 거주 수단을 넘어 자산 인플레이션에 대한 헤지 수단이자, 은퇴 이후 현금흐름이 불안정해질 때를 대비한 사실상의 은퇴연금(대체 자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결국 대통령 부부와 대다수 가계의 조건은 구조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계산 근거는 다음과 같다. (2025년 12월 기준 대통령 보수연액 271,770,000원을 전제로)

  • 전직대통령 연금(본인): 보수연액의 95%

    • 연간(세전): 271,770,000원 × 0.95 = 258,181,500원

    • 월간(세전): 258,181,500원 ÷ 12 = 21,515,125원

  • 유족연금(배우자): 보수연액의 70%

    • 연간(세전): 271,770,000원 × 0.70 = 190,239,000원

    • 월간(세전): 190,239,000원 ÷ 12 = 15,853,250원

(둘을 단순 합산하면 세전 월 37,368,375원 수준이다.)

2026,2027년 정말 집값 하락이나 안정기가 오면 (*별로 그럴것 같지도 않지만) 상급지로 갈아탈 기회로 삼으면 되지 않을까 한다. 

=끝


생각정리 187 (* Ali Larijani, IRAN)

이번 연휴에는 주식 관련 뉴스는 최대한 차단하고 아내와 쉬면서 보내고자 했지만,

미국을 포함한 서방국의 하메네이 암살 및 이란 공격 소식이 전해지며 결국 텔레그램을 열어볼 수밖에 없었다.

짧게나마 이번 중동 정세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두고자 글로 남긴다.


중동 전쟁과 유가: 단기 스파이크, 장기 초과공급 시나리오



1. 서론: 시장은 고유가를, 현실은 단기 이슈를 시사한다


최근 중동발 긴장이 고조되면서 월가와 글로벌 기관들은 충격의 전파 경로를 에너지, 특히 유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구조적으로 볼 때, 이번 이슈는 **“단기 유가 스파이크 후 되돌림, 이후 초과공급 위험”**으로 수렴할 가능성이 크다.


아래에서는

  1. 시장이 보고 있는 유가 리스크 구조,

  2. 거시·연준 관점의 파급,

  3. 이란 권력구도와 호르무즈 봉쇄 카드의 실질성,

  4. 역사적 선례와 산유국 이해관계,

  5. 수요국 관점과 최종 정리
    순으로 정리한다.


2. 시장이 보는 유가 리스크 구조


2-1. 호르무즈 해협과 유가 급등 시나리오


시장 컨센서스는 다음 두 축으로 정리할 수 있다.

  • 핵심 리스크:

    • 충격의 강도(얼마나 큰가)

    • 충격의 지속 기간(얼마나 오래 가는가)

  • 호르무즈 해협의 시스템 중요성:

    • **세계 해상 원유 물동량의 약 20%**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는 점에서

    • 봉쇄 리스크가 부각되면, 운송 차질 → 유가 스파이크 시나리오가 즉각적으로 소환된다.

이 과정에서 거론되는 숫자는 다음과 같다.

  • 브렌트유 100달러 이상을 가정하는 시나리오

  • 강한 스트레스 시나리오에서 최대 108달러까지 언급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최악 시나리오(호르무즈 운송에 심각한 차질 가정)”**에 기반한 상단 제시이다.

2-2. 기본 시나리오: 일시적 차질 후 부분 정상화


반대로 기본 시나리오에서 시장은 이번 사태를 일시적 공급 차질로 보는 경향도 있다.

  • 군사 충돌이 일정 수준에서 관리되고,

  • 호르무즈 봉쇄가 단기로 끝나고 이후 해협 실질 통행이 유지된다면,

  • 초기 스파이크 이후 유가 상승분의 상당 부분이 되돌려질 수 있다는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즉,

시장은 “유가 상단 리스크”를 프라이싱하고 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펀더멘털로 재수렴할 여지도 동시에 반영하고 있는 상황이다.

 


3. 거시·연준(Fed) 관점: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하 시점 조정


3-1. 유가와 인플레이션 연동


유가 상승은 곧바로 인플레이션 재가열 우려로 이어진다. 대표적인 추정치는 다음과 같다.

  • 유가 10달러 상승 시, PCE 물가가 약 0.3~0.4%p(30~40bp) 상승


이러한 추정치를 바탕으로 시장은

  • 연준의 금리 인하 시작 시점을 “6월 → 7월”로 뒤로 미루는 방향으로 기대를 조정하고 있다.


3-2. 비용 압력 지표와 관세 요인


동시에 다음과 같은 신호가 겹치고 있다.

  • ISM 제조업 PMI의 지불가격(Prices Paid) 지수가 급등하면서,

    • 제조업 비용 압력이 커졌음을 시사

  • 기업 코멘트에서 철강·알루미늄 관세 등 무역장벽

    • 원가 부담 요인으로 빈번히 언급


그러나 이러한 요인을 감안하더라도, 본 시각은 다음과 같다.

유가 스파이크가 구조적 고인플레·고금리 레짐으로의 전환을 의미하기보다는,
“연준 완화 사이클의 출발 시점을 한두 분기 지연시키는 정도의 효과”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4. 이란 권력구도와 호르무즈 봉쇄 카드의 현실성


이번 사태에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 여부 및 봉쇄 기간은 유가 상단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인물이 **알리 라리자니(Ali Larijani)**이다.

나무위키

4-1. 알리 라리자니의 위상과 역할

  • 직책: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 사무총장

  • 성격: 외교·안보·군사 영역을 모두 아우르는 실질 실세

  • 역할:

    • 핵협상 등 주요 외교 협상에서 전면에 나선 인물

    • 차기 이란 최고지도자 후보로 꾸준히 거론


최근 보도에 따르면, 라리자니는


즉, 그는

  • 대외적으로는 강경 발언을 하면서도,

  • 실제 정책에서는 미국과 협상 여지를 열어 둔 실용주의자로 볼 수 있다.


4-2. 호르무즈 봉쇄안 부결과 그 함의


2025년 6월, 약 12일간의 이란–이스라엘 충돌 국면에서

  • 이란 의회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안을 상정하였으나,

  • 이는 최고국가안보회의 12명의 심의 단계에서 부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결정은 몇 가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1. 호르무즈 봉쇄는 협상 카드이지, 실제 실행할 카드가 아니다.

    • 봉쇄가 현실화되는 순간

      • 미국·영국·프랑스 등 서방 해군력의 전면 개입,

      • 장기간 보복·제재로 인한 이란 경제 붕괴 위험이 수반된다.

  2. 봉쇄는 이란보다 사우디에 유리한 카드이다.

    • 이란 공급이 막히는 동안

    • 사우디는 증산을 통해 시장 점유율을 크게 높일 수 있다.

    • 이란은 기존 거래선을 상실하고,

      • 이후 복귀해도 가격·조건 측면에서 불리한 위치에 설 수밖에 없다.

  3. 라리자니는 이 구조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 1980년대 봉쇄 시도의 결과,

    • 이후 사우디를 중심으로 한 공급 재편 및 유가 폭락이라는 역사를 직접 학습한 세대이다.


정리하면,

이란 내부 권력구도를 감안할 때, 호르무즈 장기간 전면 봉쇄는 실질 가능성보다 “협상용 히든카드”에 가깝다. 


장기간 전면 봉쇄가 아니라면, 유가 상단은 “일시적 스파이크”로 제한될 가능성이 크다.

 


5. 역사적 선례: 1980년대 호르무즈 리스크와 유가 패턴


이란-이라크 전쟁과 1980년대 호르무즈 리스크는 이번 국면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역사적 벤치마크이다.

5-1. 1980년대 유가 흐름

  • 전쟁 초기 국제 유가는 배럴당 약 35달러 수준.

  • 전쟁이 장기화되는 과정에서

    • 세계적인 원유 과잉생산

    • 사우디의 공격적 증산이 맞물리며

  • 1986년에는 배럴당 10달러 초반까지 폭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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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다음과 같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장기간 지속되더라도,
공급 구조 변화와 증산 경쟁이 발생하면, 중장기적으로 유가는 오히려 급락할 수 있다.


5-2. 1988년 ‘프레잉 맨티스’ 작전과 유가

1988년 4월 18일, 이란이 페르시아만에 기뢰를 부설해 미 해군 USS Samuel B. Roberts함이 피해를 입자,

  • 미국은 보복으로 ‘프레잉 맨티스(Praying Mantis)’ 작전을 전개하였다.

    • 이란 영해 내에서 이란 해군 프리깃함 1척, 포함 1척을 격침

    • 고속정 최대 6척 파괴

    • 1945년 이후 미 해군의 최대 규모 수상함 전투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 유가는 사건 직후 단기 급등했으나,

  • 호르무즈 해협이 실제로는 계속 개방된 상태를 유지하면서

  • 배럴당 17~18달러 수준에서 안정을 되찾았다.


증시 또한

  • 유가·방산 관련주가 단기 급등했지만,

  • 군사 충돌이 단발성으로 끝나자 글로벌 증시 영향은 제한적이었다.


즉,

군사 충돌 자체가 아니라, 해협의 실제 폐쇄 여부와 공급 구조 변화가 유가의 중기 레짐을 결정한다는 점이 역사적으로 확인된 셈이다.

 


6. 산유국 이해관계: 장기 고유가를 막는 구조적 요인


6-1. 사우디아라비아: 점유율 확대라는 유인


사우디는 최근 몇 년간 원유시장 점유율(Market Share) 회복을 주요 목표로 삼아 왔다.

  • 미국의 대이란·러시아·베네수엘라 제재는 사우디에

    • 공급 공백을 메우고 점유율을 확장할 기회를 제공하였다.

  • 최근 저유가로 사우디 재정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 이란 관련 공급 차질은

    • **“단기 고유가 + 증산을 통한 점유율 확대”**라는 최적의 조합이 될 수 있다.


사우디는 필요 시

  • 약 900만 배럴 → 1,400만 배럴 수준까지 증산 여력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 말은 곧,

이란이 호르무즈 봉쇄를 실제 실행하는 순간,
사우디가 적극 증산에 나서 이란의 자리를 대체할 수 있는 구조라는 뜻이며,
이란 입장에서는 중장기적으로 **“자기 발등 찍기”**가 될 수 있다.

