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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일 목요일

생각정리 384 (* Korea, end-of-war declaration)


https://www.newdaily.co.kr/site/data/html/2026/10/01/2026100100401.html

이전 회사 대표님과의 대화를 통해 깨달은건 세상에 나타나는 현상을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내가
전후 맥락을 놓쳤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며,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려 들면 도무지 납득할 수 없을 정도의 일은 실제로는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의 사의 표명, 이재명 대통령과 정청래 전 대표의 4시간 만찬, 송영길 의원의 평화외교특보 임명, DMZ 지뢰 사고, 북한의 유엔총회 핵보유국 발언, 11월 중국 선전 APEC, 그리고 2027년 교황 방한까지.

각각 떼어놓고 보면 서로 다른 국내 정치·외교 뉴스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나의 정치 일정 위에 올려놓으면 어느 정도 연결된 그림이 보인다.

국내에서는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의 역할 분담이 시작되고 있고, 대외적으로는 11월 APEC을 출발점으로 북한 핵 동결과 종전·평화체제 협상을 준비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아직 공식적으로 확정된 것은 없다. 다만 최근 인사와 회동, 정부의 대북정책 변화가 우연히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지는 기록해둘 필요가 있다.


1. 민주당 전당대회 이후의 역할 분담


2026년 8월 민주당 전당대회는 김민석·정청래·송영길 후보의 3파전으로 치러졌다.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자 선호투표제가 적용됐고, 3위였던 송영길 후보의 2순위 표가 재배분되면서 김민석 후보가 최종 **54.08%**를 얻어 당대표에 당선됐다.

송영길 후보의 표 6만6,872표 가운데 4만6,869표가 김민석 후보에게, 2만3표가 정청래 후보에게 이동했다. 송영길 후보 지지표의 약 **70%**가 김민석 후보에게 향한 셈이다.

송영길, 선호투표제로 김민석 당선 도운 ‘킹메이커’|조선일보

이를 공식적인 후보 단일화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송영길 후보가 중도 사퇴해 김민석 후보와 합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당대회 내내 송영길 후보가 정청래 후보를 강하게 견제했고, 실제 선호투표에서도 송영길 표의 대부분이 김민석 후보에게 이동했다는 점에서 사실상의 반정청래 선거연합이 작동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김민석 대표의 당선 이후 송영길 의원에게 어떤 역할이 부여될 것인지도 관심사였다.

송영길 의원은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문재인 정부 대통령 러시아 특사,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장을 지냈다. 당내에서는 외교부 장관 후보로도 거론됐다.

그러나 이재명 대통령은 송 의원을 외교부 장관이 아니라 새로 만든 평화외교특별보좌관에 위촉했다.

외교장관 거론되던 송영길, 평화외교특보에|동아일보

송 의원은 임명 직후 다음과 같이 밝혔다.

“경색된 남북 관계를 풀고 다시 대화의 문을 여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다.”


평화외교특보는 비상근으로 겸직이 가능한 자리다. 외교부 장관처럼 정부 조직 전체를 운영하는 직책은 아니지만, 대통령에게 직접 대북·평화외교 전략을 조언할 수 있다.

형식적인 권한보다 역할의 상징성이 더 중요해 보인다.

전당대회에서 김민석 대표의 당선에 결과적으로 힘을 보탠 송영길 의원에게 ‘평화외교’라는 별도의 정치적 역할을 부여한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민주당과 대통령실의 역할 분담을 단순화하면 다음과 같다.


송영길 의원의 평화외교특보 임명을 단순한 전당대회 논공행상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11월 APEC을 앞둔 시점에 외교통일위원장과 러시아 특사 경력이 있는 중진 정치인을 신설된 평화외교특보에 배치했다는 것은, 대통령실이 대북 평화외교를 별도의 정치적 프로젝트로 다루기 시작했다는 신호일 수 있다.


2. 강훈식 사의는 서울시장 후보 결정의 신호일까


강훈식 비서실장은 지난 9월 21일 이재명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공식적으로는 장관 후보자들의 연이은 낙마와 인사검증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는 성격으로 해석됐다.

그러나 사의 표명 이후 열흘이 넘도록 이재명 대통령은 수리와 유임 가운데 어느 쪽도 결정하지 않았다. 청와대 역시 10월 1일 “인사권자가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청와대 “강훈식 후임 인선이냐 유임이냐, 인사권자 고민 중”|연합뉴스

단순히 인사 실패의 책임을 묻는 문제라면 결정을 이렇게 오래 미룰 이유가 크지 않다. 강훈식 비서실장의 향후 역할과 차기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 구도를 함께 검토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김민석 대표의 수첩에는 이미 서울시장 후보로 추정되는 인물들이 적혀 있었다.

  •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

  • 우원식 전 국회의장

  • 정청래 전 민주당 대표

  •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

  • 김민석 민주당 대표

김민석 대표는 오세훈 시장의 재판 결과에 따라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열릴 가능성을 **“99.99%”**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김민석 “서울시장 보선 가능성 99.99%…수첩 속 후보는 강훈식·우원식·정청래”|동아일보

내가 보는 핵심 분기점은 강훈식 비서실장의 사의 수리 여부다.


사의가 받아들여지면 강훈식,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정청래.

아직은 개인적인 추론이지만 현재 민주당 내부 역학을 가장 간결하게 설명하는 가설이다.

강훈식은 대통령과 정부의 후보에 가깝고, 정청래는 권리당원과 당 조직의 후보에 가깝다.

결국 강훈식의 거취는 단순한 청와대 인사가 아니라 차기 서울시장 후보를 대통령 중심으로 정할 것인지, 당 중심으로 정할 것인지를 보여주는 신호가 될 수 있다.


3. 이재명·정청래·강훈식의 4시간 만찬


10월 1일 이재명 대통령은 정청래 전 민주당 대표를 청와대로 초청해 약 4시간 동안 만찬을 함께했다.

이 자리에는 사의를 표명한 강훈식 비서실장이 배석했다.

청와대는 세 사람이 다양한 국정 현안과 당내 사안에 대해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깊은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 정청래 전 대표와 4시간 만찬…강훈식 비서실장 배석|뉴스핌

공식 발표만 놓고 보면 당내 갈등을 해소하고 정청래 전 대표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회동이다.

그러나 시점과 참석자 구성이 묘하다.

  • 강훈식 비서실장은 사의를 표명했지만 수리 여부가 결정되지 않았다.

  • 정청래 전 대표는 서울시장 후보군으로 공개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 이재명 대통령은 두 사람을 함께 앉혀 4시간 동안 국정과 당내 사안을 논의했다.

  • 하루 뒤 송영길 의원은 평화외교특보에 임명됐다.

이 자리가 서울시장 후보를 직접 결정하기 위한 회동이었다는 증거는 없다. 청와대도 논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서울시장 후보군인 정청래와 강훈식, 그리고 최종 인사권자인 이재명 대통령이 한자리에 모였다는 사실 자체에는 정치적 상징성이 있다.

강훈식의 사의를 수리해 서울시장 후보로 보낼 것인지, 강훈식을 대통령실에 남기고 정청래에게 서울시장 출마의 공간을 열어줄 것인지, 또는 두 사람 사이의 경쟁과 역할을 사전에 조정할 것인지 논의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만약 강훈식이 서울시장 후보로 결정된다면 정청래 전 대표의 협조가 필요하다. 반대로 정청래가 서울시장 후보로 결정된다면 강훈식 비서실장과 대통령실의 지원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4시간 만찬은 단순한 화해의 식사라기보다 서울시장 후보 결정 이전의 정치적 교통정리였을 가능성이 있다.


4. DMZ 지뢰 사고와 정부의 억제된 대응


지난 9월 21일 서부전선 DMZ에서 지뢰가 폭발해 우리 장병들이 부상을 입었다.

초기 조사 과정에서는 지뢰의 종류와 매설 경위가 명확하지 않았다. 그러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식과 현장조사를 통해 북한군 지뢰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파악됐다.

유엔군사령부도 군사분계선 남쪽에서 북한 대인지뢰가 발견됐다며 정전협정 위반이 발생한 것으로 판단했다.

유엔사 “DMZ 폭발, 정전협정 위반 발생한 것으로 판단”|조선일보

정부와 여당이 끝까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합참은 조사 결과에 따라 북한에 책임을 묻고 상응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으며, 김민석 민주당 대표도 9월 30일 북한의 정전협정 위반을 규탄하고 사과를 요구했다.

김민석 “DMZ 지뢰 사고는 북한의 정전협정 위반…반드시 사과해야”|연합뉴스

다만 주목할 부분은 초기 대응의 강도와 속도다.

정부와 여당은 북한의 책임을 곧바로 단정하기보다 조사 결과를 기다리는 태도를 유지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북한을 직접 강하게 비판하기보다 장병의 부상에 유감을 표시하고 단절된 대화를 복원해야 한다는 메시지에 무게를 뒀다.

이는 증거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신중하게 대응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정부가 추진하는 대북 대화의 판을 깨지 않기 위해 충돌 수위를 관리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DMZ 지뢰 사고 자체가 종전협정을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보다 정확한 해석은 다음과 같다.

정부가 종전과 평화체제 협상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DMZ 지뢰 사고를 남북 간 대결 이슈로 확대하기보다 조사와 책임 규명 수준에서 관리하려는 유인이 생긴다.

사건 자체보다 정부의 반응 함수가 더 중요한 이유다.


5. 이재명 정부의 대북정책은 이미 방향을 바꾸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북한 비핵화 문제에서 기존보다 현실적인 단계론을 공개적으로 제시했다.

핵심은 북한의 즉각적인 핵 폐기를 협상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다음 순서로 접근하자는 것이다.

핵·ICBM 추가 개발 중단 → 핵 능력 축소 → 국제 감시와 검증 → 장기적인 핵 폐기

이 대통령은 북한의 핵과 ICBM 개발 중단을 대가로 실효성이 낮아진 일부 제재를 완화하는 방안도 언급했다.

정부는 최종 목표가 완전한 비핵화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협상 출발점은 이미 비핵화 선행에서 핵 동결과 관리로 이동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 “북핵 폐기 아닌 동결부터…제재 완화와 맞교환”|서울신문

유엔총회 연설에서도 이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보다 **“핵 없는 한반도”**라는 표현을 전면에 내세웠다.

동시에 남·북·미·중이 참여하는 4자 대화를 통해 한국전쟁을 종식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하자고 제안했다.

이 대통령, 남·북·미·중 4자 대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제안

단어의 변화가 중요하다.

‘선 비핵화’는 북한이 핵을 포기해야 대화가 가능하다는 의미에 가깝다. 반면 ‘핵 없는 한반도’와 단계적 접근은 북한의 기존 핵 능력을 당분간 인정한 상태에서 동결과 축소부터 협상할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공식적인 핵보유국 인정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는 북한의 핵을 당장 제거할 수 없는 관리 대상으로 취급하기 시작한 것이다.


6. 북한의 유엔 발언: 비핵화가 아니라 핵보유국 인정이 목표다


북한도 같은 시기 유엔총회에서 자신의 협상 목표를 분명하게 밝혔다.

김선경 북한 외무성 부상은 9월 28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81차 유엔총회 일반토의 연설에서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는 어떤 경우에도 되돌릴 수 없다고 주장했다.

김 부상은 북한의 핵 억제력을 외부의 침략과 위협으로부터 주권과 안전, 평화를 지키기 위한 절대적인 힘으로 규정했다.

또한 북한이 앞으로도 ‘책임 있는 핵보유국’으로서 지역과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북한 김선경 외무성 부상 유엔총회 연설 영상·요약|유엔

북한 “핵보유국 지위는 물리적으로나 법적으로 되돌릴 수 없다”|조선일보

이 발언은 북한이 향후 협상에서 무엇을 요구할지를 보여준다.

