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1월 3일 화요일

생각정리 423 (* Fear of Success, Legacy media, Cost of Consensus)


최근 며칠 동안 정치·사회 뉴스를 계속 보다 보니 개인적으로 꽤 충격적인 장면들이 연달아 이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브라질 대선에서는 투표 종료 직전 선거시간이 갑자기 연장됐고, 그 결정을 내린 대법관 Cristiano Zanin은 과거 Lula의 개인변호사였다.

우크라이나에서는 Kyiv 외곽 국가방위군 시설을 둘러싸고 불법감금과 폭행 의혹이 제기됐고 주민들이 몰려들어 군과 충돌했다. 이후 우크라이나 국가수사기관은 군 관계자의 직권남용 여부를 조사하기 시작했고, 반대로 SBU는 현장에 있었던 약 100명을 특정해 일부에 대한 수색·구금·기소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독일에서는 Zelensky가 베를린을 방문한 바로 그날 Merz 총리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우크라이나 지원을 계속하겠다”**고 다시 확인했다. 반면 AfD 공동대표 Alice Weidel은 같은 날 Kyiv 외곽 군 시설 사건을 거론하며 독일 정부가 Zelensky에게 이를 직접 문제 삼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https://english.nv.ua/nation/afd-levels-accusations-against-ukraine-s-national-guard-ukrainian-military-explains-incident-50655971.html


프랑스도 비슷하다.

Macron은 우크라이나 지원을 프랑스의 선택이 아니라 유럽과 프랑스의 안보이익이라고 규정한다. 반면 Marine Le Pen은 대통령이 될 경우 처음 6개월간 기존 지원을 유지한 뒤 프랑스의 재정지원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지금 미국에서는 중간선거가 진행되고 있다.

불과 하루 전까지 Prediction Market과 상당수 선거모델은 민주당의 상·하원 장악 가능성을 높게 반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Election Day 당일 Kalshi에서는 Texas, Iowa, Michigan, Maine 등 일부 핵심 상원 경합주의 결과 예상치가 한때 공화당 방향으로 움직였다.

최근 계속 드는 생각은 하나다.

나는 현실을 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가 선별해서 보여주는 현실을 보고 있는 것일까.


1. Peter Thiel이 말하는 유럽의 진짜 문제. Fear of Success


유럽의 구조적 문제는 이미 여러 번 정리했다.

생각정리 351 (* Europe’s Structural Decline)에서는 고령화, 에너지 비용, 재정분열, 인재유출이 겹치며 유럽의 성장엔진이 약해지고 있다고 봤다.

이후 생각정리 402 (* Europe’s Rightward Turn)에서는 그 경제적 정체가 이민, 생활비, 복지 부담을 통해 정치적 우경화로 나타나는 과정을 살펴봤고,

가장 최근 생각정리 421 (* Moron Parade II. Europe’s Political Contradictions)에서는 AI 산업을 키우겠다고 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세금과 규제를 논의하고, 우크라이나 지원을 지속해야 한다면서도 각국 유권자들의 비용 부담은 점점 커지는 모순을 정리했다.

그런데 최근 Peter Thiel의 말을 다시 보면서, 이 여러 현상을 꽤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표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Fear of Success.

Thiel은 유럽에서는 Ambition 자체가 사회적으로 높게 평가되지 않으며, 적당히 성공한 회사를 만든 뒤 매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선택이 된다고 지적했다.

반면 Musk나 Zuckerberg처럼 성공을 끝까지 Scale해 거대한 기업으로 키우는 문화는 훨씬 약하다는 것이다.

나는 이 표현 하나만으로도 지금 유럽이 처한 많은 문제를 상당 부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유럽은 실패를 두려워하는 사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너무 크게 성공하는 것 자체를 불편하게 여기는 사회로 변해온 것은 아닐까.

기업이 적당히 성장할 때까지는 혁신기업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일정 규모를 넘어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힘을 갖기 시작하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더 많은 세금이 논의되고,

더 많은 규제가 붙고,

더 많은 사회적 책임을 요구받고,

창업자의 부와 영향력 자체가 정치적 문제가 된다.

결국 창업자 입장에서는 합리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다.

더 크게 Scale하기 전에 Exit하는 것이다.

Skype는 Microsoft에 매각됐다.

