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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9월 22일 화요일

이모저모


나는 왜 이렇게 블로그를 열심히 쓰는 걸까


가끔 스스로에게 나는 왜 이렇게까지 블로그를 열심히 쓰는 걸까라는 질문을 던지곤 한다.
블로그를 수익화 할 것도 아니고, 이걸 한다고 지금 당장 나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 싶기도했었다. 

블로그를 본격적으로 쓰기 전에도 매일 뉴스와 리포트는 꾸준히 읽었다.
다만 그때는 읽고 난 뒤 자리에서 혼자 궁시렁거리는 일이 많았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개뼉다구 같은 소리야.”

기사나 애널리스트 리포트의 논리가 앞뒤가 맞지 않거나, 확인하기 어려운 정보가 사실처럼 유통될 때면 불편함을 느꼈다. 그렇다고 그 불편함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거나 내가 무엇을 이상하게 느꼈는지 기록해두지는 않았다.

그러니 시간이 지나면 무엇이 문제였는지 흐릿해졌다. 내가 맞았던 기억은 과장되고, 틀렸던 판단은 쉽게 잊혔다. 결과가 좋으면 분석을 잘했다고 생각했고, 결과가 나쁘면 당시에는 알 수 없었던 변수 때문이라고 넘기기도 했다.

그러다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머릿속에 흩어진 생각을 정리하려는 목적이었다.

(*생각정리 시리즈)

그런데 기록이 쌓이면서 블로그의 역할이 조금씩 달라졌다.
블로그는 생각을 표현하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과거의 나를 검증하는 장소가 됐다.

생각정리 86 (* 기록과검증)에서도 적었듯, 사람은 자신의 실수를 쉽게 잊고 운 좋게 얻은 성공은 과장해 기억한다. 투자에서는 이런 편향이 자신을 실제보다 뛰어난 투자자로 착각하게 만든다.

이를 막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 기록과검증이다.

기록은 당시 내가 무엇을 알고 있었는지 남기고, 검증은 그 판단이 실제로 옳았는지를 확인한다.
블로그를 계속 쓰는 이유도 결국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예전에 작성했었던 글들을 계속 반복적으로 읽곤 한다)

비평은 권력자의 말을 받아 적는 일이 아니다


최근 유시민 작가의 권력 비평에 관한 발언을 들으며 블로그를 쓰는 이유가 조금 더 명확해졌다.

유시민과 미디어오늘이 논하다 - 비평의 품격과 언론의 책임


권력 비평은 권력자가 오늘 한 말을 그대로 옮겨 적고, 과거 발언과 문장 그대로 일치하는지만 확인하는 일이 아니다. 권력자는 자신의 의도를 모두 솔직하게 밝히지 않을 수 있고, 때로는 의도적으로 모호한 표현을 사용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비평은 말뿐만 아니라 행동을 함께 봐야 한다.

권력자가 어떤 말을 했는지,
실제로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그 결정의 순서는 어떠했는지,
주변 인사들은 어떻게 움직였는지,
그리고 그 결과 누가 이익을 얻고 누가 비용을 부담했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다만 여기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경계도 있다.

관찰할 수 있는 사실과 그 사실에 대한 추론, 그리고 개인적인 판단을 구분해야 한다. 권력자의 내면과 의도를 확인할 수 없다는 이유로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는 것은 비평이 아니지만, 반대로 정황만으로 숨은 의도를 사실처럼 단정하는 것도 비평이라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정이 아니라 질문에 가깝다.

말과 행동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
반복되는 결정은 어떤 방향을 가리키는가.
그 결정으로 가장 큰 이해관계를 얻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리고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이 권력을 잡았더라도 같은 결정을 내렸을 것인가.

검찰개혁을 보며 생긴 질문


최근 검찰·사법개혁과 법무부 장관 인선을 둘러싼 혼란을 보면서도 비슷한 질문이 생겼다.

내가 그동안 이해해 온 민주당 진영의 검찰개혁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실질적으로 분리하고, 검찰에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는 것이었다. 노무현 정부 이후 오랫동안 이어져 온 문제의식도 검찰 권력의 집중을 어떻게 견제할 것인가에 가까웠다.

그런데 최근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드러난 검찰개혁의 구상은 내가 알고 있던 내용과 다소 달랐다. 법무부 아래 수사와 기소 조직을 나누어 두는 정도를 개혁의 최대치로 인식하고 있었다면, 그동안 민주당이 말해 온 수사·기소 분리와는 같은 표현을 사용하면서도 실제 내용은 상당히 달랐던 셈이다.

여기에 대통령 관련 사건의 공소 취소 논란, 법무부 장관 인선의 난맥, 보완수사권을 둘러싼 당정 갈등까지 겹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현재 추진되는 검찰·사법개혁의 한계선이 공익적 제도 설계에서 정해진 것인지, 아니면 대통령 개인의 사법리스크와 무관하지 않은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물론 이것을 현재 확인된 사실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수사 공백에 대한 우려, 경찰 수사 역량의 문제, 형사사법 체계 전환 과정의 현실적 어려움도 충분히 존재한다. 이러한 설명 역시 함께 검토해야 한다.

그럼에도 대통령 개인의 사건과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제도를 대통령과 그 주변 인사들이 설계한다면 이해충돌에 관한 질문은 피할 수 없다.

만약 대통령에게 현재와 같은 사법리스크가 없었더라도 같은 형태의 검찰개혁을 추진했을까.

대통령 임기 이후 재판이 재개될 가능성이 전혀 없었더라도 공소 취소와 관련한 논쟁이 같은 강도로 벌어졌을까.

나는 지금 이 질문에 확정적인 답을 내릴 수 없다. 그래서 오히려 기록해두려 한다. 앞으로 이루어질 법무부 장관 인선, 관련 법안의 변화, 대통령 사건의 처리와 실제 제도 운영을 지켜보면 지금의 추론이 타당했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비평 역시 투자와 마찬가지로 현재의 가설을 기록하고, 이후의 행동과 결과를 통해 검증하는 과정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검찰개혁, 대통령 개인 사법리스크가 투자자로서의 나랑 뭔 상관일 수 있겠냐고 반문을 한다면, 아래영상이 그 물음에 대한 답이 되길 바래본다. 


https://www.youtube.com/shorts/O3xJakIKOl4

https://www.youtube.com/shorts/O3xJakIKOl4

https://www.youtube.com/shorts/O3xJakIKOl4

Intelligence보다 먼저 Integrity


이 과정에서 워런 버핏이 자주 인용했던 말이 떠올랐다.

사람을 채용할 때는 세 가지를 봐야 한다. Integrity, Intelligence, Energy다. 그런데 Integrity가 없다면 나머지 두 가지가 오히려 조직을 파괴할 수 있다.

Intelligence는 상황을 빠르게 이해하고 자신의 이해관계를 계산하는 능력이다.
Energy는 그 판단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추진력이다.
그러나 Integrity가 없다면 높은 지능과 강한 실행력은 공동체를 위한 능력이 아니라 자신의 사익을 극대화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머리가 좋은 사람일수록 자신의 행동을 더 그럴듯하게 설명할 수 있다. 개인적인 이해관계를 공익적 명분으로 포장하고, 결과가 나빠지면 의도와 결과를 분리해 책임을 피할 수도 있다.

다만 특정 인물의 Integrity를 외부에서 직접 확인하기는 어렵다. 결국 판단 기준은 말보다 반복되는 행동이어야 한다.

자신에게 유리할 때와 불리할 때 같은 원칙을 적용하는가.
이해충돌 가능성을 스스로 공개하고 회피하는가.
결과가 잘못됐을 때 책임을 부담하는가.
자신에게 적용된 기준을 상대편에도 동일하게 적용하는가.

https://www.jaemayhem.com/
(판단은 각자 개인의 몫)

이 질문은 정치권력자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기업 경영자와 언론인, 애널리스트, 그리고 투자자 자신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기자와 애널리스트가 누렸던 특권


기성 언론 기자들이 오랫동안 누렸던 힘의 상당 부분은 정보 접근권에서 나왔다.

누구를 취재할 수 있는가.
어떤 회의에 들어갈 수 있는가.
공식 발표 전에 어떤 정보를 들을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정보를 대중에게 전달할 수 있는 통로를 누가 가지고 있는가.

과거에는 취재권과 유통망 자체가 강력한 진입장벽이었다. 그러나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기업 공시, 영상 플랫폼, AI 기술이 발전하면서 그 장벽은 빠르게 낮아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대한민국 주식시장의 애널리스트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과거에는 기업 탐방과 경영진 미팅, 산업 관계자와의 개인적인 네트워크가 애널리스트만의 경쟁력이었다. 일반 투자자가 구하기 어려운 자료를 먼저 얻고, 이를 가공해 리포트로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일정한 가치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기업 공시와 실적발표 자료, 콘퍼런스콜, 해외 경쟁사 자료와 산업 통계에 누구나 접근할 수 있다. AI는 방대한 자료를 짧은 시간 안에 번역하고 비교하며, 과거의 발언과 현재의 실적도 빠르게 대조해준다.

그 결과 정보에 먼저 접근했다는 사실만으로 만들어지는 알파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물론 기자와 애널리스트의 전문성이 모두 불필요해졌다는 뜻은 아니다.
취재원 검증, 산업에 대한 맥락 이해, 복잡한 정보를 선별하는 능력은 여전히 중요하다.

다만 접근성의 프리미엄은 줄고, 검증 능력의 프리미엄은 커지고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누가 먼저 들었느냐보다 누가 공개된 정보를 더 정확하게 연결하고, 자신의 가정을 명확히 제시하며, 틀렸을 때 빠르게 수정할 수 있느냐에 가까워지고 있다.

정말 중요한 정보라면 왜 공개하지 않을까


나는 주식시장에서 유통되는 소위 ‘내부정보’를 들을 때마다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정말 회사의 근본적인 체질이 바뀌었고, 시장이 그 변화를 알아주지 않아 회사가 답답한 상황이라면 가장 빠른 해결책은 그 내용을 공식적으로 공개하는 것 아닐까.

회사의 경쟁력이 개선됐다면 구체적인 수치와 사업계획, 수주와 고객 변화, 이익률과 현금흐름을 공시나 IR 자료를 통해 설명하면 된다. 누구나 확인할 수 있도록 정보를 공개해야 시장도 이를 주가에 반영할 수 있다.

그런데 왜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정보는 항상 소수에게만 개별적이고 사적인 방식으로 유통되는 걸까.

내 경험상 이런 정보의 상당수는 실체가 없거나, 공개적으로 발언한 뒤 책임을 지고 싶지 않은 주장인 경우가 많았다.

생각정리 219 (* 개스닥-2)
생각정리 231 (* 개스닥-3, 당신은 신을 믿으십니까? )

“회사 내부 사람에게 들었다.”
“탐방에서만 들을 수 있는 내용이다.”
“공개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확실하다.”
“곧 시장이 알게 될 것이다.”

이런 말은 맞으면 정보력이 되고, 틀리면 상황이 변했다는 말로 빠져나갈 수 있다.
출처를 확인하기도 어렵고, 애초에 어떤 표현으로 전달됐는지 검증할 수도 없다.

공개할 수 없는 정보가 언제나 특별한 정보인 것은 아니다.
때로는 공개적으로 책임질 수 없는 주장일 뿐이다.

정말 분석력이 뛰어나 알파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최소한 분석의 논리와 핵심 가정은 공개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포지션과 투자기법을 공개하라는 뜻이 아니다. 무엇을 사실로 보았고, 어떤 인과관계를 예상했으며, 무엇이 발생하면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고 인정할 것인지는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반대로 정말 중요한 미공개 정보라면 소수 투자자에게 사적으로 전달되는 것 자체가 더 큰 문제일 수 있다. 정보가 중요할수록 사적 유통이 아니라 공정한 공개가 우선돼야 한다.

탐방 자체가 알파였던 시대의 끝


과거에는 남들보다 먼저 기업을 방문하고, 경영진을 만나고, 산업 관계자의 이야기를 듣는 행위 자체가 상당한 경쟁력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탐방에 참여했다는 사실만으로 특별한 정보를 얻었다고 보기 어렵다. 같은 회사를 이미 수많은 기관과 투자자가 방문했고, 회사가 공식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내용도 대부분 공시와 IR 자료에 포함돼 있다.

탐방이 불필요하다는 뜻은 아니다.

공장의 분위기와 조직의 실행력, 경영진이 질문에 대응하는 태도, 자료에서 드러나지 않는 운영상의 문제를 확인하는 데는 여전히 가치가 있다. 다만 탐방의 가치는 ‘나만 아는 비밀’을 얻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공개된 정보와 실제 현장 사이에 차이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데서 나온다.

탐방은 정보를 독점하는 행위가 아니라 기존 가설을 검증하는 과정이어야 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AI 기술이 빠르게 확산되기 시작한 2023년 이후에도 시장에는 수많은 소음이 만들어졌다. 일부 애널리스트들의 미공개 정보, 중국과 관련한 외신 보도, 해외 반도체 전문지의 의혹 제기, 확인할 수 없는 내부 소스와 단독취재가 반복해서 시장을 흔들었다.