북한은 핵 폐기를 전제로 협상장에 나오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한 상태에서 미국과 핵 동결, 군비통제, 제재 완화, 체제보장 문제를 협상하려는 것이다.

북한의 목표를 단순화하면 다음과 같다.

비핵화 협상 → 핵보유국 간 군비통제 협상으로 전환

북한이 말하는 ‘책임 있는 핵보유국’이라는 표현도 중요하다.

이는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선언인 동시에, 자신을 무조건적인 위협이 아니라 핵무기를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는 정상국가로 묘사하려는 시도다.

향후 북한이 제시할 수 있는 조건은 다음과 같다.


국제사회가 북한을 NPT 체제상의 공식 핵보유국으로 승인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현실적인 타협은 법적인 핵보유국 승인보다 북한이 이미 핵을 보유하고 있다는 현실을 전제로 동결·감축·감시 협상을 시작하는 사실상의 인정에 가까울 가능성이 높다.

이재명 정부가 말하는 단계적 비핵화와 북한이 주장하는 핵보유국 지위 사이에는 여전히 큰 간극이 있다.

그러나 동시에 협상이 성립할 수 있는 교집합도 존재한다.

  • 북한은 기존 핵무기의 즉각적인 폐기를 거부한다.

  • 한국과 미국은 핵과 ICBM의 추가 확대를 중단시킬 필요가 있다.

  • 양측 모두 국제적 감시와 단계적 제재 완화를 거래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협상의 출발점은 ‘핵무기 0개’가 아니라 다음이 될 가능성이 높다.

더 이상 늘리지 못하게 하고, 사용할 가능성을 낮추고, 국제 감시 아래 두는 것이다.


7. 11월 중국 선전 APEC이 첫 번째 확인 시점이다


현재 가장 중요한 정치 일정은 11월 18~19일 중국 선전에서 열릴 예정인 APEC 정상회의다.

한국 정부는 이 회의를 계기로 남·북·미·중 정상들이 참여하는 4자 평화회담을 추진하고 있다.

11월 중국 선전 APEC 계기 남·북·미·중 4자 평화회담 추진|파이낸셜뉴스

국정원도 APEC 전후 미북 대화가 재개될 가능성을 약 **50%**로 평가한 것으로 보도됐다.

국정원 “APEC 때 미북 회담 가능성 50%”|조선일보

여기에 트럼프·시진핑·푸틴의 3자 회동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러시아 측도 APEC을 계기로 한 미·중·러 정상회동이 논의됐다고 확인했다.

트럼프·시진핑·푸틴, 11월 중국 APEC 3자회담 가능성|머니투데이

각국 정상은 서로 다른 이유로 북한 문제에 관여할 유인이 있다.

트럼프


트럼프에게 북한과의 합의는 전쟁을 끝낸 대통령이라는 외교적 유산이 될 수 있다.

완전한 비핵화보다 핵 동결과 ICBM 통제를 얻어내고 이를 역사적 합의로 포장하는 방식이 정치적으로 더 현실적이다.

(*이란 중동전쟁 문제를 북한 종전협정 이슈로 덮으려는 것 일수도)

시진핑


중국에서 개최되는 APEC에서 북미 대화나 다자 평화회담이 성사되면 시진핑은 한반도 문제의 핵심 중재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동시에 북한이 미국이나 러시아 한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어지는 것도 견제할 수 있다.

푸틴


북한과 군사적으로 밀착한 러시아는 이제 한반도 협상에서 제외하기 어려운 당사자가 됐다.

푸틴은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협상 자산으로 활용하고, 러시아가 동북아 질서에서도 배제할 수 없는 강대국이라는 점을 인정받으려 할 것이다.

다카이치


다카이치 일본 총리는 북한을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은 여전히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다.

따라서 이를 일본이 북한을 공식적인 핵보유국으로 인정한 것으로 확대해석해서는 안 된다.

다카이치 총리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납북자 문제 해결 촉구”|일본 총리관저

다만 일본도 납북자 문제와 북일 정상회담을 통해 협상 테이블에 참여할 유인이 있다.

4자회담이 남·북·미·중 중심으로 출발하더라도 러시아와 일본의 이해관계가 결합하면 과거의 6자회담과 비슷한 구조로 확대될 수 있다.

이재명 정부


이재명 정부에도 한반도 종전과 평화체제 구축은 대표적인 역사적 치적이 될 수 있다.

부동산, 세제, 인사 문제로 국내 정치의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대북 평화 이벤트는 정권의 의제를 단번에 전환할 수 있는 카드다.

결국 종전협정은 이상적인 평화주의만으로 추진되는 것이 아니다.

북한에는 제재 완화와 체제보장, 미국에는 핵과 ICBM 동결, 중국과 러시아에는 동북아 영향력, 일본에는 납북자 문제 해결의 기회, 이재명 정부에는 역사적 치적이 돌아가는 국제정치적 거래다.


8. 교황 방북과 남북 평화 이벤트


APEC 이후의 두 번째 주요 일정은 **2027년 8월 3일부터 8일까지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WYD)**다.

이는 단순한 청년 기독교 행사가 아니라 전 세계 가톨릭 청년과 성직자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국제행사다. 정확한 참가 규모는 최종 등록 결과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국내외 청년 수십만 명에서 최대 100만 명가량이 참여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 공식 일정

레오 14세 교황도 전 세계 청년들이 2027년 8월 3일부터 8일까지 서울에 모일 것이라고 직접 발표했다. 공식 일정에는 교황 환영행사와 교황이 함께하는 십자가의 길, 파견미사가 포함돼 있다.

레오 14세 교황의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 초청 메시지|교황청

이 행사가 남북관계와 연결되는 이유는 이재명 대통령이 이미 교황에게 한반도 평화를 위한 역할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2026년 6월 바티칸에서 레오 14세 교황을 만나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 정착 문제를 논의하고,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를 계기로 한국을 방문해 달라고 공식 초청했다.

교황과 이재명 대통령, 한반도 평화와 서울 세계청년대회 논의|가톨릭평화방송

이 과정에서 교황의 북한 방문 가능성도 실제로 논의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통령, 레오 14세 교황에게 방한 초청…방북 가능성도 논의|서울신문

다만 교황의 방북은 아직 확정된 일정이 아니다.

유흥식 추기경도 교황의 방북 여부는 결국 북한의 태도에 달려 있다고 밝혔다. 북한이 교황을 공식 초청하고, 종교 활동에 대한 최소한의 조건을 수용해야 실제 방문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유흥식 추기경 “교황 방북 여부는 북한의 자세에 달려”|동아일보

그럼에도 교황 방북이 성사될 경우 그 정치적 의미는 상당히 크다.

교황의 북한 방문은 단순한 종교행사를 넘어 한반도의 휴전 체제를 종전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국제적 이벤트로 활용될 수 있다.

가능한 일정은 다음과 같다.

2026년 11월 APEC 미북·다자대화 개시
→ 핵 동결과 제재 완화 실무협상
→ 남북 간 긴장 완화 조치
→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 교황 방한
→ 교황 방북 또는 남북 평화 메시지 발표
→ 종전선언·평화협정 논의의 정치적 정점

교황은 군사적 이해관계가 없는 종교 지도자이기 때문에 남·북·미·중 어느 국가도 공개적으로 거부하기 부담스러운 중재자가 될 수 있다.

북한 입장에서도 교황의 방문은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 정상국가 이미지를 보여줄 기회가 된다. 미국과 유럽에 제재 완화의 명분을 제공할 수도 있다.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에는 종전과 남북 평화를 정권의 대표적인 정치적 성과로 부각할 수 있는 상징적 무대가 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교황과 함께 북한을 방문하는 장면까지 정치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이유다. 다만 현재 공개된 자료로 확인되는 것은 교황 방북 제안과 한반도 평화 역할 요청까지다. 대통령과 교황의 동반 방북이 구체적으로 합의됐다는 근거는 아직 없다.


9. 인사와 정치 일정이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고 있다


최근 정치권의 인사와 회동을 시간순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이 사건들을 모두 하나의 사전 계획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재명 대통령이 당내 주요 인물에게 각자의 정치적 역할을 배분하고 있다는 해석은 가능하다.

  • 김민석에게는 당대표와 선거 관리

  • 송영길에게는 평화외교

  • 강훈식과 정청래 가운데 한 사람에게는 서울시장 후보

  • 나머지 한 사람에게는 대통령실 또는 당내 역할

특히 송영길이 외교부 장관이 아니라 비상근 평화외교특보에 임명된 것은, 기존 국회의원 신분과 정치적 활동 공간을 유지하면서도 대북 평화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게 만든 인사다.

이 구조가 맞다면 강훈식의 사의 수리 여부와 정청래의 향후 행보도 개별 사건이 아니라 서울시장 선거와 대북 평화 일정에 맞춘 역할 재배치로 볼 수 있다.

결론: 11월 APEC에서 2027년 교황 방한까지


현재까지 공개된 사실만으로 종전협정이 이미 합의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최근의 인사와 발언을 연결하면 정부가 어느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지는 비교적 분명해 보인다.

이재명 정부는 즉각적인 북한 비핵화보다 핵 동결과 축소, 제재 완화와 국제 감시를 교환하는 단계적 접근을 제시하고 있다.

북한은 유엔총회에서 핵보유국 지위를 되돌릴 수 없다고 선언했다. 이는 북한이 비핵화 협상이 아니라 핵보유 현실을 인정받은 상태에서 군비통제와 제재 완화를 협상하려 한다는 의미다.

두 입장 사이의 간극은 크지만 교집합은 존재한다.

북한은 기존 핵을 당장 포기하지 않고, 미국과 한국은 북한의 핵과 ICBM이 더 늘어나는 것을 막는다. 그 대가로 제재 완화와 체제보장, 국제 감시를 교환하는 방식이다.

그 첫 번째 확인 시점이 2026년 11월 중국 선전 APEC이다.

두 번째 확인 시점은 2027년 8월 서울 세계청년대회와 교황의 방한이다.

APEC에서 시작된 대북협상이 2027년까지 이어지고 교황의 방북까지 성사된다면, 이는 종교행사를 넘어 한반도 평화체제를 국제적으로 선언하는 상징적 장면이 될 수 있다.

국내 정치에서도 역할 조정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김민석은 당대표가 됐고, 그의 당선에 결과적으로 힘을 보탠 송영길은 평화외교특보가 됐다. 강훈식은 사의를 표명했고, 정청래는 이재명 대통령과 강훈식 비서실장이 배석한 자리에서 4시간 동안 만찬을 가졌다.

여기서 내가 보는 가설은 여전히 단순하다.

강훈식의 사의가 수리되면 강훈식이 서울시장 후보로 이동할 가능성이 커지고, 유임된다면 정청래가 당 중심의 서울시장 후보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김민석은 당을 관리하고, 송영길은 평화외교를 맡으며, 강훈식과 정청래 가운데 한 사람이 서울시장 후보로 이동하는 구조다.

결국 이번 종전 논의의 본질은 평화에 대한 선언만이 아니다.

북한의 핵을 현실로 받아들이되 더 이상 늘어나지 못하게 관리하고, 그 대가로 제재 완화와 체제보장을 제공하는 국제정치적 거래다.

트럼프와 시진핑, 푸틴과 다카이치, 이재명 대통령과 교황까지 각자의 이해관계와 역할은 다르다.

그러나 모두가 한반도의 오랜 전쟁을 끝내는 역사적 장면에 자신의 이름을 올릴 유인은 충분하다.

2026년 11월 APEC은 협상의 시작 여부를 확인하는 첫 번째 분기점이고, 2027년 8월 교황 방한은 그 협상을 국제적 평화 이벤트로 완성할 수 있는 두 번째 분기점이다.