DeepMind는 Google에 들어갔다.

Spotify와 Klarna는 결국 미국 자본시장을 선택했다.

각 기업의 이유는 다르겠지만 반복되는 패턴은 비슷하다.

Innovation은 유럽에서 시작될 수 있지만, Compounding은 미국에서 일어난다.

문제는 자본만이 아닐 수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어느 정도까지의 성공을 사회적으로 허용할 것인가라는 문화와 제도의 문제일 수 있다.


2. 그래서 Musk와 Thiel은 왜 기존 언론과 정치권을 그렇게 불신하는가


이 지점에서 최근 Elon Musk와 The Economist 편집장 Zanny Minton Beddoes의 인터뷰가 다시 떠오른다.

https://www.youtube.com/watch?v=XuoqKYxDHVc&t=1550s


Beddoes는 Musk가 막대한 부와 X라는 플랫폼을 이용해 유럽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문제를 지적했다.

그러자 Musk는 질문을 반대로 돌렸다.

왜 자신이 유럽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묻기 전에, 기존 언론은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신뢰를 잃었는지를 먼저 생각해보라는 것이었다.

최근 서구 레거시 미디어를 보면서 내가 느끼는 가장 큰 문제도 비슷하다.

나는 단순히 기자들이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같은 교육배경, 같은 도시, 비슷한 사회적 계층, 비슷한 정치적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공간 안에서 서로의 판단을 정상적인 상식이라고 확인해주는 구조에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 기자 1,600명을 대상으로 한 2022년 조사에서 자신의 정치성향을 Liberal이라고 답한 기자는 53.4%, Moderate는 39.5%, Conservative는 **7.1%**였다.

정당 정체성에서도 Democrat은 35.4%였지만 Republican은 불과 **3.4%**였다.

이 정도의 구성이라면 Newsroom 내부에서 특정 가치관이 자연스럽게 Default가 될 가능성을 무시하기 어렵다.

나는 이를 최근 서구 엘리트 사회에서 나타나는 사회주의적·중도좌파적 가치관의 동질화와 연결해 바라보고 있다.

성공의 Upside보다 결과의 격차를 먼저 걱정하고,

시장에 맡기기보다 규제를 선호하며,

개인의 선택보다 제도의 보호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National Sovereignty보다 초국가적 Institution을 신뢰하며,

압도적인 성공보다는 사회적으로 허용 가능한 범위의 성공을 더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가치체계다.

이 문제는 한국에서도 낯설지 않다.

생각정리 392 (* The Cost of Intervention)에서 정부 개입이 기업과 주주, 소비자와 미래 근로자에게 어떤 비용으로 전가되는지를 정리한 적이 있다.

그때도 결국 궁금했던 것은 비슷했다.

왜 정책의 의도보다 결과를 보려는 시각은 이렇게 약한가.

Thiel의 유럽 비판과 레거시 미디어에 대한 불신은 결국 같은 문제를 향하고 있는 것 아닐까.

성공의 상한선을 낮추는 사회와, 생각의 상한선을 낮추는 언론은 어쩌면 같은 문화적 뿌리에서 나올 수 있다.


3. Brazil, Ukraine, Germany, France. 문제는 거짓말보다 무엇을 보도하느냐다


브라질 정치에 대한 문제의식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생각정리 388 (* The Cost of Equality, Brazil, Korea Politics)에서는 복지와 재분배가 장기간 정치적 이해관계와 결합할 때 사회의 정책선호가 어떻게 바뀔 수 있는지 살펴봤다.

이후 생각정리 412 (* 2026 Brazil Fraud Election, Lula, Populism)에서는 이번 대선의 득표 변화, 디지털 동원, 사법부 개입, 투표시간 변경 등을 하나의 선거환경 문제로 묶어봤다.

그래서 여기서 다시 세부내용을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내가 지금 더 궁금한 것은 왜 이런 문제를 질문하는 것 자체가 빠르게 비정상적 주장으로 분류되는가라는 부분이다.

선거결과를 받아들이는 것과,

선거절차에 대한 독립적 검증을 요구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우크라이나 역시 비슷하다.

지난 11월 2일 Kyiv 외곽 Petropavlivska Borshchahivka의 National Guard 시설을 둘러싸고 불법감금과 폭행 의혹이 제기됐고 실제 주민들과 군의 충돌이 발생했다.

