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16일 월요일

누구와 함께 일할것인가..

최근 자산시장에 활기가 돌면서 운용업계에서도 채용공고가 많이 올라오는 분위기이다. 우리도 (그래봤자 나 포함 대표님 두 명뿐이지만) 추가 인력 채용에 대한  논의가 작년부터 있었고, 아직 확정된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 사람을 뽑을 것인가?'라는 고민은 자연스럽게
'누구와 함께 일할 것인가?',
'어떤 사람이어야 서로 성장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채용의 기준은 어디에 둬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확장된다.

상황에 따라 동료이자 부하직원이자 상사로 역할을 바꿔가며 지낼 수 있는 동등한 수준의 사람을 뽑을 수 있을까? 정작 나 자신이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조차 의문이다.

사실 지금 투자 아이디어나 편입 후보 종목은 부족하지 않다. 오히려 넘쳐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가정이 생기고, 나이가 들며, 시대 흐름에 조금씩 뒤처지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은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채용의 기준에 대해 두서없이 기록을 남겨본다.

채용의 기준

가장 먼저, 자신의 의사를 간결하고 명료하게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간단히 말할 수 있다는 것은 핵심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며, 핵심을 인지한다는 것은 생각 정리가 머릿속에서 이미 끝났다는 의미이다.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은 (*개인적으로는) 줄글로 자신의 견해를 적고, 퇴고하는 과정에서 이뤄진다.

따라서 자신의 투자 아이디어를 줄글로 작성하고, 퇴고하여 핵심 포인트를 3분 이내 한 문단으로 요약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다음으로는, 이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숫자화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최소 3년의 미래 실적 추정치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하며, 최대 6개월정도 동안 실적추정치의 변수는 적고 추정치의 변동폭은 클 수록 좋다. 

경험상 실적추정 변수는 최대 2개분기가 지나면 모두 바뀌어 있다.  2개 분기를 지난 실적추정은 흐름을 보려는 것일뿐 실현가능성에 대해 크게 의미를 두지는 않는다. 

적은 변수로 인해 실적 변동폭이 크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초과수익을 낼 수 있는 확률이 높다라는 의미이다. 아무리 아이디어가 참신해도 결국 투자 세계에서 중요한 것은 실적이다. 시장과 차별화된, 의미 있는 고성장 실적이면 베스트다.  그 추정 과정에서 드러나는 가정, 변수, 논리 구조가 비약 없이 정제되어 있어야 한다.

과거 글을 올려놓은 HMM, 한국카본, 대한통운, 한사결 등을 참고하면 좋을것 같다. 

만약 우리가 알지 못하거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실수로 일차적인 거부반응으로 비약이 있다고 느껴져 이를 소통했을때, 차분히 설명해주면 좋을 것 같다.

실적추정을 숫자로 정리해놓아야 내외부적으로 예기치 못한 이벤트가 발생했을때 적합한 투자판단 액션이 가능하며 동시에 투자 의사소통이 훨씬 수월해진다. 

(밸류에이션은 안해도 무방하다.)

단기 실적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장기적 지속성장을 가능케 하는 경제적 해자이다. 관련 서적은 많지만, 책으로 배우는 것과 업계에서 몸으로 부딪히며 체득하는 해자의 중요성은 질적으로 다르다.

경제적 해자에 대해 고민하고 리서치를 해본 사람이라면, 그 기업이 속한 산업의 경쟁 구도, 시장 크기, 성장 속도, 지정학적 거시경제 리스크까지도 자연스럽게 고려할 수 있어야 한다. 실적 추정, 개별기업의 해자, 산업 분석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매크로 경제와 자산시장 전반으로 시야가 확장된다.

통합적 사고가 가능해야 타율이 올라간다. 단기 이벤트성 트레이딩으로 운 좋게 맞춘 투자는 오래가지 못하고, 좋지 못한 습관으로 이어지기 쉽다. 상승장에서 분석 없이 운 좋게 맞추다 하락장에서 되돌아갈 곳 없이 떠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기본이 튼튼한 사람은 하락기를 준비하고, 상승장이 왔을 때 더욱 탄력적으로 대응한다. 업계에서 오래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본기가 중요하다.

물론, 이 모든 것을 처음부터 완벽하게 갖출 필요는 없다. 다만,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춘 사람이라면 충분하다. 기본은 개별기업에 대한 바텀업 분석이다. 기본이 없다면 산업, 거시, 매크로 분석은 투자로 연결되지 않는 사변적 지식에 불과하다.