그 과정에서 송영길의 평화외교특보 활동, 강훈식의 거취, 정청래의 서울시장 출마 여부, 북한의 핵 동결 수용 여부를 함께 지켜볼 필요가 있다.

https://www.asiatoday.co.kr/kn/view.php?key=20260930010010806


근데.. 이거 지지율 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는 정책 맞아요..?
아무도 관심을 안갖는거 같은데..
오히려 대통령 지지율에 역효과 날 것 같은건 내 착각인가..
감다뒤..

= 끝

2026년 9월 22일 화요일

생각정리 377 (* BIT between Korea and the U.S.)

대미투자협정(*BIT) 내용이 시장에 하나둘씩 발표되고 있다.
관련해서 내용을 정리해보고 개인적인 소감문(?)을 기록 작성해본다.

손실은 누가 지고, APR1400의 미국 실적은 누가 얻는가

2026년 9월 23일 기준 공개자료와 국회 보고 관련 보도를 토대로 작성했다. 비공개 보고에 관한 보도와 실제 계약의 확정 내용은 구분했다.

9월 22일 국회 보고를 두고 한국이 대미투자에서 얼마를 회수할 수 있는지에 관심이 집중된다. 그러나 한국 원전 민간 산업의 관점에서는 질문을 더 좁혀야 한다.

실제 공사와 기자재 계약은 누가 따내며, 원가가 늘어나면 누가 얼마까지 부담하는가?

여기에 APR1400의 미국 진출을 허용하기 위해 기존 지식재산권 분쟁 합의문을 손질한다는 보도가 더해졌다.

앞으로의 원전 협상은 정부의 투자수익, 민간기업의 시공·공급 계약, 장기 수출에 활용할 미국 실적이라는 세 가지를 구분해 평가해야 한다.

1. 어디까지 결정됐나: 협정과 국회 보고의 시간표



산업부 발표
양해각서 번역본
국회 보고 보도, 원전 사업비 보도

9월 22일 국회에 보고된 사업 가운데 추진을 결정한 것은 텍사스 엔시날 가스복합발전 1건이다. 원전 8기와 알래스카 LNG는 양국의 관심을 반영한 추진 계획으로 보고됐으며, 각각 별도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따라서 첫 사업의 투자금이 집행되더라도 원전 8기의 EPC 조건까지 합의됐다는 뜻은 아니다. 국회 보고 관련 보도

2. 한국의 요구는 얼마나 반영됐나


양해각서 14~17항, 9월 보고 관련 보도
양해각서 11~12항
서울경제 보도

협상의 성과를 한쪽의 승패로만 평가하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 한국 정부가 투자자로서 받을 현금흐름과 한국 민간기업이 별도의 시공·납품 계약에서 벌어들일 돈은 서로 다른 구조이기 때문이다. 정부 투자금의 배분 조건이 불리해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민간 참여기업의 계약까지 불리하다고 판단할 수 없다. 반대로 한국 업체 우선 고려 조항만으로 수주와 이익이 보장됐다고 볼 수도 없다.

3. 네 참여자가 바라보는 이익은 각각 다르다


같은 원전 사업에 참여하더라도 누가 투자하고, 누가 발주하며, 누가 설계·시공·납품하는지에 따라 돈을 버는 방식이 달라진다. 한미 양해각서의 50:50·90:10은 양국 정부 사이의 투자 SPV 분배금에 관한 규칙이다. 미국 민간 원전 사업자의 매출 배분율이나 한국 민간기업의 EPC 이익률을 정한 숫자가 아니다.


이 표의 정부 간 분배 규칙과 프로젝트 SPV 구조는 한미 전략적 투자 양해각서 11~15항·부록 A에 따른다. 원전 사업의 기종 구성과 지분 투자 논의는 9월 22일 국회 보고 관련 보도, APR1400 예외 방안은 같은 날의 합의문 수정 보도에 근거한다.

양해각서에 적힌 미국 단독 소유 프로젝트 SPV와 텍사스 사업의 ‘한미 지분 절반씩’이라는 보도는 동일한 법인의 지분 구조로 확정해 읽을 수 없다. 최종 투자 약정에서 두 구조의 관계를 확인해야 한다. 각 민간기업의 계약 매출과 위험 한도도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4. 발표된 금액은 누구의 투자금인가



양해각서
서울경제 보도
국회 보고 기사
미 상무부 발표
미 상무부 발표

한국 텍사스 가스 사업 223억 달러와 일본 가스·SMR 발표치 1,063억 달러를 단순 합치면 최대 1,286억 달러다. 원전 8기 구상 1,200억 달러를 중복되지 않는 별도 사업으로 가정해 더하면 최대 약 2,486억 달러가 된다.

다만 이는 진행 단계가 다른 사업비와 발표 상한을 합친 개략적 시나리오다. 한국·미국·일본 정부가 각각 그만큼의 현금을 확정 출자했다는 뜻은 아니다. 전력망 투자의 범위와 금액도 포함하지 않았다. 미국 정부의 부지·인허가·전력구매 주선과 금융지원 가능성을 위 사업비에 다시 더해 ‘미국 정부 출자액’으로 계산해서도 안 된다.

한미 양해각서 10항, 미 상무부 발표

5. 총사업비가 커져도 민간기업의 이익이 자동으로 커지지는 않는다


프로젝트 총사업비에는 부지, 발전 설비, 시공, 금융 비용과 예비비가 들어간다. 그 가운데 발주처가 EPC 계약을 체결하고, 기자재 기업이 공급계약을 따낸다. 각 기업은 자신이 확보한 계약 매출에서 원가와 부담한 손실을 뺀 뒤에야 이익을 얻는다. 기자재 대금이 EPC 계약금에 이미 들어 있다면 두 금액을 따로 더해 전체 이익처럼 계산해서도 안 된다.

예를 들어 223억 달러짜리 발전사업에서 EPC 계약 몫이 60%, 그 계약의 영업이익률이 5%라고 가정하면 EPC 영업이익은 약 6억 7,000만 달러다. 이는 계약 구조를 설명하기 위한 계산이며 전망치가 아니다. 실제 EPC 범위와 마진은 공개되지 않았다. 설계 변경, 현지 인건비, 인허가 지연, 보증과 지체상금 조건이 달라지면 결과도 바뀐다.

민간기업의 입장에서 총사업비보다 직접적인 지표는 확보한 계약 범위, 실현 가능한 마진, 예상 밖의 손실에 대한 책임 상한이다. 정부 투자금의 수익배분 규칙으로 민간기업의 이익률을 계산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6. Bechtel 사례가 보여주는 원전 EPC 계약의 현실



Bechtel 기고
FT 인터뷰
World Nuclear News, 양측 발언 포함

Bechtel의 발언은 민간 시공사가 원전 사업 전체의 모든 손실을 보증해야 한다는 가정이 현실적인 계약의 출발점이 되기 어렵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동시에 TerraPower 사업에서 Bechtel이 떠난 이유를 손실 부담 하나로 확정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 미국 원전 사업에서도 발주처와 투자자, 원자로 설계·공급 주체, EPC, 주기기·보조기기 공급자가 각자 통제할 수 있는 위험과 감당할 손실의 한도를 계약으로 정해야 한다.

7. ‘200억 달러 완충분’과 민간기업의 손실 보증은 다르다


9월 22일 보도에 따르면 원전 8기 사업비 틀 약 1,200억 달러 가운데 200억 달러를 공사비 증가에 대비한 완충분으로 설정하는 방안이 논의됐다.

사용하지 않은 금액도 한국의 투자 약속을 이행한 것으로 인정하고, 추가 비용은 계약상 귀책에 따라 나누며, 완충분을 넘는 비용을 한국 정부가 자동으로 부담하지는 않는다는 설명도 나온다.

서울경제, 2026.9.22

이는 손실 대응에 관한 진전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민간 EPC와 기자재 기업의 손실을 200억 달러까지 보증한다는 뜻은 아니다.

완충분을 누가 승인하고 어느 호기에 얼마나 쓸 수 있는지, 비용 증가의 원인을 다투는 동안 누가 먼저 지급하는지, 완충분이 소진되면 누가 부담하는지는 개별 계약에서 확인해야 한다.


이 표는 현재 확정된 분담표가 아니라 앞으로 나올 계약에서 확인해야 할 목록이다. 정부 투자금에 회수 장치가 생겨도 민간 시공사의 손해배상 책임이 지나치게 넓다면 산업계의 위험은 남는다.

8. 한국 원전 산업에는 APR1400의 미국 실적이 더 큰 변수가 될 수 있다


이번 국회 보고 관련 보도에서 한국 원전 민간 산업이 특히 주목할 대목은 기존 지식재산권 분쟁 합의문(SA)의 수정이다.

보도에 따르면 대미 전략투자를 활용한 원전 사업에 한해 APR1400의 미국 내 건설을 최대 2기 허용하는 방안이 논의됐다.

자사 원자로 AP1000과의 경쟁을 우려한 웨스팅하우스(WEC)가 반발했지만, 미국 정부가 한국의 건설 역량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설득했다는 내용이다. 서울경제, 2026.9.22

다만 현재 보도만으로 비공개 합의문의 수정 문안이 확정·발효됐는지 확인할 수는 없다. 원전 8기의 기종 구성도 최종 합의 전이라는 국회 보고 기사가 있다. APR1400 두 기의 부지와 발주, 인허가, 최종 투자결정 역시 각각 별도의 단계다. 국회 보고 기사

APR1400에는 이미 해외 건설·운영 사례가 있고,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설계 인증도 있다. 이번 기회의 가치는 ‘첫 해외 실적’이나 ‘첫 미국 설계 인증’에 있지 않다. 미국 본토에서 한국형 원전이 실제 발주되고, 미국의 규제·노무·공급망 환경에서 건설과 운영 실적을 쌓는 것에 있다.

그것이 성사된다면 이후 제3국 발주처에 미국 현지 인허가 경험, 시공 일정, 원가와 운영 자료를 제시할 수 있다. IAEA의 UAE 원전 현황, 미 NRC의 APR1400 설계 인증

그러나 ‘최대 2기 허용’이라는 방안만으로 실적이 생기지는 않는다. 실제 발주와 한국 업체의 계약 참여, 건설, 준공, 운영을 거쳐야 미국 실적의 가치가 커진다. 그 과정에서 민간 참여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손실을 떠안는다면, 수주와 기술 실적이 생겨도 사업의 경제적 가치는 낮아진다.

또 하나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보도된 SA 수정은 대미 전략투자 사업에 한정된 미국 내 예외다. 미국에서 APR1400을 지을 수 있게 된다고 해서 기존 합의에 따른 제3국 수출 제한이나 기술료·기자재 공급 조건까지 자동으로 변경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 건설 실적이 향후 세계 시장에서 설득력을 높이는 문제와, 세계 시장에서 수출할 권한과 조건을 확보하는 문제는 별도로 협상해야 한다. 합의문 예외 범위 보도

글을 마치며


이번 국회 보고만으로 한국 원전 민간 참여기업의 유불리를 섣불리 단정할 수 없지 않나 싶다.
 한국 정부가 대미투자자로서 받는 원리금 회수와 한미 간 50:50·90:10 수익배분은 투자 특수목적법인의 현금흐름에 관한 규칙이다.

이를 한국 민간 EPC와 기자재 기업의 이익률이나 손실분담 비율과 같은 선상에 놓고 해석하는 것은 오류다. 민간기업의 손익은 각자 체결할 시공·납품 계약의 금액, 원가, 마진, 공기 지연과 비용 초과의 책임 한도에 따라 따로 결정된다. 한미 투자 양해각서 11~15항

한국 정부에는 투자금 회수 조건과 한국 기업의 미국 시장 진입로가, 민간 원전 산업에는 수주 및 APR1400의 미국 건설 실적을 쌓을 가능성이 열렸다. 그러나 시장을 열어준 성과와 그 시장에서 이익을 남길지는 별개의 문제다.

