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서론: 리사 쿠크, 그리고 오래된 프레임의 문제
이전 글에서 나는 리사 쿠크의 자산가격·헤지펀드·AI 트레이딩 관련 발언을 따로 정리하고, 그 발언이 단기적으로 나스닥 변동성을 키우는 방식에 대해 회의감을 가졌었다.
이번 글에서 다루고 싶은 핵심은 “쿠크 개인”이 아니라, 그 발언 뒤에 깔려 있는 프레임이다.
-
인플레이션은 반드시 2%까지 낮춰야 한다.
-
실업률이 낮고 자산가격이 높으면, 통화정책은 기본적으로 너무 완화적이다.
-
따라서 2%를 넘는 물가상승률과 낮은 실업률이 이어지는 한, 금리를 동결하거나 인상하는 쪽이 더 안전하다는 식의 사고방식이다.
나는 이 프레임이
-
2%라는 숫자의 역사적 기원,
-
최근 미국 고용지표의 구성 변화,
-
AI 시대에 필립스 곡선이 갖는 한계
를 고려할 때 더 이상 설득력이 크지 않다고 본다.
1. 2% 물가목표는 얼마나 근거가 빈약한가
1-1. 뉴질랜드에서 공중에서 뽑힌 숫자
지금은 전 세계 중앙은행이 2%를 거의 종교처럼 받들고 있지만, 출발은 상당히 우연하다.
-
1980년대 후반, 뉴질랜드 재무장관 로저 더글러스가 TV 인터뷰에서
“인플레이션을 0~1% 정도로 낮추고 싶다”고 즉석에서 말한 것이 출발점이다. -
이후 중앙은행 총재였던 돈 브래시는 이 발언을 근거로 목표범위를 설계하면서, 나중에 **“거의 우연한 발언이었고, 숫자는 공중에서 그냥 뽑아 든 것이다”**라고 회고했다.
뉴질랜드는 처음에 0~2% 정도의 범위를 설정했고, 그 중앙값이 편의상 “2%”로 자리 잡았다. 이 관행이 캐나다·영국·유럽·일본·미국으로 복제되면서, 어느 순간 2%는 ‘엄밀하게 계산된 최적값’처럼 포장되기 시작했다.
1-2. 연준·BOJ의 공식 표현: 결국 “판단(judgment)”일 뿐
미 연준이 2012년 처음으로 2%를 공식 목표로 채택할 때 쓴 문장은 다음과 같다.
-
“위원회는 **2%의 물가상승률이 연준의 법정 책무에 가장 부합한다고 판단(judges)**한다.”
일본은행도 2013년 2% 목표를 도입하면서 “소비자물가지수(CPI) 기준 전년 대비 2%의 상승률을 물가안정 목표로 설정한다”고만 적고 있을 뿐, 왜 1%나 3%가 아닌지에 대한 근거는 없다.
정리하면, 2%는 어디까지나 1980~90년대 정책당국의 ‘정치적·커뮤니케이션상 편의치’가 굳어져 버린 숫자에 가깝다. 그럼에도 연준은 지금도 “인플레이션이 지속적으로 2%를 향한다는 확신이 생길 때까지는 금리를 내리기 어렵다”는 문장을 모든 성명서에 반복하고 있다.
[표 1] 2% 물가목표의 형성과정 요약
2%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이 숫자를 마치 ‘자연법칙’으로 보는 태도가 문제이다. 이 숫자를 절대선처럼 고정해 놓으면, 구조가 바뀐 뒤에도 정책은 같은 프레임에 갇히기 때문이다.
2. “고용 호조”라는 착시: 비농업고용의 대부분은 고령화·보건복지에서 나온다
2-1. 2024년 고용 증가의 3분의 1은 헬스케어
2024년 한 해 동안 미국 경제는 약 220만 개의 비농업 일자리를 새로 만들었다. 이 가운데 보건의료(health care) 부문에서만 68만 6,600개, 비중으로는 **31%**가 창출되었다.
헬스케어 내부를 보면
-
병원 일자리만 21만 5,000개,
-
가정 간호·요양·노인 돌봄 관련 서비스에서 상당한 증가가 있었다.