성실함과 열정

개별기업에서 산업, 매크로, 자산시장 전반으로 사고를 확장할 수 있는 사람, 과거의 사고 틀에 갇히지 않은 사람이면 좋겠다. 시간이 걸리고, 실수도 당연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고의 확장이 없는 사람은 우물 안 개구리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나도 그랬다.

한국은 B2B 기업이 많아, 바텀업 분석만으로는 기업의 실상을 파악하기 어렵다. IR에 의존하면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 기업을 다방면에서 평가할 수 있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여러 산업, 거시경제, 지정학적 거시경제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끊임없이 정보를 소화하고, 그 기업을 둘러싼 환경을 입체적으로 분석하는 힘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는 자연스레 발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계속 해내려면 성실함과 꾸준함, 그리고 업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필수이다.

이 업은 진입장벽이 낮다. 누구나 한 번쯤 주식투자를 해보고, 분석을 시도한다. 하지만 단순 관심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자격시험도, 면허도 없으며, 오직 수익률이라는 객관적 지표로만 평가받는다.

따라서 이 일을 평생 업으로 삼을 각오가 없다면, 그만큼의 공부와 열정도 없기 마련이다. 대학생 중 투자 동아리 경험만으로는 부족하다. 실제로 자신의 돈을 걸고 투자해본 경험, 그 성공과 실패에서 배운 진지한 태도가 필요하다.

시장을 본다는건 점과 점을 잇는 선일 뿐이다. 그 선을 확장해 도형을 만들고, 거기에 거시경제와 지정학을 더해 입체 구조로까지 발전시켜 나가는 사고 과정이 중요하다. 사고 확장의 가능성이 열려있는, 우리보다 어린 세대를 채용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성장과 배움이 없으면 결국 개별기업만 바라보게 되고, 이는 사고의 한계로 이어지며, 평생 답답함을 느끼며 투자업을 이어나갈 확률이 크다. 

사고의 그릇을 넓히는 초기 설계가 중요하며, 입체적 시각은 운용규모가 커져도 흔들리지 않는 성과로 이어진다. 나이가 들수록 책임감과 지킬 것이 많아지며 사고는 우편향적으로 치중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우리가 투자했던 결과가 좋았던 투자 대부분은 좌편향된 시각과 사고에서 시작되었다.

그렇기에 최신 트렌드에 민감하고, 점차 우편향될 우리에게 균형을 줄 수 있는 좌편향적이고 유연한 사고를 가진, 우리와 다른 생애주기를 가진 사람이 필요하다.

캐릭터와 성격

변동성이 큰 자산을 다루는 운용업에서는 감정의 기복이 크면 버티기 어렵다. 내가 본 장기성과 우수한 매니저들은 대부분 겉으로는 차분하지만, 투자 이야기에는 누구보다 뜨겁다.

시장 앞에서는 조용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기업이나 주식 이야기를 할 때는 억눌렸던 열정이 드러나는 사람, 학습과 배움은 즐기되 자랑하지 않으며, 오히려 지식이 많을수록 그와 반비례해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 타인의 인정보다는 승부욕에 반응하는 사람이 이상적이다.

자신의 아이디어나 투자의견을 밝히는 데 있어, 말끝을 흐리는 사람이 있다. 이는 대개 자신감 부족에서 비롯된 말투일 가능성이 높다.

사실 나 또한 그런 초기 습관이 아직 몸에 남아 있다. 다만 앞으로 함께 일할 사람만큼은, 이러한 태도를 지양했으면 한다. 의견을 말할 때는 명확하고 단호해야 한다. 명확한 전달은 곧 사고의 정리와 태도의 자신감을 반영한다.

물론, 자신감이 지나쳐도 문제이다. 지나친 자신감과 용기는 무지에서 비롯될 가능성이 있으며, 반대로 과한 겸손은 책임 회피 성향에서 기인할 수 있다.

투자라는 일은 원천적으로 불확실성을 동반한다. 그 속에서 의견을 내고 결정을 내리는 일은 언제나 용기와 신중함 사이의 균형을 요구한다.
용기를 갖되 무모하지 않고, 신중하되 위축되지 않는 태도가 중요하다.

투자에 있어서 중용의 미덕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한다.