State Bureau of Investigation은 군 관계자의 abuse of authority 여부를 조사하기 시작했고, 동시에 SBU는 시위 참가자 약 100명을 특정해 일부에 대한 수색·구금·기소를 검토하고 있다.

여기에 현장에서 나온 14세 소년의 증언 영상까지 공개됐다.

최소한 이 정도라면 충분히 국제적인 뉴스가치가 있는 사건 아닌가.

더 흥미로운 것은 독일과 프랑스의 반응이다.

Zelensky가 베를린을 방문한 11월 3일 Merz 총리는 독일이 앞으로도 우크라이나를 지원한다고 다시 확인했다.

반면 AfD의 Alice Weidel은 바로 이 사건을 언급하며 독일 정부가 Zelensky에게 직접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프랑스에서도 Macron은 Ukraine Support를 European Security의 문제로 바라보는 반면, Le Pen은 재정여력과 지원의 Accountability를 문제 삼는다.

이런 균열은 사실 이전 글들과도 연결된다.

생각정리 158 (* 각자도생, 조선)에서는 미국이 제공하던 값싼 안보와 국제질서가 약해질수록 각 국가는 다시 자국의 비용과 이해관계를 우선하게 될 것이라고 봤다.

생각정리 164 (* 미국채, 다보스포럼, NATO)에서도 유럽이 하나의 정치적 구호를 공유한다고 해서 각국의 실제 이해관계까지 같아지는 것은 아니라고 정리했다.

지금 독일과 프랑스에서 나타나는 Ukraine Support 논쟁 역시 그 연장선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누가 맞느냐를 지금 당장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언론의 역할은 서로 다른 논리를 동일한 수준의 검증대 위에 올려놓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내가 최근 느끼는 불편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

Establishment가 제기하는 주장은 Policy로 다뤄지고,

반대 정치세력이 제기하는 주장은 먼저 Far-right, Populism, Disinformation이라는 정체성의 언어를 거쳐 설명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언론의 편향은 반드시 거짓말의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다.

무엇을 Front Page에 올리고, 무엇을 단신으로 처리하며, 무엇을 아예 보도하지 않는가.

어쩌면 가장 강력한 편향은 바로 이 Agenda Setting에 존재하는 것 아닐까.


4. 미국 선거는 왜 계속 비슷한 질문을 던지는가


이 문제는 지금 진행 중인 미국 중간선거에서도 다시 확인해볼 수 있다.

선거 직전 Prediction Market과 상당수 선거모델은 민주당 우위를 강하게 반영했다.

그런데 Election Day에 들어오면서 Kalshi에서는 Texas, Iowa, Michigan, Maine 등 여러 Senate Battleground에서 Republican 쪽으로 움직이는 변화가 나타났다.

이런 장면을 보면 과거 미국 대통령선거가 다시 떠오른다.

2016년에는 대부분의 주류 언론과 선거모델이 Hillary Clinton의 승리를 예상했다.

그러나 실제 결과는 달랐다.

2020년에도 Polling Error는 다시 발생했다.

2024년에는 오차가 줄었지만 방향은 또 비슷했다.

세 번의 대통령선거 연속으로 공화당 득표가 일부 사전조사에서 과소평가됐다.

이것이 Pollster의 의도적 조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Non-response, Turnout Model, Sampling, Weighting 같은 기술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Consensus Model도 Model일 뿐이다.


5. Technology People과 Legacy Institution의 가장 큰 차이


여기까지 생각하다 보니 왜 Elon Musk나 Peter Thiel 같은 사람들이 기존 정치·언론 엘리트에 그렇게 비판적인지도 조금 이해되는 것 같다.

이들이 살아온 세계에는 굉장히 빠른 Feedback Loop가 존재한다.

Rocket이 궤도에 올라가면 성공이다.

폭발하면 실패다.

AI Model이 더 적은 Computing으로 더 높은 성능을 만들면 기술이 발전한 것이다.

기업이 고객을 얻고 Cash Flow를 만들어 Scale하면 성공한다.

Reality가 Narrative를 매우 빠르게 심판한다.

반면 정치와 언론의 세계에서는 Feedback Loop가 훨씬 느리다.