 

소식통에 따르면, OPEC+는 사우디와 UAE의 수출 증가에 따라 더 큰 석유 생산 증대를 고려할 수 있습니다. 로이터


6-2. 러시아: 고유가 선호 vs 지원 여력 부족

  • 러시아는 전쟁 장기화로 재정·군사 부담이 누적된 상황에서

    • 단기 고유가는 분명 재정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 그러나

    • 이란을 실질적으로 도와줄 군사·경제 여력은 제한적이며,

    • 해상 수송 리스크가 과도하게 커지면

      • 자국 원유 수출에도 구조적 불확실성을 키우게 된다.


결국 러시아 역시

“적당한 수준의 고유가 + 수출 지속”을 선호하지,
중동 수송로 자체가 마비될 정도의 극단적 시나리오를 원할 유인은 크지 않다.


6-3. 이란: 장기전과 전면 봉쇄를 감당하기 어려운 체력


이란은 이미

  • 경제 파탄,

  • 서방과의 갈등 및 제재,

  • 핵협상 교착 등 구조적 압력에 직면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 장기전을 전제로 한 호르무즈 전면 봉쇄

    • 단기 협상 레버리지를 높여줄 수는 있어도,

    • 중장기적으로는 정권·경제·사회 전체를 위태롭게 만드는 선택이다.


따라서 합리적인 선택은

“강경 발언 + 제한적 군사 행동”을 통해 협상력을 높인 뒤,
일정 수준에서 전선을 정리하는 단기전 시나리오
에 가깝다.

 


7. 수요 측 시각: 중국·아시아·유럽의 부담과 한계


수요 측에서는 중동산 원유·가스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이 단기적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는다.

  • 중국, 기타 아시아, 일부 유럽 국가가 여기에 해당한다.

  • 특히 중국은

    • 그간 이란산 원유를 제재 리스크를 감수하고 저가에 확보해 왔다는 점에서

    • 이란 공급 차질과 고유가 국면은 상대적으로 불리한 뉴스이다.


그러나 앞선 공급 측 구조를 감안하면,

  • 전쟁이 단기전으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고,

  • 사우디·기타 산유국 증산,

  • 이후 이란의 시장 복귀 및 증산 랠리까지 고려할 때,

중국·아시아·유럽은 단기적인 가격 스파이크는 감수하되,
중장기적으로는 과도한 에너지 비용 부담에서 벗어날 여지가 있다.


실질적으로 보면,

  • 가장 손해를 보는 쪽은

    • “이란산 초저가 물량”에 크게 의존해 온 중국일 가능성이 크다.


중국, 호르무즈 개방 요구
블룸버그



8. 이란 정권 향방과 전쟁의 수명


알리 라리자니
의 움직임은 이번 전쟁의 “수명”을 가늠하는 중요한 단서이다.

  • 그는

    • 내부적으로는 강경 발언을 통해 혁명수비대·보수층의 지지를 확보하면서,

    • 외부적으로는 미국과의 협상 채널을 유지·확대하려는 이중 전략을 취하고 있다.


설령

  • 현 하메네이 라인의 강경 반미 노선이 일시적으로 연장된다 하더라도,


이란이 직면한

  • 경제 파탄,

  • 제재와 외교적 고립,

  • 핵문제 해결 지연 등 구조적 문제들은

  • 결국 실용주의·친서방에 가까운 노선으로의 회귀 압력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


이 점을 감안하면,

이란이 이번 전쟁을 장기 국지전으로 끌고 가며 고유가를 고착화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오히려 **협상 레버리지 확보 후 출구전략을 모색하는 “단기전 시나리오”**가 더 합리적이다.

 


9. 결론: 유가는 스파이크 후 되돌림, 이후 초과공급 리스크까지 염두에 둘 국면


위 논의를 종합하면, 이번 중동 전쟁·유가 이슈에 대한 정리는 다음과 같다.

  1. 전쟁의 성격

    • 호르무즈 전면 봉쇄는

      • 이란 내부 권력구도와 경제 체력을 감안할 때

      • 협상용 카드일 뿐, 실행 가능성은 낮다.

    • 따라서 전쟁은 단기전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2. 유가 경로

    • 단기적으로는

      • 브렌트 기준 100달러 안팎의 스파이크 가능성이 열려 있으나,

    • 장기적으로는

      • 사우디·기타 산유국 증산,

      • 이란의 시장 복귀 및 증산,

      • 수요 둔화 등을 감안할 때

      • 과거 1980년대와 유사한 “초과공급 → 유가 조정” 시나리오를 배제하기 어렵다.

  3. 거시·연준 영향

    • 유가 10달러당 PCE +0.3~0.4%p 효과는 유효하지만,

    • 연준에 미치는 영향은

      • **“완화 사이클 개시 시점을 6월 → 7월로 미루는 정도의 타이밍 조정”**일 가능성이 크다.

    • 구조적 고인플레·고금리 레짐 전환으로 보기에는 근거가 약하다.

  4. 정책·정치 포커스의 이동

    • 단기 유가 스파이크에 과도하게 매달리기보다는,

    • 향후 전개될

      • 트럼프의 방중(對중국 전략),

      • 이어지는 미국 중간선거

    • 이 두 축이

      • 글로벌 공급망 재편,

      • 관세·비관세 장벽,

      • 달러·국채·위안·원자재 흐름에 훨씬 더 구조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정리하면,


원유·가스 순수출국인 미국의 입장에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순손실이라기보다 상대적 이익으로 작동할 수 있다. 반대로 이란이 봉쇄를 장기화할수록, 글로벌 원유 수급의 병목을 인질로 잡는 셈이 되어 **미국뿐 아니라 유럽·아시아 등 주요 수요국을 동시에 적으로 돌리는 ‘자해적 선택’**이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핵심 변수는 봉쇄 그 자체라기보다, 최고지도자 암살이라는 전례 없는 사건 이후 이란 내부 강경파가 요구하는 ‘체면 유지’와 내부 결속의 정치적 수요이다. 라리자니 같은 실용주의자 역시 정권 안정과 권력 기반 유지를 위해 일정 수준의 가시적 보복을 수행해야 하는 압력에 놓여 있다.

다만 이 보복은 정권 생존을 훼손할 정도의 전면전보다, 협상력을 극대화하면서도 비용을 통제할 수 있는 ‘계산된 제한전’ 형태로 설계될 개연성이 크다. 이 과정에서 우발적 충돌로 확전할 위험이 완전히 배제되지는 않지만, 행위자들의 비용 구조와 이해관계를 감안하면 적정 수준에서 관리되고 종결될 가능성이 더 높다.

결국 이번 중동 전쟁 이슈는 시장이 우려하는 것보다 빠르게 소강 국면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다. 유가는 단기적으로 스파이크가 나타날 수 있으나, 봉쇄가 지속되기 어려운 구조와 이후 증산 유인이 맞물리며 상승분이 되돌려질 확률이 크고, 더 나아가 초과공급 리스크까지 함께 점검해야 하는 국면이다. 따라서 전략적 초점은 유가 자체보다, 향후 글로벌 공급망과 자본 흐름을 더 구조적으로 좌우할 트럼프의 대중국 행보와 미국 정치 일정으로 이동하는 편이 합리적이다.


=끝

 

2026년 2월 26일 목요일

생각정리 186 (* up-cycle in industrials)

이전글에 이어 산업재 up-cycle의 충분조건 가능성에 대한 글을 이어나가본다.

1. 여론조사도 포기한 트럼프의 지지율


2026년 2월, 갤럽은 80여 년 동안 이어온 미국 대통령 직무수행 지지율 조사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Upi)


https://www.theguardian.com/us-news/2026/feb/11/gallup-stop-tracking-presidential-approval-ratings


형식상 이유는 “조사 자원의 재배분”이지만, 정치적 타이밍을 감안하면 상징성이 크다. 발표 시점의 다른 여론조사를 보면 트럼프의 국정 지지율은 찬성 39%, 반대 60% 수준으로, 사실상 재임 기간 중 최저 구간에 머물고 있다. (The Washington Post)

트럼프는 여전히 공화당 핵심 지지층에서는 압도적 지지를 받지만, 무당파와 중도층에서의 이탈이 심화되고 있다. 그 배경에는 이념·스캔들 등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결국 유권자가 체감하는 핵심 키워드는 단 하나로 압축된다. 바로 “살기 어렵다, everything feels expensive”, 즉 생활물가에 대한 피로감이다.

https://fred.stlouisfed.org/series/CUSR0000SAF112?utm_source=chatgpt.com



2. 소고기 한 근 값이 만든 체감물가 쇼크


그 가운데서도 정치적으로 가장 상징적인 품목이 소고기, 특히 햄버거용 다진 소고기이다. BLS와 각종 보도에 따르면 2025년 말~2026년 초 기준 Beef & veal 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15~16% 상승한 것으로 집계된다. (TIME)

이 배경에는 미국 소 사육두수의 구조적 감소가 있다. USDA 통계에서 2026년 1월 1일 기준 미국 소·송아지 재고는 8,620만 두로 75년 만의 최저를 기록했다.


https://www.nass.usda.gov/Charts_and_Maps/Cattle/inv.php?utm_source=chatgpt.com


가뭄과 사료비 상승으로 번식우까지 대량 도축한 결과, 공급이 줄어든 상태에서 수요는 크게 줄지 않으니 소매가격이 쉽게 내려가지 않는 구조이다.

아래 그래프는 2022년 이후 미국의 All-fresh beef 소매가격(달러/파운드)을 단순화해 그린 추세선이다. 2022년 초 7달러 중반 수준에서 2026년 초에는 9달러 중반 수준까지 우상향하는 흐름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실제 수준은 USDA ERS ‘Meat Price Spreads’ 통계에 기반한 구간별 평균값과 대체로 유사하다.) (Bureau of Labor Statistics)



(그래프: US All-Fresh Beef Retail Price (Illustrative), 2022–2026)

이렇게 매달 마주치는 장바구니 물가가 오르면, 경제 전체의 물가 지표(CPI)가 2~3%대라고 하더라도 체감물가는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트럼프가 “인플레이션을 잡았다”고 주장해도, 유권자는 “햄버거 한 끼 값이 30% 가까이 올랐는데 무슨 소리냐”고 되묻는 상황이다.