태도

나 스스로도 신입 시절, 태도는 엉망이었다. 대들진 않았지만 자유분방했고, 그 시절이 힘들었다. 그렇기에 새로운 사람에게 태도에 대해 말할 자격은 없다.

그저 식당에서 수저 하나 먼저 놓아주고, 물컵을 먼저 채워주는 배려 정도면 충분하다.

물론 경청하는 자세, 배우려는 의지, 분위기를 읽는 센스가 있다면 주변 사람들이 도와주기 마련이며, 이는 성장 속도를 빠르게 만든다. 태도가 좋은 사람은 자연스럽게 좋은 사람을 끌어당긴다. 배울 수 있는 것도, 가르칠 수 있는 것도 아닌, 타고난 캐릭터에서 비롯된 특성이라 생각한다.

책임감

지금처럼 상승장에서 사람을 뽑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업에 대한 진지한 관심 없이, 단순히 쉬워 보이거나 돈을 벌기 위해 스펙 좋은 이들이 지원할 수 있기 때문이며, 이들은 침체기나 사내에서 인정받지 못하면 쉽게 업계를 떠나버린다. 

오히려 하락장에서 업의 본질에 끌렸던 사람, 하락장을 겪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 진짜다. 최근 한국 사회는 더욱 안전지향적으로 변해가며, 주식운용업에 대한 선호도 줄고 있다. 하지만 시야를 넓히면 이 업만큼 매력적인 분야도 없다.

책임감은 직책에서 오지 않는다. 업에 대한 애정과 인생관에서 비롯된다. 정말 좋아하고, 열정을 갖는다면 책임감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그렇지 않다면, 처음부터 잘못된 업을 선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운용업은 성과로 모든 것을 말한다. 제조업처럼 시간을 들여 일한 양으로 평가받는 업이 아니다. 입사 초, 한 상사께서 이렇게 말한 적 있다.

"난 네가 뭘 하든 상관 안한다. 성과에 대한 책임만 스스로 지면 된다. ."

차가운 말 같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이 업의 본질을 정확히 짚어준 조언이었다.

지적 겸손과 솔직함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자질은 지적 겸손솔직함이다. 누구나 틀릴 수 있으며, 특히 투자업은 구조적으로 불확실성이 내재된 영역이기 때문에 실수하거나 판단이 어긋나는 일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가끔 투자의 결과가 좋게 나왔다고 해서 성공했다고 단정짓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만약 초기 아이디어의 인과관계나 논리 구조가 틀렸다면, 비록 수익을 냈다 하더라도 그건 맞은 게 아니라 ‘운 좋게 틀린 것’에 가깝다.

정말 중요한 것은 실수와 오류를 빠르게 인지하고, 자신의 판단 과오를 과감하게 인정하며, 거기서 벗어날 수 있는 회복 탄력성이다. 이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신뢰가 핵심인 운용업의 조직 환경에서는 더욱 그렇다. 솔직함과 대범함이 없으면, 누구나 쉽게 자신의 실수를 외면하거나 포장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마련이다.

운용 경험이나 투자 경력이 짧을수록 실수나 과오가 잦은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오히려 고집으로 덮으려 들기 시작하면 팀 간 신뢰가 무너지고 조직 내 갈등으로 번지기 쉽다.

더 나아가, 지금의 세대는 우리 세대보다 실수와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 혹은 이를 부끄러운 일로 인식하는 문화 속에서 성장해왔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오류를 숨기거나 회피하려는 성향이 더욱 강해졌다고 생각된다. 그렇기에 오늘날에는 이 같은 솔직함과 지적 겸손의 가치가 더욱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솔직함과 대범함, 그리고 지적 겸손이 부족하면 실수와 실패를 두려워하게 되고, 결국 도전을 회피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사고의 확장은 멈추고, 결국 자신이 이미 잘 알고 익숙한 산업이나 기업에만 머무르는 투자자로 남게 된다. 그런 투자자들을 우리는 숱하게 보아왔다.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에 대해 솔직하게 인정하며, 거기서 배우고 벗어나려는 태도는 운용업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고, 가장 멀리 가는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중요한 특성이 아닐까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경험상 틀릴수 있다라는 적당한 긴장감이 원동력이 되어 사고의 확장으로 이어진 경험이 많다.

글을 마치며

새로운 어린 사람이 운용팀에 합류해 함께 아이디어를 나누고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가장 큰 위기일 수 있다.

더 나은 장기 성과를 위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싶지만.. 제 발로 걸어들어올리는 만무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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