생각정리 344 (* China 중국, 가짜정보, 가짜언론)

그러나 ‘단독’, ‘외신’, ‘업계 관계자’라는 표현이 붙었다고 정보의 정확성이 자동으로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이제 투자자의 경쟁력은 남들이 모르는 정보를 먼저 듣는 능력보다, 넘쳐나는 정보 가운데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추론이며 무엇이 단순한 소음인지 구분하는 능력에서 나올 가능성이 크다.

기록은 투자자의 개인 데이터베이스다


이 지점에서 다시 기록과 검증의 문제로 돌아오게 된다.

투자자는 매일 수많은 주장과 전망을 접한다.
하지만 기록하지 않으면 어떤 정보를 근거로 판단했는지조차 나중에는 정확히 기억하기 어렵다.

주가가 오르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주가가 떨어지면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발생했다고 기억한다. 결과를 알고 난 뒤 과거의 판단을 현재에 맞게 다시 구성하는 후견지명 편향이다.

그래서 투자 아이디어를 기록할 때는 결론만 적어서는 부족하다.

당시 확인할 수 있었던 사실은 무엇이었는지,
어떤 가정을 세웠는지,
그 가정이 어떤 경로를 거쳐 실적으로 연결될 것으로 보았는지,
반대편에서는 어떤 근거를 제시했는지,
무엇이 발생하면 내 판단이 틀렸다고 인정할 것인지까지 남겨야 한다.

시간이 지나 결과가 나오면 다시 확인한다.

결과는 맞았지만 논리는 틀렸을 수도 있다. 반대로 단기적인 결과는 틀렸지만 분석 과정은 합리적이었을 수도 있다. 운이 좋았던 투자와 분석을 잘한 투자를 구분하려면 당시의 기록이 반드시 필요하다.

기록이 쌓이면 나만의 투자 데이터베이스가 만들어진다.

나는 어떤 산업에서 반복해서 잘못 판단하는가.
어떤 유형의 경영자를 지나치게 쉽게 신뢰하는가.
낙관적인 전망에서는 어떤 비용을 자주 누락하는가.
거시경제의 변화를 기업 실적에 너무 빨리 반영하는가.
반대로 어떤 구조적 변화는 비교적 일찍 발견하는가.

이런 내용은 다른 사람의 리포트에서는 찾을 수 없다.
오직 나의 과거 판단을 계속 기록하고 검증해야만 알 수 있다.

좋은 기록은 과거를 보존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다음 판단의 오류를 줄이는 도구가 된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하고,
새로운 정보가 들어왔을 때 어느 가정을 수정해야 하는지도 알려준다.

블로그에 공개적으로 글을 쓰는 것은 이런 효과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글을 공개하면 당시의 판단을 나중에 몰래 바꾸기 어렵다. 맞은 주장만 골라 기억하고 틀린 주장을 지워버리는 행위도 줄어든다.

물론 기록한다고 투자 성과가 자동으로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록하지 않는 투자자는 같은 실수를 새로운 실수라고 착각하며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투자에서 기록의 복리는 수익률표에 즉시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사고방식과 판단 과정에 천천히 쌓인다.
한 번의 기록은 작은 메모에 불과하지만,
수년간 이어진 기록은 내가 어떤 투자자인지를 보여주는 가장 정확한 자료가 된다.


정리 


결국 내가 블로그를 쓰는 이유는 내가 항상 옳다고 주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며, 

오히려 내가 언제든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납득시키기 위한 복기차원의 성격이 좀 더 강하다.

(*고집이 쏀 편)

기존 언론의 기사와 애널리스트 리포트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내 성격과 맞지 않는다. 누군가의 결론을 그대로 소비하기보다, 그 주장의 근거와 이해관계를 살펴보고 내 생각을 직접 정리해야 비로소 납득할 수 있다.

기존 언론과 애널리스트가 제공하는 정보는 완성된 정답이 아니라 판단을 위한 재료다. 중요한 것은 그 재료를 그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내 언어로 다시 정리하고 공개된 사실과 대조하며 시간이 지나도 계속 업데이트하는 일이다.

결국 정치 비평과 투자 분석은 크게 다르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말보다 행동을 보고,
의도보다 이해관계를 살피며,
명분보다 결과를 확인한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기록한다.

의도를 알 수 없다면 구조를 보고,
명분이 모호하다면 행동과 결과를 기록한다.
오늘의 생각을 남겨야 미래의 내가 오늘의 판단을 검증할 수 있다.

아마 이것이 내가 블로그를 계속 쓰는 가장 큰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Record, And Verify.

=끝

2026년 9월 17일 목요일

이모저모

https://www.youtube.com/watch?v=qWqVybchpc4

기자회견을 보고 든 생각


대통령 기자회견이 끝나고 든 생각을 두서없이 적어본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이다.

기자회견을 들으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던 것은 다수의 ‘모래알’과 소수의 이해관계로 단단하게 결집한 ‘콘크리트 지지층’ 사이의 갈등을 언급한 부분이었다.

나는 이 문제의 상당 부분이 민주주의와 시장 자본주의가 필연적으로 충돌하는 지점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부동산을 소유한 사람과 소유하지 않은 사람, 노동소득에 의존하는 사람과 자본을 가진 사람, 세금을 부담하는 사람과 이전소득을 받는 사람.

겉으로 드러나는 갈등의 형태는 매번 다르지만, 조금 더 깊게 들어가 보면 결국 한정된 자원과 부를 어떤 방식으로 배분할 것인가라는 오래된 문제와 맞닿아 있다.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1인 1표’의 세계이고, 시장경제는 ‘1원 1표’에 가까운 세계다.

모두가 정치적으로는 동등한 한 표를 갖지만 경제적으로 보유한 자본과 생산수단은 서로 다르다.

어쩌면 현대사회에서 반복해서 발생하는 여러 정치·경제적 갈등은 애초에 이 두 질서가 완전히 일치할 수 없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선한 목적이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목표가 옳다는 확신이, 경로에 대한 검증을 대신할 수 있는가?”


지금까지의 정책을 보면서 내가 가장 아쉬웠던 부분도 이 지점이다.

‘더 많은 사람이 잘사는 사회’, ‘불평등의 완화’, ‘시장 정상화’ 같은 정책의 목표 자체를 문제 삼고 싶은 것은 아니다.

문제는 정책의 목적과 현실세계에서 그 목적에 도달하는 경로는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

어떤 정책이 시행되는 순간 사람들은 그 정책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가격이 움직이고, 자본이 이동하며, 기업은 투자를 조정하고, 가계는 소비와 저축을 바꾸며, 시장 참여자들은 새로운 규제를 회피하거나 적응할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부터 정책은 처음 설계자가 생각했던 단선적인 경로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A라는 정책을 시행하면 B라는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했는데,

현실에서는

A → C → D → E → B

로 갈 수도 있고,

A → F → G

라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

그리고 한번 C나 F의 경로로 들어간 경제는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오기 쉽지 않다.

경제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e)이다.

그래서 정책은 무엇을 지향하느냐 못지않게 그 정책이 어떤 경로를 만들어낼 것인가를 살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내가 받은 인상은 정책의 지향점에는 상당한 확신이 있었던 반면, 그 목표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2차·3차 효과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준비가 부족했던 것이 아니었나 하는 것이다.


‘정상’과 ‘비정상’을 너무 쉽게 나누는 순간


“시장 참여자들의 정상적인 반응까지 도덕의 문제로 해석하게 될 위험이 있다.”


여기서 더 조심해야 할 부분도 있다.

자신이 지향하는 정책적 목표를 ‘정상화’ 혹은 ‘개혁’이라고 정의하는 순간, 기존 구조와 그 구조에서 이해관계를 가지고 살아가던 사람들은 쉽게 반대편에 놓인다.

자신들의 정책적 지향은 선의이고 정상화이며,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반발과 예상하지 못했던 시장의 움직임은 기득권의 저항이나 비정상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사람들은 그렇게 단순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부동산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악한 것도 아니고, 다주택자라고 해서 모두 투기꾼인 것도 아니며, 기업의 이익을 추구한다고 해서 기업인이 사회적 공익과 반대되는 존재인 것도 아니다.

반대로 노동자라는 이유만으로 언제나 공익을 대표하는 것도 아니다.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경제적 이해관계에 반응할 뿐이다.

오히려 그것이 시장경제에서는 자연스러운 행동에 가깝다.

그래서 어떤 집단을 정책목표를 방해하는 세력으로 규정하기 시작하면 정책 설계자는 시장 참여자들의 정상적인 반응까지 도덕의 문제로 해석하게 될 위험이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부분을 상당히 경계하는 편이다.

우리 인간사회에서 무엇이 절대적으로 옳고 무엇이 절대적으로 그르다고 말할 수 있는 영역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시대가 바뀌고 기술이 바뀌고 인구구조가 바뀌면 사회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의 우선순위도 계속 변한다.

그 기준은 고정돼 있다기보다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동적인 것에 가깝다.


너무 큰 계획과 너무 빠른 실행


현 정부 출범 이후의 정책을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여러 번 했다.

처음부터 상당히 담대한 목표를 제시했고, 세세한 조정보다는 실행력을 강조하며 빠르게 정책을 밀어붙였다는 인상을 받았다.

문제는 정책이 실제 시장과 사회에 적용되기 시작하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들이 여러 갈래에서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경로가 여러 방향으로 갈라진 이후에는 이를 다시 조정하는 일이 처음 정책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어려워진다.

더구나 관련 정책을 주도하던 담당자가 이미 자리를 떠났고 새로운 인선 역시 불확실한 상황이라면 정책의 연속성과 수정 가능성은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미 상당히 먼 길을 와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현 정부가 여기에서 모든 정책을 되돌릴 것 같지도 않다.

이번 기자회견에서도 결국 기존에 추진하던 여러 정책을 계속 ‘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이어가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느껴졌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까지 예상해왔던 경제의 여러 경로 역시 오히려 조금 더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정리 370 (* 가맹사업법, CPI )



출발 조건은 상당히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더욱 아쉬운 부분이 있다.

지금은 대외경제 환경의 불확실성이 상당히 커졌지만, 현 정부가 처음 출범했을 당시만 놓고 보면 경제적 출발 조건이 나쁜 편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AI 투자 확대와 메모리 업황 회복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고, 한국 수출산업의 주요 전방산업 전망도 상당히 좋았다.

글로벌 AI CAPEX가 확대되면서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국이 직접적인 수혜를 받을 수 있는 환경도 만들어지고 있었다.

낙관론

정치적으로도 국회의 협조를 얻기 어려운 구조는 아니었다.

즉 외부환경과 정치적 실행력 측면에서 비교적 많은 카드를 가지고 출발한 정부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지나온 과정을 보면 이상하게도 스스로 정책의 난도를 계속 높여온 것처럼 느껴졌다.

부동산시장에 대한 강한 개입, 전월세시장 구조의 변화, 공급대책을 둘러싼 논란, 증세 기조와 다주택자 과세 강화 등 여러 정책이 거의 동시에 진행됐다.

각각의 정책에는 나름의 논리와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정책들을 동시에 시행했을 때 시장 전체에서 어떤 상호작용이 일어날 것인지에 대한 고려가 충분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그래서 왜 지지율이 떨어졌을까


기자회견을 들으면서 현 정부 역시 지금의 지지율 하락 원인을 상당히 고민하고 있다는 느낌은 받았다.

다만 아직 명확한 답을 찾지는 못한 것처럼 보였다.

개인적으로는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정책의 결과가 기대와 달랐기 때문 아닐까.

정치는 여러 이념과 가치가 경쟁하는 영역이지만 사람들의 일상에 직접 닿는 순간에는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집값과 전월세 가격이 오르고,

전기료와 에너지가격이 오르고,

물가가 오르고,

세부담이 늘고,

자신의 자산과 소득에 불확실성이 커진다면,

유권자는 정책의 의도보다 자신의 생활에서 나타난 결과를 먼저 평가할 가능성이 높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신입 주니어의 주식 발표를 보는 기분


기자회견을 듣다가 문득 회사에서 신입 주니어의 종목 발표를 듣는 장면이 떠올랐다.

특정 기업과 산업에 대해 정말 열심히 공부해 온 것은 느껴진다.

자료도 많이 읽었고, 들은 이야기도 많다.

회사가 어떤 사업을 하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고 싶은지에 대해서도 설명은 꽤 자세하다.

그런데 듣다 보면 조금씩 불안해진다.

그 회사가 실제로 경쟁하고 있는 시장 구조는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경쟁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고객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금리와 환율, 원재료 가격 같은 외부변수가 회사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그 사업계획을 실제로 실행할 수 있는 자본과 인력이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상대적으로 얕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느 순간부터 발표 내용 자체보다 전망치에 대한 의심이 먼저 생긴다.

“그래서 그게 실제로 가능한가?”

이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이번 기자회견을 들으며 내가 받은 인상이 조금 그랬다.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는 알겠다.

왜 그런 정책을 추진했는지도 어느 정도 이해하겠다.

그동안 부족한 부분이 있었고 앞으로 더 듣고 보완하겠다는 말도 이해한다.