3. AI CAPEX와 자산 인플레이션: 다른 종류의 ‘가격 상승’


동시에 미국 경제는 AI 인프라 투자 붐이라는 또 다른 비용 상승 압력에 직면해 있다. 2025년 한 해 동안 미국·글로벌 데이터센터 CAPEX는 전년 대비 20~30% 이상 늘었고, 그 상당 부분이 AI용 GPU, 고성능 컴퓨팅(HPC), 전력 인프라에 집중되었다. (IEA)

미국에서는 2025년 4분기 기준, AI 관련 설비투자가 사실상 GDP 성장의 대부분을 차지했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Barron's)

또 IMF와 IEA는 AI 데이터센터 확대가 전력 수요·전기요금·탄소배출을 동시에 끌어올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IMF)

이 AI CAPEX는 두 가지 방향으로 인플레이션과 연결된다.

  1. 실물 비용 압력

    • 데이터센터와 전력 인프라 건설에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면, 토지·건설·전력요금이 함께 상승하기 쉽다.

    • 이는 중장기적으로 전기료·공공요금을 통해 가계 물가에 전가될 수 있다.

  2. 자산 인플레이션

    • 대형 기술기업과 AI 인프라 기업의 주가가 폭등하면서, 주식·채권·부동산 등 금융자산 가격이 다시 상승하는 국면이 만들어지고 있다.

    • 그러나 이런 자산 인플레이션의 수혜는 금융자산을 보유한 상위 계층에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발생하는 것은 단순한 물가 상승을 넘어, **“생활물가 인플레이션 vs 자산 인플레이션의 괴리”**이다. 장바구니 물가는 오르는데, 주식시장은 호황이라는 괴리감이 바로 상대적 박탈감으로 이어진다.


4. 케빈 워쉬가 말한 “인플레이션은 가장 역진적인 세금”


트럼프가 차기 연준 의장 후보로 지명한 **케빈 워쉬(Kevin Warsh)**는 이런 현실을 매우 직설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는 여러 인터뷰와 연설에서, **“미국인의 약 절반(52%)은 금융자산을 전혀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한다. (Hoover Institution)

연준의 가계재무조사(SCF)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주식(직접·간접)을 보유한 가구 비율은 58% 정도이므로, 뒤집어 말하면 40% 안팎의 가구는 여전히 주식·펀드·퇴직계좌조차 없다는 뜻이다. (연방준비제도)


워쉬의 요지는 명확하다.

  • 인플레이션은 자산을 가진 사람에게는 덜 아프다.
    금융자산과 부동산을 가진 상위층은 물가가 오를 때 자산가격 상승으로 어느 정도 상쇄된다.

  • 반면 W-2 임금소득에만 의존하고, 집·주식·코인·펀드가 없는 50% 안팎의 미국인은,
    소득은 거의 그대로인데 장바구니 물가와 월세·보험료만 치솟으니 치명적 피해를 입는다.

  • 그래서 그는 인플레이션을 **“정부가 고안할 수 있는 가장 역진적인 세금(the most regressive tax)”**이라고 부른다. (Hoover Institution)


이 관점에서 보면, 소고기 가격 급등과 전력비 급증으로 인한 체감물가상승과 AI 자산 인플레이션은 모두 같은 그림의 일부이다.
체감물가는 치솟는데, 주식과 자산을 가진 소수만 AI 붐의효과를 누리고 있다.
이 구조가 바로 워쉬가 말하는 “역진적인 인플레이션 세금”의 실물 버전이며,
이러한 세금에 대한 불만이 표출되어 트럼프의 지지율이 곤두박질 치는것이다. 



5. 3월 31일 베이징 방문: 트럼프의 ‘관세 딜’과 농가 표심


https://www.scmp.com/news/china/article/3344769/trump-xi-summit-preparations-falter-planning-gaps-unsettle-beijing

트럼프 대통령은 3월 31일~4월 2일 베이징 방문을 공식화하였다. 백악관이 공지한 표면상의 의제는 시진핑 주석과의 정상회담, 미·중 무역 휴전 연장, 관세·수출통제 재조정이다.
(출처: The Economic Times)

그러나 이번 방중은 과거 미·중 정상외교와 비교할 때 몇 가지 뚜렷한 특이점이 있다.

우선, 정상회담 치고는 실무 준비와 의제 조율이 이례적으로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소수 측근이 트럼프의 즉흥적 판단과 ‘직감’에 의존해 회담을 조직하는 탓에 베이징이 크게 불안해하고 있다고 전한다.
(출처: SCMP)

이러한 즉흥성의 배경에는 미국 국내 정치 요인이 있다. 바로 연방대법원의 판결로 트럼프 행정부의 일부 대중 관세가 위헌·초과 권한으로 판단되면서, 트럼프가 쥐고 있던 ‘관세 레버리지’가 약화된 것이다. 이 판결로 관세 정책의 정당성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트럼프의 정치적 부담도 커졌다.
(출처: The Straits Times)

이러한 제약 속에서 베이징 회담은 트럼프에게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노릴 수 있는 창이 된다.

첫째, 중국산 소비재·중간재 일부에 대한 관세를 유예·축소하여 수입물가와 가계 체감물가를 낮출 수 있는 카드이다. 소고기 가격 자체는 미국 내 사육두수 감소라는 구조적 요인 때문에 단기간에 크게 떨어지기 어렵지만, 관세 재조정을 통해 공산품·가전·생활재 등 다른 품목의 가격을 완만하게 낮춘다면 전체 체감물가 스트레스는 완화될 수 있다.

둘째, 미국 농가와 러스트벨트 표심을 겨냥한 중국의 미국산 구매 확대, 특히 대두 수입 재개·확대를 이끌어낼 수 있다. 중국은 세계 최대 곡물 생산국이지만 대두 자급률은 약 15%에 불과하다. 2025년 기준으로 생산량은 약 2,090만 톤에 그치는 반면, 소비량은 1억 3,290만 톤 수준으로 나머지는 대부분 수입에 의존한다.
(출처: World Policy Hub)

이미 2월 트럼프와 시진핑의 통화에서 미국산 원유·가스·농산물(대두 포함) 추가 구매가 논의된 바 있다.
(출처: Financial Times)

이 구도를 종합하면, 트럼프가 베이징에서 제시할 개연성이 높은 패키지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 미국: 중국산 소비재·중간재 일부에 대한 관세를 유예·축소하여 수입물가를 낮추고, 이를 통해 **“관세 재조정으로 물가를 낮췄다”**는 정치적 메시지를 확보한다.

  • 중국: 그 대가로 미국산 대두·농산물·에너지 구매를 일정 물량 또는 금액 기준으로 약정하여, 미국 농가와 에너지 산업에 직접적인 수요를 제공한다.


이렇게 될 경우 트럼프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한편으로는 “관세 재조정으로 생활물가를 낮춘 대통령”,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으로부터 미국 농민의 판로를 지켜낸 대통령”**이라는 두 가지 이미지를 동시에 부각시킬 수 있게 된다.


6. 관세로 만든 디스토킹, 관세 완화로 만드는 리스톡과 산업재 사이클


트럼프 2기 첫 해~둘째 해에 걸쳐 반복된 관세 위협과 실제 관세 부과는 글로벌 공급망에 큰 불확실성을 던졌다. 기업 입장에서 “언제 어떤 품목에 관세가 튈지 모르는 상황”은 자연스럽게 다음 행동으로 이어졌다.

  • 재고 최소화(global de-stocking)

  • 설비투자 연기,

  • 신규 고용 및 CAPEX 보류.


이 과정에서 미국뿐 아니라 유럽·아시아 제조업체들이 산업재·중간재 재고를 극단적으로 줄이는 디스토킹 사이클을 거쳤다.

이제 만약 베이징 회담을 계기로

  1. 미·중 무역 휴전이 연장되고,

  2. 일부 관세가 구조적으로 낮아지며,

  3. 중국의 미국산 구매가 일정 수준 보장된다면,


기업들은 더 이상 “언제 또 관세 폭탄이 터질지”만을 걱정하기보다, 가시적인 수요와 가격이 보이는 국면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는 곧

  • 재고를 다시 쌓는 리스톡(restocking),

  • 그에 따른 글로벌 산업재·원자재 재귀 사이클로 이어질 수 있다.


여기에 이미 진행 중인 AI 인프라 CAPEX가 더해지면,
단기적으로는

  • 데이터센터·반도체·전력설비 같은 구조적 수요와,

  • 관세 완화·농산물 수출 확대가 만들어내는 경기순환적 수요가 동시에 겹치는 구간이 열릴 수 있다.


즉, 트럼프 입장에서는

  1. 관세 완화와 중국 딜로 “생활물가 완화” 메시지를 만들고,

  2. 미국 농가와 에너지·산업재 섹터에는 수요를 보장하며,

  3. 그 결과로 나타나는 단기 경기 반등·주가 회복을 지렛대로 중간선거에서 지지율 반등을 노리는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


물론 이 전략이 실제로 먹힐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소고기 가격과 주거비·의료비·교육비 같은 구조적 물가 요소는 여전히 높고, AI CAPEX가 만드는 자산 인플레이션은 자산을 가진 소수와 그렇지 못한 다수의 격차를 더 벌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갤럽이 더 이상 대통령 지지율을 재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 시점에서,
트럼프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카드가 **“관세라는 몽둥이에서 관세 완화라는 당근으로의 전환”**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 당근이 소고기 가격이 아니라, 관세·농산물·AI CAPEX·자산시장을 어떻게 재배열해
워쉬가 말한 “역진적인 인플레이션 세금”의 부담을 어느 정도나 덜어줄 수 있는지,
그 결과가 11월 미국 중간선거와 글로벌 산업재 사이클에 어떤 파급효과를 줄지 유심히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 한다. 


=끝

2026년 2월 25일 수요일

생각정리 185 (* Chemical Industry)

이전글에 이어 이번글은 IEEPA 관세 판결 결과 이후 산업재 특히 화학산업에 대한 생각을 다시 정리해본다.
IEEPA 관세 판결은 결국 트럼프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사건의 핵심은 “관세 몇 % 조정”이 아니라, 행정부에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던 관세 권력이 구조적으로 제약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변화가 글로벌 석유화학 사이클, 중국·한국 구조조정, 롯데케미칼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연결해서 보는 것이 중요하다.


글의 흐름은 다음과 같다.