미국에서 한국형 원전을 적정한 수익을 남기며 완공한다면 그 실적은 이후 글로벌 원전 시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자산이 된다. 그 기회의 가치 또한 참여 범위와 위험 부담이 정해진 뒤에야 평가할 수 있다.

원전 프로젝트의 계약상 이익과 손실의 경계,
그리고 실제 참여 민간 사업자별 실적을 결정할 어려운 협상은 이제부터이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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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8월 26일 수요일

생각정리 353 (* China’s Second Bill)

요즘 들어 중국에 관한 부정적인 이야기만 계속 기록하는 것 같아, 나 스스로도 어느새 편향된 시각에 빠진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그런데 비슷한 의구심을 품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라는 증거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중국이 저렴한 금융과 빠른 시공을 앞세워 제3국의 발전소·댐·항만·철도 등 핵심 인프라에 진입한 뒤, 부채와 하자, 추가 유지보수비, 기술인력과 부품 의존을 통해 장기간 영향력을 유지하는 사례가 반복적으로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일대일로의 위험 요인

물론 이를 근거로 중국이 참여한 모든 사업을 같은 방식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다. 다만 ‘일대일로’와 개발협력이라는 명분 아래 확장된 중국의 인프라 사업이 실제로는 어떻게 발주국의 재정과 운영주권을 제약하고, 처음의 낮은 건설비보다 훨씬 가혹한 비용으로 돌아올 수 있는지는 충분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번 글에서는 중국 기업이 건설한 발전소와 수력발전소에서 발생한 하자·가동 중단·유지보수 의존 사례를 종합해, 중국의 인프라 장악 방식이 어떤 구조로 작동하며 발주국이 최종적으로 어떤 대가를 부담하게 되는지 기록해보려 한다.

값싼 전력 인프라가 보내는 두 번째 청구서


미국은 왜 중국산 전력망 장비를 신규 조달에서 배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미 설치된 설비까지 들여다보기 시작했나


OVERVIEW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26년 8월 26일 미국 대규모 전력망(Bulk-Power System, BPS)에 대한 외국의 공급망·사이버 위협을 국가비상사태로 규정했다. 첨단 제조업과 데이터센터, 인공지능, 방산 생산이 전력망에 의존하는 정도가 높아지면서, 변압기와 발전기 같은 물리적 장비뿐 아니라 소프트웨어·펌웨어·원격 유지보수 권한까지 국가안보의 일부로 보겠다는 선언이다.

이번 조치는 단순히 “중국산 장비를 더 이상 사지 않겠다”는 조달 규제가 아니다. 미국 에너지부는 위험하다고 판단한 기설치 장비에 대해 식별·격리·모니터링·접속 차단·교체·철거를 요구할 수 있다. 준공이 끝났더라도 공급업체가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핵심 부품 공급과 원격 유지보수를 장악하고 있다면 그 설비는 여전히 외국 공급망 안에 있다는 판단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갑자기 등장하지 않았다. 중국 기업이 건설한 발전소와 댐에서 반복된 하자와 가동 중단, 동일 시공업체에 대한 유지보수 의존, 전력 수입과 비상발전 비용을 살펴보면 미국이 왜 전력 장비를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장기간 존속하는 외국의 접근 권한으로 보기 시작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https://www.whitehouse.gov/presidential-actions/2026/08/declaring-a-national-emergency-to-secure-the-united-states-bulk-power-system/


1. 발전소의 가격은 준공식에서 확정되지 않는다


대규모 인프라 입찰은 대개 초기 EPC 가격과 금융조건을 중심으로 평가된다. 중국 기업은 중국 국유은행의 정책금융과 건설·장비·인력을 결합해 비교적 낮은 초기비용과 빠른 공기를 제시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발전소와 송전망의 실제 비용에는 건설비와 금융비용뿐 아니라 하자보수비, 장기 O&M 비용, 가동 중단 손실, 대체 전력 구입비와 운영주권 상실 비용까지 포함해야 한다.

문제가 발생하면 발주국은 통상 세 번의 청구서를 받는다.

  • 첫 번째는 발전소를 건설하기 위해 받은 원금과 이자

  • 두 번째는 하자보수와 운영을 위한 추가 O&M 비용

  • 세 번째는 설비가 멈춘 동안 발생하는 전력 수입·비상발전·보조금·산업생산 차질


실제로 가장 큰 청구서는 시공업체가 제출하는 수리 견적서가 아닐 수 있다. 발전소가 멈추면서 발생하는 전력 수입비와 정전 손실, 전기요금 인상, 정부 보조금과 전력공기업의 재무 부실이 훨씬 클 수 있다.


2. 중국 시공 전력 인프라의 두 번째 청구서


2-1. 우간다 카루마댐: 준공 이후 다시 나온 4,000만 달러 제안서


중국 Sinohydro가 건설한 우간다의 600MW 카루마 수력발전소에는 약 14억 달러가 투입됐다. 그러나 나일강을 따라 유입되는 수초와 부유물이 취수구 스크린과 냉각수 계통을 막으면서 출력 제한과 발전기 정지가 반복됐다.

2026년 8월 현지 의회 조사 당시 6개 발전 유닛 가운데 2개가 두 달 넘게 가동을 중단한 상태였다. 발전소를 건설한 Sinohydro는 문제를 종합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비용으로 4,000만 달러, 약 1,479억 우간다실링의 추가 사업안을 정부에 제출했다.

우간다 측은 부유물 차단시설인 로그붐이 원래 설계에 포함돼 있었고 2019년 유실된 뒤 재설치되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반면 Sinohydro는 수초가 수백 킬로미터 상류에서 유입되는 등 실제 문제가 당초 설계조건보다 복잡해졌기 때문에 하자보수 범위를 벗어난 추가 사업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4,000만 달러가 확정된 하자보수 청구서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우간다 정부도 기술위원회를 구성해 책임 소재와 가격의 적정성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이 사건이 보여주는 구조는 분명하다. 발전소가 충분한 출력을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기술적 원인과 해결방법, 추가 사업비를 가장 잘 아는 주체가 원래 시공사라면, 발주국은 설비를 소유하고도 문제를 진단하고 고칠 수 있는 실질적 권한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일 수 있다.

카루마 수력발전소 일자별 경과



카루마 수력발전소 금액별 정리


출처: Daily Monitor – Karuma dam contractor wants additional Shs148b to fix defects

https://www.independent.co.ug/chinese-ugandans-fight-over-karuma-dam/



2-2. 우간다 이심바댐: 776개 보완사항과 끝나지 않은 구조적 하자


같은 우간다의 183.2MW 이심바 수력발전소는 중국국제수전공사(CIWE)가 건설했다. 총사업비는 5억6,800만 달러였으며, 이 가운데 85%를 중국수출입은행 대출로 조달했다.

우간다 감사원에 따르면 시공사에 통보된 776개 보완사항 가운데 763개는 처리됐지만, 주요 13개 항목은 2019년 이후에도 해결되지 않았다. 미처리 항목에는 방수로와 콘크리트 구조, 부유물 차단시설 등 발전소 안전과 직접 관련된 내용이 포함됐다.

2022년 8월에는 발전소가 침수돼 설비와 현장인력을 보호하기 위한 긴급 가동 중단이 실시됐다. 하자책임기간이 2023년 3월 종료됐음에도 주요 결함이 해결되지 않았고, 2025년 말에도 균열·부식과 추가 방수로 건설 문제가 제기됐다.

감사원은 하자 시정 지연이 사업비를 증가시키고 발전소 가동률과 정부의 전력 판매수입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발전소를 건설하기 위한 부채는 남아 있는데, 하자 때문에 발생하는 유지보수와 발전손실 비용이 다시 쌓이는 구조다.

이심바 수력발전소 일자별 경과


이심바 수력발전소 금액별 정리


출처: ChimpReports – Isimba Dam’s Major Defects Unrectified Since 2019
추가 자료: UG Standard – Cracks, corrosion and costly delays


Isimba dam: why does Uganda settle for less?


2-3. 보츠와나 모루풀레 B: 발전소 사업비보다 커진 사후 비용


보츠와나 전력공사(BPC)는 중국 CNEEC–SBW 컨소시엄과 600MW 모루풀레 B 석탄발전소 EPC 계약을 체결했다. 사업에는 중국공상은행(ICBC)의 8억2,500만 달러 대출이 투입됐으며, 송전 인프라를 포함한 총사업비는 약 120억 풀라였다.

하지만 BPC가 규제기관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발전소는 30년간 600MW의 안정적인 출력을 제공한다는 당초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BPC는 시공사가 계약상 의무를 이행하기 전에 발전소를 멈추겠다고 압박해, 2014년 6월 설비를 조기 인수했다고 설명했다.

인수 후 실시한 기술조사에서는 건설 및 장비 하자가 확인됐고, BPC와 시공사는 2016년과 2018년 두 차례 하자개선협약을 체결했다. 그럼에도 2019/20 회계연도 발전소 가동률은 **32%**에 불과했다. 이로 인해 전력 수입 비용은 예산보다 15억4,200만 풀라, 비율로는 231% 초과했다.

2025년 보츠와나 에너지장관의 의회 설명을 인용한 현지 보도에 따르면, 가동 이후 발생한 추가 직접비용은 O&M을 포함해 54억 풀라, 전력 수입과 발주자 기술자문을 포함한 간접비용은 189억 풀라로 제시됐다.

직접·간접비용을 합치면 243억 풀라로, 원래 사업비 120억 풀라의 두 배를 넘는다. 모든 비용을 중국 시공사가 청구한 것은 아니지만, 발전소의 낮은 가동률이 국가와 전력공사에 남긴 경제적 청구서라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모루풀레 B 발전소 일자별 경과



모루풀레 B 발전소 금액별 정리


출처: Botswana Power Corporation 2021/22 Tariff Application, PDF
추가 자료: YourBotswana – 에너지장관 의회 설명 정리



2-4. 스리랑카 락비자야: 13억5,000만 달러를 지불하고도 이어진 O&M 의존


스리랑카의 900MW 락비자야·노로촌촐라이 석탄발전소는 중국기계설비공정공사(CMEC)가 약 13억5,000만 달러를 들여 건설했다. 2011년 첫 호기가 가동된 이후 2023년 초까지 20차례가 넘는 고장이 발생했다.

발전소가 고장 날 때마다 스리랑카는 출력 부족을 충당하기 위해 비싼 유류발전을 늘리거나 순환정전을 시행해야 했다. 2022년 8월 고장 때는 정전 시간이 하루 3시간까지 확대됐다.

더 주목할 부분은 준공 이후의 인력·유지보수 의존이다. 스리랑카 전력청(CEB)은 발전소 준공 후 10년 동안 CMEC와 약 6,700만 달러 규모의 운영·유지보수 자문계약을 체결했다. 첫 6개월 계약부터 인수 후에도 남아 있던 결함과 반복적인 고장을 이유로 체결됐다.

CEB 기술자들이 해외교육을 받았음에도 중국 기술자들은 약 10년간 현장 운영과 유지보수를 지원했다. 일부 계약은 사전 내각 승인 없이 체결돼 약 2,000만 달러의 지급 문제까지 발생했다.

스리랑카는 발전소를 완공하면서 자산의 소유권을 얻었다. 그러나 고장이 발생했을 때 누구를 불러야 하고 어떤 부품을 사용해야 하며 누가 설비를 재가동할 수 있는지까지 독립하지 못했다면, 운영주권은 완전히 이전되지 않은 것과 다름없다.

