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권 첨단산업 국민보고회를 듣다가 '구태 정치' 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문뜩 소름끼쳤던 여러 사례들이 생각나 관련 내용을 글로 남겨본다.
| https://www.youtube.com/watch?v=fsV_MCUZXnk |
| [그래픽] 충청권 첨단산업 투자계획 | 연합뉴스 |
3대 메가 프로젝트, 구태정치의 병목을 넘어설 수 있을까
명분은 크다. 그러나 현실은 더 복잡하다
정부가 추진하는 3대 메가 프로젝트의 명분은 분명하다. 지역균형발전, 첨단산업 육성,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 전력·용수·물류 인프라 확충은 국가적으로 필요한 과제다. 수도권에 집중된 산업 기반을 호남·충청 등 서남권으로 확장하고, 민간 대기업의 대규모 투자를 유도하겠다는 방향 자체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대형 국책사업은 발표 순간보다 실제 집행 과정에서 더 많은 문제가 드러난다. 토지를 어디에 배치할 것인지, 인허가는 누가 쥐고 있는지, 환경·교통·재해영향평가는 어떤 업체가 맡는지, 산단 조성 하도급은 누구에게 돌아가는지, 전력과 용수 인프라는 어느 지역에 먼저 배정되는지에 따라 수많은 이해관계가 갈린다.
그래서 이번 프로젝트를 단순히 투자 규모와 정책 명분만으로 바라보기는 어렵다. 핵심 질문은 따로 있다. 현 정권은 과연 구태정치, 지역 이권, 행정력 부패라는 오래된 병목을 해소하고 3대 메가 프로젝트를 계획대로 빠르게 추진할 수 있을까.
첫 번째 병목: 환경평가와 인허가 권한
예전 PO*** 임원분께 들었던 사례가 오래 기억에 남아 있다. 지방에서 사업을 추진하던 중 환경평가 승인이 필요한 단계가 있었는데, 담당 지방직 공무원이 사실상 특정 감리 회사를 지정했다는 이야기였다. 해당 회사를 통해 감리를 받아야 절차가 원활히 진행되고, 그 과정에서 후한 평가를 조건으로 별도의 금전 요구가 있었다고 한다.
문제는 요구에 응하지 않았을 때였다. 환경평가는 겉으로는 제도와 기준이 존재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보완 요구, 추가 조사, 재검토, 협의 지연이라는 방식으로 얼마든지 사업을 늦출 수 있다. 대규모 개발사업에서 시간은 곧 비용이다. 인허가가 지연될수록 금융비용은 누적되고, 사업성은 훼손되며, 결국 프로젝트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런 이야기는 한두 번 들은 것이 아니다. 여러 기업 탐방과 주변 지인들의 경험담을 통해, 중앙 행정력이 촘촘히 닿지 않는 지방일수록 특정 인허가와 지역 이권이 소수의 행정 담당자나 지역 네트워크에 집중되는 사례를 반복적으로 접해왔다. 모든 지방 행정을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대형 개발사업에서 인허가 권한이 이권화될 수 있다는 의심은 결코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
(특히 환경평가부분에서 인허가권은 거의 무적인듯)
두 번째 병목: 토지 선점과 정보 접근권
대규모 프로젝트에서 가장 먼저 움직이는 것은 언제나 토지다. 산업단지, 데이터센터, 반도체 패키징 공장, 변전소, 송전선로, 공업용수관로, 폐수처리장, 진입도로가 들어설 후보지는 공식 발표 전부터 극소수 관계자들이 먼저 알 가능성이 있다.
이 정보가 특정 지역 네트워크, 차명 법인, 가족, 지인, 시행사, 토지 브로커에게 흘러가면 구조는 단순해진다. 정보에 먼저 접근한 사람은 땅을 사고, 뒤늦게 공공부문과 사업주체는 그 땅을 더 비싼 가격에 사들이게 된다.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명분 아래 시작된 사업이 실제로는 일부 정보 접근자의 사적 차익 실현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는 것이다.
이 문제는 본사업보다 주변부에서 더 자주 발생한다. 공장 자체보다 진입도로, 배후 주거지, 용수관로, 송전망, 물류단지, 폐수처리시설 주변 토지가 더 민감할 수 있다. 핵심은 공장 부지가 아니라, 공장이 들어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병목 부지다.