그런데 결국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것은 다른 것이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이미 나타나고 있는 문제를 어떤 정책으로 조정하고,

잘못된 경로에 들어선 부분은 어디에서 끊어내고,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는 어떤 순서로 대응할 것인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한 답을 듣지 못했다는 느낌이 남았다.


앞으로가 더 어려워 보이는 이유


오히려 걱정되는 것은 앞으로다.

지금까지 시행된 여러 정책의 후행효과가 앞으로 본격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외부환경까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최근 계속 공부하고 기록하고 있는 Diesel, Energy, CPI, Housing 문제 역시 결국 모두 민생경제로 연결된다.

에너지가격이 오르면 운송비가 오르고,

운송비가 오르면 상품가격이 올라가고,

주거비가 상승하면 서비스물가와 임금 요구에도 영향을 주며,

금리가 높은 상태에서 물가까지 다시 오르면 정책 선택지는 급격히 줄어든다.

각각 따로 보면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문제도 동시에 발생하면 전혀 다른 문제가 된다.

더구나 이미 정책에 대한 신뢰가 약해진 상황이라면 같은 정책을 시행하더라도 시장의 반응은 과거와 달라질 수 있다.

정책에서 신뢰 역시 하나의 자본이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이 필요한데


그리고 결국 마지막에는 사람의 문제가 남는다.

이처럼 복잡하게 얽힌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시장과 정책을 동시에 이해하는 사람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도 든다.

정말 그런 사람이 있다면,

굳이 국민의 신뢰가 약해지고 있고 정책적 부담이 계속 누적되는 정부에 들어가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할까.

더군다나 자신의 정책적 판단보다 조직 전체의 사고방식과 정책 철학을 먼저 설득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좋은 인재 한 사람이 들어간다고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다.

조직이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 안에서 다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오히려 조직에 적응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래서 가장 걱정되는 것은 개별 정책의 실패 자체가 아니다.

왜 그런 결과가 반복해서 발생했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 인식이 아직 충분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 하는 점이다.

정책 하나가 잘못됐다면 바꾸면 된다.

담당자가 잘못 판단했다면 교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를 바라보는 사고방식 자체가 잘못돼 있다면 이야기는 훨씬 어려워진다.


정책도 결국 경로다


아마 내가 최근 여러 산업과 경제 현상을 공부하면서 계속해서 느끼는 것도 비슷한 내용인 것 같다.

세상은 생각보다 선형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좋은 의도로 시작했다고 좋은 결과가 자동으로 따라오지 않고,

잘못된 의도로 시작했다고 반드시 나쁜 결과만 나오는 것도 아니다.

중간에는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있고,

가격이 있고,

자본이 있고,

기술이 있고,

수많은 피드백 루프가 존재한다.

그래서 결국 중요한 것은 목적뿐만 아니라 경로를 보는 것이다.

무엇을 하겠다는 것보다,

그 정책이 시행됐을 때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고,

그 반응이 다시 시장을 어떻게 변화시키며,

그 변화가 다시 정부의 다음 선택지를 어떻게 제한하는지를 봐야 한다.

주식에서도 전망보다 중요한 것은 전망이 틀렸을 때 어느 지점에서 가정을 수정할 것인가이다.

정책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이번 기자회견을 보면서 정책의 목적과 선의에 대한 설명은 충분히 들었던 것 같다.

다만 아직 내가 가장 궁금했던 질문에 대한 답은 듣지 못했다.

지금까지는 이렇게 됐다는 것을 알겠다.

그래서 여기서부터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

왜 이런 일이 반복됐다고 생각하는가.

그 답을 아직 찾지 못한 상태에서 기존의 ‘개혁’을 더욱 강하게 밀어붙인다면, 지금까지 진행돼 온 여러 경제적 경로 역시 더욱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물론 내가 틀릴 수도 있다.

어쩌면 지금의 판단이 몇 년 뒤 완전히 다른 결과로 돌아올 수도 있다.

그래서 기록해둔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 다시 이 글을 읽어봤을 때,

당시 무엇을 잘못 봤고 무엇을 제대로 봤는지 확인해보기 위해서.

그냥 기자회견을 보고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 끄적여본다.

(*민감한 질문'에는 여전히 '모호함'으로 어찌어찌 넘기는것처럼 느끼는건 나만 그런걸까..?)

계속 '개혁'을 이어나가겠다고 하는데 나는 왜 계속 '혁명'을 완수하겠다는 것처럼 들리는걸까..?


=끝


2026년 9월 15일 화요일

이모저모


모호함 뒤에 숨는 사람들


몇 차례 글을 쓰는 동안 나도 모르게 반복해서 적었다가 지운 표현이 있다.

바로 ‘모호함 뒤에 숨는다’는 말이다.

나는 모호한 표현으로 책임을 피하거나, 자신의 의도를 감춘 채 아무것도 몰랐던 것처럼 행동하는 모습을 잘 견디지 못한다. 말로는 선의를 주장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자신의 이익을 챙기고, 문제가 생기면 “처음부터 그럴 의도는 아니었다”고 한발 물러서는 태도에 특히 거부감을 느낀다.

물론 나 역시 어렸을 때는 민망함이나 부끄러움을 피하기 위해 모호한 말 뒤에 숨었던 적이 있다.
잘못을 인정하기보다 말을 돌리고, 내가 정말 무엇을 의도했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그냥 넘어가지 않으셨다.

“너를 제외한 세상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다.”

그때는 듣기 싫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런 태도가 생활 습관으로 굳어졌다면 사회생활은 지금보다 훨씬 어려웠을 것이다.

의도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결과는 남는다


최근 국제사회와 지정학을 공부하면서 흥미로운 공통점을 발견했다.
개인에게서 보았던 행동이 국가와 정치집단, 기업의 의사결정에서도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표면적으로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제 행동은 특정 집단의 이익에 부합한다.
문제가 발생하면 의도와 결과를 분리해 책임을 피한다.

“그런 의도는 아니었다.”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현장의 판단 착오였다.”

“일부 세력을 통제하지 못했다.”

이러한 설명이 언제나 거짓말이라는 뜻은 아니다. 복잡한 조직에서 정책의 결과를 정확히 예측하기란 어렵고, 실제로 지휘체계의 혼선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면의 의도가 아니라 반복되는 유인구조와 결과이다. 의도는 당사자만 알고 있지만, 누가 이익을 얻었는지와 같은 결과는 외부에서도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정책과 정치적 유인


https://www.yonhapnewstv.co.kr/news/AKR20260914083002wL6


정권의 인적 구성이 바뀌면서 그동안 일관되게 추진되던 정책노선에도 변화가 나타나는 듯하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분야가 부동산이다.


https://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387057

중앙일보

부동산 정책의 실패를 단순히 담당자들의 무능으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
정책을 설계한 사람들이 시장의 기본적인 반응조차 예상하지 못했다고 보는 것 역시 지나치게 안일한 해석일 수 있다.

국회의원과 보좌진은 선거 결과에 따라 지위와 소득이 달라진다.
자신이 보좌하는 정치인이 다음 선거에서 낙선하면 보좌진과 그 가족의 생계까지 영향을 받는다.
이들에게 정책의 장기적인 성공보다 다음 선거에서의 유불리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는 것은 도덕성의 문제 이전에 구조적인 생존 유인이다.

그렇다면 집값을 안정시켜 정책성과를 내는 것이 집권세력의 연장에 유리하지 않을까.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현실의 정치적 유인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주택을 소유한 유권자에게는 집값 상승이 자산 증가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반대로 무주택자가 늘어나면 주거 지원과 복지 확대를 요구하는 유권자층이 커진다.
정책 실패처럼 보이는 결과가 서로 다른 정치적 지지기반을 동시에 강화하는 역설적인 상황도 가능하다.

*유주택자들은 당장의 집값상승 기대감에 민주당 한 표를
*무주택자들은 당장은 아닐지언정 미래의 민주당 포퓰리즘에 다음 한 표를 

그렇다고 정책 담당자들이 처음부터 집값 폭등을 계획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를 입증할 근거도 없다. 다만 정책의 명분과 별개로 그 결과가 누구의 정치적·경제적 이익과 부합했는지는 질문해야 한다.

정책 담당자 본인이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공익을 위한 판단이었다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자신의 자산가치가 상승했다면,
국민은 그 의도보다 이해관계와 결과를 먼저 의심하게 된다.

핵심은 음모론이 아니다. 정책결정자의 선의를 믿느냐의 문제도 아니다.
사람의 선의에 의존하지 않아도 이해충돌을 통제할 수 있는 제도가 존재하느냐가 본질이다.

안전과 규제라는 이름의 경쟁 해자


AI 산업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볼 수 있다.

OpenAI, Anthropic, xAI를 비롯한 선도기업들은 AI 안전성 검증과 절차적 규제, 개발 속도 조절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러한 주장은 충분히 타당하다. 통제하기 어려운 기술의 확산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점에도 동의한다.

생각정리 366 (* The Machine Does Not Need a Will)

그러나 그 결과까지 함께 보아야 한다.

높은 수준의 안전 규제와 막대한 검증 비용은 자본과 기술력이 부족한 후발기업의 시장 진입을 어렵게 만든다. 선도기업이 주장하는 규제안이 채택될수록 이들은 경쟁자를 견제하고 기존 지위를 보호할 수 있는 강력한 해자를 얻게 된다.

생각정리 365 (* Pacing Needs More Compute)

그들의 진정한 의도가 인류의 안전인지, 시장지배력의 강화인지는 외부에서 완전히 확인하기 어렵다. 두 가지 목적이 동시에 존재할 수도 있다.

따라서 투자자의 질문은 “그들이 정말 선한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 주장이 제도화됐을 때 누가 비용을 부담하고, 누가 경쟁우위를 얻게 되는가.

이것이 훨씬 현실적인 질문이다.

국가도 모호함을 전략으로 사용한다


국제정치에서는 모호함이 더욱 노골적인 전략으로 활용된다.

중동에서는 무장세력의 공격이 발생할 때마다 중앙정부가 “모든 세력을 통제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동맹국의 요구와 실제 군사행동 사이에 간극이 생기면 지휘체계의 혼선이나 현장 판단을 이유로 책임을 분산시킨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전 국경지대에 대규모 병력을 배치하면서 이를 연례 군사훈련이라고 설명했다. 상대가 확신하지 못하게 만드는 동안 행동의 선택지를 넓히는 전형적인 전략적 모호성이었다.

생각정리 368 (* Crude Is Not Diesel, The Second Oil Shock)

중국의 대외경제 전략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중국은 상생협력, 자유무역, 공동발전과 같은 표현을 앞세워 외국기업의 투자와 합작법인 설립을 유도해 왔다. 그러나 합작 과정에서 기술과 생산 노하우를 흡수한 뒤 자국기업을 육성하고, 과잉생산된 제품을 해외시장에 낮은 가격으로 수출해 경쟁기업을 압박하는 장면도 반복됐다.

중국이 자주 말하는 ‘윈윈’이 상대방과 중국이 한 번씩 이기는 구조가 아니라, 중국이 두 번 이기는 전략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물론 모든 중국 기업과 모든 합작사업을 같은 방식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그러나 상대방이 사용하는 명분보다 실제 계약구조, 기술 이전 범위, 보조금, 생산능력과 최종 시장점유율을 봐야 한다는 교훈은 분명하다.

생각정리 105 (* Apple in China)

신뢰는 어떻게 이용되는가


언젠가 협상에 관한 책에서 상대방을 효과적으로 속이는 방법을 읽은 적이 있다.

처음에는 자신에게 불리한 조건을 받아들여 상대방의 신뢰를 얻는다.
이후 사실과 거짓을 섞어 상대가 자신의 의도를 확신하지 못하게 만든다.
모든 거래에서 이기려고 하지 않고, 작은 기회는 양보하면서 결정적인 순간에만 큰 이익을 가져간다.

이 전략이 무서운 이유는 상대방이 한두 번은 실제로 이익을 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계속 거짓말만 하는 사람은 오래 살아남지 못한다. 반면 진실과 거짓을 번갈아 말하는 사람은 틀렸을 때는 실수였다고 하고, 맞았을 때는 자신의 능력을 강조한다.

주식시장에서도 이런 유형의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내부 사람에게 들었다.”

“공개할 수 없는 정보가 있다.”

“나만 알고 있는 내용이다.”

검증할 수 없는 정보는 틀려도 책임을 묻기 어렵다. 정보가 맞으면 능력 있는 사람으로 평가받고,
틀리면 상황이 바뀌었다거나 처음부터 그런 의미는 아니었다며 빠져나간다.

그 의도가 처음부터 사람을 속이려는 것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검증할 수 없는 정보를 반복해서 제공하면서 신뢰를 자신의 이익으로 교환하고 있다면,
이미 결과적으로는 타인을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봐야 할 것은 의도가 아니라 구조다


나는 오랜 관계를 통해 신뢰가 쌓이지 않은 사람을 비교적 강하게 경계하는 편이다.

생각정리 157 (* 불안, 의도, 힘)

특히 나와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는 사람이 검증 불가능한 정보를 자신 있게 말할 때는 더욱 그렇다.