락비자야 발전소 일자별 경과


락비자야 발전소 금액별 정리


출처: Sunday Times Sri Lanka – CEB의 CMEC O&M 계약 조사
추가 자료: Daily Mirror – China-built Norochcholai Plant continues to suffer breakdowns

A Dark Side: Report on Norochcholai Power plant


2-5. 파키스탄 닐룸–젤룸: 무너진 터널을 원래 시공사가 다시 수리했다


파키스탄의 969MW 닐룸–젤룸 수력발전소는 중국 Gezhouba Group과 CMEC 컨소시엄이 건설했다. 약 52km의 지하 수로와 터널을 이용하는 고난도 프로젝트였지만, 완공 이후 핵심 터널에서 문제가 반복됐다.

2022년 7월 배수터널에서 이상 수압과 누수가 발생하면서 발전소 전체가 멈췄다. 당시 추정된 직접 복구비는 25억 파키스탄루피, 영업손실은 200억 루피였다. 복구공사는 원래 토목 시공사였던 중국 Gezhouba Group이 다시 맡았다.

2024년 5월에는 도수터널에서 다시 문제가 발생해 발전소가 장기간 가동을 중단했다. 파키스탄 감사원은 5,070억 루피가 투입된 사업이 계획과 집행 측면에서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으며, 터널 결함과 붕괴가 설계 및 시공 품질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한다고 평가했다.

2026년 공개된 추가 감사 결과에 따르면 2022/23~2024/25 회계연도의 영업중단 손실은 991억8,000만 루피로 추정됐다. 2024년 5월 이후 발전소는 계속 가동하지 못했고, 터널 붕괴에 대한 최종 책임도 확정되지 않았다.

복잡한 지질조건과 설계변경이 있었기 때문에 모든 책임을 중국 시공사에 귀속시키기는 어렵다. 그러나 준공 후 핵심 구조물에 문제가 생겼고, 원래 시공사를 다시 불러야 했으며, 발전소가 생산하지 못한 전력의 가치가 국가와 소비자에게 전가됐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닐룸–젤룸 발전소 일자별 경과


닐룸–젤룸 발전소 금액별 정리



출처: Neelum Jhelum Hydropower Company – 공식 프로젝트 이력
Energy Update – 터널 붕괴 손실 및 복구계약
Dawn – Neelum-Jhelum project ‘a failure of planning, execution’
Profit by Pakistan Today – 2026년 추가 감사 결과


젤룸 수력발전소



2-6. 에콰도르 코카 코도 싱클레어: 계약과 보증이 강하면 청구서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중국 Sinohydro가 건설한 에콰도르의 1,500MW 코카 코도 싱클레어 수력발전소에서는 준공 전부터 구조물 균열과 계약 위반 문제가 제기됐다.

에콰도르 감사원은 분배관 구조물에서 7,648개의 균열을 확인했으며, 계약 위반과 구조적 결함으로 인한 국가 손실을 1억6,500만 달러로 산정했다. Sinohydro에 부과해야 할 8,000만 달러의 벌금이 징수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러나 이 사례의 결론은 발주국에 대한 일방적인 비용 전가가 아니었다. 2026년 국제중재 합의에 따라 에콰도르는 현금과 재생에너지 투자를 합쳐 4억 달러의 보상을 받게 됐다. 운영·유지보수와 운영위험도 PowerChina가 부담하는 방향으로 조정됐다.

이는 중요한 반례다. 중국 기업이 참여한 모든 프로젝트가 발주국의 일방적 손실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독립적인 감리, 장기간 유지되는 성능보증, 집행 가능한 이행보증금과 국제중재 조항을 확보하면 하자와 운영위험을 시공사에 되돌릴 수 있다.

코카 코도 싱클레어 발전소 일자별 경과



코카 코도 싱클레어 발전소 금액별 정리


출처: 에콰도르 감사원 – Sinohydro 관련 감사 결과
에콰도르 감사원 자료 – 사업비와 계약 구조
CELEC – 국제중재 합의 및 운영위험 이전

Ecuador: State files arbitration claim against Sinohydro over cracks in Coca Codo Sinclair hydroelectric dam, which caused significant environmental damage


3. 노스볼트에서 확인된 것은 ‘사보타주’가 아니라 ‘기술 의존’이다


유럽 배터리업체 노스볼트의 파산 원인을 설명하는 법원 문서에 중국 장비업체 엔지니어들의 고의적인 방해가 적시됐다는 주장이 유통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확인할 수 있는 미국 파산법원 제출자료와 스웨덴 파산관재인 관련 보도에서는 고의적 사보타주가 파산 원인으로 공식 인정됐다는 근거를 찾기 어렵다.

확인되는 사실은 노스볼트가 코로나19 기간에 중국산 생산장비를 완전한 공장인수시험(FAT) 없이 받아들였고, 이후 중국 Wuxi Lead 소속 기술자 수백 명이 현장에서 설치·보정·소프트웨어 설정과 직원교육을 담당했다는 것이다.

파산관재인 보고서를 인용한 보도는 노스볼트 내부에도 배터리 양산 경험이 부족해 중국 공급업체 의존도가 커졌다고 지적한다. 중국 업체에 대한 미지급 송장도 약 5억 스웨덴크로나에 달했다.

따라서 노스볼트에서 얻어야 할 교훈은 확인되지 않은 고의적 방해가 아니다. 핵심 공정의 설치·보정·소프트웨어 설정을 공급업체 기술자에게 맡긴 상태에서 내부 엔지니어링 역량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면, 공장을 소유하고도 생산라인을 독립적으로 통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노스볼트 중국 장비 의존 일자별 경과


노스볼트 금액별 정리



출처: Evertiq – Northvolt의 중국 장비업체 의존과 미완료 FAT
참고: Northvolt – 2025년 3월 스웨덴 파산 발표문, PDF

Northvolt Bankruptcy


4. 미국이 차단하려는 것은 장비가 아니라 외국의 잔존 권한이다


2026년 8월 26일 백악관이 공개한 전력망 안보 행정명령은 외국산 장비에 디지털 백도어가 내장되거나 외국 정부가 원격으로 접근할 가능성을 직접 언급한다. 국제분쟁이나 무역 중단으로 부품과 유지보수 서비스가 끊기는 상황도 국가안보 위험으로 규정한다.

적용 범위는 69kV 이상 송전망을 중심으로 하며 변압기, 발전기, 터빈, 고압차단기, 계통연계 인버터, BESS, UPS, 보호계전기, PLC·RTU·IED, 분산제어시스템과 안전계장시스템을 포함한다.

특히 장비 본체에 한정되지 않는다. 핵심 부품·소프트웨어·펌웨어·디지털 서비스·유지보수 서비스·원격접속 기능·생애주기 업데이트 체계까지 심사 대상이다.

다만 이번 조치를 모든 외국산 전력 장비의 일률적 금지라고 표현하면 범위가 과장된다. 금지 대상이 되려면 대상 외국 주체와 관련된 장비·서비스이면서 에너지부가 사보타주, 무단접속, 공급망 중단 또는 국가안보상 수용할 수 없는 위험을 초래한다고 판단해야 한다.

‘대상 외국 주체’에는 ITAR §126.1에 따른 미국의 무기금수·제재 대상국이 포함된다. 이 조항에는 중국이 명시돼 있기 때문에 중국 정부의 관할이나 통제를 받는 장비업체는 실질적인 핵심 심사 대상이 된다.

가장 강력한 부분은 기설치 장비다. 물리적으로 정상 작동하는 장비라도 공급업체·펌웨어·원격접속 위험이 확인되면 격리하거나 교체할 수 있다. 안보 분류 하나로 기존 전력자산이 조기 퇴출되는 규제적 좌초자산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미국 전력망 안보 행정명령 일자별 이행계획


행정명령의 수치·적용범위 정리


출처: 백악관 – 미국 대규모 전력망 안보 국가비상사태 행정명령
백악관 Fact Sheet
미국 전자연방규정집 – 22 CFR §126.1


5. AI 시대에는 전력망의 작은 취약점이 거대한 손실로 확대된다


과거에는 발전소 한 곳의 고장이 지역 정전과 전력회사의 손실로 끝날 수 있었다. 그러나 AI 데이터센터와 첨단 반도체 공장, 방산시설이 전력망에 연결되면서 전력중단의 피해 규모가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

수십억 달러가 투입된 AI 데이터센터는 전력품질 저하나 짧은 계통 장애에도 연산작업이 중단될 수 있다. 반도체 생산라인 역시 순간정전만으로 재공정과 웨이퍼 폐기 손실이 발생한다. 발전·송전 장비의 신뢰성은 이제 전기요금의 문제가 아니라 AI 경쟁력·첨단 제조능력·국방 생산능력의 문제가 됐다.

미국의 판단은 명확하다. 중국산 장비의 초기 구매가격이 낮더라도 장비 안에 확인하기 어려운 펌웨어가 존재하고, 원격 유지보수 권한이 외국 공급업체에 남으며, 부품 공급까지 특정 국가에 집중돼 있다면 그 장비는 충분히 싸지 않다.

앞으로 전력 장비를 구매할 때는 가격과 효율뿐 아니라 공급업체의 소유구조, 소프트웨어 출처, 원격접속 권한, 부품 재고, 유지보수 인력과 지정학적 단절 가능성까지 함께 평가해야 한다.

이는 전력장비 시장의 경쟁 기준이 단순한 제조원가에서 검증 가능한 공급망·사이버 보안·장기 서비스 독립성으로 이동한다는 의미다. 북미 현지 생산기반을 갖춘 변압기·스위치기어·계통자동화·BESS·산업제어 보안업체에는 구조적인 교체수요가 발생할 수 있다.

반대로 중국산 핵심 부품을 제3국에서 단순 조립하거나, 중국 본사의 펌웨어와 원격 유지보수 체계에 의존하는 업체는 미국 현지 생산을 표방하더라도 최종 시행규칙의 심사를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


6. ‘중국 기업은 모두 부실하다’는 주장도 경계해야 한다


개별 사례만으로 모든 중국 시공업체가 다른 국가의 기업보다 품질이 낮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다. 국제개발센터(CGD)가 2000~2023년 세계은행 지원사업 2,687건을 분석한 연구에서는 중국 업체의 계약금액 비중과 전체 사업 성과 사이에 통계적으로 유의한 부정적 관계가 발견되지 않았다.

출처: CGD – Chinese Contractors and Development Project Quality, PDF

그러나 국가기간시설의 조달은 평균적인 품질만으로 결정할 수 없다. 발전소나 송전망에서는 낮은 확률의 사고라도 피해가 국가 전체로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책당국이 관리해야 하는 것은 평균 고장률이 아니라 파국적 Tail-Risk이다. 공급국과 외교관계가 악화되거나 원격 지원과 핵심 부품이 중단됐을 때 자체적으로 설비를 운영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한 질문이다.

중국 기업이 건설한 수많은 발전소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사실과, 핵심 전력망에서 중국 공급망 의존을 제한해야 한다는 판단은 동시에 성립할 수 있다.


7. 앞으로 인프라 계약에서 반드시 확보해야 할 것


중국 기업과의 EPC 계약 자체를 금지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법은 아니다. 다만 초기 건설가격을 평가하기 전에 발주국은 최소한 다음 조건을 계약으로 확보해야 한다.

  • 출하 전 독립기관이 참여하는 공장인수시험(FAT)과 현장인수시험(SAT)

  • 소프트웨어 구성명세서와 펌웨어 검증권, 원격접속 기록 및 발주자 차단권

  • 핵심 예비부품의 현지 의무비축과 복수 공급원

  • 현지 기술자가 외국 인력 없이 운전·정비할 수 있을 때까지의 인수 유예

  • 출력·가동률·열효율에 연동된 장기 성능보증과 지체상금

  • 하자보증금과 모회사 지급보증, 국제중재 판정의 집행 가능성

  • 시공업체와 독립된 발주자 기술자문 및 설계검증 기관

  • 계약 종료 후에도 사용할 수 있는 소스코드·매뉴얼·설계도면의 에스크로


이 조건이 없다면 턴키 계약은 발전소를 완성된 상태로 넘겨받는 계약이 아니라, 시공업체에 장기간 운영을 의존하는 계약이 될 수 있다.