세 번째 병목: 알박기와 소수 지분자의 협상력
부동산 개발 시장에서 가장 전형적인 병목은 holdout problem, 즉 소수 지분자가 전체 프로젝트의 시간가치를 인질로 잡는 구조다. 표현은 알박기, 지분쪼개기, 동의율 장사, 보상가 프리미엄, 민원 지연 등으로 다르게 나타나지만 본질은 같다.
토지 자체의 가치보다 사업을 지연시킬 수 있는 권리의 가치가 더 커지는 순간, 소수 권리자는 전체 사업의 금융비용을 협상력으로 전환할 수 있다. 시행사와 건설사는 PF 이자, 브릿지론 만기, 공사비 상승, 인허가 재신청, 분양 일정 지연을 매일 부담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손실이 커지기 때문에 결국 정상 시세보다 높은 가격을 주고라도 병목 부지를 매입하려는 유인이 생긴다.
이 구조는 산업단지와 인프라 프로젝트에서도 그대로 반복될 수 있다. 변전소 부지, 송전선로 경유지, 용수관로 통과지, 폐수처리장 예정지, 도로 연결부 중 어느 하나라도 막히면 전체 일정이 흔들린다. 소수 지분자가 전체 프로젝트의 시간을 가격화하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순간, 공공성과 민간투자의 명분은 뒤로 밀리고 협상력 싸움이 전면에 등장한다.
| https://www.khan.co.kr/article/202312221124001 |
네 번째 병목: 도심 재개발 비용 상승과 금융비용의 누적
서울 도심 재개발·재건축의 분양가 상승도 같은 구조로 이해할 수 있다. 이를 단순히 공사비 상승 때문으로만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물론 최근 공사비가 크게 오른 것은 사실이지만, 전체 분양가를 분해해보면 순수 공사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생각보다 절대적이지 않다. 오히려 도심 정비사업에서는 토지·권리 확보 지연, 인허가 지연, 금융비용 누적이 순수 공사비보다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서울 도심 재건축 기준으로 실제 분양가를 아주 러프하게 나눠보면 대략 다음과 같은 구성이 흔하다.
택지·권리가(조합원 지분 포함): 45~55%
순수 공사비(하드 코스트): 20~30%
설계·인허가·분양·각종 공공기여: 10% 안팎
금융비용 + 시행·시공 이익: 10~20%
결국 새 아파트 분양가의 상당 부분은 콘크리트와 철근 값이 아니라, 도심 토지의 권리값, 시간 지연 비용, 금융비용, 인허가·공공기여 비용으로 구성된다.
특히 도심 정비사업은 이해관계가 매우 복잡하다. 기존 토지주, 상가, 종교시설, 현금청산자, 세입자, 영업권자가 얽혀 있고, 일부 권리자가 버티거나 민원이 반복되거나 인허가가 지연되면 사업은 쉽게 멈춘다. 그 사이 브릿지론과 PF 이자는 계속 쌓이고, 착공 시점이 늦어질수록 공사비는 다시 재산정된다. 이 과정에서 조합원 분담금은 늘어나고, 결국 일반분양가도 함께 올라간다.
따라서 서울 도심 아파트 분양가가 천정부지로 오르는 이유는 단순히 건설사가 높은 마진을 요구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토지 확보 지연 → 인허가 지연 → 금융비용 누적 → 공사비 재산정 → 조합원 분담금 증가 → 일반분양가 상승이라는 연쇄 구조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모든 참여자의 비용은 늘어나지만, 역설적으로 병목 지점을 쥔 일부 이해관계자의 협상력은 더 강해진다.
다섯 번째 병목: 행정도시 주변의 접대 인프라
행정도시 주변에 유흥가와 접대 공간이 밀집해 있다는 사실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행정권력이 모이는 곳에는 인허가, 개발계획, 예산 배정, 용역 발주, 하도급 배분에 대한 이해관계가 집중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비공식 접촉과 로비 수요도 따라붙는다.
