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감상으로는 몇 년이 흐른 듯하지만,
놀랍게도 트럼프가 재집권한 지 이제 막 1년이 지나가고 있다.
앞으로 세계 질서를 거세게 뒤흔들 트럼프라는 인물을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해보고자,
이번 글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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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왜 세계를 ‘협상 테이블’로 보는가
가족사에서 부동산, 상장사, 통상전쟁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문법
도널드 트럼프를 이해할 때
가장 자주 놓치는 것은 그의 정치가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트럼프의 언어와 행동은
백악관에 들어간 뒤에 새로 생긴 것이 아니다.
그의 가족사, 사업 방식, 돈을 다루는 태도,
세상을 보는 감각이 오래 누적된 결과다.
그는 세계를
조율과 합의의 공간으로 보기보다,
거래와 압박의 공간으로 보는 인물에 가깝다.
이 인식은
가족의 부가 형성된 방식에서 시작해,
부동산 사업, 상장사 운영,
그리고 대통령으로서의 외교·통상 스타일로 이어진다.
1. 가족사: 트럼프 가문의 시작은 ‘생산’보다 ‘기회 포착’에 있었다
트럼프의 조부 프리드리히 트럼프는
독일 칼슈타트 출신이다.
그는 전쟁을 피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와 처음에는
이발사로 일했다.
그러나 그가 본격적으로 돈을 번 곳은
도시의 중심이 아니라
골드러시가 벌어지던 변경 지역이었다.
그는 금을 직접 캐지 않았다.
금을 캐러 몰려든 사람들을 상대로
숙박, 음식, 술, 유흥을 제공하는 사업을 벌였다.
이 점은 상징적이다.
트럼프 가문의 첫 자본은
무언가를 오래 만들어 쌓은 자본이라기보다,
사람과 욕망이 몰리는 현장을 빠르게 현금화한 자본이었다.
여기에는 이미
트럼프 가문 특유의 감각이 들어 있다.
직접 생산에 뛰어들기보다,
돈이 가장 빨리 모이는 지점을 선점하는 감각이다.
이후 그 자본은 뉴욕으로 이어졌고,
그 기반 위에서
다음 세대의 부동산 사업이 시작됐다.
참고자료:
History - Trump’s Grandparents
Maclean’s - Inside the Wild Canadian Past of the Trump Family
2. 부동산 사업 방식: 프레드 트럼프는 ‘싸게 짓고 크게 키우는’ 모델을 만들었다
트럼프의 아버지 프레드 트럼프는
뉴욕의 중산층 주택 시장에서
가문의 부를 본격적으로 키운 인물이다.
그의 방식은 화려하지 않았다.
원가는 낮추고,
같은 모델을 반복하고,
규모는 최대한 키우는 방식이었다.
무엇을 창조적으로 짓느냐보다
어떻게 싸게 만들고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확보하느냐가 중요했다.
이 방식은
건설업의 기술이라기보다
구조 설계와 마진 관리에 가까웠다.
도널드 트럼프는
바로 이 환경에서 자랐다.
집안의 사업 감각은
창의성보다 우위 확보,
품질보다 협상력,
관계보다 수익 회수에 가까웠다.
가정 내부의 문화도 비슷했다.
트럼프는 어린 시절부터
경쟁과 승부의 감각 속에서 자랐고,
세상을 서열이 갈리는 공간으로 배우기 쉬운 환경에 있었다.
이 배경은
훗날 그가
정치에서도 협업보다 우위,
조정보다 승패를 먼저 말하게 되는
기초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참고자료:
Britannica - Fred Trump
Britannica - How did Fred Trump influence Donald Trump?
3. 상장사에서 드러난 구조: 회사보다 ‘트럼프 개인’이 더 강하게 남았다
이 가족적 사업 감각은
트럼프가 상장사를 운영할 때도 드러났다.
대표적 사례가
1995년 상장한
Trump Hotels & Casino Resorts다.
이 회사는
트럼프라는 이름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장기적으로 주주에게 좋은 회사를 만들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워런 버핏은
2016년 이 회사를 거론하며,
트럼프가 대중에게 투자해 달라고 했던 거의 유일한 사례가
결과적으로 투자자에게 매우 나쁜 성과를 안겼다고 비판했다.
버핏의 문제의식은 단순했다.
트럼프는 늘 자신의 부와 명성을 키웠지만,
공개주주에게 복리형 성과를 남기는 경영자와는 거리가 멀었다는 것이다.
실제 공시를 보면
회사는 과도한 부채 구조를 안고 있었고,
트럼프 개인은 급여와 각종 대가를 가져가는 구조에 있었다.
이 대목에서 드러나는 것은
상장회사를 성장시키는 경영자형 자본주의보다,
자기 이름과 지위를 활용해
먼저 몫을 확보하는 구조다.
즉 트럼프는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이라기보다,
회사라는 무대 위에서
자신의 브랜드 가치를 극대화하는 사람처럼 움직였다.
이 구조는
그의 사업 철학을 잘 보여준다.
모두가 함께 강해지는 구조보다
자기 자신이 중심이 되는 구조를 먼저 설계하는 방식이다.