CONCLUSION


우간다 카루마댐의 4,000만 달러 추가 제안, 보츠와나 모루풀레 B의 243억 풀라 추가 직·간접비용, 스리랑카 락비자야의 6,700만 달러 O&M 계약, 파키스탄 닐룸–젤룸의 991억8,000만 루피 영업중단 손실은 서로 다른 국가에서 발생한 개별 사건이다.

모든 책임이 시공사에 있다고 단정할 수 없고 모든 중국산 설비가 위험하다는 증거도 아니다. 그러나 이 사례들은 핵심 인프라의 진짜 비용이 준공 시점의 EPC 가격이 아니라, 설비가 고장 난 뒤 외국 기술자와 부품, 소프트웨어 지원 없이도 계속 운영할 수 있는가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미국의 새로운 전력망 행정명령은 조달 기준을 최저가격에서 운영주권을 포함한 생애주기 위험으로 이동시킨다. 신규 장비만이 아니라 이미 설치된 장비, 소프트웨어, 펌웨어, 유지보수 서비스와 원격접속 권한까지 규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력망 장비를 구매한다는 것은 변압기나 터빈 한 대를 사는 일이 아니다. 향후 수십 년 동안 누가 그 장비를 진단하고, 수리하고, 업데이트하며, 필요할 때 외부 연결을 끊을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일이다.

인프라의 진짜 가격은 얼마에 지었는가가 아니라, 공급업체의 허락 없이도 멈추지 않을 수 있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전체 사례 종합 비교


아래 금액은 초기 EPC 사업비, 추가 보수 제안액, O&M 계약, 전력 수입비, 영업중단 손실 및 중재보상 등 성격이 서로 다른 수치다. 따라서 단순 합산보다는 각 프로젝트에서 초기 건설비 외에 어떤 형태의 두 번째 청구서가 발생했는지를 비교하는 용도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글을 마치며


몇 달 전 신차를 구입할 무렵,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BYD의 신형 전기차 광고를 자주 봤다. 가격은 저렴하면서도 주행성능과 편의사양은 기존 완성차에 뒤지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중국산 전기차는 유럽으로 빠르게 수출되며 전통 완성차업체의 시장점유율을 잠식하고 있었다. 국내 자동차 전문 유튜브에서도 중국 전기차의 성능과 가격경쟁력을 높게 평가하는 영상을 여러 차례 접하다 보니, 나 역시 잠시 BYD 차량을 사볼까 고민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기아차를 선택했다. (중국 불신)

최근에는 BYD 차량을 구입한 일부 국내 소비자들이 예상보다 높은 수리비와 부품비, 유지보수 비용을 부담했다는 경험담이 여러 커뮤니티를 통해 공유되고 있다.

https://www.threads.com/@jooni_moorook_oppa/post/DcVvaRSCRpz/media

https://www.threads.com/@jooni_moorook_oppa/post/DcVvaRSCRpz/media

https://www.threads.com/@jooni_moorook_oppa/post/DcVvaRSCRpz/media


그외 여러 사례 모음

https://arca.live/b/vehicle/173962379


개별 사례만으로 중국 기업이 의도적으로 유지보수 비용을 과잉 청구한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앞서 살펴본 발전소와 수력발전소 사례가 겹쳐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처음에는 낮은 가격과 빠른 공급능력을 앞세우지만, 제품이나 시설을 도입한 이후에는 부품·소프트웨어·전문인력과 유지보수 체계가 원래 공급업체에 종속되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두 번째 청구서가 발생하는 구조다. 개인이 구매하는 자동차에서도 이러한 문제가 우려된다면, 수십 년간 국가경제와 국민의 일상을 떠받쳐야 하는 발전소와 송전망에서는 그 위험을 훨씬 엄격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특히 AI 데이터센터와 첨단 제조업의 확대로 전력망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에서, 중국 공급망의 신뢰도는 단순한 가격이나 제품 성능만으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고장이 발생했을 때 합리적인 비용으로 수리할 수 있는지, 외국 기술자 없이 독립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지, 공급업체가 지원을 중단하더라도 핵심 부품과 소프트웨어를 확보할 수 있는지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

결국 자동차든 발전소든 구매 당시 얼마나 저렴했는가보다, 문제가 생긴 이후에도 공급업체에 끌려다니지 않고 합리적인 비용으로 계속 사용할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개인의 자동차 선택에서도 고민되는 문제라면, 국가의 전력과 사회기반시설을 중국 기업에 맡길 때는 그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경계와 검증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중국산 장비들로 라인을 쫙 깔아놓은 이차전지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라인이 문제 없이 잘 돌아가는지..)

=끝

2026년 8월 25일 화요일

생각정리 351 (* Europe’s Structural Decline)

 Europe은 왜 저럴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들게끔하는 최근 생각을 정리해본다.

유럽의 성장 엔진은 왜 멈췄는가


고령화·인재 유출·재정 분열·에너지 문제가 AI 시대 유럽의 상대적 후퇴를 가속하는 방식


이전 글에서 앞으로의 세계를 Public Debt는 사회 전체가 부담하지만, AI가 만들어내는 성장의 과실은 일부 국가와 기업에 집중되는 시대라고 정리했다.

그렇다면 이 구조에 가장 취약한 지역은 어디일까.

현재로서는 유럽, 그중에서도 독일·프랑스·이탈리아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세 나라는 서로 다른 경제구조를 갖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낮은 성장률과 고령화, 높은 사회지출, 정치적 분열에 직면해 있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미래에 투자해야 할 시점에 연금·의료·국방·에너지 보조금과 이자비용까지 동시에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유럽은 낮은 성장률로도 비교적 안정적인 사회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막대한 전력·컴퓨트·자본과 고급인재를 선제적으로 투입해야 하는 AI 경쟁에서는 느린 성장과 느린 의사결정 자체가 누적적인 경쟁력 상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국가별 생산성과 재정상태가 크게 다른 경제를 하나의 통화로 묶은 유로화의 구조적 긴장도 다시 커지고 있다.

유로는 국가별 환율 차이를 없앴지만, 각국의 인구구조·산업경쟁력·재정규율·정치문화를 하나로 만들지는 못했다.


1. 문제는 낮은 성장률이 아니라 성장 엔진의 고장이다


2026년 봄 유럽위원회 전망을 보면 독일·프랑스·이탈리아의 향후 성장률은 모두 1% 안팎에 머문다.

참고자료: European Commission–Germany, France, Italy, 21 May 2026.

세 나라가 처한 상황은 같지 않다.

독일은 아직 부채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지만 제조업과 수출이라는 성장 엔진이 약해지고 있다. 프랑스는 상대적으로 우수한 전력 기반을 갖고 있지만 재정적자와 정치적 교착이 심각하다. 이탈리아는 이미 높은 부채를 안고 있는 상태에서 생산성과 인구가 함께 정체돼 있다.

따라서 유럽의 문제를 단순히 정부부채가 많거나 복지가 지나치다는 문장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더 정확한 문제는 기존 사회모델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은 계속 증가하는데, 그 비용을 부담할 새로운 성장산업과 생산성 향상은 충분히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사회지출이 많더라도 생산성과 세수가 빠르게 증가한다면 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성장률이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태에서 연금·의료·국방·에너지·이자비용이 동시에 증가하면 미래 투자를 위한 재정공간은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Low Growth → Weak Tax Base → Fiscal Pressure → Tax·Contribution Increase → Private Investment Weakness → Lower Productivity

유럽의 저성장은 하나의 결과가 아니라 다음 저성장을 만들어내는 원인으로 바뀌고 있다.


2. 유럽을 지탱했던 세 가지 배당이 동시에 끝났다


전후 유럽경제는 세 가지 구조적 배당을 누렸다.


첫 번째는 생산연령인구가 증가하면서 노동력과 납세자가 함께 늘어난 Demographic Dividend였다. 두 번째는 미국의 안보 우산 아래 국방비를 절감할 수 있었던 Peace Dividend였으며, 세 번째는 러시아의 저렴한 에너지와 중국의 수요를 동시에 이용한 Globalisation Dividend였다.

독일은 러시아산 가스를 제조업의 값싼 투입비용으로 사용하고, 중국에는 자동차·화학·기계류를 수출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도 단일시장과 낮은 금리, 세계화가 제공한 안정적인 환경에서 복지국가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세 가지 조건이 모두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Working-age Population ↓ + Defence Spending ↑ + Energy Cost ↑ + China Competition ↑

Mario Draghi는 유럽의 생산가능인구가 2040년까지 매년 약 200만 명씩 감소할 수 있으며, 최근의 생산성 추세가 이어진다면 유럽은 2050년까지 GDP를 현재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동시에 디지털 전환·탈탄소·국방력 확충을 위해 유럽의 투자율을 GDP 대비 약 5%p 높여야 한다고 추정했다. 복지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성장해야 하지만, 성장을 재개하기 위해서는 이전보다 훨씬 많은 선행투자가 필요한 상황이다.

참고자료: The Future of European Competitiveness – Part A, September 2024.

고령화 관련 지출의 절대 수준도 이미 높다. 유럽위원회의 2024 Ageing Report에 따르면 2022년 연금·의료·장기요양·교육을 합한 지출은 독일이 GDP의 24.3%, 프랑스가 29.9%, 이탈리아가 27.3%였다.

특히 공적연금 지출은 프랑스가 GDP의 14.4%, 이탈리아가 15.6%에 달했다. 장기전망에서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총고령화 비용이 반드시 계속 증가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는 이미 시행된 연금개혁과 급여조건 조정이 유지된다는 전제에 기반한다.

참고자료: European Commission, 2024 Ageing Report.

따라서 중요한 것은 향후 지출의 증가폭만이 아니다.

이미 높은 사회지출을 유지하면서 국방·전력망·AI 인프라라는 새로운 비용까지 동시에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3. 독일·프랑스·이탈리아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약해지고 있다


독일: 제조업 성장모델의 균열


독일의 현재 위기를 노동문화나 노동시간 문제만으로 설명하면 핵심을 놓치게 된다.

독일 제조업 모델은 오랫동안 다음과 같은 구조에 기반했다.

Cheap Russian Gas + Chinese Final Demand + European Supply Chain + US Security

그러나 러시아산 가스의 단절은 화학·철강·유리·비료 등 에너지 집약 산업의 비용구조를 바꿨고, 중국은 독일의 최대 고객에서 자동차·기계·산업장비의 직접 경쟁자로 변했다. 전기차와 소프트웨어 전환에 늦은 자동차산업은 중국 현지 판매와 유럽 내 점유율을 동시에 압박받고 있다.

독일은 코로나 이후 선진국 중 가장 약한 회복세를 보였으며, 2025년에도 성장률이 **0.2%**에 그쳤다. 재정준칙 개혁을 통해 국방과 인프라 투자를 확대하기 시작했지만, 재정적자는 2027년 GDP의 **4.1%**까지 높아질 전망이다.

재정을 확대해도 성장률이 1%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은 독일의 문제가 단순한 수요 부족보다 산업구조의 변화에 가깝다는 의미다.

더구나 AI 시대의 제조업은 과거보다 더 많은 전력을 필요로 한다. 반도체·배터리·전기차·산업용 AI·데이터센터 모두 안정적이고 저렴한 전력을 요구하지만, 독일은 원전 폐쇄와 러시아 가스 단절 이후 전력가격과 공급 안정성을 동시에 관리해야 한다.

