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군가는 최후의 승자가 되겠지.. |
※ 본 글은 투자 권유가 아닌 개인적인 판단과 포트폴리오 변화에 대한 복기 기록이다.
1. 다시 돌아온 AI Software
2022년 해외기업 P/F를 본격적으로 구성하기 시작했을 때, 가장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였던 영역은 AI Software, 그중에서도 AI 서비스를 구축하고 운영하는 기반인 PaaS 계층이었다.
당시에는 Frontier LLM이 지금처럼 강력해질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데이터 주권이나 AI의 안전·보안·정렬 문제 역시 지금만큼 중요한 투자 변수로 보지 않았다. 과거 인터넷 산업에서 플랫폼과 표준을 장악한 기업들이 가장 큰 가치를 가져갔던 경험 때문에, AI에서도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 플랫폼의 장기적인 가치 포착력이 더 클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다만 이때 세웠던 가설과 이후의 판단 변화는 이미 아래 글들에 남겨두었다. 중복되는 내용은 다시 길게 설명하기보다 이전 기록으로 갈음하려 한다.
해외투자 점검
Agentic AI 확산에 따라 실시간 데이터, 실행, 저장, 관측, 보안 기능을 제공하는 PaaS의 구조적 성장을 예상했다.해외투자 점검 2
Frontier LLM이 기존 소프트웨어의 기능과 고객 접점을 직접 흡수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PaaS 비중을 대폭 축소했다.해외투자 점검 3 (*2Q25 Review)
실적을 통해 AI 투자 수요가 소프트웨어보다 데이터센터와 하드웨어 병목에서 더 직접적으로 나타나는지 확인했다.생각정리 90 (* 해외투자 점검4, 반도체)
Agentic AI가 요구하는 연산량과 데이터 이동량 증가를 중심으로 메모리·패키징·전력 제약을 살펴봤다.생각정리 137 (* 해외투자점검 5)
메모리를 독립된 부품이 아니라 네트워크와 연결된 메모리 패브릭으로 보기 시작했다.생각정리 243 (* 해외투자점검 6)
가치사슬 전반에 분산돼 있던 P/F를 메모리·광통신·패키징·소재 등 실제 공급 부족과 가격 결정력이 확인되는 병목으로 압축했다.
해외투자점검 1~6의 흐름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플랫폼의 장기 가치’를 선호했던 초기 관점이 Frontier LLM의 기능 내재화를 거치며 ‘희소한 물리적 병목의 가격 결정력’을 우선하는 방향으로 이동한 과정이었다.
2. 2022년에 생각했던 PaaS와 지금 다시 보는 PaaS는 다르다
2022년의 가설은 AI Super App이 하나둘 등장하면 이를 개발하고 운영하기 위한 데이터·개발·배포 플랫폼의 사용량도 자연스럽게 늘어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당시 PaaS 투자의 근거는 ‘AI 애플리케이션 수의 증가’였다.
하지만 실제 시장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다. AI Super App의 가능성은 다수의 독립 소프트웨어로 확산되기보다 Frontier LLM으로 집중됐고, 모델 자체가 검색·분석·코딩·데이터 처리 기능을 흡수했다. 소프트웨어가 AI의 보완재가 아니라 경쟁재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고, 이에 따라 P/F의 중심을 연산·메모리·네트워크 등 쉽게 내재화할 수 없는 하드웨어 병목으로 옮겼다.
최근 OpenClaw와 Muse 이후에는 다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AI가 질문에 답하는 인터페이스를 넘어 사용자를 대신해 계획하고, 도구를 호출하고, 여러 단계의 작업을 지속적으로 수행하는 형태로 발전하면서 Agent AI가 새로운 Super App의 형태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기 시작했다.
Agent는 단순한 모델 호출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장시간 유지되는 실행 환경, 상태와 기억의 저장, 권한 관리, 외부 시스템과의 연결, 장애 추적, 보안 통제 등이 함께 필요하다. 현재 다시 주목하는 PaaS는 과거의 범용 개발 플랫폼이 아니라, Agent의 행동을 실제 업무로 연결하고 통제하는 ‘실행계층 PaaS’다.
즉 과거에는 애플리케이션이 많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근거로 PaaS를 봤다면, 지금은 Agent가 한 번의 명령을 처리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실행 횟수와 데이터 이동량, 저장량, 보안 이벤트가 실제로 증가하는지를 보고 있다. 과거의 가설이 앱의 수에 기반했다면, 현재의 가설은 Agent당 실행 강도와 운영 복잡도에 기반한다.
3. Frontier LLM과 경쟁하는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이를 운영하는 소프트웨어
과거 PaaS 비중을 줄였던 가장 큰 이유는 Frontier LLM이 기존 소프트웨어 기능을 직접 내재화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위험은 지금도 사라지지 않았다. 따라서 AI Software 전체를 다시 긍정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 다시 편입한 영역은 모델이 고도화될수록 대체되는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오히려 모델과 Agent의 수가 늘어날수록 운영 복잡도가 증가하는 계층이다. 구체적으로는 Agent Network·Security, VM·Orchestration, Storage Software, Observability와 같은 실행 인프라다.