이는 고령화와 복지수요가 만든 구조적 일자리이지, 경기 사이클과 직접적으로 연동된 일자리가 아니다.
[표 2] 2024년 미국 비농업 고용 증가의 업종별 기여(연간, 대략)
즉, 헤드라인 고용증가의 3분의 1이 **“간호·간병·노인 돌봄”**과 관련된 영역에서 나오는 구조인데, 이 부문은 침체기에조차 꾸준히 고용이 증가해 온 대표적인 업종이다.
2-2. 월별 데이터를 봐도 패턴은 같다
대표적인 몇 개 월만 봐도 패턴이 뚜렷하다.
[표 3] 최근 주요 월별 비농업 고용 증가 구성(예시, 천 명)
각 월마다
-
전체 고용 증가는 10만~27만 명 수준인데,
-
이 중 보건의료·사회복지·정부가 차지하는 비중이 적게는 40%, 많게는 절반을 넘는다.
나머지 업종(제조, 정보, 일부 서비스)은 “변화 없음” 혹은 순감소가 반복된다.
2-3. 그래프 1: May 2024 업종별 일자리 증감
위 패턴을 단순화해서 2024년 5월 기준 업종별 일자리 증감을 그리면 다음과 같다.
이 그래프에서만 봐도
-
Health care & social assistance가 8만 3,500명으로 가장 큰 기여를 하고,
-
그 다음이 Government, Leisure & hospitality, Professional & business services,
-
나머지 수십 개 업종을 다 합친 “Other industries”가 겨우 7만 명 정도에 불과하다.
즉, “고용 호조”라는 헤드라인의 상당 부분은 사실상 고령화와 복지수요에 의해 결정되는 특정 섹터에 집중된 현상이다.
3. AI·자동화 노출 업종의 조정: 저임금·저숙련·대체가능 직군의 약화
반대로 AI·자동화 도입 속도가 빠르고, 저숙련·저임금 대체가 쉬운 업종에서는 이미 눈에 띄는 조정이 진행 중이다.
[표 4] AI/자동화 및 저숙련 대체 가능 업종의 고용 조정(요약)
이 표는 몇 가지 사실을 말해 준다.
-
임시직·사무지원·창고·제조·운송처럼 AI와 자동화의 효율성 증가에 직접 노출된 업종에서 고용이 줄거나 정체되고 있다.
-
그럼에도 전체 실업률은 4%대 초반에 머무르는데, 이는 앞서 본 것처럼 보건의료·사회복지·정부 부문이 구조적으로 자리를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
BLS가 2024년 4월~2025년 3월까지의 일자리를 나중에 91만 1천 개나 하향 수정했다는 사실은, 헤드라인 고용지표가 생각보다 훨씬 불확실하다는 점도 보여준다. 특히 레저·숙박, 전문·비즈니스, 소매, 정부에서 큰 폭의 하향조정이 있었다.
결국 현재의 노동시장은
-
고령화·복지수요가 끌어올리는 비경기성 일자리와
-
AI·자동화 도입으로 효율화·축소되는 전통적·저숙련 일자리
가 동시에 존재하는 이중 구조에 가깝다.
4. 이런 고용구조에서 ‘실업률=경기·물가 선행지표’라는 가정은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
과거 필립스 곡선이 통하던 시절에는
-
제조업·건설·전통 서비스가 경제의 대부분이었고,
-
고용이 늘면 생산이 늘고, 임금이 오르고, 수요가 올라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구조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음과 같은 변화가 겹쳐 있다.
-
고령화·보건복지·공공 일자리
-
경기와 거의 무관하게 꾸준히 늘어난다.
-
이 부문이 전체 고용증가의 40% 안팎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실업률이 낮다는 사실만으로 “수요 과열”을 말하기 어렵다.
-
-
AI·자동화와 글로벌 공급망
-
생산성은 크게 오르지만, 추가 고용 없이도 산출을 늘릴 수 있다.
-
국내 실업률보다는 글로벌 수요·원자재·공급망·정책 리스크가 물가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
-
필립스 곡선의 구조적 변화
-
1990년대 이후 각국 연구를 보면, 국내 경기와 물가 사이의 탄력(필립스 곡선 기울기)은 전반적으로 낮아졌고, 대신 글로벌 슬랙·환율·무역비용이 중요해졌다는 결과가 반복된다.