독일이 앞으로 더 많은 부채를 인프라와 국방에 투입하더라도, 그 자본이 값싼 전력·그리드·디지털 인프라와 생산성 향상으로 연결되지 못한다면 결과는 성장회복보다 정부지출 의존도가 높아진 저성장 경제에 가까울 수 있다.


프랑스: 전력은 강하지만 재정과 정치가 약하다


프랑스는 독일·이탈리아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원전 중심의 전력시스템은 프랑스가 유럽에서 대규모 데이터센터와 AI 인프라를 유치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경쟁력이다. RTE에 따르면 2025년 프랑스 전력의 95% 이상이 저탄소 전원에서 생산됐고, 생산량의 약 20%가 주변 국가로 수출됐다.

2026년 프랑스에는 약 300개의 데이터센터가 존재하며 전력소비량은 약 10TWh로 전체 소비의 2% 수준이다. 그러나 2026년 5월 기준 데이터센터 관련 계통연결 신청은 약 18GW에 달했다.

이는 프랑스가 유럽 AI 인프라의 중심지가 될 잠재력이 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발전량보다 특정 지역의 송전망과 접속용량이 새로운 병목이 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참고자료: RTE, Les data centers en chiffres clés, 2026.

문제는 재정이다.

프랑스의 재정적자는 2026년에도 GDP의 **5.1%**에 머물고, 현행 정책이 유지되면 2027년에는 **5.7%**로 다시 확대될 전망이다. 정부부채는 같은 해 GDP의 120.2%, 이자비용은 2.8%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금개혁과 재정긴축은 강한 정치적 저항에 직면하고, 정부가 의회에서 안정적인 지지를 확보하기도 어려워졌다. 프랑스의 문제는 개혁의 필요성을 몰라서가 아니라 누가 현재의 소득과 혜택을 포기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기 어렵다는 데 있다.

프랑스는 유럽 국가 가운데 AI 전력 경쟁에서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으면서도, 이를 장기적인 자국 기업·클라우드·모델 경쟁력으로 전환할 재정과 정치적 실행력이 부족할 가능성이 있다.

프랑스에는 전력이 있지만 그 전력을 사용하는 데이터센터가 미국 클라우드와 모델기업의 유럽 거점에 머문다면, 전력수요는 프랑스에 남아도 AI의 초과이익은 해외로 이전될 수 있다.


이탈리아: 높은 부채보다 더 큰 문제는 낮은 생산성이다


이탈리아는 이미 GDP의 **137%**를 넘는 정부부채를 안고 있다. 그럼에도 2026년과 2027년 성장률은 각각 **0.5%와 0.6%**에 그칠 전망이다.

현재 투자를 지탱하는 중요한 축은 EU Recovery and Resilience Facility다. 그러나 관련 사업이 종료되는 2027년부터 건설과 설비투자의 성장기여도는 약해질 가능성이 높다.

이탈리아는 중소·가족기업 중심의 산업구조가 강하고 자본시장보다 은행대출과 내부자금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이러한 구조는 전통적인 제조업에는 적합했지만, 대규모 무형자산·컴퓨트·소프트웨어·인재 투자가 선행돼야 하는 AI 산업에는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2026년 ECB 연구에서도 유로지역 기업의 약 70%가 어떤 형태로든 AI를 사용한다고 응답했지만, AI를 기업운영에 깊이 통합한 기업은 **7%**에 불과했다. 이탈리아는 조사 대상국 가운데 AI 도입률이 가장 낮은 국가군에 속했다.

참고자료: ECB, Adoption and Investment in AI across the Euro Area, July 2026.

이탈리아의 낮은 실업률 역시 반드시 강한 경제를 의미하지 않는다. 생산연령인구가 감소하면 노동수요가 약해도 실업률은 낮아질 수 있다.

Population ↓ → Firm Scale ↓ → Investment ↓ → Productivity ↓ → Nominal Growth < Interest Cost → Debt/GDP ↑

성장이 낮은 상태에서 이자비용과 연금지출이 재정을 먼저 점유하면 전력망·데이터센터·연구개발에 투자할 공간은 더욱 줄어든다.


4. 인재 유출은 유럽의 성장기반을 안에서부터 약화시킨다


고령화로 노동력이 감소하는 지역이라면 해외의 젊은 인재를 유치하는 것만큼 기존의 고급인재와 창업가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고급인재가 단순히 개인 자격으로 이주하는 것을 넘어, 창업기업의 본사·경영진·지식재산·자본조달 기능이 함께 미국으로 이동하고 있다.

Draghi Report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21년 사이 유럽에서 설립된 유니콘 147개 가운데 40개가 해외로 본사를 옮겼고, 대부분이 미국으로 이동했다. 2026년 EIB 연구는 EU Scale-up의 약 10%가 해외로 이전하며, 그중 약 85%가 미국을 선택한다고 정리했다.

참고자료: Draghi Report – Part A; EIB, Drivers of Relocation by Innovative EU Startups and Scaleups, 12 January 2026.

기업들이 떠나는 이유는 단순히 세율 하나 때문이 아니다.

미국에는 더 큰 단일시장과 깊은 Venture Capital, 높은 Stock-based Compensation, 빠른 고객확보, 단순한 규제체계, 고급 상업·영업인력이 함께 존재한다. 기업이 미국으로 이동하면 창업자와 핵심 경영진, 연구인력과 후속 인재도 자연스럽게 이동한다.

유럽은 양질의 대학과 연구인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를 대기업과 글로벌 플랫폼으로 성장시키는 과정이 약하다. 유럽에는 매년 인구 100만 명당 약 850명의 STEM 졸업자가 배출되는 반면 미국은 1,100명을 넘고, 유럽 기업의 약 60%가 기술 부족을 투자 장애요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연구자와 기술인력이 부족한데 기존 인재까지 해외로 이동하면 고령화의 충격은 더욱 커진다.

Ageing ↑ → Tax·Social Contribution Burden ↑ → After-tax Reward ↓ → Talent·Company Exit ↑ → Tax Base ↓ → Remaining Workers’ Burden ↑

이 구조가 위험한 이유는 인재 유출이 평균적으로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이동성이 높은 사람은 대체로 창업가·엔지니어·연구자·금융인력처럼 생산성과 소득, 미래 세수기여도가 높은 계층이다. 이들이 빠져나가면 인구는 소폭 줄어도 혁신역량과 세수 기반은 그보다 훨씬 크게 약해질 수 있다.

유럽에서 교육받은 인재가 미국 기업에서 AI 모델을 개발하고, 유럽에서 시작된 기업이 미국 자본시장에서 성장하며, 그 기업의 지식재산과 시장가치가 미국에 귀속된다면 유럽은 교육비와 초기 연구비를 부담하고 상업화의 과실은 해외에 넘기는 셈이다.

Brain Drain은 단순한 인구 이동이 아니라 미래의 Profit·Tax Revenue·Intellectual Property가 함께 이동하는 현상이다.

 


 


5. AI 경쟁에서 전력은 비용이 아니라 생산능력이다


과거의 디지털경제에서는 전력비가 중요한 비용이기는 했지만 산업의 절대적인 진입장벽은 아니었다. 소프트웨어 기업은 비교적 적은 유형자산으로 전 세계 시장에 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었다.

그러나 AI는 다르다.

Firm Power + Grid Connection + Compute + Cooling + Capital → AI Capacity → Model·Cloud Revenue → Productivity·Tax Base

IEA는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소비가 2024년 약 415TWh에서 2030년 945TWh로 두 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 AI 최적화 데이터센터의 전력수요는 같은 기간 네 배 이상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EU 데이터센터의 전력소비도 2024년 약 70TWh에서 2030년 115TWh로 늘어날 전망이다. 문제는 연간 발전량 전체보다 데이터센터가 원하는 위치에 수백MW에서 수GW의 전력을 얼마나 빠르게 연결할 수 있느냐다.

참고자료: IEA, Energy and AI, 10 April 2025; European Commission, Data Centres, 17 November 2025.

Draghi Report에 따르면 유럽 기업이 부담하는 전력가격은 여전히 미국의 2~3배, 천연가스 가격은 4~5배에 달한다. 여기에 국가별로 분절된 에너지시장, 긴 인허가 기간, 송전망 부족, 높은 세금과 규제비용이 더해진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량을 늘리는 것만으로 AI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전력을 해결할 수는 없다. 데이터센터는 평균적으로 저렴한 전력보다 특정 장소에서 24시간 공급되는 전력과 신속한 계통연결을 필요로 한다.

AI 경쟁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실제 가동 가능한 전력과 계통접속권을 먼저 확보하고, 이를 컴퓨트·클라우드·모델·기업 생산성으로 연결할 수 있는가이다.

프랑스는 원전을 통해 이 경쟁에서 유럽 내 상대적 우위를 가질 수 있다. 반면 독일과 이탈리아는 높은 전력비와 산업용 전력수요, 탈탄소 목표를 동시에 감당해야 한다.


6. 유럽은 AI를 사용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소유하지 못해서 뒤처질 수 있다


유럽 기업의 AI 도입 자체가 매우 느린 것은 아니다.

EIB 조사에서는 첨단 디지털 기술을 사용하는 기업 비중이 EU 77%, 미국 78%로 비슷했고, 생성형 AI 사용률도 EU 37%, 미국 36%로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AI를 두 개 이상의 업무영역에 통합한 기업은 미국이 81%, EU가 55%였다.

참고자료: European Investment Bank, How are EU firms faring with AI?, 8 December 2025.

유럽 기업도 미국산 AI 모델과 클라우드를 사용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컴퓨트·클라우드·모델·데이터센터의 소유권이 미국 기업에 있다면, 생산성 향상의 일부는 클라우드 사용료와 AI 구독료의 형태로 다시 미국에 지급된다.

European AI Adoption ↑ → Productivity Benefit ↑ → Foreign Cloud·Model Payments ↑ → Overseas Profit·Market Value ↑

유럽은 AI의 소비자와 응용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지만 핵심 인프라와 플랫폼을 소유하지 못하면 초과이익·고급일자리·시장가치·세수는 제한적으로만 가져갈 수 있다.

2026 Stanford AI Index에 따르면 미국에는 5,427개의 데이터센터가 존재하며, 이는 다른 어떤 국가보다 10배 이상 많은 수준이다. 2025년 미국의 민간 AI 투자는 2,859억 달러였고, 주목할 만한 Frontier Model의 90% 이상은 민간기업에서 개발됐다.

참고자료: Stanford HAI, 2026 AI Index Report.

EU도 최대 5개의 AI Gigafactory와 19개의 AI Factory를 구축하고 데이터센터 용량을 5~7년 안에 세 배로 확대한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그러나 공식 일정상 첫 AI Gigafactory의 착공은 2027년부터 시작될 예정이다.

참고자료: European Commission, AI Continent Action Plan, AI Gigafactories.

미국 기업들이 이미 대규모 데이터센터와 장기 전력계약을 집행하는 동안 유럽은 이제 공동투자 구조와 입지를 결정하고 있다.

AI 경쟁에서는 이러한 몇 년의 차이가 단순한 시간차로 끝나지 않는다.

Compute·Talent·Users·Cash Flow ↑ → Better Models·Services ↑ → More Investment ↑ → Market Power ↑

선두기업이 확보한 고객·데이터·현금흐름이 다음 투자를 자체적으로 조달하기 때문에 초기의 인프라와 인재 격차는 시간이 흐른다고 자연스럽게 축소되지 않는다.



7. 재정적자가 커질수록 유로화 내부의 균열이 드러난다


독일·프랑스·이탈리아의 재정문제는 각 국가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세 나라는 독립적인 통화와 중앙은행을 갖고 있지 않고 하나의 유로와 ECB 통화정책을 공유한다.