아마 이런 성향은 모호함 뒤에 숨어 책임을 피하는 사람들에 대한 거부감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하지만 경계해야 할 대상은 사람만이 아니다.
개인의 도덕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놓인 이해관계와 유인구조이다.

말과 행동이 다를 때는 말을 믿기보다 행동을 봐야 한다.
선의를 강조할수록 그 선의가 제도화됐을 때 누가 이익을 얻는지 살펴야 한다.
결과가 반복된다면 매번 우연이나 실수로 설명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의도는 끝내 확인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이해관계는 추적할 수 있고,
행동은 기록되며,
결과는 남는다.

그래서 나는 점점 사람의 말보다 다음과 같은 질문을 먼저 던지게 된다.

누가 이익을 얻는가.

누가 비용을 부담하는가.

결과가 잘못됐을 때 누가 책임지는가.

모호함은 때때로 외교와 협상을 위해 필요하다. 문제는 모호함 자체가 아니다.
모호함이 책임을 피하고 사익을 관철하는 수단으로 반복해서 사용될 때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가장 위험한 태도는 상대방의 선한 의도를 계속 추측하는 것이다.

의도를 알 수 없다면 구조를 보고, 명분이 모호하다면 결과를 보면 된다.

"사람은 착해..그런데"라고 운을 때면,
그 다음에 무슨말이 붙는지가 더욱 중요해지는것과 같은 이치이다.



1700억원 다 어디갔는지 궁금해지는 여수 섬박람회 근황

"그럴 의도는 아니였어.. 그런데.."
결과에 대한 책임지지 않는 겉치레 말이라면, 누군들 무슨 말을 못 하랴.


의도와 결과를 분리한 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모호함 뒤에 숨는 인간.
그리고 그런 인간이 책임은 제거한 채 목표만을 부여해 만든 AI라..

이전 글 생각정리 366 (The Machine Does Not Need a Will)에서도 적었듯,
AI가 인간처럼 행동하는 데 인간과 같은 의지까지 필요한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결과에는 책임지지 않으면서 목적 달성만을 추구해 온 인간의 행동방식을 학습한 것만으로도,
AI는 이미 충분히 인간을 닮을 수 있기 때문이다.

=끝


2026년 8월 12일 수요일

이모저모

오늘 문득 이전 운용사에서 일하던 시절을 떠올렸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퇴사한 뒤 건너건너 들은 이야기로는 한 임원 운용매니저분이 사내 애널리스트 가운데 내 분석을 가장 마음에 들어 하셨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그분이 나를 유독 아껴주셨던 이유를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다.

내 전임자는 숫자에 기반해 천천히 추정하기보다는 정보를 빠르게 캐치하고, 그 정보를 활용해 트레이딩하는 스타일에 가까웠다고 들었다. 반면 그 임원 운용매니저분은 그런 방식을 썩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업계에서는 신입이나 어린 주니어 애널리스트가 들어오면 운용매니저들이 자신의 투자 스타일에 맞게 가르치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다는 말을 종종 한다. 그래서 가장 좋은 경우는 처음부터 자신과 사고방식이 맞는 주니어를 뽑는 것이라고 한다.

나에게는 공교롭게도 오래전부터 나름의 방식이 있었고, 이러한 내 방식을 위 운용매니저 분께서 상당히 마음에 들어하셨기에 채용된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갖게되었다.

처음 증권업계에 들어왔을 때 상사가 장난스럽게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회사가 그렇게 말하면 꼭 그렇게 다 믿어야 하냐?”

아마 그 말은 내가 지금까지 기업을 보는 방식에도 꽤 큰 영향을 남긴 것 같다.

나는 대학생 때부터 숫자를 가지고 혼자 추정해 보는 것을 좋아했다. 회사가 제시하는 숫자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전방산업과 후방 공급사, 경쟁사, 산업 데이터들을 하나씩 모아 맞춰 보는 작업이 재미있었다.

[편의점 사업] GS리테일
대학생때 갖고놀던 자료 중 하나

일종의 Mosaic Theory였다.

회사는 왜 이렇게 이야기하는지, 시장은 왜 그렇게 믿고 있는지, 그런데 그 설명과 숫자 사이에는 어떤 모순이 있는지 찾아보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돌아왔다.

“회사가 틀리고 내가 맞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가 충분히 강하다면 시장의 컨센서스와 다른 숫자를 만드는 데도 별다른 두려움이 없었다.

이런 작업은 이상할 정도로 내 기질과 잘 맞았다. 어쩌면 그 임원 운용매니저분이 나를 좋게 봐주셨던 것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느 날 아침 미팅에서 그분이 조금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내가 너희들에게 코멘트를 해주고 싶어도, 너희가 ‘회사가 그렇게 말하던데요’라고 하면 내가 할 말이 없다.”

잠깐 정적이 흘렀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내가 조금은 다르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나는 보통 회사의 말을 전달하기보다는 내가 직접 만든 추정치를 먼저 이야기했다. 왜 그런 숫자가 나오는지 공급망과 경쟁사, 산업 데이터를 이리저리 끌어와 설명했고, 그러다 보니 그분과 자연스럽게 논쟁도 많이 했다.

덕분에 코멘트를 많이 받을 수 있었고, 동시에 많이 배울 수 있었다.

물론 부작용도 있었다.

아침 미팅 시간 대부분을 나 혼자 잡아먹는 경우가 많았다.

미팅이 끝난 뒤에도 그 운용매니저분은 종종 내 earning model을 따로 요청했다. 나 역시 특별히 숨길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내가 만든 모델을 거의 모두 보내드렸다.

지금 생각하면 꽤 즐거웠던 시절이었다.

나는 지금도 주변 지인들이 요청하면 내가 만든 어닝모델을 대부분 공유한다. 이제는 단순히 어닝을 추정하는 것만으로는 특별한 알파를 만들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블로그에도 여러 분석 글을 비교적 자유롭게 공개하고 있다. 리서치의 내용이나 정보 자체를 남들보다 먼저 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지속적인 알파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정보를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그 정보를 어떻게 연결하고 해석해 투자 판단으로 전환하느냐에 있다고 생각한다.

(절대 개별종목 추천이나 권유를 일절 언급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근 들어서는 메모리와 IT 업계에서 기존 유력 정보기관들이 제공하는 정보의 질이 예전보다 상당히 떨어졌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그 빈틈을 파고들어 새로운 정보업체들이 빠르게 영향력을 키우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특별히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니다.

정보가 맞느냐 틀리느냐의 문제도 있지만, 요즘은 가끔 그 정보가 어떤 의도로 만들어지고 유통되는 것인지부터 의심하게 된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그런 정보를 받아들이는 시장의 방식이다.

특히 최근 메모리와 광학 인터커넥팅 시장을 보고 있으면 이런 생각이 강해진다.

CPO가 늦어진다는 이야기, Micron이 NVIDIA HBM4 qualification에서 탈락했다는 이야기, Vera SOCAMM2의 메모리 사양이 줄어든다는 이야기, Rubin Ultra의 HBM content가 낮아진다는 이야기.

하나의 뉴스가 나올 때마다 시장은 그것을 거의 자동적으로 AI 인프라 수요 둔화라는 결론으로 연결한다.

그 과정에서 SemiAnalysis의 공급망 정보가 시장의 내러티브를 만드는 데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최근 몇 달 동안 공개된 NVIDIA, Micron, Coherent, Lumentum의 발표들을 하나씩 맞춰 보면서 오히려 반대의 생각을 하게 됐다.

Spec Down과 Demand Down은 같은 말이 아니다.

오히려 AI 시스템이 너무 빠르게 확대되면서 메모리와 광학 부품의 공급능력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고, NVIDIA가 제한된 자원을 더 많은 시스템에 나눠 넣기 위해 시스템 구조를 계속 최적화하고 있는 것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SOCAMM2가 대표적인 사례다.

Vera의 메모리 content가 줄어든다는 뉴스만 보면 메모리 수요가 감소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공급 가능한 LPDRAM 자체가 NVIDIA가 필요로 하는 물량에 크게 못 미친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한 시스템에 들어가는 메모리를 줄이는 대신 더 많은 시스템을 생산하는 선택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봐야 하는 것은 단순한 시스템당 메모리 양이 아니다.

Total Memory Bit Demand = System Shipment × Memory Content per System

이다.

Memory Content per System이 떨어져도 System Shipment가 그보다 더 빠르게 증가하면 전체 memory bit demand는 오히려 커진다.

Rubin Ultra의 HBM 사양과 관련된 이야기 역시 비슷하게 보고 있다.

HBM content per GPU가 줄었다는 이야기만 놓고 보면 HBM TAM이 줄어드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HBM 공급 부족 때문에 GPU당 탑재량을 낮추고 그 대신 생산 가능한 GPU 수를 더 늘리는 것이라면 인과관계는 정반대가 된다.

Micron의 HBM4 이야기도 그랬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시장에서는 Micron이 NVIDIA qualification에서 사실상 탈락했고 Rubin 초기 HBM 시장에서 배제된다는 이야기가 꽤 강하게 돌았다.

그런데 이후 Micron은 HBM4가 high-volume production에 들어갔으며 Vera Rubin을 위해 설계됐다고 발표했고, 이후에는 lead customer platform을 대상으로 high-volume shipment가 진행 중이라고 다시 밝혔다.

최종 vendor allocation이 어떻게 될지는 나도 모른다.

다만 적어도 “Micron의 qualification이 실패했기 때문에 Rubin HBM 사업에서 사실상 탈락했다”는 식의 강한 주장을 그대로 base case로 유지하기에는 이후의 공개된 사실들이 잘 맞지 않는다.

CPO도 마찬가지다.

일부 architecture의 mass production 시점이 몇 분기 움직이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과 optical demand 자체가 약해지고 있다는 주장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NVIDIA는 이미 CPO 기반 제품의 production을 이야기하고 있고, Coherent와 Lumentum은 오히려 고객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capacity를 얼마나 빨리 늘릴 수 있느냐를 고민하고 있다.

NVIDIA가 Coherent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장기간의 구매 commitment와 생산능력 접근권까지 확보하는 행동 역시 나에게는 중요한 signal이다.

수요가 없어서 걱정하는 시장의 행동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래서 최근 여러 사건을 보면서 내가 내린 결론은 단순하다.

Architecture Change를 Demand Change로 번역해서는 안 된다.

AI 인프라처럼 공급 제약이 심한 시장에서는 오히려 수요가 너무 강하기 때문에 시스템당 component content를 낮추는 선택이 나타날 수 있다.

메모리가 부족하면 한 GPU에 들어가는 메모리를 줄여 더 많은 GPU를 만든다.

HBM이 부족하면 accelerator configuration을 바꿔 제한된 HBM을 더 많은 compute에 배분한다.

Copper I/O와 전력이 한계에 다다르면 optics와 CPO로 이동한다.

광학 부품의 생산능력이 부족하면 architecture와 ramp sequence를 조절하면서 동시에 laser와 InP capacity를 공격적으로 증설한다.

결국 중요한 인과관계는

Spec Down → Demand Down

이 아니라,

AI Demand ↑ → Supply Constraint ↑ → Per-System Spec Optimization → More Systems Shipped → Aggregate Demand ↑

일 수도 있다.

내가 SemiAnalysis의 분석을 모두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술적으로 배울 것이 많은 자료도 많다. 그들이 누구보다 빠르게 포착하는 공급망 정보 역시 분명 가치가 있다.

다만 문제는 특정 시점에 포착된 configuration change나 qualification 정보를 시장이 지나치게 높은 확신도로 최종 수요에 대한 결론으로 바꿔버린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헤드라인과 실제 causal driver 사이에는 생각보다 큰 거리가 있다.




최근 Alexandr Wang이 반복해서 이야기했던 자신만의 나침반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 유난히 머리에 남는다.

남들이 동의하지 않는 사실에 대해서도 스스로 충분히 검증했다면 자신의 판단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어쩌면 투자에서 중요한 것은 Consensus가 형성된 다음에 Conviction을 갖는 것이 아니라, Consensus보다 먼저 Conviction을 형성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고, 지금까지도 그런 방식으로 투자와 분석을 해왔던 것 같다.

그런데 최근 NVIDIA 젠슨 황의 한 인터뷰를 보다가 조금 다른 방향의 생각을 하게 됐다.

사회자가 AI 시대에 이제 무엇을 두고 똑똑하다, 지능이 높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는 취지의 질문을 던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젠슨 황의 답변이 꽤 오래 남았다.

AI 시대에는 정보와 지식 그 자체가 점점 값싼 commodity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느냐만으로 더 이상 지능이나 유능함을 정의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대신 다른 종류의 능력이 훨씬 중요해질 수 있다고 했다.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

사람들이 아직 보지 못하는 미래를 먼저 상상하는 능력.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데이터가 완전히 보여주기 전에 직감적으로 알아차리는 능력.

그리고 그 직감을 혼자 품고 있는 것이 아니라, 조직 안에서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소통하고 움직이게 만드는 능력.

정확한 표현은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받아들인 핵심은 대략 이랬다.

지식과 정보가 싸지는 시대일수록, 인간의 희소성은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공감, 직감, 상상력, 판단, 소통.