정책이 실패해도 설명을 바꿀 수 있고,

선거예측이 틀려도 새로운 Methodology로 넘어갈 수 있으며,

보도하지 않았던 사건이 커져도 당시에는 검증이 부족했다고 말할 수 있다.

핵심은 악의가 아니다.

틀렸을 때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다르다는 것이다.

Technology의 세계에서는 Reality가 틀린 가설을 빠르게 제거한다.

반면 정치와 언론의 세계에서는 Narrative가 Reality보다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

어쩌면 Musk와 Thiel이 기존 제도권을 불신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아닐까.


글을 마치며. Consensus Is Not Reality


그렇다고 X를 믿고 기존 언론을 모두 버리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X 역시 또 다른 Echo Chamber가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어느 한쪽을 믿는 것이 아니라 직접 확인하는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사건을 발견한다.
→ 원본을 찾는다.
→ Primary Source를 확인한다.
→ 반대편 설명을 읽는다.
→ 숫자를 직접 계산한다.
→ 내가 틀렸음을 증명할 Evidence를 찾는다.

투자를 하면서 매일 하는 일과 사실 별로 다르지 않다.

Consensus Earnings를 그대로 믿지 않고,

회사의 설명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산업의 Supply와 Demand, 경쟁사의 CAPA, 고객의 주문을 다시 확인한다.

정치와 사회문제 역시 다를 이유가 있을까.

그리고 여기서 문득 그동안 내가 봐왔던 몇몇 조직들이 떠오른다.

별다른 시장경쟁력 없이 오랫동안 정체된 조직일수록, 이상하게도 뛰어난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기회보다 위협으로 보는 경우가 많았다.

성과에 따라 더 크게 보상하기보다 결과를 비슷하게 나누려 하고,

새로운 사람이 더 좋은 성과를 내면 조직 전체의 생산성이 올라간다고 보기보다 기존 구성원의 자리와 지위를 위협한다고 느낀다.

그 순간 경쟁은 시장이 아니라 조직 내부에서 벌어진다.

성과로 경쟁하는 조직이 아니라 정치로 경쟁하는 조직이 된다.

어쩌면 장기간 성장하지 못한 사회도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성장이 멈추면 관심은 **“어떻게 더 크게 만들 것인가”보다 “지금 있는 것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로 이동한다.

그리고 Pie가 커지지 않는 사회에서는 압도적인 성공이 기회가 아니라 기존 질서를 흔드는 위험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Peter Thiel이 말한 Fear of Success가 단순히 Startup 문화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이 부분 역시 앞서 생각정리 351 (* Europe’s Structural Decline)에서 살펴봤던 유럽의 장기 저성장과 연결해 생각해볼 수 있다.

경제가 오랫동안 정체되면 새로운 성장보다 기존 몫의 분배가 더 중요한 정치적 문제가 된다.

그러면 뛰어난 기업, 뛰어난 사람, 새로운 기술은 모두 기존 질서를 흔드는 존재가 된다.

성장하는 사회는 뛰어난 사람을 보며

“저 사람이 무엇을 새로 만들 수 있을까”

를 먼저 생각한다.

정체된 사회는 같은 사람을 보며

“저 사람이 기존의 무엇을 가져갈까”

를 먼저 생각한다.

그 차이가 결국 기업의 문화도, 정치의 문화도, 언론의 문화도 바꾸는것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Consensus 밖의 의견과 사람, 성공을 점점 더 위험한 것으로 보기 시작하는 순간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은 어쩌면 독립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일지도 모르겠다.

*문득 돌이켜보면, 그간 난 조직 안에서 누군가의 능력과 성과를 인정하기보다 시기와 질투의 대상으로 삼고, 결국 사내 정치로 찍어누르려는 사람들과는 개인적으로 말 한마디는커녕 인사조차 섞고 싶지 않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갑자기 다가와서 전후맥락 없이 나에게 

"xx씨는 너무 건방져"

라고 말했던 이전 조직에서의 상사도 동시에 떠오르며, 

아무런 업무 접점이 없던 다른팀 사람이 갑자기 다가와 자신의 미래의 성과를 담보로 지금의 현재의 우리(*내) 성과를 나누자라고 했던 장면도 떠오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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