만약 각국이 독자적인 통화를 사용했다면 낮은 생산성·높은 재정적자·약한 경상수지를 가진 국가의 통화는 독일 통화에 비해 절하됐을 가능성이 높다. 통화가치 하락은 수입물가를 높이지만, 임금과 수출가격을 상대적으로 낮추면서 경쟁력 조정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유로존에서는 이러한 조정경로가 차단돼 있다.

유로는 국가별 환율을 하나로 묶었지만 국가별 생산성과 재정상태까지 하나로 묶지는 못했다.

따라서 경제력의 차이는 환율이 아니라 다른 가격을 통해 나타난다.

  • 독일 국채와 프랑스·이탈리아 국채의 금리 차이

  • 국가별 은행의 자금조달 비용

  • 기업대출 금리와 신용공급 격차

  • 임금 억제와 실업을 통한 Internal Devaluation

  • EU 재정준칙과 긴축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

  • ECB의 국채매입과 공동부채를 둘러싼 국가 간 분쟁

경제가 안정적이고 금리가 낮을 때는 하나의 통화가 제공하는 편익이 이러한 차이를 가릴 수 있다. 그러나 공공부채와 재정적자가 확대되고 장기금리가 높아지면 시장은 다시 국가별 상환능력을 구분하기 시작한다.

유럽위원회의 2025 Debt Sustainability Monitor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단기 자금조달 수요가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평가했다. 또한 현행 정책이 유지될 경우 향후 10년 동안 EU 부채비율은 상승하며, 12개 회원국이 중기적으로 높은 재정위험에 놓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참고자료: European Commission, Debt Sustainability Monitor 2025, 12 February 2026.

이때 ECB는 어려운 선택에 직면한다.

프랑스·이탈리아 국채금리가 빠르게 오르는 것을 방치하면 은행과 기업의 조달비용이 상승하고 유로존 금융시장이 분절될 수 있다. 반대로 ECB가 특정 국가의 국채를 지속적으로 매입하면 재정규율이 약한 국가의 비용을 유로존 전체가 부담한다는 반발이 커질 수 있다.

ECB가 2022년 도입한 Transmission Protection Instrument 자체가 이러한 구조적 취약성을 보여준다. ECB는 정당화되지 않은 시장불안으로 특정 국가의 조달여건이 악화될 경우 국채를 매입할 수 있지만, 지원 대상국의 재정건전성과 EU 재정규율 준수를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참고자료: ECB, The Transmission Protection Instrument, 21 July 2022.

따라서 앞으로 유로존의 균열은 반드시 유로화의 즉각적인 해체로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겉으로는 하나의 환율을 유지하면서 내부적으로는 국채금리·은행 신용·성장률·실업률의 격차가 벌어지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

One Currency + Divergent Fiscal Paths → Sovereign Spread ↑ → Financial Fragmentation ↑ → ECB Intervention Pressure ↑ → Political Conflict ↑

결국 유럽은 두 가지 방향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하나는 공동부채·공동재정·재정이전을 확대해 통화통합을 재정통합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국가별 재정규율을 강화하고 고부채 국가에 더 강한 지출조정과 구조개혁을 요구하는 것이다.

전자는 독일과 북유럽 납세자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고, 후자는 프랑스·이탈리아를 비롯한 고부채 국가의 정치적 저항을 확대할 수 있다.

고령화·국방·에너지·AI 투자로 모든 국가의 재정수요가 동시에 증가하는 환경에서는 어느 쪽도 쉽게 선택하기 어렵다.



8. 리콴유가 오래전에 지적했던 유로화의 근본 문제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는 2011년 유럽 재정위기가 한창이던 시기에 유로화의 근본 문제를 매우 직관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유로가 서로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국가들을 같은 드러머에 맞춰 행진하도록 만든다고 지적했다. 그리스가 독일과 같은 속도와 규율로 움직일 수 없는데도 하나의 통화와 통화정책을 적용하면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취지였다.

또한 저축성향과 지출습관, 재정규율이 서로 다른 국가들을 하나의 단일한 유럽으로 묶는 것은 지나치게 어렵고, 결국 2단계 또는 3단계로 나뉜 유럽이 나타날 수 있다고 보았다.

참고자료: Lee Kuan Yew School of Public Policy, Lee Kuan Yew Reflects on Europe, 26 December 2011.

리콴유는 유로화가 붕괴할 가능성까지 언급했지만, 그 전망은 아직 현실화하지 않았다. 유럽은 ESM과 은행감독체계, ECB의 OMT·PEPP·TPI, 코로나 이후 공동부채를 도입하며 제도를 보완했다.

그러나 유로가 생존했다는 사실이 그가 지적한 문제가 해결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유럽은 통화통합을 유지하기 위해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더 많은 중앙은행 개입과 공동보증, 재정이전 장치를 추가해 왔다. 통합된 것은 각국의 경제구조가 아니라, 경제구조의 차이에서 발생한 위험을 처리하는 제도에 가까웠다.

리콴유의 통찰은 유로화 자체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는 유럽이 높은 생활수준과 교육을 유지하더라도 미국·중국과 같은 거대한 단일국가에 비해 점차 작은 행위자로 밀려날 수 있다고 보았다. 또한 유럽이 이민을 필요로 하면서도 정치적으로 이를 수용하기 어려운 Catch-22에 빠질 가능성도 언급했다.

그가 바라본 핵심은 유럽의 즉각적인 빈곤화가 아니었다.

각국이 여전히 비교적 잘사는 사회로 남더라도,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통합하지 못하면 세계의 규칙과 기술을 결정하는 주체에서 점차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AI 경쟁은 이 경고를 더욱 현실적인 문제로 만들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국가 단위에서 전력·컴퓨트·국방·산업정책과 자본시장을 연결할 수 있다. 반면 유럽은 공동의 AI 전략을 발표하더라도 실제 전력정책·인허가·조세·재정·노동법은 상당 부분 국가별로 분절돼 있다.

리콴유가 지적했던 다른 속도와 규율을 가진 국가들을 하나의 체제로 움직이게 하는 어려움이 이제는 국채와 환율을 넘어 데이터센터·전력망·AI 투자에서도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9. 극우정당의 부상은 원인이라기보다 분배갈등의 증상이다


독일·프랑스·이탈리아에서 우파와 극우정당이 성장한 현상도 이러한 경제구조와 분리해 보기 어렵다.

독일 AfD의 정당득표율은 2021년 **10.4%**에서 2025년 **20.8%**로 두 배가 됐다. 프랑스에서는 2024년 총선 1차 투표에서 국민연합이 **29.3%**를 얻었고, 국민연합과 우파연합을 합하면 약 3분의 1의 득표를 기록했다.

참고자료: German Federal Returning Officer, 2025 Election; France Ministry of the Interior, 2024 Legislative Election.

물론 이를 경제적 불만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다. 이민·치안·문화적 정체성·EU 통합에 대한 반발도 중요한 원인이다.

그러나 저성장 환경에서는 이 모든 갈등이 더욱 격해진다. 성장할 때는 고령층의 복지, 노동자의 임금, 기업의 이윤, 이민자의 사회통합을 어느 정도 함께 충족시킬 수 있지만, 경제가 정체되면 모든 정책이 기존 소득을 둘러싼 제로섬 경쟁으로 바뀐다.

Low Growth → Distribution Conflict ↑ → Political Fragmentation ↑ → Reform Difficulty ↑ → Lower Investment → Lower Growth

고령화로 이민자가 필요하지만 이민 확대는 극우정당의 지지를 높일 수 있다. 복지지출을 줄여야 하지만 복지축소는 좌우 양쪽의 정치적 반발을 부른다. 기업과 인재를 붙잡기 위해 세금을 낮춰야 하지만 재정적자가 확대되면 세수 확보가 더 중요해진다.

유럽은 서로 충돌하는 정책을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극우정당의 부상은 유럽 경제를 망가뜨린 최초의 원인이라기보다 기존 정치가 성장과 분배, 이민과 고령화의 균형을 더 이상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에 가깝다.



결론: 유럽은 무너지기보다 상대적으로 작아질 가능성이 높다


유럽이 곧 붕괴하거나 AI 경쟁에서 완전히 탈락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유럽에는 ASML을 비롯한 반도체 장비기업, Siemens와 Schneider Electric 같은 산업자동화·전력기업, 강한 제조업 기반, 우수한 연구인력과 높은 가계저축이 존재한다. 프랑스의 원전과 저탄소 전력은 AI 데이터센터 유치에서 분명한 경쟁력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유럽은 산업용 AI·로보틱스·자동차·에너지 관리·제약과 과학 분야에서 상당한 생산성 향상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현재의 제도와 투자속도가 유지된다는 Base Case에서는 유럽이 Frontier Model과 Cloud·Compute를 지배하는 지역으로 부상하기보다, 미국산 AI 인프라를 활용해 기존 산업의 경쟁력을 방어하는 지역에 머물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유럽의 미래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는 단어는 붕괴보다 상대적 후퇴일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은 더 많은 자본을 전력·반도체·데이터센터·AI 모델에 투입하고 그 투자에서 발생한 이익을 다시 다음 인프라에 투입한다. 반면 유럽은 연금·의료·국방·에너지 보조금과 이자비용을 부담한 뒤 남은 재정공간 안에서 AI 투자를 결정해야 한다.

US·China: Capital → Power·Compute → AI Growth → Profit·Tax Base → Reinvestment

Europe: Welfare·Interest·Defence ↑ → Fiscal Space ↓ → AI Investment Delay → Talent·Technology Outflow ↑ → Growth Leakage

재정적자가 확대될수록 국가별 경제력의 차이는 유로화라는 단일 환율 아래에서 국채금리와 신용비용, 긴축부담의 차이로 나타날 것이다. 이를 막으려면 더 강한 공동재정과 부채의 공동부담이 필요하지만, 이는 다시 국가 간 정치적 갈등을 키울 수 있다.

유럽의 근본적인 문제는 복지국가를 선택했다는 데 있지 않다.

복지국가를 유지하려면 더 높은 생산성이 필요한데, 기존 복지체제를 지키는 데 자본과 정치적 역량을 우선적으로 사용하면서 그 생산성을 만들어낼 전력·AI·기업·인재 투자가 늦어지고 있다는 데 있다.

AI 시대에는 이러한 모순을 장기간 가릴 수 없다.

AI는 소프트웨어처럼 국경을 넘어 확산되지만, 그 AI를 생산하는 전력·컴퓨트·데이터센터·클라우드·자본과 고급인재는 특정 국가와 기업에 귀속된다.

유럽 국민과 기업도 AI를 사용하겠지만 핵심 인프라와 기업을 소유하지 못한다면 생산성 향상의 과실 중 상당 부분을 해외 플랫폼에 지불하게 된다. 여기에 유럽에서 교육받은 인재와 유럽에서 시작된 기업마저 미국으로 이동한다면, 미래의 기업이익과 시장가치·세수까지 함께 이전된다.

유럽은 AI를 사용하지 못해서 뒤처지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AI를 사용하는 시대에도 전력·컴퓨트·클라우드·모델과 인재를 충분히 소유하지 못함으로써 뒤처질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유럽에 남는 것은 높은 사회비용과 공공부채, 국가별 재정갈등, 값비싼 에너지와 수입한 AI 서비스가 되고, AI가 만들어내는 초과이익과 미래 세수는 미국과 일부 선도기업에 더욱 집중될 수 있다.

리콴유가 오래전에 예상한 것처럼 유럽은 여전히 교육수준이 높고 상당히 풍요로운 지역으로 남을 수 있다. 다만 미국과 중국이 새로운 기술과 산업질서를 결정하는 동안, 유럽은 그 질서를 만드는 주체가 아니라 규제하고 수입하며 비용을 분담하는 지역으로 점차 밀려날 수 있다.

이전 글에서 언급했던 Public Debt의 사회화와 AI 성장 과실의 집중화가 가장 선명하게 나타날 수 있는 지역이 바로 유럽일지도 모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