  1. IEEPA 판결로 드러난 행정부 관세 권력의 한계

  2. 중국·한국 석유화학 공급 구조조정

  3. 재고 재축적(Restocking)과 관세 완화에 따른 수요 변화

  4. 원가 축(유가·OPEC+·이란 리스크)의 방향성

  5. 한국 기간산업 “빅배스 + 정부 지원” 패턴과 롯데케미칼의 위치


1. IEEPA 관세 무효화: “무제한 관세” 시대의 종료


2026년 2월, 미 연방대법원은 IEEPA(국제비상경제권법)를 근거로 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부과가 위헌적 권한 남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 관련 판결(예: Learning Resources v. Trump)은 IEEPA가 무제한·무기한 관세 권한까지 위임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 판결 이후 IEEPA 기반 관세는 효력이 정지되며, 미국 관세 체계에는 짧지만 의미 있는 법적 공백이 발생했다.
(판결 개요: https://www.supremecourt.gov 참고)

트럼프는 곧바로 **무역법 1974년 122조(Section 122)**를 활용해 150일 한도, 최대 15%의 글로벌 일괄관세 카드를 꺼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의회가 제한적으로 위임한 권한이다. IEEPA처럼 “비상사태 선포 → 사실상 무제한 관세” 구조는 더 이상 허용되지 않는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 과거: 대통령이 IEEPA를 활용해 글로벌 공급망을 관세로 상시 흔들 수 있는 체제

  • 앞으로: 의회의 구체적인 입법·제한된 조항에 의존해야 하는 체제


즉, IEEPA 판결은 트럼프식 관세 정치의 상한선을 처음으로 명확히 그어준 사건이다.

글로벌 기업 입장에서는 “언제 또 관세 폭탄이 날아올지 모른다”는 최악의 불확실성이 줄어들고, 생산·투자·재고 운영을 정상화해도 되는 신호로 읽힌다.


2. 공급 축: 중국·아시아와 한국의 구조조정


2-1. 중국: 세제·탄소·금융을 동원한 2년짜리 구조조정 사이클


중국 석유화학은 오래전부터 과잉 설비 논쟁의 중심에 있었지만, 과거에는 중앙의 감축 구호 vs 지방정부의 저항이라는 정치경제적 갭 때문에 실제 폐쇄가 잘 이뤄지지 않았다.

이번 사이클은 성격이 다르다. “경제성·세제·ESG”를 활용해 노후 설비를 강제 퇴출시키는 방향이다.


핵심 수단은 세 가지이다.

  1. 석화제품 수출 부가가치세 환급 축소·폐지

    – 2026년 4월 1일부터 중국 정부는 태양광·배터리 관련 석화 제품군을 포함해 **수출 VAT 환급(사실상 수출보조금)**을 단계적으로 축소·폐지하기 시작했다.

    – 기존에는 저부가가치 석화제품도 9% 안팎 환급을 통해 수출 채산성을 맞춰 왔지만, 환급이 없어지면 저효율·보조금 의존 설비는 버티기 어렵다.

    (관련: ICIS 보도 https://www.icis.com)

  2. 납사(nafta) 소비세 부과: 수직통합만 살리는 구조

    – 중국은 수입 납사에 대해 톤당 약 300달러 수준의 소비세를 부과하는 방향으로 세제 개편을 진행 중이다.

    – 정유–석화가 수직 통합된 국유 메이저들은 내부 납사를 자사 NCC에 투입하며 부담을 상쇄할 수 있지만,

    – 한국 순수 석화업체와 유사한 ‘납사를 사서 석화제품만 수출하는’ 독립 NCC들은

    • 납사 구매단가 상승

    • 소비세 부과

    • 수출 VAT 환급 축소

      세 가지를 한꺼번에 맞는다.
      – 결과적으로 노후·소형·비수직통합 설비가 시장에서 밀려나는 구조이다.

      (맥락 설명: https://tankterminals.com)

  3. 탄소·에너지 효율 기준을 통한 퇴출

    – 중국은 석화·철강 등 에너지다소비 업종에 대해 탄소배출·에너지 효율 기준을 강화하고, 미달 설비에 대해서는

    • 지방정부 보조금 제한

    • 금융 지원 축소

    • 에너지 사용·탄소 배출 할당 축소

      방식으로 정리해 나가고 있다.
      – 이는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의 지원 여지를 차단하는 방식”의 구조조정이다.
      (참고: 중국 석화 과잉·구조조정 관련 분석 https://www.energyconnects.com)

여기에 더해, 싱가포르에서도 엑손모빌 주롱섬의 구형 석화 설비(스팀 크래커)가 2026년 3월부터 단계적으로 폐쇄되는 등, 아시아 전반에서 비효율 설비 축소가 현실화되고 있다.
(관련: https://www.marketscreener.com)

정리하면, 중국·아시아 석화 공급은

  • “말로만 감축”이 아니라

  • **세제·탄소·금융을 동원한 ‘2년짜리 강제 구조조정 사이클’**로 진입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2-2. 한국: 대산–여수–울산 NCC 구조조정과 롯데케미칼


한국 역시 NCC 가동률이 60%대로 떨어졌고, 산업부는 석유화학을 정유·철강·조선·해운과 함께 지켜야 할 기간산업으로 규정하며 구조조정 플랜을 준비 중이다.

– 2025년 이후 정부는 NCC CAPA 20~25% 감축을 목표로 구조개편안을 검토했고, 각사에 구조조정 계획을 제출하도록 요구했다.
(관련: https://www.yna.co.kr)

이 과정에서 **롯데케미칼이 사실상 “1호 구조조정 케이스”**로 떠올랐다.

  • 2024년 11월, 롯데케미칼은 대산 NCC를 물적분할해 HD현대케미칼과 합병하는 안을 가장 먼저 제출했다.

  • 정부가 제시한 기한보다 한 달 이상 앞선 업계 1호 구조개편안이며,

  • 시장에서는 이를 “정부 주도 석화 구조조정의 시범 케이스”로 해석한다.
    (관련: https://www.hansbiz.co.kr)


구조는 대략 다음과 같다.

  • 대산 정유–석화 일체형 CAPA는 키우되,

  • 중복되는 롯케 대산 NCC(구형·비효율 설비)는 폐쇄

  • CAPA는 줄이고,

  • 지분 구조·정책금융을 활용해 롯데케미칼 개별 재무제표에서 손실·부채를 분리해 JV로 이전


정부의 의도는 **“대산에서 모델을 만든 뒤, 여수·울산으로 확산시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공급 축에서는

  • 중국·아시아: 노후·비효율 설비 축소

  • 한국: 대산–여수–울산 CAPA 감축
    이 동시에 진행되며, 석화 공급은 2024~25년 과잉에서 2026~27년 타이트해질 수 있는 국면으로 이동할 여지가 생긴다.

  • 추가로 전 세계적으로 에틸렌 capa는 2026~2027년에만 1,300만톤 패쇄가 예약되어 있으며, 이는 글로벌 에틸렌 capa 2.4억톤의 약 6~7%에 해당하므로, 2026~2027년은 공급과잉 부담이 크게 줄어드는 국면이 될 수 있다. 





3. 수요 축: Restocking과 관세 완화


공급만 줄어서는 업황이 돌아서지 않는다. **재고 재축적(Restocking)**이 수요 측에서 나타나야 한다.

2025년까지 석화 수요는

  • 미·중 상호관세

  • 트럼프 2기 통상정책 불확실성
    때문에 묶여 있었다. 기업들은 “언제 관세가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상태에서 재고를 최소화하며 버텼다.


그러나 2026년 초, 국면이 바뀐다.

  1. 미·중 관세 완화

    – 2025년 하반기 미·중 정상회담 이후, 양국은 일부 고율 관세를 인하하고 보복관세를 유예·조정하는 데 합의했다.

    – 미국은 일부 중국산 공산품·완제품에 대한 관세를 낮추고, 중국은 미국산 농산물·서비스 수입을 늘리는 구조이다.

    – 평균 관세율이 내려가면서, 무역 흐름이 “봉쇄”에서 “재조정”으로 전환되었다.

  2. IEEPA 관세 무효화 → 불확실성 완화

    – IEEPA 기반 관세가 대법원 판결로 무효화되면서, “비상사태 선포 → 관세 폭탄” 시나리오의 실현 가능성이 크게 낮아졌다.

    – 기업 입장에서는

    • 재고를 6개월 이상 비워두며 버티던 국면에서

    • “이제는 어느 정도 정상 수준까지 재고를 채워도 된다”는 신호로 작용한다.


실제 수요의 움직임도 이를 반영한다.

  • 2026년 1분기, BD(부타디엔) 체인을 중심으로 Restocking 수요가 먼저 회복

  • 에틸렌은 상대적으로 약하지만,

  • 대부분의 석화 스프레드는 2025년 4분기 대비 1분기에 더 크게 개선되는 모습

요약하면,

**IEEPA 판결 + 미·중 관세 완화 → “정책 리스크가 약해진 구간에서, 그간 비워둔 재고를 채우는 Restocking 수요가 살아나는 국면”**이라고 볼 수 있다.

 


4. 원가 축: OPEC+, 이란·러시아 리스크, 그리고 55달러 WTI


석유화학 기업의 이익은 **제품 스프레드(제품 가격 – 납사/LCG 원가)**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제품 수요·공급이 개선되더라도, 유가가 올라버리면 마진이 사라진다.

현재 원가인 유가 축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4-1. OPEC+ 공급 구조

  • OPEC+는 2026년 1분기까지 자발적 감산 기조를 유지하고 있으며,
    3월 회의에서 4월 이후 감산 완화 또는 증산 전환 여부를 논의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관련: OPEC 공식 자료)

  • 사우디와 UAE는 상당한 여분의 증산 여력을 보유하고 있다. 필요 시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산유량을 늘릴 수 있는 구조이다.

  • 미국 셰일업계 역시 유가만 일정 수준 이상을 유지한다면 빠르게 공급을 확대할 수 있는 특징을 가진다. 투자와 시추 재개 속도가 과거 대비 다소 느려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단기 탄력성은 높은 편이다.

  • 이러한 요인을 감안하면, 수요가 구조적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하지 않는 한 고유가를 장기간 유지하기는 어려운 체제라는 인식이 시장에서 점차 강화되고 있다.