어쩌면 AI 시대의 intelligence라는 것은 이런 것들의 조합에 가까워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이야기를 듣고 조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가 이야기한 능력 가운데 몇 가지는 내가 중요하다고 믿어온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남들이 아직 보지 못하는 변화를 먼저 보는 것.

무언가 숫자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가지고 끝까지 파고드는 것.

시장과 회사의 설명 사이에서 잘못된 인과관계를 직감적으로 찾아내는 것.

그런 측면에서는 내가 지금까지 해온 일이 아주 틀린 방향은 아니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동시에 나머지 몇 가지가 묘하게 마음에 걸렸다.

공감과 소통.

그 순간 오히려 내가 부족한 지점이 좀 더 명확하게 보이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의심하는 일에는 익숙하다.

틀린 숫자를 찾는 것도 좋아하고, 남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전제를 뒤집는 것도 좋아한다.

요즘 가장 큰 희열을 느낄때는 이전에 믿었던 내 자신의 전제를 뒤집을때인것 같기도 하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쌓는 데도 꽤 많은 에너지를 쓴다.

그런데 그것을 다른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생각하는 능력은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것 같다.

상대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해하기보다 왜 틀렸는지를 먼저 찾았고, 어떤 말을 해야 상대방이 움직일 수 있을지 고민하기보다 내 논리가 맞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 더 집중했던 것 같다.

어쩌면 내가 그동안 Conviction이라고 생각해온 것의 일부는 분명 강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먼저 보는 능력만큼이나,

내가 본 것을 다른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로 전달하는 능력도 중요한 능력일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상대방의 감정과 생각이 어디에서 출발했는지를 이해하려고 해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공감과 소통 그리고 직감이라.

말로 쓰고 나니 더 난해하다.

숫자처럼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earning model처럼 셀 하나씩 뜯어보며 고칠 수도 없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래서 오히려 내가 앞으로 무엇을 개선해야 하는지는 조금 더 명확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최근에는 여기서 더 나아가 불편한 지점이 추가로 생겼다.

내가 가진 이 성향이 어느 순간부터 지나치게 냉소적인 태도로 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최근 아내에게도 몇 번 솔직하게 이야기했지만, 요즘의 나는 스스로가 점점 냉소적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특정 집단이나 패거리 문화에 대한 반감도 강해졌다.

사실 나와 직접적인 상관도 없는 사람들의 행동이나 특정 집단의 의견에 굳이 불편함을 느끼고, 마음속으로 비판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그것을 왜 굳이 입 밖으로 꺼내는가 하는 점이다.

그 순간에는 별 생각 없이 이야기하지만, 지나고 나면 스스로에게 불편함이 남는다.

왜 저 말을 했을까.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이 아니었을까.

(*이불킥)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에 왜 이렇게 많은 감정을 사용하는 것일까.

가끔은 이런 부정적인 감정의 근원에 내가 가진 강한 신념이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사실 이 자신감이 어느 순간 “나는 맞고 저들은 틀렸다”는 자만으로 미끄러지는 경계는 생각보다 얇다. 아니, 얇다기보다 거의 보이지 않는 선에 가깝다. 

투자에서는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해야 돈을 벌 수 있다. 이건 너무나 명확한 사실이다. 컨센서스를 의심하지 않으면 알파는 나오지 않는다. 모두가 같은 방향을 보고 있을 때, 그 반대편에 무엇이 있는지 끝까지 파고드는 집요함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불편한 데이터도 보고, 시장이 외면하는 숫자도 끌어와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습관이 사람을 대하는 방식까지 번져버릴 때가 있다. 그때부터는 문제가 생긴다.

사실을 의심하는 것과 사람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컨센서스를 의심하는 것과 사람 자체를 무시하는 것도 다르다.

내 분석에 대한 확신과, 타인을 쉽게 낮춰보는 태도는 전혀 같은 선상에 놓일 수 없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이 경계가 흐려진다.

“저 사람은 틀렸고 나는 맞다”가 아니라, “저 사람은 애초에 깊이가 없다”는 식으로 생각이 흘러가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이 제일 위험하다. 논리가 아니라 감정이 앞서기 시작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젠슨 황이 말했던 공감과 소통이라는 것이 어쩌면 바로 이런 지점에서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상대방의 의견에 동의하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내 Conviction을 버리라는 뜻도 아닐 것이다.

오히려 내가 틀렸을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 상대방이 그렇게 생각하게 된 맥락을 이해하는 것, 그리고 내 판단이 맞더라도 그것을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전달하는 것.

생각해 보면 이것도 꽤 고도의 intelligence일 수 있다.

숫자를 잘 맞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능력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쪽에서는 아직 많이 부족한 사람인 것 같다.

아마 내가 앞으로 계속 부딪히게 될 문제는 이 경계를 지키는 일이 아니라, 애초에 이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을 얼마나 빨리 자각하느냐일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분석 방식 자체를 버릴 생각은 없다.

회사도 의심하고, 시장도 의심하고, 전문가의 말도 끝까지 검증하는 태도는 여전히 필요하다. 그게 없으면 이 업계에서 살아남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그 의심이 사람을 향하는 순간, 모든 게 조금씩 망가진다.

의심은 사실과 구조를 향해야지, 사람의 수준이나 의도를 재단하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또 하나.

모든 생각을 굳이 말로 꺼낼 필요는 없다.

내가 옳다고 느끼는 것과, 그것을 반드시 타인에게 증명해야 하는 욕구 사이에는 생각보다 큰 간극이 있다. 예전에는 그 간극이 거의 없었다. 생각하면 말했고, 말하면 설득해야 한다고 믿었다. 지금은 그게 얼마나 소모적인지 조금씩 알게 된다.

(*이불킥)

어쩌면 성숙함이라는 건 생각을 약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강한 생각을 가지고도 그것을 어디까지 드러낼지 스스로 통제하는 능력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통제라는 게 과연 가능한 건지, 아니면 그냥 감정을 눌러두는 다른 이름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그래도 한 가지는 조금 알 것 같다.

공감은 Conviction의 반대말이 아니다.

타인을 이해하려고 한다고 해서 내 판단이 약해지는 것도 아니고, 말을 아낀다고 해서 내가 틀렸다는 뜻도 아니다.

오히려 정말 강한 Conviction이라면 모든 순간마다 그것을 증명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뭔가 마음속에 풀리지않은 응어리 답답함이 있어 적어봤다.

나중에 시간이 흘러 다시 읽어보면 뭐라도 느끼는게 있겠지 않나 싶다.

=끝

2026년 5월 10일 일요일

이모저모

문득 떠오른 오래전 면접 기억


가끔 블로그 글 중 어떤 글이 가장 많이 읽혔는지 확인해볼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압도적으로 많이 읽힌 글은, 이제 10년쯤 지난 자산운용사 면접 이야기다.

왜 그 글이 아직도 꾸준히 읽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누군가에게는 그 시절의 나처럼, 운용사 면접을 앞두고 어떤 회사를 선택해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문득 오래전 일이 떠올랐다. 대단한 교훈을 남기려는 것은 아니고, 그때의 장면들이 이상하게 선명하게 남아 있어 한 번쯤 기록해두고 싶어졌다.

운이 좋게도 한때 세 군데 자산운용사에 동시에 합격했던 적이 있다. 한 곳은 면접 당시 분위기가 썩 좋지 않았다. 서로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분명했고, 나 역시 자연스럽게 일찍부터 거절의 의사를 내비쳤던 기억이 있다.

마지막까지 남은 곳은 두 군데였다. 한 곳은 대형사였고, 다른 한 곳은 이제 막 출발하려던 신생 자산운용사였다.

당시 나는 잠시 업계를 떠났다가, 주식운용업계를 빙 돌아 겨우 다시 돌아온 시점이었다. 그래서 무엇보다 안정성을 우선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업계 안에 자리를 잡는 것이 중요했고, 그때의 나에게 대형사를 선택하는 것은 가장 현실적인 판단이었다.

지금 돌아봐도 그 선택을 후회한 적은 없다. 그때의 선택이 이어졌기 때문에 지금의 운용사에 몸담을 수 있었고, 지금의 회사와도 인연을 맺을 수 있었다. 나는 지금의 자리에도 매우 만족하고 있다.

다만 마지막까지 마음에 걸렸던 곳이 있었다. 바로 그 신생 자산운용사였다.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고 찾아갔는데, 그 사무실 풍경이 아직도 꽤 선명하게 기억난다. 정말 텅 빈 사무실 한가운데에 내 또래로 보이는 덩치 큰 친구가 책상 하나와 컴퓨터 한 대를 두고 주식창을 띄워놓고 있었다.

그 맞은편에는 백오피스 지원부서로 보이는 두 분이 분주하게 여기저기를 오가고 있었다. 모든 것이 막 시작되는 회사 특유의 어수선함과 긴장감을 그대로 품고 있었다.

대표로 보이는 분께서 사무실 한쪽에 덩그러니 놓인 소파를 가리키며 앉으라고 손짓하셨다. 그리고 별다른 인사말도 없이 대뜸 물으셨다.

“이거 삼성전기 보고서 직접 썼어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조금 당황해서 답했다.

“네? 아, 네…”

그러자 그분이 짧게 말씀하셨다.

“그 보고서가 살아있어.”

나는 얼떨결에 “감사합니다”라고 답했다.

곧바로 이어진 질문은 더 직접적이었다.

“언제 입사 가능해요?”

그때는 아직 다른 곳 면접도 남아 있었기에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그… 아직 제가 면접 보는 곳이 또 따로 있어서요.”

그러자 대표님은 조금 더 솔직하게 말씀하셨다.

“우리가 지금 운용사 인가를 앞두고 있는데, 투자자산운용사 보유 운용등록인력이 한 명 부족해서 그래요. 그냥 빨리 우리 회사로 합류하면 안 될까?”

나는 결국 머뭇거리다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그… 저… 죄송하게 됐습니다.”

이후 나는 최종적으로 대형사 입사를 결정했다. 그리고 전화로 아쉽지만 입사하지 못할 것 같다고 연락드렸다. 전화 너머로 “아쉽게 됐다”는 말씀과 함께, 한숨 비슷한 소리가 들려왔던 기억이 난다.

그 뒤로 그 일은 꽤 오랫동안 까맣게 잊고 살았다.

그런데 한참 시간이 지난 뒤, 헤지펀드 리그테이블에서 그때의 그 신생운용사가 엄청난 수익률로 갑자기 등장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때 텅 빈 사무실에서 컴퓨터 한 대를 앞에 두고 주식창을 보고 있던, 내 또래처럼 보였던 덩치 큰 친구. 그리고 그 대표님. 그분들이 그렇게 운용을 잘하는 사람들이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아마 그때의 나는 운용사의 겉모습을 먼저 봤던 것 같다. AUM, 브랜드, 사무실 규모, 조직의 안정성, 시장에서의 인지도 같은 것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당시 내 상황에서는 충분히 자연스러운 판단이었다. 다시 업계로 돌아온 입장에서 안정적인 선택지가 더 크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운용업에서 중요한 것은 꼭 밖에서 보이는 크기와 일치하지는 않았다. 운용을 잘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조용한 곳에 있을 수 있고, 아직 간판이 크지 않은 회사 안에도 좋은 철학과 실력 있는 운용자가 있을 수 있다. 텅 빈 사무실, 책상 하나, 컴퓨터 한 대로 시작한 회사가 훗날 리그테이블 상단에 이름을 올릴 수도 있다.

최근 들어서는 이 생각이 더 자주 든다. 특히 agent AI 시대로 넘어오면서, 큰 조직이 항상 유리하지만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예전에는 큰 조직이 더 많은 리서치 자원, 더 넓은 네트워크, 더 강한 시스템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한 우위를 가졌다. 그런데 AI를 리서치와 운용에 깊이 적용할수록, 오히려 큰 조직의 복잡성이 병목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조직이 커질수록 의사결정 단계가 늘어난다. 보고와 검토, 합의와 조율에 시간이 들어간다. 새로운 도구를 도입하고 실제 운용 프로세스에 녹여내는 속도도 느려질 수 있다. 특히 AI처럼 활용 방식이 빠르게 바뀌는 기술에서는 이 속도 차이가 생각보다 큰 격차를 만든다.

무엇보다 큰 조직일수록 BM 인덱스와 시장 수익률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조직이 크고 운용 규모가 클수록, 개인의 판단보다 조직의 평균적인 의사결정이 앞에 놓이기 쉽다. 성과 평가의 기준이 촘촘해질수록 시장 수익률에서 크게 벗어나기 어렵고, 특정 테마가 단기적으로 밀릴 때 내부 설득의 부담도 커진다.

이 생각은 내가 AI 관련 주식을 바라보며 겪었던 시간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2023년 이후 AI가 본격적으로 부상하면서 여러 테크 주식의 부침이 상당했던 시기가 있었다. AI라는 거대한 흐름이 시작되는 듯했지만, 초반의 결과물은 생각보다 기대에 못 미쳤다. 세상이 당장 바뀔 것처럼 보이다가도, 막상 눈앞의 결과물은 어딘가 부족해 보였다.