이 계층은 특정 Frontier LLM의 기능과 직접 경쟁하기보다 여러 모델과 도구 사이에서 실행을 중개한다. 기업이 하나의 모델에 모든 데이터와 권한을 맡기기 어려워질수록 모델 중립적인 실행 환경, 데이터 주권, 권한 분리, 감사 기록의 중요성도 커진다. Frontier LLM의 강해짐이 소프트웨어 전체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가 사용자 인터페이스에서 실행·통제계층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최근 관련 기업들의 어닝콜과 인베스터데이를 살펴보면 개발 방향 역시 단순한 클라우드 기능 확대보다 Agent 실행, 프라이빗 환경, 멀티모델 연결, 보안과 관측 기능을 통합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시장 참여자들이 설명하는 제품 방향과 내가 다시 설정한 투자 가설이 점차 같은 지점으로 수렴하고 있다는 점도 비중 확대의 배경이 됐다.
4. 5월 11일 이후 P/F의 변화
해외투자점검 6 당시에는 AI Software와 전력 비중을 사실상 제거하고, 공급 부족과 가격 결정력이 가장 분명했던 하드웨어 병목에 집중했다. 당시의 핵심 질문은 ‘AI 투자 확대 과정에서 누가 가장 희소한 자원을 공급하는가’였다.
현재는 메모리를 중심축으로 유지하면서도 광통신의 집중도를 낮추고, Agent 실행계층과 분산형 전력을 새롭게 확대했다.
가장 큰 변화는 하드웨어를 줄이고 소프트웨어로 회귀한 것이 아니라, 하드웨어 병목 위에 Agent의 실행·저장·보안·관측계층을 추가한 것이다.
메모리·스토리지는 여전히 가장 큰 비중이다. Agent가 장시간 상태를 유지하고 여러 작업을 병렬로 수행할수록 세션 데이터, 장기 기억, 로그, 체크포인트, 검색 데이터가 누적되기 때문이다. Agent의 확산은 연산량뿐 아니라 ‘보존해야 하는 상태의 총량’을 증가시킨다는 점에서 메모리 가설은 오히려 강화됐다.
광 인터커넥트는 구조적 성장 논리는 유지하지만, 이전보다 비중을 낮췄다. 특정 연결 방식에 대한 집중도를 줄이고 Agent가 실제로 소비하는 메모리·실행 인프라·전력으로 수혜 범위를 넓히기 위한 조정이다. 하나의 기술 경로에 집중하기보다 Agent 한 건이 만들어내는 전체 인프라 소비를 보려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새롭게 편입한 수동소자와 분산형 전력 역시 독립적인 테마가 아니다. 고밀도 연산과 상시 추론이 확대될수록 전력의 변환·분배·안정화가 중요해지고, Agent가 엣지와 기업 내부 환경으로 분산될수록 전력 수요도 데이터센터 외부로 확장될 가능성이 있다. Agent AI는 소프트웨어 수요와 전력 수요를 동시에 만드는 워크로드라는 관점이다.
5. 이전과 지금의 투자 관점 비교
가장 중요한 차이는 과거에는 PaaS를 AI 성장의 간접적인 대리변수로 봤지만, 지금은 Agent의 실행량 증가가 매출로 직접 연결될 수 있는 계층만 선별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좋은 기술과 플랫폼 표준을 확보하면 장기적으로 높은 가치를 가져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기술적 우위만으로는 부족하며, 실제 사용량 증가가 가격 결정력과 영업 레버리지로 이어지는지를 더 중요하게 본다. ‘좋은 플랫폼인가’보다 ‘Agent의 활동량이 늘 때 반드시 사용해야 하고 그 사용량을 과금할 수 있는가’를 우선한다.
또한 과거에는 AI Software와 AI Hardware를 서로 대체되는 선택지처럼 바라본 측면이 있었다. 지금은 Agent의 확산이 연산, 메모리, 네트워크, 저장, 보안, 전력을 동시에 소비한다는 점에서 두 계층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보고 있다. 현재 P/F는 Software 대 Hardware가 아니라, Agent 한 건이 작동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전체 실행 경로에 투자하는 구조에 가깝다.
6. 앞으로 확인해야 할 것
현재의 가설이 맞으려면 Muse 이후 Agent 기능의 확산이 단순한 기능 체험에 그치지 않고 반복적인 실제 사용으로 이어져야 한다. 사용자 수보다 Agent당 실행 횟수, 작업 지속시간, 저장되는 상태의 양이 더 중요한 선행지표다.
두 번째는 Frontier LLM이 Agent 실행계층까지 얼마나 직접 흡수하는지다. 실행환경이 모델에 완전히 통합된다면 독립 PaaS의 가치가 다시 약해질 수 있다. 반대로 기업이 데이터 주권과 보안을 이유로 멀티모델·프라이빗 환경을 선택한다면 중립적인 실행계층의 협상력은 높아질 수 있다. 이번 Software 재편입의 성패는 모델 성능보다 실행계층의 독립성이 유지되는지에 달려 있다.