물론 과천처럼 상대적으로 청정한 주거·교육 환경을 유지해온 예외도 있다. 다만 과천에 대해서도 주거·교육 인프라는 내부에 집중시키고, 생활환경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시설은 외곽으로 밀어냈다는 여러 속설이 존재한다. 확인된 제도사라기보다 지역사회에서 회자되는 이야기이지만, 이런 이야기가 반복된다는 사실 자체가 행정권력과 공간 배치에 대한 불신을 보여준다.
과천을 제외한 상당수 행정도시 주변에는 왜 유독 유흥가와 접대 공간이 많았을까. 단순한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행정권력과 인허가, 개발 이권, 로비 수요가 맞물린 결과였을까. 과거의 여러 사례를 떠올리다 보면, 행정도시 주변의 유흥가는 단순한 상권이 아니라 이권 쟁탈과 비공식 로비가 오가던 주변부 인프라였던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여섯 번째 병목: 본사업보다 주변부에서 커지는 이권
대형 국책사업의 이권은 반드시 본사업에서만 발생하지 않는다. 오히려 실제로는 주변부에서 더 은밀하고 넓게 퍼질 가능성이 높다.
대표적인 영역은 토지 선점, 인허가 자문, 환경·교통·재해영향평가 용역, 산단 조성 하도급, 보상비 산정, 전력·용수 인프라 배정이다. 공장 하나를 짓기 위해서는 도로, 변전소, 송전선로, 공업용수, 폐수처리장, 물류시설, 배후 주거지, 환경평가가 따라붙는다. 그리고 이 각각의 절차가 새로운 이권의 접점이 된다.
기업 입장에서는 본업 투자를 빠르게 진행하고 싶어도, 지역 행정과 인허가, 토지 보상, 민원, 용역 구조에 발목이 잡힐 수 있다. 정부가 아무리 큰 그림을 제시해도 현장에서 절차를 쥔 사람이 시간을 지연시키면 프로젝트는 늦어진다. 대규모 투자의 병목은 자본이 아니라 행정과 토지, 그리고 지역 이권 네트워크일 수 있다.
여러 사례의 공통점: 정보를 쥔 사람, 시간을 쥔 사람, 절차를 쥔 사람
환경평가 감리 사례, 토지 선점, 알박기와 지분쪼개기, 서울 도심 재개발 비용 상승, 행정도시 주변 접대 인프라, 산단 조성 하도급 문제는 서로 다른 사례처럼 보인다. 그러나 공통점은 분명하다.
첫째, 정보를 먼저 가진 사람이 이익을 가져간다. 개발 예정지, 인프라 노선, 산업단지 후보지, 용역 발주 정보를 먼저 아는 사람은 시장보다 앞서 움직일 수 있다.
둘째, 시간을 지연시킬 수 있는 사람이 협상력을 가진다. 알박기 토지주, 잔여 지분자, 민원 제기자, 인허가 담당자, 평가 절차를 쥔 사람은 전체 프로젝트의 시간비용을 자신의 가격으로 바꿀 수 있다.
셋째, 절차를 통제하는 사람이 이권을 배분한다. 환경평가, 교통영향평가, 재해영향평가, 보상비 산정, 하도급 선정, 전력·용수 배정은 모두 형식상 제도 절차이지만, 운영 방식에 따라 특정 이해관계자의 수익 창구가 될 수 있다.
넷째, 비용은 결국 사회 전체로 전가된다. 사업이 지연되면 기업은 투자비와 금융비용을 더 부담하고, 정부는 세금을 더 투입하며, 주민은 보상 갈등과 생활 불편을 겪고, 최종 소비자와 입주자는 더 높은 가격을 떠안게 된다.
결론: 자신감보다 필요한 것은 현실을 직시하는 행정력이다
결국 문제는 특정 정권 하나의 선악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대형 개발사업은 늘 명분으로는 지역균형발전과 산업투자를 내세웠지만, 실제 집행 과정에서는 정보에 먼저 접근한 사람, 인허가를 쥔 사람, 평가 절차를 통제하는 사람, 토지를 선점한 사람, 용역과 하도급을 배분받는 사람이 각자의 방식으로 이익을 가져가는 구조를 반복해왔다.