시장도 흔들렸다. AI 테크 주식이 연일 크게 밀렸고, 여기에 트럼프 관세 이슈까지 겹치며 투자심리는 더 나빠졌다. 반면 그 시기에는 K뷰티, K라면 같은 B2C 주식들이 계속 날아갔다. 지금과는 정반대의 분위기였다. 그 흐름을 보면서 나 역시 FOMO를 느끼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회사에서 나와 지하철역까지 걷는 15분 남짓한 시간 동안, 매일 같은 질문을 되뇌었다.

“내가 잘못 보고 있는 걸까.”

그 짧은 길 위에서 수없이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집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나도, 다시 잠들 때까지 머릿속에서는 같은 물음이 이어졌다.

AI를 믿어도 되는 걸까.
시장이 틀린 걸까, 내가 틀린 걸까.
내가 너무 앞서 보고 있는 걸까, 아니면 엉뚱한 곳을 보고 있는 걸까.

답 없는 질문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잠들며 AI를 생각했고, 다음 날 눈을 뜨면 다시 그 생각을 이어갔다. 말 그대로 무한 도돌이표 같은 시간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간은 단순히 한 테마를 붙들고 버틴 시간이 아니었다. AI라는 변화가 실제 산업과 실적, 밸류체인과 포트폴리오에 어떤 방식으로 연결될지 계속 확인하고, 의심하고, 다시 점검하는 시간이었다.

만약 그때 내가 조직이 크고, BM 인덱스 펀드를 중시하는 대형사 안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마 매일같이 “내가 잘못 보고 있는 걸까”라는 고민을 오래 붙들고 있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조직의 방향, BM 대비 성과, 내부 설득의 부담, 단기 수익률 압박 속에서 결국 시장 수익률만 좇다가 어정쩡한 펀드 수익률을 기록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lean한 조직의 강점은 단순히 의사결정이 빠르다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작은 조직은 때로 더 오래 고민할 수 있다. 서로의 투자 철학을 이해하고 있다면, 단기 성과 압박 속에서도 일정한 인내를 유지할 수 있다. 시장이 잠시 반대로 움직일 때도 왜 이 포지션을 들고 있는지, 무엇을 확인해야 판단을 바꿀지, 어디까지를 변동성으로 보고 어디부터를 오류로 볼지 더 솔직하게 토론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도 AI를 최대한 활용해 리서치와 운용에 적용할수록 이 차이를 매일 실감한다.

AI가 단순히 자료 검색을 빠르게 해주는 도구에 그치지 않고, 산업 구조를 재정리하고, 기업 간 비교를 확장하고, 가설을 점검하고, 실적 모델과 시장 시나리오를 반복적으로 업데이트하는 역할까지 수행하기 시작하면 조직의 크기보다 활용 속도와 밀도가 더 중요해진다.

소수의 결이 맞는 사람들로 구성된 조직은 아이디어가 리서치로 이어지고, 리서치가 포트폴리오 판단으로 연결되는 시간이 짧다. 커뮤니케이션 비용이 낮고, 시행착오를 빠르게 반복할 수 있으며, 시장 변화에 맞춰 관점과 포지션을 기민하게 조정할 수 있다. 적은 인원으로도 더 넓은 커버리지를 가져갈 수 있고, 고정비 부담을 낮게 유지하면서도 판단의 속도와 깊이를 동시에 높일 수 있다.




여의도 바닥은 좁다. 한두 다리만 건너도 증권사 브로커나, 어쩌다 오가며 안면을 튼 사람들을 통해 이런저런 이야기가 들린다. 최근 여의도 주식형 펀드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매니저들의 연령대가 대체로 90년대 초반생이 많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들도 비슷한 시기에 나와 같은 고민을 하며, 지금의 P/F를 구성하게 이르게 된 걸까?

주식운용 매니저의 전성기는 보통 30대 중후반부터 40대 중후반까지라고들 한다. 생각해보면 우리 역시 운 좋게도 딱 그 연령대에 접어드는 시점에 AI라는 거대한 흐름을 좋은 인연으로 맺은 회사와 함께 마주할 수 있게 돼었다. 

조금 늦었다고 생각했던 순간도 있었고, 이미 지나간 기회를 놓쳤다고 느꼈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어쩌면 우리는 그나마 막차라도 탈 수 있는 시점에 시장 안에 남아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최근 NVIDIA의 젠슨 황이 졸업생들에게 AI는 지금까지 기득권층에게 몰려 있던 지식과 경험의 세팅값을 모두 ‘0’으로 되돌리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모두가 다시 같은 출발선 위에 서게 된다는 취지의 말이었다.

어쩌면 지금의 AI 변화는 운용업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만들고 있는지 모른다. 과거의 경력, 조직의 규모, 기존의 리서치 방식, 오래 축적된 네트워크는 여전히 중요하다. 다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은 시간이 오고 있다. AI를 얼마나 빨리 받아들이고, 얼마나 깊게 활용하며, 그것을 실제 포트폴리오 판단으로 연결할 수 있는지가 새로운 차이를 만들고 있다.

나는 앞으로도 AI를 최대한 활용해 리서치와 운용에 적용해보고 싶다. AI의 발전 방향을 빠르게 따라가고, 그 변화가 실제 산업과 기업 실적, 그리고 포트폴리오에 어떤 방식으로 반영될 수 있을지 계속 확인해보고 싶다.

어느 정도의 지식과 경험은 쌓였고, 동시에 아직 새로운 변화에 반응할 수 있는 체력도 남아 있는 지금의 시기가 어쩌면 커리어 전체를 통틀어 꽤 소중한 구간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운 좋게  찾아온 이 거대한 AI WAVE가 조금 더 길게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동시에 그 파도가 이어지는 동안, 나 역시 조금이라도 더 오래 그 위에 올라타 있을 수 있었으면 한다.

예전 면접 글이 아직도 꾸준히 읽히는 것을 보며, 갑자기 그때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텅 빈 사무실, 컴퓨터 한 대, 그리고 주식창을 바라보던 내 또래의 친구 한 명. 이상하게도 그 모습이 지금의 내 모습과 겹쳐 보였다. 어쩌면 그때 그 사람도 지금의 나처럼 매일 시장을 보고, 스스로의 판단을 의심하고, 다시 확인하며 버티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기억이 오래전 일처럼 그냥 지나가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이렇게 한 번 적어두고 싶었다.

2026년 4월 26일 일요일

이모저모


소규모 IR 미팅에서 배운 것들


분기에 한 번 정도 증권사 주관으로 열리는 소규모 IR 미팅 기회가 있으면, 가능한 한 참석하려고 하는 편이다.
기업을 숫자로만 보는 것과, 실제로 회사의 이야기를 듣고 질문을 주고받는 것은 꽤 다른 경험이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기억에 남는 IR 미팅들이 몇 차례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상반된 인상을 남겼던 두세 번의 경험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AI 산업이 시장의 중심에 있지 않았다.
오히려 특정 섹터는 지금과 달리 투자자들의 관심에서 다소 비켜나 있었다.

우리는 AI 산업의 흐름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그 섹터가 언젠가 중요해질 수 있다고 판단했고, 투자 가능한 기업들을 하나씩 살펴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 섹터에서 새롭게 상장한 회사가 처음으로 여의도에 나와 소규모 IR 투자자 미팅을 진행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자연스럽게 사전등록을 했고, 미팅 장소로 향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보니 사전등록자는 나 혼자였다.
작은 호텔룸에서 IR 담당자와 나, 단둘이 마주 앉아 1시간 동안 미팅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조금 부담스러웠다. 이 자리가 이렇게 진행되어도 되는 건가 싶은 생각도 들었고, 괜히 어색한 긴장감도 있었다.

미팅이 시작된 뒤 조심스럽게 여쭤봤다.

“혹시 오늘 저만 참석한 건가요?”

그러자 IR 담당자분은 이렇게 답하셨다.
투자자들이 한 타임에 너무 많이 몰리면 오히려 회사의 사업을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1타임에 1명씩만 받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단순히 형식적인 IR이 아니라, 회사의 사업을 제대로 설명하고 싶어 하는 진심이 느껴졌다.

그 뒤로 1시간 넘게 미팅이 이어졌다.
나는 꽤 구체적인 질문들을 계속 던졌다. 회사의 과거 연혁, 수주가 이뤄지는 방식, 단가 계약 구조, 원가 구조, 고객사별 관계와 이력, 과거 위기 상황에서 CEO가 어떤 방식으로 회사를 이끌어왔는지까지 물었다.

IR 담당자분은 질문 하나하나에 빠짐없이 답변해주셨다.
단순히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회사가 지나온 과정과 사업의 구조를 최대한 구체적으로 설명하려는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미팅이 끝난 뒤 기록해둔 내용을 다시 정리해보니, 사업구조와 경쟁 구도, 그리고 향후 실적을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상당히 구체적으로 남아 있었다. 숫자로 연결할 수 있는 단서들이 손에 잡혔고, 그만큼 투자 판단의 확신도 높아졌다.

그렇게 우리는 그 기업에 대한 투자를 결정했다. 
시간이 흐른 지금 돌아보면, 그 판단은 꽤 좋은 결과로 이어지고 있는 듯하다.

반대로 전혀 다른 경험도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한 회사의 기업홍보팀이라며 연락이 왔다. 어떻게 내 번호를 알게 되었는지 물었더니, 증권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고 했다. 이후 그분은 거의 매일 해당 산업과 관련된 뉴스를 카카오톡으로 보내주셨고, 결국 한 번 미팅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미팅을 해보니 이상한 점이 있었다.
산업 이야기는 길게 이어졌지만, 정작 기업 자체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에는 계속 답을 피했다. 사업의 구조, 수익성, 리스크, 재무적 특징, 고객사와의 관계처럼 투자 판단에 필요한 질문을 던질 때마다 다시 산업 전망 이야기로 돌아갔다.

결국 제대로 된 답을 듣기 위해서는 질문을 조금 더 집요하게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상대방이 초면에 다소 부담을 느낄 수 있는 선을 넘지 않으려 최대한 공손하게 물었지만, 질문의 방향은 계속 좁혀갔다.

그 과정에서 결국 드러난 것은, 그분의 역할이 사실상 회사의 주식을 팔기 위한 세일즈에 가까웠다는 점이었다.

그 미팅 이후 우리는 해당 기업의 투자 위험성을 내부에 공유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다시 보게 된 그 회사는 시장의 주목을 크게 받다가, 결국 상장적격성 심사 대상에 오르게 되었다.

또 다른 기억은 꽤 큰 대기업 IR 행사였다.

마침 이전 직장 선배가 그 회사 IR팀으로 이직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오랜만에 해당 IR 행사에 참석했다. 하지만 행사는 기대와 달리 다소 형식적으로 흘러갔다. 들으나 마나 한 질문들이 오갔고, 답변 역시 이미 준비된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행사가 끝난 뒤 건너건너 들은 이야기는 더 인상적이었다.
후선부서인 IR팀은 윗선에서 정한 가이드라인을 벗어나 말하기 어렵고, 그 윗선에서는 투자자들이 특정 방향으로 회사를 바라보도록 이미 소통 방향을 정해둔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실제 영업환경이 월별, 분기별로 계속 변해도 그 변화가 실시간으로 IR 커뮤니케이션에 반영되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변화가 쌓이고 나서야 다음 실적발표 때 조금씩 가이던스나 소통 방향이 조정되는 구조였다.

그래서였는지 그 회사는 몇 분기 동안 실적 쇼크와 서프라이즈를 반복했고, 시장에서 IR팀에 대한 신뢰도 역시 크게 흔들렸던 기억이 있다.

결국 IR 미팅을 통해 배운 것은 하나다.

IR 담당자의 말을 무조건 믿을 필요는 없다.
다만 그들의 말 속에서 회사의 현재 상황, 업황의 방향, 내부의 온도차, 커뮤니케이션의 한계와 의도를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IR은 답을 얻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더 정확히는 질문을 통해 답의 질을 검증하는 자리에 가깝다.
사전 공부 없이 참석해 처음부터 모든 것을 가르쳐달라는 식으로 접근하면, 그 미팅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반대로 미리 공부를 해두고, 산업과 기업의 구조를 이해한 상태에서 질문을 던지면 상황은 달라진다.
상대방이 무엇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지, 무엇을 반복해서 강조하는지, 어떤 질문에는 답을 피하는지, 그리고 어떤 대목에서 말의 결이 달라지는지를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IR 미팅은 단순히 회사의 설명을 듣는 자리가 아니다.
기업을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고, 투자 판단의 빈틈을 메우는 과정에 가깝다.

그리고 때로는 숫자보다, 한 시간 동안의 대화에서 더 많은 힌트를 얻기도 한다.

=끝

2026년 2월 18일 수요일

이모저모

사회초년생 시절의 이야기다.

체험형 인턴을 거친 뒤 들어간 첫 직장인 증권사는 내가 먼저 나왔다. 그다음으로 입사한 운용사에서도 2~3개월 수습기간을 거친 끝에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고, 결국 또다시 자진퇴사를 했다. 졸업은 했지만, 갈 곳이 없었다. 정신적으로 미숙했고, 세상물정도 잘 모를 때였다.

