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에너지 전환 담론에 대한 현실적 고찰: 비용, 경쟁력, 그리고 생존
최근 공영방송의 시사 프로그램에서는 **‘기후위기 대응과 친환경 에너지 전환’**이라는 주제로 유럽 사례를 중심으로 한 절박한 메시지가 전파되었다. 정부의 강한 의지와 정책적 지원, 대기업의 협력,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통해 **기술적으로 ‘친환경 에너지 전환은 가능하다’**는 신호를 지속적으로 전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에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인 ‘비용’과 ‘산업 경쟁력’의 문제는 회피되거나 누락되어 있었다.
우리는 중국과의 제조업 경쟁 한복판에 서 있는 국가다. 중국은 이미 저임금, 낮은 에너지가격, 그리고 기술력까지 갖춘 압도적 경쟁자이며, 거기에 더해 여전히 대규모의 석탄·원자력 발전소를 공격적으로 신설하고 있다. 후쿠시마 사고를 겪은 일본조차 원전 재가동 및 신규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친환경 에너지 전환을 기다려주는 경쟁국은 없다.
에너지 구조의 비교: 중국 vs 미국
2024년 기준 IEA의 Global Energy Review를 기반으로 발전 구조를 살펴보면, 중국은 여전히 석탄 발전이 60%를 차지하며 절대적이다. 반면 미국은 **천연가스 40% 초과, 재생에너지 23%, 원자력 18%, 석탄 16%**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저렴한 자국 내 에너지원 확보를 바탕으로 제조업 리쇼어링에 속도를 붙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이후 자원민족주의적 전략이 강화되었으며, 낮은 법인세, 저에너지가격을 무기로 제조업을 다시 미국 내로 끌어들이고 있다.
이 구조적 차이는 단순한 정책의 차이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근간이 되는 에너지 비용 구조의 차이를 반영한다. 미국은 자원과 법·세제 인프라를 통해 산업 재건을 도모하는 반면, 우리는 RE100이라는 외부 압력에 대응하기 위해 비용을 기꺼이 지불하는 구조로 가고 있다.
RE100은 ‘환경 기준’이 아니라 ‘관세 구실’이다
유럽은 ‘RE100을 달성하지 않으면 탄소세를 부과하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환경적 요구가 아니라, 사실상 '관세 부과의 명분'일 뿐이다. 그들은 자국 산업의 경쟁력 상실을 은폐하기 위해 비환경국가라는 프레임을 씌워 대가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무조건적 윤리의 문제로 받아들여선 안 되며, 본질적으로 ‘비용구조에 대한 협상’으로 간주해야 한다.
변동성 높은 재생에너지: 기술적 해법은 비용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기술자들은 언제나 기술을 해법으로 제시한다. 풍력과 태양광의 변동성 문제를 ESS(에너지저장장치), 양수발전 등의 보완책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기술적으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가장 중요한 ‘비용효율성’ 면에서는 경쟁력이 없다. 문제는 기술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그것이 얼마의 비용으로 구현되고, 글로벌 경쟁 속에서 가격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느냐이다.
이러한 비용구조를 경시하고 기술 우선주의에 집착한 결과, 우리는 이미 수많은 산업에서 실패를 경험해 왔다. 태양광, 2차전지, 철강, 석유화학, 정유 산업 모두 ‘기술은 있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비용효율성에서 밀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상실했다. 비용 기반의 경쟁력을 외면하고 기술의 가능성만을 앞세우면, 결과는 늘 같았다.
에너지 전환 역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기술만을 근거로 삼아 현실의 경쟁 가격·시장·수익구조를 무시한 채 추진되는 친환경 전환은, 결국 기존 전력망의 부담을 키우고 추가적 인프라 투자라는 고비용 구조를 야기함으로써, 산업 전체의 근본적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로 귀결된다.
대한민국의 산업 구조: 수출 중심, 전기 중심
대한민국은 수출을 통해 외화를 벌고, 내수 소비를 유지하는 구조를 가진 나라다. 이 수출경쟁력은 고품질, 저비용 전력이라는 기반 위에 구축되어 있다. 그러나 친환경에너지 전환이라는 담론이 이 비용 구조를 무너뜨릴 가능성이 높다. 한 번 경쟁력을 잃으면, 시장점유율은 순식간에 빼앗기고, 잃어버린 원가우위는 회복이 거의 불가능해진다. 제조업의 경쟁력은 마진이 아닌 단가의 싸움이다.
친환경 담론의 한계: 인간 본성과 경제 현실의 괴리
친환경 전환, 기후위기 대응은 도덕적 정당성을 바탕으로 움직인다. 그러나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기적이고, 생존에 따라 동기부여를 받는다. 즉, 자기 욕망과 생존이 해결되지 않으면 이타적 선택은 지속되기 어렵다. 이는 사회주의 체제가 지속가능하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며, 친환경 전환 역시 같은 맥락에서 본질적인 한계를 가진다.