4-2. 전쟁 프리미엄과 이란의 ‘호르무즈 카드’

  •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란·이스라엘 간 군사적 긴장 등으로 형성된 전쟁 프리미엄은 대략 배럴당 8~15달러 수준으로 추정된다.
    (관련 분석: BloombergNEF)

  •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시기에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만으로도 유가가 크게 요동쳤다. 당시에는 대체 수송로와 전략 비축 체계가 충분히 갖춰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 반면 현재는

    • 미국 전략비축유(SPR),

    • 사우디 동–서 해안을 연결하는 육상 파이프라인(우회 수송망),

    • 기타 대체 루트 및 생산 조정 여력이 확보되어 있다.

    이 때문에 설령 호르무즈 해협이 일시적으로 봉쇄되더라도,
    시장에서는 **“과거만큼 극단적인 공급 충격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수 있다”**는 해석이 확산되고 있다.

  •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주요 산유국의 순수 원유 수출 물량은 대략 다음과 같이 추산된다.

    • 이란: 약 100만 b/d

    • 쿠웨이트: 약 50만 b/d

    • 카타르: 약 100만 b/d

    • 이라크: 약 50만 b/d

    • UAE: 약 250만 b/d

  • 한편 인근의 사우디는 일평균 약 900만 b/d 수준에서 최대 1,300만 b/d까지 생산을 끌어올릴 수 있는 여력이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로 인해, 사우디 증산만으로도 일정 수준의 유가 방어(공급 보완)가 가능하다는 시각이 시장에 자리 잡고 있다.

  • 이러한 구조를 고려하면, 이란 입장에서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쓸수록 자국에 더 큰 손해를 초래하는 카드”라는 인식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도 호르무즈 봉쇄는 실행 카드라기보다는 협상용 레토릭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이를 종합하면,

  • 전쟁 프리미엄을 제거한 펀더멘털 균형 가격은 WTI 기준 약 55달러, 브렌트 60달러 중반

  • 성장·교역 둔화 리스크와 OPEC+ 구조를 감안하면,

  • 유가는 상단이 눌리고 중단·하단 박스권에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석화 업황 관점에서 이는,

**“수요는 Restocking으로 올라가고, 공급은 구조조정으로 줄어들며, 원가는 오히려 하단으로 안정되는 조합”**이 될 수 있다.

 


5. 한국 기간산업 패턴과 롯데케미칼


마지막으로, 이러한 공급–수요–원가 구조를 한국 기간산업 구조조정 패턴과 연결해 보아야 한다.

5-1. 공통 패턴: 두산에너빌리티, HMM, 현대건설


한국에서 국가 인프라와 직결된 업종은 대체로 비슷한 경로를 경험했다.

  1. 두산에너빌리티(구 두산중공업)

    – 공기업 한국중공업을 모태로 한 발전설비 대표 기업
    – 석탄·원전 투자 축소, 수주 공백으로 2010년대 후반 재무위기
    – 2020년 산업은행·수은 중심 구조조정 패키지(3조원대 자금 지원, 채무조정 등) 발동
    – 이후

  2. HMM(구 현대상선)

    – 2016년 채무불이행 직전까지 몰린 뒤,
    – 산업은행·채권단의 출자전환 + 구조조정으로 사실상 공적 관리체제로 전환
    – 2018년 이후 한국해양진흥공사(해진공)가 지분 인수, 공동 관리 구조
    – 2020~21년 컨테이너 운임 슈퍼사이클로 막대한 영업이익, 부채 축소
    – 현재는 산은·해진공의 지분 매각, 공적자금 회수 국면
    (관련: https://v.daum.net, https://biz.chosun.com)

  3. 현대건설

    – 글로벌 금융위기 전후 국내외 프로젝트 부실을 **대규모 손상차손(빅배스)**으로 한꺼번에 인식
    – 대주주 정리(현대차그룹), 재무구조 정비
    – 이후 주택 분양시장 회복·인프라 수주 확대에 레버리지
    (참고: https://v.daum.net)

세 사례의 공통 구조는 다음과 같다.

  1. 업황 급락 + 재무 악화

  2. **빅배스(대규모 손상·충당금)**로 부실 자산 털기

  3. **정부·정책금융(산은 등)**의 구조조정 패키지 + 자구안

  4. 업황 회복 + 포트폴리오 재편 → 주가·신용도 회복


즉, **“버릴 수 없는 기간산업은, 빅배스를 통해 회계적으로 정리한 뒤 정부가 살려놓고, 업황·슈퍼사이클에서 회수한다”**는 패턴이다.


5-2. 석유화학·롯데케미칼의 위치


이 패턴을 석유화학, 특히 롯데케미칼에 적용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석유화학 역시 명백한 기간산업

    – 정유·철강·자동차·전자 등 제조업에 소재를 공급하고,
    – 여수·대산·울산 산업단지 일자리와 지역경제를 지탱하며,
    – 수출에서도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석화의 전략적 비중: IEA 보고서 https://www.iea.org)

    → 두산(발전), HMM(해운)에 이은 다음 타깃이 석유화학이라는 해석이 성립한다.

  2. 롯데케미칼: 구조조정 1호 + 빅배스 가능성

    – 대산 NCC 구조개편안을 가장 먼저 제출한 롯데케미칼은,
    – 정부가 구상하는 석화 구조조정 모델의 “파일럿 플레이어” 역할을 맡고 있다.
    – 이 과정에서

    • 대산·여수·울산 중복 설비 감축·폐쇄

    • 대규모 손상차손(빅배스) 인식

    • 정책금융 + 지분 구조 조정
      을 통해 재무구조를 경량화하고,
      – 이후에는 NCC 비중을 줄이고 스페셜티·첨단소재 비중을 높이는 방향으로 포트폴리오를 바꾸는 구도가 유력하다.

  3. 글로벌 구조 변화와의 결합

    – 중국·아시아 구조조정으로 공급이 줄어들고,
    – IEEPA 관세 무효화·미·중 관세 완화로 정책 리스크가 낮아지고,
    – 재고 재축적 Restocking 수요가 살아나며,
    – 유가는 OPEC+ 구조상 중단·하단에서 안정될 가능성이 커지는 구도이다.


이 모든 것을 하나의 내러티브로 묶으면 다음과 같다.

IEEPA 관세 무효화로 행정부 관세 권력이 제도적으로 제약되는 순간, 중국·아시아 석유화학 공급 구조조정과 한국 기간산업 ‘빅배스 + 정부 지원’ 패턴이 겹치고 있다. 

이 안에서 롯데케미칼은 “대표 석화 기간산업 플레이어를 살려내는 구조조정 1호 케이스”로 포지셔닝되고 있으며, 수요 증가·공급 감소·원가 하락이 동시에 맞물릴 경우 레버리지 효과가 가장 크게 나타날 수 있는 종목 중 하나이다.


#글을 마치며


개인적으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Narcos: Mexico를 매우 좋아하는데,  시리즈 중 지금의 상황과 유난히 잘 맞는 명대사가 있다.


나르코스 멕시코 표지


이번 글을 쓰는데 딱 떠오른 명대사이다.

이 대사는 **시즌 1 에피소드 10(“Leyenda”)**마지막에 펠릭스가 자신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말하는 장면의 대사이다. 

“When I look at something I don't see it for what it is. I see it for what it could be.”

위 문장을 의역하면 아래와같다.

‘무언가를 바라볼때, 당장의 현상 보다는 그 현상이 만들어낼 앞으로의 가능성을 봐야한다.'

투자세계에서 성공하기 위해 이보다 더 정확한 표현은 없겠다 싶어서 예전에 따로 적어 뒀었다.

화학산업을 둘러싼 굵직한 여러 변수들의 변화가 앞으로 만들어낼 가능성에 집중해야할 시점이지 않나 싶다. 


최근 유행하는 밈 짤을 한번 만들어봄


매수매도
추천아님

=끝

2026년 2월 24일 화요일

생각정리 184 (* Hyudai motor. Alpamayo)

현대차 자율주행 관련해서 포티투닷 먹튀사건으로 크게 관심을 두고있지 않았는데, 최근 NVIDIA Alpamayo 비하인드 스토리를 파다보니 현대차 자율주행에 관해 새로운 관점이 생겨 이렇게 글로 정리해본다.
 
전반적인 자율주행 발전과정 역사는 유튜버 김한용 mocar님의 아래 영상이 도움이 많이됐다. 
https://www.youtube.com/watch?v=-_lk4kxrJ3Q

테슬라, 엔비디아, 현대차


2016년 사고에서 2026년 Alpamayo까지, 자율주행 10년의 이야기


2016년, 테슬라 오토파일럿 사고와 함께 자율주행 논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2026년, 엔비디아는 CES에서 **추론 기반 자율주행 모델 ‘Alpamayo’**를 공개했다.(NVIDIA Blog Korea)


불과 10년 남짓한 시간 동안 자율주행은 완전히 다른 게임이 되었다.
이 10년을 관통하는 축은 세 가지이다.

  • 모듈러·룰베이스 vs End-to-End(E2E), 두 개의 기술 노선

  • 테슬라와 엔비디아의 결별, 그리고 서로 다른 진화

  • 그 빈 자리를 향해 들어오는 메르세데스·현대차 등 OEM들의 선택


아래는 그 흐름을 하나의 서사로 엮어 본 것이다.


1. 두 개의 길: 모듈러 vs E2E


1) 모듈러·룰베이스: “규칙을 쌓는 자율주행”


전통적인 자율주행 시스템은 네 단계로 쪼개진다.

  • 인지(Perception): 센서로 차·보행자·신호등·차선을 인식

  • 예측(Prediction): 앞차·보행자가 어떻게 움직일지 예상

  • 계획(Planning): 어느 경로로, 어느 속도로 갈지 결정

  • 제어(Control): 실제 조향·가감속 제어


각 단계에 사람이 만든 If–Then 규칙이 수만 개씩 들어간다.

  • 앞차와 거리가 X 이하면 감속

  • 신호등이 꺼져 있으면 정지

  • 보행자 보호구역은 지정 속도 이하로 주행

  • 장애물로 분류되면 회피


초기에 기능을 구현하기에는 매우 효율적이다.
무엇을 왜 그렇게 설계했는지 설명이 쉽다는 점도 강점이다.

그러나 현실 도로는 **롱테일(long tail)**로 가득하다.