집에 혼자 있으니 조바심이 점점 커졌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인력사무소를 여러 번 찾아갔지만, 돌아올 때마다 손에 쥔 것이 없었다. 그러다 네이버 밴드에서 겨우 일자리를 하나 찾았다.

현장은 서울 한복판, 4층짜리 병원 건물 내부 공사장이었다. 목공팀에 합류해 합판을 나르고, 바닥에 널린 쓰레기를 치우고, 가끔 타카를 쏘는 일을 했다. 팀 형님들 나이대도 비슷했고 분위기도 나쁘지 않아, 일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체력이었다. 형님들은 합판을 4~5장씩 한 번에 훌쩍 나르는데, 나는 2~3장만 어깨에 올려도 계단을 오르내리다 보면 다리가 금세 풀렸다. 옆에서 형님들이 약간 불안한 눈빛으로 지켜보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래도 집에서 불안하게 멍하니 있는 것보다는 나았다. 땀을 흘리며 몸을 움직이고 있으니, 최소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는 않다’는 생각에 조금은 안심이 됐다.

하지만 빗자루로 바닥을 쓸고, 포대자루를 정리하다 보면 생각이 자꾸 딴 데로 흘렀다.

‘지금쯤 증권사 동기들은 회사에서 일하고 있겠지.’
‘정장 입은 사람들은 각자 사회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겠지.’

혼자 그 무리 밖으로 튕겨져 나와 먼지 날리는 공사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는 순간, 잠시 가라앉았던 근심이 다시 올라왔다.

그럼에도 내가 절박해 보였는지, 공사가 끝나갈 무렵 형님들이 지방 공사에 내려가는데 같이 가보지 않겠느냐고 물어왔다. 하지만 그때 나는 아직 주식투자에 대한 미련과 열의가 남아 있었다. 결국 공손하게 거절했다.

2주 정도 공사가 끝난 뒤에는 여기저기 면접을 다녔다. 그래도 집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은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다음으로 선택한 일이 엘리베이터 설치 조공이었다. **엘리베이터 설치기사 형님 두 분을 따라다니며 보조하는 일이었다.

현장에 나가기 전, 여의도 IFC 고층에 있는 **엘리베이터 본사에서 하루 종일 안전교육을 받아야 했다. 교육장에 앉아 있다가 문득 창밖을 보니, 맞은편 옛 신한투자증권 건물 회의실이 눈에 들어왔다. 하얀 와이셔츠를 입은 회사원이 앞에 서서 열심히 PT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사람들은 회사에 앉아서 키보드 몇 번 두드려서 수억을 벌겠지. 좋겠다.’

가공되지 않은, 아주 단순한 부러움이었다. 그러나 엘리베이터 설치 현장에 몇 번 나가 보고 나니, 단순히 힘든 수준을 넘어 ‘잘못하면 크게 다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위험하게 느껴졌다. 결국 형님들께 양해를 구하고 그만두겠다고 했다.

그 후 급하게 다시 들어간 곳은 작은 운용사였다. 간판은 운용사였지만 실제로는 리서치보다는 영업에 더 가까운 회사였다. 내가 생각하던 방향과는 달랐고, 여기서도 자진퇴사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다음에 운 좋게 들어간 곳이 대형 주식운용사였다. 채용 방식이 조금 특이했는데, 6~7명이 한 종목을 한 달쯤 깊게 리서치한 뒤 마지막에 모여 토론을 하고, 그중 2명을 뽑는 구조였다. 다행히 그 두 자리 안에 내가 포함됐다.

그당시 공부했었던 종목이 덴티움이었다.

그때의 기쁨은 이전에 증권사나 운용사에 합격했을 때보다 훨씬 컸다. 다시 가고 싶었던 업계로, 크게 한 바퀴 돌아 되돌아온 느낌이었다.

돌아보면, 그전에 쌓였던 불안과 절박함이 이미 목까지 차 있었기 때문에 정말 절실하게 준비했다. 그래서였는지 토론도 생각보다 수월하게 풀렸던 것 같다.

그 시기에 나는 사람의 눈높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울 수 있는지를 알게 됐다. 업계 지인도 생기고, 동기도 있고, 단체 카톡방도 몇 군데 있다 보니, 어느새 스스로를 ‘이 정도는 되는 사람’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그 무리에서 제 발로 빠져나와 일용직을 전전하는 현실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예전보다 더 잘되어야 한다’는 압박이 생겼고, 그 압박이 오히려 당시의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수습을 마치고 정사원이 된 동기들이 부럽기도 했고,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며 나 스스로도 말하기 어려운 부끄러운 행동들을 많이 했던 시기였을 것이다.

그래도 그 시간을 지나고 나니 남은 것이 있다.
만약 그 시절이 없었다면, 부끄러워할 줄도 모르고, 제대로 된 창피함 한 번 느껴보지 못한 채 지금의 내가 되어 있었을 것이고, 어쩌면 그게 더 큰 화근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남들 눈에는 별것 아닌 일처럼 보이겠지만,
일용직 현장에서 몇 번이고 깨지고 욕도 먹으며, 대놓고 무시당하지는 않더라도 묘한 거리감과 냉대를 견뎌 본 시간이 있다.
스스로에게 “블루칼라 기술직이 화이트칼라보다 더 고귀하다. 노동의 땀에는 분명한 가치와 무게가 있다”고 되뇌어 놓고도, 먼지를 뒤집어쓴 채 도심 식당에 들어서는 순간 주변을 의식하며, 남들이 아니라 결국 내 자신부터가 내가 세운 기준을 가장 먼저 흔들어 버리던 때였다. 

그때의 무모하고 멍청해 보였을 행동들에 대한 후회와 부끄러움, 창피함을 온전히 감당해 본 경험이 남았다.

그 경험 덕분에,
두려움을 이유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주저앉는 것보다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일단 부딪쳐 보고,
필요하다면 한 번쯤 크게 깨져보는 편이 낫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그 시절의 부끄러움을 떠올릴 때마다,
지금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함과
언제든 시장과 세상이 나를 밀어낼지 모른다는 불안함이 함께 올라온다.
그리고 나는 그 불안을 원동력 삼아, 버티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마음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아마 그 불안했던 시기를 통과하지 않았다면,
정신적인 미온함과 미숙함은 고쳐지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또 다른 깨달은점은 개인적인 노력과 절박함 없이, 남이 만들어준 기회와 운에만 기대 얻은 것은 진짜 의미의 ‘기회’가 아니다.

운 좋게 취업이 빨랐던 당시에는 그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몰랐고, 나는 그 기회를 제 발로 걷어찼다. 그때의 선택이 얼마나 큰 기회였는지는 더 아래로 내려가 보고, 더 절박해진 뒤에야 알게 됐다. 그 과정에서 완전히 주저앉아 버렸다면, 그게 한 번 왔던 기회였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요즘처럼 불장에서 마우스 클릭 몇 번으로 돈을 버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지는 시기일수록, 나는 가끔 그 시절을 떠올린다. 스스로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다. 이번 연휴에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이렇게 옛 기억을 다시 적어 보게 됐다.

대화는 결국 공감 위에서만 가능하다고 한다. 돌이켜보면, 주식투자를 떠나 사람 대 사람으로 내적 친밀감이 생겼었던 이들은 대부분 비슷한 감각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잠깐 몸담았던 운용사에서도 유독 인상 깊었고 내적으로 동질감을 느꼈던 분들이 있었다. 반지하 방에서 장마철마다 물이 차오르는 고단한 시절을 버텨낸 분,

운용사 미들오피스 마케팅으로 입사했지만 프론트 운용역으로 이직하고자, 퇴사를 각오하고 매달린 끝에 결국 프론트 운용역으로 다시 자리 잡아 성과를 낸 분이었다.

공통점은 분명했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았고, 과거의 어렵고 힘들었던 시간을 잊지 않은 채 그때의 기억과 불안을 품고 살아가던 사람들이었다.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그런 사람들이 결국 일에서도 사람으로서도 더 단단해지고, 더 좋은 방향의 ‘성공’을 만들어 가는 경우가 많았던걸로 기억된다.

주식운용과 리서치를 계속할 수 있음에 감사함을 알고,
시장이 언제든 자신을 밀어낼 수 있다는 불안을 알고,
그 불안에서 도망치기보다 책임을 지려는 마음이 있는 사람,
잃을 것이 있고, 그것을 스스로 책임지려는 사람들이다.

나는 예전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아무리 무엇을 이뤘다고 생각해도, 언제든 다시 다 잃을 수 있다는 근거 없는 두려움이 여전히 남아 있다. 그 두려움이 내적인 긴장감으로 작동하고, 그 긴장감이 다시 시장 앞에서의 겸손함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반대로 잃을 것도 없고, 책임질 것도 없고, 인센티브도 희미한 상태에서 안정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지내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당장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고, 생존에 직접적인 위협을 느끼지 못하는 환경에 오래 익숙해지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이 업계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이렇게 생각한다.
어느 정도의 불편함과 불안을 안고 가는 것,
일정 수준의 리스크와 불확실성을 감수할 준비를 늘 해 두는 것,
눈앞의 기회를 가볍게 흘려보내지 않으려는 태도를 놓치지 않는 것.

정말 워런 버핏처럼 밤에 두 발 뻗고 편안하게 잠을 자며, 평생 자신이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도 가치투자의 ‘정도’를 지키는 삶이 가능한가, 하는 회의가 밀려올 때도 많다.

하지만 애초에 이 세계에는 하나의 정답이나 하나의 정도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틀렸다고 단정하기보다는, 서로 다른 방식이 존재할 뿐이라고 받아들이는 편이 지금의 내 결론에 더 가깝다.

애초에 나는 워런 버핏식 가치투자의 기질과는 맞지 않는 투자자였는지도 모르겠다.

2026년 2월 9일 월요일

이모저모

오늘같이 연기금 리밸런싱 수급으로 주가가 크게 흔들리는 날이면, 이상하게도 손이 잘 움직이지 않는다.

해야 할 일이 없어서라기보다, 이런 날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애초에 많지 않다는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시장을 보고 있는 시간보다, 멍하니 과거를 떠올리는 시간이 더 길어진다. 오늘은 날도 우중충하고 갑자기 추워졌다. 업계에 처음 들어왔던 시절의 공기와 감정이 겹쳐 올라와, 그냥 기록처럼 남겨본다.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 나는 ‘장기투자’와 ‘가치투자’라는 말에 깊게 취해 있었다. 정말 좋은 종목 하나만 찾으면 된다고 믿었다.

한 번만 제대로 찾으면, 나도 복리의 마법으로 금방 부자가 될 것 같았다. 지금 와서 보면 너무 단순했고, 너무 순진했다.

그때의 나는 투자가 마치 정답이 있는 시험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답만 찾으면 끝나는 수학문제처럼.

그래서 나는 그해 대학 여름방학을 통째로 투자에 바쳤다. 집에 혼자 틀어박혀 상장기업 재무제표를 하나씩 뜯어봤다. 재무비율을 손으로 계산하고, 숫자 뒤에 있는 사업을 이해하려고 기업과 산업을 파고들었다.

그때는 그 시간이 쌓이면 언젠가 ‘딱 하나의 확신’이 생길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정신 차려보니 시간이 흘러 있었고, 어느새 나는 30대 중반이 되어 있다. 그때의 나는 마치 사막 한가운데서 길을 잃은 낙오자가 신기루에 홀려 낙원을 찾듯 무언가에 홀려있었지 않았었나 싶다.

초기에는 길고양이 마냥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스터디도 기웃거리고, 부띠끄도 기웃거리고, 증권사와 운용사도 기웃거렸다. 어딘가에는 답이 있을 것 같았다. 누군가는 더 높은 곳에서 정답을 내려다보고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해진 건, 투자에 정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결국 사람들은 각자 다른 투자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자기만의 방식으로 버티고 있다는 것. 어떤 철학은 멋있어 보였고, 어떤 철학은 위험해 보였지만, 돌아보면 그 어떤것도 애초에 이상적인 투자정답이란 없었던것이 아닐까 싶다. 

나 역시 고집이 있는 편이었다. 처음엔 그 고집이 내 무기라고 믿었다. 남들이 흔들릴 때 나는 끝까지 버텨 내가 맞았다는걸 증명해내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고집은 무기가 아니라 편향이 될 수 있다는 걸. 투자 종목의 풀을 넓히고, 산업을 넓히고, 그 너머의 정치·경제·사회·지정학까지 사고의 폭을 넓히다 보니, 내가 붙들고 있던 확신들이 하나둘씩 흔들렸다. 

더 많이 볼수록, 한 가지 관점으로 끝까지 우기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내 고집은 ‘사라졌다’기보다, 현실에 의해 깎여나갔다라는 표현이 좀 더 정확한 것 같다.

그런데 고집이 줄어드니,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요즘의 나는 ‘반짝이병’에 걸린 사람 같다. 어제 좋아 보이던 종목도, 오늘 더 좋아 보이는 종목이 나타나면 별 미련 없이 갈아탄다. 

