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거 맞아요..? |
최근 기후에너지환경부가 발표하는 전력정책의 방향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고, 발전지역에서 전력을 소비하는 지산지소형 산업구조를 만들며, 수도권에 집중된 전력수요를 지방으로 분산한다. 주민 반대가 심한 송전선로는 지중화하고, 한전의 투자 여력이 부족하면 민간자본을 활용해 전력망 건설속도를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각각의 정책만 놓고 보면 그럴듯하다.
문제는 발전정책과 전력망 투자, 전기요금과 지역지원, 한전의 재무구조가 하나의 비용함수 안에서 설계되고 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정부가 발전원과 전력망의 위치, 지역별 요금할인과 주민지원정책을 결정하지만 실제 송전망을 건설하고 전력을 구매하며 사업 지연과 수요예측 실패의 비용을 부담하는 주체는 대부분 한전이다.
앞서 생각정리 309 (* 국무회의, 발전, 전력설비, 전력요금)에서는 남는 전력과 실제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의 차이, 송전망과 지중화에 숨겨진 비용을 정리했다.
이번 글에서는 같은 내용을 반복하기보다 최근 전력망 정책을 한전의 부채와 이자비용, 앞으로 필요한 CAPEX의 관점에서 다시 살펴보려 한다.
1. 한전은 전력망 확대의 수혜자가 아니다
최근 발표된 전력망 정책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클러스터, 재생에너지 확대를 고려하면 전력망 투자는 반드시 필요하다. 전선과 변압기, 차단기와 HVDC, 전력 EPC 기업의 수요도 구조적으로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전력기기 기업의 매출은 한전의 CAPEX다.
관련 산업의 시장이 커지는 것과 발주자인 한전의 재무상태가 좋아지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전력 인프라 산업의 장기적인 기회는 생각정리 357 (* Beyond the Cycle, K-EPC)에서 이미 정리했다.
2. 흑자를 내고도 부채가 늘어나는 한전
한국전력의 연결기준 부채는 2021년 145.8조원에서 2026년 상반기 210.7조원으로 증가했다.
5년 반 동안 부채가 약 64.9조원, 비율로는 44.5% 증가했다.
2026년 상반기 한전은 연결기준 매출 46.32조원, 영업이익 4.91조원, 순이익 2.80조원을 기록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 부채는 2025년 말보다 약 5.1조원, 차입금은 약 3.5조원 증가했다.
상반기 이자비용만 약 2.1조원이다. 영업이익의 약 43%가 이자로 빠져나간 셈이다.
한전의 문제는 이제 단순한 적자 여부가 아니다.
영업이익이 발생하더라도 이자비용과 전력망 CAPEX가 영업현금흐름을 초과하면 부채는 계속 증가한다.
자료는 한국전력 재무정보, 2026년 반기보고서, 한국전력 상반기 실적 발표를 참고했다.
3. 부채비율 개선이라는 착시
정부의 중장기 재무관리계획은 한전 본사의 부채가 2026년 약 122.9조원에서 2030년 132.3조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
연결부채 210.7조원과 정부 계획의 122.9조원은 범위가 다르다. 앞의 수치는 발전자회사 등을 포함한 연결기준이고, 뒤의 수치는 한전 본사 중심의 별도기준이다.
정부 계획상 부채비율은 2026년 **450%**에서 2030년 **285%**로 낮아진다. 그러나 같은 기간 절대부채는 약 9.4조원 증가한다.
부채비율 개선의 일부도 자본확충과 토지 자산재평가 등 분모가 커지는 효과에 의존한다.
부채비율은 내려가는데 부채와 이자비용은 계속 늘어나는 상황이 가능하다.
4. 앞으로 5년간 약 75조원의 CAPEX·이자 부담
정부 계획상 한전의 2026~2030년 송배전망 CAPEX는 약 60.98조원이다. 연평균으로는 약 12.2조원이다.
여기에 한전 본사의 연간 이자비용 약 2.5~2.9조원을 더하면 다음과 같다.