  • 공사로 신호등이 꺼진 사거리

  • 바람에 날리는 비닐봉지와 사람 실루엣이 겹치는 상황

  • 이상한 궤적을 그리는 전동 킥보드

  • 교과서에 없는 예외적인 차선·표지·행동들

이 모든 것을 규칙으로 먼저 정의하려 하면
규칙 수와 복잡도가 폭발하고, 결국 **“모르면 일단 멈추는 차”**가 되어 버린다.
Waymo를 비롯한 레벨4 로보택시 서비스가 특정 도시·특정 구역으로 운영을 제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 E2E·신경망: “규칙 대신 학습에 거는 방식”


반대편에는 End-to-End(E2E) 자율주행이 있다.

  • 카메라·센서 데이터 → 신경망(뉴럴넷) → 곧바로 조향·가감속 명령

  • 중간에 “차선 검출·경로 계획” 모듈을 사람이 쪼개 설계하지 않는다.

  • 운전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학습 문제로 본다.


2016년, 엔비디아 연구진은 단일 카메라 입력에서 조향각을 직접 예측하는 E2E 논문을 발표했다.
“픽셀 입력만으로 차선을 이해하고 조향을 배운다”는 이 접근은
당시 기준으로는 상당히 급진적인 발상이었다.(TeslaTap)

이 아이디어 위에서,
테슬라는 실제 양산차 데이터로 E2E를 현실화하는 쪽,
엔비디아는 ‘여러 완성차에 팔 수 있는 플랫폼’으로 E2E를 제품화하는 쪽으로 갈라지게 된다.


2. 테슬라와 엔비디아, 함께 달리다가 갈라선 이유


1) Mobileye → 엔비디아: E2E로 향하는 첫 분기점

  • 2014년 이후 Autopilot HW1은 Mobileye EyeQ 기반으로 작동했다.

  • 2016년 플로리다 트레일러 사고 이후 Mobileye와 테슬라는 결별했고,

  • 2016년 10월부터 생산된 HW2 차량에는 엔비디아 Drive PX2가 탑재되었다.(위키피디아)


이 시기 엔비디아의 역할은 명확했다.

  • 차 안에서 E2E 자율주행을 돌릴 수 있게 해 주는 고성능 온보드 컴퓨터 공급자

  • 동시에, 자율주행 E2E 연구를 선도하는 칩·플랫폼 회사


즉, 테슬라와 엔비디아는
“카메라+신경망 기반 자율주행”이라는 새로운 길 위에 함께 올라탔던 상태였다.

2) HW3 FSD 칩: 테슬라가 느낀 한계 – “이제 범용 GPU로는 부족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테슬라 내부에서 문제가 뚜렷해졌다.

  • 2018년 기준, 테슬라 AI 팀은 이미 매우 큰 뉴럴넷을 학습해 두었지만,
    HW2/2.5(엔비디아 기반)로는 차량에서 실시간 실행이 어려웠다.
    (위키피디아)

  •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설계된 것이 2019년 공급된 **자체 설계 FSD 칩(HW3)**이다.

    • HW2.5 대비 약 21배의 이미지 처리 성능, 2.5배 성능, 0.2배 비용을 지향하는 구조로 설계되었다.(위키피디아)


이 지점에서 테슬라와 엔비디아의 이해관계가 갈라진다.


테슬라 입장에서의 문제의식은 네 가지로 정리된다.

  1. 성능

    • 비전 기반 FSD를 제대로 돌리려면,
      범용 GPU보다 자기 뉴럴넷에 최적화된 전용 칩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2. 전력

    • 전기차 배터리에서 전력을 뽑는 구조에서,
      GPU의 전력 소모는 곧 주행거리·열·원가 문제와 직결된다.

  3. 원가

    • 테슬라는 양산차에 FSD를 넓게 깔고 싶다.
      칩 단가를 줄이지 못하면, 자율주행을 “프리미엄 옵션” 이상으로 확대하기 어렵다.

  4. 전략적 통제력

    • 자율주행은 테슬라 밸류에이션의 핵심이다.

    • 이 핵심을 외부 칩 공급사(동시에 경쟁 OEM의 파트너이기도 한 회사)에 맡기는 것은
      장기적으로 전략 리스크가 된다.


결론적으로, 테슬라 내부에서는

“더 강력한 뉴럴넷, 더 낮은 전력과 원가, 완전한 통제력”을 확보하기 위해
범용 엔비디아 플랫폼이 아니라 자체 설계 FSD 칩으로 가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선택이 바로 **HW3(테슬라 FSD 칩)**이며,
이때부터 테슬라는 칩–FSD 소프트웨어–플릿 데이터–학습 인프라까지 모두 수직 통합된 구조로 이동한다.

3) 결별의 실질적 의미: “테슬라는 자기 길로, 엔비디아는 멀티 OEM으로”


이렇게 되면 협업 구조는 자연스럽게 바뀐다.

  • 테슬라는

    • 더 이상 차 안에서 엔비디아 GPU/SoC를 쓸 필요가 없다.

    • FSD 소프트웨어도 이미 자체 내재화되어 있어,
      엔비디아에 의존할 유인이 거의 사라진다.

  • 엔비디아는

    • 테슬라는 자체 칩·자체 스택으로 가는 고객이 되었고,

    • 이후 전략의 중심을 **“다수 OEM에 팔 수 있는 자율주행 플랫폼”**으로 옮기게 된다.

정리하면, 결별의 핵심 이유는 감정적 갈등이 아니라 사업모델의 분기이다.

  • 테슬라: 한 회사의 수직 통합형 FSD 스택

  • 엔비디아: 다수 완성차에 공급하는 범용 자율주행 플랫폼


이 갈라짐이 수년 뒤 Alpamayo와 다양한 OEM 협업으로 구체화된다.


3. 엔비디아 Alpamayo: “설명 가능한 E2E”로 방향 전환


1) Alpamayo의 정체: 추론·설명·플랫폼


2026년 CES, 엔비디아는 **‘Alpamayo’**라는 이름의 자율주행용 AI 제품군을 공개했다.

  • 오픈 AI 모델

  • 시뮬레이션 도구

  • 데이터셋
    으로 구성된 레벨4 자율주행 개발 패키지라는 점을 앞세운다.(NVIDIA)


Alpamayo의 특징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1. 추론(Reasoning)

    • 단순 패턴 매칭이 아니라,
      “왜 이런 행동을 선택했는지” 내부적으로 논리 구조를 쌓는 것을 지향한다.

  2. 설명 가능성(Explainability)

    • 규제·보험·사고 조사 환경에서
      “어떤 인식·판단 때문에 회피/감속/정지를 했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요구에 대응한다.

  3. 멀티 OEM 플랫폼

    • 특정 한 회사 전용이 아니라,
      메르세데스-벤츠, 현대차, 기타 OEM들이 공통으로 쓸 수 있는 레퍼런스 스택이다.(NVIDIA Blog)


테슬라가 “내 차 하나만 잘 돌아가면 된다”는 폐쇄형 수직 통합이라면,
엔비디아는 “여러 OEM을 한 번에 묶는 개방형 E2E+Reasoning 플랫폼”을 선택한 셈이다.

2) Mercedes CLA: Alpamayo의 첫 무대


엔비디아는 신형 메르세데스-벤츠 CLA
NVIDIA DRIVE AV 소프트웨어 + Alpamayo 기반 추론 기능을 탑재해
미국 시장에서 향상된 레벨2 포인트-투-포인트 운전자 보조 기능을 선보일 계획을 밝혔다.(NVIDIA Blog)

이는 두 가지를 의미한다.

  • Alpamayo가 개념 증명(논문·데모) 수준을 넘어
    실제 양산차에 올라가는 첫 쇼케이스로 등장했다는 점

  • 테슬라 이후 자율주행 분야에서의 “대표 고객” 자리를
    메르세데스·현대차 등 여러 OEM으로 분산시키겠다는 전략이라는 점


다음 질문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왜 그 다음 타깃이 현대차인가.


4. 현대차 × 엔비디아: Tesla 공백 위에 올라탄 ‘물리 AI’ 동맹


1) 엔비디아의 필요: 데이터·플릿·하드웨어 파트너


테슬라와의 결별 이후, 엔비디아가 확보해야 할 것은 명확하다.

  1. 실도로 데이터와 대규모 플릿

    • Alpamayo·DRIVE AV를 고도화하려면
      실제 도로에서 달리는 수십만·수백만 대의 차량 데이터가 필요하다.

  2. AI 칩을 대량으로 태워 줄 완성차 그룹

    • Blackwell·Rubin 같은 최신 GPU/SoC와,
      Alpamayo 모델·AI 팩토리 인프라를 함께 깔 수 있는 거대 제조 파트너가 필요하다.(NVIDIA)


테슬라가 **“모든 걸 자체적으로 가져간 고객”**이 되어 버린 순간,
엔비디아 입장에서는 자연스럽게 **“다른 OEM들과의 깊은 동맹”**으로 전략축이 이동한다.

2) 현대차의 필요: 후발주자의 현실적인 단축 코스


현대차그룹은 최근 몇 년간
자율주행·로봇·스마트 팩토리·휴머노이드 로봇(보스턴 다이내믹스)
소위 “물리 AI(Physical AI)” 영역에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Hyundai)

2025년 발표된 NVIDIA Blackwell 기반 ‘AI Factory’ 협업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현대차 입장에서 보면 다음과 같은 현실적 제약이 존재한다.

  • 테슬라처럼

    • 전용 FSD 칩을 설계하고,

    • 자체 슈퍼컴퓨터를 꾸리고,

    • 글로벌 플릿 전체를 하나의 스택으로 통제하는 구조를
      처음부터 끝까지 자체 개발하기에는 시간·비용·리스크가 매우 크다.


따라서 보다 현실적인 선택은 다음과 같다.

칩·모델·AI 팩토리 인프라는 엔비디아의 것을 활용하고,
차량·로봇·공장이라는 물리적 자산과 데이터를 현대차가 제공하는 구조로
양측이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동맹을 맺는 것.


결국,

  • 엔비디아는 “Tesla 공백”을 메워 줄 새로운 거대 OEM이 필요하고,

  • 현대차는 **“자율주행·로봇·공장을 한 번에 끌어올릴 수 있는 AI 파트너”**가 필요하다.