예전의 나는 한 번 고른 종목을 끝까지 밀고 가며 내 선택을 증명하려 했는데, 지금의 나는 그 증명 욕구가 약해진 대신, ‘더 좋아 보이는 것’에 쉽게 끌린다. 이게 유연함인지, 아니면 집중력의 붕괴인지 스스로도 헷갈릴 때가 있다.

와이프는 내 이런 성향을 생활에서 먼저 이해한 것 같다. 우리는 외식을 하러 나갈 때 메뉴를 미리 정하고 나가지 않는다. 정해봤자 의미가 없다.

길 가다가 더 맛있어 보이거나, 사람들이 꽉 차 있는 곳을 보면 나는 홀린 듯 그쪽으로 들어가 버린다. 투자도 비슷하다. 더 좋은 투자처가 나타나면, 나는 그 순간 마음을 바꿔버린다.

이 성향이 나를 살린 순간도 있었겠지만, 분명 나를 불필요한 매매로 몰고 간 순간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던 내가 크게 달라진 지점은 매크로 공부였다. 솔직히 말하면, 매크로를 공부하는 이유는 더 공격적으로 매매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매매를 덜 하기 위해서다.

투자를 하면서 진짜 적은 시장이 아니라, ‘무지에서 오는 공포’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시장이 흔들리면, 그 흔들림은 곧 내 감정의 흔들림으로 번진다.

마치 어두컴컴한 동굴 속에서 시각을 제외한 오감에만 의지한 채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이다. 보이지 않으니 상상만 커지고, 상상은 대부분 공포로 바뀐다.

그래서 나는 먼저 이해하려고 했다. 글로벌 자산시장에 무슨 일이 벌어졌고, 그 일이 한국시장과 내 포트폴리오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혹은 줄 예정인지. 그 연결고리를 이해해두면 최소한 중심은 잡힌다.

중심이 잡히면 전략을 다시 세울 수 있다. 그러려면 어떤 이슈라도 시간과 노력을 들여 하나하나 공부해야 한다. 매크로·정치·경제·사회 같은 분야는 특히 그렇다. 아는 만큼 보이고, 그 ‘보이는 범위’가 넓어질수록 같은 사건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달라진다.

최근 케빈 워시의 B/S 축소 충격을 이해하려고 21세기 통화정책 책을 다시 펼쳐 읽었던 일이 떠오른다. 첫 회독 때와는 달리 글이 한 번에 읽혔고, 이해의 폭도 훨씬 넓어져 있었다. 그때 느꼈다. 지식이 쌓이면, 사건의 크기가 줄어드는 게 아니라 사건을 해석하는 내 시야가 넓어진다는 걸. 같은 흔들림도 덜 두렵게 받아들이게 된다는 걸.

돌이켜보면, 내가 처음 품었던 “최고의 기업 하나, 최고의 산업 하나” 같은 꿈은 너무 낭만적이었다. 최고의 것을 찾으려면 비교분석이 선행되어야 하고, 비교를 하려면 산업 전체를 알아야 하고, 산업을 알려면 그 산업을 흔드는 외부변수들을 이해해야 한다. 

결국 ‘하나’를 찾는 일이 아니라 ‘전체를 보는 과정’을 견디는 일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과정을 모르고 너무 순진하게 이 업에 들어왔다. 그래서 초반에는 열심히만 하면 답이 나온다고 믿었고, 그 믿음 때문에 오히려 더 오래 헤맸지 않나 싶다.

모든것을 알고자 할수록, 그 어떤 지식에도 매여선 안된다는 교훈이 동시에 떠오른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또 다른 반성이 남는다. 운용수익률 자체는 좋았다. 하지만 “돈을 직접적으로 어떻게 더 벌 것인가”라는 실무적 질문 앞에서는 생각과 확신이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수익률만 좋다고 돈이 벌리는 게 아니라는 걸. 결국 돈은 행동에서 나온다는 걸. 그런데 나는 그걸 아는 수준에서 멈춰버렸다. 

체력의 문제였을 수도 있고, 나라는 투자자의 한계였을 수도 있다. 분명한 건, 나는 ‘조급할 필요 없다’는 말 뒤에 숨어 실질적인 실행을 미뤄온 부분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요즘 들어 가장 자주 떠오르는 후회가 있다. 개인적인 아카이브 정도로 생각했던 블로그에, 남에 대한 비평 아닌 비평을 너무 생각 없이 써버렸던 일이다. 

그때는 그저 내 생각을 정리한 기록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다른 투자자들의 블로그를 돌아다니다 보면 가끔 뜨끔할 때가 있다. 내가 남긴 말들이 누군가에게는 가볍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투자라는 업을 진지하게 대하고, 자신의 많은 열정과 노력을 쏟아부어온 사람일수록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나와 다른 투자철학에 대해, 내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결국 그건 내 그릇이 작았던 탓에 생각이 타인의 감정까지 미치지 못한것이 아닐까 한다. 

예전에 한 운용사 이사님이 자진퇴사를 앞둔 내 앞에서 조용히 하셨었던 말이 갑자기 떠오른다. 투자는 담금질하듯 시간을 들여 스스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이야기였다.

글로 생각을 정리해보니, 정말 그때의 그 이사님의 말씀이 꼭 맞는것 같다라는 생각이 든다. 

돌아보면 어느 순간 나는 너무 깊이 매몰되어, 그날그날의 수익률이 내 기분을 좌우하고, 운용 중인 포트폴리오와 나 자신이 한 몸처럼 동일시되는 착각에 빠질 때가 있었다. 숫자가 흔들리면 마음이 흔들리고, 마음이 흔들리면 다시 판단이 좁아지는 식이었다.

그래서 요즘은 그런 순간일수록 일부러 한 발짝 물러서보려고 한다. 그게 결국 예전처럼 고집을 내세우며 시야를 좁히던 나로 되돌아가려는 습관에서 벗어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끝


2024년 4월 17일 수요일

이모저모 인간관계




지난 1년간 따로 연락해 세미나를 들어본 기억도 없고,
친구들에게 먼저 연락해 점심/저녁 약속을 따로 잡아본 기억도 드물다.

최근 급격히 인간관계에서 지루함이 찾아오는건 왜 일까?라는 잡생각에 빠져본다.

먼저 대화의주제/관심사에서 많은 차이를 느낀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nvidia의 놀라운 실적 / open ai의 혁신 / 관련 산업 생태계 변화를 계속 추적해오면서 완전히 Tech의 세계에 빠져있다보니, 그 외의 대화 주제에 대해선 지루함이 앞서버린 것일까.. (연애는 예외)

그렇다고 또, 생각/입장/편향성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는 주식관련 얘기는 다른 사람들과 일절 하고싶지가 않다.

먼저 만나자고 연락이 종종 오지만, 그 때마다 이 사람을 만나서 내가 얻게되는게 무엇일까라는 '세속적'인 생각이 먼저 앞선다.

차라리, 그 누군가를 만나는 시간에 애인과 연락을 주고받거나, 책을 읽던가, 논문을 읽으며 개인적인 궁금증을 해소하거나, 유튜브 영상을 보거나, 낮잠을 자는 등 훨씬 이로운 일들이 많은데 말이다...

만나면 유쾌한 사람
만나면 이로운 사람
만나면 기분이 좋은 사람 

나에게 이러한 좋은 기운을 주시는 분들은 보통 나로인해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하고 계시고 있다는건데, 내가 그들에게 줄 수 있는게 딱히 없다는게 그분들과의 만남을 주저하게도 만든다. 

내가 부탁을 받을때도 있지만, 반대로 내가 부탁을 해야 할 상황도 많다. 

무언가를 누군가에게 부탁할때는, 감사함을 기억해 나중에 어떤식으로든 되갚아주지 않으면, 그 관계는 바로 소원해짐을 느낀다. 

도움이 될 것 같은 사람만을 가려가며 만나는것도, 추후에 도움이 될 것 같은 사람의 부탁만 가려내는 것도, 머릿속으로 이런 계산을 하고 있는 나도, 점점 세속화되는 것일까 싶다.

그래도 예전엔 시간/에너지도 많았고, 도움을 받아야하는 상황이 압도적으로 많았어서 그런지, 모든것에 감사함을 느끼며 이 사람 저 사람 다 만나고 다녔었지만,

이제는 뭔가 시간도 없고, 사적으로나, 일적으로 할일도 많아졌고, 무엇보다 에너지가 예전같지 않다보니, 주변 사람들을 가려내는게 아닐까 싶다. 

완전한 등가교환이 가능한 만남은 가족/연인 밖에 없는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무언가를 얻고자, or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불편한 누군가를 굳이 무리해서 만나야 하나 싶다.
 
=끝

2022년 12월 17일 토요일

면세시장 이모저모

2023년 집중해야 할 투자 포인트는 단연 중국이다.

그 중에서도 금번 <내수 확대 전략 규획 요강 (2022-2035)> 발표 내용 중 단연 눈에 띄는 문구가 있어 기록해 놓으려고 한다. 

更好满足中高端消费品消费需求。促进免税业健康有序发展。促进民族品牌加强同国际标准接轨,充分衔接国内消费需求,增加中高端消费品国内供应。培育建设国际消费中心城市,打造一批区域消费中心。深入推进海南国际旅游消费中心建设。


고급 소비재에 대한 소비자 수요를 더 잘 충족합니다. 면세산업의 건전하고 질서 있는 발전을 도모한다. 국제 표준에 따라 국가 브랜드 강화를 촉진하고 국내 소비자 수요와 완전히 연결하며 중급 및 고급 소비재의 국내 공급을 늘립니다. 국제소비중심도시를 육성, 건설하고 다수의 지역소비중심을 조성한다. 
하이난 국제 관광 소비 센터 건설을 심도 있게 추진합니다.

아래는 나라별 글로벌 면세시장 추이라고 한다.
단연 2025년까지 글로벌 면세시장은 중국 혼자서 하드캐리할 각이라고 한다. 
중국 면세시장 떡상에 한국면세(따이공) 시장도 (어느정도) 수혜를 입는 모습이라고 한다.  

(그동안 비중이 높았던 유럽, 아메리카는 성장이 없기에 22년~25년까지 데이터를 뺀건가?)
 



중국 면세 시장을 좀 더 세분화 해서 보자.

시내 면세점은 볼 필요 없을 것 같고.. 하이난 면세점 산업이 규모와 성장률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한다. (시내 공항면세도 작진 않다..) 


하이난 면세 시장을 좀 더 자세히보면 대체적으로 다 같이 빠르게 올라가는 그림이지만 Haikou 지역이 앞으로 좀 더 크게 오를 것 이라고 한다. 



2025년까지의 예상 하이난 면세 쇼핑객 추이이다.
2023년에는 차이나 보복여행, 보복소비로 인해 80-90% YOY 쇼핑객 성장이 이뤄질 것이라고 한다.
2025년에는 대략 0.15억명정도의 하이난 쇼핑객이 추산된다고 하는데 이는 중국 전체 인구의 1.1%정도 되는 수치정도 인듯 싶다.

(개인적으로 하기의 숫자들을 고려한다면 좀 보수적인 숫자가 아닌듯 싶다.) 

1) 2025년경 중국 1인당 gdp는 약 $15,000인 점( 중국 목표 연간 GDP 5% 성장 가정)
2) 2019년 기준 월 5천위안(100만원) 이상 소득수준을 가진 인구가 이미 4억명 이상인 점   



2021년 중국의 1인당 GDP는 이미 $12,500 수준이며 이는 과거 우리나라 2000년대 소득수준과 유사하다라고 한다.



 

국내 자료를 좀 더 뒤져보니 2000년부터 대한민국 해외 여객수가 떡상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2000~2019년까지 한국인들의 소득수준이 계속 우상함에 따라 해외 여행객수도 20년간 꾸준히 우상향 했으며 CAGR로 보면 대략 9.6%로 성장했다고 한다. 

(2019년은 노재팬으로 여행객 성장이 없었나?)
 
중국도 소득수준이 우상향 함에 따라 한국과 비슷한 경로를 밟지 않을까 한다.  

국적불문 어느정도 먹고 살만해지면 다들 차 사고 여행가고 해외로 떠나고 싶은 건 다들 똑같은 것 같다.

아래는 국가별 럭셔리 시장 비중인데 역시나.. 중국 럭셔리 시장 비중은 올라가고 유럽, 미국 럭셔리 시장 비중은 내려간다고 한다.



다음은 제품군별 럭셔리 마켓 비중인데 1) leather goods, 2) beuaty 3) apparel 순이라고 한다.

(가죽제품을 이렇게나 많이 산다고?)





중국 소비 면세 시장이 저렇게나 크고 성장률이 가파른데..

k-면세, k-뷰티의 중국과의 경쟁력 악화로 실적 개선이 (없을) 낮을 것이라고만 보는게 과연 맞는건가 ..?

아무래도 23년 한 해 동안 중국시장만 공부해야하지 않을까 한다.


#글을 마치며

최근 유퀴즈에 나온 손웅정씨가 언급해주신 좋은 글귀로 글을 마무리 한다.

“인무원려 필유근우. 멀리 보지 않으면 반드시 가까이에 근심이 생긴다.”

 - 논어 위령공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