이번 3대 메가 프로젝트의 성패도 투자 발표 규모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진짜 관건은 정부가 이 오래된 구조를 끊어낼 수 있느냐다. 토지 선매입과 차명 거래를 막을 수 있는지, 환경·교통·재해영향평가를 투명하게 운영할 수 있는지, 산단 조성 하도급과 보상비 산정을 공정하게 관리할 수 있는지, 전력·용수 인프라 배정 과정에서 특정 지역 네트워크의 사익 추구를 차단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지난 1년간 현 정권을 바라보며 들었던 생각은 하나였다. 자신감은 지나치게 넘치지만, 복잡하게 얽힌 현실의 이해관계를 충분히 직시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라는 점이다. 정책은 방향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현장은 토지, 인허가, 금융비용, 민원, 행정 절차, 지역 이권, 정치적 이해관계가 겹겹이 얽혀 있다. 이를 정교하게 풀어내지 못한 채 처음 정한 하나의 방향만 고집스럽게 밀어붙이면, 명분이 아무리 좋아도 결과는 왜곡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부동산정책이었다. 시장의 복잡한 수요와 공급, 금융, 심리, 지역별 이해관계를 충분히 읽지 못한 채 정책적 확신만 앞세우면, 의도와 다른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이번 서남권 중심의 3대 메가 프로젝트 역시 마찬가지다. 겉으로는 국가 대도약과 지역균형발전의 이름을 달고 있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토지 이권, 인허가 권한, 환경평가, 하도급, 보상비, 전력·용수 배정이라는 현실의 병목이 기다리고 있다.
따라서 이번 프로젝트를 너무 쉽게 봐서는 안 된다. 여러 이권과 이해관계가 크게 맞물린 사업을 단순한 행정 명령과 정치적 자신감만으로 빠르게 밀어붙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자체가 가장 큰 리스크가 될 수 있다. 3대 메가 프로젝트의 진짜 시험대는 발표장이 아니라 현장이고, 구호가 아니라 집행이며, 자신감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는 행정력이다.
정부가 이 문제를 통제하지 못한다면, 계획표 위에서는 빠르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실제 현장에서는 끊임없는 지연과 비용 상승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 명분은 국가 대도약이지만, 집행 과정이 과거의 구태정치와 개발 이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 비용은 결국 기업, 세금, 지역 주민, 그리고 미래 소비자에게 전가될 것이다.
현 정권은 과연 구태정치와 지역 이권 구조를 해소하고, 3대 메가 프로젝트를 계획대로 빠르게 추진할 수 있을까? 산업투자와 지역균형발전의 필요성은 분명하다. 그러나 명분이 클수록, 그 안에 숨어드는 이권의 유혹도 커진다. 현실을 과소평가한 자신감은 추진력이 아니라 오판이 될 수 있다. 이번 프로젝트를 낙관만으로 바라보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글을 마치며
한 경제학자가 남긴 말로 이 글을 마무리해보고 싶다.
밀턴 프리드먼은 돈을 쓰는 방식에 따라 효율성이 달라진다고 보았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돈을 쓸 때는 가장 신중하고 효율적으로 배분되지만, 타인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돈을 쓸 때는 비용에 대한 책임도, 결과에 대한 절박함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정부 주도의 대규모 인프라 투자 역시 이 질문에서 자유롭지 않다. 명분은 지역균형발전과 국가 산업 경쟁력 강화일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집행 과정에서 타인의 돈, 즉 세금과 공공재원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쓰일 수 있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다. 특히 토지, 인허가, 환경평가, 하도급, 보상비, 전력·용수 배정처럼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힌 사업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아직 확신이 없다. 이번 3대 메가 프로젝트가 정말 국가 전체의 생산성을 높이는 투자로 남을지, 아니면 또다시 구태정치와 지역 이권, 행정력 부패가 뒤엉킨 비효율적 개발사업으로 흘러갈지는 결국 집행 과정에서 판가름 날 것이다. 명분이 아무리 크더라도, 타인의 돈을 타인의 이익을 위해 쓰는 구조에서는 언제나 감시와 의심이 필요하다.
아직도 대한민국 정치판에 믿음이 있는 사람이 몇이나 남아있을까 싶으며,
고양이에게 생선가계를 맡긴 격이되지 않길 바랄뿐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