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28일 일요일

브루넬레스키

로마, 피렌체, 베니스의 미술관과 박물관, 문화유적지를 돌아보며 만난 여러 르네상스 천재들 중,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인물은 브루넬레스키였다.

특히 여행 중 바라본 피렌체 대성당의 야경은 그의 업적을 더욱 또렷하게 떠올리게 했고, 관련된 여러 일화는 그중에서도 가장 흥미롭게 기억되었다.


피렌체 거리 야경

이번 글에서는 브루넬레스키의 일화와 그로부터 내가 느끼고 생각한 점들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르네상스 시대


브루넬레스키의 등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르네상스라는 시대적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르네상스는 흔히 천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출현한 시대로 불린다고 한다. 

특히 피렌체에서는 수많은 천재들이 한꺼번에 등장했는데, 그 중심에는 천재를 사랑하고 적극적으로 후원한 메디치 가문이 있었다. 메디치 가문은 단순히 금전적 지원에 그치지 않고, 때로는 천재들을 양자로 받아들여 보호하며, 그들의 창작 활동과 연구가 지속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뒷받침했다.


1. 피렌체가 르네상스의 중심지가 된 배경

  • 경제적 기반: 피렌체는 유럽 금융의 중심지였으며, 메디치 가문을 비롯한 은행가·상인 계층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이들은 교회, 공공건물, 예술 후원에 투자하며 문화적 황금기를 열었다.

  • 정치적 구조: 공화정적 성격이 강했던 피렌체는 시민 참여가 활발했고, 예술·과학 후원이 곧 도시의 명예와 직결되었다.

  • 지적 토양: 고대 그리스·로마의 고전을 재발견하고, **인문주의(Humanism)**가 학문·예술·정치 전반의 사상적 기초를 제공했다.


2. 한 시대에 몰려 나온 피렌체의 인재들

  • 건축: 필리포 브루넬레스키 (1377~1446) – 피렌체 대성당 돔을 설계해 르네상스 건축의 출발점을 열었다.

  • 조각: 도나텔로 (1386~1466) – 고전적 비례와 사실성을 부활시킨 조각가.

  • 회화: 산드로 보티첼리 (1445~1510) – 「비너스의 탄생」, 「프리마베라」 등 르네상스 미학을 대표하는 화가.

  • 예술·과학 융합: 레오나르도 다 빈치 (1452~1519) – 화가이자 발명가, 과학자로서 르네상스적 ‘호모 유니베르살리스’의 전형.

  • 조각·건축: 미켈란젤로 (1475~1564) – 「다비드상」과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로 절정의 예술성을 구현.

  • 정치·사상: 니콜로 마키아벨리 (1469~1527) – 「군주론」을 통해 근대 정치사상의 기반을 마련.


3. 집중적 인재 배출의 의미

피렌체 르네상스는 단순히 개인 천재들의 집합이 아니라, 사회 구조적 조건과 후원 시스템이 결합해 만들어낸 역사적 현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동시대에 다수의 천재가 한 도시에서 활동한 사례는 세계사적으로도 극히 드문 현상으로 평가된다.



브루넬레스키 (1377~1446년)

브루넬레스키는 르네상스 건축의 출발점이라 불리는 피렌체 대성당 돔을 설계한 인물이다. 그와 관련된 일화는 역사적으로 검증된 사실만큼이나 상징적인 전설도 많지만, 그 속에는 우리가 오늘날에도 배울 수 있는 교훈이 담겨 있다.

당시 피렌체는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 중 하나였고, 메디치 가문을 비롯한 금융·상업 엘리트들은 도시의 위상을 상징할 세계 최대 규모의 성당을 원했다. 성당 설계자 아르놀포 디 캄비오(Arnolfo di Cambio)는 직경 45m가 넘는 돔을 계획했지만, 당시 기술로는 실제로 올리는 방법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렌체인들은 1296년에 성당을 짓기 시작했다. **“언젠가 천재가 나타나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성당은 수 세기 동안 부분적으로 공사가 이어졌고, 중앙의 거대한 공간은 돔을 올리기 위해 비워둔 채 남아 있었다.

그렇게 수십 년이 흐른 뒤, 마침내 브루넬레스키라는 르네상스의 천재 건축가가 등장해 그 마지막 퍼즐을 완성했다.

뒤쪽 건물 햇볕이 비추는 피렌체 대성당 돔


피렌체 대성당



브루넬레스키의 준비

브루넬레스키는 원래 조각가였으나, 이후 수학·기계·건축에 정통한 인물로 성장했다. 1402년경 조각가 도나텔로와 함께 로마를 여행하며 고대 건축 유적 연구에 몰두했고, 특히 기원후 2세기 건설된 판테온 신전의 돔 구조를 집중적으로 관찰했다.