영업현금흐름과 감가상각비를 반영하기 전의 단순 합산이지만, 자산매각과 비용절감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규모라는 점은 분명하다.
부족한 재원을 마련할 방법은 사실상 네 가지뿐이다.
전기요금 인상
+ 정부 출자
+ 한전채·차입금 증가
+ 민간자본 활용
그러나 전기요금 인상은 물가와 민생 때문에 어렵고, 정부 출자는 재정부담을 발생시킨다. 한전채 발행은 부채와 이자를 늘리며, 민간자본은 한전보다 높은 수익률을 요구한다.
어느 방법을 선택하더라도 비용은 사라지지 않는다.
5. 지산지소라는 말에 빠져 있는 비용
지산지소는 발전지역에서 생산한 전력을 해당 지역에서 소비하자는 구상이다.
전남은 연간 발전량이 약 71.66TWh, 소비량은 약 33.58TWh다. 숫자만 보면 충분한 잉여전력이 존재한다.
그러나 반도체 공장과 데이터센터가 필요한 것은 연간 발전량이 아니라 매시간 공급되는 고품질 전력이다. 태양광과 풍력의 발전시간이 산업시설의 부하곡선과 일치한다는 보장은 없다.
연간 재생에너지 발전량
≠ 시간대별 공급능력
≠ 산업단지의 24시간 확정전력
변동성 발전원과 확정전력, 전력망의 관계는 생각정리 356 (* EU Grid Before Green, 대한민국 12차 전기본)에서 정리했다.
지산지소는 전력망을 없애는 정책도 아니다. 호남권에 대규모 산업단지를 조성하더라도 345kV 송전망과 변전소, ESS와 백업전원이 별도로 필요하다.
발전소와 산업단지를 지도에서 가깝게 배치한다고 계통 문제가 자동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6. 지역별 요금과 ESS, 민간 BT의 한계
비수도권 산업용 전기요금을 최대 10% 안팎 낮추면 기업의 지방 이전을 유도할 수 있다. 그러나 예상되는 산업용 전기요금 부담 감소액은 연간 약 2.8조원이다.
이는 한전 본사의 연간 이자비용 2.5~2.9조원과 비슷하다.
비수도권 요금은 크게 낮추면서 수도권 요금을 충분히 올리지 않는다면 비용중립적인 지역별 요금제가 아니다.
한전의 전기요금 체계를 이용한 지역산업 보조금에 가깝다.
지역산업 지원이 필요하다면 국가재정이나 산업정책 예산에서 부담해야 한다. 전기요금 안에 숨기면 정책비용은 한전의 매출감소와 부채증가로 나타난다.
정부가 추진하는 ESS 약 700MW도 재생에너지 출력제어와 단기 계통혼잡을 완화하는 데는 유용하다. 하지만 선로당 4MW·20MWh 구조를 단순 적용한 전체 저장용량은 약 3.5GWh다.
이는 4GW 규모 산업단지의 전력수요를 약 52분 공급할 수 있는 양이다.
ESS는 낮 시간의 전력을 저녁으로 옮길 수 있지만, 송전망과 24시간 확정전원을 대체할 수는 없다.
민간 BT도 마찬가지다.
민간사업자가 전력망을 먼저 건설하면 한전의 초기 자금부담을 분산하고 사업속도를 높일 수 있다. 그러나 민간자본은 한전채보다 높은 수익률을 요구한다.
준공 이후 한전이 전력망을 인수하면 인수대금과 금융비용, 감가상각비와 유지보수비가 결국 한전의 재무제표로 돌아온다.
민간 BT는 비용을 없애는 방식이 아니라 사업 지연비용과 민간 금융비용 가운데 어느 쪽을 부담할지 선택하는 방식이다.
7. 발전을 먼저 허가하고 전력망은 나중에 붙인다
현재 전력정책의 근본적인 문제는 발전사업과 전력망 계획의 순서가 뒤집혀 있다는 점이다.
해상풍력과 대규모 재생에너지 사업은 발전입지를 먼저 확보하고, 계통 접속가능성과 육상 송전망은 이후에 보완하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과정이 반복된다.