양측의 니즈가 맞물린 지점이 바로 Alpamayo + AI Factory + 현대차그룹 구조이다.


5. 숫자로 보는 잠재력 (가정 시나리오)


아래 내용은 정량적 가정 시나리오이다.
구조적 잠재력을 감각적으로 보기 위한 예시 수준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1. EV 규모 가정

    • 현대차그룹(현대·기아·제네시스 등)의 전기차 보급이
      연간 50만 대 수준까지 성장한다고 가정한다.

  2. 자율주행 SW 요금 가정

    • 엔비디아 Alpamayo 계열 고급 자율주행 패키지 가격을
      대당 1,000만 원(일시불 혹은 구독 NPV)으로 놓는다.

  3. 매출 잠재력

    • 50만 대 × 1,000만 원 = 연 5조 원의 잠재 매출.

  4. 수수료 구조 가정

    • 엔비디아가 칩·SW·클라우드 인프라 대가로 **30%**를 가져가고,

    • 현대차가 70%, 즉 3.5조 원을 가져가는 구조로 가정한다.

  5. 밸류에이션 감각치

    • 이 3.5조 원이 소프트웨어 성격의 고마진 매출로 평가되고,

    • 시장이 여기에 PER 15배를 적용한다면,

    • 이론상 약 52.5조 원 시가총액 상향 여지라는 숫자가 나온다.


현실에서는

  • 자율주행 기능의 실제 탑재율,

  • 국가별 규제와 허용 레벨,

  • 보험·책임 구조,

  • 엔비디아와의 실제 계약(칩·클라우드 번들 여부)
    등에 따라 숫자가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다만 방향성은 분명하다.

자율주행이 단순 옵션이 아니라
**“전기차 위에 올라타는 소프트웨어 구독 비즈니스”**로 자리 잡을 경우,
EV 판매대수 × 탑재율 × ARPU(대당 구독료)가
완성차와 엔비디아 양쪽의 밸류에이션 핵심 동력이 될 수 있다.

 


6. 결론: 기술의 승부가 아니라, 설계 철학의 승부


2016~2026년 자율주행 10년사는 다음 네 문장으로 정리된다.

  1. 모듈러·룰베이스 방식은 롱테일에서 벽에 부딪혔다.

  2. E2E·신경망 방식이 그 벽을 우회하는 해답으로 부상했다.

  3. 테슬라는 자체 칩·자체 FSD·플릿 데이터 수직 통합으로 E2E를 밀어붙였고,
    엔비디아는 Alpamayo·DRIVE AV·AI Factory로 다수 OEM을 묶는 플랫폼을 선택했다.(위키피디아)

  4. 그 플랫폼 위에 메르세데스, 현대차, 기타 OEM이 올라타면서
    자율주행 경쟁의 판은 “한 회사 vs 나머지”가 아니라
    **“수직 통합 플레이어 vs 플랫폼 연합” 구도로 재편되고 있다.


이제 자율주행 경쟁은 단순한 센서 개수나 칩 성능의 싸움이 아니다.
어떤 철학으로 시스템을 설계하고,
어떤 구조로 데이터를 모으고,
어떤 방식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짜느냐

앞으로 10년을 다시 가르게 될 가능성이 높다.

#글을 마치며


일시불로 약 $900에 판매되는 FSD 옵션은 현실적으로 가격부담이 높을거라고 한다.
따라서 필요할 때만 일정 기간 구독하는 월 구독형 FSD 모델
실제 대중 보급 단계에서는 더 현실적인 경로가 될 것이라고 한다. 

앞서 이야기했던 **체감 행복의 법칙(한계효용 체감)**을 적용해 보면,
FSD가 없는 세상에서 FSD를 처음 경험할 때의 효용은 압도적으로 크다.
한 번 그 수준의 편의와 안전을 경험한 운전자는
다시 FSD가 없는 세계로 돌아가는 것을 심리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태에 이르게 될지도 모르겠다. 


자율주행 시장은 초기에 가격 부담 때문에 보급 속도가 더딜 수 있다.
하지만 FSD를 한 번 경험하면 편의와 안전이 ‘기본값’으로 인식되기 쉽다.
그 결과 일정 시점 이후 자율주행은 선택 옵션이 아니라, 스마트폰 데이터 요금제처럼 사실상 기본으로 붙는 구독 서비스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있다.


투자자 관점에서도 현대차를 ‘자율주행 기술’만 놓고 보면 매력 포인트가 흐릿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시야를 넓혀 공장·로봇·디지털 트윈까지 포함한 **학습을 만들어내는 물리적 기반(Physical AI 인프라)**으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관점에서는 현대차가 단순한 후발주자가 아니라, 엔비디아 같은 플랫폼 기업에게 반드시 필요한 데이터·현장·양산 파트너로 재해석될 수도 있지 않나 싶다.

문득 6년 전에 정리해둔 NVIDIA 글을 다시 읽어봤다. 

NVIDIA-1
NVIDIA-2
NVIDIA-3

그때 젠슨 황이 제시했던 비전이 지금 대부분 현실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니, 새삼 놀랍고 신기하다.

=끝

2026년 2월 23일 월요일

편안함의 습격




편안함의 습격과 선과 악을 보는 눈

최근 읽은 책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책이 있다. 제목부터 강렬한 **『편안함의 습격』**이다.

어느 저녁, 세상 편한 자세로 소파에 드러누워 이 책을 집어 들었다가, 그대로 끝까지 단숨에 읽어버렸다.

읽는 동안 내 머릿속에서는 계속 메모가 쌓여 갔다. “이대로 두면, 이 감정과 생각은 또 증발해버리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글로 남겨두려 한다.


1. 멸균된 도시에서 툰드라까지


이 책에서 저자는 멸균된 도시의 편안한 생활을 살던 자신이 어느 날, 시베리아 툰드라로 순록 사냥을 떠나는 경험을 기록한다.

사냥 준비부터, 얼어붙은 대지에서의 기다림, 사냥의 실패와 성공, 추위와 배고픔, 더러움과 지루함, 육체적 피로까지 그 과정을 매우 세밀하게 써 내려간다.

그리고 다시 도시로 돌아와, 예전과 똑같은 일상을 다시 살기 시작한다.
변한 것은 환경이 아니라 그 환경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이다.

뜨뜻한 샤워, 깨끗한 침대, 불필요할 정도로 풍족한 음식, 그저 카드만 대면 해결되는 소비생활.
사냥을 다녀오기 전에는 그저 “원래 그런 것”이었던 것들이, 극한의 불편함을 경험하고 돌아온 뒤에는 압도적인 감사와 만족감으로 다시 다가온다.

결국 이 책이 말하는 핵심 중 하나는 이것이다.

**“편안함에 길들여진 상태에서는, 이미 누리고 있는 것의 소중함을 도저히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이다.


2. 뇌과학이 말하는 ‘적응’과 상대 비교


책 중간중간에는 흥미로운 뇌과학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중 특히 기억에 남는 내용이 있다.
인간의 뇌는 에너지 효율을 위해 모든 경험을 있었던 그대로 다 기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우리는 “절대값”이 아니라 “비교값”으로 기억하고 판단하도록 진화해왔다고 한다.
어제보다 나은지, 이전보다 더 좋은지, 남들보다 부족한지.

상대 비교의 메커니즘 때문에,
동일한 대상·동일한 경험을 반복할수록 그에 대한 만족감은 점점 떨어지도록 설계되어 있다.

새로운 편안함에 한 번 적응하고 나면,
이전의 편안함은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오늘의 편안함은 내일의 불편함이 되고,
오늘의 기준선은 내일의 **“최소 만족 조건”**이 되어버린다.

결국 우리는 계속 더 편안해지지만, 체감 행복은 거꾸로 떨어지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셈이다.

그래서 저자는 말한다.
일상의 컴포트존에서 잠시라도 벗어나, 불편함·지루함·힘듦을 일부러라도 경험해야만,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편안함과 풍족함을 다시 볼 수 있다고.


3. “악을 알아야 선을 안다” – 한 구절의 힘


이 책을 읽다 보니, 예전에 적어둔 인용구 하나가 떠올랐다.
조승연의 ‘TAMGULIFE 조승연의 탐구생활’에서 처음 접했던 문장이다.
아래는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가 『악의 꽃』 초판 표제지에 인용한 구절이다. 

**Théodore Agrippa d’Aubigné(아그리파 도비녜)**의 『Les Tragiques』에 나오는 구절이라고 한다. 

Mais le vice n’a point pour mère la science,
Et la vertu n’est pas fille de l’ignorance. 

— Théodore Agrippa d’Aubigné, Les Tragiques, livre II “Princes”.
출처: Wikisource (Baudelaire, Les Fleurs du mal 초판 표제지 에피그래프)


대략 이렇게 옮길 수 있다.

악의 어머니는 지식이 아니며, 덕(정의)은 무지의 딸이 아니다. 


이를 의역하면 

좋은 것만 보게 하고 나쁜 것을 보지 못하게 한다고 해서 사람이 더 바르게 되는 것은 아니다. 

더 알아서 악해지는 사람은 없고, 덜 알아서 정의로워지는 사람도 없다.
선과 악을 함께 보아야 세상의 전체가 보이고, 그 위에서야 현명한 판단이 가능하다.


즉, 내가 좋아하는 요지는 명확하다.
“악을 먼저 알아야 선과 정의를 알 수있다..”


4. 투자, 일상, 그리고 구조를 보는 눈


내 경험으로도, 앞서 인용한 문장은 현실 세계와 상당히 잘 들어맞는다.

우선 투자 세계에서, 정말 좋은 투자를 찾기 위해서는
여러 자산, 여러 기업, 여러 산업을 끊임없이 비교해보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하나의 대상만 바라보고 있으면 그것이 비싼지 싼지, 좋은지 나쁜지조차 제대로 판단할 수 없다.
여러 후보를 나란히 놓고 상대적인 위치를 살펴본 뒤, 그중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지를 골라내는 과정 자체가 곧 투자라고 느낀다.

일상도 다르지 않다.
건강을 잃어보면 건강이 비로소 보이고,
관계를 잃어보면 그제야 관계의 의미가 또렷해진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의 소중함은,
그것과 정반대의 경험을 한 번이라도 겪어본 사람에게만 비로소 선명하게 다가온다.