그는 매일 판테온 앞에서 로마인들이 어떻게 직경 43m의 거대한 돔을 세울 수 있었는지를 고민하며, 건축 비례, 석재 사용법, 콘크리트 기술 등을 메모와 스케치로 남겼다. 그 결과 귀환 후에는 성당 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공법(이중 돔, 벽돌의 물고기뼈 패턴, 무비계 축조법)**을 머릿속에 정립하게 된다.

엄청난 인파에 밀려 입장권이 Sold out 된 판테온 신전에 못들어간게 아쉽..


무비계 축조법 형상화(?)



공모전과 계란 일화

1418년, 피렌체 시는 대성당 돔 완성을 위한 공모전을 열었다. 브루넬레스키는 자신이 수년간 연구해온 설계를 실현할 기회로 보고 참가했다. 하지만 그는 다른 경쟁자들과 달리 설계 도면을 제출하지 않았다. 아이디어를 공개하면 누구든 모방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심사관들이 “도면이 없다면 당신의 설계를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고 묻자, 그는 대뜸 계란을 똑바로 세워보라고 제안했다고 한다. 아무도 세우지 못하자, 브루넬레스키는 계란 밑을 살짝 깨뜨려 안정적으로 세웠다고 한다. 사람들이 “그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하자, 그는 **“내 돔 설계도 마찬가지다. 내가 방법을 보여주면 누구나 흉내낼 수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 일화는 사실 여부를 떠나, **“혁신은 보여주면 단순해 보이지만, 최초의 발상은 위대하다”**라는 교훈을 상징적으로 전해져 내려온다고 한다. 


최종 완성

이후 메디치 가문의 후원과 지지를 등에 업은 브루넬레스키는 피렌체 대성당의 마지막 퍼즐인 돔을 완성했다. 그의 혁신적 설계는 곧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 돔에도 이어져 르네상스 건축의 정점을 이루게 되었다.

성 베드로성당의 내부 돔

성 베드로성당 외관 돔



교훈


브루넬레스키는 수년간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판테온 신전 앞에 앉아 고대 로마의 건축 기술을 집요하게 탐구했다. 그의 모습은 오늘날 매일 시장을 분석하는 투자자의 모습과도 닮아 있지 않나 싶다. 

투자의 세계에서도 독창성과 최초의 발상 능력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으며, 누군가가 대신 전해줄 수도 없다. 오직 홀로 사고하는 시간을 거듭하고, 사고력을 끊임없이 단련할 때에야 겨우 남들보다 반발자국 먼저 도달할 수 있을까 말까 한 능력이다.

오늘날 투자자 역시 끊임없이 변화하는 지정학적 환경 속에서, 과거 제국의 흥망성쇠, 당대의 문화·역사·경제·사회적 변화, 그리고 수많은 기업들의 탄생과 몰락을 분석하며 미래의 투자 전략과 포지션을 고민한다.

세상의 변화를 읽어내고 그에 맞는 전략을 세우는 과정은, 브루넬레스키가 고대 건축의 비밀을 끝없이 파고들며 새로운 혁신을 준비했던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브루넬레스키가 남긴 교훈, **“혁신은 보여주면 단순해 보이지만, 최초의 발상은 위대하다”**는 말은 주식 투자와도 그대로 통한다.

과거의 뛰어난 투자 사례나 위대한 투자자들의 전략은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단순해 보인다. 그러나 실제 그 순간에 동일한 결정을 내려 성공하는 것은 극도로 어렵다. 우리가 흔히 말하듯, 돌아보면 투자는 항상 쉬워 보인다. 하지만 직접 그 자리에 서서 실행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결국 투자의 본질은 남들이 보지 못한 시점에 먼저 기회를 포착하는 독창성과 최초의 발상에 있다. 시간이 흐른 뒤에는 누구나 흉내 낼 수 있는 단순한 아이디어처럼 보일 수 있지만, 바로 그 순간 그것을 읽어내고 실행에 옮긴 통찰과 결단은 그 자체로 대단한 것이다.



오늘의 투자 환경과 시사점


최근 전 세계는 다시 확장 재정 정책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금리 인하 기조와 맞물려 글로벌 유동성이 풀리면서, 시장은 이미 2022년 전고점을 넘어서는 새로운 자산 인플레이션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포모(FOMO)를 느낀 수많은 2030 청년 세대가 소액으로도 접근할 수 있는 주식 투자나 암호화폐 투기에 무작정 뛰어드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74koqD12jG0

운용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다소 이해상충의 소지가 있지만, 사견으로는 밥 먹고 하는 일이 주식 투자이고, 하루 대부분을 투자 분석에 몰두하는 '제대로된' 전문 운용사에 자산을 맡기는 것이, 아무런 맥락이나 학습 없이 단순히 불안과 욕망에 이끌려 투기에 나서는 것보다는 훨씬 더 현명하지 않을까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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