-
최근 IMF·Chicago Fed 등은 팬데믹 이후 일시적으로 곡선이 가팔라졌다고 보지만, 그 역시 공급망 붕괴·재화 수요 쏠림이라는 특수 요인이 컸다고 본다.
-
요약하면, 실업률이 4%대라고 해서 곧바로 “수요가 과열되어 인플레이션이 폭발할 것”이라고 말하기는 점점 더 어려운 환경이다.
그럼에도 리사 쿠크를 포함한 일부 FOMC 위원들은
“실업률이 낮고 자산가격이 높으니, 인플레이션이 다시 고개를 들 위험이 크다.
2% 목표에 안착하기 전까지는 금리 완화 속도를 늦춰야 한다.”
는 식의 논리를 반복한다. 문제는 이 논리의 전제(2% 목표의 절대성, 실업률-물가 간의 단순한 상관관계)가 현실과 점점 동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5. 기업이익·GDP·고용의 탈동조화: AI 시대의 새로운 조합
앞서 제시한 MRB Partners의 차트에서 보듯, 최근 몇 년간 미국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다음 세 가지가 동시에 성립하는 구간이다.
-
S&P 500 순이익 마진은 11~12% 수준으로 역사적으로 높은 구간
-
2024년 2분기 기준 S&P 500 순이익 마진은 약 12.1%로, 전년과 5년 평균(11.5~11.6%)을 웃도는 수준이다.
-
BEA 기준 기업이익(법인세 후)의 GDP 대비 비중도 2025년 2분기 기준 약 11%로, 장기 평균(7.3%)을 크게 상회한다.
-
-
실업률은 4.0~4.4% 박스권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
2024년 중반 이후 실업률은 4.0~4.3% 사이에서 박스권을 형성해 왔다.
-
-
노동소득분배율은 2000년대 이후 구조적으로 하락
-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에서 노동소득분배율은 1980년대 이후 하락세를 보여 왔으며, 자본소득의 비중이 높아졌다.
-
이는 곧
-
기업이익·자본소득은 역사적 고점,
-
실업률은 수치상 낮지만, 고용의 질·소득분배는 악화,
-
AI·자동화로 생산성은 오르지만, 그 과실이 노동으로 전달되지 않는 구조
라는 조합이다.
이 구조에서는 “실업률이 낮으니 임금-물가 스파이럴이 온다 →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고전적 필립스 곡선 논리가 현실에서 성립하기 훨씬 어렵다. 임금과 물가 사이의 고리는 느슨해지고, 이익과 자산가격이 더 큰 몫을 가져간다.
6. 그렇다면 금리동결·금리인상론의 구조적 약점은 무엇인가
지금의 FOMC 다수 의견, 그리고 쿠크가 대표하는 시각은 대략 다음 세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
인플레이션은 반드시 2%로 돌아가야 한다.
-
실업률이 4%대 초반이고 자산가격이 높은 이상, 정책은 여전히 충분히 제약적이어야 한다.
-
따라서 금리인하는 천천히, 금리인상 가능성은 열어 두어야 한다.
이 논리의 구조적 약점은 다음과 같다.
6-1. 기준점 자체가 문제다: 2%는 ‘자연법칙’이 아니다
앞서 보았듯, 2%는 정치·커뮤니케이션의 산물이지, 인구·기술·재정·글로벌 구조를 모두 반영한 최적값이 아니다.
고령화·고부채·AI CAPEX·글로벌 탈탄소와 같은 구조적 요인을 고려하면, 장기적으로는 **2~3% 정도의 완만한 물가상승이 오히려 재정·부채·임금 구조를 견딜 수 있는 “새 균형”**일 가능성도 충분하다.
그럼에도 2%를 절대선으로 고집할 경우
-
고령화·복지지출·에너지 전환 비용으로 인한 구조적 인플레이션 압력을 전부 통화정책으로만 누르려 하게 되고,
-
그 부담은 결국 실질임금과 취약계층 고용이 떠안게 된다.