최근 관심이 커진 부동산과 한국 정치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부동산 가격의 움직임을 이해하려면 “실수요냐 아니냐”라는 좁은 질문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함께 보아야 한다.

  • 부동산이 속해 있는 전체 자산시장에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 그 안에서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정치인 집단의 이해득실 구조가
    일반 국민의 이해득실 구조와 어떻게 어긋나 있는지
    ,

  •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여러 집단이 한정된 자원을 두고
    어떤 방식으로 충돌하고 있는지.

이러한 구조를 함께 보지 못하면,
왜 부동산 가격이 이렇게 움직이는지,
그 배후에 어떤 힘이 작동하고 있는지 전체 그림을 이해하기 어렵다.

결국 어떤 영역에서든,
불편한 면을 외면하지 않고 구조 전체를 바라보는 시선이 있을 때에야
비로소 제대로 된 판단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느낀다.


5. 선과 악은 어디에 있는가


그런데 이렇게 구조를 바라보다 보면, 
감정이 스며드는 어느 순간, 가치판단의 기준점은 어디에 놓여 있는가?라는
피할 수 없는 질문에 다다르게 된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악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다.

나와 내가 속한 집단의 이익을 해치는 것이 곧 악일까.
그렇다면 사회 전체의 공공선개인의 이해득실이 정면으로 충돌할 때,
우리는 어느 쪽을 선이라 부르고, 어느 쪽을 악이라 불러야 하는가.

자유민주 사회에서 다수결 원칙은 흔히 정당성의 근거로 제시된다.
그러나 “공공선을 위한다”는 그럴듯한 명분 아래,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범하는 다수의 횡포가 발생한다면,
우리는 어디까지 침묵하며 그것을 용인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다수는 언제나 선이고, 소수는 언제나 악이라는 말인가.

시간이 흐르고 환경이 바뀌면,
내가 어제 내렸던 가치판단이 오늘은 흔들릴 때가 있다.
그렇다면 내 안의 선과 악의 기준은
그저 시시각각 변하는 가변적인 가치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면 변화의 표면 아래 어딘가에 일관된 하나의 축이 존재하는 것일까.

나는 아직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갖고 있지 않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고 느낀다.

선이라고 믿는 것만 보려고 할수록
오히려 선과 악의 경계는 더 흐려진다.

불편함과 추함, 이해관계의 충돌, 그 속에 드러나는 이기심까지,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을 포함해 전체 그림을 함께 보는 시도가 있어야만
그나마 조금이라도 더 현명한 판단에 가까워질 수 있다.


6. 앞으로의 나를 위해


앞으로 태어날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지, 교육은 어떻게 시켜야할지, 
그리고 내가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지를 떠올리면,
앞서 던진 질문들이 더 이상 추상적으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아이에게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부모라면 누구나 갖는 마음일 것이다.
하지만 도비녜의 문장이 말하듯,
좋은 것만 보게 한다고 해서 아이가 더 바르게 자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선과 악을 함께 볼 수 있는 눈,
편안함과 불편함을 모두 경험할 수 있는 감각.
결국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드는 바탕은
그 지점에서 비롯된다고 믿는다.

나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이다.
편안함에 안주한 채 눈을 감아버리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컴포트존 밖으로 걸어나가
기꺼이 불편함과 지루함,
때로는 손해 보는 감정까지 마주해보려 한다.

그래야만 내가 내리는 판단이
조금이라도 덜 단순하고, 덜 자기중심적이며,
조금이라도 더 전체를 향한 현명한 판단에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끝

너구리

현 와이프, 전 여자친구와의 통화는 늘 늦은밤 10시부터 시작이었다.

연애 초기에 우리는 연락 횟수를 정해두었다. 아침 출근길에 한 번, 내가 퇴근할 때 한 번, 그리고 와이프가 퇴근할 때 한 번. 하루 세 번. 그 약속이 생기고 나서부터 나는 10시 통화에 맞춰 하루를 정리하는 사람이 됐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씻고 밥을 먹고, 바로 잠을 청했다. 늦은밤 10시에 맑은 정신으로 통화하려면 그게 가장 확실했다.

본가 방에 앉아서 통화를 하면, 거의 자동적으로 침대에 누워 엄지발가락으로 본체 전원버튼을 켤 게 뻔했다. 신혼집을 장만하기 전 전 재산 올인해 둔 AI 미국기업 뉴스 탭을 열고, 기사 읽고, 시시각각 바뀌는 주가를 확인하는 흐름.

통화 중에도 그걸 못 참는 나를 아니까, 와이프와 통화할 때만은 아예 원천차단을 하기로 했다. 그래서 밖으로 나갔다. 나에게는 그게 제일 쉬운 방식이었다.

통화 연결음이 울리면, 나는 동시에 움직였다. 옷을 갈아입고 계단 5층을 빠르게 내려가 뒷산 산책로로 향했다. 걸으면서 통화하면 잠이 깨고, 말도 더 자연스럽게 나왔다. 늦은밤 산책로는 조용했고, 발소리와 숨소리만 또렷했다. 전화기 너머 목소리와 내 발걸음 소리가 같이 흘러갔다.

그날도 똑같이 걷고 있었다. 산비탈 언덕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갑자기 시선이 느껴졌다. 누가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산책로 옆 수풀 쪽이었다. 처음엔 기분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 보니, 어둠 속에 작은 빛 두 개가 떠 있었다. 눈이었다.

멀리서도 눈동자가 반짝였다. 나는 걸음을 조금 늦췄다. 손에는 휴대폰이 있었고, 귀에는 와이프 목소리가 들렸지만, 순간 그쪽으로 신경이 쏠렸다. ‘들개인가?’ 생각이 먼저 들었다. 밤 산책로에서 들개는 딱 떠올리고 싶지 않은 단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세히 볼수록 무섭기만 하진 않았다. 꼬리가 유독 두툼해 보였다. 내가 한 발 다가가면, 녀석은 한 발 물러섰다. 내가 멈추면 녀석도 멈췄다. 내가 한 발 뒤로 물러나면, 녀석이 다시 한 발 다가왔다. 서로가 서로의 거리를 재는 느낌이었다. 가까워지지도 멀어지지도 않는, 애매한 선.


한밤중 멀리서 보면 들개 같아보이는 너구리

나는 일부러 모른 척하며 계속 걸었다. 하지만 걸으면서도 계속 그쪽을 보게 됐다. 녀석은 수풀 옆에 서서 나를 바라봤다. 내가 산책로를 더 멀리 가면, 어느 순간 사라졌다. 마치 “여기까지”라는 경계가 있는 것처럼.

그날 이후로 비슷한 일이 여러 번 반복됐다. 같은 시간대, 같은 장소. 멀리서 나를 지켜보는 눈빛. 두툼한 꼬리. 한 발 다가가면 한 발 물러나는 움직임. 밤 10시 통화는 점점 ‘산책로에서 그 녀석을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나도 모르게 그 구간에 들어서면 먼저 수풀을 찾았다.

그러던 어느 날, 녀석이 갑자기 두 발로 일어섰다. 순간 내가 멈췄다. ‘뭐지?’ 싶었다. 들개가 두 발로 일어서서 나를 보나? 그 생각이 스치자, 몸이 먼저 굳었다. 거리도 그 전보다 조금 가까웠다. 눈이 반짝이고, 몸통이 올라오고, 꼬리가… 꼬리가 너무 두툼했다.

그때부터 내가 가진 확신이 흔들렸다. ‘개가 맞나?’ 조금 더 가까이 가서 확인했다. 강아지의 선이 아니라, 야생동물의 느낌이었다. 얼굴이 길지 않았고, 어딘가 둥글었다. 그리고 마지막 몇 걸음을 더 가까이 옮긴 순간, 정체가 분명해졌다.

너구리였다.

그냥 너구리였다. 들개도 아니고, 내가 혼자 긴장할 이유도 없었던, 너구리. 그런데 그 순간 든 생각은 안도감보다도 “왜?”였다. 왜 너구리가 이 시간에 우리 본가 근처 산책로에 있는 걸까. 밤 10시에, 사람 지나가는 길목에, 그 거리에서 나를 보고 서 있었던 이유가 뭘까.

나는 와이프에게 사진을 찍어 보냈다. “나 야생 너구리 봤다.” 와이프는 사진을 보자마자 보노보노가 떠올랐는지, 너구리가 뒷발로 일어서서 점프하고 드롭킥을 날리는 상상을 하며 웃었다. 웃으면서도 말은 단호했다. 가까이 가지 말고 조심하라고.

그 뒤로 나는 너구리를 봐도 모른 척했다. 산책로를 늘 하던 속도로 걸었다. 너구리도 더 이상 뒷걸음질 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익숙해진 건지, 너구리가 익숙해진 건지, 서로가 그 거리 자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은 정말 가까웠다. 우연히 코앞 수준까지 겹쳤다. 순간 숨이 멎는 느낌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모른 척”을 유지하려고 시선을 피한 채로, 손만 움직여 근접샷을 한 장 찍었다. 찰칵 소리가 크게 들린 것 같았는데, 너구리는 도망가지 않았다. 그게 더 이상했다.


너구리 근접샷 직촬

그리고 며칠 뒤, 산책로 입구에 플랜카드가 붙었다. “너구리 출몰 주의.” 그 문구를 보자마자, 밤마다 내 시야 끝에 걸리던 그 두 개의 반짝이는 점이 떠올랐다. 뉴스 기사에서도 우리 동네에 너구리 출몰이 잦아졌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유는 단순했다. 길고양이를 위해 놔둔 사료를 야생 너구리들이 먹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너구리 가족이 이 동네 산책로와 공원에 아예 눌러앉아버렸다는 것이다.


언제부터 너구리가 서식한걸까..

그 얘길 읽고 나니, 내가 혼자만 알고 있던 비밀 같은 느낌이 조금 사라졌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밤 10시에만 열리는 작은 장면처럼 느껴졌던 일이 사실은 동네 전체의 일이었다. 뭔가 맥이 빠지기도 했다.

그래도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그때 내 눈에 들개처럼 보였던 눈빛과, 두툼한 꼬리. 그리고 내가 한 발 움직일 때마다 딱 한 발로 맞춰 움직이던 그 거리.

실물 길고양이보다 길너구리(?)가 더 귀여워 보였던 건, 아마 그냥 내 개인적인 취향인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