참고자료:
Time - Warren Buffett Criticizes Trump’s Business Record
SEC 10-K - Trump Hotels & Casino Resorts
Forbes - Trump Had a Public Company Before. It Was a Disaster
4. 인터뷰에 드러난 세계관: 세상은 조화의 공간이 아니라 시험의 공간이다
트럼프의 인터뷰를 읽어보면
그의 세계관은 놀랄 만큼 일관적이다.
그는 오래전부터
자신을 꽤 냉소적인 사람으로 설명해 왔다.
상황을 볼 때도
낙관보다 최악의 경우부터 계산하는 태도를 드러냈다.
그는 사람을 쉽게 믿지 않는다고 말했고,
약함은 문제를 만든다는 식의 인식도 반복했다.
이 발언들을 종합하면
트럼프가 세상을
기본적으로 선하고 조정 가능한 공간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 드러난다.
그의 눈에 세계는
먼저 신뢰하는 곳이 아니라
먼저 경계하고 시험하는 곳이다.
이 점은 사업관에서도 확인된다.
그는 사회 전체의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보다,
자기 위치에서 최대 성과를 뽑아내는 역할을 더 중시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질서를 도덕적으로 개선하는 일이 아니라,
불리하지 않은 위치를 확보하고
거기서 최대 이익을 뽑아내는 일이다.
그래서 그의 언어에는
자주 힘, 거래, 응징, 레버리지 같은 단어가 먼저 등장한다.
그것은 단순한 수사 습관이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에 가깝다.
5. 대통령이 된 뒤에도 문법은 같았다: 국가도 결국 더 큰 규모의 거래 대상이 됐다
이런 사고방식은
대통령이 된 뒤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트럼프의 외교와 통상은
전통적 의미의 제도 운영보다
압박을 통해 조건을 다시 쓰는 방식에 가깝다.
그에게 관세는
경제이론의 정교한 도구이기 전에
협상력을 높이는 압박 수단이다.
상대가 버티면 더 올리고,
양보하면 일부 낮춘다.
이 방식은 국가 간 질서를 다루는 접근이라기보다,
거래 상대를 몰아붙이는 사업가의 협상 방식에 더 가깝다.
트럼프는 동맹도
가치 공동체보다
비용과 대가의 문제로 다루는 경향이 강했다.
무역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유무역의 안정성보다
미국이 더 많은 양보를 얻어낼 수 있는 구조에 관심을 둔다.
즉 그의 외교·통상 스타일은
국제질서를 관리하는 방식이 아니라,
국제질서를 계속 다시 협상하는 방식이다.
사업가 시절에는
부채, 브랜드, 언론 노출이 무기였다면,
대통령이 된 뒤에는
관세, 안보, 동맹비용, 시장 불안이 같은 역할을 한다.
크기만 커졌을 뿐
문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참고자료:
White House Fact Sheet
CFR - Tracking Trump’s Trade Deals
6. 결론: 트럼프는 세계를 운영하기보다, 끝없이 다시 협상하려 한다
트럼프를 하나의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그는 세계를 조율하는 정치가라기보다,
세계를 거대한 협상 테이블로 보는 인물이다.
그의 조부는
욕망이 몰리는 곳에서 돈을 벌었다.
그의 아버지는
원가를 낮추고 규모를 키우며 부를 축적했다.
트럼프는
그 위에 브랜드, 미디어, 금융 구조를 얹었다.
그 결과 그는
사업을 할 때도,
언론을 다룰 때도,
정치를 할 때도
비슷한 문법을 반복했다.
먼저 긴장을 만들고,
상대를 시험하고,
판을 흔든 뒤,
자기에게 유리한 조건을 다시 쓰려 한다.
그래서 트럼프의 관세전쟁과 외교전은
갑자기 튀어나온 정책 스타일이 아니다.
그것은 오랫동안 형성된
가족적 사업 감각과 세계관의 연장선에 있다.
트럼프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의 발언 몇 개를 해석하는 일이 아니다.
그가 평생 반복해 온
이 오래된 문법을 읽어내는 일에 가깝다.
#글을 마치며
예전에 금융권 유대인들에 대해 유난한 선망을 드러내던 상사가 한 명 있었다.
그는 해외 운용사 재직시절의 경험을 꺼내며, 유대인계 사람들이 얼마나 빠르고 집요하게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했는지 여러 사례를 곁들여 이야기하곤 했다.
그 상사가 내게 특별히 잘해준 것도, 유독 모질게 대한 것도 없었다.
다만 어느 날 단체 회식 자리에 늦게 도착했을 때, 유독 그 사람의 테이블만 비어 있었다.
누구 하나 노골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모두가 그 자리를 피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결국 나는 자리가 없어 그 상사와 같은 테이블에 앉았고,
그날 사석에서 처음 알게 됐다. 왜 사람들이 그를 멀리하는지를.
훗날 그는 탁월한 실적으로 두둑한 성과급을 챙긴 뒤, 미련 없이 회사를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트럼프 일가를 하나씩 들여다보며 느꼈던 인상은 묘하게도 그 상사와 마주 앉아 있던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겉으로는 능력과 성취, 냉정한 계산이 두드러지지만,
그 이면에는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특유의 감각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그날 느꼈던 불편함 역시 바로 그런 결에서 비롯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