6-2. 실업률이 더 이상 경기·물가의 선행지표가 아니다
이번 글에서 중심적으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다.
-
비농업 일자리 증가의 3분의 1은 헬스케어, 상당 부분은 사회복지·정부에서 나온다.
-
이 부문은 경기와 무관하게 고령화·복지제도·정책에 따라 움직이는 영역이다.
-
반대로 **AI·자동화 직접 노출 업종(임시직, 사무지원, 제조, 물류 등)**은 이미 고용이 줄거나 정체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실업률이 아직 4%대니까 노동시장은 여전히 타이트하다.
따라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계속될 것이다.”
라고 말하는 것은, 실업률이라는 지표에 내장된 구조 변화(고령화·AI·산업구조 재편)를 무시하는 것이다.
실제 경제 현장에서 느끼는 경기·고용 체감과 헤드라인 실업률이나 비농업고용 수치는 점점 더 다른 것을 말하고 있다. 이런 지표에만 기대어 금리를 동결·인상하자는 것은 현실의 거시경제를 반영하지 못하는 정책 잣대라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6-3. 필립스 곡선에 대한 집착이 만들어내는 오판 위험
연구들을 종합하면
-
1990년대 이후 필립스 곡선은 전반적으로 평평해졌고,
-
팬데믹 이후의 급등은 주로 공급망 붕괴·에너지·재화 편중 수요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나타난 일종의 비선형·일시적 현상에 가깝다.
그럼에도 일부 위원들이 “실업률 조금만 더 올리면 인플레가 훨씬 빠르게 내려갈 것”이라는 전제를 그대로 붙들고 갈 경우, 실제로는
-
이미 구조적 전환 압력에 시달리는 AI 노출 업종·저숙련 노동자에게 추가적인 실업·소득 손실을 강요하면서,
-
인플레이션은 고령화·재정·관세·에너지·주거비라는 다른 채널에서 버티는 **‘높은 고정비 구조’**가 되는 위험이 있다.
즉, 금리 인상으로는 잡히지 않는 인플레이션에 대해, 금리만 계속 만지작거리는 셈이 된다.
7. 맺으며: AI 시대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중립점”에 대한 솔직한 토론이다
정리하면, 나는 리사 쿠크 개인에 대한 호불호와 별개로, 그녀의 발언 속에 담긴
-
2% 물가목표에 대한 맹신,
-
실업률·자산가격을 중심으로 한 오래된 필립스 곡선 프레임,
-
그 결과로서의 “금리 동결 내지 재인상” 논리
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가지고 있다.
지금의 미국·세계경제는
-
고령화와 복지지출 확대,
-
AI·자동화·데이터센터·전력 인프라 CAPEX,
-
트럼프식 관세와 공급망 재편,
-
달러 기축체제와 재정·부채 구조
가 한꺼번에 겹친 새로운 레짐에 있다.
이 환경에서 과거와 같은
“실업률이 얼마니까, 인플레이션은 얼마일 것이고, 금리는 몇 퍼센트가 중립이다.”
라는 단순한 함수관계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최소한 이론적으로도, 데이터 상으로도 설득력이 약해지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
2% 물가목표를 다시 한 번 ‘정치적·역사적 산물’로서 냉정하게 검토하는 일,
-
고용지표(특히 비농업·실업률) 속에 숨은 인구·산업 구조 변화를 분해해서 보는 일,
-
AI 시대에 어떤 물가·성장·금리 조합이 “사회적으로 지속 가능한 중립점”인지에 대한 보다 솔직한 토론
이지, 단지
“아직 2%가 아니니까, 그리고 실업률이 아직 4%대니까, 금리는 여기서 더 오래 높은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
는 식의 기계적 논리 반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글은 그런 의미에서, 리사 쿠크라는 개인의 발언을 넘어 “오래된 2%·필립스 곡선 프레임이 AI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가”에 대한 회의를 정리해 본 시도이다.
어쩌면 실제 체감 물가상승률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다면, 점점 신뢰성이 떨어지는 공식 물가통계에 의존하기보다 길 가는 시민 100~200명을 붙잡고 설문조사를 해보는 편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