지금 세계는 저성장, 보호무역, 자원민족주의 시대로 회귀하고 있으며, 대한민국은 글로벌 자산/GDP 비중 1.5%밖에 되지 않는 소규모 개방경제국이다. 이런 우리가 독자적으로 기후정의와 환경윤리를 부르짖는 것은 현실과의 괴리다.
수도권 집중화는 불가피한 생존 전략이며, 편협한 인식으로는 해답이 없다
시사 프로그램에서는 수도권 전력 집중과 지방소멸 문제도 함께 다루었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정책 개입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저출산·고령화라는 구조적 추세 속에서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명분은 점점 현실과 멀어지고 있으며, 집중화는 오히려 생존을 위한 필연적 선택이 되고 있다. AI, 반도체, 인재 전쟁이 본격화되는 시대에 지방에 자원을 분산하는 것은 기회비용이 너무 크고, 경쟁력을 스스로 포기하는 길이 될 수 있다. 한정된 재정과 시간 속에서 선택과 집중은 불가피한 전략이며, 네트워크 효과가 가능한 핵심 거점에 인재와 인프라를 집중하는 것이 오히려 국가 생존의 현실적 경로이다.
전체 그림을 보지 못한 채, 편협한 시각으로만 현실을 바라보며, 자신의 이해범위를 벗어나는 구조적 변화에 대해 불평만 해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정책은 누군가의 정서적 만족을 채우는 수단이 아니라, 구조적 생존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현실의 도구여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변화해가는 글로벌 환경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그 흐름에 기민하게 적응해 나가는 자세이다.
국가 전략은 이상과 정서가 아닌, 비용과 현실 위에 세워져야 한다. 이는 에너지 정책뿐 아니라, 지역 전략, 인재 정책 전반에 걸쳐 새롭게 설정되어야 할 판단 기준이다.
결론: 냉철한 현실감각과 결단력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국가 권력은 연민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과 생존을 위한 수단이다. 산업정책은 국민 개개인의 안녕을 고려하되, 전체 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과 경쟁력 유지가 최우선 가치가 되어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기후위기라는 당위적 담론, 기술 낙관주의, 글로벌 기준이라는 형식주의에 사로잡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단지 방향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생존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런 흐름에서 냉철한 현실감각, 비용기반의 판단력, 그리고 국제질서 속에서의 교묘한 협상능력이 절실하다. 우리는 여기서 **영국의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1980년대 영국은 공공부문 비효율, 강성 노조, 만성적인 고비용 구조로 인해 산업경쟁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이에 대해 대처는 과감히 공기업 민영화, 에너지산업 구조개편, 복지축소 등 시장 중심의 구조개혁을 단행했다. 그 과정에서 노동계 붕괴, 지역 공동화, 빈부격차 심화, 양극화 확대 등 심각한 사회적 갈등과 후유증이 뒤따랐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영국은 이 과정을 통해 침체된 경제를 회복하고, 국제 경쟁력을 되찾았다. 산업의 본질적 병폐를 외면하지 않고 뿌리부터 개편하는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대처는 당장의 인기나 여론이 아닌, 미래의 국가 생존 가능성에 방점을 찍은 리더였다.
지금 대한민국에도 이와 같은 결단력이 요구된다. 우리는 값싼 에너지 기반의 산업경쟁력을 유지하지 못하면, AI 시대에 그 어떤 기술도 빛을 발할 수 없다. 기술은 에너지와 인프라 위에 꽃피는 것이며, 없는 기반 위에 기술이 먼저 출현하는 법은 없다.
AI 시대가 진전될수록 자본과 노동의 상대적 가치는 점차 약화되고, 에너지를 중심으로 한 ‘토지·인프라’의 가치만 남게 될 것이다. AI = 에너지인 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생산요소는 값싼 전력이며, 이는 곧 국가 경쟁력 그 자체가 된다.
대한민국이 생존하고자 한다면, 이상적 구호보다 현실 기반의 비용구조를 우선시하고, 필요하다면 고통을 감수하는 방향으로 구조를 재편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당위론자가 아니라, 마거릿 대처처럼 냉철하게 구조를 읽고 단호하게 개입할 수 있는 리더십이다.
지금은 선택의 순간이며, 산업의 기초 체력을 다시 정비하지 않으면 다음 세대에는 되돌릴 수 없는 격차가 벌어질 것이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좌경화된 산업정책은 산업의 본질인 ‘비용효율성과 경쟁력’이라는 기반 자체를 무너뜨린다. 이상주의적 당위와 정책적 선의만으로는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으며, 산업 기반의 퇴보는 결국 고용, 성장, 재정, 안보까지 모든 분야로 파급되어 돌이킬 수 없는 경기침체로 이어질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