발전사업 허가
→ 계통접속 신청 증가
→ 송전망 부족
→ 접속대기와 출력제어
→ ESS 보조금 확대
→ 추가 전력망 투자
→ 한전 CAPEX 증가
발전사업의 수익은 발전사업자가 확보하지만, 발전입지와 계통계획의 불일치에서 발생한 비용은 한전과 전기소비자가 부담한다.
재생에너지 목표를 먼저 정하고 나중에 전력망과 ESS를 붙이는 방식으로는 총비용을 통제하기 어렵다.
8. 에너지가격·CPI·금리가 동시에 한전을 압박한다
한전의 영업환경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전력망 투자만이 아니다.
한전 영업비용의 약 88%는 전력구입비와 연료비다. 글로벌 에너지가격이 상승하면 비용은 빠르게 증가하지만 전기요금은 물가와 정치적 판단을 거쳐 뒤늦게 조정된다.
글로벌 에너지시장과 정제품 공급문제는 생각정리 368 (* Crude Is Not Diesel, The Second Oil Shock)과 생각정리 369 (* Diesel, The Last Barrel Standing)에서 살펴봤다.
2027년 CPI와 고금리 경로는 생각정리 370 (* 가맹사업법, CPI), 생각정리 373 (* 전세난, 고물가 그리고 고금리)에서 다뤘다.
한전의 관점에서 연결하면 다음과 같다.
글로벌 에너지가격 상승
→ 발전원가 상승
→ 소비자물가 상승
→ 금리인하 지연 또는 재인상 위험
→ 한전채 차환금리 상승
→ 민생안정을 이유로 전기요금 인상 억제
→ 영업현금흐름 악화
→ 한전채와 차입금 증가
에너지가격 상승은 한전에 비용으로 들어온다. 그러나 에너지가격 상승으로 CPI가 높아지면 정부는 전기요금 인상을 더욱 억제할 가능성이 크다.
높은 물가는 금리인하도 어렵게 만들어 한전의 이자부담을 높인다.
발전원가는 시장가격을 따라 오르지만 전기요금은 정치적 판단에 따라 묶인다. 비용은 오르는데 가격은 올리지 못하고, 그 결과 늘어난 부채에는 다시 높은 이자가 붙는다.
9. 한전은 정책비용의 충격흡수장치가 되고 있다
정부는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고, 지방 전기요금을 낮추며, 송전선로를 지중화하고 싶어 한다.
반도체와 AI 데이터센터에는 빠르게 전력을 공급하고, 물가와 민생을 위해 전기요금은 억제하며, 채권시장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한전채 발행도 제한하고 싶어 한다.
각각의 목표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목표들을 동시에 달성하려면 누군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현재 정책은 그 부담주체를 명확히 정하지 않은 채 상당 부분을 한전의 재무제표에 남겨두고 있다.
재생에너지 확대
→ 계통접속 대기와 출력제어
→ ESS와 송전망 추가투자
→ 지역별 요금할인
→ 지중화와 주민보상
→ 민간 BT 건설
→ 한전의 의무 인수
→ 전기요금 인상 억제
→ 한전채와 부채 증가
정책의 편익은 발전사업자와 지방자치단체, 산업단지 입주기업과 지역주민에게 분산된다.
반면 회수되지 못한 비용과 장기 운영위험은 한전에 집중된다.
한전은 전력회사를 넘어 에너지정책과 산업정책, 지역균형발전과 물가정책 사이에서 발생한 모순을 흡수하는 충격완충장치가 되고 있다.
글을 마치며
재생에너지와 지산지소의 방향 자체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력 생산지역이 환경비용과 송전선로 부담을 감수하면서 수도권에 값싼 전력을 보내는 구조도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 전력망을 확충하고 전력수요를 발전지역과 가까운 곳으로 이동시키는 시도는 필요하다.
다만 정책에는 순서가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지와 정책이 지속 불가능해졌을 때 어떻게 정상화할 것인지에 대한 EXIT PLAN이 있어야 한다.