세 번째는 사용량이 실제 실적으로 전환되는 속도다. Agent 트래픽이 늘어도 단가 하락이나 과도한 인프라 비용으로 수익성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투자 가설은 약해진다. 기술 채택보다 매출 전환, 유지율, 사용량 기반 매출, 마진 개선을 우선적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하드웨어 병목의 해소 속도도 계속 점검해야 한다. Agent 실행량이 예상보다 빠르게 증가하면 메모리와 전력 병목이 장기화될 수 있지만, 공급 증가와 효율 개선이 이를 앞서면 가격 결정력은 약해질 수 있다. 수요의 성장만이 아니라 공급이 따라오는 속도까지 함께 봐야 한다.
7. 정리
2022년에 세웠던 PaaS 가설이 완전히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당시에는 Agent가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지, Frontier LLM이 어느 범위까지 기능을 흡수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수혜 범위를 지나치게 넓게 설정했던 것 같다.
이후에는 실제 실적과 공급 부족이 확인되는 하드웨어 병목으로 P/F를 압축했고, 그 과정에서 메모리·네트워크·저장·전력의 연결 구조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 하드웨어 중심의 기간은 Software 가설을 포기한 시간이 아니라, AI 가치사슬에서 실제 가격 결정력이 어디에 형성되는지를 확인한 과정이었다.
OpenClaw와 Muse 이후 Agent AI가 Super App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구체화되면서 PaaS를 다시 볼 이유가 생겼다. 그러나 이번에는 예전처럼 AI Software 전체를 넓게 담는 방식이 아니다. Frontier LLM과 경쟁하지 않으면서 Agent의 실행·기억·권한·보안·관측을 담당하는 계층으로 투자 범위를 제한했다.
얼마나 큰 시장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AI가 답변을 생성하는 도구에서 실제 업무를 수행하는 Agent로 확산된다면, 가장 먼저 부족해지는 것은 모델 자체보다 이를 안정적으로 실행하고 통제할 수 있는 환경일 가능성이 높다.
현재 P/F의 핵심은 ‘지능의 희소성’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풍부해진 지능을 현실에서 작동시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메모리·실행환경·보안·관측·전력의 희소성에 투자하는 것이다.
글을 마치며
최근 시장을 지켜보다 보면, 지금의 AI 투자판은 마치 모두가 큰 패를 쥐었다고 믿는 섯다판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섯다판에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어떤 패가 들어오느냐가 아니다. 판에 참여할지, 언제까지 콜을 이어갈지, 그리고 전체 자금 중 얼마를 베팅할지가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영역이다. 반면 내 패와 상대의 패, 판의 흐름은 이미 주어진 환경에 가깝다.
AI 기술의 발전 속도와 산업의 확산 방향도 마찬가지다. 투자자는 기술 변화를 통제할 수 없으며, 어떤 기업이 최종 승자가 될지도 미리 알 수 없다. 산업의 변화는 테이블 위에 돌려지는 패이고, 이를 어떻게 해석해 어느 정도의 비중을 실을지는 투자자의 판단이다.
최근에는 시장 참여자 대부분이 자신이 보유한 AI 관련 자산을 최상의 패라고 확신하는 듯하다. 서로 다른 산업과 기업이 모두 구조적 수혜를 주장하고, 그 확신을 바탕으로 계속 콜을 외치며 판돈을 키우고 있다. 그러나 투자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나쁜 패를 들었을 때보다, 모두가 좋은 패를 들었다고 확신할 때일 수 있다.
9땡도 장땡 앞에서는 패배하고, 높은 땡도 땡잡이나 암행어사 같은 특수패에 뒤집힐 수 있다. 구사가 나오면 커진 판 자체가 다시 시작될 수도 있다. 산업의 성장 방향을 맞히는 것과 그 산업 안에서 최종 승자를 맞히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지금은 불확실한 매크로 환경 위에서 AI에 대한 높은 확신이 동시에 쌓이고 있다. 기술의 방향은 맞더라도 가격, 경쟁, 공급 증가, 자본조달 환경이라는 다른 패가 결과를 뒤집을 수 있다. 결국 누군가는 크게 부풀어진 판돈을 가져가겠지만, 현재의 정보만으로 그 승자가 누구인지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AI의 미래를 부정하는 것도, 반대로 확신만으로 끝까지 콜을 외치는 것도 아니다. 좋은 패를 쥐었다는 판단과 얼마를 베팅할 것인가는 분리해야 한다. 산업 변화는 받아들이되, P/F 비중과 총 익스포저는 언제든 틀릴 수 있다는 전제 아래 조절해야 하지 않나 싶었다.
이번 P/F 변화 역시 어떤 패가 반드시 이긴다는 선언이라기보다, Agent AI 확산이라는 새로운 패를 확인한 뒤 베팅의 대상과 크기를 다시 조정한 기록에 가깝지 않나 싶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