전기요금에 반영하지 않을 정책비용이라면 정부가 재정을 통해 부담해야 한다. 지역산업 지원비용은 산업정책 예산에서 지출하고, 민간 전력망 사업은 인수가격과 수익률, 공사비 초과와 수요예측 실패의 책임을 명확히 배분해야 한다.
이 대통령은 정책의 평가는 시간이 흐른 뒤, 정권 말기에 받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의 평가를 이야기하려면 지금 추진하는 정책이 어디에서 끝나는지부터 보여줘야 한다. (*Exit plan을 보여줘야 한다.)
연금정책도 마찬가지다.
보험료를 부담하는 청년과 중장년층에는 더 많은 부담을 요구하면서 가까운 미래의 퇴직세대에는 더 높은 급여를 약속하고 있다. 하지만 저출산·고령화로 보험료를 부담할 생산연령인구는 계속 감소할 가능성이 높다.
생각정리 169 (* 연금, 국내증시, 수급주체)와 생각정리 350 (* Debt, Centralization)에서 정리했듯, 보험료를 더 걷고 급여를 더 지급하는 방식은 제도의 시간을 연장할 수는 있어도 인구구조가 무너지는 상황의 EXIT PLAN이 될 수 없다.
서울 부동산 정책도 같은 의문이 남는다.
재개발·재건축 허가와 대출을 옥죄면 단기적으로 거래와 가격상승 속도를 낮출 수 있다. 그러나 서울 선호지역에 신규주택을 공급할 현실적인 수단이 제한된 상황에서 정비사업까지 막으면 공급부족은 해결되지 않는다.
생각정리 287 (* 부동산, 진퇴양난)에서 정리했듯 수요억제 정책은 단기적으로 가격을 누를 수 있지만, 공급을 함께 막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희소성을 높인다.
더구나 생각정리 373 (* 전세난, 고물가 그리고 고금리)에서 살펴본 것처럼 2028~2030년에는 서울 재개발·재건축 이주수요까지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대출을 막아 수요를 잠시 뒤로 미루는 것은 공급대책이 아니다.
에너지정책도 다르지 않다.
재생에너지와 전력망 투자를 확대하고 지역별 전기요금을 낮추면서도 전기요금 인상을 억제한다면 그 차액은 사라지지 않는다. 한전의 부채와 회사채, 이자비용으로 이전될 뿐이다.
전기요금으로 회수하지 않고 정부재정으로도 부담하지 않은 정책비용은 결국 한전의 부채라는 이름으로 미래에 이연된다.
앞서 생각정리 218 (* 하인리히의 법칙, 원화약세)에서 정책의 선한 의도와 실제 결과를 분리해서 봐야 한다고 적었다.
퇴직세대의 노후소득을 보호하고,
서울 집값을 안정시키며,
재생에너지와 지역균형발전을 확대하겠다는 목표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세 정책이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연금에서는 인구감소 이후의 부담을 미래세대에 넘기고,
부동산에서는 공급부족의 대가를 미래의 실수요자에게 넘기며,
에너지에서는 정책비용을 한전의 부채와 이자로 미루고 있다.
현재의 갈등과 비용을 해결한 것이 아니라 부담이 드러나는 시점을 뒤로 옮긴 것이다. 지금 당장의 가격과 부담을 억누르는 동안 장부 밖에서는 연금부채와 주택 공급부족, 한전의 차입금과 이자비용이 계속 누적된다.
정권 말기에 평가받고 싶다면 그때까지 각 정책의 비용이 어디에서 회수되고,
누가 최종 부담하며,
지속 가능하지 않을 때 어떤 방식으로 정상화할 것인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필요한 것은 선한 목표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정책이 지속 불가능해졌을 때 빠져나올 수 있는 구체적인 EXIT PLAN이다.
현재의 부담을 미래 정부와 다음 세대의 청구서로 넘겨놓은 채,
이번 정권 말기에 도대체 어떤 평가를 기대하고 있는 것인지 아직도 이해하기 어렵다.(며칠전 태어난 우리의 아기가 어떻게 이 대한민국이라는 부채 사회속에서 발 붙여 살아갈 수 있을지 갑자기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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